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당신이 사는 세계를
의심해보라!
“자, 당신이 그렇게 똑똑하다면 과연 누가 더 지혜로운지, 더 행복한지 한번 맞춰보십시오. 쉴 새 없이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마음껏 쉬면서 사냥과 낚시를 즐기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구해 사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자, 이제 마음을 열어 솔직하게 말해보겠습니다. 나의 형제여, 이 말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 원주민들은 프랑스인보다 행복하고, 강하다고 느끼며 삽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앞으로도 절대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만 하는 젊은이들은 꿈을 꿀 수 없습니다. 꿈꾸지 않는 자는 지혜를 얻을 수 없지요.
땅을 일구라고 했습니까? 개발을 하라고 했나요? 칼을 집어 들고 내 어미의 가슴을 도려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면 죽은 후에 나는 누구의 가슴에 안겨 쉴 수 있겠습니까?
땅을 파헤쳐서 돌을 파내라고요? 내 어미의 피부를 벗기고 뼈를 헤쳐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죽은 후에 나는 누구의 몸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풀과 나무를 베고 그것을 내다 팔아 백인들처럼 부자가 되라고 했습니까? 이보시오, 어찌 내 어미의 머리카락을 잘라낼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부족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부족과 함께 이곳에서 오래도록 평화롭게 머물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법입니다. 영혼은 다시 육신을 찾아옵니다. 우리는 조상들이 머물렀던 이곳에서 그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의 가슴 안에서 조상들과 만날 준비를 할 것입니다.”
_ 《네즈 페르세 인디언The Nez Perce Indians》 중 스모할라Smohalla와의 대화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영혼과 온전히 만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그러니 어찌 수천 년을 이어온 부족 전체의 영혼을 만나려 한다고 큰소리 칠 수 있겠는가?
수백 명의 인류학자들은 인디언 원주민들의 의례, 의식儀式 및 사고를 때로는 징그러울 만치 자세히 묘사했다. 그러나 각주까지 놓치지 않고 그들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난 뒤에도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본 듯한 느낌만이 남는다. 단 몇 초라도 상대방의 머릿속에 들어가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일상의 삶을 사는 우리 영혼은 큰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수천 년 동안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려고 그토록 많은 노력을 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인간의 그러한 제약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은 함께 살아왔고, 서로를 관찰하고 사랑하며 대를 이어왔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경험이 쌓여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무지는 끝이 없건만,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 의기양양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지닌 희한한 사고방식의 일면이다.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고 또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 그저 어설픈 지식을 지녔을 뿐인데도 우리는 바뀔 줄을 모른다. 우리는 세상을 읽는 다른 방식, 특히 선조들의 방식을 “우습다”, “구시대적이다”, “미신이다”라고 너무나 쉽게 폄하한다. 그들은 미개하고 우리는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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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권에서는 인간, 그리고 인간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아마 이것은 무척이나 힘든 작업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지만, 어떠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진리는 딱 하나다. ‘현실은 우리가 배운 이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전 인류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이 선언은 혁명적이며 중차대하다. 그러나 20~21세기의 과도기에 서구 사회를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 진리를 모른 채 살아간다.
흔히 꿈의 산업(두 단어는 어울리지도 않는데도 함께 쓰인다)이라 불리는 영화산업은 인류의 상상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 보니 지난 년간 우리의 세계관은 지나치게 획일화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그것을 맹신한다. 반면 영혼의 존재, 신의 섭리, 예언, 질병의 원인 등에 대한 우리 조상의 지혜는 이런저런 이유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조상의 지혜는 더 멀게만 느껴지고 이해하기도 힘들어졌다. 세대 간의 갈등 속에서 현대사회와 전통사회는 점점 더 분리되었다. 나는 이 작은 책을 통해 낯설어 보이는 크리족의 지혜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개념들과 비교해 친근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들의 전통과 신앙을 쉽게 설명하고자 구체적인 예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영적 유산임을 보여주려 했다. 형식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통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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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되었다. 잊고 있었던, 하늘을 바라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지혜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혜를 넓혀준다. 내가 의도한 바는, 그들의 문화권에서 발생한 풍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는 할아버지의 실수를 결국 반복하지 않는가. 하늘에 오르다 땅으로 떨어진 서구 사회는 사다리 밑에서부터 다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역사 속에는 그러한 일이 자주 있었다.
인류의 영적 힘은 인류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어른이 현실을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현실에 대한 직관을 잃듯이…….
1장
크리족으로부터 배우다
오래전 공동체,
크리족
크리족은 제임스만 지역에 거주한다. 남북으로는 마타가미Matagami('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의 크리어 - 옮긴이)와 그레이트 웨일 강까지 뻗어 있고, 동서로는 미스티시니Mistissini('큰 바위’를 뜻하는 크리어 - 옮긴이)와 루퍼트 하우스(크리어로는 와스카가니시Waskaganish라고 부르며 ‘작은 집’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가 경계를 이루는 실로 광활한 영토이다.
위성에서 내려다본 제임스만의 모습 |
크리족이 이 지역에서 최초로 세운 나라는 크리스티노Christinaux/Cristinos, 킬리스티노Kilistinos라 불린다. 또한 예수회에서는 1661년에 이곳을 킬리스티농Kilistinon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 명칭들은 크리족이 사는 한 외딴 마을의 이름인 케니스테니위크Kenisteniwuik를 프랑스어로 바꾸어 발음해 생겨났다.1 블랙블랙풋 인디언(주로 미국의 몬타나, 캐나다의 앨버타 지역에 거주하는 북미 원주민의 한 종족 - 옮긴이)들은 크리족을 키니스테노보Kinistenovoh 혹은 크리스토와Kristowa라고 불렀고2 이 말이 줄어 크리Cris가 된 뒤 다시 영어로 크리즈Crees가 된 것이다.3 크리족은 거주지에 따라 ‘숲에 사는 크리족’과 ‘평원에 사는 크리족’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언어학적 기준으로 동부에 사는 크리족을 이누족으로 분류한다.4
1853년 한 선교사는 제임스만의 인디언들이 모두 크리어를 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부 크리족과 동부 크리족의 관계를 정확히 증명해주는 것은 없다. 이 두 종족을 하나로 보는 것은 캐나다 정부 정책과 영국 국교회에서 비롯되었다. 어쨌든 자칭 아이스 이이니오크Ayis-Iyiniwok('옛 사람들‘이라는 뜻 - 옮긴이)5였고, 지금은 에유Eyu라고 불리는 크리족의 언어는 알곤킨 어족 중 몬타그네 나스카피 언어에 속한다.
17~18세기에 실시된 최초의 인구조사 결과, 영국 본토보다 2.5배나 넓은 35만 제곱킬로미터의 광활한 영토에 네쿠보이스트Nekoubaunistes, 샤무슈아니스트Chamouchouanistes, 큰 미스타생Mistassins과 작은 미스타생, 니치크 이리니운테크Nitchikiriniountechs를 비롯해 약 개의 부족이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가들은 크리족이 매머드와 비버비버를 쫓아 이동한 아시아 사냥꾼의 후예였으며, 적어도 5,000년 전에 이 지역에 정착했다고 본다. 크리족은 먹을 것을 찾아 작은 규모로 이동하며 살다가 모임이나 종교 의식이 있을 때 한자리에 모였던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그때부터 이미 남쪽 나라에 모피를 수출했다. 퀘벡을 세운, 프랑스의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도 1603년에 생장 호수 주변에서 크리족을 보았다고 적었다.
제임스만 지역은 오랫동안 서구 산업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곳의 크리족과 백인들의 접촉은 상당히 일렀다. 1610년~1611년에 헨리 허드슨은 훗날 그의 이름을 따 ‘허드슨만’이라 불리게 된 유역을 발견했고, 20여 년이 흐른 뒤에는 토마스 제임스가 인근의 또 다른 만을 탐험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668년에 이 지역에 들어선 허드슨 회사(모피 교역을 위해 1670년 5월에 설립된 잉글랜드의 칙허 회사이자 국책 회사이며, 북미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 옮긴이)가 이 지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이때부터 수세기 동안 백인과 원주민 간의 모피 교역이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크리족은 식민주의의 영향을 받아 유목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나 나머지 풍습은 보전했다.6역사가들은 크리족이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970년대에 제임스만에서 수력 발전 사업이 진행된 후부터 급격히 외부 문화가 난입하기 시작했다.
현재 크리족은 9개의 공동체, 즉 치사시비Chisasibi, 이스트메인Eastmain, 미스티시니, 네미스카우Nemiscau, 우예부구무Oujébougoumou, 와카가니시, 와스와니피Waswanipi, 웨민지Wemindji, 와프마구스투이Whapmagoostui로 구성된다.
그곳은
다른 세계
그곳에는 사람이 드물고, 집보다 나무가 많다. 그곳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영토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이야기되는 세계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질, 영원히 사라져버릴, 작은 흔적만 남아 있는 세계다. 배를 이고 지나야 하던 길을 오토바이와 무모한 인간들이 훼손해버렸다. 그러나 그곳은 한때 우리의 세계였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몇 년, 몇 달, 몇 주밖에 남아 있지 않을 새로운 땅에 들어서며 우리가 느끼는 감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강물을 마시고, 하늘의 별에 말을 걸고, 맨땅에서 잠을 잤던 기억이 우리 안 깊숙한 곳에서 여전히 공명하기 때문은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하고 16만 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자연과 멀어진 것은 그 오랜 세월 중 고작 1,0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 안 어두운 곳에 숨겨져 사용되지 않은 반사 능력과 본능이 북북방의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깨어난다. 우리는 길들여진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야생마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자연의 부름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의 다리가, 우리의 피가 그것을 추억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과거를 존중하지 않는다. 걸음아 날 살려라, 점점 더 빨리 과거에서 멀어질 뿐이다. 지금 어디에서 강물을 마시는 어린아이를 볼 수 있단 말인가? 별을 보고 노래하며, 야생의 땅 위에 몸을 누이는 아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기계들은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뿌리째 뽑으며 제임스만을 가득 채운 물줄기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이 괴물들은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광물, 수력・풍력 에너지를 뽑아내 아메리카 대륙의 배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혼의 에너지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살아 있는 자연을 살육하는 기계들의 끔찍한 굉음 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때가 늦었다. 놀라운 힘을 소유했던 루퍼트루퍼트 강마저 길들여졌으니. 자연은 야생의 힘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범행을 저지른 자들은 “크리족이 스스로 받아들였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크리족은 돈과 일자리를 받아들였다. 19세기의 노동자들이 고용주 앞에서,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 앞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등에 칼이 꽂혀 무릎 꿇은 투우가 된 듯, 그들은 굴욕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크리족 전부인가, 아니면 그들 중 일부인가? 설사 크리족 전체가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순결한 땅 위를 걷는 우리 모두의 권리를 어찌 그들 마음대로 넘겨줄 수 있단 말인가? 2009년 6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장마리 르 클레지오는, 퀘벡 로멘 강의 수로 변경에 반대하며 자연을 지키기 위해 소송도 불사했던 한 이누이트족 여인에 관해 말했다.
“‘이누이트족 시인 리타 메스토코쇼Rita Mestokosho는 로멘 강을 구하기 위해 투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로멘 강과 자신의 할머니를 위해 시를 쓰고, 글을 낭독하고, 그것이 후손의 생존과 기쁨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인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녀가 속한 이 세상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 그녀가 빚을 지고 있는 모든 것, 그녀의 부족이 소유하기를 거부하고 늘 나눠왔던 것을 말합니다. 그녀는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을 비롯해 여러 시민단체와 소수민족 보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퀘벡 전력공사의 끔찍한 프로젝트를 저지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로멘 강의 연약함과 계곡의 침수로 벌어질 환경 재앙, 공사장으로 통하는 도로가 파괴할 숲에 대해 말합니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로 인해 죽음에 내몰린 힘없는 인디언 부족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이야기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그녀는 결국 법에 호소하기로 했습니다.’7 그러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2009년 6월 이누이트 부족은 돈과 일자리를 제공받는 대가로 프로젝트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면 돈이 항상 승자가 아니겠는가. 뉴멕시코 아파치 부족도 인디언 보호구역 내 영토를 방사능 폐기물 매립지로 내놓았다. 그런 예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가 돈으로 자유와 행복을 사고, 권력에 대한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는가.
돈 앞에서 그토록 쉽게 무너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돈이란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고 쉽게 사라져버리는 데도 우리는 그 돈 때문에 안간힘을 쓰며 산다. 100년 전만 해도 돈이란 게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크리족마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우리 가운데 돈의 유혹을 뿌리친 사람이 있는가? 돈에 가장 자유롭다는 사람들마저도 돈에 팔려가는 걸 눈감고 있으니 평범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세상의 북북쪽 끝인 북북퀘벡의 문제는 이탈리아인이든 미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참새건 다람쥐건 송어건 간에 지구의 모든 생물 종과 관련되어 있다. 북북쪽은 나침반과 자석 외에도 모든 것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파괴한다면 우리 모두는 죽음을 부른 무관심이라는 죄로 태양의 부름을 받을 것이다. 북북쪽을 버리고 그곳의 에너지를 흡수해 우리의 과욕을 채우는 것은 태양계에 저지르는 범죄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기 때문이다.
지구도 교환의 대가를 요구한다. 돌들은 우리에게 해명을 요구할 것이고, 물은 우리에게 죄를 물을 것이며, 바람은 우리에게 복수할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자연이라는 법관을 비웃을지 몰라도 이 지구에서 우리의 대를 이을 후손들은 우리의 무사안일을 탓할 것이다. 삶의 시련을 함께한, 가시적・비가시적 공동체를 무시한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
자연 파괴에 대한 생태학의 대답은 눈에 보이는 문제만을 해결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생태학 또한 스스로 문제 삼고 있는 과욕만큼 물질적이다. 생태학은 환경을 그저 보호해야 할 생물 덩어리로 인식할 뿐이고, 수천 년 전부터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가르침, 즉 자연은 영적인 것이라는 가르침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을 파괴하는 짓은 모든 신비로움, 원주민 문화가 강조하는 모든 존재들 간의 비밀스러운 관계와 단절하는 것이다.
퀘백인들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자연과 영성을 파괴한 데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북북아메리카에서 사랑으로 그러한 범죄에 대항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퀘벡인들은 원주민들과 친근하고 평화롭게 지내왔고, 그랬기 때문에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맡아야 했다.
“우리 아들이 당신들의 딸과 혼인해 우리는 한 민족이 될 것이오.” 이미 17세기에 샹플랭이 원주민들에게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던가. 수백 년 동안 캐나다의 백인 사회와 원주민 공동체는 협력하며 살아왔다. 제임스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족 역사 전문가들은 모피 교역에 있어 백인들이 실은 원주민들에게 상당히 의존했다고 전한다. 현지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던 백인들은 제임스만에서 항해를 할 수도 없었고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거나 덫을 놓아 잡지도 못했기 때문이다.8
“환경을 뒤흔드는 농업이나 산업과 달리 모피 교역은 환경 보전과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주민 간 협력은 당시 지배・종속 관계를 우선시하던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미국 역사상 유럽인이 환경과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그렇게 가까이 다가간 적은 없었다. 이 필연적인 상호 관계에서 두 문화를 오가는 독특한 인물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들은 ‘숲을 뛰어다니는 자’, ‘덫 사냥꾼’으로 불리던 중개인이었다. 그들은 원주민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모피를 제대로 생산할 수 없었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자연 환경과 맞서야 했으니 원주민과의 관계는 더욱 밀접할 수밖에 없었다.”9
수많은 퀘벡인과 프랑스어권에 사는 캐나다인에게는 원주민의 피가 흐른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토록 많은 도움을 준 원주민들을 돕지 않는 것일까?
북퀘백 지역을 누비는 순록. 그들 역시 이땅의 주인이었다. |
볼테르는 “인간은 행하지 않은 선행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자기 밭에서 자라나는 식물의 죽은 뿌리를 밟는 것, 자기 팔다리를 스스로 잘라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해주면 자신 역시 존중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퀘벡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긍정적인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어나 영어에 기인하는 부정적 정체성과는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정의하며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려고 헛되이 노력할 때가 많다. 아메리칸 인디언에 대한 고전이 된 글의 부제 ‘퀘벡 교과서에 실린 아메리칸 인디언의 이미지. 퀘벡인들은 왜 야만인이 아닌가’10를 보면 이 문제가 잘 드러난다.
원주민의 땅에 살고 있는 퀘벡인들이 원주민에게 무관심하고 홀대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다. 퀘벡주 인권 및 청소년 권리 위원회11는 “퀘벡에 있는 원주민 국가 대부분은 조상이 물려준 땅에 대한 권리를 양도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크리족의 영토는 제임스만 협정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기나긴 협정의 역사를 되짚어보지는 않겠지만, 제임스만 협정 또한 침묵에 기여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리족마저 침묵하게 만들었으니 더욱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르침은 얼마나 많은가! 인생은 끝나지 않는 시련이라는 것, 인생이란 늘 물질과 대립한다는 것에 대해 크리족을 비롯한 옛 선조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굳이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인생이란 언제나 그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성공했다.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서, 내면과 외부 세계를 조화시킬 줄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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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화권에 지혜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 백인인 내가 스스로 백인을 깎아내리거나 백인들이 이뤄낸 훌륭한 업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뉴에이지와 환경운동의 단순한 주장처럼 원주민들을 무조건 미화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 천국은 없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도 없고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융융은 말했다.
“나는 문명화된 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위대한 성과를 부정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그 정복은 엄청난 상실을 대가로 이뤄진 것이다. 이제 막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를 엿보기 시작했다”(32쪽)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짐작할 수만 있을 뿐이다. 원주민들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살았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흉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은 그것이 자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정신세계가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동물들에게 감정이 없고, 돌은 생각할 줄 모르며, 세상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기계처럼 되뇌며 산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기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믿음이라고 치부해버린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사실 과학과는 정반대되는, 과학으로 가장한 주지주의主知主義와 비슷한 것이다. 주지주의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느끼는 것을 우리와 분리시켜 우리보다 위대한 존재와의 관계 맺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과학이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느끼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 삶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기를 남몰래 기다리고 있다. 세상의 장막을 걷으면 그 너머에는 무한한 지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 안에 그 지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크리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수천 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우리의 확신을 눈처럼 녹여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려면 백인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질주하고, 정복하는 대신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은 정복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세상을 소유하려고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실수다.
주
1.CURTIS,E.S., The north American Indian, verbo Cree, vol. 18. http://curtis.library.northwestern.edu 참조.
2.TACHÉ, A, A., Esquisse sur le nord-ouest de l'Amè rique, s. n., 1869.
3.MALCHELOSSE, G., Peuples sauvages de la Nouvelle-France, Éditions des dix, Montreal, 1963.
4.MORANTZ, T., D. FRANCIS, La traite de la fourrure dans l'est de la Baie-james 1600-1800, Presses de l'Universite du Quebec, Qubec, 1984.
5.PETITOT, E., Traditions indiennes du Canada Nord-Quest, Maisonneuve et C. Leclerc, Paris, 1886.
6.MORANTZ, T., 《Pratiques religieuses des Cris de la baie James aux XWIIIe et XIXe siecles (d'aprés les Européens)》, Recherches Amérindiennes du Québec, wol WIII, n˚2,1978.
7.《르몽드》, 2009년 7월 2일자.
8.MORANTZ, T., op. cit.
9.JAQUIN, P., Les Indiens blancs. Français et Indiens En AmeriQue du Nord (XVIe-XVIII esiécle), Libre Expression, Montreal, 1996.
10.VINCENT S., et B. ARCAND, cahiers du Quebec, Les Éditions Hurtubise, Montréal, 1979.
11.Commission des droits de la personne et des droits de la jeunesse, Mythes et réalités sur les peuples autochtones, Québec,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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