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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과 위기
‘보이지 않는 손’을 비판하는 이들은 시장 어느 곳에든 갈등이 만연하고 온갖 모순들이 끊임없이 위기를 촉발시킬 뿐 아니라 생산이 손상되고 결국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모순들은 누가 고의로 자본주의에 훼방을 놓으려고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일상적 활동들에서 의도치 않게 저절로 나오는 결과들이라는 의미에서 ‘체제적’인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에서 침체란 흔히 전쟁, 흑사병, 인구 감소, 자연재해 같은 외생적 요인들의 결과였다. 물론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면 그 충격은 마찬가지겠지만, 마르크스와 케인스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설명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내생적, 즉 자기 스스로에게 가하는 혼란을 지니고 있다.
시장 자본주의는 불안정하며 위기로 치닫는 경향이 있는 데다 뜻하지 않는 여러 부정적 효과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은 오늘날 널리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들’이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믿음은 오늘날 거의 또는 전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프랑스의 ‘조절이론 학파’는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대해 세련된 마르크스주의적인 분석을 내놨지만, 그러한 모순들이 반드시 자본주의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Aglietta, 1979; Boyer, 1990; Jessop, 2001). 오늘날 이들 주장의 주요 논점은 과연 이러한 문제들을 완전히 근절할 수 있는가, 또는 이런 문제들이 비록 만성적인 것이라 해도 관리가 가능한 것들인가 등이다. 바꾸어 말하면, 과연 경제활동의 부침浮沈, 즉 경기순환이나 호황 또는 불황이 과연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이 암시하는 것처럼 자기 조정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경제란 정부와 중앙은행이 상시적으로 치료 활동을 벌여야 할 대상인가가 주요한 논쟁 지점이 된다.
시장 체제를 완강하게 옹호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불완전성’(또는 ‘모순들’)이 현실에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낙관적 믿음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케인스의 저작을 단순하게 해석한 이들 가운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잠깐 이러한 결론을 따르는 경우도 있었으며,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신경제’를 창출하여 생산성을 아주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켜 마침내 경제공황과 경기 후퇴가 역사 속의 과거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유행을 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에 완벽성을 부여하는 진단들이 늘 그렇듯이, 이 두 가지 경우도 결국 인간의 자만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첫 번째 경우는 1970년대의 위기 속에서, 그리고 두 번째 경우는 21세기로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닷컴’ 주식 거품 붕괴에서 그렇게 되었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1944)은 자유 시장이 스스로를 파괴해 버릴 모순을 낳는 능력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제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가운데 하나이다. 폴라니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자기 파괴의 모순 때문에 자본주의가 1920~1930년대의 정치적·경제적 위기 속에서 거의 붕괴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 저서는 느슨하지만 마르크스와 뒤르켐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자본주의 이전의 모든 경제체제에서는 경제적 교환이 좀 더 폭넓은 사회제도들 속에 ‘묻어 들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상호성reciprocity 그리고 정치적으로 통제된 재분배redistribution에 내재해 있는 조절의 규범들이 사회의 물적 자원을 보존하고 풍요롭게 하는 능력에서 더욱 뛰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삐 풀린 시장이 나타나서 사회의 물적 자원들을 폭넓은 사회적 통제로부터 떼어 내어 상품으로 변형시켜 버렸고, 궁극적으로 그 자원들이 고갈되고 파괴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폴라니에 따르면, 토지와 노동, 화폐가 사회로부터 ‘뽑혀 나온’ 시장이 생겨나는 바람에 환경의 퇴락, 인간 생활의 참상, 인플레이션과 금융 위기를 낳게 되었다고 한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나타난 위기로 사회에 막대한 피해와 손실이 벌어졌거니와, 폴라니는 각국 정부가 이를 회복하기 위해 벌인 노력들을 관찰하면서 마르크스의 종말론적인 비전과 거리를 두었다. 시장에는 파괴적인 경향들이 있지만, 이것이 종말로 치닫기보다는 자본주의 내에 변증법적인 ‘이중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 관계로부터 ‘뽑혀 나온’ 시장들이 계속해서 팽창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시장들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들을 구제하기 위한 노력도 나타나며 이 둘 사이에 변증법적인 ‘이중 운동’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930년대 중반이 되면 주식시장의 규제, 고용 기준의 도입, 현대적 복지국가의 시작 그리고 마침내 완전고용 정책의 채택 같은 방향으로 거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1970년대에 다시 위기를 겪으면서 시계추의 방향이 반대쪽으로 바뀌어 시장의 ‘탈규제’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이 책 8장과 9장을 보라). 오늘날에는 또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지불 불능으로 시작된 신용 위기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그 여파로 흐름이 또다시 규제 강화로 역전될 징후가 뚜렷하다. 경제적 지구화는 결국 대공황 이후 두 번째 재앙을 낳게 될 것이며,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과거의 ‘이중 운동’처럼 자유 시장을 다시 규제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반복되는 두 가지 체제적인 경제 위기의 경향을 안고 있다. 첫째는 과잉생산 또는 과소소비의 주기가 반복되는 경제 위기이고, 둘째는 신용 팽창과 수축의 순환 주기가 반복되면서 생겨나는 금융 위기이다. 이는 종국에 부채 디플레이션을 촉발할 수도 있다(이 책 2장을 보라). 이러한 위기의 두 가지 원천인 수요의 부족과 신용의 경기순환은 점차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명확한 특징의 형태로서 서로 연관을 이루어 왔으니, 그 특징은 생산과 소비, 투기가 모두 그 자금을 부채로 조달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중반 수요와 공급의 극단적인 부침을 시장의 ‘무정부성’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이 과잉생산 또는 과소소비의 여러 위기를 낳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이런 것들은 이후 거시경제 정책으로 크게 완화되었다. 마르크스와 케인스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장한 바 있듯이, 상품 생산의 지속적인 확장(이것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쉽게 침체 상태로 되돌아간다)을 궁극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은 여전히 유효수요를 제한하게 만드는데, 이는 임금과 이윤이라는 모순적 관계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다. 소비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대기 위해 소득을 늘려 주다 보면 이윤이 가져갈 잉여의 몫을 침식하게 된다. 만약 이윤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떨어지게 되면 투자와 생산이 줄어들 것이고, 이에 따라 고용 및 수요의 감소라는 순환의 하강 주기가 촉발될 것이다. 1945년 이후 소비는 정부의 지출로 늘어났지만,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 위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해결책도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비자 신용의 확장과 연장 그리고 저축-소득 비율의 근본적 전환을 통하여 부족한 총수요의 문제(마르크스가 말하는 ‘과소소비’)를 억제하게 되었다. 개인들이 은행과 신용카드 회사에 빚을 짐으로써 민간 소비 자금을 조달하는 행태가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점차 현대자본주의를 지배하게 된 금융 부문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이 책 7장을 보라). 하지만 이것으로는 과잉생산과 과소소비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더 이상 이러한 부채의 이자와 원금을 지불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부채 디플레이션이 촉발되면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잠재적 가능성만 만들어 내고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다.
앞서 슘페터와 민스키가 설명한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거대한 금융 네트워크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부채에 대한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이 네트워크는 빠르게 흩어지게 되고,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늦추는 일련의 연쇄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이 과정은 소비자와 생산자, 은행, 그 밖에 경제 어디서든 시작될 수 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갈수록 복잡해져 가는 금융시장에서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거래가 확장되면 신용 및 자본시장에서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질 위험성이 높아지게 되고, 이에 따라 은행들은 ‘리스크 회피’ 성향이 더욱 커져서 대출을 꺼리게 될 것이다. 종국에는 신용 ‘경색’ 또는 ‘압박’이 투자와 소비의 수준을 낮추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부채의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업들은 파산하고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고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고 금융가나 소비자들은 돈 꾸기를 꺼리게 되며, 이렇게 하강의 순환 고리가 만들어지면서 은행들은 더욱더 대출을 꺼리게 될 것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화폐의 궁극적인 원천이기에, 지급불능 사태로 지위의 위협을 받는 은행들에게 ‘최종 대부자’로서 대출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잠식되고 금융기관들끼리도 서로 대출을 꺼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중앙은행이 이런 식으로 대출을 해주게 되면 이른바 ‘도덕적 해이’라고 부르는 위험을 떠안게 된다. 즉 경제체제 전체를 보존하려는 중앙은행의 행동이 리스크가 높은 대출과 투기를 장려하게 되면서 신용 붐의 가능성을 더욱 부추기게 되고 결국 ‘거품 붕괴’ 또는 ‘신용 경색’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더 깊이 탐구해 볼 것이다.
신용 팽창은 또한 잠재적으로 자본주의에서 가장 휘발성이 큰 위기를 촉발시킨다. 금융자산 시장에서 나타나는 투기 ‘거품’이 그것이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모든 물질적 수단과 생산 자원(기업 자체와 기업의 자본을 포함)은 시장에서 판매가 가능한 금융자산이 된다는 점이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이다. 7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자본의 이중적 성격은 자본 자산들에 대한 금융시장을 만들어 내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두 가지 특징을 낳게 된다. 자산 투기 그리고 화폐자본가(‘약탈자들’)가 적대적 기업 인수를 통해서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쥐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 그것이다.
단기적인 금융 투기는 가격의 휘발성은 물론 위기의 위험을 증대시키고 자원과 에너지를 생산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려 버림으로써 케인스가 장기적 ‘영리기업’이라고 부른 것과 잠재적으로 모순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시점(2008년)에서 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완강한 옹호자들조차 이러한 자본주의의 전반적 ‘금융화’를 비판하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이국적’으로 바뀌어 가는 금융자산(특히 외환시장에서)들이 점차 범위가 넓어지고, 여기에서 ‘헤지펀드’들이 투기 활동을 벌일 자금을 은행이 대출해 줌으로써 불안정화의 잠재적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다는 데에 초점을 둔다. 7장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저 이렇게 쌓여 가는 걱정의 소리가 금융시장 ‘카지노’에 대한 케인스의 불신, 그리고 부채를 통한 자금 조달로 생겨난 금융 불안정성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항구적 특징이라는 민스키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만을 지적해 둔다(금융 위기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는 Kindleberger and Aliber, 2005).
인간 사회의 물질적 진보는 여러 전문화된 경제적 기능들을 시장을 통해 조정하고 생산자들 사이에 경쟁을 붙임으로써 가능해진다는 애덤 스미스의 기본적인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까지도 인간 사회는 복잡한 경제활동을 조정하고 또 경제의 역동성을 자극하는 데 그보다 더 나은 사회적·경제적 제도들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시장경제에 대해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러한 평가에는 수많은 중요한 단서들이 붙어야 한다.
첫째, 시장은 자본주의의 한 부분일 뿐이며, 신자유주의 경제학 분석에서 너무나 간단하게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전체 경제체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전통에서는 모든 계급의 경제 행위자들이 흥정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형식적·법적 자유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 결과 생성된 가격들이 경제활동이 탈중앙화된 상태로 자생적이고도 비인격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신호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여러 자본주의 나라들을 보건대 경제의 어떤 부분에는 이러한 모델과 닮은 시장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시장들은 결코 전형적인 것이 아니며 그런 식으로는 자본주의의 전반적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소유와 경영에 임노동을 고용할 권력이 주어지는 체제이며, 그 고용 조건은 자본주의적 기업이라는 비시장적 제도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으로 결정된다.
둘째, 시장 교환은 자원을 배분하는 데 효과적인 메커니즘을 제공할 뿐 아니라 갈등이 벌어지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마르크스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기본적인 투쟁에 초점을 두었고, 베버는 좀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투’ 장소라고 보았다(Weber, 1978: p. 93). 더욱이 집중화된 독점 및 과점체의 권력은 이러한 투쟁의 전형적인 결과물로서, 이를 통해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가 대기업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태가 나타나게 된다.
셋째, 서로 경쟁하는 경제 행위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의도하지 않게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광범위한 영역이 생긴다. 이러한 시장의 자기 파괴적인 결과들을 규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개별적 또는 집합적으로 필요하다. 그리하여 ‘인간 자본’의 질을 유지해 주는 복지를 조달하고, 환경의 고갈과 퇴락을 예방할 계획을 세우며, 무엇보다 지급불능 사태와 은행 파산이 벌어져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장 교환이 현대자본주의 경제의 여러 부분을 연결시키고는 있지만, 이것이 일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어떤 상호 협조의 흥정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천부적 능력 따위로부터 직접적이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결과가 아님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에서 시장은 대개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보면서 물물교환을 하고 가격을 협상하는 ‘장터’(바자, 시장 광장, 정기시장)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각종 장터는 언뜻 보면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태초의 시장과 닮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서 일어나는 교환 행위는 각종 규범이나 관습 같은 정교한 사회적 구조로 통치되고 있음이 드러난다(Polanyi, 1971[1957]).
하지만 현대자본주의 경제에서 시장은 이와는 대단히 다른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시장 참여자들을 이끄는 것이 ‘자기들의 행동뿐 아니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규모의 현실 또는 가상의 경쟁자들이 잠재적으로 벌이게 될 행동’이기도 하다(Weber, 1978: p. 636, 강조는 인용자). 여기에서 베버는, 다각적이고 간접적인 교환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익명적이고 몰인격적인 사회적 공간을 근대국가가 어떻게 창출했는가를 지적한다. 현대자본주의에 고유하게 나타나는 대규모 시장이란 복합적인 사회제도로서, 표준화된 도량형과 화폐로 이루어져 있고 또 법률과 관습으로 규제되고 있다. 공정 경쟁의 기준, 계약 당사자들의 권리, 계약의 형태, 재화의 품질 등에 대한 표준과 규범은 자생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다(이 책 1부의 논의를 보라. 또 Collins, 1986). 대규모 시장은 절차에서나 내용에서나 갖가지 정교한 규칙을 필요로 한다. 보겔이 보여 준 바 있듯이, 20세기 후반 들어 ‘더욱더 자유로운’ 금융시장을 창출하려는 탈규제의 시도는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규칙들을 만들고 말았다(Vogel, 1996).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유럽위원회의 관료 기구는 유럽 시장처럼 거대한 ‘공동’ 시장을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이며, 흔히들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다(Fligstein, 2001).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출입 금지의 ‘붉은 테이프’가 높은 비용을 낳는다고 끊임없이 불평하지만, 시장 교환을 규제하는 기초적인 규칙들이 없다면 자신들의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평화적 시장 교환은 모종의 권위체(흔히 국가)를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 권위체가 폭력을 예방하고 재산을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모든 소유권이 명확하게 확립되고 수호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시장 교환에 갖가지 위험이 따르게 된다(de Soto, 2000; North, 1981). 시장 교환이 존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여러 가격을 확립하고 계산하는 데 필수적인 안정된 통화 시스템이지만, 이는 시장이 생산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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