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5.
긴 장마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남은 두 마리의 오리는 너구리와 마주쳤다. 검둥 오리는 숨을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데가 없었다. 주변은 온통 바위투성이였고, 게다가 너구리는 아주 냄새를 잘 맡았다.
너구리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렸다. 날개 깃털이 다 자란 검둥 오리는 뒤뚱뒤뚱 뒷걸음치면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렇게 해서 흙먼지를 일으키면 가끔씩 상대방이 주춤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먼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죽더라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내 오리는 잔뜩 겁을 먹고 울었다.
"막내야, 괜찮아. 겁내지 마. 자, 나처럼 해 봐."
검둥 오리는 아랫배에다 힘을 주고는 배를 부풀리려고 했다. 그러나 두꺼비 배처럼 커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너구리는 낄낄낄 웃었다.
검둥 오리는 목을 앞쪽으로 길게 빼면서 너구리의 앞발을 물어뜯었다. 몇 바퀴 때굴때굴 구른 너구리는 화가 날 대로 났다.
"이 건방진 오리들이 나한테 덤벼! 가만두지 않겠다!"
너구리는 검둥 오리를 입에 물고는 마구 흔들어 대다가 공중으로 던졌다. 검둥 오리는 본능적으로 날갯짓을 해댔지만 땅으로 떨어졌다. 배에서 피가 흘렀다.
다시금 너구리가 달려들었다. 검둥 오리는 넓적한 부리로 너구리의 뱃가죽을 물어뜯었다. 갑자기 반격을 당한 너구리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그 틈에 검둥 오리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아, 불행하게도 검둥 오리는 벼랑 끝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50미터쯤 되는 낭떠러지였다.
너구리는 천천히 다가왔다.
검둥 오리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오리야말로 너무 약한 동물이라고 탄식했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송곳니도 없고,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타지도 못하고, 노루처럼 빠르지도 않고, 두꺼비 모양으로 몸을 크게 부풀려서 상대방에게 겁을 주지도 못한다. 새들같이 날 수도 없고, 두더지마냥 땅을 파고 숨는 재주도 없다. 쐐기처럼 무시무시한 독을 가진 침도 없다.
검둥 오리는 눈을 감았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눈물이 났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이렇게 살다가 다른 동물들한테 죽을 바엔......'
검둥 오리는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둥 오리의 몸이 종이비행기만큼 가볍게 날고 있었다. 새처럼 공중으로 솟아오르지는 못했지만, 벼랑 아래로 비스듬히 날면서 계곡 건너편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제야 검둥 오리는 자신에게도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날 수는 없었지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는 날 수가 있었다.
그 후 검둥 오리는 몇 번이나 살쾡이와 너구리를 만났지만 당황하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높은 곳으로 도망친 다음 아래쪽으로 날아가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막내 오리는 살쾡이에게 당하고야 말았다.
결국 검둥 오리는 외톨이가 되었다.
6.
칠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양갑수 씨네 집 위로 날아가던 청둥오리 세 마리가 연못에 내려왔다. 목이 몹시 말랐던 물오리들은 근사한 연못을 보고는 잠시 쉬어 가기로 작정했다.
어른이 된 검둥 오리는 뜻밖에 찾아온 손님들 앞에서 당황했다. 생김새는 자기와 똑같지만, 그 오리들은 하늘을 날아다녔다. 청둥오리들은 검둥 오리가 집오리임을 알고는 마음껏 놀려 댔다. 그때마다 검둥 오리는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렇구나. 나는 집오리라서 날지 못하는구나.”
“암, 집오리들이 날아가면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아주 오랜 옛날에,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오리를 잡아다가 날지 못하도록 했단다. 토끼장 같은 곳에다 오랫동안 가둬 놓거나 날개를 잘라 버리기도 했지. 좁은 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나는 법을 잊어버리거든. 사람들은 굳이 먼 곳으로 날아다니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거짓말했지. 먹을 것을 많이 주고, 오리들을 설득했어. 그래도 날려고 하면 때리기도 했지. 토끼장보다 더 작은 곳에다 가둬 놓기도 하고. 오리들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어. 굳이 힘들게 날지 않아도 살 수가 있었거든. 사람들이 먹이를 배 터지도록 주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야. 먹이도 풍부했고, 다른 동물들이 위협하면 사람들이 지켜 주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날지 못하게 된 거야. 날개가 있어도 날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그렇구나. 너희는 참 좋겠다.”
검둥 오리는 청둥오리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오리인 자신이 아무리 날갯짓해 봤자 하늘을 날 수는 없었다. 검둥 오리의 슬픔은 깊어졌다.
밤이 되자 청둥오리들은 모두 날아갔다.
검둥 오리는 너무도 외로워서 엉엉 울다가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 조금 전에 날아간 청둥오리 무리 중의 한 마리였다. 수컷 청둥오리는 암컷인 검둥 오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청둥오리는 그 연못 주변에서 살게 되었다.
하루는 양갑수 씨가 연못으로 다가왔다. 양갑수 씨 친구도 있었다. 친구가 먼저 물었다.
“갑수야, 오리들이 다 어디 갔니?”
“그러게 말이야. 세 마리는 다른 동물들한테 잡아먹히고 한 마리가 남았는데…….”
“그럼, 그 한 마리도 잡아먹혔겠지 뭐. 집 주변에는 동물들이 우글우글하니까.”
“아니야. 검둥 오리는 쉽게 잡아먹히지 않아. 내가 몇 번이나 봤거든. 혼자가 아니었어. 야생 청둥오리도 한 마리 있었다니까. 그놈은 틀림없이 수놈이겠지. 꼬리 깃털이 약간 위로 꼬부라졌으면 수놈이거든. 저기 저 바위 위에서 나는 것도 봤어. 청둥오리가 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어. 검둥 오리는 야생 오리만큼 영리해. 숨을 줄도 알고, 높은 곳으로 가서 날기도 하고…….”
양갑수 씨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물론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이 친구가 산속에서 혼자 살다 보니까 아예 소설을 쓰는군. 물론 가끔 해외 토픽을 보면 암캐가 송아지한테 젖을 주고 고양이가 표범 새끼를 키우는 경우도 있더라만, 이건 달라. 말도 안 돼. 야, 어떻게 야생 청둥오리가 나는 방법을 가르치냐?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너는 지나치게 동물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이봐, 집오리는 닭보다 더 미련해. 알도 아무 데나 낳고, 새끼를 까지도 못 한다고. 그런데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날아다닌다니,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야?”
양갑수 씨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는 친구의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양갑수 씨 말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친구를 설득할 수 없었을 뿐이다. 아무리 양갑수 씨가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양갑수 씨도 일부러 우기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7.
그로부터 3주일이 흘렀다.
여전히 검둥 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양갑수 씨는 이상하게도 허탈했다.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사 온 오리들이지만, 막상 이렇게 사라지고 나니까 몹시도 섭섭했다.
그런데 갑자기 연못 주변에 웬 오리들이 나타나 양갑수 씨는 깜짝 놀랐다. 마침 양갑수 씨네 집에 와 있던 친구가 먼저 말했다.
“아니, 웬 오리 새끼들이지?”
“엉, 그러게 말이야. 난 새로 사다 놓지 않았는데. 거어 이상한 일이군. 한 마리, 두 마리…….”
새끼들 앞에서 걸어 나오는 어미는 바로 검둥 오리였다.
검둥 오리 뒤에는 노란 솜털 옷을 입은 새끼 세 마리와 갈색 솜옷 차림인 새끼 네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맨 뒤에는 새끼들의 아버지인 청둥오리가 주변을 경계하면서 걸어왔다.
“허허, 이놈들 봐라. 집오리와 청둥오리가 결혼을 해서 새끼를 깠네. 세상에나, 집오리가 새끼를 까다니…… 믿어지지가 않아. 집오리가 야생의 본능을 찾다니 말이야.”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양갑수 씨는 어린애 모양으로 웃어 댔다.
“아이고, 요 예쁜 것들…… 아이고, 예쁘다. 어서 오너라, 내 새끼들.”
그러면서 오리 새끼들을 한 마리씩 쓰다듬어 주었다.
맨 뒤에 따라오던 청둥오리가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어서 새끼들을 내려놓으라고 야단이었다. 양갑수 씨를 아는 검둥 오리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친구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니, 지방 신문에다 싣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이거야말로 뉴스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자주 실려야 해. 그래야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사람들 가슴을 움직인다 이 말이야. 맨날 거짓말 치는 정치인들 이야기는 따분하다고. 물가가 얼마나 오르느니, 연예인 누가 인기 있느니 하는 이야기보다 이런 게 더 감동적이라고.”
양갑수 씨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됐다. 괜히 그랬다가 시끄러워지기만 해.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와서 난리를 칠 거야. 아마, 이 골짜기가 무사하지 못할걸. 어쩌면 저 오리들을 잡아갈지도 모르고…….”
친구도 양갑수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양갑수 씨의 친구는 날마다 찾아와서 오리들을 관찰하고 내려갔다. 두 사람의 관심은 오리 새끼들이 과연 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새끼들에게는 야생 오리의 피가 흐르고 있다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새끼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어미 오리인데, 어미가 집오리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날아 보지 못한 어미 오리가 새끼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수컷인 청둥오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청둥오리는 새끼들을 지키려고 살쾡이와 싸우다가 죽었다.
새끼 오리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오리는 다른 동물에 비해서 빨리 크는 편이다. 끊임없이 먹어 대는 식성 때문이다. 넓적한 부리로 많은 먹이를 집어먹는다. 물속에서 뻘을 뒤질 때는 넓적한 부리가 요긴하게 쓰인다. 뻘을 파는 삽이나 호미 같은 역할을 한다.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걸러 내 주기도 한다. 만약 먹을 수 없는 것이라면 넓적한 부리 옆으로 밀어낸다. 부리가 넓적하다 보니 한번 잡은 먹이는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미꾸라지처럼 미끄러운 물고기도 입에 물리면 도망칠 수 없다. 실제로 야생 오리들은 미꾸라지를 아주 좋아한다. 그뿐 아니다. 오리들은 뻘 속에 있는 작은 플랑크톤까지 부리로 걸러 내서 먹는다. 땅에 올라와서는 풀까지 뜯어 먹는다. 그러니 아주 빠르게 자랄 수밖에 없다.
노란 새끼들은 흰 깃털 옷으로 갈아입고, 갈색 오리들은 갈색 깃털로 갈아입었다. 청둥오리와 검둥 오리의 깃털은 갈색이었지만 흰 오리도 태어났다. 어미인 검둥 오리의 몸속에 하얀 집오리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 위에서 단풍이 물들어 내려오던 어느 날, 양갑수 씨와 친구는 어미 오리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발견했다. 어미 오리는 비행기가 긴 활주로를 달려가듯이, 수면 위에서 날개를 치면서 날아오르는 거였다. 거의 어른이 다 된 새끼들에게 날아오르는 교육을 시키는 중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어미 오리의 교육은 아주 엄했는지라, 조금이라도 엉뚱한 짓을 하는 새끼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그 넓적한 부리로 피가 나도록 쪼아 댔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서 나는 연습을 시켰다.
양갑수 씨의 친구는 동물학자인 교수님을 모시고 왔다. 교수님도 그 장면을 보고는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이런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대자연의 힘은 무섭고도 따뜻하다는 결론이었다. 비록 집오리지만 짝이 청둥오리이므로 야생의 본능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였다.
교수님은 야생 동물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다면서 한 달간이나 양갑수 씨네 집에서 생활을 하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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