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No volvera tu voz a lo que el persa
Dijo en su lengua de aves y de rosas,
Cuando al ocaso, ante la luz dispersa,
Quieras decir inolvidables cos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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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will never recapture what the Persian
Said in his language woven with birds and roses,
When, in the sunset, before the light disperses,
You wish to give words to unforgettable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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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무렵, 햇빛이 사라지기 전,
잊을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을 때,
당신은 페르시아인들이 새와 장미로 짜인
그들의 언어로 말한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Borges(1972:116-117)1
Un vieillard qui meurt est une bibliotheque qui b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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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old person dying is a library bu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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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
― 아마도우 함파테 바 Amadou Hampate Ba, 1960 년 유네스코에서의 연설
카야르딜드어 화자 †팻 가보리. 40년 넘게 시력을 잃은 채 살아왔으면서도 자신의 언어와 자신이 자라온 세계에 대해 생생히 이야기해주던 그가 떠난 지금, 카야르딜드어는 점점 더 침묵에 빠져들고 있다. |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팻 가보리Pat Gabori, 카바라르징가티 불투쿠Kabararrjingathi bulthuku2는 현재 여덟 명밖에 남아 있지 않은 카야르딜드어Kayardild 사용자 중 한 사람이다. 카야르딜드어는 호주 퀸즐랜드 주 벤팅크Bentinck 섬의 원주민어다 . 지난 40년 동안 시력을 잃고 살아온 이 노인의 인생에 늦게야 넓은 세상이 들어왔다 . 차 안에서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자기 배에 타듯 차 시트에 책상다리를 하고 뒤를 향해 돌아앉았다 . 그가 자신이 자라온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시력을 잃은 까닭에서일 것이다. 그는 벤팅크 섬 내의 신성 지역이나 , 뛰어난 사냥 기술 , 복잡한 부족 계보 , 여인을 둘러싼 다툼 등에 대해 몇 시간씩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은 이야기를 멈추고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가 부족 규율을 깊이 알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는 호주 정부를 상대로 전통적 해양권을 인정받기 위해 진행된 최근의 소송에 주요 증인이 되기도 했다 .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카야르딜드어는 결코 큰 언어가 아니었다. 아마 절정기에도 화자가 150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982년 내가 팻 가보리를 소개받았을 때 카야르딜드어 화자는 40명도 채 남지 않았으며, 이들은 모두 중년을 넘긴 사람들이었다.
이 언어의 운명은 1940 년대에 결정되었다. 이 시기에 벤팅크 섬의 전 주민은 정책상 자기 조상의 땅에서 50킬로미터쯤 북서쪽에 있는 모닝턴Mornington 섬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주 당시 모든 주민은 카야르딜드어를 쓰는 단일 언어 사용자들이었다 . 그러나 그 후 단 한 명의 아이도 이 부족어를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이주 몇 해 만에, 한 아이에게서 다른 아이로 전해지는 언어의 동세대 간 연결은 깨졌고, 암울한 10년 동안 살아남은 아기는 없었다. 기숙사 정책에 따라 아이들은 거의 하루 종일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했고, 원주민어를 말하는 아이는 벌을 받았다.
앞으로 이 책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카야르딜드어는 ‘인간 언어에서 가능한 것은 이런 것이다’라는 갖가지 신조에 도전장을 던진다. 예를 들어 심리언어학자 핑커Steven Pinker와 블룸Paul Bloom은 언어 진화에 관한 저명한 논문에서 “명사에 결합하는 접사로 시제(문법적 시간)를 표현하는 언어는 없다”고 주장했다.3 가능한 인간 언어란 이런 것이라는 선험적 제약이 언어를 배워가는 아이에게 근본적인 지원 역할을 한다고 보는 촘스키Noam Chomsky의 보편문법 이론도 이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아이가 부모의 말 속에 내재하는 문법을 추론하는 데 필요한 가설의 수를 이 선험적 제약이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야르딜드어는 이 불가능성을 태연자약하게 무시해버린다. 카야르딜드어는 동사뿐만 아니라 명사에도 시제를 표시한다. 예컨대 카야르딜드어로 ‘그가 바다거북을 보았다’라는 문장은 niya kurrijarra bangana인데, 과거 시제를 동사인 kurrij(보다)에 -arra로 표시할 뿐만 아니라, 목적어 명사 banga(바다거북)에도 -na로 표시한다. ‘그가 바다거북을 볼 것이다’라는 미래 표현 문장 niya kurriju bangawu에서도 미래 시제가 동사와 명사에 각각 -u와 -wu로 표시된다 (a, i, u는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의 해당 음가로, rr는 전동음으로 발음하며, ng은 singer, j는 jump에서와 같이 발음한다).4
niya kurrij-arra banga-na 그가 바다거북을 보았다
niya kurrij-u banga-wu 그가 바다거북을 볼 것이다
카야르딜드어를 보면, 세계 언어의 다양성이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인지 무시한 채 제한된 표본에 기초하여 언어의 ‘보편성’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5 객관적으로 볼 때 카야르딜드어 체계는 그리 기이한 것이 아니다. 시제란 사건 전체, 즉 동사에 의해 표현되는 행위뿐만 아니라 의미적 참여자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논리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시제 논리는 명제 전체를 시제 연산자에 연결한다. 카야르딜드어처럼 시제 표지가 퍼져 있는 방식은 시제의 ‘명제적 범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야르딜드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언어에는 없을 것 같은 문법을 터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카야르딜드어를 배우려면 세계에 대해서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해야만 한다. “이 책의 동쪽 페이지”를 “당신 무릎에서 북쪽”으로 약간 움직여보라. 이 지시를 따를 수 있으려면 조금은 낯선 방식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러나 카야르딜드어 화자라면, 자신이 말하는 문장 대부분에서 이런 식으로 나침반 방향을 언급할 것이고, 이 지시에 대해서도 즉시 그리고 정확히 응할 것이다.
가보리는 80대이고, 유창한 화자들 가운데 가장 연배가 낮은 이들도 60대의 노인들이다. 따라서 카야딜트Kaiadilt 사람들이 벤팅크 섬에서 이주한 지 100년이 되는 2042년에는 카야르딜드어 화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듯하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 언어는 민족의 유일한 언어에서 과거 속 침묵의 허구로 사라질 것이다 .
거기서 북서부로 500마일을 가면 호주 노던 주Northern Territory의 크로커Croker 섬에 다다른다. 2003년에 나는 크로커 섬에 가서 내 선생이자 친구이며 형뻘인 찰리 와르다가Charlie Wardaga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은 굉장히 어수선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부터 수많은 주변 부족에서 문상객, 노래 부르는 사람, 춤추는 사람들이 도착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그동안 그의 시신은 유럽 스타일의 목재 관에 눕혀져, 마카사르인Macassan들에게 빌려온 붉은 전통 깃발들로 장식한 원주민 전통의 나뭇가지 그늘지붕 아래 놓여 있었다. 주변에는 늦은 건기의 열기 아래 점점 더 많은 파리가 꼬이고 있었다. 문상객 모두가 다가가 슬픔을 가라앉히기 위한 의식으로 관 위에 놓인 칼을 들어 머리에 상처를 내며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동안, 남편을 잃은 부인은 그 그늘지붕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호주 노던 주 크로커 섬의 †찰리 와르다가. 그의 머릿속에는 자기 씨족 맹갈라라족의 언어인 일가르어는 물론, 이와이자어, 쿤윙즈쿠어, 가리그어, 마낭카르디어, 마르쿠어 등 그 지역 여러 언어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
이후, 남자들이 조용히 와르다가의 무덤구덩이를 팠다. 날카롭게 찢어질 듯한 전통 음악에 이어 좀 더 명상적이고 받아들이기 쉬운 기독교 성가가 연주되었다. 와르다가의 장례에서 우리가 묻은 것은 그저 이 작은 공동체의 삶과 몸부림에 중추 역할을 했던 부족 원로만이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기 씨족인 맹갈라라족Mangalara의 언어인 일가르어Ilgar는 물론, 좀 더 널리 알려진 이와이자어Iwaidja와 쿤윙즈쿠어Kunwinjku, 그 외에도 가리그어Garig, 마낭카르디어Manangkardi, 마르쿠어Marrku 등 그 지역 여러 언어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그가 세상을 뜨기 전, 녹음과 답사 기록을 통해 그럭저럭 그 지식의 작은 단편을 좀 더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기는 했지만 우리의 작업은 너무 늦게 시작되었다. 1994년 내가 처음 와르다가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청각 장애가 심하고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아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다. 기록화 작업은 겨우 시작될 수 있었고, 마낭카르디어까지 관심을 쏟기에는 대기 줄이 너무 길었다.
아이들과 다른 씨족원들에게 있어 그처럼 해박한 원로 친척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네 언어와 부족의 온전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해안의 각 구간을 확인해주는 지명, 바다거북을 해안으로 구슬려내는 정형화된 문구, 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의 장례식 때 불렀던 ‘갈매기’라는 연작 노래의 연상 구절 등 모든 것이 사라졌다. 와르다가가 세상을 뜨면서 언어학자인 내게는 답변을 듣지 못한 수많은 질문이 그대로 남았다. 이 질문들 가운데 일부는 상대적으로 ‘큰’―200명 정도의 화자를 거느린―동족어 이와이자어와 마웅어Mawng 화자들을 통해 아직도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질문들은 일가르어나 마르쿠어 자료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근사한 언어들이 침묵 속으로 사라져버릴 때 그 공동체는 물론 학계가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보면서 느낀 절망감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쓰도록 이끌었다. 주로 나는 사라져가는 호주 원주민들의 언어를 통해 이를 경험했지만, 유사한 비극이 세계 도처의 소규모 언어공동체를 유린하고 있다. 언어의 죽음은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빚어져온 현상이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 6000개 혹은 그 이상의 언어들 사이에서 언어 소멸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금세기 말이면 6000개 언어의 반이 사라질 것이다.6 최상의 추정을 한다 해도, 두 주마다 세계 어딘가에서 쇠미해가는 언어의 마지막 화자가 죽음을 맞는다. 이제 어느 누구도 과거 선조들이 열었던 사색의 길을 걸을 수 없다. 녹음 자료가 아니고는 아무도 그 언어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으며, 다시 찾아가 번역을 확인할 수도 없고, 해당 언어의 운용 방식에 대해 새로이 질문할 수도 없다.
각 언어는 우리에게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대로만 기록화한다면 각 언어는 문법서, 사전, 식물 및 동물 백과사전, 노래 모음집, 이야기 모음집 등을 모은 나름의 도서관을 지닐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화자 공동체라는 ‘밖’과, 그 언어를 쓰고 가르치려면 그 언어에 대해 모두 알아야 하는 각 개인의 마음인 ‘안’을 오가는 이중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마지막 증언자의 기억과 함께, 축적된 구어 문화 체계 전체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잠들어버리는 역사적 순간이 온다. 이 책에서는 그런 마지막 증언자를 땅에 묻을 때 우리가 잃게 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을 내구성 있는 형식으로 최대한 끌어내 미래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언어들은 모두 제각기 독특성을 띠는데, 인류의 수수께끼들 중 어느 하나를 풀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그 많은 언어 가운데 단 하나뿐이다. 그러나 어떤 언어가 어떤 질문의 해답을 쥐고 있는지를 미리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언어과학이 더 정교해지면서 우리가 답을 구하는 질문도 다양해지고 있다.
팻 가보리, 그리고 세계 도처에 있는 가보리 같은 사람들의 머릿속 지식을 기록화하는 작업은 만만찮은 일이다. 각 언어에 있어 우리가 지도화하려는 정보의 복잡성은 인간 게놈의 복잡성과 견줄 만하다. 그러나 인간 게놈이나 고고학 연구 대상인 유물과 달리, 언어는 문자 체계가 개발된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린다. 언어란 순식간에 지나가는 소리와 움직임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화자에게 체계적으로 질문하고, 이에 더해 화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모든 이야기를 기록화하고 옮김으로써 이 지식을 최소한 문법, 텍스트, 사전이라는 3부작으로 만드는 것이 기술 언어학자의 대표적인 목표다. 억양, 손동작, 맥락 정보까지 추가된 음성 기록 및 영상 기록이 이 작업을 돕고 있다. 비록 오늘날 다큐멘터리 언어학자들이, 100년 전의 연구자 대부분이 염원했던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화자가 머리에 담고 있는 지식의 단편만 포착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어떤 언어의 화자 수가 줄어들면 화자의 머릿속 지식은 밝혀지지 않을 위험이 크다. 아무도 그 지식에 대해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언어가 죽을 때 우리가 잃게 되는 것 전반에 대해, 그리고 언어의 죽음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인간의 앎의 방식이 서서히 붕괴되는 이 상황에 대응하는 최선의 질문과 과학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룰 것이다. 나는 소멸해가는 언어들에 대한 연구에 정당한 위치를 부여할 때 비로소 이 질문들을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사라져가는 언어는 인간의 사고, 그리고 자신들의 말을 돌이나 양피지에 남기지 않은 채 쾌활히 세상을 누볐던 사람들의 잊힌 역사에 대한 거대 서사grand narrative라는 것이다. 언어학자들과 언어공동체, 전문지식 없는 대중이 공동으로 노력해야만 이 도전에 맞설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모든 부류의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쓰려고 노력했다.
디지털 기술의 혁명을 통해 언어학자들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자료를 매우 정교한 음성과 영상으로 기록 · 분석할 수 있고, 한 세대 전에는 생각조차 못 했던 방법으로 이를 저장할 수도 있다. 동시에, 현지답사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언어 기술을 잘하려면 조사 지역에서 사용하는 과학기술만큼이나 언어학자들이 하는 질문들도 중요하다.
옛 금언을 살짝 수정하면, 우리는 귀 기울여 듣는 것만 들을 수 있고 궁금해하는 것에만 귀를 기울인다. 이 책의 목적은 침묵으로 빠져들고 있는 수천 개의 언어, 그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단어들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가 무엇을 궁금해 해야 하는지 면밀히 살피는 것이다. 그것도 크라우스Michael Krauss가 명명한 바 ‘단어계logosphere’ 전체에 걸쳐서 말이다.7
1 이 시의 영어본은 앨리스터 레이드Alistair Reid가 번역했다.
2 이 책에서 언급하는 원주민들은 전형적으로 백인 이름과 전통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팻 가보리’는 백인 이름이며 ‘카바라르징가티 불투쿠’는 전통 이름이다. 흔히 전통 이름은 은행 계좌의 비밀번호에 비견될 정도로 강한 사적私的 요인을 띠며, 매우 아껴 쓰는 이름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주로 백인 이름을 쓸 것이다.
3 Pinker & Bloom(1990:715)
4 좀 더 복잡한 문장을 예로 들자면, 다른 명사들(기본적으로 주어를 제외한 모든 명사)도 시제 표시를 가진다. ‘그는 형의 창으로 바다거북을 찔렀다’는 niya raajarra bangana thabujukarrangunina wumburungunina이다. 여기서 thabujukarra는 ‘형의’를, wumburung은 ‘창’을, karra는 ‘속하다’를, nguni는 ‘로, -를 사용하여’를 뜻한다. 보는 바와 같이 ‘바다거북’ ‘형의’ ‘창’은 모두 과거 시제 접미사 -na가 붙는다. 도구 접미사 -nguni도 ‘형의 창’이라는 명사구 두 단어에 각각 붙는다. 이 일치성도 카야르딜드어의 특이점 중 하나다. 이런 식으로 명사 하나에 격 접미사 네 개가 연달아 붙을 수 있는데, 이런 수준의 복잡성은 어떤 언어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일치성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더 자세히 논의하지 않을 것이다. Evans(1995a, 1995b, 2003b, 2006) 참조.
5 실제로는 매우 많은 언어에서 명사에 시제를 표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포괄적인 논의는 Nordlinger & Sadler(2004) 참조.
6 여기서는 단순히 이 수치를 단언하는 데 그치고 제10 장에서 그 근거를 논의할 것이다.
7 ‘생물계biosphere’가 지구상 모든 생물종과 모든 생태적 연관성 전체를 가리키듯 ‘단어계’란 전 세계 단어들, 그 단어들이 구축하고 있는 언어들, 단어들 간의 연관성 전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영역을 말한다.
제1부
바벨의 도서관
Tuhan, jangan kurangi sedikit pun adat k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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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God, do not trim a single custom from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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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신이여, 단 하나의 전통도 우리에게서 없애지 마십시오.
― 인도네시아 속담
Oh dear white children, casual as birds,
Playing among the ruined languages,
So small beside their large confusing words
So gay against the greater sil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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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새처럼 무심하게 사랑스런 백인 아이들이
망가진 언어로 놀고 있구나.
아이들이 크고 복잡한 언어에 비해 너무 왜소하고
더 큰 침묵에 비해 그렇게 명랑하구나.
― Auden(1966)
성서의 바벨 신화에서, 인간은 하늘에 닿을 탑을 쌓으려는 오만 때문에 신에게 벌을 받았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로 지껄이는 벌을 받으면서 인간은 서로의 마음에서 멀어져갔다. 세상에 수많은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통치자나 언론계 거물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일종의 저주처럼 여겨져왔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이를 근대 국가에서 일어나는 타락과 불안정의 주원인으로 결부시키기도 했다.1
공통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유용하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단 하나의 중앙 표준 언어를 확산시키려는 운동이 계속되어왔다. 로마 제국의 라틴어,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의 프랑스어, 오늘날 중국의 만다린어(표준 중국어)가 모두 그러한 것이다. 때로는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운동을 주도하지만 갈수록 위성 텔레비전에 힘입은 미디어 조직이 이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의 외딴 지역까지 힌디어를 확산시킨 데는 60 년간 인도 정부가 벌였던 교육 캠페인보다 머독의 스타 채널Star Channel이 더 기여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힌디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 스와힐리어 등 얼마 안 되는 세계어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른 수십 개의 국어도 자국 내 모든 사람이 한 언어를 구사하는 방향으로 화자 저변을 확장해가고 있으나, 고등 교육과 과학기술 서적 면에서는 영어나 여타 세계어에 기반을 내준 형편이다. 성서의 저주가 이어진 지 수천 년이 지난 지금, 바벨탑과는 다른 곳에서 인류가 재조직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언어의 다양성을 혜택으로 보는 문화도 여럿 있다. 이 책의 제1장은 지구상에 왜 그렇게 많은 언어가 있는가에 대해, 바벨 신화와는 반대로 매우 긍정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창세 신화들을 검토하면서 시작하려고 한다. 소규모 문화에는 이러한 신화들이 널리 퍼져 있다. 그에 앞서, 잠시 바벨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이번에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살짝 비틀어놓은 바벨 이야기다. 보르헤스의 저서에 등장하는 ‘바벨의 도서관’에는 세상에 가능한 모든 언어로 쓰인 모든 책, 권당 410쪽으로 이루어진 책들이 소장되어 있다. 거기에는 과학자, 철학자, 시인, 소설가들이 쓴 모든 책뿐만 아니라 모든 거짓말, 이해할 수 없는 무의미한 말들까지,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고대 에티오피아 문자, 중국 한자, 음성 문자, 수화의 전사 기록 등 가능한 모든 문자체계도 포함시켜 보르헤스의 상상력을 좀 더 확장할 수도 있다.)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보르헤스의 은유는 아주 적절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기록된’ 무한에 가까운 이야기와 생각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보르헤스의 아이디어를 확장시켜 세계 속 무수한 구어 문화의 ‘이야기되’거나 ‘노래로 불린’, 그러나 아직 글로 기록된 적 없는 이야기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제9장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각 언어는 그 언어로 이루어진 걸작에 나름의 운율과 서로 다른 세계관을 새겨 넣는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 『신곡』과 『포폴 부Popol Vuh』,2 무라사키 시키부3와 도스토옙스키, 『리그 베다Rig Veda』4와 『코란Koran』을 나란히 놓고 생각해보라. 소공동체에서 사용되는 수천 개의 작은 언어가 영어, 스페인어, 만다린어, 힌디어로 대체되면서 이 도서관의 많은 칸에선 현재 곰팡이가 슬고 있다.
이 도서관에는 현재 쓰이고 있는 6000개 이상의 언어, 여기에 인간이 말을 시작한 이후 생겼다 사라진 모든 언어의 문법서와 사전도 소장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 문법서와 사전 중 대부분은 아직도 기록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으며, 이미 소멸해버린 과거 언어의 문법서와 사전은 아예 만들어질 수도 없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도서관에는 실제 존재하는 책과 더불어 가능한 모든 책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이 도서관의 언어학 문헌 칸에서, 우리는 각 언어가 어떻게 “나름의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지, 어떻게 그 그물을 통해 풍요로워지고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고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는지”5를 이해할 수 있다. 바벨 도서관의 이 칸을 훑어나가면서 우리가 살피는 것은 무엇이 ‘그 언어들로 기록되’어 있고 ‘구술되’어 있는가보다는 ‘사람들이 그 언어를 어떻게 구사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자들은 좀 더 명료하고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문법,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좋다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uber muss man schweigen”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매우 유명하다. 다행히 우리 선조들은 현재 우리가 쓰는 언어를 구축해오는 수천 년 동안 이 경고를 무시했다. 아주 오랜 세대에 걸쳐 인간은 누군가를 설득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환심을 사고, 혹은 누군가를 속이거나 배척하려는 시도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대하고 복잡한 체계를 구축해왔다. 총괄적으로 보면 이 언어 체계는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성과에 해당된다. 언어가 없었다면 다른 아무것도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벨 도서관의 언어학 문헌 칸도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
제1부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하여 운을 띄운다. 제1장에서는, 있기는 하지만 곧 무너질 듯한 바벨 도서관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놀라운 언어적 다양성을 다룰 것이다. 이 언어적 다양성이 어느 지역에서 나타나는지, 왜 이런 다양성이 생겼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논의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이 언어들이 인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늦게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지 살필 것이다. 그 무관심 탓에, 가슴 아프게도 우리는 과거 이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우리 선조들이 귀 막고 있었던 것에 대해 알게 된다면, 이 책 나머지 부분에서 제기할 많은 질문에 대해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1 예를 들어 Mauro(1995), Alesina et al.(1999) 참조.
2 마야족의 한 갈래인 키체족의 신화와 전설, 예언, 역사 등을 기록한 책이다. 자세한 것은 제9장 참조. ―역자주
3 11 세기 초,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의 여류시인이자 소설가다. 그의 작품 『겐지 이야기』는 일본 문학사상 고전으로 꼽힌다. ―역자 주
4 인도 브라만교의 네 가지 경전(베다) 가운데 하나로서, 10권 1028장으로 이루어진 운문체의 찬가다. ― 역자 주
5 Steiner(1975)
(프롤로그, 1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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