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우성이다
요즘 할머니는 갓 담은 싱싱한 열무김치 같다. 집에 오자마자 나를 붙잡고 노래 연습을 하자고 하신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
할머니는 양말을 벗어 돌돌 말아 화장실 앞으로 휙 던지고 내 앞으로 다가앉았다. 나는 할머니가 시장에서 떨이로 사온 닭튀김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아주 기똥찬 생각이 있어.”
온종일 많은 닭을 튀겨낸 기름에 마지막으로 튀겨진 닭에서는 느끼한 냄새가 났다. 그래도 할머니가 가져다준 이 닭튀김은 내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뭔데?”
“우리 둘이 춤을 추는 거야.”
“춤?”
“그래. 너도 옛날에 나 춤추는 거 봤지? 관광버스에서. 그 춤출 때 사람들이 다 뒤로 껌벅 넘어갔단 말이지. 우리 둘이서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거야.”
아이고, 할머니. 제발 좀 살려 주세요.
나는 들고 있던 닭날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가 닭기름 묻은 내 손을 꽉 잡아 주저앉혔다.
“앉아 봐.”
“공부해야 돼.”
“우린 꼭 텔레비전에 나와야 한단 말이다.”
이건 아니다. 할머니가 정말 <전국노래자랑>에 나가고 싶다면 예심 무대까지만. 그 무대만 서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그런데 지금 할머니는 꼭 본선에 나가야 한단다, 도대체 왜?
“할머니. 그건 진짜 힘들어. 내가 말했잖아.”
“그래도 열다섯 명이나 통과한다며?”
그건 맞다. 수백만 명에서 로또 일등에 당첨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오백 명 중에서 열다섯 명이라면 그보다는 확률이 훨씬 높다. 그래서, 해 봐?
“그럼 할머니만 춰.”
“너도 배워 봐. 아주 간단해.”
지독한 몸치인 나한테 간단한 춤은 없다.
“나 못해.”
할머니가 일어나더니 다리를 쩍 벌렸다. 그러고는 카메라 앞에 선 것처럼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만 봐도 웃음이 났다.
“이 춤의 뽀인트는 바로 표정이야. 일단 표정만으로 반은 먹고 들어간단 말이다.”
할머니 말이 맞다. 그러고 보니 관광버스에서 춤을 출 때 그 굳은 표정은 할머니의 의도된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할머니, 좀 사악한 면이 있다.
할머니는 팔을 뻗어 현란하게 움직이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표정과 춤과 노래는 불협화음처럼 다 제각각이었지만 묘하게 어울렸다. 할머니 혼자 나가면 딱 좋을 텐데.
할머니가 1절을 부르고 계속 춤을 추며 나에게 일어나서 옆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마지못해 일어나 할머니 옆에 섰다.
할머니가 손으로 할머니 얼굴을 가리켰다. 그런 표정을 지어 보라는 뜻인가 보다. 할머니처럼 무표정한 표정을 지어 보려고 했다. 내 얼굴을 내가 볼 수 없으니 다행히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이번에는 팔을 뻗어 마구 흔들었다. 나도 어쭙잖게 흔들었다. 할머니가 더 세게 흔들었다. 나도 더 세게 흔들었다. 내가 마치 신장개업 식당 앞에 놓인 바람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개사한 노래에 맞춰 할머니와 춤을 춰 봤다. 처음에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민망했는데 그것도 몇 번 해 보니 익숙해졌다. 역시 뻔뻔스러움은 연습으로도 훈련이 되는 모양이다.
할머니와 노래 연습을 마치고 내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요즘 밤마다 잠을 설친다. 자려고 누우면 떠오르는 얼굴.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그 누구 때문이다. 그래도 자려고 눈을 감았다.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렸다. 불을 켜고 휴대전화를 열었다.
지금 좀 와 줄래?
공호가 보낸 문자였다. 문자를 보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늘 바보처럼 웃고 다니는 녀석. 한 번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혹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 아닐까 의심되던 녀석. 그 문자는 어딘지 모르게 공호가 ‘나 지금 아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냐고 묻지도 않고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자정이 넘은 시간의 거리는 무서울 정도로 적막했다. 길에는 희미하게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힘껏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를 공호네 빌라 담벼락에 세워 두고 현관으로 들어가려다 2층을 올려다봤다. 2층에는 작은 창문 하나에만 불빛이 비췄다.
조미미의 방 같았다. 조미미는 저 안에서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타를 치나? 귀를 기울여 봤지만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 기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긴 지금 이 시간에 기타를 치고 있으면 안 되지.
조미미의 방은 이렇게 가까운데 마음의 거리가 멀다. 내게는 가 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곳. 내가 우주선 조종사가 되어 우주선을 타고 행성에 가지 않는 한, 나는 그곳에 다다를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와 마음과의 거리라는데, 나에게는 저 불 켜진 2층 방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공호는 나를 보자 십 년 전에 헤어진 형제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진짜 와 줬구나, 친구. 반갑다, 친구야.”
공호는 예상과는 달리 활짝 웃고 있었다. 뭐야? 아무렇지도 않잖아. 공호 얼굴을 보자 배신감이 밀려왔다. 지금쯤 죽을상을 하고 ‘형민아, 세상이 왜 이러냐?’ 하고 좌절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짜증 섞인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 오밤중에 불러 내냐?”
공호가 홍조 띤 얼굴로 웃으며 휴대전화를 열었다. 휴대전화 액정 화면 속에 작고 귀여운 아기가 방긋 웃고 있었다.
“이거 봐. 예쁘지? 천사 같지?”
파란 눈망울의 아기는 예뻤다. 밀가루처럼 새하얀 얼굴에,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눈을 갖고 있는 아기는 정말 인형처럼 예뻤다. 삐죽삐죽 솟아 오른 갈색 머리카락마저 귀여웠다.
“누군데?”
공호는 아기를 쓰다듬듯 휴대전화 액정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동생이야. 엄마가 낳았대. 예쁘지?”
“예쁘네. 근데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이게 누구라고?”
“내 동생이라고. 이름은 캐씨래. 따라해 봐. 캐시가 아니라 혀끝을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넣고서 캐씨.”
공호는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진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그 눈이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은 울고 있는 듯했다.
멀고 먼 캐나다에 두고 온 엄마, 그 엄마가 낳은 파란 눈동자의 동생, 그 동생을 보는 심정은 어떨까? 적어도 나 같으면 공호처럼 이렇게 헤벌쭉 웃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공호에게서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공호가 나를 빤히 봤다.
“좋냐?”
“뭐가?”
“에이, 말을 말자. 아빠는?”
집 안을 둘러봤다. 집 안은 며칠 전 청소해 준 상태 그대로였다. 싱크대도 깨끗했다.
“몰라. 벌써 일주일째 부재중. 빚쟁이들 피해 모처에서 은신 중이셔.”
그러고 보니 공호 집에 드나들면서 한 번도 공호 아빠를 본 적이 없었다. 요즘은 소주병도 더 늘지 않았다.
공호가 내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빼앗아 또다시 아기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나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 봐.”
“한심한 놈.”
“야, 캐씨 크면 예쁘겠지? 혼혈이라서 정말 예쁠 거야. 우리 생물 시간에 배웠잖아. 피가 섞이면 우성이 나온다고. 맞나?”
녀석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 진심을 모르겠다.
“인간은 다 우성이다, 몰랐냐?”
공호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모든 인간은 우성이다. 열성은 아예 태어나지도 못한다. 수천만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인간은 죽음과 탄생을 계속 이어왔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인구는 수백억 아니면 수천억 명은 될 거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인간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지금도 내 몸속에는 밖으로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수백억 개의 정자가 있다. 그렇게 많은 정자 속에서 인간이 되어 태어나는 것도 대단한데, 태어나서 한 시대를 살다 자손을 남긴 사람들은 더 대단하다. 내 조상은 수천만 년 전에 도끼를 들고 매머드를 때려잡던 용맹한 원시인이다. 그 후의 조상들은 전쟁도 이겨 냈고, 전염병도 이겨 냈고, 굶주림도 이겨 냈다. 내 조상들은 강했다. 그런 조상의 피를 물려받은 나도 강하다. 앞으로 나에게서 태어나게 될 내 후손들도 강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 강하다.
공호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답답한데 우리 운동장이나 뛸까?”
한밤중의 운동장은 거대한 어둠 덩어리 같았다. 공호는 달렸다. 나도 그 옆에서 달렸다.
한 바퀴.
숨이 차다.
두 바퀴.
숨이 끊어질 것 같다.
세 바퀴.
공호는 여전히 달렸다. 나는 뒤쳐졌다. 어둠이 강한 속도로 공호를 빨아들이듯 공호는 저만큼 멀어졌다. 네 바퀴를 달리지 못하고 땅바닥에 벌렁 누워 버렸다.
땅바닥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은 징그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빠르게 뛰던 심장 박동이 천천히 느려지면서 온몸이 나른해졌다. 초등학교 때 나는 달리기를 잘했다. 체육대회 때는 기를 쓰고 달려서 늘 일등을 했다.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달리고 난 후 이 느낌이 좋아서, 달릴 때 숨이 차서 목이 타는 것 같던 이 느낌이 잦아들고 쿵쾅쿵쾅 큰북 소리처럼 내 몸 전체를 진동시키던 심장 소리가 잦아들면서 밀려오는 그 짧은 순간의 환각 상태가 좋아서.
공호는 나보다 세 바퀴를 더 뛰었다. 내 옆에 와서도 그대로 벌렁 땅바닥에 눕지 않고 허벅지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인 채 한동안 밭은 숨을 뱉어냈다.
공호가 내 옆에 누웠다. 우리는 운동장에 나란히 누웠다. 운동장 바닥에서 서늘한 냉기가 올라왔다.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차갑고 커다란 달을 동시에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달이 무심하게 떠 있었다.
“나, 헉헉, 가끔씩, 헉헉, 숨이 막히면, 헉헉, 밤마다, 헉헉, 뛴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차라리 딸딸이나 치지 그래.”
공호가 피식 웃는 게 느껴졌다.
운동장 저 끝, 한밤중에 미끄럼틀과 철봉이 있는 곳을 달리는 한 소년이 보였다. 공호는 언제부터 밤에 운동장을 뛰었을까?
“나 말이야. 열여덟 살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가끔씩 무섭다. 열여덟에서 시간이 멈춰 버린 건 아닐까? 일 년 전에도 십 년 전에도 난 열여덟 살이었던 것 같아.”
공호답지 않게 심각한 말투였다. 이제야 가면을 벗고 진짜 공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단다. 버텨 봐라.”
“그건 다 지났을 때 일이지.”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위인들이 말씀하셨다.”
“그건 인생을 다 살아 본 위인들이나 하는 소리지.”
다섯 살 지나면 여섯 살, 열 살 지나면 열한 살, 열일곱 살 지나면 열여덟 살, 이제 열여덟 살 지나면 열아홉 살이 온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할머니 말씀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지 않는 게 문제지만.
공호가 달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네 인생의 결정적 장면은 언제냐?”
내 인생을 거쳐 왔던 몇 개의 결정적 장면들. 엄마가 나를 할머니 집에 두고 가 버린 다섯 살 때의 한 장면. 엄마를 찾으러 간다고 무작정 집을 나가 떠돌아다니다 어느 고아원에 맡겨졌던 일곱 살 때의 한 장면. 사는 게 너무 싫어서 학교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의 한 장면. 자고 일어났을 때, 커져 버린 내 거시기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던 누런 액체를 보며 기절할 것처럼 놀랐던 중학교 1학년 때의 한 장면.
달 속에 파노라마처럼 내 결정적 장면들이 하나씩 펼쳐졌다. 하지만 그건 오래전 장면들이다. 이미 흑백 사진처럼 빛이 바래서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건 최근의 기억들. 그중에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단 하나의 결정적 장면은 바로 노래방에서 조미미가 노래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던 그 순간이다.
커다란 달 속에 조미미를 들여다보고 있는 내 뒷모습이 보였다.
“난 말야. 초등학교 3학년 때 캐나다 가던 날이 내 결정적 한 장면이다. 그날 캐나다만 가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
그랬을 수도 있겠지. 만약 그때 공호가 캐나다로 가지 않았다면 공호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공호 아빠 사업이 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눈이 커다란 여동생이 생기지도 않았을 거다.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지나간 결정적 장면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그건 그래.”
“그만 들어가자. 내일 학교 가야지.”
지구가 멸망해도 우리는 학교에 가야 한다. 그건 거부할 수 없는 명제다.
“내가 왜 미친놈처럼 실실 웃고 다니는지 아냐?”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운동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공호가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말했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웃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 그런 세상에 공호는 살고 있었다. 밤마다 운동장을 숨이 끊어질 정도로 뛰면서도, 낮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고 다닐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 그게 공호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공호가 입에 손을 갖다 대고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씨팔 좆같은 세상.”
내가 들어본 욕 중에서 가장 시원한 욕이었다. 공호가 하는 욕을 들으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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