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쓸데없는 걱정 / 3월 10일
추위가 다시 온 것 같다. 점심 무렵 꽤 큰 지진도 있었고, 아무래도 쉽게 봄이 와줄 것 같지 않다. 요즘 연일 부지런히 『모노디아로고스 Ⅳ』를 인쇄, 제본했다. 때마침 많은 격려도 받았고. 그러나 도수공권徒手空拳(맨손)이라는 느낌은 씻을 수 없다. 그래도 그럴 때 생각나는 것이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의 이 말이다.
여기에 남기는 것은, 나의 혼인 책
가감 없는 나의 인간성 그리고 세계다.
만일 네가 무언가에 강하게 마음이 움직였다면, 독자여,
네 안에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바로 나다.
요시코美子가 며칠 전부터 앉을 때나 걸을 때, 왠지 몸이 왼쪽으로 기운다. 수술한 척추가 나빠졌나 하며 등을 쓰다듬어보지만 아픈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이쪽에서 변화의 조짐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의자에 앉을 때는 등에 쿠션을 대주면서 상태를 보고 있지만 이 이상 나빠질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가 계시는 그룹홈group home*에 치매가 심한 할머니가 한 분 계신데, 그 할머니는 항상 몸을 앞으로 숙이고 비스듬히 기울어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요시코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 것인가.
* 수발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이 소인원으로 일반주택 규모의 시설에서 전문 스태프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는 지역밀착형 노인시설
그리고 언젠가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없게 되어 우리 부부가 지내는 방을 일층으로 옮겨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 배변과 입욕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앞일을 미리 고민해도 어쩔 수 없다. 그때 가와구치에 있는 딸에게 메일이 왔다. 작은아들이 열이 났는데 인플루엔자는 아니었지만, 다음 주 유치원 졸업식을 앞두고 있는 큰아들에게 옮기면 어쩌지, 라고 쓰여 있다. 그에 대한 답장으로, 매사 될 대로 되니 걱정 말라고 썼다. 그렇다, 매사는 되는 대로 될 수밖에 없다. 나도 각오를 다지자.
그러나 그렇기 위해서는 이쪽이 건강해야 한다. 최근에는 침대나 의자에서 일으켜 세울 때 힘이 많이 든다. 그럴 때 허리를 다칠 염려가 있다. 그래서 평소부터 몸을 단련해둘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을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인지 오후에 산책 대신(가랑비도 뿌렸기 때문에) 들른 ‘천원숍’에서 고무로 만든 밴드운동 기구를 사왔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사용 예’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
“다리 부분 쉐이프업=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튜브를 땅에 밟지 말고 걸고, 반대쪽을 양손으로 잡는다. 손의 위치를 그대로 하고 천천히 다리를 뻗었다가 원 상태로 되돌린다.” 이것은 쉐이프업 하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허리에도 조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첫 마디 / 3월 17일
일주일 정도 마치 손발이 잘려나간 듯한, 아니 혀가 뽑힌 듯한 고통을 겪었다. 지진과 그 증오스러운 원전사고 탓이긴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느낌은 재해 때문이라기보다 재해로 인해 야기된(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사고 탓이다. 즉,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인터넷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것은 NTT[일본통신]의 어딘가의 중계소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실은 단순한 접속불량이었던 것을 알았다.
그 단순한 실수를 알아차린 것은, 오늘 이 지역 출신으로 지금은 도쿄에 사는 친구 오스기大杉와, 내 홈페이지 운영을 도와주고 있는 요시히코喜彦 씨와 전화할 때였다. 집전화가 연결되어 있는데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해주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점검. 그러자 허브와 같은 콘센트에 연결되어 있는 라디오가 켜지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사실은 허브의 전원이 꺼져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일주일을 낭비했다. 정말이지 초라한 전말이다.
아무튼 지진, 쓰나미 피해뿐 아니라 원전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미나미소마 시의 절반은 옥내대피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가옥이 파손되는 것을 면하고 전기도 수도도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지만, 이 지역 3만 명 정도의 주민 중 80퍼센트는 현 내의 30킬로미터권 밖의 지역이나 니가타新潟 등 다른 현의 대피소로 자발적으로 피난을 가서(이 피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 집 주변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인지대로 변했다. 이 상황에 대해, 즉 내가 피난보다 옥내대피를 선택해서 스스로 은피隱避하는 이유·····, 아니 그보다는 버림받은 마을에서 일주일 동안 쌓이고 쌓인 분노와 항의, 또는 탄식의 소리 등에 대해 이제부터 서서히 토해낼 생각이다. 각오하시라.
이렇게 화가 날 수가! / 3월 18일
방금(18일 밤 9시 반) NHK 방송을 보니 옥내대피지역으로 운송업자들이 안 들어가려고 하는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유명한 선생님(이름은 모른다. 상당히 멋진 젊은 남자. 나중에 조사해보니 세키무라 나오토關村直人 도쿄대 교수)이 “단시간 작업과 차 안이나 옥내에 있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유의 발언은 이미 질릴 만큼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후쿠시마福島 시에서 무시무시한 흰 방호복으로 몸을 감싼 몇 명의 담당자 앞에, 불안해하며 방사능 수치를 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영상을 내보낸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강에 ‘당장’(결과적으로는 더욱 불안을 증폭시키는 이상한 부사) 위험은 없다고 하는 마이크로 뭐라든가 하는 수치로 보면 미나미소마 시는 후쿠시마 시의 5분의 1 수치밖에 되지 않는다.
즉, 미국은 이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전면적으로 응원하겠다는 오마하(인가? 아, 오바마인가?) 대통령이, 자국민에게는 80킬로미터권 밖으로 피난하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발신하는 것과 같다. 미국인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발언만큼 화나는 것은 없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하라마치原町 구나 가지마鹿島 구에 물자를 전달하러 들어와도 전혀 건강에 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분명하게 발신해주지 않으면 주민의 불안이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의 불안은 더욱 증폭될 뿐이다.
자위대? 역시 군대는 아니었다! / 같은 날
어제 하늘에서 헬리콥터로 살수작업을 하던 자위대원 봤어? 높~은 곳에서 쫄쫄쫄 소변보는 듯한 살수를 네 번 하고는 잽싸게 철수한 꼴불견 자위대원. 납으로 된 바닥을 깔고 완전방호복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갔음에도, 자위대 내규에 정해진 수치에 도달했기 때문에 작업 중지라고! 이봐, 이봐, 그게 군인이야? 초강력 적군을 앞에 두고 나아가면 죽는다 싶으니까, 게다가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며 돌아가는 거야? 이거 명백한 적을 앞에 둔 도망 아냐? 나는 군대 따위는 무용지물이라 자위대 따위는 재해구조대로 재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나도 이 얼빠진 샐러리맨 근성 이하의 ‘군인’들이 보여준 꼬락서니가 너무 한심해 눈물이 났다.
위험한 곳에서 150명의 도쿄전력 사원과 협력사원(이었나요?)이 목숨 걸고 작업하고 있는데 군인들의 올려다보는(즉, 내려다보는) 태도라니! 협력사원?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 요컨대 하청받은 사람들이지? 상급사원은 사장 이하 모두 안전한 도쿄에서 원격조정이나 할 테지. 전부터 말하지만, 만일 이 소동이 진정되고 원전 가동 재개를 획책한다면, 사장 이하 모든 상급사원의 가족은 원전 주변에 사는 것을 의무조항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안전을 주장하다면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건 그렇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우리 집 주위는 그야말로 죽음의 정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시민의 8할 이상이 현 내의 30킬로미터 밖이나 이웃 현인 니가타 등으로 피난했기 때문이다. 그 피난은 아마 내일도 이어지겠지. 그 불똥은 시내 병원이나 요양시설 전반에 미치고 있다. 우리 어머니가 계시던 시설에서도 스태프 대부분이 피난 가서, 겨우 세 명만 남았다. 그 때문에 입소자들을 모시고 가줄 수 없느냐는 연락이 왔다. 물론 그런 곳에 어머니를 맡겨둘 리도 없다. 오늘 오전 중에 자동차로 어머니를 모시러 가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으로 일단 안심. 그러나 아무도 냉정히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데,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명백한 직장 포기다. 노인들을 남겨두고 자신의 안전만 도모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 모자를 부러운 듯이 보고 있었다. 내일쯤 고작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노인시설로 옮긴다고 한다. 무심결에 한 분씩 손을 꼭 잡고,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안심하시라고 이별을 고하고 왔다. 아마 모시고 가야 할 가족이 이번 쓰나미나 재해로 모시고 갈 수 없게 된 것이리라. 그렇지만 이거 너무 부끄러운 일 아닌가?
아직 방사선으로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내돌려지다 사망하는 환자나 노인들이 벌써 40~50명이나 발생했다. 장모님이 다니던 시설의 부속병원에서는 간병인도 없이 이리저리 내돌려진 환자가 몇십 명이나 죽었다. 이거 그 누구도 아무 말도 안 하지만 명백한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범죄 아닌가?
더 쓰다가는 분해서 죽을 것 같아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일본인은 서로 돕는 정신으로 여러 외국으로부터 존경받는다고? 실정은 이와 같다.
잠정적 혹은 한정적 믿음·불신에 대해 / 3월 19일
이번 지진에 관해 다양한 보도나 제언이 난무하고 있다. 그 전반에 대해 코멘트할 마음은 없다. 지금은 단지 한 가지 점만 말해두고자 한다.
원전사고에 대해 다양한 경과보고가 있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치 등이 공표되고 있다. 확실히 어떤 경우는 현상보고 속도가 늦다, 아니 너무 늦다. 그러나 피해 현지에 있는 사람으로서 공표되는 것을 우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보다 믿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한다.
나 자신은 평소부터 정치나 국가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사람이다. 원전에 대해서는 당초부터 절대 반대를 주장했다. 도쿄전력은 물론 원전이 설치된 시읍면 장들의 자세를 엄격히 비판해왔다. 그러나 대피소에 있는 어떤 시장은 이제 와서 도쿄전력에 대해 화가 난다는 등의 우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원전설치나 그 유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니 과오를 반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위의 비판을 견디며 설치 반대의 자세를 굽히지 않은 소수파 시민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먼저 사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나미소마 시의 현상에 관해서는 정부나 국가의 공적 기관에 대한 불신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평소에는 정치가들에게 어떤 비판도 하지 않고, 나쁘게 말하면 맹종해온 압도적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이 위기 상황에서 불신감을 드러내고, 그리고 그 불신감을 바탕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옥내대피지역의 대다수 사람이 그 지시를 의심하고, 현재의 통신기기에서 얻는 그럴듯한 ‘진실’을 믿었던 것이다. 방사선 측정치는 거짓 수치이고, 실은 더 위험도가 높은 수치를 숨기고 있다, 때문에 멀리 도망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옛날부터 ‘비국민’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의견을 줄곧 표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 일에서는(잠정적이면서 한정적인) 공적 의견이나 발표된 수치 등을 ‘믿는다’. 옥내대피 지시에 따름으로써 만일 목숨을 잃는다면, 세상 끝까지 몇만 번이라도 ‘귀신’이 되어 나타나 정치가들을 저주해 죽일 셈이다(아아, 무서워라)!
어제 일기에도 직장 포기라는 다소 과격한 말을 썼는데, 긴급한 경우에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셨으리라 생각한다. 물론이다. 사랑하는 부인이나 손주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내 몸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예를 들면 급류에 휘말렸을 때, 순간적으로 내 몸을 지키는 선택을 본능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미나미소마 시의 경우 그러한 위험도가 높은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병원이나 시설의 스태프 중에는 쓰나미 피해로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스태프가 남겨진 가족과 함께 대피하는 것은 당연한 행위다. 내가 말한 것은 우리 집처럼 가옥 파손을 면하고 전기나 수도도 확보된 상황에서, 이미 말한 것 같은 ‘불신’이나 혹은 ‘풍문’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며 환자나 노인들을 버린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물론 사태가 진정되었을 때(아아,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누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등을 들춰낼 생각도 비난할 생각도 털끝만큼 없다. 누구나 아까 말한 것 같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닥뜨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을 ‘믿을’ 생각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사태가 조금 호전되어 외부에서 선의의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오기 전에, 그들이 1분이라도 먼저 직장에 복귀해서 시설 재건에 전력을 다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시시각각의 기록 / 3월 19일 오후 1시
조금 전, 초등학교 6학년 이후 줄곧 친구로 지내오는 니시우치가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하고는 곧바로 대량의 식료품을 가져다주었다. 그도 임신 중인 며느리를 데리고 피난 간 다른 가족들과 헤어져 지내며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다. 그의 집 주위에는 노인들이 많고, 그 사람들을 돌봐야 하니 구역장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다. 친구의 이런 행동에 경의를 표한다. 그는 내가 가르치는 스페인어 교실 외에 평소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식료품 중에는 손녀를 위한 아이스크림도 대여섯 개 섞여 있다.
바람은 강하지만(다행히 북서풍), 밖에는 밝은 봄 햇살이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근처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지진을 당한, 그리고 그것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마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평온함이다.
고맙게도 며느리인 에이미穎美가 따뜻하고 맛있는 점심밥을 만들어왔다. 그것을 다 먹었을 무렵, 문득 대피소의 집단생활을 상상해본다. 이층은 우리 부부뿐이지만 지금 아래층 거실에서는 할머니가 귀여운 증손녀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것이다. 만일 대피소로 대피했더라면······,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늦장을 부린다’는 것 / 3월 19일 오후 4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늦장을 부렸다. 어렸을 적 일을 말하자면, 구만주에서 일본의 패전 소문이 러허성熱河省의 롼핑灤平 부근까지 전해졌을 때, 온 마을의 일본인이 술렁거리며 역으로 달려가 때맞추어 온 화물열차로 대거 피난길에 올랐을 때, 어머니는(1년 수개월 전에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다) 당시 차오양朝陽에 있던 동생 가족과 합류하려고 다음 날 아침 출발하는 관청의 트럭으로 뒤늦게 피난 갈 마음을 먹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다행이었다. 앞서 출발한 일본인들은 도중에 비참한 일을 당했다고 하니까. 그래서 이번에, 만일 어머니가 이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했다면 나와 같은 결단을 내렸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어머니가 꿈에도 그리던 내 집에서의 생활로 돌아와 행복하게 증손녀 아이와 놀고 있다.
다음 늦장.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아마 학년말 시험 직전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 언제나처럼 가방을 메고 굽이 높은 게다를 신고 학교에 가니, 모두 필사적으로 화재 진화 후의 교사校舍를 치우고 있었다. 모교의 화재 소식에 이웃 마을에서 다니는 동급생까지 달려온 것이다. 참으로 민망한 경험이었다.
대학 시절 60년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때, 어느 날 저녁 요요기代々木 하쓰다이初台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밥 해주는 아주머니를 비롯해 학생들이 한 명도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게시판을 보니 “오늘 저녁은 안보 반대 데모에 참가하니 각자 저녁을 차려 먹으세요”라는 메모가 있었다. 나 혼자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곱씹으며 혼자 쓸쓸한 저녁을 먹었다.
이런 종류의 늦장은 셀 수 없이 많다. 어떤 것은 민망한 늦장이지만 어떤 것은 ‘늦장’을 부림으로써 사태를 명확하게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다행인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늦장’은 어느 쪽일까. 이번이야말로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긴급발신 몇 개인가 / 어리석기 짝이 없는 환자 이송(3월 19일 오후 11시 반)
지금 NHK 텔레비전은 미나미소마 시의 병원이나 노인보호시설이 현 밖, 그리고 피난구역권 외(즉, 원전 30킬로미터 밖)로 환자나 고령자를 이송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옥내대피 지시구역이 지정되었음에도, 현이나 지방행정기관이 잇달아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최선의 선택은 권내에 머무르며 국가와 현에 의사나 스태프, 약품과 식료품을 시급히 보급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익숙한 시설, 늘 사용하던 기구들을 사용하며 종래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 요구해야 하는데, 현이나 시읍면은 국가 시책에 대한 지나친 불신으로, 잇달아 ‘자발적 피난’을 선택하고 있다. 즉, 국가는 그러한 현 지사나 시읍면장에게 시급히 인적·물적 원조를 시행할 테니 해당지역 병원이나 노인보호시설은 피난하지 말고 그대로 머무르도록 강하게 설득해야 한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분명히 말하겠다. 지금 각지의 대피소에 있는 피난민 중, 아마 10퍼센트는, 예를 들면 미나미소마 시에서 피난 간 사람들처럼 가옥도 파괴되지 않고 전기나 수도도 나오는 자기 집을 버리고 가혹한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필요한 피난생활을 선택한 사람들인 것이다. 거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비난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이 불필요한 생활을 선택했다. 고령에다가 몸도 불편한데, 그리고 가옥이 파괴되지도 않았고, 전기, 수도가 나오는데 자기 집을 떠나, 예를 들면 30킬로미터권을 조금 벗어난 마을 체육관에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3중 서클(!)의 마술에 걸린 것이다. 그 사람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장소는 이곳 미나미소마 시보다 방사선 측정치가 여섯 배나 높은 곳인데도. 웃으려야 웃을 수 없는 비슷한 사례는 내 주변에서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혹시 식료품이나 생활필수품이 바닥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현실은 공포심을 부추긴다. 그러나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줄 것을 믿고 힘껏 입을 벌리고 우는 어린 새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한 마리보다 두 마리, 많으면 많을수록 우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그런데 둥지에서 잇달아 도망가는 어린 새들.
아니, 좀더 분명히 말하자. 나는 이번 사고가 최악의 국면을 맞이하면, 혹은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방사선 피해는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 전체에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즉, 그런 사실에 대한 각오를 하고 거기서 역산을 하면 된다. 그러면 마음이 훨씬 안정된다. 바꿔 말하면 침착해진다. 나라면 위험도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주 좁은 범위를 우왕좌왕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다.
태평양전쟁의 그 엄청난 전화戰禍를 겪은 일본인인데, 어떻게 이렇게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 부화뇌동하는 백성으로 전락해버린 것인가. 참으로 한심하다!
반농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 가족이 현이나 시의 행정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을 경우, 이 블로그를 읽어주시는 분들이 자위대 등의 헬리콥터를 파견하도록 움직여주기를 바란다. 미나미소마 시의 사사키 일가가 구조를 요청하고 있으니 즉시 구조헬기를 띠워달라고.
그때, 즉 구조 자위대원이 왔을 때, 98세의 노모는 물론이고, 아직 체력이 남아 있는 나도, 마치 빈사상태의 환자처럼 축 늘어진 모습(이것은 연기다)으로, 씩씩한 자위대원의 등에 업혀 전용헬기(그러고 보니 한 번도 탄 적이 없다, 이것은 좋은 기회!)로 구조를 받을 생각이다. 지금까지 납부한 세금의 환급금이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으스대며.
아니, 아니, 농담이 아니고, 그런 일이 생기면 여러분, 잘 부탁합니다!
3월 20일 오후 10시 30분
어디서 보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늘 업자 한 명이 트럭을 타고 와서, 마을의 중심에 있는 광장에 몇 톤(?)인가의 채소를 두고 갔다고 한다. 그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알았을 때는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 몫은 없으리라고 포기하고 있던 차에 친구 니시우치가 상자 한 가득 신선한 채소를 가져다주었다. 있네요! 이런 사심 없는 사람이.
많은 분들이 격려 메일이나 전화를 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아사히신문 후쿠시마 총국에서 연락이 와서 내 주장을 말했다. 아마 지방소식 면이겠지만, 내일쯤 노모와 손녀의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릴 것이다. 또 저녁 무렵에는 도쿄외대 대학원에서 가르친 후루야 유이치로古屋雄一郞 씨의 노력으로 도쿄신문의 사토佐藤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쪽도 아마 내일쯤 마찬가지로 사진이 들어간 기사로 날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양쪽 신문 모두 배달이 안 되지만, 여러분 혹시 보시게 되면 읽어주십시오.
오늘밤에도 계속 쓸 생각이었는데, 너무 피곤합니다.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하루 빨리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오기를!
3월 21일 오후 2시 10분
지금 날짜를 보고 지진이 일어난 지 열흘 되었다는 사실에 솔직히 놀라고 있다. 오늘 아침 『아사히신문』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메일을 보내주었다. 그분들에게 이런 답장을 드린다.
“많은 성원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신문으로는 가련한 작은 새의 모습밖에 전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블로그에 있는 것처럼 큰 용기(허세?)와 굉장한 양의 분노를 식량 삼아 분발하고 있습니다. 부디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이 제 블로그를 읽어주시도록 힘써주십시오. 그러면 작은 새의 목소리가 조금 더 힘 있게 울려 퍼지겠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또.”
위의 내용에 지금 덧붙인다면 이런 말이다. “식료품 등을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까지는 아직 조달되지 않는 것 같지만, 서서히 물건들이 배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집은 아직 며칠분의 여유가 있습니다만, 여차하면 친척이나 근처의 빈 집에 침입(?)해 쌀독에서 조달할 생각입니다. 그분들이 돌아오셨을 때, 정중히 사죄하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돌려드리면 될 테니까요.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이 농성생활은 아직 견딜 만합니다. 어떻든 그렇게 해도 안 되겠거든 SOS를 칠 테니 즉시 근처 하라마치原町 제2초등학교 교정에 식료품을 투하하도록 여러분이 해당되는 곳에 연락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또.”
사고 발생일로부터 일주일 정도는 거실의 전기나 텔레비전을 켜둔 채 나 자신은 거의 옷을 입은 채로 잤는데 어젯밤은 오랜만에 목욕을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이전에는 매일 하던 목욕도 아내를 돌보면서부터는 힘들어져서 최근 1년 정도는(아니, 솔직히 말하면 2년) 격주로 했다. 다행히도 지성피부가 아니어서(?) 위생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입욕부터 계산하면 2주간 목욕을 하지 않은 셈이 된다. 대피소 사람들이 목욕하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어젯밤 겨우 목욕할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지만 지진 전부터 통증은 없는 것 같은데 매우 심하게 보행이 불안해진 아내를 목욕시킬 자신이 없어, 오늘밤에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줄 생각이다. 볼썽사나운 이야기가 되었다.
여기부터는 조금 진지한 이야기. 지진 후부터 계속 텔레비전을 보아왔는데, 지금은 거의 안 본다. 가끔 환경오염을 나타내는 데이터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다. 어쨌든 지금은 미디어를 비롯해 온 일본이 집단 히스테리 증상, 거기까지는 아니라 해도 싸구려 센티멘털리즘에 빠져 있다. 나처럼 나락(너무 거창한가? 즉, 피해 현지)에서 올려다보면 그야말로 기분이 언짢아진다. 무슨 무슨 전문가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코멘트를 날리신다. 이쪽에서 보면, 그런 말 할 거면 당장 텔레비전 출연 그만두고, 그 훌륭한 의견을 해당부처에 가서 제대로 진언하시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진행자들도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 정말이지 나락의 밑바닥(역시 거창하다)에서 보면 지금 텔레비전에서 떠들어대는 말들이 얼마나 경조부박輕佻浮薄한 것인지 잘 보인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하면 건강에 나쁘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두자. 그럼 또.
3월 22일 오전 11시 20분, 흐림
오늘 아침 사토 나오코 기자가 쓴 기사를 인터넷판 ‘도쿄신문’에서 읽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정리해주어서 기쁘다.
많은 분들이 응원 메시지를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물론 그중에는 ‘전장특파원’인 척하며 버티지 말고 피난하라는 고마운(?) 권고도 섞여 있다. 이 블로그를 제대로 읽으면 알 수 있는데 나는 그럴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고, 또 ‘일부러 위험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거의 다 말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전장 실황보고 같은 것을 계속할 생각은 없다. 내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지도록! 또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쓰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함께 굳건하게 살아갑시다!
3월 22일 오후 11시 20분
텔레비전을 켜자 마치 공부 못하는 학생이 학급회의의 사회를 보고 있는 듯한 원자력안전보안원[일본의 원자력 안전을 담당하는 자원에너지청의 산하기관]의 기자회견이 나왔다. 제대로 준비해서(그렇다고 해서 데이터 날조는 안 되지만) 회견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지기만 할 뿐이니. 물론 금세 다른 채널로 돌려버렸다. 오늘밤은 오랜만에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야겠다. 앗, 깜빡 잊을 뻔했다. 오늘 오후 6시 미나미소마 시의 환경방사선 수치는 1.76마이크로 뭐라고 한다. 고맙게도 내려가고 있다.
3월 23일 오후 4시
실은 속으로 걱정하던 것이 나의 지병을 위한 약(무엇인가는 비밀)과 어머니의 약(특별히 지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이었다. 그래서 몇 명의 친구에게 재해시의 특례로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약국에서 약을 구입해줄 수 없는지 부탁했다. 그런데 여기서 몇 번이나 등장하는 니시우치가 또 식료품을 전하러 왔을 때, 늘 다니던 병원의 의사가 돌아왔다는 희소식을 얻었다. 아! 아! 고마워라.
또 도와다十和田에 있는 형이 사가와佐川 택배로 보내준 물건이 이웃 마을인 소마영업소까지 와 있는데 배달되지 않은 것을 알고, 영업소에 직접 연락하기보다 본사(어딘지는 모르겠다)에 “나는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의 기사에 났던 사람(?)인데 사태가 끝났을 때 비난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좋은 처방을 부탁한다”라고 메일을 보냈다. 신문의 위력이 즉효를 본 것인가, 방금 전 그 영업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든 배달하겠다고 한다.
이런 것이군요.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의 메일이나 인터넷은 위력이 있습니다. 부디 사태의 정상화를 향해 통신기기를 최대한 사용합시다. 거듭 부탁드립니다!
3월 24일 오후 5시
마을로 돌아온 이시하라石原 선생님에게 어머니와 나의 2주간 분의 약을 받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시내의 환자를 왕진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시민들이 조금씩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내일부터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의사들과 팀을 만들어 시민의 건강을 지키는 운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만세!!
다만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인이 두고 간 듯한 흰 늙은 개가 거리를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란 중에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병자, 고령자, 동물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방에서 밖을 내다보니 아름다운 석양이 하늘 가득 펼쳐져 있다. 자연은 잔혹하지만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장엄한가!
그런데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트위터든 휴대폰이든 뭐든지 좋습니다. 30킬로미터 라인의 저주를 두려워해서 바로 옆 마을까지 온 물건을 이곳 미나미소마까지 배달하지 않는, 실로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일본 우편, 그리고 구로네코, 히캬쿠飛脚[모두 일본의 택배회사]에 항의의 목소리를 발신해주십시오! 평소 서비스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 회사가 이런 한심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에 분노의 목소리를 전달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3월 25일 0시 40분
오랜만에 다소의 안도감에 싸여 잠자리에 들려는 찰나에, 이상한 뉴스가 들려왔다. 에다노枝野 관방장관(이었나?)이, 옥내대피구역에도 방사선의 위험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물자부족이라는 의미에서 피난권고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난하나! 실제로 이 마을 주민들은 불편한 대피소 혹은 일시적으로 신세를 지고 있던 지인이나 친척 집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시청에 빈번히 드나들고 있는 친구 니시우치의 확실한 정보에 의하면 시청에는 이미 만 명분 넘는 식품이 도착되어 있다. 에다노 씨는 이러한 현지 실정을 알고 있는 것일까. 첫째,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인데, 새롭게 피난 장소를 확보해서 시민을 이동시키기보다는, 물자 반입에 관해 국가가 운송업자 등에게 강하게 요청하는 쪽이 모든 면에서 몇 배나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이런 발언의 이면에는 ‘진상’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원전 피해는 사실은 더 심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때문에 에다노 장관의 기자회견과 함께 그러한 ‘진상’을 전해준 사람에게 이런 답장을 했다. 실례지만 당신도 현장에 있는 절박한 당사자의 마음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우리에게 그러한 ‘진상’만큼 두려운 것은 실은 없다. 실제로 이 마을에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그런 ‘진상’이 멋대로 해석되고 확대된 것에서 생긴 것이다. 부디 그런 ‘진상’을 가르쳐줄 거라면 먼저 그 ‘진상’의 진상을 파헤친 후에 해주기 바란다.
지금 단계에서 한 시간마다 발표되는 환경방사선 측정치나 음용수방사능 측정 결과, 나아가 동일본 전체의 풍향(이것이 사실은 가장 중요!)을 끊임없이 체크한 후에, 에다노 장관의 발언에 다른 뜻은 없는 것 같고, 다만 다소 현명함이 결여된 얕은 견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쯤에서 여러분에게 부탁한 일본우편이나 각 운송회사에 대한 항의와 동시에, 아니 그보다 먼저 현상을 타개할 돌파구를 못 찾고 있는 정치가나 여러 정치기관에 대한 요청 내지는 항의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떠세요, 여러분?
어쨌든 이쪽이 다운되면 사태는 더욱 이상하게 돌아가니 오늘밤은 이만 자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네요. 건강하게 또 만납시다.
3월 26일 오전 8시
안녕하세요. 여러분, 건강하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매우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데, 저는 진짜 피해지에서 오랜만에 어젯밤에는 푹 잤습니다. 부끄럽게도 스웨터와 바지를 입은 채였지만. 그런데 창밖을 보니 조금 추운 것 같긴 하지만 이전과 변함없는 평온하고 평화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앞서 말한 환경방사능 측정치인데, 이곳 미나미소마 시에서는 줄곧 연속적으로 떨어져서 오늘 아침 7시 현재 1.18마이크로시버트입니다. 참고로 현지사가 분투하고 계신 현청 소재지는 그 세 배인 3.97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안심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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