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부
저쪽 사람
1
“카운트다운 시작됐다. 자선 바자회 참가한다고 했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해. 노래 공연하는 팀도 온다는데, 우리가 그것까진 신경 쓸 거 없고, 우린 우리 연주만 잘하면 돼.”
곽밥이 연습실에 모인 멤버들을 다그친다.
“바자회에서 꼭 연주해야 돼요?”
상휘가 퉁퉁거린다.
“그럼, 이제 와서 그만두리? 잔말들 말고 연습 준비해.”
“에이 씨, 노래하는 가수들 온다면서, 우린 왜 올려요. 창피만 당하지.”
“걔네들도 아마추어거든. 왜 미리부터 쫄고 그래, 사내자식이.”
곽밥이 소리치자 동구가 중얼거린다.
“무대 올라가서 우리 엄마한테 들키면 그날로 죽는데.”
연습 시간은 늘 구시렁거림과 불평불만을 누르는 곽밥의 닦달로 시작된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연습실 안은 서서히 열기가 몰린다. 창문조차 열어 둘 수 없는 지하 공간은 늘 그렇듯 팽팽하게 부풀어 있다.
“전자 기타, 너 자꾸 삑사리 낼래?”
그런데 곽밥의 고함에 스틱을 쥔 내 손이 갑자기 허둥대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야, 드럼! 너 지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냐?”
불똥이 나한테로 튄다. 드럼을 멈추자 연주가 일시에 중단 된다. 순간, 정적이 연습실을 꽉 메운다.
“드럼이 박자를 놓치면 얘네들 다 헤매는 거 몰라? 기초 연습할 때, 메트로놈 머릿속에 칩처럼 꽉 박고 있으라고 그랬지. 박자치기만 한 달 동안 연습해야 하는 거라고 속성 과정 들어가면서 얘기했어, 안 했어? 혼자 칠 때는 잘하는 거 같지? 어깨가 으쓱으쓱 폼 나는 거 같지? 근데 합주할 땐 드럼이 정신 줄 꽉 붙잡고 제일 긴장해야 하는 거야. 왜?”
곽밥이 턱을 쳐들고 묻는다. 나한테 묻는 게 아니라 혼자 흥분한 것 같다.
“드럼이 박자 놓치고 혼자서 갈팡질팡하면 다 엉망이야. 드럼이 빨라지면 얘네들도 같이 허둥대면서 빨리 간다고. 멤버들과 어우러져야만 살아나는 게 드럼이야. 저 혼자 잘나가서도 안 되고 길을 잃어서도 안 되고, 끌고 가면서 힘을 줘야 하는 게 드럼인 거야.”
“예.”
나는 고분고분 대답한다.
키보드를 삑삑 눌러 가면서, 기타 줄을 띠웅 퉁기면서 해나와 녀석들은 고소한 표정이다.
“니들도 마찬가지야 인마.”
“왜 우리까지 싸잡아요?”
동구가 눈에 힘을 주며 대든다.
“그럼, 인마. 니네들이 독주자냐? 밴드는 한 덩어린 거야.”
“누가 모른대요?”
해나가 나를 째려보며 퉁퉁거린다.
“니네들 멤버십은 꽝이야. 짜식들, 아주 기본들이 안 돼 있어.”
멤버십? 저것도 네박사에서 찾아봐야 하나. 뭘 알아들어야 끼어들기나 하지.
“샘은 언제 우리한테 멤버십 보여 줬어요?”
“해나, 너 말 다했어? 여기가 학교 아니라고 선생한테 그런 막말할 수 있어?”
“학교가 뭐요? 학교도 골빈 샘, 밥맛 샘 가지가지거든요.”
“그래, 잘났다 이놈들아.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니네들이 나를 우습게 아는데, 나도 한때는 전설이었어 인마.”
“어른들은 다 그러더라. 툭하면 나도 한때는 전설이었다고. 그걸 어떻게 믿어요?”
“못 믿으면 믿지 말든가. 니네들도 요기서 악기 몇 번 만져 본 걸 가지고 나가서 밴드니 어쩌니 나불대면서 잘난 척할 거잖아, 인마.”
“우리가 뭐 샘 같은 줄 알아요?”
“됐어 인마. 허튼소리들 그만하고 연습해. 시간 날 때 와서 연습하랬더니 안 했지?”
상휘한테 하는 말인지 나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바빴어요!”
상휘의 볼멘소리다.
“나도 너만큼은 바빠, 인마!”
합주 연습을 할 때마다 곽밥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칭찬에 인색하고, 툭하면 인마,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게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주 비행에 곽밥이 없으면 안 된다. 우리끼리 띵땅거리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는지 들로 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지도자는 어딜 가나 중요하다.
“자, 첨부터 다시. 드럼 박자 잘 맞추고, 전자 기타 정신 차리고!”
머릿속에 박아 둔 메트로놈 칩이 한 번씩 말썽을 일으켜 허둥대지만 않는다면 탈 없이 끝까지 갈 수 있다. ‘마법의 성’은 온몸에 스며들 만큼 녹아서 엠피스리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아도 가사까지 완벽하게 살아난다. 거기다 노래를 부를 때 찰랑거리는 해나의 머릿결과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는 어떻고. 정말로 내가 무중력의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낄 땐 내 머릿속에 박힌 앰뷸런스의 경보음도 깨끗이 사라진다.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다. 드럼이 나를 밀어내지 않고 자꾸 친해지는 것 같아 기분 좋다.
공부방 가는 길에도 오로지 드럼만 생각한다. 이젠 길거리에 휘황찬란하게 불 켜진 간판들에 현혹당하지 않고 드럼 박자에 맞춰 흥을 내며 걷는다. 수업 중에는 나도 모르게 볼펜으로 쿵따다닥 리듬을 잡는다. 그러다 콩, 한 대씩 꿀밤을 먹기도 한다. 엉뚱하기는 공부방 선생도 나 못지않다. 대학교 2학년이라는 도우미 선생은 걸핏하면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심하다.
지난 시간엔 엉뚱한 얘기를 꺼내 놓고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너 저번에 텔레비전에서 수능시험 거부하는 애들 피켓 들고 나오는 거 봤냐?”
“못 봤습니다.”
수능이 어떤 건지, 나는 잘 모른다.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이제 겨우 고입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거다. 지금 공부하는 것도 깨우치기 힘들어서 끙끙대는 나를 붙들고 대책 없는 화풀이나 해 대다니.
“나, 그 애들 심정 이해 가. 그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애들도 있어야 이 사회가 건강해지는 거야. 그렇다고 아예 공부를 하지 말란 말이 아니야. 걔네들은 이유 있는 거부를 하는 거잖아. 뭐든 1등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바이벌식 교육 방식을 거부하는 거거든. 교육은 1등만 키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거든. 인간의 가치는 1등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농땡이들이 놀고 싶어서, 게을러서 그런 시위를 하는 게 아니거든. 걔네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거야. 그런 소수의 가치가 자꾸 확산되고 통해야 이 경쟁 사회가 인간을 무시하고 달려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거야. 이미 늙어서 병든 이 지구가 자만의 극치를 달리고 달려서 지구 멸망의 날도 멀지 않았는데 말야. 인간들이 그걸 모른단 말씀이야. 근데 내 얘기가 왜 일루 막 튀고 있냐?”
갑자기 할 말을 잃은 선생이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시 집중해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볼펜으로 딱딱 소리를 내면서 사람 정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신경 쓰여서 문제 풀이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던 선생이 또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런데, 그 극존칭 말투 좀 고치면 안 되냐. 정이 안 들잖아. 내가 완전 노땅 같고.”
노랑머리도 내 말투 때문에 호호 깔깔거렸다. 도대체 왜 남의 말투 갖고 야단일까.
“제 말투가 이상합니까?”
“이상하지. 요즘 고딩들은 어른들한테도 말끝마다 씨불과 좆나를 남발하는데 누가 그런 극존칭을 쓰냐? 촌시럽게. 하긴 나도 고딩 때 그랬지만.”
아무리 그래도 몸에 배서 잘 고쳐지지 않는 걸 어쩌라고. 고향 사투리 쓰지 않으려고 엄청 애쓸수록 이 말투는 더 버려지지 않는다. 잘못 버리려다간 애써 감추고 있는 사투리가 나도 모르게 튀밥처럼 마구 튀어나올까 봐 긴장하게 된다. 그게 문제다.
그런데 궁금하다. 공부방 도우미 선생은 나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지. 그냥 확 불어 버린다고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건가? 선생도 알면서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긴 하다. 궁금하면 나한테 먼저 묻든가. 비겁하다.
내 고민은 언제 우주 비행 멤버들한테 이 일을 확 말해 버리느냐는 거다. 드럼에 빠져들수록 내 고민은 깊어진다. 강제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둘 수도 있지만, 돌이킬 수 없다면 그냥 미친 듯이 앞으로 가는 거다. 그러려면 나도 멤버들에게 감추는 게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떨린다. 밤엔 잠도 오지 않는다.
내가 만약 얘기한다면 걔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거 봐. 내가 첨부터 수상한 놈이라고 했지?”
아직도 나한테 까칠하게 구는 상휘. 안 봐도 뻔하다.
“헤헤헤. 그럼 그렇지. 쪼끄만 게 우리하고는 영 딴 나라에서 온 사람 같더라.”
분위기 파악 안 될 때마다 상휘 뒤에 들러붙는 동구의 반응.
그런데 해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해나는 무턱대고 손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내 뒤통수를 팍 치면서, 어쭈? 놀라서 눈이 동그래질 거다. 그런 다음에는? 상상이 안 된다. 겉으로는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뱉으면서도 제법 누나 행세를 하느라 두 녀석들 편도 들어주는 해나가 어떻게 돌변할지. 곽밥은? 노랑머리가 곽밥과 내통하면서 이미 모든 걸 얘기했을 거다. 알면서도 무심한 척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뚝 떼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내 입으로 발설해 버린다면, 우주 비행과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고아야, 우주의 고아!”
민우 형이 쉼터를 떠나면서 내게 한 말이 아직도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곳 아이들은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연히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애들과 달리 형은 끊임없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내 고향이 마치 비현실적인 곳처럼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상휘 할머니의 기억 속에 있는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 우리 가족이 도망치듯 떠나온 곳, 그렇다고 사라지거나 지워 버릴 수 없는 곳인데, 나는 아직 아이들에게 내 고향이 북쪽이라는 걸 말할 자신이 없다.
“나는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거야. 이쪽 아이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이 나라의 고아일 뿐이지만, 나는 어느 나라 고아인지 그것까지 고민해야 돼.”
그래서 민우 형은 늘 자신을 우주의 고아라고 말했다. 그땐 민우 형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이젠 매순간 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연습실에서 아이들과 신 나게 연주를 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문득 나에게 묻게 된다. 너는 이 아이들과 같은 나라 사람인가? 그때마다 서늘한 바람이 내 등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다.
2
나쁜 일은 예고 없이 불쑥 들이닥친다. 누나 행방이 묘연해졌단다. 어머니와 나는 언제 생길지 모르는 고난에 단련된 사람인데도 그 소식은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텔레비전 뉴스를 봐도 한국의 정치나 사회 돌아가는 소식은 영어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모르겠고 골만 아프지만, ‘탈북’이나 ‘북한’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만 나오면 내 눈은 저절로 텔레비전 화면에 붙들린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출근하기 전까지 깨어 있을 때는 뉴스만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탈북에 관한 뉴스만 나오면 어머니 얼굴은 단박에 어두워진다.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왔다는 사람들의 소식보다 중국 공안에 잡혀 북으로 강제 송환된 사례들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어머니 얼굴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떠들어 대면 안전을 누가 보장해. 한번 당해 보라. 당사자가 아니믄 그 속을 어째 아네. 몸값만 잔뜩 올려놔서리 나와도 알거지처럼 살아야 하는데 어째 저리 남의 속도 모르고 국제적으로 떠들어 대.”
어머니가 그런 소릴 할 때면 나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중국에서 북송당한 경험이 있는 어머니가 제일 걱정하는 것도 누나가 북송을 당하는 일이다. 예전보다 북송의 대가가 더 혹독하다는 소식도 우리를 두렵게 한다. 어머니는 교화소에서 노동 교육을 받고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왔지만, 이제 누나가 북으로 잡혀간다면 영영 얼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가슴 졸이며 복씨 아저씨를 통해 저우판 아저씨와 조용히 접촉하는 것도 다 누나의 신변이 위험해질까 두려워서다.
밴드부 연습실에서 혼자 드럼 앞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다가오고 있는지 몰랐다. 그 시간 어머니는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새벽에 들어온 어머니가 깊이 잠들었을 때 혼자 늦은 아침을 챙겨 먹고 집에서 나왔으니까.
연습실은 다른 때보다 훨씬 깊게 느껴진다. 봄 햇살이 나른한 아파트 마당을 가로질러 올 때 똥색 소파 위에 게으르게 늘어져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서 녀석 참 부럽다,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드럼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툭툭툭 스틱으로 스네어 드럼을 먼저 때려 본다. 그러다 간신히 리듬을 잡았는데 다른 때보다 감이 떨어져 연습하는 재미가 덜하다. 이럴 때가 있다.
혼자 드럼을 치다가 어느 순간 동작을 딱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때 아주 짧은 찰나에 스쳐 가는 느낌도 기분이 나쁘다. 중국에서 제3국으로 가기 전에 어머니와 갇혀 있던 중국인 할머니네 골방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거다. 햇빛이 들어오는 조그만 창이 하나 뚫려 있었을 뿐, 전깃불도 없는 골방에서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 보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 우리 집처럼 내 물건이 있고, 어머니의 체취가 있고, 익숙한 집기들이 있고, 언제든 내 맘대로 드나들 수 있다고 보장된 곳이 아니라면 밀폐 공간은 앰뷸런스의 경보음처럼 불쑥불쑥 나를 두려움에 몰아넣는다. 그 찰나의 순간에 언제나 떠오르는 건 누나다.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 몇 사람만이 알고 있는 ‘어떤’ 장소에 누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드럼이고 뭐고 때리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그래서 연습실을 나왔다. 겨우 30분쯤 연습실에 있었다. 집에 가서 물이라도 한잔 먹든가, 빈둥거리다 오든가, 연습에 신명이 붙지 않을 땐 연습실을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집 안 공기가 심상하지 않다.
“대체 이 일을 아저씨가 모르면 누가 압네까?”
전화 통화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겁에 질려 있다. 순간적으로 누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고 간다. 차분한 성격의 어머니가 허둥대며 통화를 할 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붙든 채,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다.
“무슨 일 났습네까?”
내 말에 대답은 없이 어머니는 갑자기 전화를 뚝 끊는다. 그러곤 다짜고짜 옷을 주워 입는다. 파자마 차림으로 바짓가랑이에 다리를 끼워 넣느라 헛발질을 한다. 대충 바지를 껴입은 어머니가 웃옷을 꿰며 현관으로 달려 나간다. 나는, 휘청거리며 자꾸만 고꾸라질 듯한 어머니를 부축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이 일을 어쩌네, 이 일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머니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아파트 마당을 가로질러 어머니는 3동으로 들어가더니 복씨 아저씨네 집 문을 쾅쾅 두드린다. 복씨 아저씨가 문을 연 순간 어머니는 나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복씨 아저씨는 소주 한 병을 놓고 마시고 있던 참이다. 어머니가 상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전화로 한 말이 무슨 말이오. 말해 보시라요. 우리 예림이, 예림이 행방이 묘연해졌다니…….”
어머니가 덜덜 떤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내 몸을 확 덮친다. 어머니 옆에 우두커니 선 나도 어머니처럼 떨고 있다.
“말했잖소. 나도 그놈한테 전화질 숱해 해 봤다고. 그놈도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니 조만간 예림일 찾으면 연락 준댔소. 그러니 기다려 보자고요.”
아저씨가 말하는 그놈이란 저우판 아저씨를 얘기하는 거다. 아저씨는 이 마당에도 비어 있는 잔에 술을 따른다. 어머니가 아저씨 손에 들린 술잔을 뺏듯이 잡아챈다.
“어째 기다리란 말만 하오. 내가 물어보지 않았으믄 입 꽉 다물고 나한테 거짓부렁 하고 있을 생각이었잖습메까.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만, 이렇게까지 사람 애간장을 말릴 순 없단 말이지. 우리가 어케 여기까지 왔습네까. 우리한테 어케 이렇게까지 속일 수 있습네까. 말 좀 해 보시라요. 지금 태평하게 술이 들어갑네까? 우리 예림이, 예림이…….”
술잔을 바닥에 탁 내려놓은 어머니가 가슴을 탕탕 친다. 복씨 아저씨가 천장을 향해 허,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예림이 신원을 지켜 준다해서리 월급 받은 걸 다 털어 게지고 아저씨 이름으로 중국으로 보냈잖습네까. 우리 예림이가 어찌 된 줄도 모르면서 거짓부렁으로 돈 부치라 했소? 그놈하고 짜고선 돈을 빼돌렸시오?”
어머니의 말이 널뛰듯이 마구 흔들린다.
“말조심하오. 내가 개망나니 사기꾼인 줄 아오. 나도 수십 번 전화질을 했댔소. 어케 이렇게 됐는지 나도 몰라!”
아저씨가 술병으로 바닥을 탁 치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짐승의 눈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저씨 눈알이 희번덕거린다.
“몰라? 기럼 누가 압네까. 사람 속 터져 죽는 꼴 봐야 말을 하갔습네까?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승규래 넌 알잖니? 옆에 끼고 있는 너 학원도 못 보내고 모은 돈이야. 잠 한숨 안 자고 밤에 술손님 시중드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인 줄 압네까.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믄…….”
어머니 숨이 꼴깍 넘어간다.
나는 부르르 주먹을 쥔다. 이럴 때 내가 열일곱, 아니 열아홉 살밖에 안 됐다는 게 억울하다. 미친 사람 행세로 멀쩡한 사람 가슴을 도려내는 복씨 아저씨를 발로 확 걷어차 버리고 싶지만, 나는 꼼짝도 못한 채 부르르 떨고만 있다.
“나를 몽둥이로 개 패듯이 때리든지 죽이든지 맘대로 하라. 지금 여기서 나 쥐고 흔들어 봐야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어.”
“우리 예림이 찾아내오. 그 아일 찾지 못하면 가만있지 않을 거요. 내가 그놈을 찾아가서리…….”
가슴을 쳐 가며 우는 어머니를 겨우 달래 아저씨 집에서 나왔다.
복씨 아저씨네 집에서 나온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던 어머니는 악착같이 출근한다.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겨우 집을 나서는 어머니는 마치 헛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멍하게 앉아 있던 나는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온다. 막 어머니가 올라탄 버스가 떠나고 있다. 나도 버스를 따라 뛰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겠다는 생각은 없다. 머릿속에서 앰뷸런스가 운다. 누나가 식당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있다는 소식만 믿고 있었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 뛰다가 나는 우뚝 멈춰 선다. 어머니가 탄 버스가 사라지고 나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어머니도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일 거다.
나는 무작정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민우 형뿐이다. 서울은 그리 먼 곳이 아니다.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곳도, 가고 싶은 곳도 민우 형이 있는 곳밖엔 없다. 그동안 왜 형을 찾아가 볼 생각을 못했던 건지.
버스를 타고 형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형은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반가워한다.
“야, 오랜만이다야. 어쩐 일이냐?”
시끄럽게 끓는 소음 때문에 형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형이 보고 싶어서요.”
보고 싶었다. 아무한테나 하는 말이 아니다. 보고 싶다는 말은, 생각보다 쉽게 나오지 않고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절박한 순간이 왔을 때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온 거다.
전철 1호선에 올라탔을 때야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호선으로 갈아타고 형이 일하고 있다는 홍대역으로 가면서 나는 또 다른 국경을 넘는 기분이다. 뇌세포처럼 얽혀 있는 지하철의 노선도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공포보다 이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감이 나를 치고 들어온다. 쉼터 아이들과 전철로 나들이를 하고, 지하철 이용하는 법을 공부했지만, 그때는 옆에 의지할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호선에서 내려 형이 말한 입구를 찾아 지상으로 나왔을 때,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춤을 추다 말고 형은 거인처럼 나를 맞는다. 상체를 숙여 털이 달린 짐승의 긴 팔을 내민다.
“반갑다야, 반가워.”
형은 내 손을 잡고 오래 흔든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형과 나를 쳐다본다. 내 손을 놓자마자 형은 쾅쾅거리는 음악에 맞춰 다시 춤을 춘다. 나는 거인 왕국의 기린이 춤을 추는 모습을 턱을 쳐들고 올려다본다. 형은 팔다리를 꺾고, 턴을 하고 앞뒤로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둔하지만 절도 있게 마디를 꺾어 춤을 춘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내 머릿속에 그려 보던 형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형은 그 거리 앞을 춤을 추며 오간다.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모를 사람들이 파도처럼 몰려다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손을 내밀면 형은 손을 뻗어 악수를 한다. 두 손을 활짝 펴 팔랑팔랑 흔들기도 하고,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귀여움을 떨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사이 춤을 추고, 그러는 사이사이 가게 선전을 한다.
“어머, 웃긴다야, 나는 저런 캐릭터는 딱 밥맛인데.”
빨대로 커피를 쪽쪽 빨면서 지나가는 여자들의 말소리가 내 귀에 꽂힌다. 그래도 형은 아랑곳없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거리의 키다리 피에로.
형은 홍대 앞의 유명한 선전 용사가 되어 있다.
거리에서 형을 만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앉아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가게 뒤로 돌아가자 비닐로 엉성하게 칸막이를 쳐 놓은 좁은 공간이 나온다. 형은 두 다리를 쭉 뻗고 앉는다. 항공모함처럼 생긴 크고 단단한 신발이 달린 긴 다리가 비닐 문 끝에 닿는다. 형이 내게 간식으로 나온 햄버거를 하나 건넨다.
“형, 행복해요?”
형이 웃는다. 줄무늬 페인팅으로 분칠한 얼굴은 영락없는 기린이다. 머리칼이 땀에 젖어 축축하게 이마에 들러붙었고, 눈을 끔뻑일 때마다 속눈썹이 아래위로 맞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행복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한 거지.”
형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형이 바지를 걷어 올려 로봇처럼 사다리가 달린 모형 다리를 보여 준다. 여덟 시간 동안 길거리에 서서 춤을 추고 옷을 벗을 때야 신발을 벗을 수 있다고 한다. 형은 우걱우걱 햄버거를 욱여넣는다. 입을 크게 벌릴 때마다 분칠한 입이 가로로 쭉 찢어져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거리에서 일하는 게 정말 형이 좋아하는 일입니까?”
“춤추는 거니까.”
“사람들의 구경거리잖습니까?”
“어쨌든 내 춤을 구경하는 거잖아.”
간식 시간이 지나자 형은 다시 길거리로 나가 춤을 춘다. 밀림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번쩍거리는 간판 불빛과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어지럼증이 인다. 이리저리 사람들에 휩쓸리며 나는 그 거리를 헤맨다. 그 거리 어디에서나 형은 눈에 띈다. 2미터 가까운 거인 피에로. 지치고 피곤해도 형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사람들과 악수한다. 형의 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끌지만, 내 눈엔 가짜 키를 높인 우스꽝스러운 피에로일 뿐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기분이 아니다. 일이 끝난 형에게 하룻밤 신세를 지겠다고 하자 형이 묻는다.
“어머니랑 싸우고 나왔냐?”
“아닙니다.”
“얼굴엔 무슨 일이 있다고 씌어 있어.”
형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웃는다.
형의 집은 비탈진 골목에 있다. 일곱 칸의 시멘트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가자 조그만 알루미늄 새시 문이 나온다. 형은 어깨를 숙여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은 눅눅하고 어둡고 우리 집보다 좁다. 이곳에서 남자들만 넷이서 산다고 한다. 두 칸짜리 방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나는 널린 옷가지들을 대충 치우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앉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여긴 내 집 아니야. 아무나 형편 되는 대로 들어와 살면 되는 기야.”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난 형편 맞는 사람들끼리 방값을 내고 같이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일정한 주거 없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따라다니며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일도 그런 식으로 구한다. 형과 같이 사는 친구들은 행사장 아르바이트를 맡아 지방에 내려갔다고 한다.
“유목민처럼 사는 거이지, 이게.”
“형이 이쪽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압네까?”
“여기 아이들, 기딴 건 관심도 없어.”
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형이 말한 유목민이란 말이 목에 걸린다. 형의 말마따나 형은 한곳에 정착을 못하고 우주의 고아처럼 떠돌고 있다는 말이다.
“저는 잘 안 됩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인데, 자꾸 걸려서리.”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남들이 묻지 않는 걸 혼자 오래 고민하고 있어 봤자 괴롭기만 하지. 나도 이젠 기딴 거 생각 않고 내 생각만 하기로 했어.”
정말 형은 그렇게 생각할까?
“너, 고민이 그거네?”
형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누나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런 문제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니가 보기엔 내가 길거리에서 팡팡 터지는 음악에 춤이나 추면서 선전하는 일에 괴로움도 없는 것 같지? 나도 너만큼이나 고민하고 살아.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버리지 않고 잊지 않는 줏대는 하나 있어. 그건 내 고향을 잊지 않는 거고, 가슴속에 깊이 묻어 둔 걸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땀 흘리면서 열심히 사는 거야. 그러다 보면…….”
형은 침대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맨발을 내게 보여 준다. 엄지발가락 아래 불룩 튀어나온 발바닥이 거친 굳은살투성이다. 발가락뼈 마디들도 툭툭 불거졌다. 얼마나 시멘트 바닥을 비비며 춤을 추면 발이 저렇게 될까. 형의 발은 험한 길을 오래 행군한 사람처럼 거칠다.
“이까짓 춤, 안 춰도 살 수 있어. 길거리에서 춤추면서 사는 거, 누가 인정해 주냐. 여기 아이들 중엔 나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재주도 좋고 운도 좋은 애들이 많아. 내 춤을 보고 족보도 없는 춤이라고 놀리기도 해. 근데 내가 왜 춤을 추느냐면……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는 목숨이니까……. 나는 그게 신기해.”
형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부엌으로 나가 라면 끓일 물을 올린다.
“춤을 추든 자동차 정비를 하든, 중국집에서 배달을 하든 줏대만 있으면 돼. 그거면 부끄러울 거 없어. 너는 부끄럽네? 남보다 못한 거 같아서? 그건 개나 물어 가라 기래.”
형은 짐짓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자신감 속에 외로움이 묻어난다.
라면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 형과 한 이불을 덮고 누웠다. 낯선 방이라 잠이 오지 않는다. 누나 걱정이 새삼 덮쳐 온다. 나는 자꾸 몸을 뒤척인다. 누나 때문에 몸도 가누기 힘들어하던 어머니가 식당에 나간 걸 생각하면 울컥울컥 누구에겐지 모를 울분이 북받친다.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이 울분을 어디다 뱉어야 할지 알 수 없다.
“누나 행방이 묘연해졌담다.”
나는 어두운 천장을 빤히 바라보다 숨을 크게 내쉬며 말한다. 가슴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돌아누워 있던 형이 내게로 몸을 돌린다.
“그것 때문에 얼굴이 어두웠구나. 흠!”
민우 형도 한숨을 내쉰다.
“승규야!”
“예.”
“내가 처음으로 국경을 넘은 게 열다섯 살 때야. 길림성에서 떠돌아다니다가 고향으로 가고, 고향에서 다시 중국으로 나오고 두 번이나 기랬지. 나도 기때 북송을 당했더랬어. 긴데 어리니까 기냥 놔준 기야. 배곯아 죽는 것에 비하믄 기깟 북송당하는 것쯤 하나도 안 무서웠지.”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도 북송을 당해 봤지만, 우리처럼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간 경우, 누나가 중국 공안에 잡히면 치명적이다. 어머니가 두려워하는 것도 그거다.
“두 번째로 중국에 나왔을 땐 생각이 좀 달랐어. 국경 근처 들판에서 잠을 잔 적이 있는데 여름인데도 추웠지. 배가 고팠으니 아마 춥게 느껴졌을 기야. 긴데, 저 먼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데, 내 눈에 화살처럼 박히는 것 같았어. 어찌나 빠른지 눈 깜빡할 새에 떨어진 기야. 기때 눈을 깜빡거리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지. 저 별똥별이 있는 데를 찾아가 보자. 일단은 거기까지 가 보자.”
형이 쿡쿡 웃는다.
“기땐 무작정 걸었어.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쳤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주저앉아 있다간 영원히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기야.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살아 있잖아. 그게 신기해. 죽었다 생각했는데.”
형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민우 형이 국경을 넘나들 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 국경을 넘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민우 형이 겪은 어둠 속을 내가 지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내겐 어머니가 있고 누나가 있었다. 가족이 아니었다면 나는 민우 형처럼 나 홀로 국경을 넘을 생각은 꿈에도 품지 못했을 거다.
“나는 기때부터 국경에서 아주 멀리, 중국 내륙 깊은 곳으로만 들어갔댔어. 살려고 말이야. 나는 혼자였지만, 너희 누난 가족이 있잖네. 어머니가 누날 구해 낼 거잖아. 기러니 너무 걱정 마.”
나는 형의 말에 참고 있던 숨을 훅 내쉰다. 뜨거운 것을 가라앉히느라 이를 악문다. 형의 말대로 누나는 혼자가 아니다. 누나가 그걸 잊지 않고 견뎌 줬으면 하고 빌 뿐이다.
“형!”
“생각은 내일 하고 그만 자라.”
형이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돌아눕는다.
그냥 한번 불러 봤다. 낯선 방이라 통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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