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
세계 속 새로운 세상의 발견
이 책은 사진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로 진행된 전작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의 후속이다. 처음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마돈나 사진집의 광고를 듣고 있을 때였다. 나는 마돈나의 노래 한 구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우리는 물질세계*에 살고 있었다(*마돈나의 노래 <물질 소녀Material Girl>에 “living in a material world”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의 원제가 『물질세계Material World』이다-옮긴이). 25년간 사진 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지구 곳곳에서 극단적인 사건들을 취재했다. 전쟁, 기아, 재앙적인 환경 파괴 등을 목격했고, 테크놀로지, 과학, 비즈니스의 놀라운 성과도 보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에서 간과되는 경우가 흔했다. 마돈나의 사진집처럼 요란한 이야기에만 관심이 쏠리다 보니, 세계 각지의 평범한 이웃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극단적인 사건이나 사고, 요란하고 과장된 이야기로만 점철된 현 상태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엉뚱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30개국에서 통계상 평균인 가족을 찾아낸 뒤 각국의 가족별로 소유물을 모조리 집 앞에 늘어놓고 사진을 찍자는 생각이었다. 대상 국가는 인구 분포를 고려해 정한다는 기본적인 원칙하에(따라서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많이 포함되었다),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를 겪은 나라들, 시간이 멈춘 듯한 나라들, 과거 미국의 적대국이었던 나라들, 뉴스에 등장한 나라들 등을 선정했다. 대상 가족은 가족 규모, 소득, 교육 수준, 직업, 인종, 종교, 거주 여건 등을 기준으로 각 나라에서 평균이라 할 만한 가족을 골랐다. 1년 동안 총 16명의 사진 기자들이 적절한 가족들을 찾아내고 사진을 찍는 작업에 참여했다. 나는 아이슬란드의 눈 쌓인 뒤뜰에서, 쿠웨이트 사막의 공터에서, 말리 진흙 마을의 지붕에서, 당국자의 감시 하에 쿠바의 좁은 길에서, 부탄의 작은 산골 마을 뜰에서(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그리고 그 밖의 몇몇 나라에서 총 12장의 ‘큰 사진(소유물을 늘어놓고 찍은 가족사진)’을 찍었다. 진정 글로벌한 어려움들이 가득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나는 세계 각지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유사성과 다양성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의 핵심은 ‘큰 사진’이지만 책의 대부분은 해당 사진 기자가 각국의 가족과 1주일을 함께 지내면서 찍은 일상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일상에 대해 취재한 내용과 촬영한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거의 모든 가족에서 여성이 남성 뒤로 물러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6명의 사진 기자 중 14명이 남자였다는 점도 여성들이 잘 드러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고, 각 나라의 문화적 전통 자체가 남성이 권력과 지도층의 자리에 있는 경향이 크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어떻든 간에 나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보수를 더 적게 받으면서, 혹은 아예 받지 못하면서 더 오래 일하며 그 일의 결과물은 거의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볼 수 있었다.
동반자인 페이스 달뤼시오와 나는 30개 가족 중 19개 가족을 다시 방문해서 이번에는 여성들의 사진을 찍고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나중에 요르단을 추가해서 이 책에는 총 20개 국가가 나온다. 우리는 이 여성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의 일상, 자녀와 남편에 대한 생각, 꿈과 희망,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성취 등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해 보고 싶었다.
본의 아니게 남성 중심적인 편견이 스며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진 기자, 취재 기자, 통역자를 모두 여성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여성의 삶을 더 밀착해서 볼 수 있으려면 여성이 접근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바람대로 여성들의 삶이 이 책에 충분히 잘 드러났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일 것이다.
문제들은 계속 생겨요 그리고 우리 삶도 계속되고요
한케 차코니
나이: 38세
결혼 당시 나이: 22세
태어난 곳과 현재 사는 곳의 거리: 걸어서 2시간
자녀: 4명
직업: 가정주부
종교: 이슬람
교육: 고등학교와 전문학교 1년
학교에서 가장 좋아했던 과목: 러시아어
가구 월 소득: 5,800레크(약 64달러. 하즈다르의 임금과 엘리의 장애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합한 것)
큰아들 운동화 1켤레 가격: 600레크(약 6.5달러)
집: 방 4개(2개에는 염소들이 살고 있음)
주거 비용: 4만 레크(약 440달러*)(*원서 출판 당시의 환율-옮긴이)를 들여서 직접 지었음
연료: 1주일에 몇 차례 나무를 해 와서 장작을 땜
장작 모아 오는 데 걸리는 시간: 1번에 3시간
전기: 간헐적으로 들어옴
삶에서 가장 좋았던 일: 첫 아이 출산
삶에서 가장 안 좋았던 일: 부모님 돌아가신 것, 아들 엘리의 장애를 알게 된 것
가장 좋아하는 일: 엘리를 보살피는 것
한참 동안 아이에게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주지 못하고 있었을 때는 속상해지기 시작해요.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나를 태어나게 만들었잖아.”
아들 엘리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한케는 엘리에게 큰 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었다. 이때가 한케에게는 삶의 바닥이었다고 한다. 태어난 지 7년이 되었지만 엘리는 혼자서 걷지도 말하지도 먹지도 못한다. 하지만 한케는 의사가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아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한케(38세)와 남편 하즈다르, 그리고 4명의 자녀는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북쪽으로 3시간쯤 떨어진 시골에 산다. 한케는 집안일을 하고 건강한 아이 3명과 장애가 있는 아이 1명을 돌보는 데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처음에는 엘리를 정부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보냈다. 하지만 1992년 알바니아 공산 정부가 무너질 무렵에 이 어린이집도 없어졌다. 한케가 낮에 집에 있으면서 엘리를 돌볼 수 있게 되기는 했는데, 이것이 가능해진 이유가 또 그리 좋지가 않다. 직장이 민영화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한케는 공산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좋은 직업을 얻기에는 자신의 학력이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밀가루 반죽이 잔뜩 묻은 한케의 손 |
놀랄 일도 아니지만, 한케와 하즈다르(46세. 교사)는 교육의 가치를 열렬히 믿으며 저녁이면 늘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준다. 한케는 힘든 삶에 위안을 주는 것이 있다면 남편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요리는 전부 한케가 하지만 하즈다르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일들을 기꺼이 돕는다. 신부의 부모가 새신랑에게 아내에 대한 지배권을 상징하는 총알을 선물하는 나라에서 하즈다르의 이런 태도는 흔치 않은 것이다.
인구: 350만 명
인구 밀도(km2당): 120.7명
도시-농촌 인구 비중: 도시 37%, 농촌 63%
유엔 185개국 중 부유한 순위: 150위
알바니아의 여성
중세의 알바니아는 카눈Kanun이라고 불리는 율법이 지배했다. 카눈은 구전되어 오다가 19세기에 문서로 기록되었으며, 손님 대하는 법부터 명예 살인에 이르기까지 알바니아의 여러 부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세세히 규정했다. 카눈에 따르면 “여성은 참도록 만들어진 자루”였다. 카눈은 여성을 남성의 권위에 복종시켰고 어린 여자아이의 배우자를 부모가 고를 수 있게 했다. 부모는 정혼자에게 딸을 강제로 양도할 수 있었고, 만약 딸이 도망가려고 하면 정혼자인 남자는 아내를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1992년에 알바니아의 공산 정권이 붕괴된 후 많은 국영 공장이 문을 닫았고 여성들이 가장 먼저 해고되었다. 금욕주의적 사회주의 정부가 권력을 잃으면서 성매매와 포르노가 활개를 치게 되었고 여성에 대한 폭력도 빈발했다.
이제 정부와 해외 원조 기구들은 무너진 인프라*(*도로, 항만, 철도, 발전소, 통신 시설 등의 산업 생산 기반과 학교, 병원, 상ㆍ하수 처리 등의 생활 기반을 형성하는 구조물-옮긴이)를 다시 건설해야 한다. 의료 시설, 도로, 학교 등이 모두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몇몇 이슬람 국가들이 이슬람 인구가 많은 알바니아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여성에게 머리쓰개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여성 단체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잘 맞서 왔으며, 산아 제한 도입과 낙태 합법화 등의 변화를 일구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한케 차코니와의 대화
텃밭 가꾸기는 한케가 자신이 하는 모든 일 중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남편이 함께 일하면서 농담을 건네면 괭이질과 잡초 뽑기가 즐거워지긴 하지만 말이다. 한케와 하즈다르 부부가 매우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이들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
캐서린 카노: 지금은 집에서 일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예전에 직장에서 하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래요?
한케 차코니: 지형 조사 기술자(측량사)로 12년간 일했어요. 처음에는 4,800레크(현 환율로 약 53달러)를 받았죠. 그만둘 무렵에는 월급이 6,500레크였고 출산 때마다 3개월의 출산 휴가를 가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민주화가 되고 민영화가 이뤄지면서 이 업계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어요. 대학 졸업자들과 경쟁해야 하게 되었으니까요. 결국 해고됐어요. 나 정도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해고됐지요. 대학 나온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들이 그 일자리들을 가져갔어요.
캐: 교육을 더 받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한: 그랬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2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하나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다른 하나는, 공산 정권 시절에는 모든 가정의 모든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도록 허용되지 않았어요. 오빠가 대학 진학 장학금을 받았어요. 5남매 중 1명만 대학에 갔지요.
캐: 공산 정권 시절 여성들의 삶이 더 나았나요?
한: 공산 정권 시절에는 여성들도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힐 권리가 있었고 모든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의 문제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외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우리는 고립돼 있었죠. 나라 전체가 고립돼 있었어요. 외국인들과 생각을 나누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고, 그래서 우리가 사는 곳을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과 비교해 볼 수 없었어요. 또 그때는 물질적인 면에서 물건들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죠. 지금은 물건을 구하는 게 더 쉽고, 그래서 나는 공산 정권 시절이 더 안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예전이라면 여기 알바니아제 소파가 있었겠죠. 공산 정권 시절에는 돈이 있어도 외국에서 만든 소파를 살 수 없었어요. 지금은 모든 것을, 이것보다 훨씬 좋은 소파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죠. 이런 사례는 하루 종일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는 전기스토브가 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가스스토브가 뭔지, 바닥에 까는 아름다운 카펫이 뭔지, 이런 것들도요.
한케가 남편, 딸 아르틸라(8세), 두 아들 아르몬드(14세)와 아르디안(12세)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점심 준비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문 밖에 염소 1마리가 한눈을 팔고 있다. 집의 구조는 가축이 사는 곳과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뉘는데, 염소와 닭이 현관문 오른쪽에 있는 방 2개를 사용하고 차코니 식구들이 왼쪽에 있는 더 작은 방 2개를 사용한다. |
캐: 일반적으로 하루 일과가 어떤가요?
한: 5시 반에 일어나요. 불을 피우고 아이들에게 가서 말하지요. “학교 늦겠다. 얼른 일어나서 준비해!” 7시에 아이들과 하즈다르는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가요(하즈다르는 위의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다). 그다음에 엘리와 내가 아침을 먹지요. 그러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점심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에요. 10시 반에 염소와 닭을 몰고 20분쯤 돌아다녀요. 이 일을 하고 나면, 점심으로 먹으려고 요리하는 음식이 거의 다 익었을 시간이에요. 음식은 다 익었고, 아이들과 하즈다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길 기다리지요. 1시에 남편과 아이들이 차례로 오고, 우리는 앉아서 점심을 먹어요. 오후 시간은 좀 더 자유롭고, 가끔 친구들을 방문하기도 해요. 그러고서 집에 오면 6시나 6시 반까지 쉬어요. 그다음에는 저녁 준비하느라 바쁘죠. 다 함께 저녁을 먹고서 나는 설거지를 하고 다른 일도 해요. 우리는 모여 앉아 2시간 정도 TV를 보는데, 무슨 요일인지와 무슨 프로그램이 나오는지에 따라 달라요. 그리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죠.
차코니 가족의 점심 식사. 메뉴는 닭고기, 쌀 요리, 리크, 투르시(피클의 일종), 라키(브랜디 같은 술의 일종) 약간이다. 항상 한케는 자신이 먹기 전에 장애가 있는 아들 엘리(7세)를 먼저 먹인다. 엘리는 혼자서 밥을 못 먹는다. |
쌀과 같은 생필품은 한케와 하즈다르가 1달에 2번, 걸어서 2시간 걸리는 도시 버렐의 장에 가서 사 온다. 장 볼 때 지출은 한케(밀가루 가격을 흥정하는 중)가 관리한다. “남자들은 구매 의사 결정을 할 때 좀 불안정한 면이 있잖아요.” 한케의 설명이다. |
캐: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이 빨래에 들어가요. 장애가 있는 아들이 1명 있는데, 그 애는 옷을 아주 자주 갈아 입혀야 하거든요(엘리는 장운동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그다음에는 하루 종일 비질을 하지요. 집 안에 가축이 있기 때문이에요. 여기 있는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해야 해요. 그리고 가끔은 엘리를 돌보느라 바빠요. 집안을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게 도와주거나 안마를 해 주는 정도예요. 빨래는 전부 손빨래예요. 세탁기가 없어서 빨래에 시간이 오래 걸리죠. 하루 중 가장 빨리 해치우는 일은 아이들 등교 준비를 시키는 거예요. 아침 식사는 10분이면 준비가 끝나고, 그러고 나면 다들 학교에 가니까요. 나머지 시간에는 비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엘리를 돌보죠.
두 오빠가 잔심부름을 하며 집안일을 돕는 동안, 아르틸라(털 코트)와 친구 2명은 뜰에 나뒹굴고 있는 한케의 신발 주위에서 춤을 추며 논다. “숙제 말고는 아르틸라에게 아무것도 하라고 하지 않아요. 아직 어린아이고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라요.” 한케가 말한다. |
신나게 다 놀고 난 아르틸라가 나뒹굴던 엄마의 신발을 신고 뒤뚱뒤뚱 걸어서 엄마 쪽으로 간다. 그러자 엄마가 물 1컵으로 얼굴을 씻겨 준다. 수도가 없어서 물은 금속 항아리에 길어서 당나귀로 날라 온다. |
캐: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한: 아침 일을 다 해 놓고 하즈다르와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나면 엘리에게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할 수 있어요.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에요. 그럴 때면 스스로 무언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요.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나요. 그 아이는 내가 자신에게 관심 가져 주기를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내요. 한참 동안 아이에게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주지 못했을 때는 속상해져요.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나를 태어나게 만들었잖아.” 그런 순간이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은 이 아이 하나에게 내 인생 전체를 바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적어도 엘리가 혼자서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그 애가 걸을 수 있게는 해 주고 싶어요.
캐: 알바니아에서 여성들이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한: 우리나라 여성들은 남성보다 한 단계 낮게 대우받아요. 예를 들면 여자들이 집 밖에서 의견 표명을 하지 않기를 기대해요. 우리 가족을 보자면, 하즈다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은 그의 형이 아내를 대하는 방식과 완전히 달라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교육 수준을 반영하는 것 같아요.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그 집은 여성을 더 잘 대우하죠.
캐: 하즈다르에게 물을게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대우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하즈다르 차코니(남편): 개인적으로 나와 내 아내는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에서 우리 둘은 항상 동등하지요. 하지만 이곳의 많은 남성들은 부부 사이에서 자신이 우선순위를 갖길 바라요.
캐: 어떤 의미인가요?
하: 이곳을 잠깐 방문한 동안에도 그런 종류의 권위 의식을 쉽게 볼 수 있을 거예요. 남자들이 늘 여자보다 앞에서 걷고 여자들은 뒤따라 걷죠. 그리고 남자의 말이 곧 법이나 다름없는 집들이 많이 있어요.
한케는 이렇게 말했다. “하즈다르는 다른 알바니아 남자들하고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아내와 함께 강에 가서 빨래하는 것이 창피한 일이라고 말하죠.” |
캐: 한케, 관습이야 그렇다 치고, 여성을 보호하는 법률은 있나요?
한: 네,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은 많이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법률들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요.
캐: 최근 수십 년 동안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한: 우리 세대의 삶은 어머니 세대의 삶과 매우 달라요. 그때는 집안일은 여자들이 다 해야 했고 집 밖에서는 모든 일이 남자들의 책임이었죠(직업이 있었던 한케의 어머니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우리 세대는 전혀 달라요. 나는 남편과 모든 것을 같이 해 나갈 권리가 있어요. 우리 세대와 딸의 세대 사이에도 차이가 많죠. 간단한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딸애는 따뜻한 난로를 쬘 수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집이 추웠어요. 그리고 옷이 충분치 않았는데 딸애는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는 사회에서 자라고 있죠.
캐: 이곳 여성들이 대우받는 방식에 대해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한: 어떤 점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이 남성보다 대우를 못 받으니까요. 누가 물어본다면 나는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대우받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싶다고 말하겠어요. 하지만 그런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가져 보지 못했어요.
캐: 하즈다르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한: 그는 언제나 좋은 친구이자 좋은 남편이에요. 내가 아프면 힘든 일을 절대로 하게 두지 않고 내가 못하는 일들을 자신이 다 했어요.
캐: 요리도요?
한: 아니요. 보통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이 집에 와서 요리를 해 줬어요. 난 하즈다르에게 요리를 가르쳐 보았고 그도 아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니에요. 요리는 내가 해요.
캐: 하즈다르에게 어떤 것을 바라나요?
한: 내가 무언가를 남편으로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그는 그렇게 해 줘야 해요. 오빠로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해 줘야 해요. 친구로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그는 해 줘야 해요. 그리고 그가 어떤 종류의 도움이든 내게 필요로 하면 나도 해 줄 거예요. 누이로서, 친구로서, 또 아내로서요.
캐: 남편이 아내를 이렇게 많이 돕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인가요?
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내가 해 달라는 일을 다 해 주는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고들 하죠. 모두가 그것에 대해 뒷담화를 해요. “저 집에는 가장이 없어.” 이렇게들 말하는데, 이 말은 그가 남자가 아니라는 말이거든요.
모두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하즈다르의 형 무스타파의 가족에게 둘러싸인 한케가 자신의 무릎 위에 앉은 엘리를 얼러 주면서 조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하즈다르도 뒤쪽에 앉아서 진지하게 듣는다. 한케는 오랫동안 시댁 쪽 식구들과 함께 살았다. |
캐: 한케는 “정상적인” 집을 갖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정상적인 집은 어떤 집이죠?
한: 정상적인 집은 소파가 2개 있고 그 사이에 커피 테이블이 있고 가운데에는 아주 아름다운 러그나 카펫이 깔린, 그런 거실이 있는 집이에요. 우리에게 일반적인 가구가 다 갖춰진 침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쓸 방이 따로 하나 있었으면 좋겠고요. 우리는 아주 힘들게 지내왔어요. 처음에는 하즈다르 쪽 식구들 모두와 한집에서 지냈어요. 그 집에서 나와서 이곳으로 이사 온 후에도 집 문제, 땅 문제 등 살 곳을 꾸리느라 어려움이 많았죠. 하지만 하즈다르와 나는 정말 좋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어요. 어떤 문젯거리가 있어도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압도해 버리도록 두지 않아요. 문젯거리들은 오고 또 가죠. 문제들은 지나가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갖고 있지요.
현장노트
버렐은 험한 곳 같았다. 도로에는 일하다 잠시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많았다. 사실 그들은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를 얻을 기회도 없는 사람들이다. 청바지와 가죽 옷 차림에 긴 머리를 하고 짧은 구레나룻을 기른 그들은 늦은 밤에 TV에서 방영하는 70년대 나쁜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같았다. 주변에는 온통 부서진 공장과 폐허가 된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래도 차코니 씨 가족이 따뜻하게 맞아 줘서 안심이 되었다.
차코니 씨 가족은 전통적인 가족이었다. 한케는 가족을 돌보는 일을 좋아한다. 한케가 없다면 식구들은 어쩔 줄 모를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가족의 성을 따르고 대를 잇는다. 여자아이들은 사랑받으며 자라긴 해도 필수적이지는 않다. 한번은 그들이 나에게 아이를 갖고 싶으냐고 물어서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하즈다르가 말했다. “딸 말고 아들을 가지세요.” 자신의 딸 아르틸라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하루는 한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 함께 가 보았다. 지금 사는 작은 집에 비하면 크고 “적절한” 집이었다. 하지만 황폐해져 있었다. 몇 명의 사람들이 위층에서 진을 치고 살고 있는 듯 했다. 한케는 갈라진 벽을 둘러보더니 회상에 잠긴 듯 말했다. 한때는 이 집이 버렐에 오는 특별한 방문자들이 늘 들러서 커피를 마시던 곳이었다고 한다. 한케는 너무나 그리운 어머니 사진을 들고 낡은 나무상자 위에 앉았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멀리서 들리는 수탉 소리를 빼면 아주 고요했다.
집에 돌아와서 한케는 정신없이 바쁘게 일했다. 나와 시간을 보내느라 밀린 요리와 일을 다 하느라고 말이다. 앉아서 식사를 하지도 못한 채, 한케는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다 끝내고도 한참이 지나서까지 계속 요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으면서 이때까지도 한케는 빵 1조각을 우물우물 먹었을 뿐이었다.
사진, 인터뷰, 현장노트: : 캐서린 카노,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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