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젊은이들을 칭찬해라, 활짝 피어날 것이다
시간 참 빠르다는 진부한 표현이 어떤 때는 사무치게 피부에 와 닿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2011년 한 해 동안 동료들과 오래오래 두고두고 기분 좋게 곱씹을 만한 참 좋은 추억을 하나 만들 수 있었다. 그러고 어영부영,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훅 지나갔다. 그 성과는 2012년 청년문화수도프로젝트로 이어져 작년 여름도 덕분에 재미지고 즐거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맙고 기쁜 일이다.
나는 회춘프로젝트의 초기 기획과 내부코디네이터를 맡아 참여했고 작년 청년문화수도프로젝트에서는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전반적으로 깊이 결합하지 못했지만 가장 가까이서 동료들의 사투(?)를 지켜봤고 많은 얘기를 나눴으며 그로부터 느낀 바가 많다.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류성효 감독과 송교성 국장의 열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그 경험들과 고민들, 또 그로부터 얻게 된 설익은 몇 가지 파편적인 깨달음들을 여기에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21세기와 부산이라는 특정 지역, 그 시공간의 맥락 위에서 왜 여전히 청년문화가 중요하고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인지, 또 장르예술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들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폭넓은 관점에서 출발하는 이런 방식의 작업들이 소중한지에 대해 몇 자 적으며 책의 마무리를 갈음하려 한다. 조만간 더 재밌고 유쾌한 프로젝트로 다시 만나자, 모두들.
1. 그러니까 2011년 4월에
2011년 4월 어느 날, 나는 류성효 감독과 함께 해운대 부산문화재단 근처 한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마침 일본에서 부산의 대안문화공간들을 둘러보려고 잠깐 부산에 온 켄Kenichiro Egami도 함께였다. 그 날은 부산문화재단의 공공예술프로젝트에 우리가 응모한 ‘회춘프로젝트’의 최종 면접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두 시간쯤 일찍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줄담배를 피워대며 노트북으로 다시 한 번 프레젠테이션을 점검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는 중이었다. 한창 열을 올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툭 이런 말이 튀어나왔던 기억이다.
“그런데 이거... 돼도 문제 아닌가?”
그랬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2011년 전국에서 진행된 지역문화예술프로젝트 중 1위 - 이런 수치가 중요한 건 결코 아니지만 - 의 평가를 받긴 했지만 아무 것도 보장된 게 없던 당시만 해도 자신감보다는 겁이 더 났던 게 사실이었다. 쏟아질 관심도 물론이었지만 이제 막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지역의 청년문화가 혹시라도 우리들의 설익은 열정 때문에 ‘그럼 그렇지’ 란 얘기를 들으면 정말 안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생각한 프로젝트의 핵심 콘셉트가 ‘네트워킹’이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구상한 우리들의 역량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이 부분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솔직히 운에 상당 부분 기댈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에는 ‘지역과 청년문화’라는 두 가지 화두 외에도 ‘보편성’이라는 측면에 대한 고민이 작용했다. 한국사회에서 지역의 소외는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청년문화 역시 기본적으로는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라 다른 세대나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자폐적 한계에 갇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측면이 있었다. ‘지역과 비주류문화’라는 이중적 소외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그런 한계들이야말로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청년문화를 통해 지역의 동네사람들과 소통하며 사심 없고 솔직담백하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판을 벌여보고 싶었다. 보다 적극적으로 일상생활의 민낯을 끌어안고 자폐적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청년문화 역시 미디어나 자본의 메커니즘 속으로 양순하게 편입되고 말 것임을 나름의 임상으로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주류문화나 미디어, 혹은 거대자본에 편입되는 것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생활의 영역으로 나아가며 한계를 극복해가는 게 옳은 방향이라 판단했고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될 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이런 것이었다.
첫째, 회춘프로젝트는 지속성을 담보하고 재생산을 염두에 둔 ‘계기성 사업’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기존에 없던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파편적으로 흩어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자원들을 취합하여 시너지를 도모하고 문화예술계 내부에만 침잠한 채 일상과 괴리되어있던 가치들을 끄집어내 주민들과 지역 전체의 활력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물리적 결과물을 목적으로 한 단순한 인프라 사업이나 일회성, 전시성 사업은 제외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라 해도 최대한 지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건 우리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세 번째는 작가들끼리, 단체들끼리, 주민들끼리, 나아가 작가와 기획자, 단체와 활동가들이 각자의 영역을 넘어 서로 최대한 자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판을 까는 데 역점을 두자는 것이었다. 어렵게 말하자면 건강한 문화생태계 구축을 시도해보자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안면을 튼 사람들이 쑥덕거리며 그 어떤 음모(?)를 꾸미든 환영이었다. 그런 잡담과 수다 속에서 향후 부산 지역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재미나고 독창적인 기획들의 씨앗이 꿈틀댈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민, 관, 학, 언론, 기업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을 연계해 문화예술이 보조적이고 장식적인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지역의 공공적 가치를 끌어내고 확장하는 선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쌓아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서로 네트워크하고 한바탕 일을 저질러보자고 결심할 수 있었던 건 때마침 공공미술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공공예술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자 부산문화재단이 처음으로 지역문화예술기획지원 사업을 공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우리처럼 젊은 것들(?)보다는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 온 선배예술가들이나 지명도가 있는 교수 중심의 연구소, 혹은 덩치가 큰 문예단체에서 사업을 따갈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서류심사를 거쳐 심사위원들과의 갑론을박이 뜨거웠던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마치고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던 이 사업이 최종적으로는 우리에게 돌아와 한바탕 판을 벌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회춘프로젝트’ 라 이름 붙인 재미난 폭탄의 뇌관에 실제로 불이 붙게 되었던 것이다. 두근두근... 그러니까 2011년 4월의 일이었다.
2. 도대체가 우리 시대란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얘기하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얘기를 잘 믿지 못한다. 도대체가 우리 시대란, 문화랑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문화의 중요성을 강변하는 모순의 시대이기도 한 것 같다. 한창 문화를 얘기하다가도 불쑥불쑥 수요공급의 원칙을 얘기한다거나 원하는 성과를 위해 과정은 무시한 채 막 위에서부터 찍어 누르는 일도 무시로 일어난다. 시간이 없다며 ‘빨리빨리’ 를 외치거나 효율성과 실적을 사기업처럼 따지는 일도 요즘의 문화 판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다 사정이 있는 걸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하나의 핵심은 있는 법 아닐까. 그 마지막 하나의 핵심을 지켜내지 못할 바엔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
한편, 결코 어울릴 수 없어 보이는 정반대의 키워드들이 한데 뒤섞이는 이른바, ‘융복합’이란 것이 시대의 키워드라는 것도 안다. 예술을 경영하고, 문화를 기획하며, 공공을 위한 예술이 등장하고, 사회적인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 시대니까 말이다. 모순, 아이러니, 뒤죽박죽... 내게도 시대정신이 이런 키워드들로 다가오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때의 ‘융복합’ 역시 자칫 초심을 잃고 조금만 각도가 벗어나도 배를 산으로 보내기 일쑤라 최선을 다해 섬세한 태도로 접근해야만 그 소기의 목적을 1%라도 달성할 수 있는 법이다. 섬세함을 상실한 융복합이란 기실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접붙이기에 다름 아닌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열정만으론 결코 돌파 불가능한 상황을 세팅해놓고선 좀 더 창의적인 생각과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열정을 가져야한다며 윽박지르는 것 역시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라고 본다. 그런 건 착취를 위한 문학적 수사修辭에 불과하지 감히 시대정신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게 살고 있다지만 청년들의 감성과 열정, 재능과 상상력은 가장 헐값에 소비되고 있는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차고 넘치니 막 갖다 쓰고 버리는 것인데 이것은 자유도 아니고, 융복합도 아니며 무엇보다 문화적인 일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정보사회, 창조도시, 신자유주의, 문화의 시대 등 듣기 좋은 다양한 말들의 홍수 속에서 어쩐지 보다 교묘해지고 은밀해진 폭력과 야만의 냄새를 맡게 된다. 이런 시대에 문화는, 예술은... 도대체 뭘 할 수 있을 것인지 오히려 혼란스럽고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나는 문화란 곧, ‘무늬紋’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마다의 무늬가, 동네마다의 무늬가 다양하고 많을수록, 또 그런 무늬들이 켜켜이 잘 쌓일 수 있도록 제도와 그 밖의 장치들이 섬세하게 마련되어있을수록 문화강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시대에 왜 이렇게 다들 문화를 가지고 난리법석인지 내 관점에서 몇 마디 썰을 좀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지금은 10개월만 지나도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세상이 격변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이 피상적 변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 변화조차 삶의 근본을 뒤흔들 만큼 위력적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정보사회’다. 이전 시대가 산업사회였다면 이제 우리는 정보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지 않은 서비스나 지식, 경험과 노하우 같은 영역으로 가치가 이전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숫자나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고, 논리나 설득이 아니라 공감과 이야기가 가치를 갖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객관적 사실이나 일반론보다는 주관적 경험이나 감성이 훨씬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한 마디로 요약 가능한 시대에서 저마다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가진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도 하는데 여기서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산업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키워지기 위해 근대적 교육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대량으로 찍혀 나온 인간들은, 정보사회가 되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고 있다. 아무 죄 없이 근면성실을 지상화두로 삼으며 누구보다 양순하게 말 잘 듣고 줄 잘 서던 이들이 한창 때 조직에서 밀려나 공원이나 뒷산 같은 곳을 배회하다 폐기처분되는 일이 허다한 것이다. 정부나 기업도 개인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자꾸만 외면하려 하고 있다. 그럴싸하게 ‘신자유주의’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정체를 들여다보면 자유를 줄 테니 알아서들 경쟁하라는, 사실상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정보사회라고 할 때의 정보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관점, 자기 경험, 자기 이야기이다. 그래서 고전과 인문학(관점), 실천의 태도(경험), 그리고 문화예술(자기이야기)이 오늘날 여기저기서 뜨겁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얘기하는 정보는, 그야말로 차고 넘치는 시대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어만 쳐 넣어도 관련 정보들이 줄을 잇는다. 역사상 가장 정보가 민주화된 시대에 살고 있기에 오히려 정보 그 자체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보사회라고? 이 때 강조되는 정보는 그래서, 1차 정보raw data가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1+1=2 라는 식의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은 정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1차 정보들을 어떻게 자기만의 관점으로 재배치하고 조립하고 가공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창작자보다는 편집자, 프로듀서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사실 자체의 의미보다는 거기에 누가 어떤 관점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편집하는가가 관건이 된 시대라는 얘기다.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큐레이션curation’ 의 시대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역시 같은 말이다. 매개의 영역에서 모든 것이 판가름 나고 있다는 의미다. 정치에서 담론과 홍보가, 언론에서도 ‘콘텐츠 큐레이션’이 - 특히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을 보면 이 큐레이션의 위력을 적나라하게 실감할 수 있다 -, 경제에서도 생산자나 소비자보다 유통권력이, 문화에서도 창작에서 기획(PD, 큐레이터, 매개, 기획자)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그러나 아직도 ‘생산-소비’ 라는 이원적 구도에만 익숙한 이들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산업사회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해 천재의 신화나 작가주의같은 얘기를 입에 달고 산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20세기적 사고방식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매개-소비’라는 구도 속에서 중간 단계의 영향력과 중요도가 양 쪽 둘을 합한 것보다 커지고 있는 건 그냥 현실이다. 가치의 크기 비교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정보, 문화 등이 잉여, 과잉인 시대일수록 이것들을 ‘큐레이션curation’ 하는 역할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curation’ 이란 말은, ‘치유’의 의미도 갖고 있는데 이 역시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그래서 오늘날, 시대가 요구하는 정보 내지는 문화란 다름 아닌 매개의 능력을 일컫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전문화되어있는 이들의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해주는 일, 근대의 핵심이랄 수 있는 분화된 개인과 분업화된 분야들을 다시 잇고 소통할 수 있도록 판을 재배치하고 기획하는 일,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살펴봐야 하리라 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지금-여기’ 에서 창조와 문화를 위한 핵심은 매개, 플랫폼에 있다. 네트워크의 중요성, 연대 등의 문제도 여기서 나온다. 인간적, 정서적 관계에 의지하던 문화기획에서 생산-소비의 양 쪽을 두루 이해하고 포괄하며 보듬을 수 있는 큰 틀에서의 관점이 요구되고 있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그 고상하고 말랑말랑한 이미지만 소비할 게 아니라 정밀하게 계산하고 합리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기획자는 작가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새로 뭘 만들려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사처럼 재료들의 비율, 순서, 배치 등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조물딱거릴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나 정보가 넘치고 사회구성원들의 재능이나 감수성이 잉여일 때는 더욱 그렇다. 적재적소에 이것들을 조율하고 배치하는 능력, 즉 편집의 능력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고 아티스트의 시대가 아니라 프로듀서의 시대, 디렉터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두고 싶다.
문화예술이 장르예술의 경계를 넘은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관이나 학교에서야 여러 근거들이 필요하고 일의 수월성이 우선이게 마련이라 여전히 그런 근대적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예술은 극장과 갤러리, 무대와 화면 밖으로 뛰쳐나와 생활 속으로 스미고 있다. 경계를 넘는 것은 원래 문화예술의 특기이기도 하다. 창조도시나 마을에 대한 관심 등 지역의 활력을 위한 중요한 계기로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도 이런 시대적 맥락과 조응한 결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짧은 시간 안에 속도나 크기로 압도하는 물리적 결과를 남기려 하거나 일회성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서로 다른 분야와 영역을, 일상과 문화예술을,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간극을 잇고 마침내 서로 스미고 밸 수 있도록 하는 ‘비등점’으로서의 계기성 사업이 앞으로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러한 매개의 영역, 계기성 사업이야말로 지역 전체의 활력을 위해 지금의 문화예술기획이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역할이라고도 생각한다. 회춘프로젝트가 시대적 요구와 제대로 부합했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세대의 발전 동력은 다음 세대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역사의 변증법을 떠올려본다. 근면, 성실, 금욕이란 가치가 지난 시대 우리사회의 발전과 풍요를 견인한 것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론 물질적 풍요에 대한 필요보다 창의력과 지식, 정보에 대한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는 오늘날, 이전의 가치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꾸역꾸역 24시간을 쪼개 근면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색과 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사색, 낭비, 여유, 비효율성, 비합리성, 의미 없음 등의 개념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오늘날 더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문화와 예술의 가치가 갈수록 강조되고 담론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3. 부산이라는 웃기는 동네
부산은 웃기는 곳이다. 바다가 있는 도시인데 이름에는 ‘산’이 들어간다. 이름에서부터 건강한 잡종성, 모순성을 느낄 수 있다. 20세기 이전, 세계는 오랫동안 정주민들의 문화가 주도했다. 중심을 정하고, 그 중심을 기반으로 쌓고 모으고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문화는 확장해왔다. 하지만 해양문화는 하나의 중심, 하나의 정주 공간을 기준으로 확장되는 농경문화와 달라 심고 기르고 모으고 쌓는 문화가 아니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식의 유치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 다름에 대해 좀 더 잘 살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부산은 기본적으로 정주민들의 문화가 아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해양과 그것을 배경으로 형성된 부산의 습속에서는 보다 날 것의, 보다 생동감 있는 어떤 힘과 유연성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도 많은 곳이다. 이런 자연환경은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근원적으로는 그 곳에서 살아가는 지역민들의 몸과 습속, 나아가 문화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산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문화적 기획을 하려고 한다면 이런 구체적 맥락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간 부산에서는 늘 외국 얘기, 서울 얘기만 판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청년문화만 떼놓고 봐도 어딜 가나 그 놈의 ‘홍대 앞’ 얘기가 나온다. 나 자신 90년대 후반 약 4년 간 한국의 인디밴드 1세대로 활동하며 홍대 앞에서 생활했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일 때문에 들르곤 한다. 하지만 홍대는 과거의 홍대도 아닐 뿐더러 그 자체로도 하나의 지역일 뿐 무언가 거대한 흐름을 보편적으로 소급할 만한 공간은 아니다. 물론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고 특히나 기형적으로 중앙 집중화돼있는 우리 상황에서 그 파워라든지 인프라 등을 생각해보면 모든 분야의 준거 틀로서 서울이 거론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문화 분야에서 다양성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 다양성에 대한 애정 없이 진행되는 문화에 대한 담론은 대개 코미디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과 경험, 각각의 동네와 지역마다, 각각의 시대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켜켜이 쌓인 고유한 결과 습속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지금 여기’를 강조하지만 실제 몸은 바꾸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모두들 다른 곳의 사례를 들고 와 본받자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자기 동네를 괄목상대하지 않으면 그런 기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을 잘 새겨야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문화적 일을 기획할 때는 그 지역의 구체적인 맥락context 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여러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할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는 것은 100% 실패하리라 장담할 수 있다. 그런 실패 사례는 지금껏 너무도 많이 봐왔다. 벤치마킹하겠다며 들고 오는 외국사례는 대개 수십 년 동안 그 지역에서 닳고 닳으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 성공사례들을 피상적으로 답습하며 2~3년 안에 뭔가 결과를 내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조급한 마인드이며 개발지상주의적 태도다. 특히 문화 쪽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각 지역마다 역사나 문화가 있고 그것에 따른 사람들의 습성과 정체성이 있다는 걸 섬세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내 관점에서 부산은, 앞서 말했듯 잡탕 문화다. 모자이크 문화고 외래문화를 여기저기 그대로 풀로 붙인 것 같은 콜라주collage 문화이기도 하다. 양반보다는 뱃사람, 서민들이 주를 이뤘고 한양을 중심으로 한 주류문화의 영향을 덜 받았으며 현대사에서도 일제시대 왜관을 비롯해 일본 및 외국인들의 왕래가 잦았으며 특별히 유교적 문화가 있었다기보다는 약간 개방적이며 비주류적 분위기가 더 강했다. 한국전쟁 때 조선 8도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던 역사도 현재의 부산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 음식인 밀면만 봐도, 고향음식인 냉면을 먹고 싶어 하던 이북사람들이 밀가루로 비슷하게 만들어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부산 문화의 상당 부분이 이런 식으로 발달했고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것들보다는 시대적 사건 등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형성된 최근의 것들이 많다.
청년문화 쪽을 좀 더 살펴보면 80년대에는 ‘록음악의 메카’였다는, 내가 볼 땐 약간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름의 신화들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90년대 초반에는 인디, 독립영화, 그래피티, 스트리트 댄스, 프리마켓 등이 우세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제도권의 장르예술이 아닌 서브 컬처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기도 했다. 실제 작가나 기획자도 이쪽 분야에서 많이 배출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현재 서울에서 활동하며 한국 서브컬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부산의 대안적 문화공간들을 보면 어떤 흐름이 읽힌다. 1999년 ‘섬’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2002년 ‘반디’로 이름을 바꿔 재개관했다가 결국 작년에 문을 닫은 광안리의 ‘반디’, 젊은춤꾼들의 대안적 춤패로 설립된 ‘연분홍’ (2001), 대안미술단체 ‘몽환경’(2002), 부산대 앞 ‘재미난 복수’(2003), 문화소통단체 ‘숨’(2003), 문화정보지 ‘보일라’ (2004), 남천동 ‘인디고서원’(2004), 기장군 대안문화공간 ‘오픈스페이스 배’(2006),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2007), 중앙동 ‘백년어서원’(2009), 남천동 인문학 공간 ‘빈빈’(2010), 도시철도 수영역 문화매개공간 ‘쌈’(2010), 장전동 생활문화공간 ‘통’ (2010) 등이 출현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미디어분야 사회적 기업 ‘미디토리’(2010),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부산노리단’(2011), 지역문화지 ‘안녕광안리’ (2011) 등 다양한 사회적 기업이나 지역문화지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 흐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처음엔 장르예술, 순수예술의 영역에 대한 나름의 실천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나 제도권의 예술 흐름에 대한 대안적 활동으로써 대안공간이나 춤패 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서브 컬처들이 나온다. 장르예술이나 아카데믹한 예술에서 보다 아웃사이드로 빠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뒤로는 또 인문학공간들이 대거 나온다. 이건 아예 예술이란 틀을 깨거나 인문학과 ‘융복합’ 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데 이런 흐름은 최근 생활, 인문학 등과 결합하며 아예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대안경제나 아트마켓처럼 보다 더 일상, 주민, 경제, 사회 등의 영역과 밀접히 결합하는 추세다.
내게 이 흐름들은 매우 유의미하게 느껴진다. 부산의 문화 관련 인력들이 트렌드나 사회변화의 흐름을 읽고 의도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오히려 이들의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가장 젊고 트렌디한 사람들이 가진 감수성으로 체크한 지점들은 거의 정확하게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장르예술에서 서브컬처로, 서브컬처에서 보다 생활밀착형, 사회적 층위의 문화로 진행 중이라는 것이고,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경제, 생태, 건축, 공간 등을 포괄하는 창조도시형 문화기획이 조만간 출현하리라 기대하고 있고 또 나 자신 준비 중이기도 하다.
부산은 국내 문화지형에서 아주 작은 도시들이나 농촌들과 거대한 서울 사이에서 굉장히 독특하고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방금 이야기 했듯 자유롭고 비주류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전통도 있다. 하지만 그런 독특한 위치/위상/중요성들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문화불모지라는 오명을 감수해야했다. 실제로도 부족한 부분은 많다. 우선 방송이나 거대자본이 거의 없어서 지역의 의미 있는 활동이나 실험적 작업들이 잘 홍보되지 않는다. 부산에서 활동할 때는 무명이었다가 서울에서 활동하며 인지도를 얻어 다시 부산으로 오는 문화인들이 의외로 많다. 방송사를 포함한 유력 일간지, 잡지 등 거대미디어들이 모두 서울에 있고 이들이 국가 전체의 담론을 주도하니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로컬 씬이나 로컬담론이 구성되기 힘든 구조다. 대자본이나 대기업 본사들도 대부분 서울에 있어서 사회 공헌팀CSR 등과 연계해 무언가 함께 해보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부산은행을 비롯한 지역의 몇몇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지역의 문화를 위한 활동에 나서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관 주도이거나 매우 영세한 규모의 기획만이 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인력부족이다. 재능 있는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 서울이나 외국으로 빠져버리고 따라서 세대교체가 안 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게 세대교체가 안 되면 노하우가 쌓이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만 생기며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은 더 큰 스케일의 작업을 위해 서울이나 외국으로 빠지고 실패한 사람들의 노하우만 공유되는 문제가 생긴다. 오죽하면 홍대에서 공연 기획하는 사람 30%가 부산 출신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결국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 빠져나가버리면 부산은 더욱 열악해지고 악순환구조가 고착되게 마련이다. 대전, 광주, 대구 등 다른 지역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비주류 문화를 한다는 것에 지역이라는 문제가 더해지면 이중의 억압 구조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이 말은 그렇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훨씬 더 체계적이며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더 많이 뛰어다니고 더 많이 알아봐야 한다는 얘기이다. 마치 건축가들처럼, 지역에 어떤 자원들이 있고 조직의 형태는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떤 방법이 유효할 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지역민들의 인식이나 관심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부산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기보다는 맘에 안 드는 현실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거라면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고 그 다음을 얘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또, 대중을 부족하고 우매한 존재로만 바라보는 것은 사회적 통념에 저항해야할 문화기획자들이 거꾸로 가장 강력하게 통념에 사로잡혀있는 경우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을 우매한 대중으로 취급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역량이 부족한 기획자나 작가들이 자신의 부족을 감추기 위해 가장 많이 동원했던 변명이다. 오히려 부산에서는 늘 참신하고 실험적인 기획들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을 사랑하는 나는, 이곳에서 청년들이 더 이상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자체적으로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부산은 한국 최초의 로컬 씬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만약 부산에 그런 로컬 씬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중심에 소급되기보다 저마다의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문화를 꿈꾸려는 청년들이 모여든다면 그것은 한국사회 전체의 차원에서도 새로운 활력과 생기를 주는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감히 확신해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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