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2006년 초 내가 이 책의 초판을 탈고했을 때 미국 경제는 대체로 건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일자리도 꽤 늘어났고 실업률도 감소하고 있었다. 2000∼2002년 사이 바닥까지 폭락했던 주식시장은 거의 회복되어 주가는 다시 최고치로 상승하는 듯했다. 미국인들의 주택 구입이 증가하면서 주택 소유 비율도 최고로 높아졌다. 주택 가격이 유래 없이 상승했다는 사실 역시 다들 경제 회복의 청신호라고 여겼다.
이제는 모두가 다 아는 바지만, 당시 일부에서는 2006년의 주택 가격 상승이 좋은 소식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당시 미국의 주택 가격은 주택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엄청난 거품에 의해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품은 불과 몇 해 전 주식시장에 나타나 기록적인 주가수익률을 주도했었다.
거품은 반드시 꺼지기 마련이다. 주택 시장의 거품 붕괴가 미국 경제와 금융 분야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주택 시장 거품은 과도한 주택 건설을 초래했다. 주택 시장의 거품이 최고 수준에 다다랐던 2005년 당시 주택 건설 부문이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퍼센트가 넘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주택 시장 거품이 붕괴된 2009년 말 2퍼센트 밑으로 하락했다. 이는 6천억 달러가 넘는 연간 생산액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또한 소비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주택 가격이 정점을 찍었던 2006년에서 2011년 말 사이에 주택 시장 거품으로 불어났던 7조 달러 이상의 자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거품으로 자산 가치가 올라갈 당시 미국의 저축률은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수천만 명의 주택 소유자들이 자기 주택의 자산 가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2009년 상반기 들어 저축률이 회복되기 시작해 평균 수준을 넘어섰다. 이러한 저축률 증가는 연간 4천억 달러 이상의 가계 소비지출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경기를 위축시킨 또 다른 원인에는 주택 시장 거품 형성 직후 불어난 상업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있었다. 이 역시 2008년 가을부터 붕괴되기 시작했다. 또한 경기침체로 세입이 부족해진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긴축재정과 증세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연간 수요 감소폭은 1조 2천 억 달러에서 1조 3천억 달러 선이었는데, 이는 미국 GDP의 8퍼센트가 넘는 액수였다. 이 같은 수요 감소는 대공황 이후 가장 가파른 감소세였다.
주택 시장 거품을 인지하고 있던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품 붕괴는 완전히 예측 가능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다수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주택 시장 거품 붕괴는 주요 금융기관의 도산으로 이어져 금융위기를 가져왔으며 거의 모든 금융기관의 생존을 위협했다. 주택 시장 거품 붕괴와 함께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 또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택은 가장 부채가 많이 딸린 자산이기 마련이다. 보통 주택을 구매할 때는 주택 가격의 10∼20퍼센트를 계약금으로 지불한다. 하지만 주택 시장 거품이 한창일 당시 주택 구매자들은 계약금도 없이, 대부분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 거품이 낀 가격의 집을 구매했다. 주택 가격이 떨어지고 주택담보대출의 이자율은 높아진다면 수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채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은행들이 자격이 되지 않는 많은 신청자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렇다고 나아질 건 없었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은행들 자신조차 부채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은 금융권의 위험 요소를 가중시켰다. 특히 증권거래위원회는 투자은행에 대한 부채 상한선을 완화하여 이들이 상업은행에 적용되는 기준보다 세 배 이상 높은 비율의 부채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해줬다.
2008년 가을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부시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는 의회에 긴급 구제책을 요청했다. 미국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구제책은 추진되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가 지급보증을 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지급한 수조 달러의 저리 대출금을 비롯한 긴급 구제책 덕분에 많은 은행들이 수월하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2009년 2/4분기 무렵에는 몇몇 대형 은행들이 다시 건실한 이윤 실적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기업 이윤에서 금융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경기침체 이전에 기록했던 최고 수준을 상회하게 되었다.
금융 분야는 회복세를 보였지만 경제는 그렇지 않았다. 2010년 미국의 실업률은 10퍼센트를 넘어섰는데, 대공황 이후 미국이 두 자릿수 실업률을 보인 것은 이것이 두 번째였다. 이 수치가 더욱 심각한 것은, 과거에 비해 노동 인구의 평균연령이 높아진데다 전형적으로 실업률이 낮은 연령대에 노동 인구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2017년경까지는 정상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백만 명이 주택을 압류당했고, 계속해서 매년 1백만 명이 압류로 주택을 잃고 있다. 게다가 1천 2백만 명 이상의 주택 소유자들이 주택 가치보다 더 많은 부채를 끌어안고 있다. 또한 엄청난 수의 베이비붐 세대가 현재 축적해놓은 재산이 거의 없는 상태로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들이 가진 주택의 자산 가치는 주택 시장 거품 붕괴와 함께 사라졌고, 퇴직계좌의 한정된 자산 역시 시장의 침체와 함께 급락했다. 더욱이 미국 정부가 경기침체에서 비롯된 재정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기에 사회보장제도와 노인의료보험 혜택이 축소되는 위험을 떠안게 되었다. 다시 말해, 미국민 다수의 앞날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러한 파탄을 초래한 당사자들은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이 상황을 피해나가는 듯하다. 월가의 은행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으며,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는 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주택 시장 거품을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거품이 그토록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방관했던 정책결정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높은 직위에 있다. 또한 8조 달러에 이르는 주택 시장 거품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경제학자들이 아직도 경제학 담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경제 최강국 자리를 보전할 수 없게 된 세계정세에 미국이 적응해나가는 데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딘 베이커
서문
역사를 기술하는 일은 저자에게 끊임없는 판단을 요구한다. 여러 가지 사건 가운데서 저자는 어떤 일들이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엮어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역사적 설명들의 정확성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기초해 그 사건들이 실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당연히 나 역시 이 책을 저술하면서 이러한 결정들을 내렸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난 사반세기 동안 미국 역사를 관통했던 주요 흐름을 가장 정확하게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걸어왔던 노선을 바꿔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과 같은 복지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대다수 국민에게 적정 수준의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적 지원 장치를 구축해가고 있었다. 이러한 지원을 위한 정부 정책에는 최저생계비 보장과 의료보험, 그리고 기타 기초생활지원 제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경제 전반의 생산력 증대를 통하여 노동자 대다수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시장을 형성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반전되기 시작했다. 레이건 정부는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한 정부 정책들을 대폭 축소하거나 철폐했다. 또한 미국의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시장 구조를 바꿔나갔다. 그 결과 1980년 이후 미국이 누린 막대한 생산이익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그 혜택을 거의 체감하지 못했다.
미국은 유럽의 복지국가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부유한 국가들이 추구했던 노선과 크게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복지국가의 원리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끊임없긴 하지만 미국 밖의 여러 국가에서는 생산성 증가에 따른 이익을 고르게 분배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이 책은 이 주제 외에도 여러 가지를 함께 다루고 있다. 기본적인 주제는 각 장의 첫머리에 정리하고 뒤에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하였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이 그러한 판단의 자유를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1장 방향 전환
―미국의 이탈
2001년 11월, 140개국 대표들은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규약의 교토의정서에 서명했다. 이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가장 큰 환경위협으로 지목한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세계적 노력의 첫걸음이었다.
이 협정에는 유럽연합 전체 회원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 캐나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했다. 하지만 의정서 서명 명단에서 미국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일찍이 교토의정서 협의 과정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은 참관만 할 뿐 이 협정을 위한 대화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른 나라들이 중대한 환경재앙에 대처하는 것을 미국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것이었다.
1980년의 미국이었다면 이러한 노선 차이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은 냉전 시대 우방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방들은 주요 국제 사안에 대해 미국의 결정을 따랐으며 미국은 우방 내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1970년대였다면 지구온난화처럼 세계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미국 정부만 외면하는 상황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교토의정서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둘러싼 의견 차이는 1980년 이후 미국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 얼마나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구온난화뿐 아니라 여러 사안에서 미국은 전통적 우방들과 의견을 달리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은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의 동맹국들과 결별을 선언하는 신호탄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캐나다 등의 주요 동맹국들이 이때 미국에 등을 돌렸다. 남반구 국가와 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던 부시 정부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경제력이 큰 두 국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반대에 부딪혔다. 또한 전범 처벌부터 조세피난처 규제까지 수많은 국제조약들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지만 미국은 참여를 꺼리고 있다. 미국은 2005년 현재 세계 최고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 우방들과 다른 노선을 고수하며 점점 국제적 사안에서 고립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여타 선진국 사이의 의견 불일치는 미국 이외 선진국들의 자기주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소련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유럽 국가들은 점차 강해져가는 유럽연합의 영향력하에서 움직이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의견 불일치는 미국이 예전처럼 국제적 사안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반영하기도 한다. 2005년의 미국 정부는 주요한 국제적 사안들에 관해 우방들과 어느 정도 의견 일치를 이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25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국제적 지위 변동은 변화된 미국의 국내 상황을 반영한다. 미국은 항상 유럽이나 일본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개발과 성장을 이뤄왔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과 여타 선진국 간의 차이는 여러 면에서 1980년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대공황 이후 미국은 유럽의 평균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다르지 않은 복지제도를 발전시켜 나갔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미국은 퇴직금제도를 거의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또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을 위한 실업수당제도와 최빈가구에 기초생계비를 지원하는 소득보장제도를 운영했다.
또한 당시 미국은 복지국가 건설에 필요한 지출 규모를 더욱 늘려가고 있었다. 1980년에서 멀지 않은 과거였던 1960년대에는 노년층까지 의료보험의 혜택 범위를 확장시킨 노인의료보험Medicare과 전 연령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Medicaid가 중요한 사회보장제도로 확립되었다. 당시 많은 미국인들은 여타 선진국처럼 미국에서도 온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보았다. 또한 1960년대부터 시작된 헤드 스타트 제도Head Start program는, 저소득 계층 아동만을 대상으로 실시되기는 했지만, 육아와 유아 교육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크게 확장시켰다. 1980년까지만 해도 점차 더 많은 계층이 이러한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이 맞이한 사반세기는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복지가 증진된 부문도 일부 있었지만 이 시기에 시행된 공공정책 다수는 복지 혜택의 확대를 제한했고 심지어 기존 복지제도를 철회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정부의 사회복지제도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은 여러 부문에서 소득분포 상위층에 유리한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지난 25년간 미국에서는 고소득 가구에 대한 세율 인하와 저소득 가구에 대한 정부 혜택 축소를 요구하는 정치 운동들이 몇 차례 성공을 거뒀다. 이 같은 변화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지만, 사실 이는 정부 정책의 광범위한 변환 중 일부에 불과했다. 이 시기 미국 정부의 정책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어렵게 하고 고소득층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갔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는 무역 정책, 노사 관계 조정, 핵심 산업의 탈규제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나타났다. 시장의 소득 분배에 대한 기본 원칙의 변화가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조세나 이주 정책의 변화가 초래한 결과보다 훨씬 컸다. 1980년의 미국과 2005년의 미국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 원칙의 변화를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본 원칙의 변화와 기울어지는 균형
1980년 이후 미국은 경제 정책 전반에서 변화를 보였는데, 모든 정책이 세전수입을 상향재분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무역 정책, 이민 정책, 노사 관계 조정 원칙, 거시경제 정책, 주요 산업에 대한 탈규제, 최저임금 등에 걸쳐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정부가 실행한 각 부문의 정책은 중저소득층 노동자의 교섭력을 약화시켰고, 자연스레 고소득층의 상대적 여건을 강화시켰다. 연이어 등장한 새 정책들은 엄청난 규모의 소득 상향재분배로 귀결되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 내 상위 5퍼센트의 부유층에게 돌아간 국민소득은 3분의 1이 넘게 증가했다.1 반면 소득분포 하위 20퍼센트의 인구가 차지한 소득은 4분의 1 이상 감소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소득의 상향재분배가 아니라) 경제 효율성 제고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제로 그러한 목표를 달성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일단 이 기간 동안 정부가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1980년까지의 GDP 평균 증가율은 3.7퍼센트였던 반면, 그 이후로는 연평균 3.1퍼센트 증가에 그쳤다.2 단위시간당 생산량 증가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생산성 증가 역시 둔화되어 1980년과 2005년 사이의 기간 동안 연평균 생산성 향상률은 2.1퍼센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2차 대전 종결시점부터 1980년까지의 평균 생산성 향상률인 2.4퍼센트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3 이 기간에 시행된 새 경제 정책이 아니었다면 경제가 그보다 더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기간 동안 미국이 경제 전반에 있어서 그 전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도 소득을 하향재분배할 수 있었던 정책들이 외면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미국의 무역과 이민 정책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임금 직업군은 국제적 경쟁으로부터 많은 보호를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이 기간 동안 소득의 상향재분배를 이끈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이 장 뒤편의 보론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 시기 동안 미국 정부는 임금 소득을 상위 계층에 편중시키는 일련의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 압력을 가한 여러 정책들의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소득 하위 4분의 3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여러 종류의 사회안전망을 해체했으며 이들을 가중되는 국제 경쟁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는 흔히 경제 효율성 제고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었지만 고소득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안전망 앞에서는 경제 효율성을 향한 추진력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같은 편향적 조치는 안전망을 상실한 노동자의 소득이 안전망이 유지되고 있는 노동자에게 재분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1980년부터 2005년까지 25년 동안 대다수 미국 국민은 경제적으로 크게 불안정해졌으며,4 이는 미국 국민의 생활과 정치적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불안정성의 증대가 시장 활동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정책의 결과로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미국과 기타 선진국: 1980년과 2005년
소득의 상향재분배와 정부의 재분배 정책 축소는 미국과 여타 선진국들과의 차이를 벌려나갔는데 이는 갖가지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미국만이 이 시기에 소득 상향재분배 정책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총리를 비롯해 다른 여러 나라의 정치지도자들 역시 소득의 상향재분배 정책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 밖에서는 이러한 기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았다. 그 결과 미국 내의 소득 상향재분배와 그로 인한 효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임금 불균형 양상
표 1-1은 지난 25년간 미국과 기타 선진국의 임금 불균형에 대한 단순 측정치다. 이 표는 정규직 노동자 중 임금분포 백분위 10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임금 대비 임금분포 백분위 90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임금 비율을 보여준다. 임금분포 백분위 90의 노동자는 임금분포 최상층에 가까우며 전체 노동자의 90퍼센트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오직 그보다 상위인 10퍼센트의 노동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 이와 반대로 임금분포 백분위 10의 노동자는 임금분포 최하층에 가까우며 전체 노동자의 10퍼센트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90퍼센트의 노동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 따라서 이 수치는 한 국가의 임금 불평등 정도를 요약해 보여주는 유용한 척도다.
표를 보면, 1980∼1984년 동안 미국은 목록에 오른 국가들 중에서 가장 불평등한 임금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3.9대 1이라는 비율은 임금분포 백분위 90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백분위 10에 해당하는 임금의 노동자보다 3.9배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1980년 임금분포 백분위 10의 노동자가 시간당 7달러의 임금을 받을 때 백분위 90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그 3.9배인 27.3달러 이상을 받는다는 말이다.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보인 국가는 3.5를 기록한 오스트리아다. 그리고 대부분 국가는 3에서 1 사이의 수치를 기록했으며 미국 외 기타 국가의 평균치는 2.7대 1로 나타났다.5
이후 다른 선진국의 임금 불평등지수는 거의 변하지 않은 반면 1980년대 초에 가장 불평등한 임금분포를 보였던 미국의 임금 격차는 오히려 더 커졌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임금분포 백분위 90의 노동자와 백분위 10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4.6대 1로 증가했다. 2001년에 임금분포 백분위 10의 노동자가 연간 1만 달러를 벌었다면 백분위 90의 노동자는 4만 6천 달러를 번 셈이다.
이렇게 심화된 미국의 임금 불평등 경향은 다른 선진국과 미국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대부분 국가는 평균 0.1 정도의 수치 상승을 보여 이렇다 할 임금 불평등 경향의 변화가 없었다. 뉴질랜드나 영국 같은 국가에서는 임금 불평등지수가 상당히 증가했지만 여타 국가에서는 별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프랑스나 일본에서는 그 수치가 소폭 감소하기도 했다. 해당 기간 동안 미국만큼 크게 임금 불평등이 심화된 나라는 없었다.
표 1-1에 나타난 수치만으로는 미국과 기타 선진국의 임금 불평등 정도의 차이를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있다. 실제로 백분위 90보다 더 높은 임금분포에 속하는 미국 노동자의 임금은 표에 나타난 수치보다 훨씬 급격하게 증가했다. 1979년과 2003년 사이에 임금분포 백분위 95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31.1퍼센트 상승한 반면, 임금분포 백분위 90 노동자의 임금은 27.2퍼센트 상승했다.6 임금분포 최상층의 임금 상승분을 비교해볼 수 있는 다른 국가들의 통계자료가 없긴 하지만, 미국의 자료를 미루어볼 때 보다 광범위한 측정을 바탕으로 임금 불평등지수를 산출한다면 이 시기 동안 미국과 여타 선진국 사이의 임금 불평등 정도의 격차는 훨씬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다른 선진국에 비해 미국의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항상 힘이 훨씬 약한 편이었으나 1980년부터 2005년 사이에는 노조 교섭력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졌다. 다른 선진국에서 노조는 노동자 대다수의 의견을 대표하며 경제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다른 국가의 정부도 노조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만큼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나라는 없었다.
표 1-2는 단체교섭협약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을 각 나라별로 정리해놓은 것이다.7 이 표에서 1980년의 미국은 노동자의 단체교섭협약 적용률에 있어 최하위 일본보다 단 1퍼센트포인트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 20년이 지난 2000년에는 거의 절반 수준인 14퍼센트로 감소했다. 이에 비해 대부분 국가들의 수치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노동자의 단체교섭협약 적용률이 상승하기도 했다. (예외적으로 뉴질랜드와 영국에서는 단체교섭협약 적용률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2000년 들어 미국은 일본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기타 선진국의 평균 수치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미국의 단체교섭협약 적용률이 극심하게 감소한 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다른 국가와 달리 미국 내 노동자 다수는 어떠한 사유도 없이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임의고용employment at will’ 계약을 맺고 있다.8 이와 달리 공공 부문 노동자와 노조협약의 적용을 받는 민간 부문 노동자는 정당한 사유에 의해서만 해고를 통보 받는다. 민간 부문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이 전체 노동자 노조 조직률에 비해 크게 줄어들면서 임의고용 노동자의 비율은 노조 조직률의 감소세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80년에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노조협약 적용률이 엇비슷해서 민간 부문 노동자의 4분의 1가량이 노조협약의 적용을 받았다. 하지만 2004년에 민간 부문에서 노조협약을 적용받는 노동자의 비율은 9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9 이 기간 동안 공공 부문에서 노조협약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은 18퍼센트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지만, 임의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자의 비율은 1980년 약 39퍼센트에서 2005년 25퍼센트로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고용주는 노동자를 임의로 해고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대체하기 힘든 전문기술을 가진 노동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고용주의 심기를 건드리면 언제라도 해고당할 수 있다는 위험 속에서 지내는데 이는 노동자의 삶을 불안하게 하는 커다란 요인이다. 특히, 대개의 경우 고용주에 의해 의료보험이 제공되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노조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민간 부문 노동자는 고용주의 심기를 건드리면 가족을 부양할 직장과 의료보험을 동시에 잃게 된다는 점을 숙지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웬만해선 이 정도의 불안정성을 겪을 일이 없다.
(서문, 1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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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딘 베이커 Dean Baker (1958~ )
미시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워싱턴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후 경제정책연구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를 공동 창립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온라인판에 매주 경제 논평을 게재(1996~2006)하는 등 전문가뿐 아니라 비전문가를 위한 글을 각종 언론에 기고하고, 방송 출연과 미 의회 위원회 출석을 통해서도 자주 발언하고 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그의 저서들은 언론에 자주 인용된다. 《보수적 복지국가―부자를 더 부유하게 하는 정부The Conservative Nanny State: How the Wealthy Use the Government to Stay Rich and Get Richer(2006)》, 《사회보장제도―조작된 위기Social Security: The Phony Crisis(1999, 마크 와이스브롯 공저)》, 《가격 바로잡기―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한 논쟁Getting Prices Right: The Debate over the Consumer Price Index(1998년 초이스도서상 수상작)》, 《세계화와 진보적 경제 정책Globalization and Progressive Economic Policy(1998, 제럴드 엡스타인?로버트 폴린 공저, 한국어판: 백영현 옮김, 《강요된 신화》, 새물결, 2000)》을 비롯해 책을 여러 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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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최성근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아시아나항공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어학원 강사로 활동하면서 책과 방송 프로그램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에 《C.S. 루이스 천국에 가다》 《프로가 알려주는 DSLR 잘 찍는 비결 3》 《시간쇼핑》 《하나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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