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세대
한때 러시아에는 여름과 바다, 태양을 향해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펩시’를 선택했던 근심 없는 젊은 세대가 정말로 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이 음료의 뛰어난 맛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중독시켜 계속해서 더 달라고 조르게 만들고, 그들을 어린 시절에서 끌어내 확실하게 코카인의 항로로 이끌어 가는 콜라의 카페인이 문제가 되었던 것도 아니다. 진부한 뇌물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계약 체결을 주도했던 당 관료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은 후 온 마음을 다해 이 검은색 탄산가스 액체와 사랑에 빠졌다고 믿고 싶다.
무엇보다도 그 이유는 소련의 이념적 지도자들이 진리는 오로지 하나라고 간주했던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P세대에게는 사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1970년대 소련의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브레즈네프를 선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펩시를 선택했다.
어쨌든 이 아이들은 여름철 해변에 누워 오랫동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수평선을 응시하며 노보로시스크 시에서 유리병에 부어넣은 따뜻한 펩시콜라를 마셨고, 언젠가는 바다 멀리 저쪽의 금지된 세계가 자신들의 삶 안으로 들어오기를 꿈꾸었다.
10년이 흐른 후 이 세계가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중하고 예의 바른 미소를 띠더니 나중에는 점점 더 자신만만하고 대담해졌다. 이 세계가 내민 명함 중의 하나가 펩시콜라 광고였다. 이 광고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전 세계 문화 발전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광고에서는 두 마리의 원숭이가 비교된다. 한 마리는 ‘보통콜라’를 마셨고 그 결과 큐브 퍼즐과 젓가락을 가지고 아주 단순하지만 논리적인 몇 가지 행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펩시콜라를 마셨다. 이 원숭이는 즐겁게 쿵쾅거리며 여성 평등에 대해서는 분명 코웃음이나 칠 것 같은 아가씨들을 껴안고 지프를 타고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솔직히 원숭이들과 가까이 지내야 할 때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평등이건 불평등이건 영혼에는 똑같이 버겁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기서 문제는 펩시콜라가 아닌,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돈에 있다는 사실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제품의 색깔을 문제 삼는 고전적인 프로이트 학회도, 둘째로 펩시콜라를 마시면 비싼 자동차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논리적 추론도 모두 그러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하지만 이 광고를 깊게 분석할 생각은 없다. (바로 이 광고에서 소위 60년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줄기차게 P세대를‘밑 핥기’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해석을 찾아낼 가능성도 있지만) 지프를 타고 있는 원숭이가 P세대의 최종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만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다름 아닌 매디슨 애비뉴 광고 대행사 출신 젊은이들이 자신의 관객, 이른바 타깃 그룹을 상상해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좀 나쁘기도 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그들의 깊은 인식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광고는 바로 러시아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대다수의 원숭이들에게 지프로 갈아타고 인간의 딸들에게 갈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펩시콜라 광고에서 반러시아적인 음모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반러시아적인 음모는 존재하지만, 러시아의 모든 성인 세대가 그 음모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펩시콜라는 반러시아적 음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상 벌어진 일은 여러 책에도 반영되어 있듯(안드레이 비토프의『원숭이의 기다림』이나 윌리엄 보이드의『브라자빌 해변』을 떠올려보라) 전 세계적인 현상의 일부였다. 양상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지만 미국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미국에서는 코카콜라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결정적으로 펩시콜라를 붉은색의 경기장에서 밀어냈다. 상황 파악이 빠른 사람들은 이것을 워털루 전투에서의 승리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는 미국에서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종교법의 기능과 관련되어 있었다. 종교법은 진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세계 그림에는 코카콜라가 더 잘 어울린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원숭이는 여전히 원숭이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숭이 이야기를 너무 오래 하고 있다. 사실 사람을 찾으려 했던 건데.
바빌렌 타타르스키는 붉은색이 붉은색에 대해 역사적 승리를 거두기 훨씬 이전에 태어났다. 그는 오랫동안 P세대가 뭔지 전혀 이해를 못했지만, 어쨌든 자동적으로 그 세대가 되었다. 만약 그 먼 옛날 자기가 자라서 카피라이터가 되리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는 아마도 놀라서 펩시콜라 병을 소년단 캠프 해변의 뜨거운 조약돌 위로 떨어뜨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먼 옛날 아이들은 소방관의 반짝거리는 헬멧이나 의사의 하얀 가운을 목표로 삼도록 정해져 있었다. ‘디자이너’라는 평화로운 단어조차 첫번째 국제 정세의 심각한 위기가 오기 이전에는 위대한 러시아어의 언어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미심쩍은 신조어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언어에도 삶에도 대체로 미심쩍거나 이상한 일이 아주 많았다. 자신의 영혼 속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과 60년대 세대의 이상을 결합시켰던 타타르스키의 아버지가 그에게 지어준 ‘바빌렌’이라는 이름만 봐도 그렇다. 그 이름은‘바실리 악쇼노프’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라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타타르스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자유분방한 악쇼노프의 소설을 통해 마르크시즘은 처음부터 자유연애를 지지했다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해한 충실한 레닌주의자를 상상했을 수도 있고, 혹은 유달리 늘어지는 색소폰의 반복악절을 통해 갑자기 공산주의의 승리를 확신하게 된 재즈에 열광하는 유미주의자를 상상했을 수도 있다. 타타르스키의 아버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아마추어’노래를 선사했고, 결코 오지 않을 미래의 꼬리 넷 달린 정자처럼 첫 스푸트니크 위성이 되어 우주의 검은 공허 속으로 사라져버린 소련의 1950년대, 60년대 세대가 모두 그러했다.
타타르스키는 자기 이름이 너무 창피해서 가능하면 자신을 보바라고 소개했다. 나중에는 동양의 신비주의에 매료된 아버지가 고대도시 바빌론의 비밀 교의를 바빌렌이 계승할 운명임을 염두에 두고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친구들을 속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마니교와 자연철학의 추종자로서 빛의 원리와 어둠의 원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악쇼노프와 레닌의 합금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이렇듯 훌륭한 의미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타타르스키는 열여덟 살이 되자 기꺼이 자신의 첫번째 여권을 잃어버렸으며, 두번째 여권은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으로 발급받았다.
이후 그의 삶은 아주 평범하게 흘러갔다. 그는 기술대학에 입학했지만, 분명한 것은 기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전공은 전기로電氣爐였다)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 여름날, 그는 시골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얇은 책을 한 권 읽었다. 전 같으면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시들이 이번에는 몇 주 동안 아무런 다른 생각을 못 하게끔 그를 뒤흔들어놓더니, 결국 그 스스로 시를 쓰게 만들었다. 모스크바 교외 숲 언저리의 땅속 비스듬히 박혀 있던 녹슨 버스 뼈대는 영원히 그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이 뼈대 근처에서 생애 첫 문장, “정어리 모양 구름이 남쪽으로 헤엄쳐 간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는 나중에 이 시에서 생선 비린내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한마디로 이 상황은 완전히 전형적이었고, 마무리 또한 전형적이었다. 타타르스키는 문학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지는 못했고 대신 소련의 소수민족 언어를 번역하는 일에 만족해야 했다. 타타르스키는 자신의 미래를 대략 이런 식으로 상상했다. 낮에는 문학대학의 빈 강의실에 앉아 우즈베크어나 키르기스어를 마감 날까지 각운을 맞추어 정확히 번역하고, 밤에는 영원의 작업인 자기만의 창작을 한다.
그 후, 그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건 하나가 조용히 일어났다. 타타르스키가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을 즈음, 국가의 혁신과 개선 작업을 시작했던 소련이 지나치게 개선이 된 나머지 그만 존재 자체를 멈추어버린 것이다(만약 국가가 열반에 이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그런 까닭에 소련의 소수민족 언어 번역은 더이상 아무런 문젯거리가 되지 못했다.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타타르스키는 극복했다. 영원의 작업이 남아 있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타타르스키가 자신의 노력과 세월을 바치기로 결심했던 영원의 작업에서도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 타타르스키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영원이란 어쨌든 변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으며, 덧없이 흘러가는 지상의 영역과는 무관한 그런 것이어야 했다. 예를 들어 그의 삶을 바꾸어놓은 파스테르나크의 얇은 책이 이미 영원 속으로 들어와 있다면 어떤 힘으로도 그것을 밖으로 던져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영원은 타타르스키가 진정으로 믿는 한에서만 존재하며, 사실 믿음의 경계 너머에서는 그 어디에 도 존재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영원을 진정으로 믿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이 믿음을 공유해야 했다. 아무도 공유하지 않는 믿음은 정신분열이라고 불렸다. 타타르스키에게 영원을 따르라고 가르쳤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전의 시선을 바꾸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전의 시선들이 향했던(시선이야 항상 어딘가로 향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 공간이 방향을 돌려 이성의 바람막이 창문에 미세한 점 하나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주변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타타르스키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며 싸워보려 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해냈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는 다른 사람들과 가깝게 교제하면서 얼마 동안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결말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중 타타르스키는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은 신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진열창 안쪽에서는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예쁘게 생긴 뚱뚱한 점원이 헤엄치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타타르스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느닷없이 마음속으로 그녀를 ‘마니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구 뒤섞여 있는 다양한 색깔의 터키산 수공예 신발들 사이로 국내산이 분명한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타타르스키는 순간 날카로운 인지의 감각을 경험했다. 신발은 앞코가 뾰족하고 뒤축은 높은,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구두였다. 전체적으로 적황색에 하늘색 실로 박음질되어 있고 하프 모양의 커다란 황금색 버클이 장식된 구두는 단순히 취향이 없다거나 저속한 것은 아니었다. 그 신발은 문학대학 출신의 어느 술 취한 소련문학 교사가‘우리의 게슈탈트’라고 불렀던 바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양이 너무 불쌍하고 우습고 감동적이어서(특히 하프 모양 버클이) 타타르스키는 눈물이 핑 돌았다. 구두 위에 먼지가 두껍게 쌓인 것을 보니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타타르스키는 자신 역시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인식에 익숙해졌고, 심지어는 그 안에서 쓰디쓴 달콤함 같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했다. 그는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시구들로 이 감정을 풀어냈다. “상점(그곳에서는 아무도 사지 않았고 또 사지 않을 것이다!)의 먼지 속에 흩어져 있는 나의 시들도, 귀중한 포도주처럼, 자신의 차례를 맞이할 것이다.”만약 이 감정 속에 뭔가 굴욕적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세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진열창 앞에 굳어 있던 타타르스키는 갑자기 하늘 아래 먼지를 뒤집어쓴 자신의 모습이 비싼 포도주가 든 용기가 아니라 바로 하프 모양의 버클이 달린 구두와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외에도 한 가지를 더 알아차렸다. 자신이 이전에 믿고 있던 영원은 단지 국가 보조금에 의지해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금지하는 것들과 똑같아진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영원은 신발 가게의 마니카라는 여자의 반의식 상태의 회상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의심스러운 영원은 그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용기 속에 자연사(自然史)와 무기화학을 함께 담아 그녀의 머릿속에 집어넣어졌을 뿐이다. 영원은 제멋대로였다. 예를 들어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죽이지 않았다면 반대로 전혀 다른 인물이 그 안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타타르스키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니카는 영원을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으며, 그녀가 결국 그에 대한 믿음을 멈출 때 영원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영원이 더 이상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 수첩에 적어넣은 것처럼“영원의 주체가 사라질 때 그것의 모든 객체도 사라지며, 가끔이나마 그것을 회상하는 사람만이 영원의 유일한 주체가 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타르스키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소련 정권의 붕괴와 더불어 시는 그 의미와 가치를 잃었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 그가 창작한 마지막 글귀는 록그룹 DDT의 노래 가사( “가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뭇잎이다……”)와 때늦은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언급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시는 이렇게 끝났다.
영원이란 무엇인가─바니카이다.
영원은─ 거미줄이 쳐진 바니카이다.
만약 바니카를 마니카가 잊는다면,
조국과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본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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