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백로 숲 벌목 사건
2010년 7월 13일, 경기도 고양시 사리현동에 있는 ‘백로 집단 서식지’가 땅 주인인 조경업체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사건입니다. 그곳에는 천 마리 넘는 백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로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고 있는 그 나무들을 몇 시간 만에 모조리 베어 버렸습니다. 둥지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알들이 깨지고, 새끼 백로들은 나무에 깔리고 어미와 헤어졌습니다. 그때 목숨을 잃거나 어미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해 결국 굶주려 죽은 새끼 백로가 삼백 마리가 넘습니다. 다친 백로는 더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땅을 빨리 팔려고 보는 눈이 없는 새벽에 기습하듯이 나무를 베었습니다. 한 달만 벌목을 늦췄어도 새끼들 대부분이 둥지를 떠나기 때문에 끔찍한 일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땅 주인이 뒤늦게 지역 신문에 사과문을 내기는 하였지만 현행법상으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사건 당시 벌목한 나무를 쌓고 있는 모습, 깨진 알과 죽은 백로의 모습 |
머리말
안녕! 날마다 새소리를 들으며 산과 들을 쏘다니는 권오준 아저씨야.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집은 농사를 지었어. 해마다 봄이면 아주 바빴지. 한쪽에서는 소로 논을 갈고, 다른 한쪽에서는 논에 심을 모를 준비하느라 모두 눈 코 뜰 새 없었어.
그때마다 꼭 찾아오는 새가 있었어. 바로 백로였지. 키가 크고 하얀 백로가 마냥 신기해 보였어. 백로들은 쟁기로 논을 갈거나 논바닥을 고를 때 나타나서는 미꾸라지며 벌레들을 콕콕 쪼아 먹었어.
신난 건 나와 동무들이었지. 하던 일 내팽개치고 백로한테 우르르 몰려갔어. 백로들은 꽁무니를 빼고 도망갔다가 우리가 안 보이면 다시 돌아와서 먹이를 잡았어. 한바탕 백로를 쫓아다니고 나면 어른들한테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를 들어야 했어. 백로한테 그러면 못쓴다는 거였지. 백로가 마치 귀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2010년 여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백로 숲에서 몹시 슬프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 사람들이 나무를 마구 베어 버려서 숲에 사는 백로 수백 마리가 죽거나 다치고, 보금자리를 잃고, 어미와 새끼가 헤어지게 되었어. 옛날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 온 백로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거야.
나는 그 뒤 두 해 동안 우리 나라 곳곳에 있는 백로 숲을 찾아다니며 백로들을 관찰했어. 사람들 욕심 때문에 죽어 간 백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야. 이제는 백로가 왜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지, 알을 품고 새끼들을 키울 때 얼마나 많은 사랑과 정성을 기울이는지 알게 되었어. 백로들이 사람 사는 마을 둘레에 모여드는 건 오랫동안 백로와 사람이 좋은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어.
이 글은 백로들에게 잘못을 비는 마음으로 쓴 거야. 많은 사람들이 공릉천 백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해. 사람과 새가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 때 백로도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까?
-사라진 공릉천 백로 마을에서 권오준
여는 이야기
봄에 오는 손님
4월이 되니 공릉천에도 따뜻한 봄이 왔어요.
공릉천은 북한산을 바라보며 구불구불 흘러가는 냇불이에요. 물길을 따라 야트막한 산들이 이어져 있고, 맞은편에는 벌판이 펼쳐져 있어요. 벌판에는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비닐하우스들이 보였어요.
"과과 과과"
남쪽 하늘에서 하얀 백로들이 큰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오고 있었어요. 그 뒤엔 또 다른 무리가 뒤따르고 있었지요.
"저 냇물 옆에 작은 숲 보이지? 바로 저기야!"
앞서던 백로가 아랫쪽을 내려다보며 동무들에게 소리쳤어요.
공릉천 백로 마을
백로 무리는 미끄러지듯 숲으로 내려갔어요. 두 다리를 쭉 펴며 나무 위에 내려앉았어요.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를 움켜쥔 채 날개를 퍼덕퍼덕겨렸지요.
숲에 내려앉은 백로들은 저마다 부리로 깃털을 구석구석 다듬었어요. 기나긴 여행을 하면서 깃털이 너무 헝클어졌거든요. 큰 몸으로 날아야 하는 백로들에게 깃털 다듬기는 아주 중요했어요.
숲에는 단풍나무와 잣나무, 느티나무가 빼곡히 차 있었어요. 사람들은 이 숲을 공릉천 백로 마을이라 불렀어요. 해마다 수많은 백로가 날아오니까요.
백로 마을 앞 찻길 건너에는 작은 동물원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하지만 건너편에 백로 마을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키 큰 가로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백로 마을 뒤에는 사람들이 사는 작은 동네도 있었어요.
숲에 모여 사는 백로 |
백로 마을에는 이미 백로 수십 마리가 날아와 있었어요. 키 큰 백로도 있고, 키 작은 쇠백로도 보였어요. 목 굵은 해오라기도 있었지요. 모두 같은 백로 식구예요.
공릉천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도 백로들이 왜가리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곳은 소나무가 많아 솔수펑이 마을이라 불렸어요. 솔수펑이는 소나무 숲이라는 뜻이에요. 솔수펑이 마을에도 해마다 백로들이 모여들지만, 백로 마을에 견주면 보잘 것 없었어요.
“저렇게 많이 모여 살면 참 좋으련만.”
솔수펑이 마을 백로들은 백로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부러워했어요.
“백로라면 우리처럼 많이 모여 살아야 한다니까.”
“이 둘레에선 우리 수가 가장 많을걸.”
백로 마을 식구들은 크게 무리 지어 사는 걸 자랑스러워 했어요. 한군데 많이 모여 살면 아무래도 천적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거든요. 혹시 천적이 온다 해도 이 많은 백로 가운데 설마 내가 당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요.
솔수펑이 마을 백로들이 백로 마을을 부러워하는 까닭은 또 있었어요. 바로 백로 마을 앞에 흐르는 공릉천이었지요.
“물이 바로 앞에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백로는 물고기를 먹고 살아요. 그런 백로에게 물이 소중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지요. 물론 다른 새들처럼 몸을 씻고 열을 식히는 데도 꼭 필요하고요.
그런데 그 물이 엎드리면 부리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으니 솔수펑이 마을 백로들이 부러워할 만했지요.
많은 새들이 그렇듯이 백로들도 봄에 짝짓기를 했어요. 백로들은 짝짓기 철에만 나는 치렛깃을 활짝 부풀리며 스스로를 뽐냈어요. 길고 아름다운 치렛깃을 펼치고 짝을 찾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암컷과 수컷이 만나면 서로 사랑을 나누고 부부가 되었어요.
백로 마을은 늘 평화로웠어요. 하지만 어쩌다 사람이라도 다가오면 백로들은 깜짝 놀라 한꺼번에 날아올랐다가 한참 뒤에 한 마리씩 다시 내려앉았어요.
치렛깃을 펼쳐 뽐내고 있는 백로 |
4월도 막바지에 다다른 어느 날이었어요.
백로들은 둥지를 트느라 잠깐도 쉬지 않고 부산스레 움직였어요. 부지런한 백로들은 벌써 서너 개씩 알을 낳아 한창 품고 있었고요. 나무마다 나뭇가지로 지은 둥지가 여러 개 있었어요. 어떤 나무에는 열 개가 넘는 둥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기도 했어요. 그 나무 밑에는 하얀 백로 똥이 뒤범벅되어 있었고요.
“내 거라니까!”
“아냐, 이건 내가 먼저 본 거라고!”
나무 아래서는 백로가 둥지를 지을 때 쓰는 마른 나뭇가지를 두고 자주 싸움이 벌어졌어요. 숲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만으로는 그 많은 둥지를 다 지을 수 없었거든요. 나뭇가지는 새 둥지를 짓는 데만 필요한 게 아니었어요. 이미 둥지를 다 짓고 알을 품고 있는 백로들도 틈틈이 나뭇가지를 구해 와 틈이 벌어진 둥지 바닥에 끼워 넣었어요. 나뭇가지로만 얼기설기 지은 둥지라 틈나는 대로 손봐야 했거든요.
백로들은 마치 뒷짐 지고 걷는 듯한 모습으로 느릿느릿 나뭇가지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괜찮은 나뭇가지가 눈에 띄면 부리로 콕 집어 나무 위로 날아올랐어요.
저녁 무렵이었어요.
눈 둘레가 검고 귀가 동그랗게 생긴 너구리 |
“솔수펑이 마을에 너구리가 나타났대요.”
쇠백로가 나무 위로 날아오르며 말했어요.
“뭐, 뭐라고?”
너구리라는 말에 백로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깜짝 놀랐어요.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는 백로도 있었어요.
“글쎄, 어제 저녁에 백로 한 마리가 너구리한테 물려 갔대요.”
“아니,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대요?”
뒷머리에 길게 난 댕기깃을 흔들며 해오라기가 물었어요.
“나뭇가지를 줍다가 그랬대요.”
쇠백로가 노란 발을 내디디며 대답했어요.
“언젠가 너구리가 나무에 올라가는 거 봤는데, 그때 얼마나 놀랐다고. 난 고양이만 나무를 타는 줄 알았거든.”
백로 한 마리가 깃털을 부풀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너구리 얘기를 들은 백로들은 두리번거리며 둘레를 살폈어요. 겅중겅중 걷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고요. 서둘러 나뭇가지를 주워 둥지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쓸 만한 건 별로 눈에 띄지 않았어요.
뒷머리에 댕기처럼 긴 깃털이 달린 해오라기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밟히는 게 나뭇가지였는데…….”
여기저기서 백로들이 한숨을 쉬었어요.
나뭇가지를 주우러 공릉천 너머 산기슭까지 갔다 오는 백로들도 있었어요. 그곳엔 숲이 우거져서 기다랗고 단단한 나뭇가지가 많았거든요. 그렇지만 다녀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위험했어요.
“휴우, 나무 덤불에서 고양이가 튀어나와 잽싸게 도망쳤잖아.”
“거긴 너구리도 어슬렁거린다고.”
백로들은 치렛깃을 부르르 떨었어요.
고양이나 너구리가 나타난다고 해서 둥지를 만들거나 고치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빨리 둥지를 지어야 알을 낳을 수 있거든요. 다급한 마음에 다른 백로가 짓고 있는 둥지에서 나뭇가지를 슬쩍 물어 가는 백로들이 생겼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야? 곧 알을 낳아야 하는데 나뭇가지를 빼 가면 어떡해!”
둥지 주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눈을 부라렸어요.
“미안해. 내 둥지의 나뭇가지도 누가 물어 가서 그런 거야.”
나뭇가지를 훔치다 들킨 백로는 미안했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사정을 들은 둥지 주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죽은 나뭇가지를 못 찾은 백로들은 잣나무에 붙은 살아 있는 나뭇가지라도 꺾어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살아 있는 나뭇가지는 휘어지기만 하고 쉽게 꺾이지 않았어요.
둥지에 쓸 나뭇가지를 물어 온 백로 |
백로들은 알을 품다가 이따금 벌떡 일어나서는 날개깃을 파르르 털었어요. 그럴 때면 치렛깃이 쫙 펴지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지요. 오랫동안 앉아 있다 보니 헝클어진 깃털을 골라 주어야 했고, 시원하게 다리도 쫙 펴 주어야 했어요. 둥지 바닥을 부리로 꾹꾹 눌러 보며 꼼꼼히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머리, 목, 등에 노란 깃이 있는 황로 |
5월이 되자 황로가 백로 마을에 날아오기 시작했어요. 크기는 작았지만 노란 깃털이 도드라져서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어요.
로아네 식구
5월이 지나고 6월도 끝나 가고 있었어요.
백로 마을 숲은 온통 하얘졌어요.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많아 백로가 천 마리 가까이 되었거든요. 울어 대는 소리도 엄청 컸어요.
숲에는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들도 많았지만, 어미만큼 다 자란 새끼들도 적지 않았어요. 어른만 한 새끼들은 두 날개를 퍼덕거리며 어미에게 물고기를 받아먹었어요.
“키키키 키키키.”
어느 둥지에서나 새끼들은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게 일이었어요. 잡아 온 물고기를 토해 주려고 어미가 부리를 벌리기도 전에 새끼들은 마구 달려들었어요. 새끼들은 목을 쭉 빼고 작은 날개를 사정없이 흔들어 댔어요.
둥지 속 새끼 백로들 |
“야, 밀지 마. 내가 먼저야.”
“내가 먼저라니까.”
숲 가장자리 잣나무에 둥지를 튼 로아네 집도 마찬가지였어요. 며칠 전 알에서 깬 새끼 네 마리는 이제나저제나 엄마, 아빠가 잡아 오는 물고기 생각밖에 없었어요. 모두 모가지를 쭉 빼고는 냇물 쪽을 바라보았어요. 엄마, 아빠가 늘 공릉천에서 날아왔으니까요.
이윽고 엄마가 왔어요. 엄마는 큰 날개를 퍼덕거리며 내려앉았어요. 아빠는 새끼들을 엄마에게 맡기고는 공릉천으로 날아갔고요.
로아 형제들은 엄마에게 마구 달려들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먹이를 주기는커녕 등을 돌렸어요. 사냥한 물고기를 좀 더 삭여서 주려는 까닭도 있고, 새끼들 가운데 누가 더 힘이 세고 끈질기게 달려드는지도 보고 싶었어요.
“이번엔 누가 먹을까?”
엄마는 천천히 새끼들에게 다가갔어요. 가뜩이나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든 새끼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고 머리를 흔들어 가며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이었어요. 그럴수록 엄마는 고개를 돌리며 주지 않았어요.
“엄마, 먹이 달라니까!”
맏이 로아가 엄마에게 달려들었어요.
“이번엔 내가 먹을 거야.”
둘째 로로였어요. 로로는 날개를 파닥거렸어요.
“배고파 죽겠어!”
셋째 로시도 부리를 쫙 벌리며 먹이를 달라고 했어요.
“난 제대로 못 먹었다고.”
막내 로자였어요. 앞에 서지 못하고 형제들 뒤에 서 있었어요.
새끼들이 보챌수록 엄마는 되레 더 느긋한 표정을 지었어요.
“엄마, 여기.”
“엄마, 여기라니까.”
새끼들은 서로 밀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컥컥 컥컥.”
이번 먹이는 드디어 로로 차지가 되었어요. 로로는 엄마 부리 안으로 자기 부리를 집어넣은 채 작은 물고기를 받아먹었어요. 로로가 먹이를 빨리 받아먹으려고 머리를 흔드는 바람에 엄마 머리까지 덩달아 흔들렸어요. 부리를 맞대고 서로 휘젓는 모습이 마치 싸움하는 것 같았어요. 새끼들은 맛있게 먹이를 받아먹는 로로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어요.
집집마다 새끼 백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먹이다툼은 끝이 없었어요. 어미들이 아무리 많은 먹이를 잡아 와도 새끼들은 늘 배고팠어요. 가로수 옆 소나무에서는 새끼들끼리 부리로 쪼아 대는 일까지 벌어졌어요. 결국 약한 막내는 하루 종일 물고기 한번 얻어먹지 못한 채 쓰러져 버렸어요.
“쯧쯧쯧, 가여워서 어쩌지?”
“그러게 말이에요. 저 어린 것이…….”
결국 힘없는 막내는 숲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안타깝지만 백로들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어른 백로들도 그런 일을 다 알고 있었지만 약한 녀석이 해코지를 당해도 모른 척 고개를 돌렸어요. 어미들은 그저 더 튼튼한 새끼를 원했으니까요.
로아네 둥지에서도 해 질 녘까지 먹이다툼이 끊이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공릉천과 백로 마을을 오가며 물고기를 잡아 나른 로아네 엄마, 아빠는 그만 녹초가 되어 버렸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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