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이라는 희생의 시스템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버리고, 무시하는 시스템
다카하시 데쓰야
합천이라는 장소는 제가 이번 대회에 참여한 가장 큰 계기입니다. 2000년경에 합천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뒤부터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지요. 오늘 통역을 맡은 조진혜 씨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의 피폭자 문제, 그리고 원폭과 피폭을 둘러싼 기억을 연구해온 학자로, 저에게 김형률 씨나 한국의 피폭 1세, 2세, 3세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 들려주었어요. 그런 것을 계기로 더욱 합천에 가보고 싶다는 희망이 커졌는데 이번에 그것이 실현됐습니다.
저는 이번에 합천에서 한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말씀드리면 ‘고통의 연대’에 대한 호소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호소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는 미국이 자행한 것이지만 결국 7만 명이라는 조선인이 그곳에서 피폭을 당했습니다. 이는 일본이 행한 ‘한국 합병’과 이후의 식민지 지배, 그리고 많은 조선인을 동원한 태평양전쟁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전후에도 서 선생님께서 일관되게 제기하신 일본의 국민주의, 혹은 권혁태 선생님의 ‘피폭 내셔널리즘’* 그리고 한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일한 피폭국’ 같은 이데올로기와 ‘신화’ 속에서 한국인 피폭자들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되었고 일본 정부는 이들을 피폭자 중에서도 차별적으로 대했습니다.
* 2차대전의 가해국이자 원폭 피해국인 일본이, 가해와 침략의 기억을 생략한 채 원폭 피해를 중심으로, 즉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단일한 인식만을 기반으로 전쟁에 대한 기억을 국가주의로 수렴하는 것을 가리킨다.
저 역시 전후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천의 피폭 피해자 분들에 대해 국가가 취해온 무시와 차별이라는 정책을 용서해온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국가와 국민이 오랫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죄와 피해자를 방치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바로 합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합천에서 고통의 연대에 대한 호소가 나왔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서 저는 다시금 국가의 역할과 그 문제점을 통감했습니다. 그것을 저는 세 가지로 나눠서 지적한 바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국가가 국민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원전의 안전 신화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사고가 난 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국가는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는 국민을 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특히 후쿠시마의 피폭자들(여기서 후쿠시마란 앞서 언급했듯 반드시 후쿠시마 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번 피재민이 기민(棄民) 정책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원전은 안전하다고 하면서,체르노빌 사고를 기준으로 볼 때 지극히 위험한 지역인 후쿠시마 일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위험에 노출시켜온 것은 국가가 국민을 내버리는 구체적인 행태입니다. 세 번째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 국가가 국민 이외의 존재를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국민주의의 문제인데,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 있어서도 후쿠시마의 피재민, 피폭자는일본 국민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뿐 아니라 중국인과 아나키스트들도 살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국가가 국민 이외의 존재를 무시함과 동시에 국민 스스로도 국민 이외의 존재를 적대시하고 배척한 사례지요. 또 일본의 원전 시스템에서는 우라늄이나 방사성 폐기물 등을 수입하거나 수출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자국민 외의 피폭자에 대해 애초부터 무시하는 시스템이지요.
저는 이러한 것들을 포괄해서 원전 시스템을 ‘희생의 시스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타인의 생활이나 생명, 존엄 등을 희생한 위에서만 이익을 내고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그 이익을 취하고 유지하는 자들은 결국 국가권력이나 자본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내버리고, 국민 이외의 존재를 무시하는 문제점은 각 나라의 원전 추진 세력들이 공유하는 특성입니다. 나아가 원전뿐만 아니라 핵무기 문제를 포함해 핵을 둘러싼 정치, 경제, 군사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아닌가 합니다. 기묘하게도 지난달 부산 근처의 고리원전에서 전원이 모두 끊기는 사고가 있었죠.* 당시 조직적인 사건 은폐 의혹이 있었다는 것 또한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런 사건을 접하니 다시 한번 연대를 통해 원전 시스템 그 자체, 혹은 핵의 정치, 경제, 군사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을 강화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 고리원전은 1978년에 가동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이다. 국내 원전의 효시인 고리 1호기는 지난 2007년을 기점으로 설계 수명이 만료되었으나 2008년에 2017년까지 재가동이 승인되었다. 그러나 설비가 노후되어 사고가 잦은 데다 지난 2012년 2월 9일, 오후 8시경 12분 동안 완전히 정전되는 대형 사고까지 발생하여 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경식
지난 모임 이후 시간이 꽤 흘렀는데 그 사이에 사회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것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원래 꽤 의심이 많고, 국가를 잘 믿지 않는 사람임에도 최근 몇 개월 동안 국가를 너무 얕봤다고 느꼈습니다. 일례로 후쿠시마 원전 4호기를 보면, 여기에 연료봉 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사용한 연료봉이 물에 담긴 상태로 놓여 있는 곳인데, 그것을 둘러싼 건물이 모두 무너져서 지금은 뼈대만 남아 있지요. 만약 이 물이 없어졌더라면,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여기저기로 퍼졌을 텐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는 단지 우연에 불과했다는 점이 밝혀졌고, 심지어 이 사실이 계속 숨겨져왔으며 지금도 이런 위험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 2주 전에 후쿠시마 사고 1주년을 맞이했지요. 겨우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정부는 마치 페이지를 넘기듯 이미 과거의 일인양 처리하는 것 같습니다. 원전을 재가동하려는 정치적, 경제적인 움직임과 언론의 선동이 있는 상황이고요. 일본 국민 스스로 자신들이 속고 있고 버림받고 있으며, 국민 이외의 존재가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할 만한 상황입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0퍼센트 정도가 탈핵을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어요. 그 대부분이 여성이고, 남성은 약 50퍼센트가 탈핵을 원하고 있지요. 문제는 70퍼센트의 국민들이 막연하게나마 탈핵을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구체화하고 추진하는 정치적 세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다카하시 데쓰야
일본 국민에게 이런 현실을 인식할 능력이 없는 것인지 정말 의문입니다. 이런 고민을 할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1945년 이후 일본 국민의 상황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 혹은 ‘배신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일본인의 이기적인 논리이기도 합니다. 속은 데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 느끼고 있는지, 군부에 속은 결과 얼마나 많은 피해와 고통을 아시아 사람들에게 줬는지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저 자기중심적인 논리가 되고 말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속았다는 것을 안 이상, 속인 주체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체제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이대로 간다면 일본 국민은 1945년 패전 후의 실패를 또다시 되풀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국가를 의심하지 않는 시민
한홍구
저는 후쿠시마 사건을 보면서 새삼 천황제의 위력을 느끼게 됩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거쳐, 만주를 침략하고, 태평양전쟁으로 나아갔지요. 이 일련의 과정에서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일본의 차이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딱히 책임질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독일에서 나치즘이 대두하고 유대인 학살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진 책임을 히틀러 개인에게만 물을 수는 없지만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한 개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일본 같은 경우,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되었든 기타 잇키(北一輝)가 되었든 히틀러나 무솔리니에 비견할 만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바로 천황의 존재 때문인데, 그렇다고 천황에게 히틀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책임을 묻기도 어색합니다. 그런데 실제 벌어진 일을 보면 나치즘이 저지른 죄악이나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른 죄악이나 큰 차이가 없어요. 그것을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처럼 ‘무책임의 체계’라고 부르든 아니면 ‘머리 없는 괴물(headless monster)’이라고 부르든 중요한 것은 전쟁의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모두 한발 물러서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와 똑같은 양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틈을 타서 과거에는 군국주의자들이 부상했지만, 지금
은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앞서 다카하시 선생님이 전후에 일본 국민들이 국가에 속았다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그것이 천황제 자체에 대한 의심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그저 도조 히데키로 대표되는 군부 정권에 대한 의심 수준에 머물렀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저는 후자에 가깝다고 봅니다. 전전의 천황제와 전후의 천황제를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천황제가 살아 있음으로 인해 일본이라는 국가에 상당히 강력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경우, 분단 한국에 독재 정권이 들어서자 한국의 시민사회는 독재자들이 장악한 국가기구에 저항하고 투쟁했지요. 그런데 일본의 경우, 천황제 국가의 기본 성격이 유지되었고 천황의 권위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전후 일본에서 민주주의가 모범적으로 작동했다 하더라도 시민들이 국가 자체를 의심하거나 견제하는 힘은 약했지요.
일례로 일본에서 후쿠시마 사고로 핵 발전소에서 노심 용융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한국 텔레비전에서는 상세하게 보도했는데, 정작 일본에서는 몇 달 동안 그 내용이 방송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국가를 의심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전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해요. 무책임의 체계와 국가를 의심하지 않는 시민들 속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원자력 마피아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일본에 1920년대에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있었지요. 메이지유신 이후 50~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시작됐고 기대를 걸 만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뜻하지 않게 1923년에 간토대지진이 엄습했어요.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허물어지고 맙니다. 지금까지는 간토대지진이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쇠퇴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2011년에 대지진을 겪고 난 후 일본 사회가 작동하는 것을 보니 과연 일본 사회가 이 대지진의 충격을 어떤 식으로 흡수하고 해결해서 그나마 전후에 지탱해왔던 민주주의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우려됩니다. 대지진의 충격을 흡수하고 극복해나갈 일본의 기초 체력은 어떤가요?
다카하시 데쓰야
어려운 문제를 질문하셨습니다. 먼저 국민들이 속았다고 생각한 것은 군부 정권에 대한 것이지, 천황제에 대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 저도 동의합니다. 속았다고 생각했던 국민들이 극동국제군사재판*을 통해 도조 히데키가 군부 정권을 지탱한 A급 전범으로 단죄되는 것을 보면서 “저거 봐.”, “꼴 좋다.”, “저 녀석들 때문에 힘들었는데 잘됐다.” 하고 느꼈다는 것을, 당사자나 경험자들에게 적지 않게 들었습니다. 그와 관련해 또 하나 상징적인 장면이 있는데 전후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지를 천황이 순행하면서 원폭 돔이 보이는
광장의 무대에 올라가 이야기할 때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는 자료 영상이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조차 시민들의 의식이 천황의 책임, 천황에 대한 책임 추궁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국가에 속았다는 인식이 좀 더 심화되었다면 국가에 대한 자립까지 도달하는 실낱 같은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 2차대전과 관련된 극동 지역의 전쟁범죄자들을 심판한 재판으로, 도쿄재판이라고도 불린다. 전쟁범죄 용의자로 지명된 60여 명 중 28명이 기소되어, 판결 이전에 병사한 2명과 소추가 면제된 1명을 제외한 25명이 전원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 피해자들이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데에는 굉장히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방사능 피폭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간단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천황제 문제와 연관 있는, 한 가지 상징적인 장면을 말씀드리자면, 이번에 간 나오토(菅直人) 수상이 피해 지역을 방문했을 때 피난민들에게 매도를 당했어요. 짧게 머물고 돌아가버린 간 수상을 향해, “우리를 도대체 뭘로 보는가?”, “당신도 여기서 살아보면 어떠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천황 부부가 방문했을 때는 피난민들이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도되었어요. 이것이 바로 상징 천황제*의 중요한 정치적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생겼을 때, 천황이 등장해서 피해자를 위로함으로써 국민 통합을 유지시키는 역할이 지금 천황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물론 뉴스에서는 전형적인 장면들만 뽑아서 보도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피난민들이 “고귀한 신분을 가진 분께서 이런 곳에 오시다니.” 하면서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표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번에도 상징 천황제의 퍼포먼스가 행해진 것이라 볼 수 있죠. 도조 히데키와 당시 천황에 대한 다른 반응, 그리고 이번 간 수상과 현재 천황에 대한 다른 반응을 비교해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전후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현재 일본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 일본의 헌법은 제1조에서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일본 패전 직후 국체인 천황제를 유지하고 싶었던 일본 지배층의 의향과 천황제를 상징으로 남기는 것이 일본 점령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맥아더의 이해가 일치하여 만들어졌다.
서경식
이번 사고가 1945년 이후 일본 복구 과정에서 천황제가 상징적으로 행한 역할을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때 미국이 전후 일본을 자국의 극동 체제에 넣기 위해서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죄해주고 천황제를 남겨둔 것은 굉장히 교묘한 정책이었습니다. 그 정책의 위험천만한 위력을 다시금 느낍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피해 지역에서 멀지 않은 미하루(三春)라는 곳에 겐유 소쿠(玄侑宗久)라는 스님이 있습니다. 소설가이기도 한데 현재 다른 피해자들이 갖고 있는, 도쿄전력이나 국가에 대한 분노를 대변하고 있지요. 현재 피해 지역에서는 피난을 해야할지 머물러도 괜찮을지, 후쿠시마의 먹거리를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과 대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겐유 스님은 최근 텔레비전에서 “우리 일본인은 천황 폐하처럼 기도하는 습관과 문화를 가진 민족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천황 폐하가 와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준 것처럼 우리도 대립이나 분열을 넘어서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역시 일종의 감정의 연금술입니다. 정부나 기업에 대한 분노가 천황제를 매개로 흡수되는 양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죠. 일종의 이중 권력제라고 할까요? 현실적인 정부 기관과 더불어, 그 위에 천황제가 초권력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를 의도적으로 남겨둔 것이라면 이 얼마나 교묘한 것입니까? 악마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과제입니다.
고통의 연대를 가로막는 것들
다카하시 데쓰야
한 선생님께서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일본의 근대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저도 일본 근대사에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있었다면 가능한 그것을 활용하고 싶어요. 그래서 다이쇼 데모크라시에 대해서도, 비교적 민주주의의 싹이 풍부했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황제 문제와 연관지어보면, 과연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민주주의자와 민본주의자들 속에 천황제를 뛰어넘을 만한 인식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현재 일본에 등장하고 있는 파시즘의 조짐은 지금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도 그런 흐름이 있었고 지금은 오히려 그런 위기들이 더 심화된 상태지요. 대표적인 예로 포퓰리스트 정치가이자 현 오사카 시장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의 정치 활동이 있습니다. 하시모토는 헌법 9조의 개정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원래 핵 보유론자, 핵 무장론자이기도 합니다.
하시모토는 현재 일본에 독재 정치가 필요하다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히틀러에 비유되는 것은 거부해요. 일본에는 그런 군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또 히틀러와 달리 자신은 선거에서 패배하면 물러나야 하는 정치가일 뿐이라는 게 그 이유지요. 그러나 포퓰리스트의 발언에 속을 수는 없습니다. 속아서는 안 되는 국면이고요.
서경식
하시모토로 대표되는 움직임에 대해 저도 상당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민당에서 개헌안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개헌안의 요점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선 첫 번째로 천황을 원수로 하자는 것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번과 같은 긴급 사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긴급권, 요컨대 히틀러가 구사한 것처럼 정부에 긴급 사태에 관한 권한을 주자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헌법 9조를 바꿔서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하자는 것이 있습니다. 네 번째로는 일본의 투표권이나 공무담임권을 일본 국적 보유자에 한정하는 내용을 헌법에 명기하자는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후에 보수파가 헌법을 바꿔서 실현하고자 했던 것들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논의가 진행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크게 논란이 되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움직임과 포퓰리스트의 흐름이 합류할 위험성입니다. 즉 기존의 보수계 정치파가 하시모토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가와 합류해 새로운 정당이나 연합 정권을 만든다거나, 혹은 현재 국회에 있는 사람들이 하시모토가 대표를 맡고 있는 ‘오사카 유신회*’에 참여하려고 하는 움직임이죠. 구체적으로 오사카에서는 교육 현장에서의 애국심 강요나 공무원의 노동조합 활동 탄압, 시 공무원 급여 인하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그런 하시모토 시장이 오사카에서 60~70퍼센트에 이르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 오사카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정당. 총선을 앞두고 자민당, 민주당 등에서 탈당한 주로 우익 성향의 정치인들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가 지사 직을 그만두고 합세하여 9월 말에 ‘일본 유신회’를 설립했다. 이시하라를 당 대표를 내세운 ‘일본 유신회’에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더 가세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54석을 얻어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현재는 이시하라와 하시모토 공동 대표 체제이다.
한홍구
한국 상황을 조금 말씀드리면 정부가 원전 중 가장 노후된 고리원전의 수명 연장을 강행하다 사고가 났고 당국은 그 사고를 완전히 은폐했습니다.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부와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원자력 마피아들의 태도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아요. 고리 1호기의 수명이 연장되는 과정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2012년 1월에 지식경제부 차관이 원자력수출산업회의의 신년 하례회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원자력 업계에서 일하는 방식이 있지 않느냐, 앞으로 다른 원전의 수명 연장을 다 해야 할 것 아니냐, 수명 연장이 안 되면 여기 모인 사람 중에 올해 연말부터 집에 가서 애 볼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건 정말 꼭 수명 연장을 해야 한다.”
한국은 1998년에 정권 교체가 되어 민주 정권이 10년간 집권했습니다. 그런데 민주 정부나 그 이전의 독재 정권이나, 원자력 정책 면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원자력 마피아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겠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강령을 정할 때 지속 가능성과 인류 평화라는 관점에서 원전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는 점 정도입니다. 그런데 ‘전면재검토’라는 말이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원전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보다야 반가운 말입니다만, 전면 재검토하는 동안에는 원전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문제는 이런 중요한 사안이 민주통합당 강령에 반영될 때 토론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에요. 불행히도 한국의 정당은 아직도 정강, 정책이나 강령에 의해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강령을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 한 명이 강하게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면, 빨리 통합은 해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하니 그냥 그렇게 해버린 겁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핵 발전소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어요. 정말 안타깝고 초조한 일입니다.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에 여성 과학자 민병주라는 인물을 공천했습니다. 이 사람은 원자력공학을 전공하고 고리원전 1호기의 수명 연장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비례대표 1번에 배치했다는 것은 새누리당이 핵 발전소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당에서는 핵 발전소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예각화하지 못했어요.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핵 발전소가 들어서려고 하는 지역에서는 이 문제에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동네 문제로 국한되어 있을 뿐 전국적인 문제로 부각되지는 못했습니다. 1990년도의 안면도 반핵 투쟁*이나 2003년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에서는 방사성 물질 폐기장 건설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죠. 물론 지역에서 제일 열심히 싸웠지만 사안 자체는 전국적인 이슈였는데, 몇 년 사이에 핵 발전 문제가 전국 문제에서 동네 문제로 격하되었어요. 원자력 마피아들이 원자력 르네상스를 준비하면서 열심히 뛰었던 2000년대 중후반 이후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후쿠시마 사건이 터졌지만, 이 불씨가 자라나 한국 원전 문제들을 전국적인 문제로 다시 살려내지는 못한 것이지요.
* 1990년에 충남 태안군 안면도 지역에서 일어난 반핵 운동. 노태우 정권 치하의 군사 독재 시절에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반발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 펼친 반대 운동으로 ‘제2의 광주항쟁’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당시 정부가 주민들과 아무런 협의도 거치지 않고 안면도 고남면 일대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이 5일에 걸쳐 반핵 시위를 벌였다. 결국 담당 부서인 과학기술처가 안면도 지역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천비핵평화대회의 연장선상에서 ‘고통의 연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의 연대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현실적으로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고통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연대를 가로막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이후 좌담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장애물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심화된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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