엄마도 아시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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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걸걸한 목소리는 병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늙어서 변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타고난 것이었다. 그녀의 첫 울음소리는 우렁차다기보다 시끄러웠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두고, 그녀의 조부는 곧 숨이 넘어갈 노인의 목소리라고 했고, 그녀의 조모는 금이 간 무쇠 솥뚜껑으로 시멘트 바닥을 긁는 소리라고 했다.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라고 말한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사람들의 표현은 각기 달랐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녀는 타고난 명석함으로 누구보다 빨리 언어를 습득했으나, 그만큼 빨리 말을 아끼는 법도 배워야 했다. 그녀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말을 한 마디 더 줄이면서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해갔다. 소리 내어 웃지 않지만 환한 얼굴로 기뻐하는 법. 소리 내어 화내지 않지만 눈빛으로 엄중하게 경고하는 법. 노인의 음성에다 생생한 아이의 눈빛을 담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말을 해야 할 순간에 대해 신중을 기했으며, 안에서 충분히 정제되어 나온 말을 최대한 천천히 내뱉었다. 그렇게 내뱉은 말은 무쇠 솥뚜껑을 얹어 뜸을 들인 밥처럼 찰지고 윤기가 흘렀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래서 충분히 효과적이었고 절대적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단단해져갔다. 그녀가 가진 단단함이 목소리처럼 타고난 것이었는지, 아니면 목소리의 결점 때문에 생긴 훈련의 결과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안으로 쌓인 단단함은 목소리의 결점까지도 지울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말들이, 옹기에서 잘 익은 국간장 맛이 난다고 말한 사람은, 그녀의 목소리를 두고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라고 했던, 그녀의 아버지였다. 독은 거칠고 질박했지만 그 독에 든 장맛은 깊고 은근하게 달았다.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가르쳐주는 단어를 들으면서 세상의 사물을 익혔다. 그가 처음 발음한 단어는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이 ‘엄마’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르쳐준 ‘엄마’는 보드라우면서도 단단했다. 그의 입에 엄마 젖꼭지 대신 약숟가락이 들어왔을 때, 그는 그 섬뜩하게 차갑고 쓴 쇠가 그녀의 입을 거치고 나면 풀 냄새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침묵 역시 그녀가 내는 목소리의 한 방식이었다. 그는 그녀의 침묵을 헤아리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웠다. 그녀는 그에게 말을 하라고 다그치거나 보채는 법이 없었으므로, 언제나 그가 먼저 그녀에게 모든 말을 털어놓게 되었다. 어디서 한 대 맞고 돌아와 그녀에게 매달려 울고 불고 횡설수설하다 보면,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고, 결국 그는 혓바닥을 내밀어 약을 올린 일도 설명해야 했다.
침묵 속에도 소리가 있었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보면, 그녀는 그가 하는 변명에 어떤 토도 달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숨소리에서 조금씩 날카로워지는 쇳소리를 감지했다. 그것은 그녀의 인내가 한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침묵을 뚫고 나오는 순간, 그리하여 그녀의 입에서 됐다,라는 말이 쇳소리를 품고 나오는 순간,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조목조목 인정했다. 그러면 그녀는 맑은 쇳소리로 괜찮다,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실망의 묵직한 쇳소리와 위로의 청아한 쇳소리는 그렇게 달랐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가르친 것도 그녀의 쉰 목소리였다. 그가 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었고,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녀는 도움의 손길을 정중히 거절하면서도, 허둥대거나 서두르는 법 없이, 예를 갖춰 혼자 힘으로,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엄마 죽으면 어떻게 할래?
그 물음에 그는 겁부터 집어먹었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그의 눈앞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 심각했다. 그녀는 그에게 무언가를 먼저 묻는 적이 없었으므로. 그녀의 물음에는 언제나 답이 내포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그녀의 물음에서 답을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대답은커녕 오줌을 지릴 것 같아 엉덩이를 조이느라 전전긍긍했다. 결국 그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을 가르쳐주었다.
괜찮아.
그는 뭐가 괜찮다는 건지 헷갈렸다. 죽는다는 게 괜찮은 건지. 엄마가 괜찮다는 건지. 아니면 아버지가 죽은 게 괜찮은 건지. 그녀가 힌트 하나를 더 주었다.
엄만 금방 안 죽어. 그게 엄마야.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더 쉬어 있었다. 그는 그녀가 준 힌트들을 모두 모아 조합을 하고 해석을 한 다음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의 죽음은 괜찮은 거다. 엄마는 안 죽는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만, 딱 그만큼만 이해했다. 그리고 엄마는 금방 안 죽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질 만큼만, 딱 그만큼만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엄마가 죽게 된다면,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의연하게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그녀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고아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겠다고. 그녀가 남편을 잃은 후 단 한 번도 과부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가 과부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과부로 살지 않았던 것처럼. 그 또한 고아가 분명했지만 고아로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었다. 어떤 죽음은 절대로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극진한 울음이 어떤 목소리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은 살아 있는 그녀의 목소리로는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 울음소리가 쉬고 갈라져서 그녀의 목소리를 닮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살아서 그에게 해주었던 말의 의미를, 그녀가 죽고 난 후에야 이해했다.
괜찮다. 엄마는 죽지 않는다. 그게 엄마다.
어머니는 죽었다. 죽었지만 아주 죽지는 않았다. 그의 목구멍 속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 그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의 엄마도 살아 있을 것이었다. 그는 후회했다. 왜 진즉에 울지 못했는지. 울어서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사흘 밤낮을, 또 사흘 밤낮을, 영원한 사흘 밤낮을, 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울면서 웃었다. 엄마 목소리가 점점 더 생생해져서 웃었다. 웃음이 나서 또 울었다. 그는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며 추임새처럼 엄마를 불렀다. 엄마를 닮은 목소리가 엄마를 찾았다.
─엄마 엄마 엄마.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현관에서 구두를 벗어 바깥쪽으로 향하게 돌려놓은 다음 손을 씻고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쓰던 보료는 그 자리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그는 보료를 처음 본 듯 손바닥으로 쓸어보았다. 보료 가장자리는 두툼했고 안쪽은 얄팍했다. 오랜 세월 어머니의 체중을 받아 길게 움푹 눌린 자국. 한낱 보료도 어머니의 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그는 아무것도 간직한 게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몸을 만지듯 보료의 굴곡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의 몸에 그의 몸을 맞추듯 보료의 굴곡 위로 제 몸을 갖다 댔다. 입맞춤을 하듯 이마에 이마를 맞대고 볼과 볼을 맞대었다. 두 팔로 꽉 끌어안듯 어깨에 어깨를 포개고 배에 배를 맞추었다. 그가 완전히 엎어져 온몸을 맞추고 나자, 그의 발이 보료 바깥으로 삐죽이 나왔다.
─엄마는 이만큼이나 작았구나.
언제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키를 재보았는지, 어머니의 등에 그의 등을 대고 키를 재보던 때가 언제였는지. 어머니가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엄마의 키를 짐작할 수 있다니. 그는 보료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의 뒤통수에 눌리고 눌려서 둥글납작하게 단단해진 솜이 그의 눈물을 소리 없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두 다리를 개구리처럼 벌려 발을 보료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자신의 키를 어머니의 키에 맞추었다.
불행히도 그의 쉰 목소리는 금세 회복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목을 혹사하기로 했다. 그는 기침과 함께 눈을 뜨고 가래를 끓어 올리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방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크르륵 칵, 한 번씩 목젖을 긁어주는 습관을 들였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입을 크게 벌리고 배기가스를 들이마셔 물기를 모두 말린 다음, 뱃속에서부터 올려낸 마른가래를 뱉어냈다. 지금까지 살면서 길바닥에 가래를 뱉어본 적이 없었던 그는 처음에는 걸음을 멈추고 쓰레기통을 찾아 두리번거리곤 했지만, 점차 걸으면서도 능숙하게 침과 가래를 뱉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의 목구멍에만 집중하고, 그의 목구멍만을 위해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오로지 자신의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소리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톤과 강도를 달리 해가며 소리를 가늠하면서 엄마 목소리를 되살리려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엄마 목소리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쇳소리에 더 가까웠는지 천둥소리에 더 가까웠는지. 묵직했는지 둔탁했는지 날카로웠는지. 머릿속에서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목에서 꺼내볼라치면 그릉그릉 가래 끓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답답하고 신경질적인 걸걸함. 그것은 결코 엄마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마음이 급했다. 귓가에 쟁쟁했던 엄마 목소리를 어서 그의 목구멍으로 옮겨와야 했다. 그는 목소리를 혹사하는 것만으로는 엄마 목소리를 닮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는 울 곳이 필요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곳. 울어서 쉰 목소리를 만들 수 있는 곳.
그는 바로 그곳을 찾아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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