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알몸을 드러낸 피부
우리는 가장 중요한 기관인 피부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당신은 여름날 늦은 오후 습하고 그늘진 과수원 한 곳에 서 있다. 이때 당신은 피부가 체온을 조절하고 자외선을 막아주는 덕분에 몸이 과도하게 뜨거워지지 않은 상태로 편안하게 야외에 있을 수 있다. 눈썹과 윗입술로 흘러내리는 몇 방울의 땀은 피부가 몸을 식히고 있다는 표시다. 얼굴에 앉으려는 파리를 손으로 쫓을 때, 당신은 피부가 파리의 다리나 주둥이에 묻은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머리 위의 가지에 매달린 복숭아를 쳐다보며, 그것을 따서 먹고 싶다고 생각한다. 탐스런 복숭아 쪽으로 팔을 뻗던 중 다시 파리 때문에 움츠리고, 이때 낡은 나뭇가지에 손을 긁힌다. 피부 표면도 꽤 거칠기 때문에 긁힌 곳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몇 분 후 상처가 부풀어 오르지만 피부의 가장 바깥층은 이런 생채기를 잘 견뎌내므로 심각하게 손상되지 않는다. 당신은 다시 팔을 뻗고, 몸통과 팔을 덮은 피부에 탄력성이 있어서 발끝만 살짝 들면 힘 들이지 않고 복숭아에 손이 닿는다. 이제 과일을 쥐고 살며시 힘을 주자 손가락 끝 피부에서 민감하게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를 통해 미묘한 부드러움이 전해져온다. 잘 익었다. 나무에서 복숭아를 딸 때, 당신의 손을 덮고 있는 피부에서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들은 과일에 약간의 온기가 있음을 알려준다. 팔을 내리자 늘어나 있던 몸통과 팔의 피부가 즉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간다.
복숭아를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고는 뺨에 대고 살짝 문질러서 부드러운 감각을 즐긴다. 섬세한 촉각 센서들이 밀집해 있는 얼굴 피부는 복숭아에서 느껴지는 질감을 뇌로 전달한다. 한 입 베어 물려는데 발목이 성가시게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복숭아의 냄새와 느낌에 즐겁게 빠져 있는 동안 모기가 물은 것이다. 피부의 구조 및 피부가 가진 다양한 능력들이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실제로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피부의 구조와 그 기본적 기능을 살펴보는 여행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간 피부의 가장 놀라운 특성들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털이 없다는 사실인데, 대부분의 다른 온혈동물들의 피부와는 다른 특징이다. 조류와 포유류의 선조들은 피부에 실처럼 섬세한 부속물들—깃털과 털—을 진화시켰는데, 그것들은 열 교환을 조절하고 수분 손실과 물리적 손상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털이 없는 인간 피부는 그와 같은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구조적 변화를 통해 강도와 탄력성, 그리고 민감도를 확보해야만 했다.1 우리 인간의 피부는 완벽하지 않지만 매우 우수한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은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솔기가 터지거나 내용물이 저절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욕조의 더운 물에 담가도 물풍선처럼 팽창하지 않는다.
피부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햇빛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피부 및 피부에 포함된 색소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을 선택적으로 걸러낸다. 우리의 피부는 햇빛의 유해한 효과를 차단하는 보호막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동일한 햇빛을 몸에 유익하게 활용하기도 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피부에서 비타민 D 생산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피부는 신체 다른 부위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협상 테이블을 거쳐 나온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피부의 복잡한 특성들은 서로 충돌하는 요구들—여기서는 유해한 태양복사의 차단과 필수적인 비타민 생산—이 자연선택을 통해 타협되면서 만들어진 균형을 반영한다.
피부는 서로 다른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가진 여러 층들로 구성된다. 이렇게 층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잘 마모되거나 뚫리지 않으며, 대부분의 물질들이 흡수되지 않는다. 피부는 크게 표피表皮와 진피眞皮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두 층들은 구성이나 기능이 매우 다르다(아래 좌측 그림 참조). 피부에는 또한 배아 발달 초기에 이미 피부 속으로 들어간 여러 형태의 세포들이 있다. ‘이주세포移住細胞’라 부르는 이 세포들은 피부를 보호하는 데 다양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번 장의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피부의 가장 바깥을 이루는 ‘표피’는 주변 환경에 있는 옥시던트Oxydant(배기가스 등 광화학 스모그의 원인이 되는 산화성 물질들의 통칭)와 열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며, 물·마모·녹·미생물과 여러 화학물질 등에도 저항성이 있다. 피부가 막아내는 그 수많은 목록들은 표피가 자연에 있는 어떤 물질보다 혁명적이고 새로운 유형의 덮개라고 여겨지게 만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토록 유용한 특성들이 자체 갱신되는 단 1밀리미터 두께의 층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가장 바깥에 있는 세포들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는 아래에서 올라온 세포들로 계속 교체되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모든 기능을 수행한다.2 표피는 편평하게 변한 세포들이 여러 층으로 구성된 특수한 형태의 ‘상피上皮’(몸의 내부 혹은 외부 표면을 덮는 모든 조직들)로 되어 있다. 이 세포들은 보호 기능이 있는 단백질인 케라틴Keratin(각질)을 많이 함유하기 때문에 과학적 용어로는 ‘중층각화상피重層角化上皮’로 알려져 있다.
표피의 바깥쪽 표면은 가장 특징적인 층으로, ‘각질층角質層’이라 불린다(아래 우측 그림 참조). 피부 각질층은 죽어 있는 편평 세포들로 구성된 얇은 층으로, 표면이 매끈하고 상당히 질기며 방수성이 있다. 그 표면에 나 있는 유일한 틈새는 모낭毛囊과 땀샘 구멍이며, 소위 이주세포들도 피부의 복잡한 중층 구조의 일부를 이룬다. 피부는 모든 종류의 환경적 유해인자들, 특히 자외선, 오존, 대기 오염, 병원성 미생물, 화학적 산화제, 국소적으로 도포된 약물 등과 같은 산화성 스트레스들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는데, 이는 모두 각질층이 온전하다는 전제에 기대고 있다.3
피부가 환경적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피부를 두껍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부가 반복적으로 자외선에 노출되면 표피 가장 아래층인 기저층에서 세포분열이 증가한다. 표피세포의 원천인 기저층에서 세포분열이 증가함에 따라 각질층이 두꺼워진다.4 외적·내적 스트레스—지나친 자외선, 고열, 산과 같은 부식성 화학물질, 일부 질환 및 유전적 문제—가 너무 심하다면 각질층이 더 이상 효과적인 보호 장벽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만약 피부의 넓은 부위에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아주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표피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세포인 케라틴세포는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케라틴세포는 피부 표면의 강도, 저항성, 신축성 등을 책임지고 있다. 케라틴세포의 젤리처럼 생긴 세포간질細胞間質 내에 케라틴 세섬유가 들어 있으며, 이러한 세포들이 아래에서부터 몇 겹의 층을 이루며 표피를 만든다. 세포들 사이의 좁은 공간은 단백질과 지질脂質을 주성분으로 하는 물질로 메워진다. 이와 같은 ‘벽돌과 시멘트’ 구조 덕분에 표피, 특히 각질층의 탄력성이나 물질을 통과시키지 않는 특성이 나타난다. 즉 세포들 사이를 단백질 및 지질로 된 물질이 빈틈없이 강하게 물리적으로 연결시켜준다.5 짙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는 케라틴세포가 멜라닌색소 조각들(이른바 멜라닌 더스트melanin dust)을 함유하여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또 다른 층 역할을 한다.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피부가 매우 독특하다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표면에 사실상 털이 없음에도 우리 몸을 보호하는 임무를 잘 수행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처럼 고유한 특성에 대한 유전학적 배경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알려졌다. 인간의 유전자 구성 중 침팬지 같은 유인원 친척들과 다른 것 가운데 하나가 표피의 구조를 결정하는 유전자다. 최근 침팬지 게놈gonome의 유전자 염기배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없지만 피부의 케라틴 층을 형성하는 단백질 생산 및 표피의 분화를 조절하는 유전자들은 크게 다르다고 한다.6 최소한 영장류의 피부 범위 안에서 본다면 인간의 표피는 견고한 재질로 되어 있다.
표피 속의 이주세포들은 피부의 다른 세포들과 함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세포들은 발달 초기에 신체 다른 곳에서 피부 속으로 옮겨와, 자외선과 병원균 그리고 고도의 물리적 압력 같은 잠재적 환경 인자들에 대항해 물리적·화학적 보호막을 제공해준다. 이주세포들은 발달 과정에서 끼어든 존재들이지만 피부의 물리적 구조를 조금도 약화시키지 않는다. 표피 속에 있는 중요한 이주세포들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우선 멜라닌세포는 피부의 기본 색소이자 자연적인 자외선 차단제 역할을 하는 멜라닌을 생산한다. 이 세포는 배아 발달 초기에 원래 있던 자리인 척추 측면으로부터 피부로 옮겨간다. 피부에 도착하면 멜라닌을 생산하기 위해 진피와 표피의 접점 가까이에 자리를 잡는다. 어떤 사람들은 멜라닌세포에서 많은 양의 멜라닌을 생산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아주 적은 양의 멜라닌만을 생산한다. 이는 그들의 선조가 살았던 환경의 자외선 양에 따라 달라진다. 피부의 색조는 멜라닌세포의 활성도 및 멜라닌 생산량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자연선택이 엄격히 적용되는 진화 과정을 거쳐 왔다.
다른 두 유형의 이주세포들도 중요하다. 랑게르한스Langerhans세포는 피부가 이물질에 접촉할 때 반응하는 면역체계 세포로 특화되었다. 이 세포는 피부에 침입하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전투의 최전선을 형성한다. 메르켈Merkel세포는 피부의 감각신경말단과 관계되며, 피부로부터 감각신경으로 기계적 신호를 보내 뇌에까지 전달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세포는 손가락과 입술의 매끈한 표면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위에서는 촉각을 더 정밀하게 구분할 수 있다. 이 세포는 포유류나 조류처럼 털이나 깃털이 많은 친척 동물들에게도 중요하다. 털과 깃털이 생성되는 모낭 주위의 세포들 사이에 존재하는데 개, 고양이, 쥐의 민감한 콧수염 주변도 여기에 포함된다.
표피 아래로 내려가면 피부를 이루는 주요 두 개 층 가운데 다른 하나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은 ‘진피’라 불리는 두껍고 치밀한 결합조직이다. 진피는 피부에 실제적인 질감을 주는 층이다. 그리고 유연함과 탄력성이 있으며 신축성도 강하다. 인간 피부의 두께—그리고 동물 가죽 두께의 대부분—는 진피에서 비롯된다.7 피부에 물리적·화학적 특성 외에 두께가 더해짐으로써 단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 아니라 기계적 손상도 견뎌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가죽 제품은 동물의 두꺼운 진피를 좀 더 유연하게 가공하여 만든다.8
인간 피부의 콜라겐망. 진피에는 여러 유형의 콜라겐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배열되어 있어 피부의 물리적 형태를 유지해준다. Photograph ®œ L°ØOréal Recherche |
진피는 복합조직으로, 신축성이 강하고 단단하다. 이러한 특성은 콜라겐 섬유와 엘라스틴 섬유의 조합에서 나온다. 섬유들은 염분과 물, 그리고 ‘글리코사미노글리칸glycosaminoglycan’이라는 거대 단백질 분자 등으로 이루어진 겔 상태에서 유지된다. 진피를 이루는 가장 주된 세포들은 콜라겐이 많이 함유된 섬유아세포纖維芽細胞들이다. 피부 건조중량乾燥重量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콜라겐은 주로 피부가 강한 신축성을 가지도록 하는 역할을 하며 부분적으로는 가시광선을 산란시키는 역할도 한다. 콜라겐은 단단한 단백질 끈처럼 생겼으며 진피를 하나로 묶어서 모양을 유지시켜준다. 한편 콜라겐 사이에 섞여 있는 엘라스틴 섬유망은 늘어난 피부를 원래의 형태로 되돌려준다.
나이가 들면 콜라겐과 엘라스틴 섬유 생산이 서서히 줄어들며, 피부가 햇빛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자외선이 생산에 나쁜 영향을 준다. 오늘날 미용시장에는 이러한 물질의 생산을 자극하여 피부가 젊게 보이게 해준다고 선전하는 상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피부 크림과 피부 처치법, 그리고 ‘약용화장품’들이 피부의 모양이나 조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우는 햇빛 속에서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때와 같은 특정 상황으로 한정된다. 피부에서 콜라겐과 엘라스틴의 생산을 조절하는 과정들 중 대부분은 세포노화라는 내부 기전이 지배하며, 우리가 피부 표면에 첨가하는 물질은 그러한 기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미미한 영향을 줄 뿐이다.
진피 내부에는 결합조직 섬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가지를 쳐 망을 이룬 혈관과 빽빽하게 뻗어 있는 신경망, 수많은 땀샘과 모낭, 입모근立毛筋(털을 세우는 근육)과 피지샘 등을 발견할 수 있다. 혈관은 땀샘과 모낭, 그리고 표피 가장 아래층에서 빠르게 증식하는 세포들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신체 표면의 혈관 밀도는 부위마다 많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뇌를 보호하기 위해 온도 조절이 특히 중요한 부위인 머리에는 혈관이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두피의 모낭에서 머리카락이 자라기 위해서는 양질의 영양소가 필요하므로 혈액 공급이 많아야 한다. 땀샘이나 (기름을 분비하는) 피지샘이 피부의 수분을 유지시켜주어야 하는 부위—예를 들어 손바닥과 발바닥, 그리고 유두—에도 혈관이 밀집해 있다. 그리고 혈관의 밀도는 자세와도 관련이 있다. 인간과 영장류는 모두 엉덩이 아래쪽에 혈관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이 부위 피부의 혈액 공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 가운데는 암컷의 생식기 주위 피부에 혈관이 많이 분포해 있어 교미 가능한 시기가 되면 해당 부위 피부가 체액으로 가득 차 부풀어오르는 동물이 있다. 이렇게 부풀어 올라 분홍빛을 띠는 생식기의 모습은 수컷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진피의 혈관은 적혈구를 운반하며, 적혈구 안에 들어 있는 헤모글로빈이 붉은색을 띠게 만든다. 헤모글로빈은 세포에 전해줄 산소를 싣고 갈 때는 선홍색을 띠지만, 산소를 내려놓은 후 심장과 폐로 되돌아갈 때는 검붉은색이 된다. 헤모글로빈은 피부의 주요 색소들 중 하나지만 피부에 짙은 갈색의 멜라닌색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잘 보인다. 장밋빛 뺨과 푸른 정맥은 짙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보다는 밝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햇빛에 노출되어 화상을 입은 피부는 보통 선홍색을 띠며 통증을 일으킨다. 이는 피부 속 모세혈관의 수가 늘어나고 직경이 커지면서 각각의 혈관에 흐르는 혈류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다. 화상이 발생한 피부에 혈액이 스며들고 자외선 때문에 생긴 손상을 복구하기 위해 뜨겁고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므로 해당 부위에 무엇이 닿으면 따갑게 느껴진다.
진피의 신경들은 매우 복잡하다. 피부가 신체에서 감각을 인지하는 입구 역할을 하는 부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부에는 여러 유형의 특화된 감각수용체感覺受容體 세포들이 있어, 외부 환경 및 피부 상태에 관한 신호를 중추신경계로 전달한다. 감각수용체들에는 두 가지 형태의 온도수용체(냉수용체와 온수용체), 털이 있는 피부와 없는 피부 모두와 연관된 기계적 수용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물리적 자극 및 부상이나 염증을 감지하는 통각수용체 등이 있다. 이렇듯 수많은 수용체 세포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진화론적 역사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피부에 대해 탐구할 때는 ‘털’이라는 주제가 빠질 수 없다. 인간에게 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가진 털의 양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아득한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최초의 온혈동물 선조들이나 인간의 사촌들에게서 일어난 피부의 진화를 살펴보면 털을 둘러싼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포유류와 조류의 선조들은 온혈동물로 진화했는데, 이러한 발전을 가져온 중요한 변화들 중 하나는 바로 신체 표면에 훌륭한 외단열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난방비를 많이 지출하지 않고 집을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벽을 좋은 단열재로 만들어야 한다. 몸이 따뜻하면 하루 종일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에너지 소비의 엄청난 증가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원시 조류 및 원시 포유류의 고대 생리학적 경제에서는 에너지 비용을 억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따라서 동물들은 먹이를 찾고 섭취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여하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털이나 깃털 같은 단열재의 장착이라는 복잡한 발전 과정을 통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포유류와 조류의 선조는 각각 털과 깃털이 자랄 수 있는 모낭을 가지고 있었다. 모낭에는 피부에서 털이나 깃털이 자라나게끔 하는 일련의 특별한 생식세포들이 있다.9 이러한 세포들은 표피에만 존재하는 줄기세포의 한 유형이며 모낭을 유지하고 털 성장주기를 조절한다. 포유류의 모낭은 조류의 그것과 다르며, 포유류 사이에서도 여러 다른 유형의 모낭이 있다. 특이한 것은 가장 특화된 모낭 중 하나가 젖샘이라는 사실이다. 포유류에서 젖샘은 흉벽胸壁에 있는 매우 특수한 모낭 내에서 분기해 나와 환상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코일처럼 배열된 젖샘은 적절한 호르몬 신호를 받아서 젖을 만들어낸다. 젖샘은 기존의 구조를 활용하여 새로운 것으로 진화한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개조된 모낭이 포유류 새끼들을 양육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발전한 경우다.
인간의 경우 진피에 위치한 모낭들로부터 많은 털이 자란다. 실제로 인간의 몸에는 원숭이만큼이나 많은 털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털은 훨씬 가늘며, 털이 거의 보이지 않는 부위도 있다. 인간의 피부에서도 모낭은 중요한 조직이며 복잡한 감각수용체 및 피지샘들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이 더 이상 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낭은 피부 내부 조직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고양이와 쥐의 씰룩거리는 콧수염은 ‘촉모觸毛 vibrissae’라 불리는 고도로 특화된 털로서, 모낭에 신경수용체(앞에서 언급한 메르켈세포)가 많이 분포해서 콧수염에 닿는 대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뇌에 전달해준다. 인간 및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들은 코 밑에 촉모가 없지만,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매우 뛰어난 감각의 손을 가지고 있다.
포유동물에게서 털은 광범위한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은 자신의 털에 굉장한 관심을 기울일 뿐 아니라 아낌없이 비용을 지출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생존하는 데는 다른 종들에 비해 덜 중요하다. 대부분의 종들에게서 털은 단열재 역할을 하고, 태양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 역할을 하며, 촉각을 향상시키는 기능을 하고, 장식 기능을 하며, 감정을 전달하는 기능도 한다. 인간은 털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다른 종들에게서는 비교적 흔한 일이다. 이를테면 화가 났거나 겁을 먹었거나 흥분했을 때 털을 곤두세움으로써 자신의 몸을 더 크고 위협적이게 보이도록 만든다.
입모(立毛, piloerection). 말 그대로 ‘털을 곤두세우는’ 반응으로, 흥분하거나 분노한 포유류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리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는 한 침팬지가 자신의 동료를 위협하고 있다. Photograph ⓒ Frans de Waal |
인간이 몸에서 털을 잃음으로써 생겨난 흥미로운 결과 중 하나는 바로 털을 곤두세우는 매우 시각적인 방법으로 분노, 흥분, 공포 같은 감정을 전달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머리털이 곤두섰다”라든지 “머리끝이 쭈뼛해졌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무서운 상황을 표현하곤 한다. 또 누가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짜증나게 하면 그 사람에게 “머리털 끝까지 화가 치민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실제로 몸의 털이 일어서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에게 있는 약간의 ‘입모근’ 덕분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반응을 시각적으로 관찰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우리는 이처럼 중요한 감정들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전달할까? 이는 인간 진화에서 실로 엄청나고 중요한 이야기다. 우리 몸을 덮고 있는 털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게 되자, 인간은 감정을 전달하는 매우 시각적인 수단을 찾아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야 했다. 그 해결책 중 하나가 다양한 얼굴 표정이었다. 인간의 얼굴 표정은 동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하다.10 우리는 매우 민감한 얼굴 표정을 이용해서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관한 정보를 미세한 뉘앙스까지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얼굴 표정을 통해 우리는 없어진 털을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들을 개발할 수 있었다.
1. 털이 많은 다른 포유류 친척들의 피부와 인간 피부 사이의 중요한 해부학적 차이는 피부생물학자 윌리엄 몬타냐(William Montagna)의 유명한 논문들에서 가장 먼저 논의되었다. 그는 인간의 피부가 가진 강한 탄력성과 마모 저항성 및 발한 능력 등에 주목했다(Montagna 1981).
2. 표피의 두께는 신체 표면 부위에 따라 0.4~1.5밀리미터 범위에서 약간씩 차이가 난다(Chu et al. 2003).
3. 여러 형태의 산화성 스트레스에 관한 논의는 엘리어스(Elias), 페인골드(Feingold), 플러(Fluhr)의 2003년 논문 참조.
4. 자외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각질층이 두꺼워지는 현상은 짙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 혹은 햇빛에 장시간 노출시켜 피부를 짙게 태운 사람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Taylor 2002).
5. 피터 엘리어스(Peter Elias) 등 연구진은 표피의 물리적·생화학적 특성을 상세히 연구해 우수한 논문과 서적을 많이 발표했다. 좀 더 상세히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엘리어스, 페인골드, 플러의 2003년 논문을 비롯해 이들의 연구 결과를 읽어보길 권한다.
6. 몬타냐는 인간 피부의 표피가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장벽 기능은 오직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특성 가운데 하나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침팬지 유전자의 염기배열이 분석되고, 침팬지 피부와는 다른 인간 피부만의 독특한 기능복합체가 발견됨으로써 그의 가장 중요한 가설이 입증되었다(Chimpanzee Sequencing and Analysis Consortium 2005).
7.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표피와 진피를 합친 피부 전체의 두께는 1.5~4.0밀리미터 범위에 있다(Chu et al. 2003).
8. 부드러운 가죽은 태닝된 표피와 진피 모두로 구성되지만 스웨이드가죽은 표피의 일부 혹은 전부를 제거한 피부로 구성된다. 양피지(羊皮紙)는 송아지, 양, 그리고 새끼염소의 피부를 펼쳐 말리고 가공하여 만든다. 생가죽은 이름 그대로 태닝되지 않은 피부다.
9. 오늘날 진화발생생물학(진화생물학과 발생생물학이 융합한 학문으로 영문 첫 글자들을 따서 ‘이보디보Evo-Devo’라 부른다) 영역에서는 동물의 외피가 지닌 중요한 특성들(각질층, 털, 깃털 등)에 관한 유전학적 토대를 연구함으로써 척추동물의 피부 진화에 관한 새로운 지식들이 쌓이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한 보다 상세한 정보는 우핑 등 여러 학자들이 2004년 《발생생물학 국제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Developmental Biology》에 게재한 논문들을 참조하라.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털의 모낭과 깃털의 모낭은 순환적 재생이 가능한 특성을 공유하지만, 2억2500만 년에서 1억5500만 년 전 사이에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했다(Yue et al. 2005).
10. 찰스 다윈은 인간의 얼굴 표정이 지닌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간의 표정과 동물의 표정 사이에 유사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인간 얼굴 표정의 진화 및 그 사회적 의미에 관한 다윈의 연구는 폴 에크먼(Paul Ekman)과 그의 제자들의 연구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그들의 연구를 토대로 한 것이다(Ekman 1998, 2003).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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