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의 태평스러운 육아
엄마가 되어버렸어!
위염인 줄 알았는데, 임신이라니…… 지금은 내가 한 일 중 가장 생산적인 일로 평가받지만, 그땐 사고 중의 사고였다.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동안 내가 워낙 크고 작은 사고를 많이 쳐서 그런지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심심하다 싶으면 엉뚱한 짓을 일삼는 나에게 고마운 눈치였다. 연애지상주의자로 살던 삶은 그렇게 끝났다. 귀찮고 형식적인 건 딱 질색이어서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하기로 했다.
육아=돈?
어찌 된 노릇인지 ‘육아’ 하면, 돈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어쩌나, 나에겐 모아놓은 돈이 쥐뿔 없었다. 돈 버는 일과는 한참 거리가 먼일만 찾아서 하고 있었고, 그나마 돈이 생기면 몇 달씩 여행이나 다니면서 떠돌아다녔다. 철저히 현재를 즐기면서 살아온 당연한 결과다. 그건 아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임신이라는 걸 알았을 때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돈도 없었고, 노마드 인생도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철없는 생각도 들었다. 돈 없이 아이 키우기?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든든한 빽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야에 관한 내 스펙이 좀 괜찮은 편이다. 우선 없는 집안에서 자랐다. 절대적으로 가난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검소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아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는 말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며 ‘돈에 의지하지 말라’는 게 부모님의 평소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없는 상황이 아주 익숙하고 편안하다. 게다가 타고난 성격도 든든한 빽이다. 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는 낙천적인 성격과 몽상가적 기질은 이 분야에서 우월하게 빛난다. ‘육아≠돈’, ‘돈 안 쓰고도 신나고 재미있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명제는 지금과 같은 사회적 불임 시대에 누군가는 증명할 중차대한 사회적 과제라며, 혼자만의 사명감으로 불타고 있었다. 이렇게 든든한 빽을 믿고, 아이를 키우기에는 뭔가 부족한, 이 제약조건을 즐기기 시작했다.
돈 없이 아이 키우기
그다음은 방법론. 돈 없이 아이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투입과 소비를 줄여야 한다. 왜 아이를 키우는 데 힘이 드는 걸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투입을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코 많은 투입이 많은 산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소비가 많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어서, 남과 다르게 살 용기가 없어서 못할 뿐이다. 뭔가 대단한 신념이나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그동안 충분히 소비 중심적으로 살아왔으니 이번 기회에 반대로 살아보는 거, 아주 땡기는 프로젝트다.
본질에 접근하다
소비를 줄이면 어떻게 될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놀랍게도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소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필요한 것인가? 왜 필요한가? 다른 대안은 없나?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나? 이렇게 고민하면서 불필요한 소비는 줄이고, 대안을 탐색하고, 심지어 생산활동에 가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태교를 위해서 뭔가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태교상품이 꼭 필요해? 태교를 왜 하는 거지? 태교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면 정작 소비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본의 아니게 자본주의에 유쾌하게 저항하고 있다.^^
비자본 공동체 경제 접속
소비를 줄이면 관계도 증폭된다. 예를 들어 대물림과 같은 비자본 공동체 경제에 접속하면 그동안 말로만 하던 ‘더불어 살기’를 쉽고 우아하게 실천할 수 있다. 물건을 물려받는 과정을 통해서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이 작은 행동으로부터 협동과 연대라는 공동체 의식이 싹트게 된다. 뭐든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뭔가 부족하면 불편하기 마련인데, 그 불편함 속에 깨알 같은 재미가 가득하다. 돈을 안 쓰다 보면 궁색해지기 쉬운데, 점점 풍요로워진다. 대단한 역설이다. 그 재미에 집 밖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공동체라는 다른 세상과의 접속이 가능해진다. 나의 오랜 개똥철학, ‘결핍으로 인한 풍요’ 이론은 이렇게 생겨났다.
태평육아의 탄생
나는 농사에서 육아의 지혜를 많이 얻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을 자식농사라고 하나 보다. 어느 날 농사 선배가 물었다.
“농사는 누가 짓죠?”
“네?”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겁니다.”
선문답 같지만 진리다. 농부가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우리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다. 농사 중에 가장 힘든 농사가 자식농사라는 말도 있듯이 자식농사는 더 심할 것이다. 아예 손 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늘 관심과 애정은 가지되, 최대한 자연의 순리대로, 인위적인 투입은 줄이고, 욕심과 기대는 버려야 한다. 태평육아의 탄생이다.
괜히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덤비거나, 때를 앞당기려고 서두르면 오히려 농사를 망칠 수 있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자연의 순리대로, 다른 사람 말보다는 내 본능에 충실하게, 소비보다는 관계에 의지하면서 내 페이스대로 한 발 한 발 가는 거다. 그러면 전쟁 같은 육아가 한결 평화롭고, 재미있어진다. 한 번 믿어보시길, 밑져야 본전이니까!
애 낳고 개과천선
감히 말할 수 있다. 애 낳고 개과천선했다. 우리 애가 아니었다면, 혼자 잘났다고 제멋대로 살았을 것이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꼭 사고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고도 쳐야 변화가 생긴다. 육아를 마냥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로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내 삶의 지평이 넓어지고 풍요로워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기를 키운 건지, 아이가 나를 키운 건지 헷갈린다.
태평해도 괜찮아
좌충우돌, 천방지축, 얼렁뚱땅, 대충대충 아이를 키우는 내가 육아서를 냈다고 하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라는 걸 안다. 다행히, 이 책은 전문적인 육아 정보, 육아 지식을 제공하는 육아서도 아니고 내가 그런 책을 낼 만큼 뻔뻔하지도 않다. 그냥 어쩌다 임신, 출산, 육아의 세계를 여행하다가 쓴 육아견문록일 뿐이다. 다만 여행사에서 기획한 패키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발품 팔아서 골목골목 누벼서, 숨겨진 재미를 발견한 배낭여행기라고나 할까?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작은 용기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것이 두렵고 힘든 부모들에게 용기가, 불량하고 불온하고 불완전한 엄마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태평육아의 원형, 자유방임으로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감사드린다.
1.
있으니까 좋더라
-육아필수품에 대한 다른 생각
헌 물건
_돈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첫걸음
기껏해야 아이를 하나둘씩만 낳는 요즘. 무엇이든 최고로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출산 전부터 정반대의 궁리만 했다.
“어떻게 하면 돈 안 쓰고 애를 키울 수 있을까?”
출산을 앞두고, 출산준비물 검색을 해봤다. 대략 50여 가지. 허술한 계산으로도 기백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유모차, 카시트 같은 고가의 물건을 빼고도 출산준비물을 준비하는 데 200만 원 넘게 들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육아용품의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더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비싸지 않으면 오히려 안 팔린다는 사실이다. 바로 내 아이에게 최고로 해주고 싶은 마음을 잘 이용한 마케팅 결과다. 과연 어떤 신문이 헤드라인을 뽑은 것처럼 ‘출산비 천만 원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그럼, 나같이 돈 버는 재주가 없는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하다. 돈 버는 재주가 없으면, 돈 안 쓰는 재주를 부리면 된다. 그래서 내가 잘 쓰는 재주가 바로 물려받기다. 물려받기 기술을 활용해서 지금까지 서바이벌하고 있다. 물려받기에는 약간의 잔기술이 필요하다. 처음엔 어렵지만, 반복하면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그럼 기술 전수에 들어가 볼까?
첫 번째, ‘네트워크의 풀 가동’이다. 인맥은 쌓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이럴 때 활용하라고 있는 거다. 우선 교섭 대상은 첫 아이를 낳고,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 친구다. 물론 예외도 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미혼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누나에게 부탁하여 한 보따리를 챙겨 왔다. 유기농 기저귀에서 바디수트, 우주복, 모자부터 가방까지, 의외의 금맥이었다. 아예 일찌감치 아이들을 키워놓은 친구들도 좋은 공급원이다. 일찍 결혼하여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이 있지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집 안 구석구석 쌓아두는 습관이 있는 친구는 가끔 아이 물건이 발견될 때마다 자진신고와 납세를 한다. 최근에 세발자전거를 물려받았다. 물건을 못 버리는 그 친구가 이토록 자랑스러울 수가……
두 번째, ‘적극적인 어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헌 물건을 줄 때 주빗거리게 되어 있다. 특히 애들 물건은 더 그렇다. 새 걸 사주지는 못할망정, 헌 물건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서 미안해할 수 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어필하는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때, 연식과 유행, 브랜드, 오염 정도를 불문한다면 선택폭이 훨씬 풍요로워진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피드백’은 추가 기부를 부르는 기술이다. 물건을 물려받았다면, 기회가 날 때마다 물려받은 물건을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 보여주면 추가 기부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다.
단, 이 모든 게 평소 인간관계에 기반하는 만큼 벼락치기는 안 된다. 얌체처럼 도움만 받아서도 안 된다.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보답을 물질로만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비물질적인 립서비스, 식사 초대, 시기적절한 품앗이 등은 좋은 보답이 된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출산준비물은 대개 유아용품 기업에서 팔고 싶어하는 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조건 다 갖출 필요가 없다. 먼저 애를 키워본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물어보면서 하나하나 얻어 쓰다 보면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조달할 수 있다. 몇몇은 과감히 패스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돌 전까지 아기 목욕은 조금 큰 세숫대야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해서 커다란 욕조는 패스했고,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이불 세트도 별로 필요 없다고 해서 건너뛰었다. 대신 친정엄마가 시집올 때 외할머니가 직접 목화를 길러 만들어주신 목화솜이불을 새로 타서, 아기와 함께 쓸 요와 이불을 만들어주셔서 잘 쓰고 있다. 4대째 이어지는 진짜 목화솜이불이다.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으면 왠지 폼나는 아기 침대는 남편 친구로부터 받았다. 5년 전, 남편이 ‘아름다운가게’에서 5만 원 주고 사서 친구에게 선물한 아기 침대인데 이제 우리가 다시 물려받게 되었다. 돌고 도는 세상이다. 유모차도 참 뜻밖의 인물에게 물려받았다. 직장에서 거의 앙숙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해서 서로 말도 안 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출산휴가 들어가기 바로 전날 다가와 ‘유모차 있냐?’고 묻는 거다(그렇게 다가오는 데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까?). 없다고 하자, 영국 유학 중에 사서 두 딸을 키웠던 유모차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그 비싸다는 유모차를 해결할 기회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로 좋았다. 그 유모차가 선배와 나의 앙금을 모두 없애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유모차를 볼 때면 그 선배가 생각난다.
이게 바로 물려 쓰는 재미다. 물건만 물려받는 게 아니라 이야기, 관계도 함께 물려받는다. 헌 물건은 사연이 있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어떨 땐 워낙 모든 것을 물려받아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아이를 수많은 손길이 같이 키우고 있다는 착각도 든다. 물론 계속 그럴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딸아이가 왜 자긴 맨날 헌 옷, 헌 물건이냐고 투정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때 처절하게 백기를 들더라도, 나의 헌 물건 사랑은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커피
_우리 아이를 키운 8할^^
웬만해서는 돈 안 쓰는 나도 아끼지 않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커피 값이다. 아기 옷은 죄다 얻어 입히면서도 커피 값은 아깝지 않다. 어떤 때는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실 때도 있다. 뭐, 된장녀라 놀려도 좋다. 누가 뭐래도 나는 비싼 커피 마실 자격이 충분하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의 경우, 커피 한 잔이 아기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하루는 내 의지와 컨디션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기가 눈을 뜨면 자동으로 개시된다. 그러다 보니 세수는커녕 눈곱도 제대로 못 떼고 머리는 산발을 해서 아기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침부터 아침밥을 지어서 먹이고,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대충 청소하고, 간식 먹이고, 같이 놀다가 다시 점심 먹이고, 책 읽어주다 낮잠 재우고 나면, 그제야 휴~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아기가 잠들면, 나의 엄마 노릇은 올스톱!!! 나, 김연희로 돌아간다. 집구석이 엉망진창, 할 일이 코앞에 수만 가지 쌓여 있어도 상관없다. 자유인이 된 나는 커피부터 내린다. 커피 향이 집 안에 퍼지는 동안, 좋아하는 음악도 틀고, 세수도 하고, 거울도 보고, 그제야 눈곱을 뗀다. 그런 다음 오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최대한 우아하게 앉아 커피를 마신다. 그때 신문을 펼쳐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보고, 아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고,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책도 뒤적인다. 그러면서 육아로 인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자존감을 한껏 고양시킨다. 아직도 젖을 물리고 있지만, 하루에 커피 한 잔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 시간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안 받고 싶어서 전화를 안 받거나 아예 꺼두기도 한다. 좀 이기적이라고 비난받아도 할 수 없다. 나는 소중하니까!!!(푸하핫!)
아기가 왜 잠잘 때 가장 예쁜지…… 아기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 공감한다. 자는 모습이 천사 같아서도 그렇지만, 그 시간만큼은 잠시나마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나로 살아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아기 낮잠 자는 시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가출(?)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밥심이 아니라 커피 힘으로, 단조롭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쟁과 같은 하루를 살아갈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이 금쪽같은 시간에 마시는 커피는 꼭 좋은 커피라야 한다. 꼭 비싸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급 드립커피든 다방커피든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된다. 요즘엔 동네에 직접 로스팅하는 카페가 있어서 사 먹기도 하고, 어떨 땐 재미로 생두를 직접 뚝배기에 로스팅해서 먹기도 한다(뚝배기 로스팅 법은 다음 기회에 전수!^^).
가끔 동네에 있는 카페에 나가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날씨가 좋아서 그냥 나가고 싶거나, 반대로 기분이 꿀꿀하고 답답할 때 간다. 그럴 땐 누군가 타 준 커피를 마시고 싶다. 하루 종일 아기에게 서비스해야 하는 신분에서, 서비스를 받는 신분으로 대역전의 순간이다.
아기 엄마의 생활반경이란 집, 기껏해야 마트, 공원을 못 벗어나기 마련인데, 가끔 답답할 때 찾아갈 단골 카페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로가 된다. 얼굴과 사정을 잘 아는 단골 가게라면 더욱 좋다. 커피를 혼자 마셔도 좋고, 가게 주인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좋다. 어떤 돌발 상황이 생겨도 여차하면 집으로 달려가면 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육아서에서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화 내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 한다. 그러나 나는 인격수양이 덜 된 탓인지 모성애가 부족한 탓인지 그게 잘 안 된다(갑자기 벼락치기로 인격수양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한다고 해도 애 키울 때는 소용없을 듯하다^^). 애를 키우다 보면 미치기 일보 직전, 아니 미치는 일이 다반사다(나만 그런 거?).
한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세 살 미만 아이의 엄마로 살려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란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예측불가능한 일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고, 그래서 24시간 내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걸…… 죽었다고 생각하기엔 나는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 있다. 아기가 모든 감각을 자극하고 열어놓기 때문에 더더욱 생생하게 깨어 있다. 그럼 이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경제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잠시 잠깐이라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아닐까? 억지로라도 갖는 게 좋다. 그래야 내가 살고, 아기도 살고, 남편도 산다. 이 세상 남편들이여, 아내가 즐기는 커피(무엇이든 아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에 투자하라~ 그럼 가정에 평화와 복이 있나니!!!
에엥~~
신데렐라 부엌데기로 돌아갈 시간을 알리는 알람소리. 아기가 깼다.
TV
_우리 집 공로상
남편은 텔레비전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텔레비전이 없으면 아예 못 산다. 텔레비전을 최고의 여가활동으로 알고 자란 TV 세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나는 같은 이유로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보지도 않으면서 텔레비전을 켜두고 생활하는 TV중독을 경험하고는 텔레비전을 딱 끊었고, 텔레비전 근처에도 안갔다.
그런 둘이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엔 내 입김이 센 탓에 텔레비전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의도적으로) 사고를 쳤다. 텔레비전도 없는데 인터넷을 신청하면서 3년짜리 케이블 약정을 떡하니 한 거다. 이쯤에서 나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못 이긴 척 텔레비전을 샀다.
그렇게 들여놓은 텔레비전은 본격적인 ‘장미의 전쟁’을 불러왔다. 특히 주말이면 남편은 텔레비전과 함께 하루를 시작해서 텔레비전과 함께 하루를 마감했다. 텔레비전과 떼어놓으려고 무조건 밖으로 끌고 나가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남편이 텔레비전과 붙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 혈압은 고속 상승했고, 급기야는 분노 게이지 폭발로 텔레비전을 깨부술 뻔했다.
이렇게 살다간 어쩌면 우리는 ‘TV 때문에’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끝끝내 텔레비전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며 고집을 피우거나 내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진짜로 텔레비전을 깨부수거나…… 결국 우리는 이렇게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1. 적어도 주말 오전에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다.
2. 주말에는 되도록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3. 저녁 시간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보고 끈다.
4.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지 않는다.
남편은 한다면 하는 내 성격에 혹시라도 진짜 텔레비전을 부숴버릴까 무서웠는지 이 약속들을 그런대로 잘 지켰다. 한동안 나와 남편, 그리고 텔레비전과의 평화가 유지됐다.
아기가 태어나자 남편의 텔레비전 의존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텔레비전 보는 것보다 아기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어진 것이다. <무한도전> 등 꼭 포기할 수 없는 예능 한두 개, 그리고 아기를 재우고 나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오히려 내가 텔레비전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는 몇 개의 프로그램에 관한 한 본방을 사수하는 열렬한 팬이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텔레비전을 깨부숩네 어쩌네 날뛰던 내가 텔레비전 앞에 순한 양이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육아로 지쳐 있고 아기에 묶여 있는 우리 부부 사이에 값싼(!) 활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극장에서 영화 한 편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부부 사이의 대화는 아이 얘기로만 가득 차게 된다. 어떤 때는 아기 얘기를 빼면 둘이 딱히 할 이야기가 없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같이 보면서는 서로 이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공감을 하고 공분도 하면서…… 가십거리나 시시콜콜한 얘기들일 때가 많지만, 가끔은 의미 있는 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수현 작가의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는 특히 그랬다. 집안의 장남이 커밍아웃하는 장면에서는 둘이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었더랬다. 시사 프로그램을 볼 때는 그 주제를 놓고 격렬한 토론도 하고, 케이블채널의 <슈퍼스타 K>를 보면서는 노래방에라도 온 것처럼 목청을 높여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제4의 심사위원이나 된 양 심사를 한다. <무한도전>이나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실컷 웃는다. 갓난아기 수발에 지친 우리 부부에게 텔레비전만큼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여가생활도 없다.
두 번째, 남편은 주위에서 ‘애 잘 보는 아빠’로 통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별거 없다. 본인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을 텔레비전, 더 정확히는 아이돌 그룹과 <개그콘서트> 개그맨들한테 빚지고 있다. 물론 남편이 원래 세심하고 자상한 성격인지라 육아가 체질에 맞기도 하지만, 남편의 다이내믹한 표정과 보디랭귀지가 한몫 단단히 한다. 남편이 아이돌 그룹의 춤과 개그맨 흉내를 낼 때마다 정말 배꼽을 잡고 웃는다. 내가 웃으니 우리 아기도 뭘 안다고 배꼽을 잡고 따라 웃는다. 심지어 이 춤의 위력은 내가 화났을 때나 명절날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빵빵 터진다. 실제로 처갓집 일가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걸그룹 춤을 춰서 사람들을 뒤집어놓은 적도 있다. <개그콘서트> 개그 역시 잘 통한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안면근육까지 동원해서 한껏 오버한 표정 연기와 중독성 있는 유행어가 이맘 때 아기에게 제대로 먹히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 집에 빅재미를 안겨준 TV에 공로상이라도 주고 싶다.
아이를 키울 땐 백 마디 말보다 풍부한 보디랭귀지와 같은 원시언어, 좀 망가지는 몸개그가 필요하다. 망가져야 산다. |
혹시 육아가 힘들거나, 아이 보는 게 힘든 분(특히, 남편)들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가 달리면 최신 아이돌 춤과 <개그콘서트>의 슬랩스틱 개그와 최소한 <개콘>에서 유행하는 유행어라도 따라 해보기를 권한다. 처음엔 유행어부터 소심하게, 자신감이 붙으면 춤까지 가보는 거다! 썰렁하다고 주변에서 타박해도 굴하지 말자! 하다 보면 재미있어지고,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그리고 더 신기한 건, 그렇게 유아짓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묘한 에너지가 샘솟는다. 믿거나 말거나? 밑져야 본전이다.
모양 빠져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권위가 떨어지고 얼굴 팔려서 못하겠다고? 그럴수록 더 권한다. 권위는 별개의 문제요, 가족을 위해서 얼굴 좀 팔려도 괜찮다. 어설플수록, 발연기일수록 효과는 더 크다. 남편도 집에서는 그렇게 ‘유치빤스’면서 밖에만 나가면 점잔을 뺀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자랐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유교 문화와 엄숙한 사회 분위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두뇌 노동을 하고 점잖은 문화인으로 살면서 몸의 언어는 잊혀져갔고, 그러면서 소통의 어려움도 생겼다. 그러나 밖에서는 몰라도 육아는 진정한 몸노동이요, 보디랭귀지와 몸 개그가 절실히 필요한 분야다. 아이가 어릴수록 더 그렇다. 아이들은 언어보다 원시적 소통, 즉 몸과 표정, 전체적인 분위기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핑계가 얼마나 좋은가? 핑곗김에 미친 척(우리 가끔 미치고 싶지 않나? 나만 그런가?^^)하고 해보는 거다. 알코올 힘을 살짝 빌려도 좋다. 집에서 무장해제되고 몸이 망가지는 순간, 소통의 물꼬가 트이고 아드레날린이 대방출된다. 단, TV의 달콤함 뒤에는 중독이 기다리고 있으니 조심해서 소비하는 게 좋다. 텔레비전을 소비만 하지 않고 재생산하는 자만이 텔레비전에 중독되지 않는다. 또 텔레비전에 압도당하지 말고 선별적으로 이용하는 자만이 텔레비전의 순기능을 누린다는 점에 밑줄 쫘악~ 별표 세 개 빵빵빵!!!
이번 주 역시 우리 부부는 최신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 <무한도전>과 <개그콘서트>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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