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스파이스에 대한 생각
클로브, 꽃봉오리에서 꽃까지
피에르트 마티올리, 《페다치 디오스코리디스 아나자르베이 6권에 대한
코멘타리Commentarii in sex Libros Pedacii Dioscoridis Anazarbei》
(베네치아, 1565)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제노바 사람이 가톨릭 군주인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
벨라 여왕에게 이 나라의 가장 서쪽에서 출항해 인도제국the Indies*에 인접한
섬들을 발견하겠다고 청원했다. 그는 선박과 항해에 필요한 모든 물품에 대한
후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할 뿐만 아니라 지금껏 상상해
왔던 것을 뛰어넘는 진주, 향신료, 황금을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 피에트로 마르티레, 《신세계De Orbe Novo》, 1530년
* 당시 인도제국은 인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카타이(중국), 지팡구(일본), 인도 등을 포함하는 아시아 전체를 의미했다. - 역자
올드게이트 초등학교의 어느 수업시간, 우리는 공룡과 피라미드 시대를 지나 대발견의 시대를 공부했다. 선생님은 삽화가 그려진 커다란 지도를 만들어 콜럼버스와 그의 동료 개척자들이 지구를 가로지른 활 모양의 선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일각고래가 뛰어오르고, 고래들이 물줄기를 뿜고, 아래턱이 통통한 케루빔 천사들이 솜털 같은 구름을 훅 불고 있는 바다를 우람한 갈레온galleon선*으로 항해했다. 앵무새들이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새롭게 발견된 육지의 해변에서는 의기양양한 남자들이 무장한 채로 원주민들에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혹시 향신료가 있냐고 물어봤다.
* 16세기 초에 등장한 대형 범선으로, 원래 군함이었으나 상선으로도 사용했다. - 역자
당시 열 살이었던 우리들이 보기에 두 질문은 모두 터무니없어 보였다. 우리는 종교에 별 관심이 없는데다 피자를 먹는 무리였으니까. 선생님은 향신료에 대해 너무나 형편없는 음식으로 고생한 중세 유럽인에게는 소금 맛과 오래되어 상한 고기의 맛을 감추기 위해 엄청난 양의 후추와 생강, 시나몬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중세 시대에 살았던 그들은 향신료를 대량으로 그러모았다고 한다. 우리 중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겠는가? 학교 역사 시간에 배우는 일반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사례들, 이를테면 동상에 걸린 채 남극까지 썰매를 끌고 간 노르웨이인들, 존재하지 않는 바다와 강을 찾아나섰다 갈증으로 죽은 탐험가들, 이교도에게서 성묘를 탈환하고자 십자군전쟁에 참여한 기사들-어린 학생의 시각에서 참으로 별나고 의미 없는 탐험으로 여겨졌다-에 비하면 향신료를 찾아 떠난 탐험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 탐험가들은 어찌 됐든 훨씬 이해하기 쉽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학교 급식의 맛도 끔찍했는데, 그들의 음식도 그토록 형편없었다니 해결책을 찾아 온 세계를 항해한 것이 그럴듯해 보였다. 호주에 사는 열 살짜리에게 그 이유는 타당해 보일 뿐만 아니라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호주가 영국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지만, 사실 열 살 소년의 좁은 관점에도 일말의 사실이 담겨 있었다. 아시아에 발 디딘 최초의 영국인은 이베리아 반도의 탐험가들이 그랬듯이 향신료를 찾아온 것이었다(향신료가 없던 호주는 늦게까지 식민지화되지 않았다). 향신료는 발견의 촉매제이자 확대 해석하면-대중 역사가들에 의해 남용된 표현처럼- 세계를 재편했다. 포르투갈, 잉글랜드, 네덜란드의 아시아제국들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시나몬, 클로브, 후추, 넛메그, 메이스를 찾아 떠난 탐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향신료에 대한 열망은 근대 시작 무렵뿐만 아니라 수세기, 심지어 수천 년 동안 견줄 데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도록 자극했다. 향신료로 인해 부를 축적하거나 잃었고, 제국들이 조성되었다가 파괴되었으며, 심지어 새로운 세계가 발견되었다. 향신료에 대한 욕구는 수천 년 동안 세계를 사로잡았고, 이로 인해 세상은 변화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각에서 음식이 아무리 형편없기로서니 향신료가 그토록 강렬한 매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다소 이국적인 양념이긴 하지만 그토록 큰 소란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무기, 석유, 원석, 관광, 의약품같이 낭만과는 거리가 먼 물품에 상업적인 노력을 쏟는 시대에는, 그토록 엄청난 에너지가 특이하게도 대수롭지 않은 것을 찾는 데 바쳐졌다는 사실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스파이스의 매력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리모컨을 들고 미국 텔레비전의 채널을 한참 훑어 내려가다 보면 토크 쇼나 몬스터 트럭 경주 같은 채널을 지나 곧 스파이스라는 이름의 성인영화 채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채널인지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필자는 처음에 요리채널인 줄 알았다- 그것도 잠시, 곧 풍만한 가슴의 섹시한 여자들과 오일을 바른 건장한 남자들이 철퍽거리며 성애를 나누는 광고를 보면 확실히 알게 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스파이스 채널이라는 이름은 무언가 암시하기 위해 선택한 듯싶다. 이국적이면서 금지된 쾌락을 넌지시 비치는 동시에 수위가 높은 진한 장면, 이를테면 교외에서 벌어지는 야한 장면이나 숨막힐 듯한 만남이 이뤄지는 풀장의 장면에 대해 미리 알려주는 것이리라. 짧은 순간에 강렬한 흥분이 느껴지면서 시청자의 감각이 압도되고 말 것이다.
충분히 이렇게 될 소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파이스 채널이 미국 텔레비전의 기발한 성향을 어느 정도 드러내줄지는 몰라도 그것이 스파이스, 즉 향신료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사실 스파이스에 내포된 에로틱한 이미지는 오랜 전통의 일부이다. 향신료에는 항상 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방송계에서는 여전히 그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향신료는 오래전에 최음제로 명성이 높았으나 이제 이 단어에 함축된 성적인 이미지는 희미하게 비유적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스파이스 채널 외에도 이러한 연상은 다른 많은 분야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그중 무려 700권이 넘는 로맨스소설과 성욕을 자극하는 요리책 《사랑을 위한 음식Food for Love》의 저자인 바버라 카틀랜드보다 이 주제에 관한 권위자는 없을 것이다. 요리책 서문에서 저자는 “당신의 삶에 스파이스”를 선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TV 채널이나 로맨스소설가가 등장하기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석류 같은 맛있는 열매, 나르드, 사프란, 칼라무스, 시나몬, 유향, 미르*, 알로에 등 온갖 그윽한 향료”에 열정적으로 비유한 아가서Song of Songs**가 있었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스파이스와 사랑을 연관 지은 카틀랜드는 멀리는 고대 팔레스타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적 전통의 맥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 나르드nard는 히말라야에서 나는 방향식물로, 고대에 향수와 향연고로 널리 사용되었다. 칼라무스calamus는 향이 나는 반수중 다년생 허브로, 흑해에서 일본까지 널리 분포되어 자라며 나르드와 유사한 용도로 쓰였다. 유향frankincense과 미르myrrh는 아라비아 남부와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이 원산지로, 강력한 향이 나는 고무수지이다. 유향은 주로 고대의 향으로 사용되었다. 몰약으로 잘 알려진 미르는 향, 양념, 시신 보존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 구약성서 중 한 책. 원제는 ‘노래 중의 노래’ - 역자
물론 ‘스파이스’에는 베일에 가려진 에로틱한 암시 외에도 더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로맨스뿐만 아니라 “로맨틱the Romantics”이라 부르는 모험과 공상을 즐겨 다룬 중세 전기傳奇소설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스파이스는 신비함과 화려함으로 무장한 찬란한 오리엔트 이미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단어에는 시적인 환상이 넘쳐난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티타니아가 오베론에게 바꿔치기한 아이의 엄마와 나눈 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공중에는 “스파이스 향”이 감돈다. 뉴잉글랜드 농장의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허먼 멜빌은 동양의 매혹적인 섬에서 자라는 “늘 푸르른 스파이스 숲”을 상상했다. 무수한 이들에게 스파이스와 스파이스 무역은 열대의 바다를 유유하게 지나는 다우dhow선*, 동양의 그늘진 시장통, 사막을 구불구불 가로지르는 아라비아의 대상隊商들, 하렘harem**의 관능적인 향기, 무굴 왕궁의 향기로운 만찬 등 어렴풋하면서도 매혹적인 수많은 이미지들을 불러일으켰다. 월트 휘트먼은 캘리포니아 서쪽에서 동방의 “꽃으로 덮인 반도들과 스파이스 섬들”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크리스토퍼 말로는 다음과 같이 썼다. “스파이스와 실크를 실은 상선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해 지금 항해 중이다. …… 캔디 해안을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유사한 맥락에서 테니슨은 “큰 파도들이 부서지는 넛메그가 자라는 바위섬과 클로브가 자라는 섬들”이 있는 “무궁무진한 동양”에 대해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스파이스 무역은 오랫동안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스트의 상상력”이라 이름 붙인 상투적인 요소에 포함되었다. 오리엔트에 관한 상상력은 신밧드의 이야기부터(신밧드 이야기처럼 터무니없을 때도 많은) 최근의 저속한 논픽션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고 화려하고 모험적이고 과장이 심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우리는 여전히 존 메이스필드의 시 〈뱃짐Cargoes〉에서 동양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감상할 수 있다.
* 삼각형의 큰 돛을 단 아랍의 배 - 역자
** 전통적인 이슬람 가옥에서 여자들이 생활하는 영역 - 역자
지협Isthmus*에서 출발한 장엄한 에스파냐의 갈레온선이
뱃짐으로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자수정,
토파즈, 시나몬, 모이도르 금화를 싣고
야자수로 푸르른 연안을 지나 열대의 바다를 항해하네.
이는 메이스필드 시대의 “타인Tyne 석탄** ”과 “값싼 주석”을 실어나르는 “영국의 지저분한 무역 연락선”과는 동떨어진 세계였다.
* 두 개의 육지를 잇는 좁은 땅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남북 아메리카를 잇는 파나마 지협을 말한다. - 역자
** 잉글랜드 북동부에 위치한 타인 강 주변 지역은 유명한 석탄 산지였다. - 역자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 시대와도 다르다. 하지만 스파이스라는 단어에 실린 수많은 의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이 단어만으로도 단순한 양념 이상의 것이 떠오른다. 그 자체로 놀랄 만큼 풍부한 의미와 영향력을 지닌 과거의 울림이 지속되는 듯, 그 어감에는 톡 쏘는 느낌이 계속해서 남아 있다. 참으로 동양적인 물품들이 서양에 당도했을 때, 스파이스는 다양한 의미로 넘쳐나는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 점에서 스파이스는 의미가 담긴 몇몇 다른 음식에 필적할 만하다. 스파이스에 담긴 의미의 무게와 풍부함은 빵(“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소금(“세상의 소금”) 그리고 포도주(“포도주에 진실이 있다”**-그러나 포도주는 죽음, 생명, 기만, 과잉을 의미하는 술이자 인간을 조롱하거나 반영하는 술이기도 했다)에 비견된다. 그러나 스파이스에 담겨 있는 상징은 위에서 언급된 음식들보다 훨씬 다양하고, 그 안에는 상반된 가치들이 혼재되어 있다. 스파이스가 동양에서 배나 대상을 통해 유럽에 들어올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짐이 따라들어왔다. 그것은 이미지, 전설, 환상으로 불룩한 보따리였다. 어떤 이에게는 매력적이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해롭다고 여겨지는 수입품이었다. 수천 년간 스파이스는 무수한 강력한 메시지를 실어왔으며 이 때문에 사랑을 받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 성경 원문은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 역자
** 라틴 격언으로 ‘취중에 진담이 나온다’는 뜻. 원문은 “In vino veritas(In wine is truth)” - 역자
왜 스파이스에는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의미를 얻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어린 시절 수업시간에 느꼈던 확신과 달리, 스파이스에 대한 욕망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스파이스에는 음식 맛을 내는 것 이상의 매력이 있었다. 사실 중세의 음식이 우리가 오늘날 믿고 싶어하는 것만큼 그렇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스파이스의 역사는 수만 년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그 시작은 시리아 사막 속에 묻혀 있던 그을린 항아리 속에서 클로브 한 줌이 발견된 것이었다. 유프라테스 강가의 작은 마을이었던 그곳에 푸주룸Puzurum이라는 사람이 큰 화재로 집을 잃었다. 우주적인 견지에서 이것은 사소한 사건일 뿐이다. 낡은 집의 폐허 위에 새 집이 지어졌고, 또 시간이 흘러 세대를 거듭하며 새로운 집이 들어섰다. 삶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고고학자들이 그 폐허 위에 세워진 모래먼지가 자욱한 마을을 찾아왔다. 한때 푸주룸의 집이었던, 단단히 다져진 그을린 흙더미에서 그들은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문서를 발굴했다. (푸주룸에게는 아니지만 고고학자들로서는 운이 좋게도) 집을 태운 화재로 인해 부서지기 쉬운 점토판이 마치 가마에 구워진 도자기처럼 단단하게 구워졌고, 그리하여 수천 년간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두 번째 행운은 다른 사료를 통해 당시의 통치자가 야디크-아부Yadihk-Abu 왕이었음이 밝혀진 것이었다. 그의 이름으로 연대를 추정한 결과, 화재가 발생하고 클로브가 사용되던 때는 기원전 1721년이 되기 몇 년 전이었다.
항아리 속 클로브가 보존된 사실만으로도 놀랍지만 이 발견에서 진실로 놀라운 것은, 이것이 식물학적으로 특이한 사례라는 점이다. 근대 이전까지 클로브의 원산지는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다섯 개의 작은 화산섬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가장 큰 섬의 너비는 20킬로미터가 채 안 된다. 클로브는 테르나테, 티도레, 모티, 마키한, 바칸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다섯 개의 섬으로 이뤄진 몰루카 제도는 항해사들의 우화와 상인들의 공상에 자주 등장했으며, 또한 지구 반 바퀴나 떨어진 경쟁 제국들이 주도권 다툼을 벌인 점령지로서 16세기에 꽤 친숙했던 이름이었다. 세르반테스는 테르나테 섬과 티도레 섬의 적대관계에서 그의 소설 《루이스 디아스, 킥사이레, 몰루카 공주의 역사The history of Ruis Dias, and Quixaire, the princess of the Moluccas》에 어울리는 이국적 배경을 찾아냈다. 16세기 독자들에게는 몰루카가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온 것으로 보이지만, 푸주룸의 시대에는 분명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먼 곳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메소포타미아의 필경사가 쐐기문자로 영웅 길가메시의 이야기를 새기고, 괴물 훔바바가 레바논의 삼나무 숲을 활보하던 때이며, 정령인 지니와 사자인간들이 가시선 밖의 땅 위를 어슬렁거린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침반, 지도, 철기가 등장하기 수백 년 전, 세상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넓고 베일에 싸여 있던 그때, 몰루카 제도의 열대 화산섬으로부터 메마른 시리아의 사막으로 클로브가 유입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누가 클로브를 가져왔을까, 오직 추측에 맡길 뿐이다.
푸주룸의 클로브가 불길에 휩싸였던 이래, 향신료를 찾아 떠난 훨씬 유명한 탐험가들이 역사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성과는 극적일 정도로 달랐지만 ‘향신료의 산지’를 찾기 위해 괴혈병, 조난사고, 장거리 여행, 정보 부족과 싸워야 했던 그들은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바스쿠 다 가마,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다. 투지는 넘쳤지만 참혹한 실패로 마감한 이들도 있었다. 사뮈엘 드 샹플랭(1567~1635)과 헨리 허드슨(1550?~1611)은 캐나다의 눈 덮인 황무지에서 넛메그를 찾다 실패했다. 청교도들은 추운 플리머스 덤불에서 헤맸으며 노바야젬랴Novaya Zemlya(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군도)의 빙하에서 얼어죽거나 목적지에서 지구 반 바퀴나 떨어진 버려진 해안에서 하얗게 바랜 뼈로 남은 이들도 있었다.
스파이스 오디세이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미 수많은 책의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스파이스 루트의 복잡한 경로나 스파이스 루트를 이동한 상인들의 (불행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던) 운명을 추적하지 않는다. 이 책은 향신료 무역에 관한 역사서가 아니며, 적어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건을 기술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클로브와 넛메그가 각각 푸주룸과 에스파냐 군주 손에 들어오기까지 이동했던 구불구불한 교역로를 추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파이스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보여주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이런 견해를 신봉하는 저자나 출판인이라면 카를로 치폴라의 흥미로우면서도 신랄한 풍자문인 《후추, 역사의 원동력Le poivre, moteur de l’histoire》을 읽어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사실 필자는 스파이스가 역사를 어떻게 형성했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스파이스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관심이 더 간다. 즉 스파이스가 왜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그 매력은 어떻게 등장해 진화했고 결국 사라지게 되었을까,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향신료 무역을 가능케 한 향신료를 향한 욕망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무역에 관한 연구서가 아니라 그 무역이 존재한 이유에 대해 밝히는 책이다.
그 이유는 처음에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맛은 향신료의 수많은 매력 중 한 가지일 따름이다. 향신료는 상상 그 이상의 이국적인 향미를 식탁에 선사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랜 요리의 역사와 한데 얽혀 있는 훨씬 오래된 역사, 근대까지만 해도 향신료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또 다른 역사가 숨겨 있다. 향신료는 소금을 뿌린 뻑뻑한 쇠고기에 향미를 더하고 육식을 금한 사순절 동안 생선만 먹는 지루함을 달래는 용도뿐만 아니라, 신을 부르거나 악마를 내쫓고, 병을 몰아내거나 전염병을 예방하고, 사그라지는 성욕에 불을 지피거나 한 출전에 의하면-향신료 교역을 주도하던 창조적 인재들을 흐뭇하게 했을 주장인- 왜소한 음경을 당당하게 만드는 것 같은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었다. 향신료는 약재로서 위상이 높았고, 그리스도교가 사용하는 메타포였으며, 격렬한 성적 흥분의 씨앗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스파이스를 열렬히 원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해도 메인 주 연안의 엄격한 주민들은 “검은후추를 먹기에는 너무 경건하다”고 치부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향신료가 금지된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지배적인 현상의 예외적인 사례를 넘어서 이들 향신료 반대자는 다의성과 역설로 넘쳐나는 욕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들이-상당히 많은 수였다- 향신료를 그토록 못마땅하게 여긴 이유는, 향신료 숭배자들이 향신료를 좋아하는 이유와 거의 일치했다. 즉 맛과 과시욕, 건강, 성욕 강화 같은 매력들이 그들에게는 허영, 사치, 탐식, 성욕 같은 죄악으로 여겨졌다. 향신료는 결코 순수한 미각이 아니었고, 바로 여기에 향신료의 매력이 숨겨 있었다. 욕망과 혐오가 이토록 복잡하게 공존했다는 관점에서 향신료를 바라볼 때, 향신료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이해될 것이다. 다시 말해 바로 이 때문에 초등학교 때 배운 탐험가들이 그리스도교 세계의 대포와 갈레온선을 뒤에 두고 외지의 해안에서 시나몬과 후추를 요구했던 것이리라.
모든 역사적 사료는 선택된 주제의 중요성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향신료를 향한 욕망에 대해 해부한 이 책이 단지 고고학에 대한 취향으로 해석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귄터 그라스 같은 수많은 작가들이 말해왔듯 음식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이상하리만큼 도외시되었지만)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환경 파괴가 심화되는 시대에 이 사실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향신료는 음식의 영역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향신료가 영양 측면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향신료를 실어나른 무역은 세계 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중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나는 유럽과 더 넓은 세계가 접촉하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이 마침내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결국 이것은 학계의 관심사항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앞으로 다룰 장에서는 원인과 결과 같은 거시적인 문제를 지양하고, 훨씬 친근하고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역사에서 너무도 자주 향이 배제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씌었고, 스파이스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에 놀랍고 매혹적인 특징들로 넘쳐났던 향신료가 이제는 경제, 또는 음식의 분야에 갇힌 채 거론되고 있다. 향신료의 가장 본질적인 매력이 경제와 정치의 역사라는 유물론의 늪에 묻혀 있는 것이다. 갈레온선, 해적, 개척자들의 이야기가 훨씬 읽기 재미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왜 향신료 무역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필자의 논지는 향신료가 사람들의 삶에 훨씬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우리가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비중 있고 다양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종잡을 수 없게 들리겠지만 여기에는 심도 깊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결국 유럽에 향신료를 공급하게 된 역사적 발전 과정은 필요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감각, 마음, 가슴에서 필요로 한 것이자 기호와 믿음이라는 베일 속에 가려진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향신료를 향한 감정, 느낌, 인상, 태도 속에서 그 모든 중요한 사건과 드라마들, 이를테면 전쟁이며 항해, 영웅적 행위와 포악한 행위, 헛된 노력들이 베일에 가려진 채 발아했다. 향신료 무역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 아메리카 대륙으로 환영의 향신료를 찾아나섰던 콜럼버스의 항해, 시리아 사막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4,000년이나 된 클로브, 이것들은 모두 역사학자와 고고학자가 그 어느 때보다 고심하고 억지 이론까지 갖다붙이며 영원토록 추론할 수 있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다른 질문들이 비롯되는 질문, 즉 애당초 ‘왜 향신료 무역이 존재했을까’라는 질문은 간과되기 쉽다. 그것은 모두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서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