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그러니까 시작은 내가 쥘트 섬의 리스트에 있는 피쉬고쉬에 서서 예퍼 맥주를 병째 마시는 데서부터다. 피쉬고쉬는 해물요리 노점인데, 왜 그리 유명한가 하면, 독일 최북단의 해물요리 노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쥘트 섬 최북단 곶, 바닷가 바로 앞에 있다. 사람들은 거기로 국경선이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해물요리 노점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거기 피쉬고쉬에 서서 예퍼 맥주를 마시고 있다. 좀 춥고 서풍이 불어서, 안감을 넣은 바버 재킷을 걸친 채로 나는 마늘소스를 얹은 새우 요리를 벌써 두 접시째 먹는 중이다. 첫번째 접시를 먹고 이미 속이 울렁거렸는데도 말이다. 하늘이 파랗다. 때때로 두꺼운 구름이 해를 가린다. 좀 전에 카린을 다시 만났다. 우리는 살렘 시절부터 이미 서로 아는 사이다. 비록 그 당시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리고 나는 그녀를 함부르크의 트락스와 뮌헨의 P1 바에서 몇 번 더 만났다.
사실 카린은 아주 멋있어 보인다. 금발의 단발머리도 그렇고. 내 취향에는 손톱의 금색이 약간 과하긴 하지만, 그래도 웃는 모습, 목덜미에서 머리카락을 젖히는 모습, 뒤쪽으로 가볍게 몸을 기대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잠자리에서도 틀림없이 훌륭할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샤블리 와인을 적어도 두 잔은 마셨다. 카린은 뮌헨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적어도 그녀 말로는 그렇다. 그런 거야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녀도 바버 재킷을 입고 있다, 다만 색은 파란색이다. 우리가 바버 재킷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녀는 말했다, 녹색은 사지 않겠노라고. 외투가 닳았을 때는 파란색이 더 보기 좋기 때문이란다.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 나는 내가 입은 녹색 바버 재킷이 더 마음에 든다. 닳아빠진 바버 재킷이라니, 그건 아무 소용없지. 이게 무슨 말인지 나중에 설명하겠다.
카린은 자기 오빠의 감색 S 클래스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고 왔다. 오빠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선물거래업을 하고 있다. 그녀 말이, 메르세데스는 엄청나게 빨리 달리고, 카폰이 있어 좋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근본적으로 메르세데스가 좋지 않은 차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녀는 오늘 저녁에 틀림없이 비가 올 거라고 하고, 나는 “아니, 틀림없이 안 올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포크로 작은 새우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이 새우들을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 카린은 눈이 상당히 파랗다. 컬러렌즈를 낀 건 아닌지?
이제 그녀는 고티에 얘기를 한다. 고티에는 더 이상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면에서 말이다. 그리고 크리스티앙 라크루아가 훨씬 낫다고 한다. 라크루아가 그렇게 멋진 색깔들을 사용한다나 뭐라나. 나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피쉬고쉬에서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이미 주문한 무슨 조개 요리를 받아 가라고 마이크로 외쳐대고 그 소리 때문에 자꾸만 딴생각이 난다. 그 조개들 중 하나가 상해서, 오늘 밤 샤블리를 마셔대는 어느 가난한 술꾼이 살모넬라 혹은 뭐 그런 종류의 감염이 의심되는 지독한 복통으로 병원으로 실려 가는 상황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이 떠오르자 싱긋이 웃지 않을 수 없는데, 카린은 지금 막 한 농담에 내가 웃는다고 여기고 자기도 나를 보며 싱긋이 웃는다. 앞서 밝혔듯이, 내가 그녀 이야기를 전혀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이고, 카린이 계속 이야기하는 동안, 검은 사냥개 한 마리가 아주 조그만 금색 소가 붙어 있는 개목걸이를 하고 어느 테이블 옆에서 커다란 똥줄기를 뽑아내는 것을 관찰하고 있다. 그 개는 괴상하게도 반쯤 서서 똥을 싸고 있는데, 똥의 4분의 1쯤이 개 엉덩이에 붙어 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다.
난 또다시 싱긋 웃지 않을 수 없다. 아까 먹은 새우가 어쩐지 맛이 이상해서 이제 정말 속이 거북해졌는데도 말이다. 나는 카린의 말을 끊고 캄펜으로, 거기 있는 오딘 바로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녀는 그러자고 하고, 난 사실 예퍼가 전혀 입에 맞지 않았지만 남은 맥주를 다 마시고, 함께 그녀의 자동차로 이동한다. 지금은 나의 좁은 트라이엄프 자동차에 탈 생각이 전혀 없어서.
그녀가 열쇠로 차 문을 열고, 우리는 차에 탄다. 차 안에서 아직도 새 차 냄새가 난다. 가죽 냄새. 그녀가 출발하는 동안 나는 차창 밖으로 담배를 내던진다. 새 차 냄새를 없애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지 않기도 하고. 그녀는 카세트테이프를 한 개 끼워 넣는다. 스피커에서 스냅의 아주 시원찮은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그녀는 폴크스바겐 골프 한 대를 추월한다. 그 차에는 꽤 예쁜 여자애가 타고 있다. 나는 선글라스를 쓴다. 카린은 뭔가를 얘기하고, 나는 차창 밖을 내다본다.
도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쥘트 섬 풍광이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스쳐가고, 나는 쥘트도 따지고 보면 끝내주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늘은 아주 넓고, 나는 마치 이 섬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섬 아래 혹은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지금 제대로 표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내 느낌이 틀릴 수도 있지.
카린은 캄펜에 거의 다 와서 갑자기 우회전을 하더니, 누드 비치인 부네 16 주차장 쪽으로 들어간다. 나는 생각한다. 어라, 이제 뭐 하자는 거지? 우리는 포르셰와 재수 없는 레저용 차량 사이에 주차한 후 내린다. 내가 선글라스 너머로 카린을 약간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녀는 내가 방금 차 안에서 그녀 말을 듣지 않았음을 눈치챈다. 그녀는 다시 그녀 특유의 방식으로 예쁘게 소리 내어 웃더니, 우리가 캄펜에 가기 전에 세르지오와 안네를 픽업해야 하는데 그들이 지금 해변에 있고, 그 둘이 아까 휴대전화기로 그녀에게 전화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벤츠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고, 나는 휴대전화기가 그곳 해변에서 모래와 소금물 때문에 상당히 더러워졌겠다고 생각한다. 카린이 주차요원 손에 몇 마르크를 쥐여주고, 우리는 나무 다리 위로 모래언덕을 넘어 해변으로 간다. 비바람에 상한 나무 널빤지 위를 걷는 동안, 카린은 뮌헨에 있는 슈만스 바 이야기를 하며 거기서 최근에 막심 빌러를 알게 되었는데, 그가 얼마나 재기에 번뜩이는지, 약간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거기서부터 나는 더 이상 듣지 않는다. 갑자기 나무 널빤지와 바다의 냄새가 코를 찌르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여기에 왔던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쥘트에서의 첫날은 이 냄새가 언제나 가장 좋은 냄새였다는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했기에 바다 구경을 앞두고 잔뜩 설레 있는데 나무 널빤지가 햇살을 받아 따뜻한 향기를 뿜어내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친근한 냄새였고 뭔가 희망적이고, 글쎄, 따뜻했다고 할까. 지금 다시 그때 그 냄새가 난다. 나는 거의 울 것만 같아 얼른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 바버 재킷 소맷부리로 이마를 닦는다.
이 모든 게 상당히 민망하다. 하지만 카린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막 해변 관리인과 상대하고 있는 중이다. 관리인은 이곳 해변으로 들어오려는 재수 없는 은퇴 노인들에게 휴양관광 이용권을 보자고 하고 있는데, 카린은 그 남자에게 우리 두 사람 일일 이용권 값으로 12마르크를 지불한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하려다가 그냥 가만히 있는다.
하늘에서 해가 따갑게 내리쬐기 시작한다. 더워진다. 카린도 더운 모양이다. 그녀는 바버 재킷을 벗고 스웨터도 벗는다. 그 스웨터는 정말 예쁘다. 카렌은 그 아래 그저 보디 슈트 한 장을 입었을 뿐이다. 나는 그녀의 가슴이 상당히 크고 단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가슴을 보고 있는 걸 그녀도 안다는 느낌을 받는다. 햇살이 그렇게 따가운데도 바람은 여전히 꽤나 차서 그녀의 유두가 약간 도드라져 있다.
나도 바버 재킷과 윗옷을 벗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다. 선글라스를 가져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바닷바람이 뒤로 빗어 넘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앞쪽으로 쓸어내린다. 밝은 갈색의 앞 머리는 꽤 길어서, 완전히 앞으로 늘어뜨리면 턱까지 내려온다. 그 순간, 틀림없이 바버 재킷 안쪽 주머니에 헤어젤이 아직 조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언제 그걸 사용해야 민망한 모습으로 비치지 않을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리는 이제 거의 해변에 도착했다. 좌우로 모래언덕이 있고, 여기저기 야생풀과 갯보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마치 지상의 파도처럼 보일 정도다. 우리 머리 위로 바다 갈매기들이 선회한다. 나는 괴링의 일을 생각한다. 그는 이곳 쥘트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한번은 여기서 피와 명예의 단도*를 잃어버렸다. 언덕 한가운데서 대단한 수색작전이 펼쳐졌고, 큰 상금이 걸렸다. 마침내 그 단도가 나왔는데, 찾은 사람은 보이 라르센인가 뭔가 하는 젊은 농부였다. 그때는 그랬다. 모래언덕에 오줌을 누다가 그 재수 없는 단도를 잃어버린 뚱뚱한 괴링 때문에 모두들 죽도록 웃었는데, 다만 보이 라르센만 웃지 않았다. 상금을 챙겼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다음에야 그는 진심으로 웃었으리라.
* ‘피와 명예’는 1926~45년까지 독일국가사회주의청소년단 히틀러유겐트의 모토로 독일 순혈주의와 민족주의를 상징한다. 히틀러유겐트는 이 말을 단도의 날에 새겨 소지했다.
보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니, 여기 이 북쪽 지방 쥘트에서만 사람들 이름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여기가 더 이상 독일이 아니고, 독일과 영국의 중간 지점이라도 되듯이. 여기 쥘트 섬에는 고사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영국인들은 전쟁 후에 이곳에 오래 주둔했고, 나는 소년 시절 베스터란트** 부근에 마지막으로 남은 독일군 벙커 속에서 놀았다. 그사이에 그 벙커는 폭파됐을 것이다.
** 쥘트 섬의 지역명.
해변가 저 앞쪽에,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의 해변용 벤치에 세르지오와 안네가 앉아 있다. 난 그들을 바로 발견한다. 안네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언젠가 P1에서 그녀를 낚아보려 했지만 만취해서 토하느라고 실패하고 말았다.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쨌든 내 생각에는 그랬다. 카린과 나는 파라솔이 달린 해변용 벤치를 향해 간다. 우리는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지만, 안네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니면 알아보지 못하는 척하는 것이든지. 둘은 샴페인 두 병을 옆에 두고 있고 우리에게 플라스틱 잔 두 개를 건넨다. 카린이 안네와 이야기하니 나는 세르지오와 대화를 시작한다. 세르지오, 그는 언제나 분홍색 랄프 로렌 셔츠를 입어야만 하고 거기에 오래된 롤렉스를 착용해야 하며, 지금처럼 바짓단을 접어 올린 채 맨발 차림으로 있지 않았다면 알덴 슬리퍼를 신었을 법한 그런 남자이다. 나는 그걸 금방 알아차린다.
무슨 말인가 해야겠기에 나는 이따가 비가 올 거라고 하고, 세르지오는 날씨가 틀림없이 이대로 갈 거라고 한다. 나는 그의 말에 외국인 억양이 들어 있음을 눈치채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콜롬비아에서 왔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화제가 동이 나고 세르지오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니, 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리고 우선 내 손톱 끝을 보고, 다음으로 바다를 본다.
예전에 쥘트에서 휴가를 보내던 우리 같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들려준 비밀이 하나 있다. 저 멀리, 베스터란트 앞, 오늘날 그 거대한 북해가 있는 곳에, 룽홀트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었다. 이 도시는 옛날에 쥘트 섬의 일부였다. 200년 전쯤 거대한 해일이 몰려와서 모든 것을 바닷속으로, 반짝이는 한스 속으로 쓸어 가기 전까지 말이다. 그때는 북해를 그렇게 불렀으니까. 어쨌든 당시 주민들은 모두 익사했고, 그 사건의 비밀이란, 서풍이 불 때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바닷속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를 알리는 룽홀트 교회탑의 종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는 언제나 우리를 커다란 공포에 빠뜨렸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종종 밤에 해변으로 가곤 했다. 귀를 해변 모래에 바짝 붙이고 그 소리를 들어보기 위해서.
그사이에 세르지오는 휴대전화기를 집어 들고 누군가와 스페인어로 통화하면서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당혹스러운 나머지 카린과 안네 쪽으로 몸을 돌린다. 우리 셋은 모두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듯, 로드레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그게 너무나 우스워 보였는지, 다시 카린은 견디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는다. 나는 카린을 꽤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자리를 떠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카린과 나는 그녀의 메르세데스에 오르고 세르지오와 안네는 랜드크루저에 오른다. 우연히도 우리는 아까 그 차 옆에 주차했던 것이다. 안네와 카린은 상당히 취기가 올랐지만 그냥 그대로 출발한다. 나는 카린에게 오늘이 쥘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고 내일 떠날 것이라고 한다. 카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쉽네,라고 말하며 나를 쳐다보고 미소 짓는다. 정말 아름다운 미소다.
캄펜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고 얼마 안 되어서 그녀는 하마터면 도로를 건너오면서 자동차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한 어느 은퇴 노인을 차로 칠 뻔한다. 그 은퇴 노인은 작은 코듀로이 모자를 쓰고 가지색 점퍼를 입고 있는데, 마치 북구 신화 속의 광포한 전사처럼 우리 뒤에다 대고 욕을 퍼붓는다. 나는 카린에게 그가 틀림없이 나치일 것이라고 하고, 카린은 소리 내어 웃는다.
우리는 위스키슈트라세로 꺾어 들어간다. 해는 이미 하늘에 낮게 걸려 위스키슈트라세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마도 이 거리 이름이 위스키슈트라세인 것은 많은 술집들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해가 비스듬히 거리 위로 비칠 때 거리가 금빛 노란색으로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주 상당히 취기가 올랐나 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우리는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오딘으로 간다. 도중에 카린의 손이 아주 짧게 내 손을 쓰다듬고, 나는 주체할 수 없이 기침을 한다.
아직 이른 저녁인데도 오딘은 발 들여놓을 틈 없이 꽉 차 있다. 보통 여기는 밤 11시, 11시 반이 되어야 자리가 다 차지만 오늘은 벌써 만석이다. 카린은 이 바 여주인을 개인적으로 아는데, 그녀가 상냥하게 손을 흔들고는 웨이터 한 사람을 우리에게 보낸다. 오딘에서 서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잘생기고 피부가 갈색으로 그을려 있으며 언제나 대단히 쾌활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 바에서 키우는 개는 막스라는 이름의 어두운 갈색 래브라도인데, 카린은 오딘에 오면 언제나 그 개에게 롤빵을 하나씩 주는 모양이다. 그 개는 그걸 이미 알고 있다. 저기 그 개가 벌써 수많은 사람들의 다리를 스치며 뛰어와 카린이 개에게 주려고 들고 있는 롤빵을 낚아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로드레 두 병을 주문하고, 술이 오자 우리는 각자 한 잔을 단숨에 비운다. 바 뒤에서 누군가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를 틀고, 음악이 그렇게 흐르고, 막스가 빵을 씹고, 밖에는 해가 지고 있으니, 난 갑자기 망할 놈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렇게 즐거워하니 내 얼굴에 바보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것을 보고 안네도 슬며시 미소 짓기 시작하고 그러자 이제는 카린도 슬며시 웃고 심지어 세르지오마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오딘은 점점 손님이 많아져 너무 붐빈다. 옆 테이블에 세 남자가 서서 상당히 큰 소리로 자신들의 페라리 테스타로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 모두 카르티에 시계를 차고 있고, 그들의 겉모습을 보면 골프를 친다는 것을 그냥 알 수 있다. 그들에게서는 서른 이후에 나타나는 어떤 둔중함, 갈색으로 그을린 호감이 가지 않는 둔중함이 느껴진다. 그중 한 사람은 계속 코 주위를 비벼 닦다가 거의 10분에 한 번씩 화장실로 사라지고 그러고 나서는 아주 상쾌해진 기분으로 돌아와서 손바닥을 치며, 야, 최고야! 따위의 말을 한다.
카린과 나는 서로 쳐다본다. 그리고 카린이 눈을 돌린다. 어쩐지 가는 게 낫겠다. 세르지오, 안네는 여기 있겠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과 작별한다. 그리고 나는 세르지오 앞에서 폼 잡기 위해 로드레 두 병 값을 지불한다. 그런 행동이 곧바로 지독히 민망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나는 곧바로 우리가 가지고 갈 세번째 병을 사고, 바 여주인은 프랑스에서 하듯이 카린의 볼에 세 번 입을 맞추고 샴페인 잔 두 개를 준다.
카린과 나는 그녀의 차로 걸어간다. 그러는 도중에 어느 만취한 남자가 터키옥색 포르셰 카브리오를 열려고 하다가 차 문에다 토하는 것을 본다. 난 재빨리 번호판을 본다. 뒤셀도르프의 D자다. 아하, 광고업자구나,라고 생각한다. 한번 상상해보라. 터키옥색 포르셰라니.
맞은편 노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모두 보고 악의적으로 웃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 하요 프리드리히*의 모습도 보이는 것 같다. 그가 그사이에 얼굴 살이 많이 쪘다고 들었기에 완전히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나는 카린에게 그녀가 상당히 취했으니 내가 운전해야 하지 않을까 묻지만, 그녀는 아니라며 아직 충분히 운전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조수석에 앉고, 이제 또 가죽 냄새가 나고 향수 냄새도 약간 난다.
* 독일의 언론인, 뉴스 진행자(1927~1995).
카린이 출발해 운전하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나는 듣기 위해 애를 쓰지만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그녀를 옆에서 뚫어져라 쳐다본다. 컬러풀한 에르메스 머플러는 그녀의 갈색 목과 대비되어 두드러져 보이고, 핸들 위에는 갈색으로 그을린 그녀의 팔이 놓여 있다. 금빛 잔털로 뒤덮인 팔. 나는 언젠가 소년 시절 캄펜 해변에서 작은 소녀 옆에 손수건을 깔고, 그 애와 나란히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 어린 소녀가 잠이 들었는데, 나는 그 애의 팔 위에 흰 모래를 흩뿌리며 팔에 난 솜털에 고운 모래 가루가 고이는 것을 관찰했다. 그 때문에 그 애는 잠이 깼고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함께 색색의 플라스틱 삽으로 바닷가에 모래성을 지었다. 난 오렌지색 삽을 갖고 있었지. 그걸 나는 여전히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카페 쿱퍼칸네 앞에서 벤츠가 천천히 멈춰 선다. 흰 자갈 위에서 타이어가 찌그덕 소리를 내고, 카린이 시동을 끈다. 귓가에서 솨솨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바다 소리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전혀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는 지금 개펄 쪽에 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고 차에서 내려 쿱퍼칸네 앞 녹색 언덕 위에 앉는다.
카린은 로드레 병을 따는데, 코르크 마개가 펑 날아가게 하지 않는다. 이때 나는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돌아볼 정도로 제대로 뻥 소리가 나게 샴페인 코르크 마개를 따는 사람들을 내가 얼마나 증오하는지. 우리는 가져온 샴페인 잔에 술을 따라 마시고, 쿱퍼칸네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러고 나서는 개펄을 바라본다.
카린은 자기 손을 내 어깨 위에 얹는다. 그녀 손이 닿은 곳이 따뜻해진다. 그녀가 내 입에 키스한다. 그녀는 샴페인 맛이 나고, 따뜻한 살의 맛이 난다. 눈을 감자 현기증이 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눈을 뜬다. 우리는 키스하고, 그러면서 난 파란색을 입힌 그녀의 콘택트렌즈를 본다. 근거리에서 초점을 유지한다는 게 현기증 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카린도 약간 현기증이 나는 것 같다. 우리는 키스를 그만둔다. 그녀가 나를 보고 아주 진지하게 말한다. 내일 저녁 오딘에서 만나자고. 그녀가 진짜로 그렇게 말한다. 내일 떠난다고 그녀에게 말을 했는데 말이다. 뭐 글쎄, 아마 듣고도 벌써 또 잊어버린 모양이다.
어쨌든 그녀는 상당히 재빨리 일어서서 샴페인 잔을 평평한 돌 위에 얹어 놓고 차로 간다. 그녀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나는 한동안 언덕 위에 그냥 앉아 있다. 빈 잔을 손에 든 채로.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은퇴 노인 부부가 케이크 메뉴판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 케이크라니? 케이크 먹기엔 너무나 늦은 시간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샴페인 한 잔을 더 따르지만 로드레에서는 더 이상 거품이 나지 않는다. 따른 것을 한 모금 마시자 밋밋하고 김빠진 맛이 난다. 재의 맛이다. 나는 다시는 쥘트 섬에 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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