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정오를 알리는 대포 소리
머나먼 외국의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는 수백 년 동안 대포가 시계 노릇을 했다. 산꼭대기에 설치한 오포午砲에서는 12시 정각마다 포성이 울렸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었다. 오포 소리는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포 덕분에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사업상 약속을 잡을 때에도, 남몰래 바람을 피울 때에도 오포에 시간을 맞추었다.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오에 오포가 울리는지 궁금했던 한 소년이 산에 올라가 포수에게 비결을 물었다. 포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부대장님의 명령에 따라 포를 발사한단다. 가장 정확한 시계를 구해서 정확한 시간을 재는 것은 부대장님의 중요한 임무이지.” 소년은 부대장을 찾아갔다. 부대장은 정밀하게 제작된 시계를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소년이 “시간은 어떻게 맞추나요?”라고 묻자 부대장이 대답했다. “읍내 가는 길에 시계방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진열창 너머에 있는 커다랗고 근사한 괘종시계를 보고 내 시계를 맞춘단다. 마을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걸.”
소년은 이튿날 시계방을 찾아가 진열창의 커다란 시계를 어떻게 맞추느냐고 물었다. 주인이 대답했다. “틀림없는 방법은 하나뿐이잖니. 오포 소리를 듣고 맞추지!”
이 이야기는 척도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척도는 쉽게 말해서 무언가를 재거나 견주는 기준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오포 소리는 오전과 오후를 나누는 기준이었다. 척도가 일단 도입되면 사람들은 원래부터 있던 것인 양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척도가 사물의 진짜 속성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척도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조물주는 자도, 저울도 창조하지 않았다.
하루와 한 해가 규칙적으로 반복되기는 하지만 시계를 맞출 0시 0분이라는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계가 없으면 시각도 없다. 우리는 척도를 정당화하려 표준을 내세우고 그 표준을 정당화하려 또 다른 척도를 내세운다. 힌두교 우주관에서는 땅을 코끼리가 떠받치고 코끼리를 거북이 떠받치고 거북을 또 다른 거북이 떠받친다고 말하는데, 척도가 꼭 그런 식이다. 이 점에서 척도는 자의적이다.
외딴 바닷가 마을의 시계가 한꺼번에 고장 나서 시간을 모조리 새로 맞추면, 정오는 12시가 아니라 12시 4분이나 11시 47분, 어쩌면 1시 28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이 점에서 척도는 순환적이다. 우리는 사물이나 현상으로 척도를 규정하고 이 척도로 그 사물이나 현상을 규정한다. 오포가 울리는 시각을 정오라 부르고 정오에 오포를 발사하는 것이다.
척도가 자의적이고 순환적인 이유는 우리가 평상시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척도로 삼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로 인류에게는 임시방편 척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근대 과학의 태동기인 1600년대와 1700년대에 프랑스 과학자들이 보편적 측정 체계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목표는 모든 나라에 자기네 체계를 보급하는 것, 그리고 자연의 불변 속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다.
첫 번째 목표는 성공했지만 두 번째는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50년 전, 국제적 과학자 집단이 측정 단위 중 하나인 길이를 자연 현상인 빛에서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뒤이어 시간을 비롯한 나머지 척도도 자연 현상을 기준으로 삼았다. 현재, 자연 현상에서 도출되지 않은 기본 척도는 질량뿐이다. 질량 단위는 프랑스 파리 외곽의 연구소 금고에 보관된 금속 기둥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이 질량 원기가 권좌에서 내려올 날도 머지않았다. 과학자들은 질량을 비롯한 모든 기본 단위를 물리 상수로 정의하여 절대 측정 체계를 확립하는 또 한번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표준기가 모조리 유실되어도 똑같은 표준기를 얼마든지 복원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1장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
임시방편 척도
대니얼 디포는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임시방편 척도를 소개한다. 배가 난파되어 15년간 무인도에 갇혀 있던 크루소는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다 “웬 사람의 맨발 자국”을 발견하고서 “마치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동안 사람의 모습이건 그림자건 전혀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로빈슨 크루소는 “극도로 겁에 질려서” 사흘 밤낮을 온갖 공상에 시달리다 그것이 사탄의 발자국인지, 야만인이 지나간 흔적인지, 자신의 발자국인지, 두려워 헛것을 본 것인지 알아내려면 “다시 해안으로 내려가서 발자국을 본 후에 내 발에 맞춰” 대보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해안으로 돌아가 자기 발을 발자국에 대보는데 발자국은 자기 발보다 훨씬 컸다. 이렇게 ‘측정’한 뒤에야 자기 말고도 딴 사람이 섬에 올라왔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로빈슨 크루소는 “불의의 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때부터는 동굴을 성으로 여기고 방벽도 이중으로 쌓았다.
로빈슨 크루소의 행동은 여러 면에서 측정 행위의 좋은 예다. 사물의 양을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모르는 사물(모래 위의 낯선 발자국)의 속성을 아는 사물(자기 발)의 동일한 속성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거나 사물을 활용할 수 있다. 측정에서 기본이 되는 양을 일컬어 ‘단위’라 한다. 로빈슨 크루소가 사용한 단위는 ‘크루소 발’이다. 측정은 간단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고, 눈만 가지고 할 수도 있고 정교한 도구를 이용할 수도 있고, 대충 할 수도 있고 정밀하게 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목적은 측정을 통해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그랬듯.
최초의 측정 도구는 인체였다. 발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대부분의 문화권에는 ‘발’ 단위가 있으며, 발 길이를 ‘손가락’ 굵기로 나누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발 길이를 ‘푸스’, 손가락 굵기를 ‘닥틸로스’라 하며 1푸스는 16닥틸로스다. 중국에서는 발 길이를 ‘척’, 엄지손가락 굵기를 ‘촌’이라 하며 1척은 10촌이다. 길이 단위로 쓰는 신체 부위로는 발 말고도 손가락, 손톱, 머리카락, 손바닥, 손, 아래팔, 뼘, 걸음 등이 있다. 줌1, 움큼2, 자밤3 등은 지금도 요리할 때 쓰며, 에티오피아에서는 귓구멍 크기로 약의 분량을 잰다. 시간 단위로는 맥박, 수명, 세대 등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 러시아 장군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길이 단위 ‘아르신’을 병사의 보폭으로 정한 것은 자신의 부대가 어떤 상황에서도 측정 수단을 유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500아르신은 1베르스타로, 약 1킬로미터다.
영국인 측량 기사 토머스 몽고메리는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인도에 파견되어 티벳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을 인체 척도로 측량했다. 당시에는 많은 나라들이 서양인의 입국을 불허했으며, 밀입국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몽고메리는 히말라야 출신 사촌 형제 나인 싱과 마니 싱을 고용하여 2년 동안 측량 기술을 가르쳤다. 어떤 지형에서든 정확히 33인치(약 84센티미터)의 보폭으로 걷도록, 즉 2000보가 1마일(약 1.6킬로미터)이 되도록 훈련시켰다.4 싱 형제는 승려로 변장하고 가짜 염주를 손에 들었다. 이 염주는 알이 108개가 아니라 100개였는데, 100보 걸을 때마다 염주 알을 하나씩 땅에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라싸를 비롯한 티벳 대부분을 측량할 수 있었다. 몽고메리는 이렇게 얻은 정보를 가지고 티벳과 중앙아시아 지도를 만들었으며, 이는 40년 뒤에 영국이 티벳을 잔혹하게 침공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세 가지 요건
쌀, 옥수수, 기장, 보리, 캐럽5을 비롯한 곡식과 열매도 척도로 쓰였다. 곡식과 열매는 기후에 따라 무게와 길이가 다르며 우기에 부피가 커지기는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고 꽤 단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단위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기하기 위해, 건기에 수확한 평균 크기의 곡식과 열매만을 쓰기도 한다.
척도의 요건은 접근성만이 아니다. 두 번째 요건은 적합성이다. 규모가 목적에 걸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쓰기에 불편하면 척도로서의 쓰임새가 떨어진다. 측정값을 수~수십 단위로 나타낼 수 있어야지 수천 단위나 수천 분의 1단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6 속설에 따르면 12세기에 영국 왕 헨리 1세는 ‘야드’를 도량형에 도입하면서 자기 팔 길이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미술사가 피터 키드슨은 이 이야기가 뭔가 미심쩍다고 말한다. 영국에는 이미 길이 단위가 있었기 때문에, 난데없이 새 단위를 도입하면 상인들이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일일이 기존에 쓰던 단위로 환산해야 했을 것이다. 키드슨이 말한다. “도량형을 새로 도입할 때 굳이 그런 혼란을 자초할 리 없다. 새 도량형을 보급하는 것도 문제다. 새롭고 낯선 제도를 사용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처럼 하루아침에 공용어를 바꿀 수 있는 나라라면 새 도량형을 도입해도 사람들의 일상이 아무 탈 없이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만일 헨리 1세가 새 단위를 도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로마 시대부터 쓰던 패덤(12피트) 대신 요즘 직물 규격에 맞도록 길이가 절반가량이면서도 기존 도량형과 비율이 맞아떨어지는 새 단위가 절실했기 때문이라며 키드슨이 말한다. “헨리 1세는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다.”
척도의 세 번째 요건은 신뢰성이다. 목적에 부합하도록 튼튼하고 미더워야 한다. 이번에도 과거에서 기발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동유럽에 사는 유대인은 부모나 친척의 기일忌日(야르자이트)에 촛불을 켜는 관습이 있었다. 24시간 동안 불을 켜두어야 했기에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야르자이트 컵’이라는 이름의 용기에 초를 넣었다. 컵은 귀중품이어서 결코 버리지 않았으며—유리컵이 하찮은 물건으로 전락한 것은 기술이 발전한 현대 들어서다—마시는 컵으로 재활용했다. 이 관습은 미국에도 전해졌다. 필립 로스의 첫 소설집 『콜럼버스여 안녕』에 실린 동명의 중편 소설에서 주인공은 할머니가 낡은 야르자이트 컵으로 뜨거운 차를 마시던 장면을 회상하는데, 이는 주인공이 이주민의 후손임을 환기시키는 효과적 장치다. 야르자이트 컵은 일정한 양의 양초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크기가 모두 같다. 두껍고 단단해서 촛불의 열기에도 깨지지 않는다. 크기가 음식 재료를 담기에 알맞아서 계량컵으로 제격이다. 요리책에 물이나 밀가루 같은 재료를 몇 컵 넣으라고 나와 있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안다. 컵은 늘 곁에 있으니까. 지금이야 요리법이 다 책으로 나와 있지만 처음에는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것들이다. 하지만 재료를 손대중으로 넣어도 맛은 제대로 났다.
요즘은 물질적 풍요와 기술 발전 덕에, 굳이 무거운 야르자이트 컵이 아니더라도 더 근사한 음료수 컵과 더 정확한 계량컵을 구할 수 있다. 요리할 때 야르자이트 컵을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야르자이트 컵이 제기祭器에서 측정 단위로 바뀐 것은 도량형이 도입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측정이 자연을 완성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은 인간을 창조했지만 의식주를 해결해주지는 않았기에, 필요를 충족할 무언가를 찾거나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몫이었다. 야르자이트 컵처럼 딴 용도로 만든 물건을 측정 수단으로 임시변통할 수도 있지만 자, 저울, 시계처럼 측정 수단을 직접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의자 쿠션으로 음향을 측정하다
구하기 쉽고 목적에 걸맞고 믿을 수만 있다면, 임시방편 척도를 쓴다고 해서 꼭 비과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 교수 월러스 세이바인은 학장에게서 대학 구내 포그 미술관의 음향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강당의 반향이 심해서 청중에게 불쾌함을 유발한다며 음향의 질을 양적으로 측정하는 법을 고안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반향처럼 까다로운 성질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고민하던 세이바인은 의자 쿠션을 가지고 실험하기로 했다. 하버드 대학 구내에 있으면서 포그 미술관보다 음향이 뛰어난 샌더스 극장에서 의자 쿠션을 가져왔다. 캠퍼스에 적막이 감도는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조수들과 함께 미술관 강당의 쿠션을 모두 치운 뒤에, 귀가 예민한 조수가 초시계를 들고 쿠션의 개수와 위치에 따라 오르간 파이프7 소리가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지 측정했다. 이렇게 하여 나온 공식이 xy=k다. 여기서 x는 샌더스 극장에서 가져온 쿠션 개수, y는 잔향 시간, k는 상수다. 얼마 뒤에 세이바인은 흡음력, 용적, 면적에 따라 잔향 시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공식 t=k/(a+x)를 정립했다. 여기서 t는 잔향 시간, k는 공간의 용적에 따른 상수, a는 건물 벽과 바닥, 천장의 흡음력, x는 건물을 제외한 가구와 관객의 흡음력이다. 샌더스 극장의 의자 쿠션은 일종의 음향학적 야르자이트 컵으로, 원래는 관객의 편의를 위해 제작되었지만 전혀 다른 목적의 측정 단위로 탈바꿈하여 전 세계 객석 공간의 설계에 혁신을 가져다주었다.
임시방편 척도는, 척도마다 측정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척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 쓰는 단위는 몇 분의 1인치에서 피트, 야드를 넘나들며 요리사는 자밤, 작은술, 큰술, 컵 등의 단위를 사용한다. 단위는 훌쩍 커지기도 하고,8 단계적으로 커지기도 한다.
세상 만물이 단위가 되던 시절
신화 속 인물이자 힌두교 법의 편찬자인 마누가 내려주었다고 전해지며 편찬 시기가 기원전 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문서 『마누 법전』에서는 금과 은, 구리를 사고팔 때 흔히 쓰는 척도들의 비율을 설명한다.
태양이 창문을 통해 들어올 때 미세하게 보이는 작은 먼지를 최소 단위라고 하며 그것은 ‘햇빛 속의 먼지’라고 불린다. 여덟 개의 ‘햇빛 속의 먼지’는 그 단위에 있어 이의 알(서캐) 하나와 같고, 그것이 셋 있으면 검은 겨자씨 하나와 같으며, 겨자씨 세 개가 모이면 흰 겨자씨 하나와 같다. (흰) 겨자씨가 여섯 개 모이면 중간 크기의 보리알 하나와 같고, 보리알이 세 개 모이면 끄리슈날라[와 같다].
계산해보면 끄리슈날라(대마초 씨) 1개는 크기가 티끌 1296개와 같다.
임시방편 척도를 흥미롭게 묘사한 사례를 더 찾아보자. 1942년에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에릭 크로스의 『양복장이와 앤스티』는 재단사이자 이야기꾼인 티머시 버클리와 아내 애나스터시아(앤스티) 버클리의 실제 삶을 그린 해학 소설이다. 이 책은 아일랜드 시골의 음탕한 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탓에 출간되자마자 판금 도서로 지정되었으며, 분노한 이웃 주민들이 버클리 부부를 응징하기도 했다. 양복장이는 “국민이 지독하게 똑똑하고 많이 배운 탓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싫어하여 정부나 딴 사람이 자기 대신 생각하도록 위임하”기 전에 선인들이 알던 지혜를 아내 앤스티와 이웃들에게 들려주기를 즐긴다. 그중에는 측정에 대한 것도 있다.
양복장이가 말하길, 예전에는 땅을 ‘콜럽collop’ 단위로 측정했다고 한다. 콜럽은 땅을 생산력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농토의 면적이 아니라 가치를 알려준다. “1에이커는 돌밭 1에이커인지도 모르는 일이니, 땅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콜럽으로 따져보게나.” 1콜럽은 돼지 한 마리나 송아지 두 마리, 양 여섯 마리, 염소 열두 마리, 거위 여섯 마리를 먹이는 데 필요한 면적이다. 3콜럽이면 말 한 마리를 먹일 수 있다. 양복장이는, 어떤 마을 사람이 자기 토지가 4000에이커라고 자랑하지만 실은 소 네 마리밖에 못 먹일 거라고 말한다. 양복장이 말은 과장이 틀림없다. 그 지역에 그만한 땅부자가 드물거니와 아일랜드 서부가 아무리 늪과 돌밭으로 악명 높더라도 1000에이커당 소 한 마리를 못 먹일 리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콜럽으로 환산하여 건방진 이웃의 콧대를 꺾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옛 사람들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구.”
옛 아일랜드 사람들은 시간을 재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시간의 기본 단위는 뜸부기의 수명이었다. 양복장이는 뜸부기의 수명에서 출발하여 시간 단위를 차례로 읊는다.
개는 세 뜸부기보다 오래 살고9
말은 세 개보다 오래 살고
칠면조는 세 말보다 오래 살고
사슴은 세 칠면조보다 오래 살고
독수리는 세 사슴보다 오래 살고
주목朱木은 세 독수리보다 오래 살고
오래된 언덕은 세 주목보다 오래 산다네.
양복장이는 세 오래된 언덕이 우주의 나이와 같다며 시간 단위는 이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뜸부기 수명에 38을 곱해봐야 우주의 나이가 될 리 만무하니 양복장이는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뜸부기가 10년을 산다고 치면 빅뱅 이후로 고작 65,610년이 흘렀다는 얘긴데, 천문학자들이 추정하는 140억 년에 비하면 너무 짧다. 하지만 양복장이가 말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시간을 측정하니, 어디에 가든 달력을 지니는 셈이었지.”
세상이 곧 달력이라 …… 측정 단위의 기원을 이보다 더 근사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양복장이는 인위적 단위에 세상을 끼워맞추지 않고 세상 만물을 단위로 삼았다.
단위의 비율
단위의 비율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물의 비율이 일정한 것을 일컬어 ‘비례’ 또는 ‘균제10’라 불렀다. ‘균제’를 뜻하는 영어 단어 ‘symmetry’의 어원은 ‘공통의 척도’를 뜻하는 그리스어 ‘심메트리아’다. 로마의 건축가이자 역사가인 비트루비우스가 기원전 1세기에 쓴 『건축십서』에서는, 균형 잡힌 인체는 각 부분이 비례를 이룬다고 말한다.
인간의 신체는 조물주에 의해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안면은 턱에서 이마 위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까지로서 전체 키의 1/10, 또한 손바닥은 손목에서 장지 끝까지로 전체 키의 1/10, 머리는 턱에서 머리 끝까지로 전체 키의 1/8, 가슴 맨 위부터 이마 위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까지는 전체 키의 1/6, 가슴 중앙에서부터 제일 위인 머리 끝까지는 1/4이다. …… 발 길이는 키의 1/6이며 팔 길이는 1/4, 가슴폭도 같은 1/4이다. 기타의 구성 요소도 각기 자신의 조화로운 비례를 갖는데 古來(고래)로 유명한 화가나 조각가들은 이를 이용해서 많은 칭송을 받았다.
따라서 인체 치수는 미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중요한 것이라고 비트루비우스는 주장한다. 인체의 비례는 우주 질서와 정신적 차원을 반영하고 조화와 완벽을 구현하고 인간적 속성과 초인적 속성을 연결한다는 까닭에서다. 이를 근거로 비트루비우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들은 모든 건물에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측정의 기본을 …… 인체의 구성 요소에 의거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는 팔을 쭉 폈을 때 왼손 가운뎃손가락 끝에서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 영어의 ‘패덤’에 해당하는 오르기아orguia, 손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로 영어의 ‘큐빗’에 해당하는 페키스pechus, 발, 손바닥, 손가락 등이다. 이러한 단위가 주요 척도로 쓰일 경우, 비트루비우스는 이를 ‘모둘루스11’라 일컬었다. 고대 건축물 중 상당수가 모둘루스에 들어맞게 지어졌다. 이를테면 파르테논 신전은 너비가 100푸스(30.89미터), 길이가 225푸스(69.5미터)다.
그리스인들은 이 같은 비율을 도량형 부조로 새겼다. 유명한 예를 두 개만 살펴보자.
그림 1.1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나 터키 서부에서 제작된 도량형 부조. 신체 각부의 비율을 보여준다.(각주 12) |
그림 1.2.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 살라미스에서 제작된 도량형 부조. |
<그림 1.1>은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아니면 터키 서부에서 제작되었으며 영국 옥스퍼드의 애슈몰린 박물관에 소장된 도량형 부조로, 오르기아, 페키스, 푸스, 닥틸로스의 비율을 나타낸다. 4페키스는 1오르기아인데, 여기서 페키스는 저잣거리에서 일반 시민이 쓰는 단위가 아니라 왕실에서 쓰는 단위가 틀림없다. <그림 1.2>는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 살라미스에서 제작되었으며 피라이우스 박물관에 소장된 도량형 부조로, 오르기아, 페키스, 푸스, 스피타메(쥐뼘13)의 비율을 나타낸다.
또 다른 예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그리하여 수없이 복제되고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 「인체 비례도」가 있다.
그림 1.3 레오나르도 다빈치, 「인체 비례도」 |
서양에서 <그림 1.3>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빈치가 그림을 그릴 때 비트루비우스의 글을 염두에 두었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는 인체의 비례와 이로부터 도출한 단위가 어떻게 미의 이상을 구현하는지 보여준다. 척도를 구성하는 일에 상징적·정신적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선사 시대에 인류는 특정 사물을 가지고서 측정 단위를 정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발이나 내 발이 아니라 ‘피트’가, 이 캐럽이나 저 캐럽이 아니라 ‘캐럿’이 필요했다. 이 특정 사물을 ‘표준’이라 한다. 표준은 1의 양을 가지는 표본으로, 그 양은 우리가 임의로 정한 것이다. 표준이 제정되면 추상적 단위가 ‘표준기’라는 구체적 사물로 체화體化14된다.
표준과 권력
주변 사물을 임시변통한 척도가 아니라 표준화된 체화 척도를 쓰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표준은 자연이나 공동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고유한 정체성과 역할을 부여받은 특별한 인공물이 되었다. 따라서 특별한 장소에 안전하게 보관하며 관리해야 한다. 표준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치적·사회적 권력, 즉 왕의 권위와 신의 위엄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었다. 로마인이 카피톨리노 사원에, 그리스인이 아크로폴리스 신전에, 유대인이 성전에, 왕과 군주가 궁전에, 미국이 워싱턴 인근에, 프랑스가 파리 인근에 표준을 보관한 것은 이 때문이다. 통치자는 표준을 소유하고 표준의 신뢰성을 보장했으며, 그를 보좌하는 자들은 표준을 관리하고 감독하고 사본을 공급하고 검사했다. 그러므로 도량형을 사용할 때의 문제는 사본이 정확한가, 적절히 관리되는가, 제대로 쓰이는가다.
이를테면 나는 뉴욕의 유니언스퀘어 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살 때 1달러를 주고 정확히 1달러어치를 받는다고 믿는다. 상인이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뉴욕 시 감독관이 정기적으로 저울을 점검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필리핀 마닐라의 빈민촌 말라테에는 척도가 시장에서 얼마나 신뢰받는지를 나타내는 특별한 용어가 있다. ‘수키’는 말라테 지역에서만 쓰는 단어로, ‘늘상 거래하기 때문에 그의 저울을 믿을 수 있는 상인’을 일컫는다. 시장에 갔는데 자기 수키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날 장사하는 수키를 아는 친구를 찾는다. 심지어 과학자들도 실험을 준비할 때 모든 기구의 정확성을 점검하지 못하기에 신뢰에 의존해야 한다. 실험 기구 제작 업체는 치수가 틀리지 않았는지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결함을 발견하면 즉시 수정하는 사후 품질 관리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으며, 결함을 눈감았다가는 고객을 잃을 것임을 안다. 이 또한 과학자가 기구를 신뢰하는 데 한몫한다. 도량형은 신뢰와 전문성을 갖춘 집단을 토대 삼아 사회 제도로 굳게 자리 잡았다.
단위가 체화되면 단위와 단위가 맺는 관계도 바뀐다. 예전의 임시방편 척도는 단위로 쓰이더라도 독립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손은 단위로 쓰이더라도 손이고, 손가락은 손가락이고, 씨앗은 씨앗이다. 다른 단위와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양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개가 뜸부기보다 세 배 오래 살든 아니든 개는 여전히 개다. 철학자들 말마따나, 이 단위들의 존재 형태는 단순하다. 세상과의 관계가 주된 관계이며, 유형적·비례적 관계는 부차적이고 인위적이다. 하지만 단위가 체화되면 한 단위를 다른 단위로 정의할 수 있다. 피트는 12인치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 관계는 두 단위의 고유한 속성이다. 이제 존재 형태가 달라진다. 체계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기하학 원리가 삼각형과 사각형을 지배하듯 체계의 규칙이 단위를 지배한다.
측정 방식도 달라진다. 임시방편 척도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구체적 사물을 끌어다 세상에 갖다 댔지만 체화 척도를 받아들인 뒤로는 (대체할 수 있고 오류 가능성이 있는) 구체적 사물이 아니라 체계를 끌어다 세상에 갖다 댄다.
상징적 의미
척도의 체화—표준의 제작과 관리, 체계의 확립과 감독—는 측정학을 낳았다. 측정학metrology은 체계를 탐구하고 그 속의 상호 관계를 정립하는 이론과학이자, 측정을 과학, 경제학, 교육 같은 여타 분야에 적용하는 응용과학이다. 척도의 문화적·정신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 이를테면 「인체 비례도」의 비례와 그리스의 미 개념을 연관짓는 것은 측정철학metrosophy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문화권에서는 측정에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척도가 체화되고 측정학이 (신뢰와 불신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사회 제도가 되면, 측정은 더는 중립적 행위가 아니며 정의와 선, 인간성의 고양 따위와 결부된다. 이 말은 불의와 착취, 소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면 과거의 목가적 삶을 찬미하는 전설이 등장한다. 일찍이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도 그러한 전설을 노래했다.
카르케돈인들이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헤라클레스 기둥들 밖에 사는 리뷔에인들과 교역을 한다. 그들이 그곳에 가서 화물을 부리고 바닷가에 일렬로 늘어놓은 다음 배로 돌아가 불을 피워 연기로 신호를 보내면, 연기를 보고 바닷가로 내려온 토착민들이 물건 값으로 황금을 갖다 놓고는 상품에서 멀찍이 물러선다고 한다. 그러면 카르케돈인들이 배에서 내려 살펴보고 황금이 물건 값으로 충분하다 싶으면 황금을 갖고 떠나지만, 충분하지 않다 싶으면 배로 돌아가 그곳에 앉아 있다고 한다. 그러면 토착민들이 다시 다가와, 카르케돈인들이 만족할 때까지 황금을 더 보탠다.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여러 가지로 각색되었는데, 악의는 없었겠지만 철모르는 이야기꾼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흑인 같은 이른바 미개 문화에는 도량형이 없다며 이를 순진무구함의 증거로 해석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거짓 아니면 상상이다. 촌스럽거나 격식은 차리지 못했을지라도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온갖 방법과 온갖 목적으로 늘 세상을 측정하며 측정의 오류 가능성을 잘 안다.
유대·기독교 설화에서는 도량형을 발명한 것이 카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순진하게 인정 많게” 살던 사람들이 “교활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측정하다 보면 죄를 짓기 쉽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며 신은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건량 단위)와 공평한 힌(액량 단위)을 사용하라”(레위기 19장 36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신성한 명령으로, 이를 어기는 자는 죽임을 당했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상거래와 조세에 쓰는 도량형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를 놓고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가 갈등하다 정치 투쟁이 벌어지고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수세기 동안 종교적·세속적 권력 집단은 눈속임을 막으려고 애썼으며 때로는 손가락을 자르거나 극형에 처하는 등 호된 위협과 처벌을 가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눈속임이 훨씬 줄었다. 우리는 장을 보고 옷과 가구를 사고 기차를 탈 때,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음에도 척도가 정확하다고 믿는다. 이 저울이, 저 줄자가, 그 시계가 정확하다는 걸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도 우리는 척도를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확신이 없다면 현대인의 삶이 이토록 순조롭게 흘러갈 수 없다. 척도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저울이 1킬로그램당 1그램, 줄자가 1미터당 1밀리미터, 시계 바늘이 1분당 1초 정도만 정확하면 일상생활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물론 손해를 보거나 속을 수도 있지만) 척도가 틀렸을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측정을 신뢰한다. 측정을 신뢰하지 않으면 현대 문명은 윤활유가 바닥난 기계처럼 삐걱대다 멈춰버릴 것이다. 현대 문명의 가장 지독한 역설은 우리가 매사에 지독한 정확성을 요구하고 이를 지독히 신뢰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 세계에서는 측정의 눈속임이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지능이나 행복, 자존감, 교육 수준처럼 근본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것까지 측정하려 들고 이것이 전부라고 착각한다.
측정의 세계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들어서는 단일한 측정 체계인 국제단위계(SI)가 널리 보급되었다. 미국, 라이베리아, 미얀마 등 국제단위계를 공식 표준으로 채택하지 않은 일부 나라들도 국제단위계를 토대로 자국의 표준을 정의한다. 국제단위계는 임무가 막중하다. 요즘 기계는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지며 각 부품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허용 오차가 100만 분의 1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단위계가 어떻게 제정되고 관리되는지 그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제단위계를 감독하는 것은 프랑스 파리 외곽의 외교 중립 지대에서 일하는 국제적 과학자 집단이다. 내가 아는 측정학자들은 과학의 본류 바깥에서 무미건조하게 활동하는 무색무취한 인간을 자처한다. 이 책은 그런 이미지가 터무니없음을 폭로한다. 측정학의 딱딱한 껍질을 파고들었더니 정치나 음악, 미술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허풍스럽고 기발한 등장인물이 속출했다.
측정 이야기는 세계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옛날 옛적에는 지역마다 ‘정오를 알리는 대포’가 있었다. 도량형은 현지의 물자와 관습을 바탕으로 현지의 필요에 부응했다. 각 사회의 ‘현지’ 도량형은 공예품, 정치 체제, 문화만큼이나 독창적이고 다양했으며 측정의 의미와 목적을 바라보는 관점도 제각각이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금을, 중앙아메리카는 소금을, 중국은 궁중 제례를, 유목민은 거리를, 근대 이전 유럽은 농업을 중시했다. 중요한 가치일수록 이를 재는 척도가 더 정교하고 정밀하며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더 많은 규제를 받았다.
하지만 200여 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사실상 이 모든 체계가 하나의 ‘보편적’ 측정 체계로 통일되었으며 사실상 모든 나라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는 전 세계 언어가 통일되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2, 3, 4장에서는 고대 중국의 길이 척도, 서아프리카의 금 척도, 농업 시대 유럽의 농사 척도 등 세 가지 측정 체계가 어떻게 발전하고 교차하고 바뀌었는지 들여다본다. 5장과 6장에서는 미터법이 현지 도량형을 몰아내고 전 세계에 보급된 과정을 추적하며, 7장과 8장에서는 미터법 반대 진영의 진지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반격을 살펴본다. 9장과 10장에서는 자연을 토대로 완전히 통일된 측정 체계에 대한 꿈이 국제단위계라는 형태로 다시 등장하는 과정을 기록했으며, 11장에서는 측정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본다. 12장에서는 전 세계 과학, 기술, 상업을 지탱하는 국제적 측정 구조를 전면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기술한다. 이 개정은 프랑스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이며 모든 단위를 절대 표준에서 구한다는, 수백 년을 이어온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측정 분야에서는 통일된 측정 체계인 국제단위계의 제정 말고도 여러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제단위계는 모든 측정 체계가 그렇듯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인공물인 표준기를 근거로 삼았다. 막대기의 길이가 기본 길이 단위였고 쇳덩이의 무게가 기본 질량 단위였다. 굳이 따지자면 오포로 시간을 측정하던 바닷가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과학자들은 길이, 질량, 시간을 비롯한 모든 기본 단위를, 해가 뜨고 지는 것보다도 훨씬 보편적이고 정확한 절대 표준에 연계하기 시작했다. 12장에서는 국지적이지도, 보편적이지만 임의적이지도, 자연에 의거하지도 않은 측정 체계, 오로지 물리 상수에만 의거한 절대적 체계로 전 세계 측정 체계가 변모하는 역사적 전환을 서술한다. 이들 기본 측정 표준은 한 명의 통치자나 한 나라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장소에 보관되지도 않을 것이다. 적절한 기구만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나 표준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후기에서는 현대 세계에서 측정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본다.
측정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우리는 바닷가 마을의 소년이 되어야 한다.
1 주먹으로 쥘 만한 분량
2 한 손에 잔뜩 움켜 쥔 분량.
3 나물, 양념 따위를 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
4 33인치에 2000을 곱하면 66,000인치인데, 1마일은 63,360인치다.
5 콩과 식물로 지중해 동부 지역이 원산지이며, 보석의 무게 단위인 ‘캐럿’의 어원이 되었다.
6 이를테면 사람 키를 0.00171킬로미터로 나타낸다고 생각해보라.
7 세이바인은 파이프 오르간에 쓰는 파이프를 압축기에 연결하여 공기를 불어넣었다.
8 이를테면 ‘마일’은 1000걸음을 뜻하는 라틴어 ‘밀리아 파숨milia passuum’에서 유래했다.
9 개의 수명이 뜸부기보다 세 배 길다는 뜻이다.
10 건축물 전체와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것.
11 원래 뜻은 ‘단위 부재部材의 규격’이다.
12 http://www.ashmolean.org/ash/faqs/q002/ 참고.
13 짧은 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한껏 펴서 벌렸을 때의 길이.
14 표준과 관련하여 ‘체화embody’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자연물이 아니라 인공물을 표준으로 삼는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양자 역학적 측정 방법이 아니라 실제 물체로 측정 단위를 정의한다는 뜻이다.
(머리말,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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