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라, 하얀 조끼
하얀 조끼가 가물가물 기억에서 멀어질 무렵 파리로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착오가 아니라면 뭔가 말 못할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를 채용하다니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사람을 뽑은 것일까?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메일로 교육 일정과 함께 교육 전 읽어야 할 자료와 숙제를 보내왔다. 파일을 열어보니 대학입시를 준비하듯 공부해야만 끝낼 수 있을 것처럼 분량이 많았다. 이메일 상단에 빨간색으로 크게 “교육받기 3일 전까지 미리 숙제를 파리로 보내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숙제를 안 하면 오지도 말라는 건가? 하지만 약속은 깨야 제 맛이고 경고는 무시하라고 있는 것이다.
숙제고 자료고 옆으로 밀어놓고 이메일을 뒤져 본부 주소를 찾았다. 구글 지도에 주소를 넣으니 파리 시내가 나왔다. 센강 바로 옆이었다. 바게트 하나와 치즈 한 조각, 와인 한 병을 들고 진짜 파리지앵처럼 센 강변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졸음을 쫓으며 교육받는 장면은 애써 외면했다. 센강뿐 아니라 샹젤리제, 에펠탑, 노트르담성당까지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관광과 쇼핑에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다.
걱정하는 식구들을 뒤로하고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파리에는 저녁 늦게 도착했다. 교육 첫날부터 지각했다. 허둥지둥 들어간 방에 이미 20여 명이 앉아 있었다. 방 앞쪽에서 반바지를 입은 남자가 뭔가를 설명하는데 발음이 이상했다.
‘영어로 교육하는 것 아니었나? 프랑스어로 설명하네? 방을 잘못 찾아 들어온 건 아니겠지?’
문가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행정담당* 교육받는 곳 맞나요?”
*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업무에 따라 크게 의료(Medical), 행정(Administration), 로지스틱스(Logistics)로 구분된다. 의료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의사와 간호사, 약사 등을 지칭하며 행정은 인사, 예산, 회계, 재정, 총무를 담당한다. 로지스틱스는 자재, 구매, 운송, 시설, 물, 전기, 건축, 안전·보안, 장비 등 의료와 행정담당이 하지 않는 모든 업무를 아우르는 직군이다.
“Oui.”
‘Oui’ 정도는 알아듣겠다만 나머지는 어쩌지? 꼼씨꼼싸, 루이비통, 뚜레주르, 바게트처럼 고등학교 때 배운 프랑스어와 텔레비전에서 들은 단어들을 총동원해 알아들으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앞에 선 그 남자는 프랑스어를 하는 게 아니었다. 영어 단어를 죄다 프랑스식으로 발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억양은 완전히 이다도시 아줌마였다.
“국굥옴는의사회능 1971뇽 주흐날리스트(journalist)와 독토르(doctor)가 주축이 되옹 프랑스에서 설립되어슴니당.”
프링글리시로 설명한 국경없는의사회 소개를 정리하면…… 아니, 착하게 살기로 했으니 이실직고하자. 당시에는 못 알아듣고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벌어진 나이지리아 내전 중 정부군은 독립을 요구하는 바이아프라 지역을 포위한 채 살인과 폭력을 자행하고 지역민을 아사 상태로 몰고 갔다. 당시 바이아프라의 독립을 지지하는 서방국가로는 프랑스가 유일했으며, 포위된 시민들을 돕기 위해 프랑스 출신 자원봉사자들이 바이아프라에서 활동했다. 이 봉사자들 중 프랑스적십자와 함께 구호활동을 벌이던 의사들은 정부군의 비인간적 처사를 세상에 알리려 노력했으나 나이지리아 정부와 적십자 모두 의사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의사들은 뜻을 같이하는 기자들과 함께 정치, 종교, 경제력 등에 상관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를 만들기로 하고 1971년 국경없는의사회를 설립했다.”
한참 국경없는의사회 소개가 이어지더니 이제 자기소개 시간이란다. 여기까지 와서도 자기소개 시간이라니. 성숙한 어른답게 각자 알아서 친해지면 안 될까? 사실은 영어로 말하기가 편치 않아서지만.
“먼저 시작할 사람 없어요?”
한 아가씨가 초등학생처럼 손을 번쩍 들더니 먼저 하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덩치가 커서 눈에 확 띄는 아가씨였다.
“제 이름은 아델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가 고향이고 국경없는의사회 아일랜드 지부*에서 인턴으로 일했어요.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모두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고,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 국경없는의사회는 2012년 기준으로 전 세계 68개국 400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에서 3만 2,000명이 넘는 직원이 활동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여느 단체와는 조직구조가 다르다. 보통 단체의 본부(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본부라고 하지 않고 운영센터라고 한다) 역할을 하는 곳이 다섯 군데이며 27개 지부가 이 다섯 군데 운영센터 밑에 있다. 운영센터는 다른 운영센터와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부는 모금과 홍보, 직원 모집 등을 담당한다.
- 5개 운영센터: 파리(OCP: Operational Center Paris), 브뤼셀(OCB: Operational Center Brussels), 암스테르담(OCA: Operational Center Amsterdam), 바르셀로나·아테네(OCBA: Operational Center Barcelona and Athens), 제네바(OCG: Operational Center Geneva)
- 27개 지부: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브라질, 캐나다, 체코, 덴마크, 프랑스, 독일, 그리스, 네덜란드, 홍콩, 인도, 아일랜드, 이탈리아, 일본, 룩셈부르크, 멕시코, 노르웨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스페인, 스위스, 아랍에미리트, 영국, 미국
현란한 발음과 완벽한 문장으로 다른 사람들 기를 완전히 죽였다. 몇몇 보일 듯 말 듯 손을 들었던 사람들이 아델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무엇인가를 찾는 듯 바닥만 바라보았다. 서양 사람들은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던데 여기 온 서양 사람들은 모두 예외인가 싶었다. 기다리다 못한 진행자가 아델 왼쪽으로 돌아가며 차례로 소개하자고 했다. 아쉽다. 고스톱 방향으로 돌면 준비할 시간이 좀 더 있었을 텐데. 나는 운 나쁘게도 아델 왼쪽으로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델 바로 왼쪽에 앉아 있던 프랑스 아가씨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텔레비전을 본다. 그리고 …… 음 …… 음 …… 배 아픈 사람들 많이 봤고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얼굴이 새빨개져 말을 더듬거리는 이 아가씨는 영어가 내 프랑스어보다도 형편없었다. 두 문장을 말하고 나서는 옆에 앉은 다른 아가씨를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더 할 말이 없으니 네가 얼른 시작해서 나를 이 곤경에서 건져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나도 배고픈 사람들 많이 봤다. 신문하고 텔레비전에서. 그리고 음…… 음…… 아, putain.*”
* Putain(퓌탕): 프랑스어 욕으로 매춘부라는 뜻을 갖고 있다.
몇몇이 킥킥거렸다. 차례가 돌아오면 자기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였을까. 사실 두 아가씨가 재수가 없는 거였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잘 안 되는 영어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뭐라고 하지? 하얀 조끼가 섹시해 보여서 지원했다고 하면 다들 비웃겠지? 슬펐다. 솔직하고 싶어도 솔직할 수 없는 세상이라니.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까지 했는데 또 거짓말을 해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고 멋진 영어문장으로 바꾼 다음 문법에 맞는지 확인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머리를 굴려도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착한 일하려고요.”
기껏 생각해낸 문장이 이것뿐이었다. 옆 사람이 내가 몇 마디 더 할 줄 알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끝.”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는 주절주절 좋지도 않은 발음으로 문법 다 틀려가며 떠드는 것보다는 짧게 한마디 하는 것이 백배 낫다. 옆에 앉은 사람은 미리 준비했는지 종이를 들여다보며 적어놓은 것을 읽었다.
“세상에 바뀌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 할 수 있다. 도움 필요한 사람 돕고 싶다. 국경없는의사회 좋은 기관이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단체. 내가 하고 싶은 말 무언지 다들 알죠?”
미안하지만 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는걸?
교육이 2주차로 접어들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수많은 것을 새로 배웠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배운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다행히 다른 동기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번만이라도 국위를 선양하기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습 복습 하자고 다짐해봤지만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아델은 매시간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답을 말하는 최고의 학생이었다. 다른 사람이 의견을 말하다 영어 어휘가 부족해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기다리지 않고 중간에 말을 가로채고 들어가 답을 마무리했다. 영어 어휘가 부족한 것이 마치 지식이 부족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늘 “내가 국경없는의사회 아일랜드 지부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것인데……”라는 문장으로 말을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인턴이란 복사를 하거나 커피를 만들어 나르고 잔심부름을 하는 공짜 인력이다. 전 세계 민간기업이고 국제기구고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인턴이 무슨 대단한 경력이라도 된다는 듯 꾸며대지만 인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인턴 경력 한 줄뿐이다. 그런 인턴 경험을 가지고 마치 ‘내가 경험해서 다 알고 있으니 내 답이 틀렸다고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전달하다니 대담하기도 했다.
그녀의 경쟁심은 한국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1등이 아니면 인생을 살 가치도 없다는 듯, 1등이 되기 위해 친구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듯! 그녀의 경쟁심만큼이나 기를 죽이는 것이 또 있었다. 바로 190센티미터나 되는 키와 100킬로그램은 족히 될 것 같은 덩치였다. 어찌나 큰지 그녀 뒤에 앉으면 아무리 손을 들고 흔들어도 선생님에게 보이지 않을 것만 같다. 교실 맨 앞 교탁 바로 앞 자리에 앉아 커다란 덩치로 다른 학생들이 칠판도 볼 수 없게 가리고 있는 아델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델은 경쟁은 여럿이 해야 제맛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매번 동기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발령은 성적순이라고 주장하면서 팀을 경쟁으로 몰아갔다. 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 하면 아델은 피도 눈물도 없는 군대 조교처럼 팀원을 닦달했다.
하지만 아델의 그 잘난 인턴 경력은 얼마 가지 않아 본전을 드러내고 말았다. ‘현금과 안전’ 시간이었다. 안전담당자가 질문을 던졌다.
“무장강도가 사무실로 들어와 현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역시 아델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대답했다.
“기회를 엿보다 경비원을 부르거나 힘으로 제압합니다.”
모두 아델이라면 힘으로 제압할 수 있겠다 싶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으면 돈을 다 줘버릴 텐데. 기부자들에게야 미안하지만 목숨까지 걸고 무장강도와 싸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아델은 물론 다른 동기들마저 겁쟁이라고 할까 싶어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강사의 답은 의외였다.
“틀렸어요. 절대 무장강도와 싸울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돈 다 가져가라고 현금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열쇠를 건네주세요. 다른 해외직원들에게도 여분의 금고 열쇠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도록 알려주어야 합니다. 현지직원들에게도 강도가 들면 행정담당이 금고열쇠를 들고 있다고 말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돈 때문에 목숨 거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어요.”
강사는 알제리에서 행정담당으로 일하다 교육을 받으러 온 마호메트에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급여일 전날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남자 셋이 행정담당 사무실로 난입했어요. 정문에 경비원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달아났고 사무실에서는 저와 해외직원 한 명이 다음 날 줄 급여를 세고 있었죠. 저는 현지직원이었고 금고가 어디에 있는지, 여분의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평소 해외직원이 이런 상황이 되면 해외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라고 했죠. 저는 그 말대로 해외직원에게 열쇠가 있다고 했고, 해외직원은 친절하게 금고를 열어주었어요. 그놈들은 세고 있던 돈과 금고 안에 있던 돈까지 모두 들고 가버렸습니다. 이들 중 한 명이 한 달 전 해고를 당한 전 직원이었기 때문에 사무실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모른다고 발뺌하거나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은 무모한 짓일 뿐입니다.”
아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누가 뭐래도 돈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릴 것이다. 그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돈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돈 때문에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직장이 대부분인데 하여튼 놀랍고도 신선했다.
“돈보다 사람 목숨이 중요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그 말이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
(*사진과 캡션: “절대 무장강도와 싸우면 안 됩니다. 돈 다 가져가라고 현금 있는 곳을 알려주세요. 돈 때문에 목숨 거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어요.”)
2주차 중반을 넘기면서 우리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근사한 상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첫 발령을 받아 현지에 도착하면 우리는 경치 좋은 호텔에 짐을 부리고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따끈하게 구운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먹고 모든 것이 깔끔하고 완벽하게 준비된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일할 거라고 상상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상상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호텔 바에 앉아 마티니 한 잔을 두고 세계 정치와 현안에 대해 토론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막 돌아온 선배들이 한 명, 두 명 자신들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상상 속 천국은 한 조각 두 조각 철저히 박살났다.
수단이나 차드에서는 직원의 사생활은 동네 똥개에게나 던져준 듯했다. 혼자 방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건물도 없어 컨테이너 박스에서 서너 명이 잠을 자야 했다. 낮 기온이 40도를 넘어 50도에 육박하고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았다. 찜통이 된 컨테이너를 나와 지붕에 눕지만 잠을 설치기 십상이라고 했다. 에어컨은 물론 없었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선풍기도 돌릴 수 없는 밤이 허다하단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한겨울에도 찬물로 샤워를 한다고 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땅콩버터로 때우기도 하고, 밤이 늦어도 하루 일과가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가 허다하며, 어찌어찌 끝나도 마티니는 고사하고 주스 한 캔 사 먹을 곳도 없는 외진 곳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절반을 넘었다. 그래도 밤마다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재미가 있다나.
전화모뎀도 사치였다. 업무용 이메일은 위성전화를 이용해 하루 한두 번 내려 받고 페이스북에는 몇 달간 코멘트 한 줄 날리지 않아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힌 것 아니냐는 친구들의 불평도 많았다. 이 따위 불평은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사이에서는 이야깃거리도 아니었다. 여기에 말라리아, 황열병, 뎅기열까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풍토병이 일상이고 모든 직원이 한 번씩 통과의례로 겪는 복통, 설사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내가 왜 고작 돈 백 몇십 만 원 받아가며 이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나 싶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첫 발령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이런 상황에 ‘나는’ 처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밑바닥에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깨끗한 물이 없어 일주일 동안 샤워도 못하고 한 달 동안 머리도 못 감는 상황에서도 계속 ‘나는 예외’라고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통계에 따르면 첫 발령을 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 발령을 받는 사람은 30퍼센트도 안 된다고 한다. 어려움을 이기며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꿋꿋이 해내고 다음 미션을 기다리는 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는 위대한 인류애인지, 그저 미련한 짓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직접 겪어보고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견딜 만할지도 모르니까.
2주차 어느 날 교육을 받는 중간에 올리비에가 불려 나갔다 들어왔다. 이 녀석의 얼굴이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고는 내 노트에 ‘에티오피아’라고 적었다. 첫 번째 발령자인 것이다. 쉬는 시간이 되자 모두 올리비에 곁에 모여 이것저것 물었다.
“에티오피아 어디로 가는 거야?”
“언제 가는 거야?”
“정치나 보안 상황은 어떻대?”
“에티오피아에서는 무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지?”
질문이 쏟아졌지만 올리비에도 당장 아는 것이 없는 듯했다.
“에티오피아팀이 자료를 보내준다고 했어. 교육 끝나고 당장 오라는데 집에 가서 짐은 챙겨 가지고 가야지 않겠어? 한 2주는 걸릴 것 같은데…….”
올리비에의 목소리에서 전에 없던 여유가 느껴졌다. 발령 받은 자의 여유인가? 모두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어 안달했다. 내일이라도 가라면 갈 사람들이었다. 친구들 사이에 묘한 부러움과 긴장감, 조바심이 흘렀다. 당장 왜 올리비에가 가장 먼저 발령을 받았는지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미국에서 온 크리스티가 인사담당자에게 발령 기준을 물었다. 모두 궁금해하던 차였다.
“특별한 기준은 없습니다. 매주 금요일 다섯 개 운영센터 인사 담당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서 국가마다 필요한 인력과 현재 대기 중인 직원들을 맞춰보죠. 프로젝트에서 요구하는 자격에 맞으면 일단 발령을 결정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국가마다 사정이 다르다보니 마지막 순간에 발령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출국 전 마지막 순간까지 비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프로젝트가 있는 정부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입국허가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거든요. 비자를 받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공항에서 다른 나라로 가라고 연락받는 경우도 있어요. 그만큼 각국 상황이 불안정하고 정부의 일처리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올리비에도 오늘은 에티오피아라고 했지만 내일도 에티오피아일지는 내일이 돼봐야 압니다.”
다음 날 두 번째로 아델이 발령을 받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델이 나보다 먼저 발령을 받아서는 절대 안 되었다. 전날 올리비에에게 첫 발령의 영광을 빼앗기고 패배감을 보이며 기죽어 있던 아델 덕분에 다른 동기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교육을 받았던가? 하지만 아델이 발령을 받고 다시 살아났다. 발령에 특별한 기준이 없다고 설명했음에도 그녀는 발령은 역시 성적순이라고 주장했다.
아델은 교육이 끝날 때까지 올리비에 이외에는 누구와도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특히 나하고는 한마디도 섞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교육이 끝나고 한 달이나 지나서야 파키스탄으로 발령받을 것을 미리 알았던 듯했다. 뭐면 어때. 난 파키스탄에 갈 생각에 들떠 컨테이너 박스에서 자거나 일주일 동안 샤워를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깡그리 잊어버렸다. 오직 머릿속에 남아 있던 것은 섹시한 하얀 조끼뿐. 기다려라, 하얀 조끼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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