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내가 꿈꾸는
삶과 세상
제가 믿고 실천하고 싶은 삶의 원칙들은 사실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겸양의 마음, 측은지심, 염치 같은 기본 덕목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깃들인 삶을 꿈꿉니다. 욕심을 조금 더 내자면, 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냉철한 현실 인식 능력을 지닐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를 일상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힘들고 어렵고 외롭고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누는 적극적인 교감의 능력도 꼭 가졌으면 합니다. 교육감으로서는 ‘소통, 공감, 평등, 평화’ 같은 가치들이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 마음속에 삶의 원리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써 놓고 나니, 참 큰 욕심이다 싶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간절한 바람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공부하면서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또, 학부모들이 자식 키우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약육강식, 무한 경쟁의 전쟁터이기를 멈추고, 협력과 나눔과 평화와 배려가 넘치는 진정한 ‘선진 교육’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교육감 일을 시작한 이후 틈틈이 쓴 것들을 모아서 엮은 것입니다. 교육감 일이라는 게 잠시의 짬도 내기 어려울 만큼 일정이 빡빡해서 일부러 비우지 않는 한 독서와 집필을 할 한가한(?) 시간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특히 제 입장에서는 언제나 빳빳한 긴장감을 놓지 못한 채 모든 것들을 살펴야 합니다. 제가 한 순간 무심코 저지른 과오나 실수로 수많은 사람들이 땀 흘려 쌓아 온 개혁의 가치와 성과가 훼손될까 봐 솔직히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책 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의 시간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관성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이 계속해서 흘러들지 않으면 생각은 녹이 슬고, 불필요한 고집과 권위는 더욱 강해집니다. 다행히도 저는 성격이 비교적 꼼꼼한 편입니다. 틈나는 대로, 하찮은 생각일지라도 되도록 빠짐없이 기록해 둡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 저녁 일정에 조금 여유가 있는 날에는 교육감실에서 독서를 하거나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들과 교육 관련 중요 사안에 대하여 공식으로 발표한 글들 중에서 일부를 골라서 부끄럽지만 세상에 내놓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 소망을,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못난 이 책이 그분들께 작은 희망이라도 품게 해 드릴 수 있다면 제게는 참으로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산만하기 이를 데 없는 글들인데 한겨레출판에서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쳐 ‘책의 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서문을 쓰고 있는 이 순간, 갑자기 세찬 비가 후두둑 집무실 창문을 두드립니다. 애타게 기다렸던 달디 단 비가 축복처럼 내리고 있습니다. 백 년 만에 닥쳤다는 가뭄 때문에 온 나라가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목말랐던 나무와 풀과 곡식들, 불볕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 비로 싱싱하게 깨어나는 생명들처럼, 우리 교육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행복한 기운이 가득 차오르면 얼마나 좋을까요?
2012년 6월 29일
단비 내리는 밤, 교육감 집무실에서
김 상 곤 올림
첫번째 이야기
혁신교육은 희망의 교육입니다
혁신교육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도전
한국 사회와 교육 현실, 그리고 혁신교육
대한민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수많은 과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고 어려운 것이 교육 문제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치나 경제 문제보다 훨씬 더 해법이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학벌주의, 정글 법칙이 작동하는 비인간적 무한경쟁, 양극화와 교육의 기회 불균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교육 현실은 계층과 지역, 정치적 지향의 차이를 넘어 우리 시대 모두의 고통이 된 지 오래입니다. 현재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교육 현실이 주는 고통과 공교육에 대한 위기감은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정치나 행정 영역보다 교육 영역에서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받는 독특한 상황입니다. 기존 질서의 손질이나 개선이 아니라 교육을 구성하는 시스템과 문화 전반을 완전히 일신해야 하다는 요구가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사회 곳곳에서 강력하게 분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적 정서와 요구는 교육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직접 참여가 가능한 교육감 직선제에 의한 지방교육자치 제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2007년부터 광역 단위 자치단체 교육감은 주민 직선에 의해 선출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헌법 제31조와 지방자치법, 지방교육자치법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통한 교육 자치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직선 교육감과 교육 자치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큽니다. 2009년, 비록 남은 임기가 1년 2개월로 짧기는 했지만, 교육감이 된 저는 교육 개혁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온몸으로 느끼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교육 혁신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교육을 통해 미래 한국의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 앞에, 여전히 권위적ㆍ중앙집권적인 행정 체제와 문화 등 본격적인 자치를 제약하는 수많은 현실의 벽은 걸림돌이라기보다 딛고 넘어서야 하는 디딤돌로 보였습니다.
저는 특권 교육을 넘어선 ‘모두가 행복한 교육’을 약속하며 교육감 일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이러한 저에게 ‘최초의 진보 교육감’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셨습니다. ‘진보’적 교육 가치는 양극화와 특권화된 교육 현실,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 입시교육 등으로 피폐화된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결과이자, 공교육 혁신에 대한 강렬한 기대감의 표현이라고 저는 독해했습니다. 경기 혁신교육이 절망적 교육 현실을 넘어 행복한 교육과 미래를 예감케 하는 새로운 ‘교육의 창’이 되도록 진정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엄청난 압축적 고도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나 산업구조 면으로 보면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구매력 기준으로 본다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뉴질랜드보다도 높고, 서비스 시스템이나 주요 제조업 생산 분야의 산업구조 면에서도 선두 그룹에 속합니다.
그러나 삶의 질은 국가의 경제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경제가 성장한다고 국민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범죄나 수감자가 줄어들거나 사회 갈등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며, 정치적 자유와 교육의 기회 균등 같은 가치가 저절로 실현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경제성장을 위한 경쟁과 효율이 맹목이 되면 서로의 삶을 파괴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미국은 1인당 GDP는 높지만 인구 대비 수감자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5배 가까이 많을 만큼, 어느 면에서는 범죄가 많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진국입니다. 1950년대에 비해 국민소득은 현저하게 늘어났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미국 금융 경제 위기를 부른 경제 불평등과 낮은 수준의 복지가 낳은 안전망 없는 사회, 그리고 미국 고등학생들의 30% 전후에 이르는 높은 중퇴율 등은 미국 사회와 교육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 교육 또한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명석한 학생들의 높은 학업 성취 욕구,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인정받는 교사들의 수준과 헌신성을 기반으로 눈부신 양적ㆍ질적 성장을 이루어 왔고, 그 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더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3년 주기로 발표되는 PISA와 같은 국제학력평가 결과에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고, 세계 최고의 고등교육 이수 비율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성장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양적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교육의 공공성과 사회적 신뢰가 바탕이 된, 질적으로 발전된 새로운 시대의 교육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한국 교육의 문제는 입시교육,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와 결합되면서 더욱 복잡한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가장 적은 시간을 자고 있습니다. PISA 평가를 주관하는 OECD 교육부장이 핀란드와 한국을 비교하면서 “핀란드는 숙제도 없이 학생들이 스스로 학업을 열심히 하고 선생님들은 그들의 뒤를 적극 지원하여 이런 성과를 얻었으나 한국은 심한 경쟁의 결과로 만들어졌다”며 한국 학생들의 높은 성적을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때로 비교육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성적 향상과 성공적인 입시를 위해 문제들을 덮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외 계층의 자녀들은 학교 교육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보류당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다리를 걷어차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많은 학부모들이 노후 대비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자녀 교육에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만, 불공정한 경쟁 구조 때문에 성과를 얻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소득수준에 따른 교육 양극화와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아이들의 교육 수준을 결정하고, 교육이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양상입니다.
이런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서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 교사와 학부모, 경영자와 노동자를 막론하고 한국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언가 바꾸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에 관한 요구는 더욱 다양해졌으나 과거의 교육 체제와 문화가 그대로 온존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같은 정서적 불편함도 한몫을 합니다. 하지만 문제 인식이 곧바로 올바른 개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책이나 제도만으로는 작은 것 하나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사교육비를 조금씩 줄이는 일조차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과 유사합니다.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는데도 작은 이익에 집착하다 모두가 패자가 되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는 곧 교육 문제가 문화ㆍ풍토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무한 경쟁 신화에 사로잡힌 신자유주의 경제와 교육 체제는 자칫 모두를 불행한 파멸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세계가 점차 깨닫고 있습니다. 복지가 선심이 아니라 공존과 예방을 뜻하듯이, 좋은 교육 또한 무한 경쟁을 통한 승자 독식이 아니라 협력과 나눔이며, 그것이 더 큰 ‘공부 경쟁력’, ‘경제 경쟁력’, ‘문화 경쟁력’ 이라는 점을 우리도 서둘러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교육을 구성하는 패러다임의 변혁paradigm shift이 절실합니다. 이제 양적 성장의 교육 신화와 왜곡된 교육 상황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 싱싱한 생명의 기운이 흐르게 함으로써 교육의 행복한 미래를 여는, 이러한 교육 패러다임 변혁의 지향과 과정을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혁신교육’입니다. 혁신교육은 앞서 말씀드린 한국 교육의 질곡에서 벗어나 공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교육, 평화적이고 더불어 행복한 학교 문화를 꿈꾸는 교육입니다. 혁신교육은 행복한 배움을 통해 모든 학생이 차별 없이 자기 가능성을 실현하는 교육입니다. 창조적 상상력과 존중ㆍ배려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함은 물론이고 온 인류의 발전과 평화에도 기여하는 학생을 길러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혁신교육은 교육 운동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개혁의 동력을 만들어 가는 사회 운동이자 문화 운동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3년간 혁신교육을 펼친 경험을 통해 당당하게 ‘교육의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육의 무한한 잠재력과 교육 주체들의 역량, 그리고 변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공교육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혁신학교입니다. 공교육의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발전시키려는 모델인 혁신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에 불과하지만, 교사와 학부모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2012년 6월 현재 154개 혁신학교와 48개 혁신학교 예비지정교에서 지속 가능한 공교육 개혁 모델을 만들기 위한 헌신적 노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모범적인 혁신학교들에서는 제도와 예산, 정책 등 체계적인 지원 체제가 아직 미비한 상황에서도 열정과 능력을 겸비한 교사와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면서 학교를 새롭게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장의 뜨거운 교육적 열정과 행ㆍ재정적 지원이 효과적으로 결합되면 공교육의 질적 수준과 학교 문화를 현저하게 개선할 수 있으리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혁신교육의 의미는 교육 영역에 국한되지도 않았습니다.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의 사회적 의제화와 활발한 논의가 그 사례입니다. 무상급식은 교육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새롭게 함으로써, 공교육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자존감과 인권 의식을 강화하고, 민주적 분위기 속에서 평화의 학교 문화를 구축해 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혁신교육이 교육 영역을 넘어 보편적 복지와 인권, 정치ㆍ경제적 민주주의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우리 사회 삶의 질을 높이는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몇 년간 무상급식 논란을 거치면서 복지 담론이 촉발되고, 수많은 논의와 토론을 거쳐 무상급식을 넘어 고교 무상교육과 유아교육비 지원, 대학 체제 개편과 반값 등록금에 관한 공약이 제시되는 등 정치권과 사회 각계각층에서 교육과 복지 문제를 놓고 공론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혁신교육은 추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기존 교육의 문제점에 공감하면서도 개혁의 내용과 방식, 절차와 시기를 놓고 견해를 달리하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 간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교육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르는 불가피한 진통이자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논쟁의 과정에서 혁신교육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분명히 설명되기도 합니다. 다양한 공론화 과정은 혁신교육의 발전에 꼭 필요한 소중한 경험입니다. 그 과정에서 대안에 대해 치열하게 검토하고, 미래의 진취적 교육 방향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혁신교육의 원리
혁신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우리 사회와 공교육이 직면한 문제에 답하려는 총괄적 혁신 운동입니다. 혁신교육은 공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미래지향적으로 한 차원 높게 변화ㆍ 발전시킴으로써 교육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를 위해, 혁신교육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분명한 철학적 관점과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종합적인 교육 개혁 방안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혁신교육은 무너진 교육 공공성의 가치를 구현하는 일입니다. 사회의 양극화와 교육의 특권화ㆍ서열화, 그리고 그로 인한 공교육의 마비 상황을 극복하고 모든 사회계층이 질 높은 공교육의 성과를 폭넓게 향유하도록 하고, 교육이 사회 전체의 건강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내용을 발전시키고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행복한 배움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공교육에는 모든 학생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도적ㆍ문화적으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균형 잡히고 다양성이 살아 있는 건강한 사회를 회복하는 데 교육이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소외 계층의 자녀일수록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육 기회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되는 상황은 명백히 비교육적입니다. 혁신교육은 교육의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고 소외 계층 자녀들에게 균등한 교육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혁신교육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과 지식ㆍ문화 기반의 강화라는 사회적 책무를 가장 큰 가치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혁신교육은 교육의 내용 면에서 창의성의 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창의성이 교육의 궁극적 목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줄 세우기 교육 때문에 껍데기만 남은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볼 때, ‘창의성’은 한국 교육 개혁의 기본 목표일 수밖에 없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가치입니다. 최근에 한국과 세계 교육계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창의성 교육이야말로 ‘잠자는 교실’과 ‘교실 붕괴’로 상징되는 무너진 교실을 회생시키고 교육의 질을 혁신할 수 있는 혁신교육의 핵심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혁신교육은 교육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집단적ㆍ사회적 협력을 통한 역동적 발전의 가치를 원리로 삼아야 합니다. 혁신교육은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인간관의 한계를 직시하고, 소수의 우월한 승자 그룹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왜곡된 수월성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배움과 지적 활동은 사회적 지혜가 한데 모이는 협력적 방식을 통해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학문적 성장을 의미하는 수월성 개념은 다수의 학생들을 목표로 하되, 선두 그룹과 중위 그룹, 하위 그룹이 서로 발전을 자극할 수 있도록 다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생이 저마다 가진 잠재성이 계발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혁신교육은 학문적 성장, 배움을 준거로 하는 수월성 기준을 갖지만, 다수를 목표로 역동적 발전과 성장을 추구하며, 학생들의 다양성을 계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혁신교육은 학교 공동체 안에서 다수의 수월성, 역동적 수월성, 다양한 수월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혁신교육은 학교 공동체 운영 및 학생 생활의 원리와 관련하여 민주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저출산, 정보화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사회성, 권리 인식에 관한 교육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독립된 주체로서 학교생활과 배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정한 창의성은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나아가, 민주주의 교육과 민주적 학교생활은 학생들이 미래의 민주 시민으로서, 그리고 우리사회의 지도적 주체로서 소양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섯째, 혁신교육은 개혁의 지향과 인재를 보는 관점에서 열린 세계관으로 협력과 소통의 국제적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세계는 ‘지구촌’이 되어 가고 있고,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의 특성은 우리 학생들에게 미래의 유능한 국제적 인재로 살아갈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화는 다양한 국가와 경제 주체를 중심으로 불균등하고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냉전은 복잡한 문화 관계, 국가 간 관계,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들을 등장시켰고 국제 관계는 평화보다는 갈등과 위험이 커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혁신교육은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관계의 특징을 정확히 인식하면서 평화와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진정한 ‘글로벌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이기적인 경쟁과 외국어 능력 습득을 위한 기능적 몰입만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다양한 국가 및 세력들과 소통하고 협력을 이끌어 낼 줄 아는 능력을 키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혁신교육은 국제사회에 대한 민주적 이해와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통해 공존과 협력, 소통의 국제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합니다.
혁신교육의 정책 과제
지금은 이러한 혁신교육의 철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지역, 혹은 초ㆍ중등이나 대학 교육과 같은 학교급 차원을 넘어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한국 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관한 종합적이고도 세밀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마치 위성사진을 찍고 판독하듯이 전체를 굽어보면서 막힌 부분을 살필 수 있는 기술과 혜안을 갖추어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 기획력과 집행력, 그리고 개혁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서로를 일깨우고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학생들의 창의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초·중등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창의지성교육’을 학교 현장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혁신교육은 비판적 사고 능력, 풍부한 체험 및 실천 능력, 그리고 평화적 소통 및 협력의 경험을 통해 상상력과 통찰력을 겸비한 창의적 학생을 육성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재해석ㆍ재구성하여 ‘창의지성교육’의 일반적 내용과 방향, 그리고 혁신교육의 기본 가치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개발된 커리큘럼을 우선 혁신학교에 적용해 보면서 성찰적 사고력이 살아 있는 행복한 배움과 창의성 함양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아야 합니다. 그를 통해 확인된 성과는 중등교육에서 중·고등학교 연계형 혁신학교 벨트를 통해 진로ㆍ진학과 연계된 창의지성 교육과정으로 완성도를 높여 체계적ㆍ전면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평가 방식 또한 창의성 평가 체제로 질적 전환이 시급합니다.
이러한 창의력 중심 교육과정을 통해 기존 교육과정의 단편성과 편중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을 향상시키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지적·문화적 전통을 새로이 창조해야 합니다.
둘째, 교육 활동을 중심으로 학교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입니다. 교육의 대부분은 교사와 학생이 대면하는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교실 중심, 수업 중심의 학교 체제가 좋은 교육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아직도 ‘잡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 조직을 효율화하여 불필요한 업무를 대폭 줄이고 교원의 행정 업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합니다. 특히 행정실과 교무실을 통합한 교육지원실을 운영하고, 교육행정 전담 인력을 확충하여 교사들이 수업 연구와 학생 지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대규모 학교의 경우, 자율적 권한 위임과 특성화를 추구하는 ‘학교 내 학교’로의 전환도 많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학교 문화를 평화의 문화로 바꾸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인권 및 평화 능력을 신장하는 교육을 펼쳐야 합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인권 존중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평화 능력’을 길러 학교의 문화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민주 시민의 자질을 키워나가는 바탕이 됩니다. 평화 능력이란 수동적ㆍ소극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발전을 위하여 건강하게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인권 감수성을 향상시키고, 일상생활 속에서 평화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혁신교육은 ‘보편적 교육 복지’를 선진국 수준의 방식과 내용으로 확충해 나가는 교육입니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헌법 정신에 충실한, 차별 없는 돌봄과 복지가 구현되어야 합니다. 이는 초ㆍ중등 교육 과정에서 사회적ㆍ가정적 문제로 인해 학생들이 학교교육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가능성의 평등’을 구현하는 일입니다. 다양한 학생 문제를 범주화하여 사안별로 지방자치단체 및 국가기관, 시민사회와 연계해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대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근래에는 곳곳에서 세계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대안은 분명합니다. 지속 가능한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 방식의 ‘미래형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교육과 복지를 소모성 지출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왜 보편적 복지인가?’ ‘어떻게 재정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 확보를 위한 논의도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교육 혁신은 크게 보면 복지 확대와 새로운 학교 문화 창출이라는 접근을 통해 공교육 전반의 정상화를 도모하는 일입니다. 무상급식은 무상교육으로 이어져 보편적 교육 복지 체계를 구축하고, 이는 소득재분배와 교육의 실질적 기회 균등이라는 교육 공공성 강화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영유아의 교육과 보육, 그리고 고등학교 교육을 완전 무상화하여 무상교육의 범위를 양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한편, 학교 운영 지원비, 체험학습비, 학습 준비물 비용등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공공의 책임으로 돌려 무상교육의 질적 내용도 확충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정부 재정지출의 구조와 조세 개혁을 통해 예산을 확보해야 하며,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복지 확대는 필연적으로 복지 재정 확충과 연계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도 이제는 부유세 등 증세를 위한 조세 체계 및 지출구조 개혁으로 복지 예산을 확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보편적 복지가 일반화한 나라는 경제ㆍ금융 위기 국가 명단에 쉽게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극단의 교육 양극화가 진행되는 우리 공교육 붕괴를 막는 안전장치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다섯째, 교원 임용 방식과 교원 연수 체제를 대폭 개혁해야 합니다. 혁신교육은 비판적 지성을 갖추고서 창의성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교사의 역량에 의해서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단편적 지식의 이해 정도를 중심으로 선발하는 현행 임용고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창의지성의 기초를 이루는 철학과 논리적 사고력, 교과 지도의 전문성, 교사로서의 품성과 자질 등 임상능력을 중시하는 식으로 교원 임용 방식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초ㆍ중등교육에서 창의지성형 인재를 교사로 우선 선발하면, 대학 등 교사 양성기관의 교육 방향 또한 그 방향으로 개혁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혁신교육은 현직 교사들의 지적 역량, 창의지성 교육 역량, 그리고 교원으로서의 자질을 개선하기 위한 체계적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혁신교육을 주도할 교사들의 중ㆍ장기 연수 기관인 ‘혁신학교 아카데미’를 통해 학교 현장 교육 및 교육 정책의 혁신을 주도할 교사 리더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선진적 역량을 갖춘 교사들이 혁신교육의 질적 개선을 담당해야 합니다.
여섯째, 진정한 의미의 교육 자치 실현을 위한 제도와 문화를 정비해야 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의 교육 자치는 기존의 중앙집권적인 통제, 행정 자치와의 관계 등 교육 자치 발전을 가로막는 다양한 장애 속에서 갈등과 조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치의 정신과 가치를 어렵게 지켜 왔습니다. 자율과 책임을 다하는 능동적 교육 자치는 자발적 개혁의 원천입니다. 최근 몇 가지 사안을 빌미로 교육 자치의 퇴행을 도모하는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정확히 비판하고 함께 대응해야 합니다. 올바른 교육 자치의 정착만이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지친 교육과 학교 문화를 바꾸어 낼 수 있습니다.
혁신교육 정착과 창의지성교육 발전을 위한 노력
혁신교육이 한국 교육의 분명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과제 또한 산적해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혁신교육 체제를 성공적으로 형성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앙정부는 학교의 자율권 확대와 지방 교육 자치의 정신을 살릴 수 있도록 규제와 개입을 과감하게 축소하고 지역의 교육 자치를 지원하는 체제로 그 역할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경제 규모와 위상에 비례하는 교육예산 확보와 효율적 운영으로 선진국형 교육 환경을 구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합니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법정 교사 정원 확보와 교사 1인당 학생 수 감축을 기본으로, 교육 환경 및 여건 개선을 위한 획기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자치단체와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ㆍ운영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교원 임용권과 징계권 등의 인사권을 직선 교육감에게 이양하는 것도 지방 교육 자치의 의미를 살리는 방안입니다. 중앙정부는 기본적으로 지원자 및 조정자 역할을 맡아 교육 격차 해소와 정책 조율에 힘써야 합니다.
자치단체 교육청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둘 다 교육청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교육청은 대체로 교과부의 정책을 단위 학교로 전달하는 일종의 터미널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민선 직선 교육감 출범 이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교육 자치 시대에 걸맞은 교육 철학과 가치, 정책 방안을 통해 우리 교육의 길이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정책 담당 기관의 관료적, 권위적, 전시적 행정도 시급히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 학부모, 시민사회의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공동의 실천 노력입니다. 특히 학교 혁신 과정에서 교사의 자발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혁신의 주체는 결국 교사들이며, 선생님들의 자발성과 교육적 열정, 그리고 지성적 책무성 여부에 따라 혁신교육의 미래가 좌우됩니다. 따라서, 교사들의 효능감과 자존감,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과 제도, 행정 지원이 혁신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합니다.
혁신학교는 교사들의 노력과 헌신에 의해 학교가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뀌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혁신학교들의 모습을 정밀하게 살펴보면 우리나라 교육 개혁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육과 학교를 혁신하는 일은 기존 관행과 문화를 새롭게 하는 일인 탓에 매우 어렵고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이나 예산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결국은 교육의 시작이자 끝인 교사들의 열정과 헌신만이 우리 교육을 살리는 진정한 힘이 됩니다.
혁신교육은 한때의 바람이나 유행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의 교육 이론을 받아들여 국가 수준에서 무슨무슨 운동, 무슨무슨 교육과정의 이름으로 수많은 ‘운동’을 전개해 왔지만 결과는 언제나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거나 정부가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구호와 자료집만이 잔해처럼 굴러다녔고, 교사들은 피로감을 호소했으며, 그 결과 우리 교육은 갈수록 황폐해졌습니다.
혁신교육이 이러한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북유럽 교육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학부모, 학생, 그리고 교육 당국이 교사와 학교를 진정으로 신뢰하고, 교사들은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북유럽 교육은 ‘경쟁적 시장경제’와는 다른 ‘비시장적 복지사회’를 추구하면서도 더 높은 수준의 교육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북유럽보다 훨씬 더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그처럼 우수한 집단이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사회 전체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끊임없이 개혁의 대상으로 치부되면서 힘을 잃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 내야 합니다.
교육이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면 “교사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고, 교육 관청과 교사 모두가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
혁신교육을 통한 새로운 교육 희망을 위하여
교육감 일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랜 세월 지속해 온 교육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통해 교육 문제 전반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안에 들어와서 바라본 교육 문제는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질환의 부위와 정도가 다를 뿐, 모든 학교에서 모든 사람들이 교육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개혁에 대한 기대는 임계점을 넘어섰는데도 이러한 한국 교육의 난맥을 풀어내는 해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지만, 최선의 노력이 언제나 최선의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으로는 만리장성을 쌓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존의 관행과 벽은 대단히 정교하고 강고하며, 이상과 현실은 그 괴리가 너무도 큽니다.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마음이 어둡거나 답답할 때에는 밤늦은 시간 오랫동안 혼자 걷곤 합니다. 그리고 가끔 고전이나 잠언집 같은 책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의 시끄러움이 조금 가라앉으면서 생각의 갈피가 잡히곤 합니다.
인류의 스승이라 불리는 레프 톨스토이의 잠언집도 제가 즐겨 읽는 책입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 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평범한 말들이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을 줍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말끔한 신세계를 펼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새로운 교육의 꿈을 안고 열정과 헌신을 다하는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면서 대한민국 교육의 새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믿기로 합니다. 교육은 교육 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을 통해 가치와 본질을 구현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행복한 배움을 통한 진정한 ‘교육 경쟁력’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뜻을 물으며 설계도를 그리고 주춧돌을 놓으며 아름다운 ‘우리들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 국민 모두에게 짐을 지우던 교육을 미래를 향한 ‘희망의 교육’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땀과 눈물을 섞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들이 모여 우리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삶의 현장, 교육 현장에서 각성된 낱개의 움직임들이 실개천으로, 냇물로, 강물로 흘러 교육 혁신의 바다로 모이고 있습니다. 쉽게 성과를 말하기 어려운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더디 가더라도 끊임없이 서로 말을 걸면서 생각과 실천을 나누는 이 과정 자체가 교육 개혁의 진정한 힘이자 문화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혁신교육은 미래 사회를 위한 진정한 교육의 가치가 구현되고, 학교가 학생들의 행복한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 될 때까지 쉼 없이 달려야 합니다. 교육 양극화와 사교육비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합니다. 학벌 중심 사회가 몰고 온 왜곡된 교육 현장에 대해 반성함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창의적ㆍ민주적으로 성장하는 인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그들을 길러 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곳에 교육과 사회의 희망,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