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공부
하고 싶은 것엔 비용이 따른다
(중략)
스펙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다
한홍구 나는 '스펙'이라는 말을 미국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이해가 안 됐어요. 그게 우리나라 말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외국에서 들어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specification'을 줄여 부른 말이더군요. 이 말을 아는 미국인들에게 설명하니, 그들 중 한 사람이 그 단어를 사람에게 쓰느냐고 묻더라고요. 미국에서 스펙이라는 말은 원래 제품을 설명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제품의 기능을 설명하는 설명서나 사양, 특성, 기능 등을 의미하는 단어죠. 그것이 어느새 한국에 들어와 사람에게 적용된 겁니다. 그리고 학점을 따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점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사실 그건 잘못이죠. 너무 신경을 안 썼으니.(웃음) 하지만 요즘 학생들이 너무 신경을 쓰는 것도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3점대냐 4점대냐를 두고 경쟁했는데, 이제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경쟁하더군요. 그렇게 소수점까지 파고드는 만큼 자신의 인생이 억압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펙을 쌓다 보니 어떤가요? 스펙에 차별성이 있는 것 같습니까? 과거에 학점이 3점대 후반이라고 말한다면 '아, 이 학생이 다른 공부는 몰라도 학교 공부는 열심히 했네.'라고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성실성은 보여 줄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 보세요. 모두가 학점이 좋습니다. 토익 점수도 다 높습니다. 게다가 예전에는 어학연수 다녀왔다고 하면 굉장히 특별한 경우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평범하잖아요. 모두가 토익 점수 좋지, 학점 좋지,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세상이에요.
대학생 모두가 다 같이 개미처럼 스펙 경쟁에 뒤어들어서 어떻게 됐습니까? 스펙을 쌓기 위해 돈과 마음과 열정을 다 쓰고 거기에 더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까지 받지요. 그렇게 해서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스펙이 올라갔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다 똑같아요. 남과 다를 게 없습니다.
사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사교육이라는 것은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아이들을 위한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누구나 다 사교육을 시키니 경쟁 지점에 도달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아예 사교육을 받지 못하니 일찌감치 꿈을 접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죠.
요즘 젊은이들이 철이 늦게 든다고 한 말은 이런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의미예요. 내가 젊은이들에게 바라는 점은, 스펙 경쟁이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스펙의 기준을 바꾸세요. 스펙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특성이 있으니가요. 예를 들어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을 정리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소통을 위해 이 재능을 살리고자 이러한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스펙이라면 좋은 거예요. 작가를 꿈꾸는 현진 학생에게는 특히 이런 스펙이 필요하겠죠? 이렇듯 자기만의 스펙을 찾아야 합니다.
류한필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한홍구 동양에서 수천 년 동안 그 어느 책보다 큰 영향을 미친 책이 뭔지 알아요? 바로 논어입니다. 그 책의 첫마디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즉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예요. 공부의 즐거움을 말한 거죠. 누구나 다 공부는 어렵다고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공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 관심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나라 학생들이 모두 학과 과목만 배우고 싶어 하나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학과 공부만 배우니까 살아가는 데서는 지적인 능력이 늘어나지 않는 거예요.
요즘 소녀시대 같은 걸 그룹들이 워낙 인기 있다면서요? 그런데 나는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여자애들 몇 명이 모여 있으니 분위기로 봐서 대강 ‘아, 쟤네가 소녀시대구나.’ 이러는 거예요. ‘어디서 봤는데?’ 속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거죠. 그런데 학생들은 딱 보면 다 알잖아요. 연예인에 대한 사소한 것도 기가 막히게 잘 외우더라고. 그게 뭐 특별히 공부해서 아는 거 아니잖아요? 대상에 대한 깊은 호기심 자체가 공부의 한 부분이에요. 대부분 책상머리에 앉아서 교과서나 참고서 펴놓고 앉아 있는 게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 주는 것, 그게 진짜 공부죠. 그래야 즐겁잖아요.
그러니 제일 좋은 공부 방법은 자연스럽게, 내가 관심 있는 것을 공부하는 것, 그거예요. 정말로 공부 맛을 제대로 한번 보고 나면 다른 것도 재미있어질 겁니다.
류한필 제 주변을 보면, 자기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돈이 안 되고 먹고살기가 힘이 드니까 그런 부분에서 겁을 내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공현진 사실 저도 대학원에 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해요. 공부하고 싶은 욕심과는 별개로 대학원에 가면 또다시 학생의 신분이 되잖아요. 아무래도 학생이라는 위치는 돈과는 멀어지는 거니까요.
한홍구 정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비용을 스스로 지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극을 미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연극을 해야죠. 대신 경제적인 부분들은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실제로 연극계에는 연극하면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두 달 내지 석 달쯤 바짝 아르바이트하고, 무대에 오르고. 남들처럼 비싼 공연도 못 보고 해외여행 한번 못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삶을 위해서라면 생활이 다소 궁핍해지는 건 견뎌 낼 수 있어야죠. 그러니까 그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요.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재벌 2세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세상 살면서 정말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해요. 예전에는 그 믿음 하나로 감옥에도 갔어요. 불행한 시기였죠. 그랬지만 대한민국이 지금 이 정도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진짜 자기 걸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요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건 뭐든 갖기만 했지 뭔가를 버려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어떻게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겠습니까? 스펙 쌓고 돈 들여 영어 수업 받아 보니까 어떻습니까? 남들보다 특별해지던가요? 이도 저도 아닌 게 되는 거죠. 차라리 안 되는 건 진즉 버리고,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낫습니다. 뭔가에 한번 미쳐 본 사람은 뭘 해도 즐겁게 해요. 안도현 시인이 그랬잖아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젊었을 때 미쳐 보는 건 꽤 가치 있는 일이에요.
류한필 대학 시절에 경험을 많이 해 보라는 말씀인가요?
한홍구 자기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지적인 탐구가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자료도 모으고 분석도 하고. 예를 들어, 창업 준비를 한다면 가장 먼저 해당 분야의 제품 트렌드나 소비자 기호를 철저히 분석해야 하잖아요? 이게 바로 공부예요. 하지만 대개는 그런 것에 신경 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만 궁리합니다. 공부라는 것은 가장 먼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핵심적인 게 무엇인지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해요. 그다음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야죠. 자료를 어디서 찾느냐고요? 도서관에서 관련 책들을 살펴보고, 인터넷을 뒤지고,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고,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합니다. 어떤 분야든 대개 나보다 앞서 해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선행 연구들을 찾아보고 그중에서 나한테 맞는 걸 분석해서 정리하고. 이런 게 진짜 공부 아니겠습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재미있는 공부를 미치도록 체계적으로 해 봐야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가 마라톤을 뛰고 있는데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인생이라는 건 70~80년 동안 이어지는 기나긴 장거리 달리기입니다. 지금 당장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것처럼 보여도 장거리 레이스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길이 무수히 많은데, 왜 꼭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길로만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길로 가면 어떻게 됩니까? 교통 체증만 생길 뿐이죠. 경쟁 시스템은 우리한테서 여유를 빼앗아 가요. 하지만 여러분은 여유를 갖고 살면 좋겠어요. 여유롭게 함께 뛰면서 즐겁게 이 시스템을 전복시키거나 룰을 바꾸어 보자고요.
어떻게 보면 대학은 긴 인생에서 준비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자신을 닦달하지 말고 준비 운동을 하면서 긴 레이스를 달릴 수 있는 좋은 컨디션을 만드는 데 집중하세요.
류한필 저는 성적이 잘 나온 과목도 항상 부족함이 느껴져요. 수업을 잘 따라가기는 하지만 채울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 같고, 시험을 다 보고 나서도 교수님이 알려 주신 것만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더 많이 공부하려면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요?
한홍구 다양한 책을 많이 보세요. 그런데 이것도 요령이 필요해요. 많은 책을 빨리 보려면 일단 자기가 궁금한 게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리포트 쓰기 전날 밤에는 평소에 책을 볼 때보다 한 다섯 배쯤 빨리 보게 된다든지 하는. 그게 바로 자기 질문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남들 다 공부한다니까 나도 봐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보면 책이 제대로 읽히겠습니까? 대학 생활을 현명하게 하려면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해야 돼요.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다 공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질문을 잘 파악하고 정확한 책을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죠.
물론 책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혹세무민할 의도로 나온 나쁜 책들도 있어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결국 교수들이 읽는 걸 따라가기가 쉬울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책 자체가 워낙 좋아진 데다가 인터넷에 서평도 많으니 여기저기 찾아보면 잘 맞는 좋은 책을 고를 수 있어요. 나는 내 전공 분야가 아닌 경우라면 재미있는 책만 골라 읽어요. 사실 재미있고 좋은 책도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어요. 전공이든 살아가는 데 필요해서든 분명 정독해야 할 책들이 있고 깊이 있게 읽어야 하는 책들도 있지만, 평소에는 재미있는 책들 많이 보세요. 좋은 책들 많아요. 그러니까 너무 어려운 책 골라서 괜스레 부담만 느끼고 이해도 못하는 그런 일은 하지 마세요.
또 내 현실 문제와 가까운 책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죠. 물론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요.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한 공부도 대학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요즘에는 글을 잘 쓰는 필자도 많아졌고, 매체도 다양해졌어요. 그래서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나타났다 하면 벌써 서너 권이 쏟아져 나오죠. 우리나라에서 책이 나오는 템포는 대개 6개월 정도라고 보면 돼요. 이슈가 복잡한 질문이 됐을 때, 우리의 관심이 식기 전에 책이 나온다는 말이죠. 그런 책들은 당장 관심이 있을 때 읽어야 할 책들이고, 또 대부분 잘 읽혀요. 물론 피상적이고 무게감이 없다는 점에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요.
이렇게 따지면 고전에서부터 현실 문제를 다루는 책에 이르기까지 읽어야 하고 읽을 만한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는 거예요. 사실 우리는 엉뚱한 데다 시간을 많이 쓰잖아요.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인터넷 검색이니 하면서. 나 역시 쓸데없이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 들어가 보면서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시간들을 잘 관리해야 해요.
공현진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요?
한홍구 설명을 잘해 주는 게 아니라 계속 발전적인 의문이 생기게 만드는 책이어야 해요. 설명에 충실한 건 매뉴얼일 뿐입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그런 책들이 좋은 책이죠.
‘지식인이라면 이런 책쯤은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세요. 지식인이 어떻게 세상 모든 걸 다 알겠습니까? 옛날에는 지구상에 지식인이 요만큼밖에 없어서 백과사전 하나만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잖아요. 그리고 ‘이 세상을 진보시키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내가 뭐가 궁금한가?’, ‘나는 뭘 할 때 재미있나?’ 이런 질문을 먼저 하고, 보다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책을 찾으세요.
대학원생이라면 논문을 쓰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있겠죠. 그렇지만 자기가 관심 있는 다른 분야의 책을 보는 것도 전공에 큰 도움이 돼요. 사학과라고 한국사 책만 들여다보면 되겠습니까? 인도든 이탈리아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책도 읽어야 해요. 그런 책들을 읽을 때는 어떤가요? 굉장히 편하게 읽게 되잖아요. ‘내 전공 분야와 맞는 책인가? 이 주장에 반박하는 이론은 없나?’ 이런 고민 없이 즐겁게 읽는 책이 오히려 자기 전공의 연구에 굉장히 도움이 되기도 해요. 부족한 영양소를 충분하게 채워 주는 것과 마찬가지죠. 재미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대학원에 가서도 이렇게 할 수 없으면 하지 마세요. 힘들게 선택한 길이라 해도 가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으면 빨리 돌아서서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죠.
절대적인 건 없다
공현진 교수님들은 다양한 이론 속에서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하시잖아요. 그렇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 얘기도 맞는 것 갖고, 저 얘기도 맞는 것 같거든요.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이론을 갖게 될까요?
한홍구 사실은 교수라고 해도 이론을 정립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과학의 상당 부분이 수입산이죠. 거의 외국의 이론을 갖다 붙여요. 심지어는 촛불 집회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도 미국이나 독일의 이론을 가져와서 설명합니다. 이건 아니거든요. 촛불 집회는 우리가 직접 겪은 거잖아요. 그러니 ‘하버마스 이론에 대입해 보니까 이렇더라.’가 아니라 하버마스보다 더 잘 알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자기 이론이라는 건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깊은 분석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보면 오랫동안 외국의 이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근대와의 만남 자체가 자의에 의한 게 아니라 제국주의에 의해 편입된 거니까요. 그 속에서 서양 이론을 어떻게 더 빨리 받아들이고 제대로 이해하고 전수하고 가르치느냐, 그런 작업들이 중요하게 부각된 거죠. 우리의 전통적인 이론들, 예를 들면 다산 정약용이 집대성한 이론들이 완전히 홀대받게 되었고요.
지금은 인터넷이나 방송 매체가 워낙 발달해 거의 시차가 없다고 봐야죠. 미국이나 유럽의 새 이론을 당장 한국에서도 볼 수 있으니 예전보다 좀 나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직도 상당히 많은 교수들이 외국의 이론을 받아들이기만 합니다.
학생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이론들의 차이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외우기 때문에 그래요. 구체적인 문제에 접근할 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누구 책을 읽을까? 이런 걸 어떤 이론에 대입시킬 수 있을까? 그 이론에 대표적인 학자가 누구지? 그 이론을 한국 문제, 한일 문제에 적용시킬 때 누구의 책이 좋을까?’ 이런 가이드를 대학에서 해 줄 수 있어야 해요. 이론을 배우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거든요. 그 이상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 이론을 정립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공현진 꼭 이론 정립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한홍구 가장 좋은 건 다른 사람이 왜 저런 얘기를 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왜 똑같은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할까? 그가 말하는 대로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를 고민하고 ‘아,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는구나.’를 이해하면 남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요. 내가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죠.
각자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프레임이 있어요. 그것들이 다 정교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프레임이 있으면 그 속에서 기본적으로 분석이 되는 거죠. 세상 사람들이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얘기한다는 걸 이해하게 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걸 절대화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교과서에서 본 내용이, 어느 신문에서 본 이야기가 진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국정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이고 특정 언론이 생각하는 것이더란 말이죠. 그렇게 우리 자신의 입장과 세계관이 생기는 겁니다. 생각의 범위를 ‘이 세계관에 입각해서 세상을 분석했을 때 어떻게 다르게 설명할 수 있을까?’로 확장시킬 수 있어요.
예전에 이렇게 다른 생각을 보여 주는 책들을 불온서적이라며 막으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치한 사람들 역시 세상을 다르게 설명하려는 거죠.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게 다르잖아요. 산꼭대기에 사는 사람한테 산을 설명하는 것과 산 밑에 사는 사람에게 산을 설명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럼 어떤 게 절대적인 것이겠습니까? 절대적인 것은 없어요. 절대적인 건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게 불온서적 지정 같은 문제를 낳는 거죠. 중요한 건 ‘저 사람은 왜 저런 얘기를 하는가? 저 사람은 어떤 관점에 서 있는가?’ 그걸 파악하는 겁니다. 그래야 남들이 자기들 관점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데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요. 세상에는 절대적인 진리가 많지 않아요.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류한필 좋은 책을 잘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다독이 좋은 건가요, 아니면 정독이 좋은 건가요?
한홍구 책에 따라,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죠. 나는 한 개인이 지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독과 다독을 다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닥치는 대로 읽어 보세요. 책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어도 됩니다. 10쪽이든 20쪽이든 읽으면서 간을 보세요. 책 중에는 교양을 높여 주는 책도 있고, 사고방식을 넓혀 주는 책도 있어요. 이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본 후 현실적으로 필요한 책을 보는 거죠. 많이 읽을수록 상상력이 풍부해지니까요.
특히 대학생이라면 더욱더 많이 읽으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많이 읽다 보면 정독하고 싶은 책을 만날 거예요. 어떤 책 하나를 정독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정독은 그 책을 쓴 작가와 샅바를 잡고 씨름을 하는 거예요. 한 번 읽는 것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정독을 하라는 겁니다. 스님들을 보세요. 그야말로 용맹정진하고 있을 때 하나의 화두를 붙잡고 깊이 생각하잖아요?
나는 고등학교 때 가방 속에 『수학의 정석』, 『성문 종합 영어』와 함께 김수영의 시집만 넣고 다녔어요. 김수영 시는 고등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시였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읽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푸른 하늘을」이라는 시가 이해되더라고요. 그 다음엔 김수영의 다른 시들까지도 이해가 됐어요. 이런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춰 볼 때,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게 되면 그 작가의 내공이 절정에 달했던 순간을 같이 호흡해 볼 수 있어요.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깊이 있게 정독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자신만의 내공이 생기면 다른 책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무슨 책을 정독할 것인가도 중요하겠죠. 쓰레기 같은 책을 정독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포인트는 이겁니다. 공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재미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그걸 찾으려 애써 노력하지 않는 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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