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말
4분단 뒤쪽, 1분단 구석
당신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묻고 싶다. 그 시절, 나의 학급을 떠올려보자. 우선 반장이 있고 부반장이 있겠다. 그 이름은 급장일 수도 있고 회장일 수도 있다. 학급 회의를 할 때면 손들고 이야기하는 아이만 이야기를 한다. 반장이 회의의 주제를 정하자고 하면 미화부장은 다가올 환경 미화 준비에 대해 논의하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건의사항 순서가 되면 공부 잘하는 아이가 손을 번쩍 들어 수업시간에 조용히 좀 하자고 한다. 자, 이제 시선을 돌려 저기 4분단 뒤쪽이나 1분단 구석 자리에서 회의 시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를 보자. 지저분한 옷, 왜소한 몸집, 불안한 눈빛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손을 들고 뭔가를 말하는 법이 없다. 아이는 식사를 챙겨 주는 이가 없어 늘 배를 곯을 수도 있고 친구들의 따돌림에 힘겨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작은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말할 기회가 없는 아이는 갈수록 말하는 법을 잊는다. 아이가 말하든 말하지 않든 학급 회의는 가열차게 진행된다. 학급 회의에선 짐짓 누구에게나 발언권을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회의는 잔혹하리만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반장도 교사도 그런 회의에 만족한다면 회의 시스템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학급은 그렇게 ‘주류’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사회라고 다를까. 신문에는 오피니언면이 있다. 근엄한 글이 많아 어떤 독자들은 그냥 넘겨 버리기도 하는 그런 면이다. 일반 독자들이 보낸 글부터 저명인사들의 칼럼, 신문사 논설위원들의 사설까지 실린다. 신문의 다른 면과는 달리 오피니언면에 실리는 글들은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오랜 시간 동안 오피니언면은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자’들 차지였다.
<한겨레> 오피니언넷부 기자들이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신문사에 글을 보낼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 신문사로부터 기고를 청탁받을 기회는 더더욱 없는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싣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 낮은 곳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언론의, 오피니언면의 역할이라 믿었다. 그들에겐 기자들을 부를 힘이 없으므로 기자들은 안간힘을 써 그들을 찾아내야 했다. 기자들은 매일같이 어떤 사람들을 찾아갈 것인지 고민하고 회의했다. 일단 아이템을 정해도 그들을 만나는 일은 막막했다. 무작정 전화를 돌리고 길을 나선 적도 여러 번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기자에게 한참 하소연을 하고서도 기사가 나가면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기사를 내지 말아 달라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드러낸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에 있다.
4분단 뒤쪽, 1분단 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영감과 용기를 준 박용현 선배 (前 <한겨레> 오피니언넷부장)에게 감사한다.
임지선
언젠가는 대학에 가야겠죠?
:전문계 고졸 노동자 :
‘촛불’은 보편성을 상징한다. 서울 청계 광장에서 타올랐던 ‘반값 등록금 촛불’은 과도한 대학 등록금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보편성을 얻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함정도 있다. ‘누구나 대학 가는 세상’은 졸업 후 취업하는 게 당연한 전문계 고등학교의 현실을 흔들어 놓았다.
지금 전문계고 졸업생 10명 중 7명은 대학에 간다. 취업을 하는 나머지 3명은, 당연한 선택을 하고도 우리 사회의 소수자가 됐다.
본문에서는 대학과 취업 사이에서 방황하는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직장을 거치며 진로를 찾고 있는 한 청년의 ‘취업 일지’를 통해 고졸 취업자들의 고민을 들여다본다. 또 전문계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직업 교육을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현직 교사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본다.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청춘이라는 롤러코스터
스무 살 김진호(가명) 씨는 경기도에 있는 한 놀이공원에서 정비사로 일한다. 관람 열차가 공원의 구석구석을 무사히 다닐 수 있도록 열심히 기름칠을 하고 나사를 조인다. 작업이 없을 땐 가끔 관람객들에게 탑승 안내도 한다.
근무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이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에 일하는 대신 평일에 이틀을 쉰다. 진호 씨가 받는 월급엔 ‘인센티브’가 포함되어 있다. 인센티브는 열차 탑승객 수에 따라 달라진다. 열차 운영 업체와 근로 계약을 그렇게 맺었다. 성수기에는 한 달에 180만 원까지 받지만 비수기에는 130만 원밖에 못 받는다. 그래도 고3 때 잠깐 일했던 직장을 떠올리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편하다.
지난 2월 진호 씨는 서울에 있는 한 공고의 자동차과를 졸업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여러 업체에 지원서를 넣다가 여름 방학 때 천안에 있는 삼성 전자 하청 기업에 입사했다. 휴대 전화 액정 화면을 만드는 업체였는데, 진호 씨가 맡은 일은 불량품이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자동차 정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연봉 2300만 원. 고졸 생산직치고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카센터에서 일하면 한 달에 고작 80만~90만 원 벌어요. 근데 그 회사에선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손에 쥘 수 있었죠.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진호 씨가 입사할 때 같은 학교 졸업생 20명이 한꺼번에 그 업체에 들어갔다. 전공과 관련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팔팔한 청년들도 회사의 근무 패턴은 견디기 힘들었다. 11~13시간씩 2교대로 일했다. 처음 2주 동안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그 다음 2주 동안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근무했다. 휴무는 8일에 한 번 돌아왔다. 잠을 자야 하는 낮에는 잠이 안 오고, 일하고 있는 밤에는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몸이 힘드니 회사에가기도 싫었다. 참고 오래 다닌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고졸 생산직 출신으로는 ‘과장’을 단 사람조차 없었다. 진호 씨는 결국 회사를 두 달 만에 그만뒀다. 그를 포함해서 열다섯 명이 1년도 안 돼 회사를 관뒀다.
그래도 다섯 명은 남았다. 그중 한 명이 같은 과 친구 박성태(가명)씨다. 성태 씨는 액정판을 선반에서 다른 선반으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같이 들어간 동기 중에서는 가장 편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도 일 끝나면 잠자고, 눈뜨면 다시 일하는 생활에 지쳐 가고 있다. 성태 씨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만 참고 다니다 군대에 갈 생각이다.
반면 진호 씨는 학교 취업 담당 부서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연락이오기를 기다렸다가 지난해 11월에 놀이공원 정비사 일을 소개받았다. 연봉은 조금 낮아졌지만 근로 조건은 훨씬 나아서 해 보기로 결정했다. 진호 씨의 같은 과 동기는 서른두 명이다. 그중 스물한 명이 대학에 갔다. 4년제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두 명. 나머진 전문대에 입학했다. 대체로 전공을 살려 자동차과나 기계과를 갔다. 서너 명은 전공과 상관없는 요리와 호텔 경영을 공부하러 갔다. 취업한 동기는 진호씨와 성태 씨를 포함해 다섯 명뿐이다. 이 중 한 명은 반도체 조립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나머지 둘은 공연 기획사에 들어가 음향기기를 설치하는 일을 했는데, 최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 있다고 한다.
대학교 입학도 취업도 성공하지 못한 나머지 여섯 명은 뭐하고 지내는지 모른다. 대학에 간 친구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비전이 안 보여서 다시 취업하려고 기웃거리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사무직으로 취직했다가 고졸 학력 때문에 차별을 겪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가는 사람도 있다.
전문계 고등학생들은 취업을 해도 고민, 진학을 해도 고민이다. 진호 씨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대학 진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해 보니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2학년 때 취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뭐, 대학을 꼭 스무 살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요즘은 대학이 워낙 많고 취업자 특별 전형도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대학 졸업장 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진호 씨는 대학 진학을 미루고 일을 하면서 더 나은 직장을 찾고 있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긴 하다. 가장 좋은 건 현대·기아차의 생산직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고졸 생산직 공채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 좋은 일은 항공이나 철도 정비사이다. 자동차 업계에 비해 연봉이 높고 근무 조건도 좋다. 다만 대학을 나와야 지원 자격을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 졸업 여부가 평생 이름표처럼 따라다녀요. 웬만한 회사의 지원 자격은 ‘대졸 이상’이거든요. 전 대학 안 가고 싶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가야 하는 거겠죠?” 주관이 뚜렷한 진호 씨도 어쩔 수없이 흔들리고 있다. 진호 씨는 고등학교 재학 3년간 전공과 관련된 취업 정보는 제대로 얻지 못했다. 학생들 대부분이 대학을 가려고 하니, 학교도 학생들의 진학을 염두에 두고 운영됐다. 취업을 하려는 친구들은 담임선생님이 알음알음으로 소개해 주는 일자리를 택하거나 각자가 아는 인맥을 동원해 일자리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진호 씨의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이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는 장기적인 모델이 없다. 정부와 기업체가 학교와 연계해서 직업 교육을 해 줘야 하는데, 정부는 예산만 지원하고 그냥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매사에 긍정적인 진호 씨 역시 “대학 졸업을 당연하게 여기고 고등학교 졸업자에게는 좋은 일자리에 지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하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그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대학을 가든 군대를 가든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스무 살 청춘의 머릿속은 뱅글뱅글 돌아가는 롤러코스터처럼 어지럽기만 하다.
함께 생각하기 01
대학 가려고 빚내는 아이들
| 이성주(서울 공업고 교사) |
지난달 엘지 디스플레이 생산직에 합격해 9월부터 경기도 파주 공장에서 일하게 된 학생이 있다. 휴대 전화·텔레비전 등에 쓰이는 액정 표시 장치LCD 생산 업무를 맡았다. 연봉은 각종 수당과 성과급 등을 다 합해 2900만 원 정도 된다. 그는 1학년 때부터 뷔페·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해 왔기에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취직했다고 고민이 끝난 건 아니다. 그 학생은 2~3년만 일한 뒤 대학을 가려고 한다. 친구들이 다 가는 대학을 자신도 가고 싶기 때문이다.
전문계고 학생들의 상당수는 대학을 가려고 한다. 우수한 학생들은 동일계 특별 전형을 통해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진학하려 하며, 평범한 학생들도 본인의 성적과 가정 형편을 고려해 전문대학에 가려 한다.
이 때문에 전문계고 교사인 필자는 계속 묻게 된다. 전문계고 학생들은 왜 빚을 내서라도 대학을 다니려고 하는가? 그렇게라도 대학을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 등록금은 살인적으로 비싸다. 고학력 실업자도 많다. 그러나 대학 진학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학력·학벌주의는 졸업생들의 산업체 취업을 목표로 설립된 특성화고(전문계고) 교육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20일 공개된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사회 정책 보고서’는 직업 교육을 받는 학생의 취업률이 떨어지는 상황을 지적하고, 직업학교에서 노동 시장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 모델링에 산업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권고 사항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학력에 따라 임금 기준이 달라지는 모순된 체제,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학부모, 무조건적으로 명문대에 많이 보내야 좋은 학교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교사, 일자리 불일치Jobmismatch·기술불일치Skill-mismatch 문제를 소홀하게 다루는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학생 비율이 45%인 서울 공업고의 경우-학생 본인의 소질·적성·능력과 집안 형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대학 진학 보다는 취업을 해야 하는 학생이 많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생의 수와 대학 입학 정원이 비슷하고 과잉 배출된 대졸자가 하향 취업하는 것이 대세인 상황에서 특성화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는 일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 돼 버렸다. 그나마 취직을 하려는 학생들도 본인의 전공과 관계가 없지만 연봉을 많이 주는 대기업 전자 분야 생산직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은 연봉이 적더라도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최근 반값 등록금 문제가 이슈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특성화고 학생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다. 노동 시장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산업계가 이런 프로그램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산·학·관협력 체계를 활성화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함께 생각하기 02
직업 교육의 위기
| 신황호(한국 직업 교육 단체 연합회 상임 대표·인하대 교수) |
직업 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고도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 실업계 고교의 역할이 컸다. 직업 교육의 중심축을 담당했던 실업계 고교의 명칭이 전문계 고교로 바뀌고, 또다시 특성화 고교 및 마이스터 고교로 그 명칭이 변경되면서 고교 단계에서의 직업 교육은 평생 전문 직업을 준비하는 단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문 대학으로 직업 교육의 중심축이 이동되면서 고교 단계에서의 직업 교육은 취업보다는 대학 진학을 위한 것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직업 교육의 목표를 바로잡는 것이 한국 직업 교육 정책의 과제이다.
첫째, 학력 간 임금 격차, 입사 시험에서의 학력 제한, 불합리한 승진 제도 등을 개선해야 한다. 학력의 차이가 다른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국민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 예컨대 직업 교육 진흥 특별법을 제정하여 국가 정책의일환으로 학력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전문 직업 교육을 통한 평생 직업 교육 체계를 확립하도록 하며,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 국가 직업 교육 진흥 위원회를 두어 국가의 직업 교육 정책을 수립·심의하는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국가 중 학력 간 임금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이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없애지 않고서는 학력 인플레로 인한 청년 실업을 해소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고교 단계에서든 고등 교육 단계에서든 직업 교육 과정을 이수한 졸업자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 체계를 유지하도록 국가가 산업체에 지도·권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고용 촉진법에서, 독일은 직업 교육촉진법에서 이를 명문화함으로써 아예 학력 간 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직업 교육을 위한 산·학·관 협력 체제를 확립하여 실무 중심의 현장 교육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확립해야 한다. 아일랜드나 핀란드에서 직업 교육이 성공하고 있는 것은 산·학·관 협력을 법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산업체에 강제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고교 단계에서의 직업 교육이 전문 인력 양성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고교 단계에서 직업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이 대학에서도 심화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전문 직업 교육 교과 과정 개발과 운영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마이스터 양성 제도가 그 좋은 예이다. 중학교 과정부터 국가가 심화된 직업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인 마이스터를 양성한다.
마지막으로 영국·핀란드 등의 폴리테크닉Polytechnic이나 독일의 파흐혹슐레Fachhochschule와 같은 다양한 직업 과정을 본받아 고등 직업교육 체계를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 자격 능력 인증 체제를 구축하여 세계적 기술 자격 표준에 따른 직업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직업교육 과정을 선진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직업 교육의 미래가 있다.
(여는 말,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