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슴 뛰는 삶을 살자
기운생동 氣韻生動 정신적인 기운이 살아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
나보다 어렵게 사는 선배가 있다. 가방끈도 짧고 얼굴도 박색이라 변변한 직장은 꿈도 꾸지 못하며 허드렛일만 하는 선배인데, 얼마 전에는 한량 같은 남편과도 사별했다. 그런데도 알고 지내온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선배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본 적이 없다. 언제든지 만나면 봄 햇살처럼 환하다. 그녀는 월세를 내지 못해 살던 집에서 쫓겨났을 때도, 온수가 고장 나서 짜증부리는 나를 위로했다. 진심을 담아 위로하는 그녀의 말에는 힘이 넘쳤다. 표현은 거칠고 투박했지만 설득력 있는 목소리에는 어떤 기교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볼 수는 없으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기운이다.
어떤 작품이 명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 선배가 생각난다. 현란한 색을 쓰지 않아도 그린 사람의 정신과 감정이 오롯이 녹아 있는 그림이 명화다. 화장기 없는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그녀처럼.
금란지교 金蘭之交
‘단단하기가 황금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 같은 사귐’이라는 말로 지극히 친한 사이라는 뜻이다.
벗이 있어 찾아오는 즐거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을 때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이 글은 『논어論語』의 첫 장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두 번째 문장이다. 그런데 보석 같은 이 문장은, 바로 앞에 등장하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첫 문장의 유명세에 밀려 만년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중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특별히 한문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이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해석과 함께 ‘학이시습지……’라는 원문을. 예전에는 첫 번째 문장이 최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두 번째 문장의 진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더하여 혼자 느끼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면 더욱 기쁘고 즐거울 것이다. 책을 읽다가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멋진 문장을 발견했을 때 친한 벗에게 전화해서 자랑하고 싶었던 순간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연둣빛에 기다림을 담다
‘배우고 때로 익히는 기쁨’이 개인적인 차원이라면, ‘벗이 있어 찾아오는 즐거움’은 공감의 차원이다. 이 즐거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고람古藍 전기田琦, 1825~54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이다. 눈이 소복이 쌓인 날, 매화꽃이 눈꽃처럼 휘날린다. 이런 날은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감히 매화꽃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출렁거리는 마음을 무시한 채 책만 읽을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무시해도 좋다. 이 정도 외도로 자책한대서야 어디 각박해서 살 수 있겠는가. 떠밀리며 살아온 시간을 내려놓고 잠시라도 꽃을 향해 외도를 해볼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은 길을 싱싱하게 떠날 수 있다.
전기, 「매화서옥도」- 종이에 엷은 색, 32.4*36.1cm. 19세기 중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연두색이라면 달려가는 사람의 마음은 붉은색이다. 눈 덮인 산과 언덕 곳곳에 봄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는 연두색은 아침부터 창문 열고 친구를 기다린 사람의 마음이다.
역시 그림 속의 주인공은 아름다움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인 듯하다. 서재에 앉아 매화를 감상하던 선비가 피리를 들었다. 흥에 겨워 피리를 불자 지나온 자리마다 폐허였던 과거 위에 꽃잎이 떨어진다. 피리 소리와 꽃잎의 춤사위에 서늘한 슬픔이 따뜻해진다. 파렴치한 외로움은 허물어지고 참혹했던 그리움마저 슬그머니 빗장을 푼다. 친구의 마음이 전해진 걸까. 거문고를 어깨에 메고 다리를 건너는 선비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빨리 가서 피리소리에 맞춰 거문고를 뜯기 위함이다. 백아와 종자기가 아니라도 오랜 세월 마음을 나누다 보면 누구나 지음知音이 된다. 지음은 굳이 연인이 아니라도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사이다. 그러고 보니 서재 안의 선비가 창문을 열어두었던 까닭이 꼭 매화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오늘 찾아오기로 한 지음이 어디쯤 오고 있을까, 기다리고 있음이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연두색이라면 달려가는 사람의 마음은 붉은색이다. 눈 덮인 산과 언덕 곳곳에 봄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는 연두색은 아침부터 창문 열고 친구를 기다린 사람의 마음이다.
오른쪽 구석에 ‘역매가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亦梅仁兄草屋笛中’라고 적혀 있어 방 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놓았다.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79은 조선의 대수장가요 감식가였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미술사를 정리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의 저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아버지기도 하다. 이 그림은 오경석보다 여섯 살 많은 전기가 친분이 두터웠던 오경석을 위해 그려준 것으로, 이들은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97~1859이 만든 문학동인 ‘벽오사碧梧社’의 회원이었다. 두 사람 모두 중인으로 전문 화가는 아니었다. 전기는 약재상이었고, 오경석은 역관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모두 그림으로 기억한다. 직업은 잊히기 쉬워도 예술작품은 오래 여운이 남는 법이다.
선비들의 매화 사랑
조희룡을 필두로 조선시대 말기의 화가들은 특히 매화를 사랑하여 ‘매화도’를 많이 그렸다. 오경석의 호가 ‘오직 매화’라는 뜻의 ‘亦梅’인 것만 봐도 어지간히 매화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희룡의 매화 사랑도 그에 못지않았다.
추위에 결박당한 포로가 구원병의 말발굽소리처럼 달려오는 매화꽃을 발견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환희를 조희룡의 「홍매紅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위아래로 긴 ‘축화軸畵’인데, 똑같은 형식의 그림을 쌍이 되게 나란히 그린 ‘대련對聯’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두 작품이 각각 독립적으로 그려졌지만 각 작품은 다른 작품과 함께 있어야 비로소 구색이 맞게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두 작품을 붙여놓고 보면 굽이치며 그려진 두 그루 매화가 교차하듯 배치되어 있어, 왼쪽 하단의 매화가 오른쪽 상단으로 뻗어가는 것 같고 오른쪽 하단의 매화가 왼쪽 상단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또한 두 작품의 화면 바깥쪽에 추사체를 충실하게 계승한 글씨체로 제시를 적어넣음으로써 그림 테두리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대련 형식에서만이 맛볼 수 있는 조화의 진경이다.
조희룡, 「홍매」(대련) - 종이에 엷은 색, 각 127*30.2cm. 19세기경, 서울 개인 소장. |
죽은 듯 웅크리고 있던 두 그루 늙은 매화가 봄이 되자 여의주를 얻어 하늘로 승천하는 용처럼 격렬하게 피어나는 작품이다.
「홍매」는 죽은 듯 웅크리고 있던 두 그루 늙은 매화가 봄이 되자 여의주를 얻어 하늘로 승천하는 용처럼 격렬하게 피어나는 작품이다. 용트림하듯 뒤틀린 매화나무는 화면 밖으로 빠져나갔는가 싶으면 머리를 추켜세워 나무 꼭대기 부분에서 가장 화사한 붉은 꽃을 토해낸다. 이것은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도 꽃을 피우겠다는 정념을 한시도 잊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매화가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게 된 것도 꽃에 대한 열망으로 추위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희룡은 매화를 무척 사랑하여 생활 자체가 매화에 젖어 있었다.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는 편액을 걸어 두었고, 침실에는 매화 병풍을 펼쳐놓았다. 또 매화 벼루에 매화 먹을 갈아 매화시를 쓰면서 매화차를 마셨다고 하니, 이쯤 되면 매화에 대한 편벽偏僻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매화 마니아’를 넘어 ‘매화 오타쿠’라고 해야 적당할 것 같다. 조희룡이 이 작품을 제작했을 때는 ‘매화백영루’가 걸린 자신의 누각에 지낼 때가 아니라 영광 임자도로 유배 갔을 때였다. 예순이 넘은 노인네가 ‘독기 서린 바다, 적막한 물가, 황량한 산과 고목 사이에 달팽이집같이 작은 움막 속에서 움츠려 떨며’ 지내는 생활을 하다가 ‘일체의 고액을 극복해가는 법’으로 매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무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이른 봄의 개화開花는 감동적이다. 하물며 한겨울 같은 살얼음판에 내던져진 사람이 목격한 개화의 현장이 아닌가.
매화는 조선시대 말기에 일련의 오타쿠가 등장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최초로 매화에 관한 책 『범촌매보范村梅譜』를 쓴 송대宋代의 학자 범성대范成大는 매화를 ‘천하의 으뜸이며, 높은 품격과 빼어난 운치를 겸비한 꽃’이라고 극찬했고, 동시대를 살았던 장공보張功甫는 ‘자태와 운치가 외롭고 빼어나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운을 띄웠다. 그렇게 시작된 매화 예찬은 수많은 예술가의 마음을 흔들더니 급기야 퇴계 이황 선생에게서 절정에 도달한다. 매화를 극진히 사랑하여 매화시 100여 수를 남긴 퇴계 선생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 남긴 유언이 ‘매화에 물을 주라’였다.
돈보다도 거문고 들고 올 친구를 만들자
매화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기 때문이리라. ‘추울 때에 더욱 아름다우며, 호젓한 향기가 뛰어나며, 찬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리면서도 곧은 마음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눈 속에 피어나는 설중매雪中梅를 보며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 때로 시련이 인생의 품위를 무참하게 떨어뜨려도 지조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얻었다. 나는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칼날같이 예민해지는데 맹추위를 밀쳐내는 무기라는 것이 기껏 연약한 꽃잎이라니. 살짝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런 내가 독한 추위에 외로워할 때, 거문고를 들고 찾아오는 친구는 지복至福이자 위로요 추위를 함께 견뎌줄 수 있는 동지이자 반려자다.
『논어』 「학이」 편의 세 번째 문장은 무엇일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아야人不知而不溫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不亦君子乎?’이다. 젊은 시절 배우고 익히는 기쁨을 알고 난 후 나이 들어 벗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굳이 명예가 없어도 노여워할 이유가 없다. 혼자 있을 때의 충만함에 더해 마음을 나눌 친구까지 왔는데 높은 벼슬을 하지 못했다 한들 무예 그리 서운하겠는가. 그만하면 됐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거친 밥에 채소만 먹는 노년이라도 이 정도 삶이라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다. 내 맘 알고 네 맘 알 수 있으니 외로울 일 없고 고독하게 죽어갈 일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준비할 것은 돈보다도 거문고 들고 올 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아니, 내가 피리를 불며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찾아오고 싶은 그런 친구가 되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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