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미국 여행을 시작하며
오! 드넓은 하늘이 있어 아름다워라
황금빛 곡식의 물결이 있어 아름다워라
과실이 가득한 들판 위에 펼쳐진
검붉은 산의 위엄이 있어 아름다워라
― 캐서린 리 베이츠,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
2005년 5월 전몰장병 추모일 전날이었다. 날이 저물 무렵, 유서 깊은 캔자스시티 유니언 스테이션 옆의 언덕진 곳에 2만 5,000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장병을 추모하고 현재 군인으로 복무 중이거나 과거에 복무했던 이들을 기리려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노점상들이 주말 쇼핑을 나온 사람들이 먹기에 충분할 만큼 커다란 봉지에 담아서 파는 팝콘의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사람들은 팝콘과 함께 콜라를 마시다가 무언가에 감동을 받은 듯 저마다 들고 있던 자그마한 성조기를 흔들어댔다. 멋지게 생긴 테너 가수가 캔자스시티 심포니의 연주에 맞춰 <아름다운 미국>을 열창하고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는 1893년 캐서린 리 베이츠가 콜로라도 주 로키 산맥에 있는 파이크스 피크에 올랐을 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지은 것이다. 그리고 멜로디는 17세기의 찬송가를 차용한 것인데, 새로운 가사를 얻음으로써 재탄생한 이 곡은 찬송가가 지닌 강력한 영향력까지 더해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테너 가수는 <아름다운 미국>에 이어 무뚝뚝한 사람도 펑펑 눈물을 쏟게 할 정도로 비상한 재주를 지닌 어빙 벌린이라는 젊은 유대계 이민자가 작곡한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를 불렀다. 그다음 노래는 푸치니가 작곡한, ‘아무도 잠들지 마라’라는 뜻의 <네순 도르마Nessun Dorma>(국내에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음-옮긴이)였다. 이 노래는 미합중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무척 좋아했다. 마치 미국인을 위한 노래인 듯 성조기를 흔들며 호응했다. 테너 가수는 마지막으로 ‘고인이 된 위대한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에 의해 유명해진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살고 있는 집The House I Live In>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미국이란 무엇인가?
이름, 지도, 아니면 눈앞에 보이는 성조기…….
잔잔하던 박수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퍼졌다.
캔자스시티는 실용성을 내세워 인종 분리를 과도하게 행하는 도시다. 같은 날 좀 더 이른 시각이었다. 에스파냐의 세비야를 모델로 1930년대에 지어진 아름다운 광장에 수십 명의 뮤지션이 모여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부터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캔자스시티는 흑인 음악과 찰리 파커를 위시한 흑인 뮤지션들에게 그 명성의 상당 부분을 빚지고 있음에도, 그날 광장에 모인 사람들 중에 피부가 검은 미국인은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흑인이 캔자스시티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그날 나와 마주친 흑인은 미주리 강을 찾아나선 길에 고속도로 밑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와 넬슨 애트킨스 미술관에서 관람 중이던 몇몇 사람이 전부였다. 유니언 스테이션에 모인 사람들은 오로지 백인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든 인종과 모든 종교, 그것이 내게는 미국’이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테너 가수의 노래가 끝나자 오케스트라가 각 군의 군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휘자는 퇴역 군인들에게 소속 군가가 연주될 때 일어나 달라고 요청했다. 퇴역 군인들은 지휘자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랐다. 프랑스, 태평양, 한국, 베트남 외의 이런저런 전쟁에서 총을 들었던 노쇠한 퇴역 군인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중 몇몇은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위태롭게 흔들거리면서도 뻣뻣하고 앙상한 주름투성이의 목을 돌려 연주 소리보다 더 크게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청중을 향해 인사했다. 가장 요란한 박수갈채를 받은 사람들은 해병대 출신이었다. 그들은 오케스트라가 <몬테주마의 영웅들>이라는 곡을 연주하자 감동에 겨운 나머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들 중 울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회자가 청중을 향해 ‘우리를 보호해준’ 군인들에게 감사하자고 말했다. 미국이 치른 모든 전쟁의 목적이 미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사회자의 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운명’(1945년 언론인 존 오설리번이 텍사스의 병합을 다룬 평론에서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19세기 중반에서 후반의 미국 팽창기에 유행한 이론으로, 미국은 북미 전역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개발할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이다-옮긴이)은, 그리고 미국의 야망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한 군인의 희생이 지닌 의미는 무엇이며, 링컨이 아메리카의 후예들을 위해 그토록 찾고자 했던 불멸하는 선의 증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날 저녁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멋대로 헝클어지고 짓뭉개져서 본래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그처럼 애국심을 조장하는 관제 집회의 분위기에서는 의기양양하기보다 경건한 가운데 지난 일을 애석하게 여겨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보호해준’이라는 표현은 형태가 없는 막연한 두려움, 또는 막연한 위협을 상정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러햄 링컨보다는 소설가 조지 오웰에게 빚진 표현이다.
그날 밤의 행사는 <1812년 서곡>의 연주와 함께 막을 내렸다. 나폴레옹의 실패한 러시아 침공을 기린 음악 <1812년 서곡>이 어떤 연유로 캔자스시티에서 거행된 전몰장병 추모 행사 프로그램에 포함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곡으로 인해 미주리 주의 남북전쟁 재연협회는 대포를 발사할 기회를 얻었고, 운집한 사람들은 잠시나마 전쟁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등 뒤의 높은 곳에서, 그리고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 새겨진 도리아 양식의 기둥 가까이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그 순간 사람들은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에 휩싸였다. 협회의 남자들은 대포알을 다시 장전하고 또 한 차례 발포했다. 자욱한 포연이 오케스트라를 향해 언덕 아래로 퍼져갔다. 이윽고 질산칼륨이 팝콘 냄새와 섞일 무렵, 사람들은 의자를 돌리고 화약이 연출해낸 장면을 넋을 잃은 채 구경했다.
사회자는 기쁨에 들떠서 그 광경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장관―사실 이렇게 칭할 만했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안전한 가정’ 운운하며 “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낸 뒤 각자 접이식 의자를 접어서 챙겨들었다. 그러고는 쓰레기를 모아 이날의 행사를 위해 고용된 흑인들이 들고 다니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캔자스시티의 시민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웅장한 구역사인 유니언 스테이션의 바로 뒤편에 콘크리트와 철근 덩어리를 마구 섞어서 지은 듯한 신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새로 문을 연 역사驛舍는 마치 철도는 이제 그 중요성을 상실했고, 그런 만큼 곧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 설계된 건물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올라탄 기차 역시 캔자스시티의 역사처럼,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철도 시스템처럼 머지않아 박물관에 들어가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터였다. 그러나 세 대의 힘찬 디젤 기관차가 이끄는, 남서부 방향으로 선로가 정해진 사우스웨스트 치프 호는 자그마한 역을 덜컹거리며 통과하고 교외의 외곽을 관통하면서 점차 속도를 높이더니, 어둠이 내린 평원을 향해 안정된 속도로 달렸다.
특별히 기차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기차가 마을과 도시를 드나들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방식, 이를테면 영화 <배드 데이 블랙 록>의 도입 부분에서 스펜서 트레이시를 그렇게 했듯이 기차가 우리를 사물의 본질 속으로 들여놓는 방식을 좋아한다. 나는 또 플랫폼에서 짐을 내려놓고는 다리를 쭉 뻗고 스트레칭을 할 수 있어서, 그리고 지구 위 특정 공간의 공기를 호흡할 수 있어서 기차를 좋아한다. 기차가 내는 소음과 그 흔들림도 좋아한다. 기차가 시골 풍경과 교감하는 것도 좋아한다. 기차가 달리는 선로, 적어도 선로를 얹은 길이 100여 년 전에 측량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잘 정비된 현대적인 도로에 비해 본래의 지형을 멋지게 살려서 놓여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기차가 지형에 따라서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면서 조절하는 방식도 좋아하고, 반복적으로 덜커덕거리는 바퀴 소리와 그 울림을 몸으로 느끼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기차가 주는 친숙함을 좋아한다. 다른 승객과의 친밀한 교류는 물론이고, 창밖의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의 뒤뜰, 현관, 빨랫줄, 채마밭, 바비큐 시설, 개를 비롯한 반려동물 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것도 좋아한다. 손수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든다. 공항에 가지 않아도 되는 데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주머니를 다 비워 보여줄 필요도, 구두까지 벗을 필요도 없어서 기차를 좋아한다. 나는 특히 어둠이 깔린 들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달리는 야간열차를 좋아한다. 기적을 울리며 구부러진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의 어둠을 뚫는 빛, 그것은 당신을 향해 내뿜는 빛이기도 하다.
나는 시카고에서 사우스웨스트 치프 호에 올랐다. 그리고 이 책에 기록된 여정을 모두 마칠 때쯤 시카고 역으로 돌아왔다. 나는 딱딱한 나무껍데기 속에 작은 홈을 파는 한 마리 좀벌레처럼, 기차 여행이 공화국이라는 미국을 헤집어보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풍경, 미국의 시골 마을, 미국의 역사가 창밖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객실에서는 서너 명의 미국인이 저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갔고, 그러는 동안 기차는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기까지 사흘 밤낮을 달렸다.
기차 안에서, 아니 미국의 어느 곳에서든 한번에 두세 가지의 대화 내용을 엿들을 수 있었다. 대화 내용을 종이에 받아 적는 나를 발견한 사람들은 아마 내가 엽서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대화 내용을 낱낱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인들의 목소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목소리에 비해 유별나게 크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그들이 목소리를 타인과의 교류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본질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리라. 마르틴 루터 킹은 “자유가 울려퍼지게 하라”고 호소했고, 미국인들은 그 말대로 행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언어 습관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치열한 정치적·종교적·경제적 경쟁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세 가지 경쟁에서는 기본적으로 설득의 기술이 요구된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은 가히 무한 경쟁 상태라고 칭할 만한데, 그것은 미국 사회 전반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주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조로운 이 세계는 말하자면 연극 무대거나 영화 세트장이고, 사람들은 어느 때든 갑자기 노래를 부르거나 연설을 하거나 아니면 열정적으로 키스를 하거나 에스파냐 사람 몇몇과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배우 같다. 미국을 여행하는 것은 언어 속을 여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옆 좌석에는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읽고 싶어서가 아닌 왠지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라서 읽는 것이라며, 이번이 세 번째 시도라고 말했다. 15분 정도 읽었을까? 그녀는 그 책을 덮고 《스타일》 잡지를 집어들었다. 복도 건너편 좌석에서는 60대로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부인이 가족용 성경을 감싼, 수가 놓인 덮개의 지퍼를 열고 있었다. 부인은 요한계시록 편을 펼쳤다. 그러고는 이내 성경 주해서도 펼쳐들었다. 부인은 우리를 태운 기차가 블루밍턴, 링컨, 스프링필드까지 483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부인이 세계무역센터의 경우처럼 순식간에 바빌론이 멸망한 증거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내 앞 좌석에 앉은 덩치 큰 여인은 어린 두 조카에게 사자굴에 갇힌 다니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말했다. 두 조카는 번갈아 이야기했다. 어느 순간 여인이 한 조카에게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른 조카가 끼어들어 말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과 함께 계셔요.”
옆 좌석에 앉은 젊은 여자는 먹은 음식 포장지를 바닥에 버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순전한 기독교》를 읽기 시작했다.
기차가 거대한 미주리 강의 둑을 따라 부드럽게 나아갈 무렵이었다. 한 젊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여행 중 거의 내내 잠만 자던 깡마른 데다 얼굴이 창백하고 수염도 깎지 않은 새파란 청년 옆에 앉았다. 남자는 청년이 이라크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막 귀환한 병사임을 단박에 알아챈 것 같았다.
“케이나인K-9 부대예요. 폭탄 냄새를 감지해내는 군견과 생활했지요.”
병사가 말했다.
“이라크 어디에 있었어요?”
남자가 물었다.
“모술입니다. 그곳의 한 마을에 있었어요.”
“거기서 술을 많이 마셨나요?”
“네.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어요.”
“적의 공격을 받았나요?”
“거의 매일 박격포 공격을 받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모터보트를 타고 미주리 강을 오르내리는 풍경이 보였다. 우리가 탄 기차는 덜커덩거리며 기다랗게 펼쳐진 야영장을 지나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교도소의 반짝이는 가시철조망과 투광조명등을 빠르게 지나쳤다. 기차에서 내리기 전 젊은 남자는 카페테리아로 가서 병사에게 줄 맥주 한 캔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하지만 병사는 마시고 싶지 않다고 했다.
“괜찮아요. 당신에게 한잔 사주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은 우리를 보호해주었잖아요.”
젊은 남자가 다시 말했다. 남자가 말한 것은 자유가 아니었다. 단지 개인의 안전을 보호해주었다는 뜻이었다. 문득 독설적인 비평으로 유명한 미국의 평론가 H. L. 멘켄이 특유의 조롱 섞인 말투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가 아닌 자기가 속
한 세계에서의 안전을 원한다”라고 내뱉은 말이 생각났다.
“나는 마시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병사가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 당신 곁에 둘게요. 어쨌든 당신은 우리를 보호해주었어요.”
남자가 맥주를 병사 옆에 놓으며 말했다.
전몰장병 추모일 아침, 우리는 콜로라도 강을 건너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나 있었다. 물안개 너머로 여러 대의 트레일러가 희미하게 보였다. 댐과 강가에 서너 대씩 무리를 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물을 마시러 물가에 나온 소 떼 같았다. 가난한 마을의 뒷마당도 보였다. 땅이 젖어 있었다. 판잣집, 이동식 주택, 폐차 직전의 자동차, 닭이나 성질 사나운 잡종견을 가두어 키우는 우리 등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성조기도 보였다. 그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되었다. 물론 그날은 전몰장병 추모일인 만큼 특별히 많았을 터였다.
2005년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나는 미국을 떠났다. 당시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다소 하락하는 추세였지만 여전히 40퍼센트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9·11 이후에 대통령이 얻은 정치적 합의는 균열된 상태였고, 주요 언론의 보도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누구라도 이 나라의 분위기가 심상찮게 요동치는 데다 약간의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기만 해도 대통령에게는 더할 수 없이 큰 타격이 될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해 10월 다시 미국에 돌아왔을 때, 멕시코 만 연안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미국 사회에 존재했던 곳곳의 균열이 정부와 대통령의 심각한 무능과 함께 훤히 드러나 있었다. 카트리나는 공화당의 정치철학에 구멍을 냈고, 그 반대파에게는 공격의 호기로 작용했다. 뉴스를 통해 연일 새로운 추문이 보도되었다. 이라크는 점점 더 진흙탕이 되어갔는데, 도널드 럼스펠드는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고 공언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30퍼센트대로 추락했다. 급기야 정치적 조류가 방향을 바꾸는 때가 온 것 같았다. 문화 전쟁의 양상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신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와 인도주의, 공화당을 지지하는 빨간 주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파란 주 사이의 간극은 넓을 대로 넓어져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었다.
미국에 다시 온 나는 될 수 있는 한 모든 암트랙(전미 여객 철도공사) 노선을 이용해서 여행할 작정이었다. 나는 미국인들에게 노새 등에 탄 만큼만 지면과 떨어져서 당신네 나라를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는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암트랙은 이미 철도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다른 교통편을 선택할 여유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그리고 멸종하기 전의 공룡이나 되는 듯 사라지기 전에 한번 타보려는 한량들만이 이용하는 폐기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암트랙 열차는 아직까지 해안선을 따라 거의 전 선로를 운행하고, 미국이란 광활한 대지를 동서남북으로 횡단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외진 곳에 위치한 몇몇 마을을 빼고 웬만한 도시는 다 연결되어 있다. 암트랙 선로의 총연장은 3만 5,400킬로미터에 달한다.
물론 열차를 이용하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하지만 비행기를 이용할 때보다는 훨씬 적다.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무언가를 놓치기는 마찬가지인데, 기차를 타면 운전으로 인해 놓치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도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사실 미합중국 안에서 자동차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제적인 것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미국의 철도는 실제로 운영되는 노선이 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기차가 채터누가(남북전쟁 때의 격전지 중 하나로, 테네시 주 동남부에 있는 공업 도시-옮긴이)에도 가지 않는다. 결국 나는 기차를 타고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본 뒤 자동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나는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만큼, 자동차로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와 시골의 이면도로를 달리는 것도 좋아한다. 그것은 신세계가 내게 선물한 즐거움 중의 하나다. 초기 정착민들이 마차를 타고 서부를 모험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에는 신화적인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
2006년 1월, 자동차를 몰고 콜로라도를 가로지를 때였다. 나는 미국인 과반수가 ‘괴물’ 때문에 놀란다는 연구 조사 결과를 읽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테니스 선수인 세리나 윌리엄스도 괴물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그녀는 어둠도 무서워한다는데, 대략 2,500만 명의 미국인이 13일의 금요일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여행자가 놓치기 쉬운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자동차를 이용해서 1만 2,875킬로미터를 여행했다. 그리고 기차를 이용해서는 최소한 그 두 배에 달하는 거리를 5개월에 걸쳐서 여행했다. 그런데 여행하는 동안 괴물을 무서워한다고 말하거나 무의식중에 그런 사실을 드러내는 사람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를 무서워한다는 사람은 수없이 만났다. 멕시코인, 유럽인, 자유주의자들, 중국, 환경주의자들, 다윈주의자들, 기후 변화, 늑대,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 에드워드 케네디를 두려워한다는 사람도 만났다.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서 두려움이나 혐오의 대상을 거리낌 없이 밝혔는데, 신보수주의자·레드넥(가난한 백인 노동자)·무기 로비스트·창조론자·딕 체니를 무서워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나 요한계시록의 마귀를 괴물에 포함시키지 않는 한, 괴물을 두려워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너무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어 평범한 이방인이 발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내게는 그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볼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미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독창성이 풍부하며 가장 힘이 센 나라, 끝없이 이어진 국경의 불빛에 둘러싸인 자유의 땅, 그리고 각종 괴물의 본거지다. 다소 혼란스러울지라도 때로는 아무런 의문이나 불평 없이 역설 속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어떤 경우의 조사 결과는 사실에 관계없이 덜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만일 프랑스인이나 브라질 사람들을 대상으로 괴물을 무서워하는지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신문에 실렸다면, 우리는 아마도 그 기사를 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에 관한 것들, 예컨대 그들의 기이함이나 잔인함 혹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들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끈다. 우리는 미국인의 비만 정도, 성적인 취향, 종교의 다양성, 원리주의자적인 성향, 알코올 및 약물 중독 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다. 미국인이 보톡스와 유방 성형을 위해 지출하는 돈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50개국의 국내 총생산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는 사실도 안다. 우리는 이런 자질구레한 사실들 외에도 대다수의 미국인이 진화론을 믿지 않는 대신 천국과 지옥, 각종 총기와 사형제도를 믿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또 미국에 대해 구식의 한물간 것에서부터 새롭고 기이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미국인의 절반은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는 성경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듯하고, 나머지 절반은 아니라고, 새로운 것이 있다고 혹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 같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무언가 특이한 것을 기대한다. 대다수의 미국인 역시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이 특이한 것으로 먹고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이하게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인간 영혼의 자기표현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일정한 각도에서 보면 미합중국은 기괴한 쇼를 보여주는 거대한 무대 같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날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세계 역사상 가장 용감한 인류의 모험을 보여주는 거대한 사회적 실험실로 비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국이 교외 또는 작은 마을의 고요한 세계로 느껴질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지상의 소박한 낙원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이런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미국이란 실험실에서 그 어느 나라와도 견줄 수 없는 천재적이면서도 세련된 부의 문명이 탄생했다. 전례 없는 다양성의 나라, 발명의 나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을 가진 나라가 탄생했다. 그 실험실에서는 폭력, 신성모독, 불의와 부정, 군국주의도 탄생했다. 미합중국은 인류의 자유와 기회의 호민관으로서 이타심이 강한 나라다. 하지만 이 위대한 이타주의 나라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데다 약자를 괴롭히는 불량배이자 위선자이고, 철저한 속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미합중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면을 총망라해서 보여주는 나라인 것이다. 이 나라는 그 근원과 발전에 대한 종교적 신념과 함께 종종 혼란을 야기하는 원시적이고 미개한 요소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미국은 영웅들의 땅이지만, 미국이 나아가는 길에는 악마도 출현한다. 미국에는 전설적인 선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악이 존재하고, 이 두 극단 사이에 의심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신성한 정복과 점령할 권리라는 명분을 내세운 ‘명백한 운명’을 신봉해온 나라가 미국이다. 일찍이 한 세기 전에 이 나라의 국무장관은 “우리는 모든 사태에 잘 대처할 수 있으며, 사실상 그 어떤 강대국에게도 상처받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전방위 지배력’이라는 강력한 힘을 확보하기로 작정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 예외주의’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힘과 정체성에 대한 이 같은 완고한 태도를 젖을 떼지 못한 유아기의 한 특징으로 보는 시각이 자못 흥미롭다. 이런 비유는 지배적인 강대국인 미국이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국가 안보에 초조하게 집착하는지, 나라 안팎에서 벌어진 자그마한 사건의 그림자만 보아도 어째서 그토록 벌벌 떠는지, 그리고 최근에는 그 막강한 힘을 왜 그토록 자주 합리성에 입각한 자기 확신의 방식만큼이나 배신과 무시, 두려움의 방식으로 투사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이에 대한 원인은 미국의 영속적인 내부의 혼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괴물’에 대한 기사를 보자마자 소설가 릭 무디가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크리스피크림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이 주는 위대한 정신적 혜택은 무無에 대한 깨달음이다. 크리스피크림은 자아에서 벗어나게 하고, 삶을 억압하는 것들에 부가된 목소리를 잠재운다.”
아마도 오직 미국인만이 크리스피크림 도넛과 같은 것을 두고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미국인들은 그처럼 놀랍고 전형적인 방식으로 미국식 기능주의의 세계 위에 그 철학적 기반을 세울 수 있다.
미국에 관한 내 감정은 걸쇠가 걸리지 않은 문처럼 흔들거린다. 그리고 격렬한 돌풍에 의해, 때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애정과 혐오가 똑같은 비중으로 내 마음을 들락날락한다. 미국에 대한 분노는 거의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이성적이지 않은 분노다.
한때 반미주의가 이성의 빛을 띠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순수한 급진주의 학생이었던 우리는 미국 남부의 사악한 백인 폭도들이 공화국의 토대를 이루는 정치적 맥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워싱턴과 제퍼슨 같은 소위 건국의 아버지란 위인들도 노예를 소유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또 인디언 전쟁, 멕시코 전쟁, 먼로 독트린 등에 숨겨진 진실에 대해 배웠고, 그 결과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면 베트남 전쟁에서 그랬듯 미국이란 제국주의가 그 본성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의 본성 속에 잔인함, 인종주의, 제국주의가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역설은 존재한다. 자유의 행진을 벌였던 사람들은 미국인들이었다. 마르틴 루터 킹도 미국인이었고, 시드니 펄먼도 미국인이었다. 마크 트웨인도, 마이크 포트노이도 미국인이었다. 루이 암스트롱, 밥 딜런, 윌리엄 애플맨 윌리엄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로버트 크럼도 모두 미국인이었다. 우리가 입는 청바지도 원래 미제다. 미국에 대한 가장 정확한 비평가도,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한 자유주의자도 미국인이었다. 내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미국은 나의 첫 이성적 영웅들의 미국이기도 하다. 이 같은 역설은 요즘에 와서 상당 부분 수정되었음에도 여전히 나를 흥분시킨다.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풍경, 오스트레일리아의 목소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야기와 똑같이 미국의 풍경, 미국의 목소리, 미국의 이야기와 함께 성장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유칼리나무 아래서 연극을 하며 놀곤 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영웅 네드 켈리 역을 하면서 놀지는 않았다. 우리는 앞다투어 데이비 크로켓과 대니얼 분 역을 맡으려고 했으며, 우리의 적은 바로 곰과 인디언이었다. 우리는 학교 가는 길에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인 <왈칭 마틸다> 대신 뮤지컬 <오클라호마!>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거나 엘비스 프레슬리, 해리 벨라폰테, 페기 리, 페리 코모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가 어린 시절에 알았던 영웅들의 얼굴은 오스트레일리아인이 아니었다. 게리 쿠퍼나 그레고리 펙 같은 미국인이었고, 미인 하면 마를린 먼로나 오드리 헵번을 떠올렸다. 좋은 나라 사람은 스펜서 트레이시나 시드니 포이티어였고, 나쁜 나라 사람은 영화 <빅 히트>에서 글로리아 그레이엄의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뿌린 리 마빈이었다. 내게 있어 신비의 여인은 단연 글로리아 그레이엄이었다. 대다수의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몸에 밴 영국 숭배주의에도 불구하고 반쯤은 미국인으로 키워졌으며, 근래에 들어서는 미국의 비중이 이전보다 더 커졌다. 그렇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인에게 반미 감정이란 일종의 자기혐오의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이라크 전쟁은 한층 더 역설적인 사건이다. 그 전쟁이 일어나기 전 나는 멜버른에 있었다. 그때 독재정권의 핍박을 온몸으로 받았던 한 소말리아 사람이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해주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고 내게 말했다. 그의 말에 반박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에게 미국이란 핍박받는 사람들이 기대를 거는 최후의, 그리고 최선의 보루이고, 이라크 전쟁은 부시 대통령이 말한 대로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이 개시되었고, 최첨단 군사 장비, 잔인하면서도 오만방자한, 그리고 정신 나간 듯한 정치적 수사, 다른 행성에서 온 생물체처럼 기이한 옷을 입은 미군 병사들의 사진과 함께 그 기대는 여지없이 꺾였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의 냉소적인 지원도 그 기대를 꺾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열차가 상그레 데 크리스토 산의 남쪽 정상 근처에서 1862년 뉴멕시코를 노리던 400명의 남부연합군이 궤멸당한 글로리에타 협곡의 서쪽에 있는 오래된 산타페 트레일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차장이 미합중국을 위해 헌신하고 있고, 과거에 헌신했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보호해준 데 대해 우리 모두는 그분들께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분들 덕분에 제 가족이, 또 여러분의 가족이 오늘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차장은 애너벨 로페즈와 트로이 토머스란 두 명의 군인이 열차에 탔다면서 우리 모두를 대신해 두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도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잠시 후 열차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께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기적을 울릴 것입니다.”
해발 2,438미터 고지에 위치한 래튼 협곡을 향해 오르던 열차는 거북처럼 느릿느릿하더니, 이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는 멈추어 섰다. 차장이 세 번째 기관이 정지했다면서 배터리를 충전하면 곧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 방송을 했다. 창밖을 보니 야트막한 산등성이에서, 마크 트웨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 숨 쉬는 결핍의 상징”인 코요테 한 마리가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10분 뒤 우리를 태운 사우스웨스트 치프 호는 다시 움직였고,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올 무렵에는 이 나라를 횡단하는 다른 모든 열차와 함께 전몰장병의 넋을 기리는 기적을 울렸다. 긴 여운을 달고 세 차례에 이어진 기적은 나와 미국인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애도와 추모의 울림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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