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세계사의 본질
학자들이 지역이나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하면서 세계사 분야에 새로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것은 개별 국가의 역사를 엮어서 세계사를 만들고 조각난 역사들을 묶어서 일관적이고 의미 있는 전체를 만드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세계사 연구자들이 직면한 커다란 지적인 도전이 있다. “국경을 뛰어넘어 인구 이동이나 경제변동, 기후변화, 기술이전과 같은 요인들을 연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주제는 지난 200년간 나머지 세계를 유럽-미국의 패러다임에 종속시켜 온 유럽과 미국 중심의 서사敍事 지배를 무너뜨리고, 세계사에 그 어떤 규제 장치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활발하게 연구할 수 있음에도 이론의 여지가 많다. 그동안 시간에 따른 변화를 연구하는 접근 수단이 되어 온 국민국가가 이제는 개별 사회의 경험은 물론 지역이나 광역 사회의 경험을 분석하는 일차 수단이 된다. 세계사 연구자들은 이제 “좀 더 광범한 맥락에서 역사 발전을 파악하게 해 줄 연관성과 비교와 체계를 연구”하는 데 더욱 더 몰두하게 될 것이다.
유럽과 미국 여러 대학의 연구를 지배하고 있는 아젠다는 대부분 깊이 파고드는 추세에 초점을 맞추는 미시사이다. 물론 특정 주제에 관한 연구는 변함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세계사 연구의 성과들은, 한 역사가가 얘기한 수평적이고 통합적인 거시사, 곧 서로 관련지어 역사 현상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개별 국가의 역사에 나타나는 변화를 기술하기 위해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서 외부를 내다보는 거시사는, 개인이나 국가를 그렇게 많이 강조하지 않는다. 산업화 시작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이 세계사를 지배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변화에 관심을 두고 세계사의 사건들을 기술하는 역사가들은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면, 산업화 이전 수천 년 동안의 다른 지역들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동식물의 화석에서 에너지를 얻게 된 석탄혁명은, 19세기에 세계의 물질문화를 바꿔 놓았으며 전근대 세계와 근대 세계를 나누는 분기점 구실을 했다. 이 밖에도 유대-기독교의 틀에 갇히지 않고 고고학자와 고인류학자, 유전학자들이 인류의 화석 유물을 통해서 초기 인류의 생리적 발달에 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좀 더 장기적이고 깊이 있는 역사가 세계사에 포함된다.
환경사의 과제
세계 환경사는 문명이나 국가, 개인의 일대기 또는 사건에 초점을 맞춘 포괄적인 인류 역사가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기존의 세계사가 이미 이룩해 놓았다. 세계 환경사는 인류 세계와 자연 세계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인류사에 나타난 커다란 변화뿐 아니라 인류사와 자연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존 로버트 맥닐에 따르면, 환경사는 “생물학적·물리적 환경에 나타난 변화와 이 변화가 인류 사회에 끼친 영향에 관심을 둔다.” 환경사는 지방이나 지역, 국가의 역사에 관한 기존 지식에 새롭게 접근하고 이 역사들을 통합하고 연결하려고 시도한다.
새로운 접근 방식은 지구의 역사, 진화, 농업생산성, 도시계획, 제조업, 산업, 소비, 에너지 사용을 연구하면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지리학자, 기후학자, 진화생물학자, 고고학자, 고인류학자, 인구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의 연구 성과와 새로운 지식을 이용할 때 가능하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학자들은 발전을, 과학적 기초 없이 상상으로 이루어진 구성물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모든 학문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관점은 물론 독특한 이론 구조와 증명 과정을 지니고 있다.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속한 전통적인 학문의 관점에서 동일한 주제를 연구한다. 하지만 그들은 똑같은 ‘실제 세계’를 연구하면서도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은 지구와 인류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소비 패턴과 에너지 사용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지구적 변화와 발전에 관해 살펴본다. 생태와 환경에 나타난 거대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서 지방과 지역, 국가, 초국가의 역사들은 물론, 여러 학문 분야를 통합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기원
대개 인류에 관한 이야기는, 생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 지구 생태계를 전제로 하고 지구의 기원이나 수십억 년에 걸친 지구의 발전은 도외시한다. 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 책은 인류의 생명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 지구의 발전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구는 지각을 변형시키는 대규모 지질구조 운동의 변동을 거쳐 복잡한 대륙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자연 세계의 변화가 진화의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세계사 연구자 프레드 스파이어는 이렇게 지적했다.
“판구조론이 인류의 진화를 비롯하여 생물의 진화를 이끌어 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광활한 지반이 끊임없이 이동함에 따라 해류에 변화가 생겨났고, 해류의 변화는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지질과 기후 체계가 인류의 진화에 영향을 끼친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인류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이 유전자 구조나 생물 구조의 지도를 작성하게 됨으로써 진화의 역사에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초기 호미니드인 호모 에르가스테르(호미니드는 직립 보행 영장류를 일컫는 말이고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플라이스토세 전기에 생존한 고인류이다―옮긴이)가 150만 년 전에 지질과 기후의 변화를 거치면서 현생인류와 흡사한 해부학적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늘어난 뇌 용적, 평평해진 얼굴과 턱, 직립보행에 유리한 뒤로 젖힌 골반, 길어진 팔다리를 지닌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이전의 호미니드들과 구별된다. 생리학적인 변화와 더불어 문화적인 변화도 나타났다. 고인류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같은 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와 인류의 공동 진화 과정co-evolutionary processes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생태학적 상호 의존에 바탕을 둔 역사 해석에 훨씬 더 전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규모 이주와 농업의 시작
지금으로부터 100만 년 전에 기후가 추워지자 호미니드들이 서식지를 옮기고 동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수십만 년 뒤에는 또 다른 이주가 진행되었다.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온 호모 사피엔스의 이주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빙하가 물러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빙하기 거대 동물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수렵채취자들의 포식 생활이 한도를 넘어서면서 영양 장애가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기원전 8천 년에서 기원전 6천 년 사이에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저마다 농업이 시작되었다. 영양 결핍이 심해지자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것이다. 빙하가 물러나면서 증가한 이산화탄소가 초창기 농부들이 심은 작물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생명력이 더 강한 식물에게. 프레드 스파이어는 “농업 체제를 출현시킨 전 지구적 요인 가운데 첫 번째가 기후변화이다”라고 언급했다. 생태학 용어로 말하면, 사람과 짐승이 서로 의존하게 되었고 둘은 또 얼마 안 되는 재배식물에 의존하게 되었다.
수렵채취가 농업으로 바뀐 현상은 진화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이 손을 쓸 수 없는 생태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가운데 나타난 변화이다. 그렇다고 해서 초창기 경작자들이 치른 희생을 가벼이 보아 넘길 수는 없다. 사람과 가축이 수천 년에 걸쳐 노동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했다. 체구가 왜소해지고 수명이 짧아진 것을 보면 그들의 형편없는 처지를 짐작할 수 있다.
혁신과 발명은 역경에서 나오는 법이다. 동식물을 골라 육종하고 도구를 제작하면서 생산성이 늘어났고 정주지나 마을의 규모도 커졌다. 상당수의 마을은 사회적, 경제적, 행정적으로 복잡한 위계를 갖춘 도시로 발전했다. 식량이 남아돌자 이동과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공예 기술이 발달하고 통화 거래도 늘어났다. 숙련기술이 늘어나면서 일부 도시들이 성장을 거듭하며 농업 문명을 이룩해 나갔다.
아주 먼 옛날에 유라시아 농부들은 가축들을 이끌고 이주를 했다. 동물을 사육하면서 사람과 가축이 가까워지고 사람이 가축의 미생물에 노출되어 그 미생물이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병원균이 됨에 따라 이들의 이주는 동떨어져 살던 인간 사회에 질병을 확산시켰다. 식량 생산이 늘어나긴 했지만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인구 폭발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세계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게 된 것은 출산율 증가가 아니라 사망률 감소 덕분이었다. 사람들이 “토끼처럼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해서”가 아니라 “파리처럼 죽지 않게 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인구 성장과 매뉴팩처, 공업화의 전제 조건은 초창기의 농업 사회였다. 인류학자 알프 호른보르크가 지적했다시피 “농업 생산을 위한 토지개량이 전 세계의 공업화 이전 사회에서 이루어진 자본축적의 주된 형태고,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자연 환경을 바꿔 온 가장 눈에 띄는 방식이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인구 성장과 도시의 부상이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생겨난 중요한 결과물이 되었다.
인구 성장과 도시의 출현
인구는 수백 년에 걸쳐 지극히 미미한 성장률을 보였다. 한 이론에 따르면, 제4기 지질시대(260만 년 전에서 오늘날까지)에 속하는 7만4천 년 전에 가장 큰 산이었던 수마트라의 토바 산이 분출하면서 지구 전체의 기후가 냉각되었고 거의 모든 인류가 사망하고 수천 명의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이 인구 붕괴의 증거가 우리 디엔에이에 기록되어 있다. 지난 5만 년 동안 1천억 명이 넘는 사람이 태어났지만 인구 성장률이 매우 낮았는데, 인구가 7억5천만 명이 된 것은 19세기 산업화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고대에는 도시가 안전이나 보호는 물론 경영의 중심지였고 재화와 용역이 분배되는 곳이었다. 이런 가운데 도시국가와 농업 문명이 등장했다. 일부 중심지에서는 인구밀도가 19세기 수준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초기 수메르의 도시 우루크는 5,300년 전에 이미 19세기 프랑스 파리와 비슷한 에이커 당 60명의 인구밀도를 유지했고 도시 전체 인구가 2만~3만 명이었다.
성벽으로 두른 고대와 중세 도시의 인위적 장벽이 무너지면서 각 지역에는 그곳의 자원 사정에 따라 널리 퍼져나가는 저밀도 인구 성장과 한 곳에 집중되는 고밀도 인구 성장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인구 성장이 대개 1750년 이후 농촌 지역에서 일어났고, 유럽에서는 1750~1850년에 주로 인구가 밀집한 기존의 취락에서 나타났다. 인구 증가와 도시화 확산은 인류의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 넓어지고 깊어짐에 따라 삼림지대와 물, 야생동물을 포함하는 생태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현대 세계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역사 발전과 더불어 저밀도 주거 형태가 확산되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어마어마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도심에서 대략 8킬로미터 반경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교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가솔린을 85퍼센트나 더 많이 소비한다. 해마다 차량 한 대가 배출하는 탄소의 양이 6톤에 달하는 데는 이런 불균형이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보도가 하이브리드 차량만큼이나 섹시하고” 차량의 수명이 15년이면서 도로의 수명이 100년도 넘는 도시를 상상할 수 있다. 도시가 이렇듯 “위대한 탄소감축 기계”가 된다면 선진 세계에서는 도시가 다시 각광을 받게 될 것이고 발전도상 세계에서는 도시화가 증대될 것이다.
매뉴팩처와 공업의 등장
인구 성장과 도시화는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두 가지 변화, 곧 제조업과 공업의 발전을 가져온 요인이다. 제조업과 공업화는 이따금 생산의 변화를 시도한 혁신 단계가 포함된 기나긴 발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핵심에는 1백만 년도 더 오래 전에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발견한 불 사용 기술이 있다. 고대 도시에서 공예나 교역이 선택 가능한 직업의 범주에 들기 시작하면서, 지중해에서 인도를 거쳐 중국에 이르는 유라시아 전역의 도시 작업장과 여기저기 흩어진 농가에서는 화로나 용광로를 이용한 소규모 제작과 제조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작업장이 공장으로 바뀔 때까지 세계 경제는 다중심 체제였다. 주로 인도와 중국에 집중되어 있던 아시아의 작업장들은 전 세계의 교역 상대자들에게 염색 면직물, 비단, 자기를 비롯한 소비재 가운데 80퍼센트 정도를 공급했다. 향신료, 특히 아시아산 후추가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사람들의 음식에 양념으로 사용되었다. 유럽이 삼림에서 나는 유기 에너지 공급이 줄어들면서 생겨난 장애를 극복하면서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과 상호 작용의 방향이 바뀌었다. 화석 광물을 태워서 광물 에너지를 얻고 물을 증기로 바꾸는 석탄혁명이 생산을 증가시켰다. 증기기관은 경제적 효율을 높여 주었고 전근대 세계와 근대 세계를 나누어 놓았다. 이런 변화를 두고 역사가 해럴드 리브세이는 이렇게 썼다.
“1780년부터 1880년까지 물질적 가능성의 세계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과거 그 어떤 세기에도 이토록 큰 변화는 없었다.”
산업화로 작업장이 공장으로 바뀌었고 상업 거래가 돈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로, 수직기가 역직기로, 수공예가 대량생산으로 대체되었다. 증기기관 대신에 증기터빈을 사용하는 산업체가 많아졌다. 발명과 투자, 혁신 같은 말이 부의 창출과 동의어가 되었고, 노동 대중은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도시로 몰려들었다. 기업가와 생산수단 소유자에게 부가 집중되면서 계급 간 격차가 더욱 커지고 빈곤이 널리 확산되었다.
19세기 공업 도시에서 오래된 기반 시설을 압도하는 폭발적인 인구 성장이 나타나면서 경제적 부의 창출은 무거운 환경 비용 부담으로 이어졌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음, 짐을 실어 나르는 가축의 시체가 썩어 나는 역겨운 냄새, 시궁창이나 골목길에 널브러진 도축된 소와 돼지의 선혈 낭자한 유해, 오수 구덩이와 지하실, 변소에 넘쳐나는 사람의 똥오줌이 도시의 부패를 상기시켜 주는 것들이었다.
장기 지속의 역사에서는 부를 창출하는 산업 도시들이 진보를 이끌어 내는 동력 기관일 것이다. 빈곤한 세계는 여전히 남아 있고 소득은 언제나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늘어난 기대수명은 농촌에서와 달리 20세기 현대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공업 도시가 자본재(이를테면 철과 강철, 기관차, 화물차, 직물, 섬유제품)를 생산하는 동력 기관이 됨에 따라 소비재를 증가시키고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세계무역과 신세계의 생태계
제조업이나 공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비재도 지난 5세기에 걸쳐 생산과 마케팅, 대체의 길을 폭넓게 걸었다. 하지만 산업 노동이 18세기에 시작된 것과 달리, 유라시아 전역에서는 물론 인도양 교역 상대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소비재 무역의 역사는 수백 년에 이르렀다. 사치품이 다수의 구매자들을 위한 상품으로 바뀌는 소비재의 역사는, 독자들에게 현대 세계의 대량소비와 그것이 미친 생태학적 영향에 대한 역사적 안목을 제공한다. 농업과 인구 변화, 도시화가 전 지구적인 환경 변화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국제적인 거래 시장과 그것이 에너지와 사람, 상품의 전 지구적 흐름에 미친 충격은 전례가 없는 새로운 차원이었다. 설탕 생산의 증가와 그 가격의 하락은 노예노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서아프리카의 노예들을 수입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부려먹기 위해서였다. 노예 수입은 서구 세계의 설탕 소비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인간관계를 지배와 예속의 범주로 바꿔 놓았다. 태양은 사탕수수와 차나무를 자라게 에너지를 공급했으며, 무역풍을 따라 이동하는 선박이 서아프리카에서 서인도제도와 브라질로 노예를 수송하고, 석탄을 때는 증기기관이 차와 설탕을 소비자에게 공급했다. 맥닐은 상호 의존적인 생태계가 아메리카 열대지방에서 어떻게 지정학의 역사를 만들어 갔는지 보여 주었다. 17세기에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노예들이 신세계에 다다랐을 때 그들과 함께 황열병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라는 서아프리카 모기까지 들어왔다.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대개 면역력이 있었지만 온대기후에서 온 유럽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메리카 열대지방의 대농장들이 이집트숲모기의 번식지가 되었다. 에스파냐 군을 무찌르려고 카리브 해에 다다른 영국과 프랑스의 침략군이 황열병으로 무척 고생했다.
화석연료와 기후변화
에너지는 독자들이 이 책 여기저기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아주 흔한 주제이다. 석탄을 때면서 인류가 전근대 유기 에너지(이를테면 나무, 바이오매스, 가축의 분뇨)의 제약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석탄에서 대기를 오염시키고 끔찍한 속도로 온난화시키는 탄소와 유황, 산화질소가 나오는 바람에 기나긴 환경오염과 파괴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석탄을 사용하게 되면서 산업화는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인류는 수백 년 동안 바람의 속도와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이용해서 일을 해왔다. 이들 에너지가 직물 공장의 베틀이나 제재소의 톱과 선반, 제철 공장의 분쇄기와 절단기와 연마기에 동력을 제공해 주었다. 사람이 물론 그 보조 역할을 했다. 이 동력원들 대부분과 이 동력원을 이용해 만든 공업 생산품은 석탄을 사용하는 공장에 비해 땅과 물에 가벼운 영향만 끼쳤다.
19세기에 나무보다 값이 더 싼 석탄이 직장과 가정의 경제는 물론 자연 환경과 건축 환경을 바꿔 놓았다. 석탄이 산업에 연료를 공급하고 현대 가정용 전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오늘날 에너지 수요의 일부를 충당하고 있고, 그보다 적기는 하지만 핵과 바이오 연료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전 세계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해 나가고 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자동차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면서 세계경제에서 산유국 경제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에너지 자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기온 상승과 기후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앞에서 나는 지질 변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이 시작될 기후 체계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를 다루게 될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자연 세계와 인류 역사의 상호 의존성을 더욱 강조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2007년 보고서는, 2005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난 65만 년 동안에 발견된 180~300피피엠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2007~2008년 결론에 따르면 중국에서 배출되는 산업용 배기가스가 이 협의체의 예상치를 넘어섰다. 계속 나오고 있는 각종 정보를 고려한다면 지구온난화의 심화가 가져다줄 위험을 IPCC가 과소평가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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