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이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2009년경이었다. 꽤 오랫동안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사회운동을 해왔지만 막상 내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기회가 없었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구성과 내용을 결정하는 데는 나 개인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요인이 작용했다. 그것은 부동산 문제에 관한 논의의 혼란상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2002년경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이 최대의 화두로 부각된 이후 소위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두고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너무도 자신 있게 그리고 줄기차게 외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제는 그들의 주장 속에 일리 있는 것도 있었지만 터무니없는 내용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중에는 노무현 정부 당시에 기득권층과 보수 언론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서 급성장한 자칭 ‘시장주의자’들(이들은 시장 만능주의자 혹은 시장 근본주의자라 불러야 마땅하다)이 있다. 그들은 투기의 해악을 부정하고, 불로소득의 환수에 반대하고,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 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모두 정당하고, 정부가 현실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는 것이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생각이다.
한편 그들의 반대편에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집값이나 전세금이 오르는 것은 정부가 잘못 대처했기 때문이고 그럴 때는 무조건 정부가 직접 나서서 집값과 전세금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온 사람들이 있다.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좌파 인사들도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정부개입 만능주의자’ 혹은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시장 만능주의자들이 현실의 부동산 시장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들은 시장원리(즉, 수요-공급의 법칙) 자체를 불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집값과 전세금을 끌어올릴 수 있고,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집값과 전세금을 직접 끌어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경제학 이론을 중시하며 시장원리를 강조하지만, 사실은 이론과 시장원리의 이름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동산 시장을 분석할 때 의존하는 이론에 근본적 오류가 있고 그런 이론이 탄생한 데는 특별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한편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여 이론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이론 없는 운동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기 쉽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요컨대 전자는 잘못된 이론으로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고, 후자는 이론 자체를 무시한다. 결국 이론이 문제다.
문제투성이의 주장들임에도 시장 만능주의자와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는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자는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자들, 그리고 강남 지역 부동산 소유자들 같은 기득권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후자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데 익숙한 일반 시민들의 정서에 부합하는지 그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기득권층과 일반 시민들의 지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과 정부는 시장 만능주의와 가격규제 만능주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경향을 보인다. 게다가 부동산 투자 전문가들까지 가세해서 시민들의 판단을 흐린다. 이들은 애당초 정확한 시장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무조건 부동산 시장에 자금을 끌어들이는 일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다. 상황이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지식인들이 나서서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텐데, 요즈음은 그런 지식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경제적 이익도 없고, 인기도 얻기 어렵고, 더구나 자칫 잘못하면 기득권층으로부터 탄압을 받거나 시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하는 괴로운 일을 감당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지식인들의 무관심과 침묵은 사회가 내부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음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징후인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보이고 있으니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어떤 문제건 올바로 인식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이론에 기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론이 없거나 잘못된 이론에 기댈 경우, 진단도 잘못되고 처방도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기대고 있는 이론이 오랜 세월의 검토를 거치는 동안 타당성이 증명된 이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한 이래 경제학에서 수요-공급의 법칙이나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 같은 것은 도저히 부정하기 어려운 진리의 반열에 올랐다. 이런 개념을 가지고 토지와 부동산을 분석하고 대안을 말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절대로 잘못될 수 없다는 것이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수요-공급의 법칙이나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자신들이 신봉하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성립과정에서 매우 중대한 왜곡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사실 시장주의 혹은 자유방임주의의 원조인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시장 만능주의자들과는 무척 다른 토지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고전학파의 토지이론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꾸며서 시장 만능주의자들 앞에 내놓을 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하다. 짐작건대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단번에 그것을 반反시장적인 이론으로 규정지을 것 같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토지가 다른 자원이나 일반 재화와는 매우 다른 물건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토지시장의 동향이 경제의 다른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는 소득(지대)이 어떤 성질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토지를 절대적?배타적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며 지대소득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무겁게 과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형성되고 있던 19세기 후반에 미국에서는 헨리 조지Henry George라는 걸출한 경제학자가 등장하여 고전학파의 토지이론을 완성했다. 헨리 조지는 당시 영미권에서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에 버금가는 영향력이 있었다.
메이슨 개프니Mason Gaffney에 의하면, 헨리 조지의 엄청난 영향력에 위협을 느낀 미국의 지주 세력이 당시 엘리트로 꼽히던 경제학자들을 고용해서 헨리 조지 경제학을 무너뜨리는 작전을 전개했다. J. B. 클라크Clark, E. R. A. 셀리그먼Seligman, R. T. 일리Ely, 프랜시스 워커Francis A. Walker,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 등이 그때 동원되었던 경제학자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바로 미국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아버지들이라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클라크는 헨리 조지 경제학을 논파하기 위해 책을 무려 24권이나 썼다고 하니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만하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자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여 토지와 자본의 차이를 흐릿하게 만들고 양자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다른 경제학자들도 클라크와 마찬가지로 토지와 자본의 차이, 지대소득과 다른 소득의 차이를 제거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의 끈질긴 노력은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더 이상 토지는 특별히 구별해서 다루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고, 토지이론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사라져버렸다. 미국에서 신고전학파의 성립과정은 바로 주류 경제학에서 토지가 빠지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토지문제에 관한 한 자기 아버지(신고전학파)가 할아버지(고전학파)를 배반하고 엉터리 이론을 만든 줄도 모른 채 아버지의 주장이 시장주의의 전범典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하지만 토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전범이 되어야 할 것은 고전학파와 헨리 조지의 경제학이다. 토지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중시하는 고전학파와 헨리 조지의 시각이 복원되지 않는다면 시장주의가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 만능주의자들과는 달리,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들의 경우 이론이 아예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의 눈에는 가격을 부당하게 올리는 나쁜 사람들만 보인다. 그리고 그런 나쁜 사람들을 그냥 방치하는 나쁜 정부만 보인다. 그래서인지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들은 가격을 부당하게 끌어올리는 사람들의 나쁜 짓을 적발하고 폭로하는 일에 전력全力을 기울인다. 정부더러는 가격 상한을 설정해서 이런 나쁜 짓을 막으라고 요구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값싼 주택을 공급하여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학원론 교과서만 읽어보더라도, 가격이란 나쁜 사람의 마음대로 올리고 내리고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인위적인 가격 통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고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들이 이론 없이 자신들의 경험과 피상적인 현상 인식만 가지고 엉터리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이들의 주장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시장 만능주의자들이 경제학이론을 앞세워서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바람에,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들의 유치한 주장이 도리어 힘을 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장 만능주의자들 같은 이데올로그ideologue들과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들 같은 선동가들이 부동산의 진실을 왜곡하여 시민과 정치인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올바른 정책이 실시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일반 시민들이 부동산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이들의 왜곡과 선동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이 책의 내용을 구상하고 집필한 목적은 토지와 부동산에 관한 올바른 이론과 정책 대안을 정리하고 소개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부동산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데 있다.
1부에서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토지를 무시하게 된 배경, 일반 재화나 자본을 다루는 데 사용되는 경제이론을 토지와 부동산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 토지의 특수성, 지대와 지가의 결정원리, 토지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설명한다. 토지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토지이론을 올바로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1부의 기본 문제의식이다.
2부에서는 부동산 투기가 발생하고 소멸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투기의 해악과 대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막상 그것이 왜 발생하고 또 소멸하는지 이론적으로 해명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이유, 투기와 거품을 유발하는 원인, 거품의 붕괴를 야기하는 내적 요인, 그리고 거품의 형성과 붕괴boom and bust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요인 등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함으로써 ‘투기의 경제학’을 구축해보고자 한다.
3부에서는 토지공개념의 원조라고 불리며 노태우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던 헨리 조지의 토지이론을 소개하고 그것의 정정訂正을 시도한다. 토지이론과 부동산 정책에 관한 논의에서 헨리 조지의 이론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그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헨리 조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과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 나는 시장친화적인 방법으로 토지의 공공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헨리 조지의 정신에는 완전히 공감하지만, 그의 이론 가운데 적지 않은 오류와 논리적 결함이 들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오류와 결함을 수정하는 동시에 현대 경제에 적합한 형태로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3부를 집필했다.
4부에서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소개한 이론을 바탕으로 올바른 부동산 정책의 조건을 제시한다. 이 조건에 비추어 전두환 정부에서부터 현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각 정부가 실시한 부동산 정책들을 평가하고 많은 시민과 정치인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잘못된 정책 대안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한다.
5부에서는 다음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펼쳐야 할지 주요 정책 과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정책 제안의 대상을 진보개혁 정부로 한정하는데, 그 이유는 수년간 토지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의 보수 정치 세력은 헨리 조지 식 정책 대안을 수용할 만한 그릇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헨리 조지는 “(경제문제에 관한 잘못된 견해들이: 인용자) 고통을 예민하게 느끼고 부조리를 예리하게 의식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정치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인 국민 대중을 자칫 사이비 지도자 내지 선동가의 지배하에 둘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정치경제학 이론에 부합하면서 일반 대중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독자들이 이 책에서 그런 해답의 일부라도 발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에는 토지정책학회(구 헨리조지연구회)나 부동산연구회 멤버들과의 토론, 토지정의 운동 관계자들과의 교류, 시장 만능주의자들과 가격규제 만능주의자들과의 논쟁 등을 통해 숙성되고 정리된 생각들이 많이 녹아 있다. 일일이 거명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이런저런 모양으로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중략)
2012년 3월 전강수
01
현대 경제학의 미스터리
왜 경제학자들은 토지를 무시하게 되었을까?
경제학원론을 수강한 적이 있는 학생들에게 생산의 3요소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바로 “토지, 노동, 자본이요!”라고 대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경제학원론 교과서가 초반부에 토지, 노동, 자본이 생산의 3요소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원론 교과서는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의 『경제학』Economics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책에서 새뮤얼슨은 경제문제를 세 가지로 요약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문제는 모두 생산요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생산요소를 어느 분야에 얼마만큼씩 배분하여 생산물을 생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두 번째는 생산요소를 어떤 방법으로 결합하여 생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세 번째는 생산물을 생산요소 제공자들에게 어떻게 귀속시킬 것인가(즉,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토지가 생산의 3요소 중 하나고 3대 경제문제가 모두 생산요소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면, 경제학 책들이 토지를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원론 교과서들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초반부에 분명히 토지를 생산의 3요소라고 해놓고는, 조금 뒤 기업의 생산함수를 다루는 부분에 가서는 슬그머니 토지를 빼버린다. 생산량은 토지와 노동과 자본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야 함에도, 노동과 자본의 양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해버리는 것이다. 왜 토지를 제외하는지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분배이론을 다루는 부분에서 한두 페이지 정도 언급하는 것을 제외하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토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경제학원론 교과서라서 초보적인 내용만 다루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학원론보다 좀더 심화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교과서들을 보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재정학, 화폐금융론, 경제정책론 등 주요 경제학 각론 교과서에서도 토지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학 전체 체계에서 토지가 실종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지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토지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있고 거기서는 분명히 토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이 분야는 경제학에서 일개 변두리 분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전공하는 학자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소수일 뿐 아니라 대학 강단에서도 소홀하게 취급된다. 대학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도 토지경제학을 한 번도 수강하지 않은 채 졸업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토지를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토지를 전체 경제의 틀 속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따로 떼어내서 그것만 미시적으로 다루고 끝내는 것이다. 토지경제학 분야에서 토지와 임금, 토지와 금리, 토지와 빈곤, 토지와 고용 등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는 드물다. 어찌 보면 지금의 토지경제학은 토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토지를 칸막이 안에 가두어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토지는 현실 경제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왜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거나, 아니면 토지경제학이라는 조그만 변두리 영역 안에 가두어놓고는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일까? 현실 경제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무시할 경우 분석의 설명력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한데도 말이다.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경제학자들이 처음부터 토지를 무시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등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토지의 특수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각자 나름대로 토지가치가 소득분배나 거시경제의 변동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고전학파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던 19세기 후반에도 미국에서 헨리 조지라는 걸출한 경제학자가 등장하여, 토지가치의 변화로 진보 속의 빈곤을 설명하고 토지 투기로 불황을 설명하는 토지 중심의 경제학을 가지고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1879년에 출간된 그의 책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은 19세기 말까지 나온 영어로 쓰인 논픽션 분야의 책 가운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었고, 경제학 책만 가지고 따지면 지금까지 최고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헨리 조지의 이론은 그의 사후 1920년경까지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부터 90년 전까지만 해도(즉,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1776년 이후 140여 년 동안은) 토지를 중시하는 지적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셈이다.
토지가 경제학 체계에서 빠져버린 것은 헨리 조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초기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때문이다. 1870년대 초에 K. 멩거Menger, W. S. 제본스Jevons, L. 발라Walras 3인이 한계효용 이론을 주창한 것을 계기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영국에서는 A. 마셜Marshall과 A. C. 피구Pigou 등이, 미국에서는 클라크, 셀리그먼, 일리 등이 고전학파의 자유방임주의, 생산비 가치론과 한계효용 이론을 결합하여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성립시켰다. 이때 성립한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바로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의 대학들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주류 경제학의 뿌리다.
클라크는 미국 신고전학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오늘날 그를 기리는 클라크상이 미국에서 노벨경제학상에 버금가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미국 경제학계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클라크가 한계생산력설을 만들고 초기 미국 신고전학파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가 경제학에서 토지를 빼버리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가 토지를 누락시키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자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여 토지와 자본의 차이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기계, 건물, 원료 등과 같이 생산을 돕기 위해 투입되는 생산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던 자본을, 클라크는 이런저런 물건들로 형태 전환할 수 있는 비물질적인 실체로 정의했다. 그에 의하면 자본은 올해는 기계의 형태를 취하다가 내년에는 건물, 내후년에는 토지 등으로 얼마든지 형태 전환을 할 수 있다. 자본을 여러 사람의 몸을 들락날락하는 일종의 영적 실체처럼 취급한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클라크의 자본을 ‘젤리 자본’jelly capital 혹은 ‘플라스틱 자본’plastic capital이라고 부른다. 자본을 이렇게 정의하고 나면 자연적으로 자본과 토지의 차이는 무의미해진다. 실제로 그의 자본 개념이 나온 이후 경제학자들은 점점 토지를 자본의 한 형태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결국 경제학의 무대에는 토지는 사라지고 노동과 자본만 남게 되었다.
클라크가 만든 한계생산력설도 토지와 자본 사이의 벽을 허무는 데 일조했다(한계생산력설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 한계생산력설에 의하면, 생산요소에 대한 대가는 그 생산요소의 마지막 단위가 만드는 생산물(한계생산)의 가치를 반영한다. 즉, 임금은 노동의 한계생산 가치를 반영하고, 이자는 자본의 한계생산 가치를 반영하며, 지대는 토지의 한계생산 가치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 생산요소에 대한 대가가 모두 동일한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세 가지 생산요소가 동질적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클라크는 그렇게 이해해서 한계생산력설을 토지와 자본의 벽을 허무는 도구로 활용했다. 더욱이 그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임금이나 이자가 불로소득이 아닌 것처럼 지대도 불로소득이 아니라는 사실을 논증하는 데 한계생산력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지대가 토지의 생산성에 대한 정당한 대가임을 입증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관심사였던 것이다.
클라크는 물질적 실체임이 분명한 자본을 가지고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한 것일까? 그는 왜 그렇게 토지와 자본의 벽을 허물고 지대와 다른 소득의 질적 차이를 제거하려고 노력한 것일까? 어떤 학문의 발전이 개념이나 논리 같은 학문적 요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해관계나 권력과 같은 학문 외적 요인이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개프니에 의하면, 미국 신고전학파의 형성과정에 바로 그런 학문 외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했다. 클라크의 주된 관심은 고전학파 경제학의 논리적 오류를 바로잡아 경제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주 세력을 위협하고 있던 헨리 조지의 이론을 무너뜨리는 데 있었다.
클라크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1895년에 콜롬비아 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에서 그는 셀리그먼과 함께 헨리 조지 비판에 몰두했다. 그는 1886∼1914년 사이에 헨리 조지를 비판하는 책을 무려 24권이나 썼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대표적인 이론인 한계생산력설은 헨리 조지의 임금이론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이론이라고 클라크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클라크를 경제학 교수로 뽑은 사람은 부유한 실크 수입업자이자 지주였으며 당시 콜럼비아 대학교 총장이었던 세스 로Seth Low였다. 1895년에 로는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는데 그의 유력 상대가 바로 헨리 조지였다. 클라크를 영입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당시 콜럼비아 대학교 외에도 존스 홉킨스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등이 반反헨리 조지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대학교들 모두가 클라크를 영입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고 한다. 이 대학교들의 설립과 발전에 지주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클라크와 함께 헨리 조지 비판에 앞장섰던 미국의 신고전학파로는 셀리그먼 외에도, 미국 경제학회 초대 회장과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MIT 총장을 역임한 프랜시스 워커와 존스 홉킨스 대학교 경제학 교수로서 토지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일리를 들 수 있다. 시카고학파를 창시했던 프랭크 나이트가 그들의 뒤를 이었다. 헨리 조지를 비판하기 위해 클라크, 셀리그먼, 워커, 일리, 나이트 등이 한결같이 동원했던 방법은 토지와 자본의 차이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미국의 경제학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그들은 많은 책과 논문을 집필하고 많은 제자들을 양성함으로써 토지를 무시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발전과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니까 오늘날 수많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토지가 무시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문이 특권층의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아 왜곡되는 경우 학자들은 각광을 받고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학문 자체는 처량한 처지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니까 오늘날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현실 경제와 유리되어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없는 처량한 처지에 빠진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들어가는 말,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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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전강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부동산 투기의 종말』, 『부동산 신화는 없다』(공저), 『위기의 부동산』(공저), 『헨리 조지, 100년만에 다시 보다』(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희년의 경제학』, 『부동산 권력』(공역), 『현대 경제학과 청지기윤리』(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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