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보험회사의 속내,
그리고 새로운 선택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99%는 불안하다. 5대 민생고라 불리는 교육, 육아, 주택, 의료, 노후 문제로 다들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 책은 5대 불안 요인 중에서 의료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의료비를 전부 해결해주지 못하다 보니 가족이 큰 병에 걸리면 가정 경제가 휘청거리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가 알아서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들 암보험, 각종 질병보험, 실손 보험을 하나씩 들어놓는다. 보험에 가입해 놓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보험회사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현재 가구당 1년에 민간 의료보험비로 지출하는 돈이 무려 240만 원이다.
하지만 민간 의료보험은 절대 당신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보험에 들어 두면 심리적으로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현실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보험 상품의 구성과 보험회사의 속내를 알고 나면 민간 보험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암보험은 민간 의료보험을 대표하는 상품이다. 평생에 걸쳐 셋 중 한 명은 암에 걸린다고 하니 누구나 암보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암에 걸리면 수천만 원을 보장해준다고 하고, 보험료도 저렴한 편이다. 젊은 사람의 경우 보험료가 2~4만 원 정도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부담되지 않는 돈이다.
그런데 저렴하게 ‘보이는’ 보험료의 이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다. 암보험으로 보험회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익을 보고 있다. ‘저렴한’ 보험료 중 보험회사의 몫은 절반 이상이다.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40%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암보험 상품의 지급률을 계산해보고 깜짝 놀랐다. 보험회사가 너무 많이 챙겨먹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험 가입자 중에 매달 꼬박꼬박 내는 보험료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암에 걸리면 보장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돌아오는 혜택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보험회사는 또 다른 상품을 만들어낸다. 병에 걸리면 보장을 받고, 보장받지 못할 때는 낸 보험료를 고스란히 되돌려준다는 ‘만기환급형’ 상품이다. 그런데 만기환급형은 순수보장형보다 훨씬 나쁜 보험이다. 나중에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가입자를 두 번 등쳐먹는다. 이에 대해 본문에서 자세하게 분석을 해놓았다.
의료비로 쓴 돈을 모두 보상해주는 실손형 의료보험(흔히 실비 보험이라 한다)을 보자. 지난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실비보험료가 세 번 갱신 만에 3배로 껑충 뛰었다. 실비보험은 3년마다 매번 갱신해야 하고 갱신 시마다 매번 보험료가 인상된다. 그런데 그 인상폭이 매우 가파르다. 40세 남성이 평균 수명인 78세까지 보장받으려면 12번을 갱신해야 한다. 세 번 갱신 만에 3배가 올랐다면, 12번 갱신하면 이론적으로 81배가 된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보험료는 급격히 증가하는데, 노후가 되면 은퇴 시점이라 소득이 없다. 소득이 없으니 비싼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어 해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처럼 보험은 가입자가 정작 필요로 할 때 외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의료보험은 나날이 팽창하고 있다. 이제 건강보험마저 집어 삼키려 하고 있다. 그간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보다는 민간의료보험에 집중하는 정책을 구사해왔다. 민간 의료보험 중에서도 실손형 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과는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이 높아지면, 실손형 의료보험은 위축된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국민건강보험이 위축될수록 민간 의료보험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한미 FTA는 민간 의료보험을 한층 도약시켜줄 것으로 보험회사는 기대한다.
민간 의료보험이 활개를 치고, 국민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될 경우, 우리의 미래는 너무도 끔찍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미국을 닮아 갈 것이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미국식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 중 전 국민 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국가다. 실제로 미국에서 맹장 수술을 받으려면 수술비가 1~2천만 원에 달한다. 이것은 결코 괴담이 아니다. 가구당 민간 의료보험료는 1만 3,375달러다. 전 국민의 15%가 보험이 없다. 파산자 중 62%가 비싼 의료비 때문에 파산한다고 한다. 의료비는 가장 많이 쓰고 있는데도 미국인의 건강수준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문다. 미국이 천문학적 의료비를 쓸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병원과 보험이 환자의 생명보다는 영리를 추구하도록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식 의료제도는 우리가 절대로 가서는 안 될 모델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권력자들은 미국식 의료제도를 도입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하다.
민간 의료보험은 절대로 우리의 의료 불안을 해결해 줄 수 없다. 오히려 이중의 부담만 안겨준다. 건강보험이 보장해주지 못하는 의료비를 떠안으면서 동시에 민간 의료보험까지 부담해야 하니 말이다. 입원한 노인 환자의 진료비 중 78%를 자식이 부담한다고 한다. 의료비는 대부분 65세 이상에서 발생하는데, 그 나이가 되면 실비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고 소득도 없다. 젊은 세대는 자녀와 자신의 민간 의료보험료를 부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부모의 의료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의료 불안을 해결하는 길은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는 것이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이 해결해준다면 젊은 세대는 부모의 의료비를 부담할 필요가 없으며, 실비보험과 같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지출이 줄게 되므로 가계의 실질소득은 증가한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원을 확충해야 한다. 재원을 확충하려면 국민과 사업주, 국가가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보험료를 올리자는 데 선뜻 동의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건강보험료를 올려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의 재원은 국민과 사업주, 그리고 국가가 대략 55:30:15 정도로 부담한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험료의 절반을 사업주가 부담해준다.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1만 원 늘리면, 1만 원만큼 본인부담이 줄어든다. 대신에 건강보험료로 1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이때 1만 원을 다 낼 필요가 없다. 국민은 건강보험료로 5,500원만 내면 된다. 나머지는 사업주와 국가가 부담한다. 그러니 건강보험의 재정을 늘리는 것이 국민에게 유리하다.
반면 민간 의료보험은 전적으로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민간 의료보험료로 낸 1만 원 중에 가입자에게 돌아오는 몫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건강보험은 관리비가 3%밖에 되지 않아 확충된 재정이 모두 국민에게 되돌아온다.
건강보험은 가장이 가입해 있으면, 온가족이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혜택을 본다. 반면 민간 의료보험은 개별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보험회사는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노인층은 아예 받아주지 않는다.
건강보험이 더 유리한 것은 소득에 정률로 부과하므로, 소득이 많으면 많은 만큼, 적으면 적은 만큼 부담한다. 급여 혜택은 필요한 만큼 받는다. 건강보험은 민간 보험처럼 폭리를 취하지도 않고, 횡포를 부리지도 않는다. 사람의 건강에 등급을 매기지도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나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뿐이다.
물론 국민건강보험의 재원 구조가 가진 문제가 없진 않다. 바로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이다.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근로소득에만 부과하는 허점을 악용하여 종합소득이 많은 사람이 직장가입자로 편입하여 보험료를 일반 직장인보다 적게 내기도 한다. 또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에 비해 보험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이런 문제점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보수 정치권은 무상의료를 하게 되면 최소 30조에서 54조가 소요되며, 이는 국민에게 엄청난 세금과 건강보험료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주로 전해주는 바람에 건강보험 보장을 늘리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한마디로 사기다. 그들이 이처럼 허위 주장을 하는 이유는 건강보험의 보장을 늘리는 데 반대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업주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 그러니 친재벌 친기업을 표방하는 정부가 반대할 수밖에 없다. 또 국가의 부담도 늘어나는데, 소위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모피아 관료들이 강력히 반대한다. 복지는 국가가 아닌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신념이다.
건강보험으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게 되면, 민간 의료보험이 필요 없게 되어 삼성생명과 같은 보험회사들의 매출이 줄어든다. 민간 보험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재벌이 정부와 의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에 틀림없다.
민간 보험이냐, 국민건강보험이냐.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업과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정당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필자가 함께 해온 단체가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고, 대부분 그때 쓴 글을 일부 교정한 것임을 밝힌다.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게 된 진보신당 건강위원회 동지들, 그리고 지금 함께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활동가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족한 내 글에 대해 날카로운 조언과 교정을 해준 후배 은상준 박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여러 달 동안 책 쓰는 일에만 매달리느라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장
당신의 불안,
보험 가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암보험에 드느니
로또를 사라
큰 병에 걸리면 여러 가지로 살기가 힘들어진다. 몸 아픈 것도 서러운데 막대한 의료비까지 감당해야 하니 말이다.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아쉽게도 국민건강보험만으로는 불안하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은 의료비의 60% 정도를 보장해주고 있다. 나머지 40%는 각자 감당해야 한다. 입원을 하면 동네 의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을 때보다 의료비가 훨씬 더 나온다. 그런데 입원에 대한 보장률은 55% 정도에 불과하다. 가족이 중병에라도 걸리면 기둥뿌리 한 개 정도 안 뽑힐 집이 없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이 암보험이니 실비보험이니 하는 민간 의료보험에 의지한다. 특히 암은 치료비가 수백에서 수천만 원이 필요한 질병이다. 암에 걸리면 중산층이 하루아침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은 암으로 가장 많이 사망한다. 사망자 3명에 1명꼴이다.
이처럼 암은 의료비 부담이 엄청나고,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아 보험 상품을 사려는 사람도 많다. 민간 보험회사 입장에서 암보험은 돈이 되는 시장이다. 민간 보험회사가 암보험 상품을 우후죽순처럼 내놓고, 또 암보험이 불티나게 팔리는 데는 이런 까닭이 있다.
암보험은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민간 의료보험을 대표하는 보험 상품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의하면 2010년 현재 우리 국민의 절반이 넘는 56%가 암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국민이 의료비 불안을 덜기 위해 암보험에 가입했지만, 내가 내는 보험료가 적당한지, 실제로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따져보는 목소리는 없다. 암보험 가입자는 보험회사가 손해 본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인상해도 ‘보험료가 또 올랐네’ 하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내가 내는 보험료가 적당한지 따져보고 싶어도 보험회사마다 보험료도 다르고 혜택도 달라 비교하기가 어렵다. 보험 계약 때 받은 두꺼운 보험 약관은 쳐다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
사실 적당한 보험료가 얼마인지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구성이 워낙 복잡하여 보험 상품을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보험계리사가 아니면 웬만한 전문가들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어떤 보험 상품의 보험료가 제대로 책정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민간 의료보험 상품의 보험료가 적정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내가 낸 보험료에서 나중에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알면 된다. 이를 지급률이라고 한다. 지급률은 보험회사가 보험료로 받은 돈에서 가입자에게 되돌려 주는 비율을 나타낸다. 예로 보험회사가 보험료로 1억을 거두어 이 중 5천만 원이 보험료로 지급되었다면, 지급률은 50%가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부분의 민간 의료보험 지급률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암보험은 예외다. 암보험은 상품 구성이 매우 단순하기 때문이다. 내가 암에 걸릴 확률과 납부하고 있는 보험료를 안다면, 간단히 계산할 수 있다.
암보험 지급률 = (암에 걸릴 확률 × 암에 걸렸을 때 받을 보험금) ÷ 납부한 보험료
여기서 모르는 것은 암에 걸릴 확률이다. 이 확률만 알 수 있으면 내가 가입한 암보험 상품의 지급률을 알 수 있다.
당첨 확률이 미리 정해져 있는 로또 복권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이 로또 복권을 한 장 산다고 하자. 당신이 당첨될 확률은 얼마일까. 당신이 구입한 1,000원짜리 로또 복권의 당첨금은 얼마일까. 로또의 원리상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이다. 이론적으로 814만 장(81.4억 원어치)의 로또를 사면 1등부터 5등까지 모두 당첨될 수 있다. 로또 당첨금은 전체 판매액의 50%이다. 이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1등은 당첨금의 75%(전체 판매액의 37.5%)를 가져간다.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81억 원을 쓰면 1등, 2등, 3등에 모두 당첨되겠지만, 전체 당첨금은 4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당첨금 40억 원으로 다시 로또를 산다고 치자. 당첨금은 40억 원의 50%이므로, 20억 원이다. 이를 무한히 반복하면 당신에게는 한 푼도 남지 않는다. 이것이 로또와 같은 복권의 일반적 원리이다.
이런 계산법을 이용하면 암보험의 지급률, 즉 나의 기대수익률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암보험 상품의 보험료가 적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매년 암 발생률, 즉 우리나라 인구 전체에서 매년 암 환자가 새로 얼마나 생기는지에 대한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예전에 진보신당의 건강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암 발생 등록 자료를 이용하여 각 보험사 암보험 상품의 지급률을 계산해본 적이 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암보험으로 1만 원을 내면 기껏 3~4천 원 정도를 가입자에게 돌려주어 지급률이 30~4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믿기가 어려웠다. 보험회사는 개별 상품의 지급률을 공개하진 않지만, 보험회사 전체 지급률을 대략 65~80% 정도로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민간 보험회사들이 암보험으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암보험 상품의 지급률이 로또 복권 지급률보다 못한 것이다. 카지노 슬롯머신보다도 낮다. 카지노 슬롯머신의 경우 전체 배당금이 최소 75%가 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의료비 불안을 해결하고자 믿고 가입한 보험이 사행성 게임의 기대치보다 못하다니!
암보험 지급률은 국민건강보험과 확연하게 비교된다. 국민건강보험에 보험료 1만 원을 내면 1만 6,800원이 돌아온다. 국민건강보험의 지급률은 무려 168%인 것이다. 2008년에 우리 국민은 건강보험료로 15조 5천억 원을 내고 26조 5천억 원의 혜택을 받았다. 암보험 지급률보다 무려 4배나 높은 수치이다.
이제 국민건강보험에 비해 지급률이 형편없이 낮고 로또나 카지노 슬롯머신과 같은 사행성 게임보다도 못한 민간 의료보험의 실상을 낱낱이 밝혀보고자 한다.
암보험, 1만 원 내면
4천 원 돌려준다
여기 홈쇼핑이나 라디오 광고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L생명보험사의 암보험 상품이 하나 있다. 이 보험 상품의 실제 예측 지급률을 분석해보자.
이 암보험 상품에 만 40세 남성 1,000명이 동시에 10년 동안 가입한다고 가정해보자. 40세 남성이 납부하는 월 보험료는 1만 6,200원이다. 보험회사는 가입자가 보험기간 안에 암에 걸리면 4,000만 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한다.
이때 보험회사가 1,000명의 가입자로부터 거둬들이는 총 보험료 수입은 다음과 같다.
보험료 수입 = 1,000명 × 16,200원 × 12개월 × 10년 = 19억 4,400만 원
이제 보험회사가 얼마를 보험금으로 지급할지를 알면 된다. 이 암보험은 암 진단 시 치료비 명목으로 4,000만 원을 지급해준다. 1,000명 중에 10년 동안 몇 명이 암에 걸리게 될까?
이를 알 수 있는 통계자료는 세 가지가 있다. 국립암센터의 암등록 자료, 암발생률 자료, 보험회사의 자체 통계자료인 암발생률 자료이다.
암등록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40세 남성 1,000명 중 10년 동안 19.1명에서 암이 발생한다. 발생률 자료를 적용하면 23.9명, 보험회사 자료를 적용하면 26.4명에서 암이 발생한다(앞에서 암 지급률은 첫 번째인 암등록 자료를 이용한 것이다).
암등록 자료대로 1,000명 중 19.1명에게서 10년 동안 암이 발생한다고 하자. 이제 보험회사가 보험금으로 얼마를 지급할지를 예상할 수 있다. 보험회사는 19.1명에게 4,000만 원씩 보험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다. 보험회사가 10년간 지급해야 할 총 보험료는 다음과 같다.
지급보험금 = 19.1명 × 4,000만 원 = 7억 6,400만 원
이 암보험의 지급률은 다음과 같다.
지급률 = 7억 6,400만 원/19억 4,400만원 = 39.3%
즉, 보험회사는 거둬들인 보험료의 39.3%를 지급한다. 나머지는 모두 보험회사의 몫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낮다. 보험회사는 모든 암에 대해 4,000만 원을 지급하지 않는다.
먼저 암으로 진단이 확정되지 않는 이상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암환자가 아니다. 말기암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 조직검사를 굳이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의사는 암으로 등록을 해주지만 보험사는 암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진단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암 중에서도 갑상선암이나 기타 피부암 등은 10%인 400만 원만 보장해준다. 갑상선암과 기타 피부암은 이 연령대에서 발생되는 암의 15% 정도를 차지한다.
마지막으로 첫 2년 동안에는 50%만 지급해준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지급률은 30%대 중반으로 떨어진다.
19억의 보험료 수입 중에 7억 정도만 가입자에게 보험금으로 돌려주고 12억은 고스란히 보험회사가 가져간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더불어 남은 몫으로 투자를 하여 투자수익까지 추가로 챙길 것이다.
물론 암등록 자료 외에 암발생률 자료와 보험회사의 자료로 계산하면 지급률은 각각 49%, 54%로 조금 높아진다. 여기서도 앞의 각종 단서조항을 감안하면 대략 40%, 45% 정도로 줄어든다.
내가 분석한 보험 상품이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지급률이 이처럼 낮게 나온 것이 아니다. 암보험 상품은 현재 많은 보험사가 판매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암보험 상품 지급률을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데, 다른 보험 상품의 지급률을 분석해 보아도 한결같이 30~40%, 높아봐야 40% 후반에 불과하다.
여기서 암보험 상품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암보험의 원리는 마치 도박과 같다. 도박의 원리는 당첨 확률은 낮추는 대신 당첨 시 배당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암보험 역시 마찬가지다.
40대 성인이 암에 걸릴 확률은 사실 매우 낮다. 10년 동안 1,000명 중 19명, 많게 봐야 24명 정도가 암에 걸린다. 나머지 980여 명은 보험료만 부담한다.
어쨌거나 암 진단을 받은 당사자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 보니 ‘암 진단 시 4천만 원 보장’이라는 광고 문구에 쉽게 현혹된다. 더욱이 한 달에 1만 6,000원 정도라면 기꺼이 부담할 만하다고 여긴다.
보험사는 가입자들이 암에 걸릴 확률을 전혀 모른다는 점, 그리고 암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과도하게 이익을 챙겨가고 있다. 암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와 같은 셈법으로 간단히 계산해보시라.
(여는 글, 1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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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종명
대학 의학과를 졸업하고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정책관리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정의학과 의사로 지방 공공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국민 건강의 향상을 위해서는 의료 기술만이 아니라 의료 정책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 진보신당 건강위원장으로 활동한 데 이어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영위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의료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아 많은 국민들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현실에서 암보험, 실손보험과 같은 민간 의료보험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민간 보험이 아닌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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