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 공동체는 어디로 가는가
‘도쿄대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만화 『드래곤 사쿠라ドラゴン櫻』*가 화제가 되는 등 편차치에서는 도쿄대학이 여전히 신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이 대학을 정점으로 하는 지의 피라미드는 해체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현실로부터 격리된 공간 안에 권위자가 모여 있는, 그런‘상아탑’의 환상은 이미 사라졌을 겁니다.
* 미타 노리후사三田紀房(1958~ )의 만화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고단샤講談社의 만화잡지『모닝』에 연재되었다. 삼류 고등학교에 특별진학반을 만들어 도쿄대학에 입학시키는 이야기다.(옮긴이) 편차치 일본에서 입학시험의 합격 가능성을 나타내는 통계로 널리 쓰이고 있다. 시험 성적을 전체의 평균치로 환산해서 전체 중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옮긴이)
하지만 전쟁 전에는 도쿄대학과 국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쿄대학이 설립된 것은 1877년(메이지 10년)입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인 대학으로 탄생했습니다. 당초의 목적은 국가의 중추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것, 그리고 국가에 중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연구하여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도로, 철도 등의 인프라와 그 정비에 필요한 토목공학을 비롯해 법학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추에서 일할 엘리트들을 배출하는 관료 양성 기관이었던 것입니다. 1886년에는 ‘제국대학’이라 개칭하여 대일본제국의 최고 학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후에 다시 ‘도쿄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구내의 낡은 맨홀에는 당시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즉 어떤 의미에서 도쿄대학은 근대국가 일본과 함께 걸어왔다고 해도 좋습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나라의 정책을 따르는 국립대학의 한 정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이 대학에는 전쟁 전, 전쟁 중, 전쟁 후에 국가나 그때의 권력으로부터 자립하여 사회를 향해 발언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예컨대 메이지시대에 나쓰메 소세키는 도쿄대학 강사를 한 후 다수의 명작을 발표했는데, 소설『산시로』등을 보면 도쿄대학의 학문이나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또 도쿄대학 교수였던 요시노 사쿠조*는 천황이 주권을 쥐었던 당시에 정치는 민중을 위해 존재한다는 ‘민본주의’를 전개하고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에 다가가려는 면, 그리고 가깝기에 국가와 거리를 두려는 면이 모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1878~1933). 정치학자. 다이쇼 데모크라시 운동의 이론적 지도자. 천황 주권하의 일본에서 민본주의를 제창하고 보통선거 실시 등을 주장했다.
** 다이쇼기大正期에 현저해진 민주주의적 사조를 말한다. 도시 중간층의 정치적 자각을 배경으로 메이지 이래의 번벌이나 관료 정치에 반대하고 호헌 운동, 보통선거 운동을 전개해 요시노 사쿠조의 민본주의나 자유주의, 사회주의 사상이 고양되었다.(옮긴이)
그리고 그것이 대학 투쟁, 특히 도쿄대학 투쟁에서 아주 극적인 형태로 분출했던 것입니다. ‘대학투쟁’이란 1960년대 후반에 전국의 대학에서 일어난 학생과 대학 당국 사이의 무력 충돌입니다. 등록금 인상이나 미일안전보장조약 등을 반대하며 운동이 일어나 당시에는 큰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활동은 주로 전공투*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1969년 도쿄대학의 야스다 강당이 학생들이 설치한 바리케이드에 의해 봉쇄되는 등 도쿄대학은 학원 분쟁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결국 기동대가 진입해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야스다 강당 사건 이후 대학은 크게 변했습니다.
*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의 약칭. 1960년대 후반의 대학 분쟁 때 무당파 학생들이 각 대학에서 만든 운동 조직. 나중에 신좌익계 학생이 가입했다.
그때까지는 학문의 자유와 자립을 지키기 위해 외부 권력의 간섭을 거부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대학의 독립성보다 안전성을 외치게 되어 자유로움과 활달함이 위축되고 만 것처럼 보입니다. 학생도 관리되는 일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이 변한 것도 대학의 존재 방식을 바꿔 놓았습니다. 즉시 도움이 되는 것을 요구하는 흐름에 따라 대학의 학문은 ‘실학’을 중시하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학, 엔지니어링, 그중에서도 토목공학, 에너지나 물리 등의 응용 과학기술입니다.
특히 최근 10년의 글로벌화에 따라 그런 흐름은 단숨에 속도를 더했습니다. 글로벌리즘이 금융공학, 정보공학 등 넓은 의미의 엔지니어링에 의존했기 때문에 대학의 학문도 더욱 실학 본위가 된 것입니다. 글로벌화가 ‘지’의 형태를 바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세계의 공통된 경향입니다.
이에 비해 홀쭉해진 것이 인문학, 즉 휴머니티스humanities입니다. 존재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적인 것, 사변적인 것, 관념적인 것, 또는 현실에서 아주 먼 역사적인 것. 얼핏 즉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그런 학문들은 틈새로 쫓겨났다는 느낌입니다.
애초에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왜?”, “무엇때문에?”라고 묻는 학문입니다. “왜 살아가는가?”,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왜 일하는가?” 등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나 사회의 바람직한 가치와 크게 관련되어 있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글로벌화에 따라 사회가 다양해지고 개인들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무엇이든지 개인의 판단에 맡겨지고, 인문학적인 테마도 모두“내 마음이지” 하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인문학적인 물음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고뇌해 보았자 전적으로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라는 문제는 블랙박스에 넣어 두고 모두에게 공통되는 목적, 예컨대 누구나‘돈을 갖고 싶다’는 식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 합목적적인가, 즉 그렇게 즉시 필요한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온 것 같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키를 돌린 대학이 교양이나 인문학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다행히 도쿄대학에서는 교양이나 인문학을 복권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에 앞으로 기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일반적인 현 상황은 대학의 학문이 전문적으로 분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폭넓은 교양을 가르치기보다는 전문적인 지식을 주입하는 것을 대학의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양’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전문적으로 분화된 지가 의미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돈을 벌어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 경제학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클론이나 유도만능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등의 뛰어난 과학적 성과를 얻어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인류가 행복한지, 의학 자체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애초에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면 풍요로운 사회는 구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폭넓은 교양, 인문학의 확고한 토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설령 정답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의미나 목적에 대해 생각하는 사고 회로를 배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의 공동체인 대학의 본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조 안은 안전합니까?
수조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나 바다표범은 인간의 시선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만약 인간이 투명한 수조에 넣어져 항상 사람들의 시선 아래 살아야 한다면 아마 견딜 수 없을 겁니다. 타인의 끊임없는 시선은 어떤 의미에서 물리적 폭력보다 위협적입니다.
하지만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사회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지금, 스스로 이 수조에 들어가 감시되고 관리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글로벌화란 무엇일까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변종mutant이 생겨나는 시대입니다. 금융 파탄의 계기가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도 그렇고, 전 세계적인 유행이 우려되는 신형 인플루엔자도 그 하나일 것입니다.
다양한 것이 섞이거나 활동 범위가 모호해지는 등 지금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이물 같은 것이 산출됩니다. 도처에 위기가 편재하는 ‘전반적 위기’ 상황입니다.
일찍이 우리는 세계가 글로벌화하면 여러 가지 제약을 넘어설 수 있게 되어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였습니다. 문명이 고도화하면 할수록 온갖 것들이 복잡하고 기괴해져 사회가 허약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1960년대와 같은 자유를 갈망하는 기풍은 사라지고, 오히려 사람들은 스스로 투명한 수조 속에 들어가 관리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뒤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는 공공의 안전을 더욱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1995년 옴진리교 사건이 터지면서 도청법*이 생겼습니다. 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감시가 강화되어 가는 것이 요즘 시대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향상이 그것을 더욱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CCTV, 휴대전화의 GPS 기능, 역 개찰구의 통과 기록 등 일상생활에서 감시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신기술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들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조차 적어졌습니다. 관리되는 것이 관습화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주 듣게 되는 것이 “자기만 떳떳하다면 CCTV가 있다고 한들 무슨 상관인가” ,“소지품을 검색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프라이버시는 ‘떳떳한지’, ‘떳떳하지 않은지’와는 상관없이 그 공개를 당사자의 자유에 맡겨야 하며, 그것이 정당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인 것입니다.
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침대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행위에 대해 “떳떳하다면 사람들에게 보여 줘도 되지 않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프라이버시를 공개할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좀 더 말하자면, 사회를 투명하게 하고 감시하면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 하면 실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주민기본대장네트워크시스템*이나 도청법 같은 것을 만들어 위기를 관리하면 할수록 위기를 관리하는 그 시스템 자체가 새로운 위험을 낳습니다. 위험은 더욱 차원이 높아지고, 역으로 사회는 위험에 취약해지는 것입니다.
* 모든 국민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그 기본 정보를 컴퓨터로 일원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2002년부터 시작되었지만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있어 주민기본대장네트워크시스템에 참여하지 않는 시구정촌市區町村(한국의 시읍면에 해당하는 일본의 행정구역 명칭─옮긴이)도 있다.
오히려 그런 것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사회가 위험에 덜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자異分子를 튕겨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편입시켜야 오히려 내구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백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균을 접종함으로써 내성이 생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역시 잡균에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위기에 대한 체감온도가 낮아져 있습니다. ‘안전’이라는 이름하에 국가권력이 철저하게 개인의 생활이나 사상을 감시하고 통제하게 되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1903~1950)이 그린 초감시사회가 아닐까요. 1949년에 출판된 근미래소설『1984』에서 조지 오웰이 쓴 것은 실내에서든 실외에서든 모든 행동이 당국의 감시카메라에 감시되는 끔찍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이 그것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감시를 하면 반드시 분류가 생깁니다. 그 사람이 위험한가 위험하지 않은가, 이쪽 편인가 저쪽 편인가. 그렇게 되면 하나의 사회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둘러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벽을 만든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팔레스타인 주거 구역을 격리하려고 분리 장벽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가 결코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은 나치 독일이나 아파르트헤이트의 결말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감시사회라는 것은 실로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어 감시를 강화하면 할수록 본래의 목적이 날아가 버리고, 감시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맙니다. 사람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자유를 억압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셈입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예컨대 앞으로 일본도 자신들이 완전히 보호되는 게이트시티를 만들어 허가된 사람만이 그 안에서 사는 사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확대되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열된 사회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에는 ‘모두의 안전과 안심을 위해 당신만이 마음대로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충만해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 모두를 위해’라든가 ‘우리는 분노한다’라는 식으로 복수의 막연한 비인칭 주체들이 들고일어났을 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감정이 증폭되어 국가의 폭주가 시작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입니다.
확실히 위험이 커지면 국가에 달라붙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의 이해와 국가의 이해가 서로 부딪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 ‘국민’이라는 비인칭 주체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실감을 소중히 했으면 합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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