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나눔은 미래의 희망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는 언제나 저의 지지자였습니다. 그리 잘나지도 않고 뛰어난 손자도 아니었는데 외할머니는 항상 “우리 손주, 우리 손주.” 하시며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전라북도 부안의 외진 시골마을에서 사시던 외할머니는 바리바리 먹을 걸 짊어지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서울 우리 집에 오셨고, 늘 짐도 내려놓기 전에 제 손을 꼭 잡고 어루만지면서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때는 제 손을 잡아주시던 할머니의 손이 거칠고 투박해서 슬쩍 빼곤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제 손을 잡아주시던 할머니의 투박한 손이 제게 얼마 나 커다란 의미를 지닌 손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투박한 자신의 손을 통해 제게 정을 전해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손은 할머니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통해 제 존재를 확인시키면서 제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던 겁니다. 한 번도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보시면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생각해보니 할머니뿐만 아니라 시골에 사시던 어른들은 제가 시골에 놀러 가면 예외 없이 그렇게 저를 반겨주시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존재를 확인받는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처럼 보고도 못 본 것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때에는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기 힘들며 자연스럽게 자아존중감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존재를 무조건 인정해주고 보호해주던 가정이 점점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믿고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게다가 자존감이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현실은 더욱 가혹하기만 합니다.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에게 그나마 믿고 의지할 곳은 학교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도 더는 아이들에게 그런 보금자리를 제공해주고 있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국가교육과정은 점점 세분화되면서 양이 많아지고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성보다는 지식만을 전달하는 역할이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따뜻했던 할머니의 손보다는 차가운 가르침의 손이 더 많이 요구되는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자존감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도 더는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아이들에게 언제까지 지식만을 전달해야 하는지 교사인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따뜻한 감성도 인간적인 관계도 필요한데 말입니다.
그런 제게 하나의 희망이 되어준 것이 나눔교육입니다. 지식뿐만이 아니라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도 가르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죠. 처음엔 나눔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나눔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에 큰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한두 가지 적용해보면서 정말 나눔을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고 나눔은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들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도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더 폭넓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교사도 변하게 만드는 것이 나눔교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더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곳으로 변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자존감이 살아나면 서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서로를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게 되고 그런 존중을 바탕으로 소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모두가 교실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실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교실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간에 토론과 협의가 일어납니다. 나눔이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을 특별한 경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눌 수 있는지,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언제 나누어야 하는지, 얼마나 나누어야 하는지 등을 판별하려 하면 나눔이 어렵게만 느껴지지만, 그런 구별이 없어지면 나눔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활동이 됩니다. 그러면서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누구나 먼저 시작하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부족하다고 하는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길러집니다. 별도로 시간을 내서 리더십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만 주면 됩니다. 지식만을 전달하는 교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이렇듯 나눔교육은 아이들의 낮아진 자존감을 높여주고, 높아진 자존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소통이 일어나도록 하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게 해주면서 리더십도 길러줍니다. 나눔교육은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할 수 있어야 하고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1, 2장에는 나눔에 대한 제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3, 4장에서는 나눔교육을 하기 전에 할 수 있는 활동을 정리했고, 5장부터 7장까지는 실제 나눔교육 활동을 나눔교육의 효과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8장에는 나눔교육의 마무리를, 9장에서는 교실에서 1년 동안 어떤 활동들을 할지 정리했던 기록을 모아봤습니다.
1장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나눔에 대한 정의를 나눴습니다. 나눔을 하기 전에 나눔에 대한 생각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올바른 나눔을 할수 없습니다. 생각이 없는 어설픈 나눔은 나눔을 주는 사람이나 나눔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생각지도 않은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2장에서는 나눔의 종류를 나눴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나눔이 있는데 우리는 대부분 기부와 관련된 돈의 나눔만을 생각합니다. 좀더 다양하고 쉽게 나눌 수 있으려면 나눔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나눔들을 모두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3장에는 나눔을 정의할 수 있는 활동들을, 4장에는 나눔교육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자존감 살리는 방법들을 정리했습니다. 본문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는 나눔교육이라는 것이 별로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나눔교육을 하기 전에 아이들의 자존감을 점검하고 떨어진 자존감을 살려줘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교사 자신도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5장에서 7장까지는 나눔교육을 교실에서 어떻게 했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눔교육의 효과를 바탕으로 활동들을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각 교실에서 필요한 부분들에 해당되는 활동을 알맞게 적용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5장에서는 주로 소통하는 방법들을 정리했고, 6장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나눔활동들을 정리했습니다. 7장에서는 나눔을 통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정리했습니다. 특히 나눔은 우리끼리 하고 끝나는 활동이 아니라 우리의 나눔활동을 통해 사회도 같이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활동들을 정리했습니다. 작지만 작은 것들이 모여서 나중에 큰 흐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장은 나눔교육을 정리하는 활동들을 모아봤습니다.
9장은 나눔교육 과정을 모았습니다. 1년을 월별로 나눠서 계기교육과 함께한 2006년 나눔교육 과정을 비롯해, 1년 동안 단계별로 하고 있는 올해 나눔교육 계획까지 표로 만들어 정리했습니다. 아마 1년 단위로 나눔교육을 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복지관이나 복지단체 등에서 하고 있는 나눔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회차별 나눔교육 과정도 정리했습니다.
또한 각 장마다 부모들을 위한 가이드를 제시했습니다. 학교에서만 나눔교육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해야 진정으로 생활 속의 나눔이 실현됩니다. 그런 나눔활동들을 집에서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이 책을 이용해서 집에서도 나눔을 가르쳐보시기 바랍니다.
2012년 4월
전 성 실
1장
나눔은 소통하는 것입니다
나눔교육은 2004년 아름다운재단의 나눔교육 교사연수를 기점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눔교육이란 말은 매우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나눔을 가르친다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것 같습니다. 말은 생소했지만 실은 이미 대부분의 학교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알게 모르게 하고 있는 교육이기도 했습니다. 나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것은 아름다운재단에 의해서였지만 이미 나눔교육이라는 것은 행해지고 있던 교육이었습니다.
나눔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나눔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눔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것(give)’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주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와 함께 ‘나누는 것(sharing)’도 나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아무런 의미 없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과 조건을 생각하면서 이뤄지는 것(communication)’도 나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물질나눔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필요치 않은 것을 나누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인터넷상에서 별 생각 없이 서로의 정보를 나누는 것도 나눔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나눔이란 일종의 소통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통하는 법을 찾아가는 것을 나눔교육이라 할 수 있고, 소통이 이뤄지면 나눔이 이뤄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눔이란 사람마다, 생각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정의됩니다. 또한 나눔이란 정해진 뜻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자기 나름대로 나눔을 정의해볼 수도 있습니다.
1. 나눔은 주는 것
위 두 사진에 있는 물건은 무엇일까요?
2008년 5월 14일 저는 반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선생님에게 줄 선물을 사오지 마세요. 선생님은 받지 않겠습니다. 정 선생님께 선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만들어오세요. 만들어오는 선물은 받겠습니다.”
스승의 날에 선물을 받지 않기 위해 해마다 반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부모님이 사주신 선물을 하나씩 손에 들고 교실로 들어옵니다. 이것이 스승의 날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모습이지요.
이튿날 스승의 날이 되어서 보니 정말로 아이들이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제 말을 잘 알아들은 것입니다. 작전 대성공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가져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선물을 만들어온 것입니다. 그것도 두 명이나요. 앞의 사진이 그 선물들입니다. 제가 만들어오는 선물은 받겠다고 했더니 둘 다 밤새 엄마랑 같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밤새 저를 생각하면서 만들었을 그 마음을 생각하니 어찌나 고맙던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제가 원하는 선물을 만들었을까요? 제가 원하는 선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선물을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아이들이 제게 주고 싶은 것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는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나눔의 첫 번째 정의는 ‘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 함께 쓴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주기 때문에 그것을 받은 사람이 좋을 수도 있지만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받을 사람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인 나눔일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가 몇 년 전에 아이들에게 보상을 주던 시절에 사용했던 교구를 한번 볼까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적은 종이를 안에 넣고 점토로 감싸서 공처럼 만들어 통에 넣은 다음, 아이들이 돌려서 통 안의 공을 뽑도록 한 것입니다. 이때 아이들이 무엇을 뽑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무슨 선물을 줄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아이들이 무엇이 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해하면서 뽑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런 조마조마함을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일방적인 활동이었습니다. 단순히 주고 끝나는 그런 나눔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나눔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을 만날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눔이란 뭘까요?”
이 질문에 아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대답합니다.
“친구에게 사탕을 주는 것입니다.”
“친구에게 공책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길 가다가 불쌍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입니다.”
나눔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기에 내가 나누어줄 무언가가 없으면 나눔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머리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바로 형편이 어려워 경제적 도움을 받는 아이들입니다. 지역에 있는 복지관이나 돌봄 센터에 나눔교육을 하러 가면 아이들의 첫 질문은 대개 수업을 잘 들으면 무얼 줄 거냐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받는 것에만 익숙한 아이들이라서 누가 오든, 무엇을 배우든 간에 무엇을 받을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교육을 하러 오면 아이들과 수업을 잘하기 위해서 먹을 것이나 기념품을 준 모양입니다.
“선생님은 뭘 주러 온 게 아니라 여러분과 수업을 하러 온 거예요.”라고 저는 딱 잘라 말합니다. 아이들은 아쉬운 한숨을 내쉬지만 그 뒤로 무엇을 달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한 시간 정도 나눔에 대한 교육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은 조금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은 받는 사람이지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구나,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누군가와 나눌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고는 무척 기뻐합니다.
경기도에 있는 ‘당동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눔교육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난 뒤 한 중학생이 쓴 후기를 제게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지금 나는 솔직히 놀랐다. 지금껏 불행하다며 불평불만을 했지만 현재 나보다 더 불행... 아니 힘든 아이들이 있고, 나보다 더욱 괴로운... 나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는 게 최악의 당황이었다. 최소한이라도 나는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최대한 힘을 쓰고, 최대한 내가 나누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조그마한 행복도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생각을 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Salon에서 활동할 것이다.
- 2010년 ‘당동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나눔교육을 받은 어느 중학생의 후기
후기에서 보듯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기 때문에 자신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사람이지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서 아이들의 행동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나눔교육을 받은 아이들끼리 모여 동네에서 빈 병을 주워 팔아서 돈을 모아 기관에 기부를 한다고 합니다. 나눔교육을 받지 않았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들입니다.
나눔이란 주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물질적인 것들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눔은 정말 어렵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유한하기도 하고 값이나 질적인 수준에서 차이가 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가진 것이 없으면 나눌 수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기도 합니다. 나눔은 어렵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2. 나눔은 주고받는 것
일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합니다. 일 년 동안 선생님과 했던 수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거나 기억에 남는 수업을 5개 적어보도록 합니다. 해마다 같은 수업이 1위를 하는데 바로 나눔장터라는 수업입니다. 벼룩시장이라고도 하고 알뜰시장이라고도 하는 물물교환을 하는 수업입니다.
아이들은 왜 나눔장터를 좋아할까요?
“1학기 동안에 나눔장터를 하면서 느낀 점이 많이 있었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준비를 할 때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리고 팔 때와 살 때는 마음이 떨렸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힘든 점은 없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나눔인 것 같았다.”
- 2008년 2학년 이정민
“정말 장사를 하는 것이 재미있어 보이면서도 힘들다. 왜 힘이 드냐 하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물건을 하나 정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사를 하면서 돈을 아껴 쓰게 되었고 장사란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되었다. 장터를 한 덕에 돈을 아껴 써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눔장터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2학기 나눔장터가 기대된다. 2학기가 빨리 왔으면 좋을 텐데.”
- 2008년 2학년 김신영
“물건을 사니 진짜 손님이 된 것 같았고 물물교환을 해서 재미있었다.”
- 2009년 2학년 임재민
“처음 나눔장터를 했다. 이번 나눔장터에는 파는 사람을 했다. 물건을 많이 가져와서 다 안 팔릴 것 같았는데 다 팔려서 참 기뻤다. 다음에 또 할 때는 사는 사람을 해서 많은 물건들을 사야겠다. 파는 사람도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사는 사람은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고 싶다. 그래서 다음에 할 때는 사는 사람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나눔장터는 참 재미있었던 것 같다.”
- 2009년 2학년 진하민
아이들이 나눔장터를 마치면서 쓴 글인데 하나같이 서로의 물건을 나누는 것과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의 물건을 다른 사람과 바꾸어서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집에 아이가 많지도 않아서 기죽이지 않으려고 되도 록이면 새 물건을 사서 아이에게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항상 새 것을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누군가와 자기의 물건을 바꿔서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나눔장터를 하면 다른 친구들이 사용했던 물건을 써볼 수도 있고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을 다른 친구들이 써보게 됩니다. 이렇듯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때문에 나눔장터가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들도 아이 기를 죽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물건을 공유한다는 점이 좋았다고들 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적극적으로 나눔장터 활동을 도와주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장터에서 팔 물건을 사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나눔장터에서 물건을 팔고 싶은데 가져올 물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는 누가 봐도 쓸 수 없을 만큼 헌 물건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눔장터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눔장터에서 팔 물건은 새 물건을 사오거나 쓸 수 없어서 버리려던 물건을 가져오면 안 됩니다.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지만 다른 사람과 나눠 쓰고 싶은 물건을 가져오도록 하세요.”
사실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나눔장터를 몇 번 해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주기만 하는 첫 번째 나눔의 정의와는 다른 점입니다. 내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줄 때 이 정도의 물건은 되어야 하겠구나, 라는 기준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즘엔 물건만 팔지 않고 추억도 함께 팔게 합니다. 물건을 준비할 때 접착 메모지나 라벨지에 그 물건에 담긴 추억을 적어서 함께 가지고 오도록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에 담긴 추억을 물어보게 되고 물건이 딱히 맘에 들지 않더라도 물건에 담긴 추억이 맘에 들어 사기도 합니다. 그 물건의 추억을 함께 사게 되는 것입니다.
판매자의 추억을 구매자가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나눔의 정의입니다.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것입니다.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건이 되었든 추억이 되었든 말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상대방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기 입장에서 추측하는 것입니다.
3. 나눔은 소통하는 것
2005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8년째 교실에서 나눔교육을 해오고 있습니다. 교육을 해오면서 조금씩 프로그램이 변하기는 했지만 작년(2011년)처럼 나눔에 대한 철학이 크게 변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눔은 소통이라고 말은 많이 하고 다녔는데 왜 소통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부족했었습니다. 작년에서야 비로소 그 답을 찾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나눔교육을 하는 목적이 교실에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교실 밖에 있는 힘들고 어려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행사 몇 번 잘해서 기부금을 모아 기관에 기부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나눔활동에 우리 반 아이들은 빠져 있었습니다.
기부라는 행위는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기부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불쌍하니까? 그것은 나눔의 첫 번째 정의인 단지 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의 의미를 좀 더 확대해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알려고 하다 보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진짜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면 나중에 커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알게 되어 자연스럽게 기부라는 행위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눔은 일방적인 거래가 아닙니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상대방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나 혼자 추측하거나 누군가에게 들은 것으로는 상대방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체험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눔은 소통이라 생각합니다. 상대방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나눈다는 것은 마음 없이 물건만 전달하는 일회성의 나눔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눔은 주는 것이라는 정의에서 조금 범위를 넓혀 내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내가 조금은 부족해도 다른 사람과 나눌 것이 너무나도 많아집니다. 생활 그 자체에서 나눌 것을 찾게 되므로 서로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받게 됩니다. 이것이 일방적 소통이 아닌 순환적 소통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을 단지 다른 누군가에게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동을 통해 또 다른 이동이 일어나면서 순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의 생활 자체가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활동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생활 그 자체가 나눔이기 때문에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모두에게 나눔이 일어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내 주위에만 나눔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지구 전체에 나눔이 일어납니다. 그러다 보면 불평등한 상황도 개선되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나눔은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진정한 나눔은 사람을 존중하고 그 사람과 소통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말 중 일부, 본문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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