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잊을 수 없는 그림자
잊을 수 없는 1926년 7월 27일 ─ 가네코 후미코의 차가워진 몸이 도치기 현?木縣 우쓰노미야宇都宮 형무소 도치기 지소의 차가운 감방의 창가에서 발견되었다. 후미코는 그 전날인 26일 새벽, 스물셋의 한여름에 이 세상과 영원한 결별을 고했다.
그후 31일 새벽, 그녀의 어머니와 후세布施 변호사, 우마시마馬島 의사의 입회하에 우리 일행 십 수 명은 도치기 초町 외곽의 갓센바 묘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후미코의 사체 발굴에 나섰다.
정각 3시 ─ 달 밝은 새벽 ─ 촉촉이 내린 밤이슬이 갓센바 묘지 일대의 잡초 위에 창백하게 빛나고 주변의 논밭은 무겁게 침묵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글자 그대로 죽음의 묘지, 일행의 발소리만이 이상한 긴장과 울분에 휩싸여 있는 묘지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 몇 송이의 국화만 놓인 묘소를 찾아 우리는 땅을 4척 팠다. 습기에 부풀어 오르고 부패한 후미코의 사체, 불어버린 얼굴, 두텁게 돌출한 입술, 손가락, 손을 대면 피부가 그냥 벗겨져버리는 부패한 몸……. 그렇게 하여 이색적인 얼굴과 짧게 자른 머리의 특징이 없으면 후미코라고 알아보지 못할 만한,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무참한 후미코를 ─ 낡은 천과 톱밥에 파묻힌 관 속의 후미코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부패한 몸 특유의 악취가 심하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관을 짐차에 싣고 죽을힘을 다해 20리 떨어진 화장장까지 밀고 가니 새벽녘,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지는 5시였다.
이렇게 1931년 ─ 후미코가 스스로 세상을 뜬 지 5주년이 되는, 그달 7월이 왔다. 그리고 이 7월에 후미코가 체포되어 이치가야市ヶ谷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4년간 쓴 수기, 후미코의 전 생애를 이야기한 수기가 책으로 만들어져 이 세상에 나온다. 후미코는 이 수기를 다 쓴 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수기는 천지신명에게 맹세하여(만약 그런 맹세가 있다면……) 나 자신의 어떤 거짓도 없는 생활 사실의 고백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전 생활의 폭로이자 말살입니다. 저주받은 나 자신의 생활의 마지막 기록이며 이 세상을 하직하는 유품입니다. 아무 재산도 없는 나의 유일한 선물로 이를 택하宅下[수형자가 소지품이나 영치물 등을 친족에게 인도하는 것]합니다.”
후미코 사후 5년 만에 이 세상에 책이 나오게 된 것은 후미코 생전의 복역 4년간의 숙원이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후미코는 멀리 가버렸고 그 모습조차 희미하나 인간 후미코, 이 세상에 태어나 스물세 살의 청춘을 마지막으로 스스로 가버린 후미코, 성격적으로도 커다란 의문을 남기고 간 후미코, 그 후미코를 전 사회는 결코 잊지 않고 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정말 후미코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 수기는 스스로 그 질문에 상세하게 답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자신을 거짓 없이 대담하고 솔직하게 백일하에 드러낸다.
후미코는 생전에 조금 감정적이긴 해도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했는데 조선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큰 소리를 내어 울곤 했다. 그리고 박열朴烈이 옆에서 얼굴을 찡그리며 막으려 해도 너무나 비참하고 불행했던 자신의 생활을 끝까지 말하곤 했다. 감정적인 후미코!
일 하나를 하기 시작하면 식사도 거르며 몰두했지만 단지 인생에 대해서만큼은 아무 기대도 갖지 않고 오히려 절망하며 그 절망의 바닥에서 쓴웃음 짓던 후미코 ─ 생활력과 의지가 강하고 악바리이면서도 너무나 눈물이 많고 적나라하게 자신을 해방시킨 인간 후미코 ─ 등등…… 후미코에 관해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수기에서 인간 후미코가 자신의 펜으로 충분히 다 썼으리라고 생각한다.
잡소리를 덧붙이는 것은 그만두고, 아마 누구라도 눈물 없이는 읽기 힘들 이 수기를 전국의 뜻있는 독자들에게 보내고 싶다.
1931년 7월
후미코의 사후 5주년을 맞아
구리하라 가즈오栗原一男
수기를 시작하며
다이쇼大正 12년[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갑자기 제국의 도시 도쿄를 안고 있는 간토 지방이 땅 밑에서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집들이 우지직 신음을 내며 뒤틀리고 무너지고 사람들은 그 집에 깔려 생매장당했다. 겨우 살아난 자들도 미친개처럼 울부짖으며 헤매고 있었다. 이렇게 한순간에 문명의 낙원은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여진餘震이 계속되다 격진激震이 찾아온다. 대화산의 분화처럼 적란운이 하늘을 뒤덮고 회오리를 일으키며 올라간다. 그리고 도시는 결국 사방에서 일어난 대화재로 검은 연기에 갇혀버렸다.
격동, 불안 그리고 결국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소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우리가 저 도시의 경비를 맡고 있는 자들의 명령으로 경찰에 연행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말할 자유가 내게는 없다. 나는 그저 그 뒤 얼마 있다가 도쿄지방재판소의 예심법정에 불려 나가 취조를 받았다는 것밖에 말할 수 없다.
간수에게 이끌려 예심법정의 문을 열자 거기에는 이미 법관 한 명이 서기를 데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보더니 교도관이 나를 위해 피고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리를 준비할 때까지 나는 쓰고 있던 죄수모를 손에 들고 방 입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판사는 그것을 냉정한 눈으로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내가 피고석에 앉자 판사는 잠시 내 뱃속까지 꿰뚫어보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가네코 후미코인가요.”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좀 부드러운 태도로
“나는 당신 담당 예심판사 다테마쓰立松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가요. 살살 좀 부탁드립니다.” 하고 나도 미소로 대답했다.
판에 박힌 예심 심문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판에 박힌 심문 사이에도 판사는 앞으로의 취조상의 중요한 단서를 잡은 듯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때의 대화를 그대로 옮기기로 한다. 그것이 이후의 내 수기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줄 것 같아서이다.
판사가 시작한다.
“먼저 당신의 본적은?”
“야마나시 현山梨縣 히가시야마나시 군東山梨郡 스와 촌諏訪村입니다.”
“기차로 가면 어느 역에서 내리지?”
“엔잔?山이 가장 가깝습니다.”
“음, 엔잔?” 하며 판사는 고개를 들어 “그럼 당신 마을은 오후지 촌大藤村 쪽이 아닌가. 실은 나도 오후지 촌을 잘 알지. 그곳에 아는 엽사가 있어 겨울에는 자주 사냥하러 갔거든…….”
나는 그 오후지 촌을 알지 못했다.
“아, 그렇게 말씀하셔도 잘 몰라요. 사실 그곳 스와 촌은 제 원적지이기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곳에서는 2년밖에 산 적이 없어서요.”
“음. 당신은 원적지에서 태어난 게 아닌가.”
“네 .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렇군. 그러면 당신의 양친은 이름이 어떻게 되고 ,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이미 대체적인 것을 경찰의 조서로 알고 있는 판사가 일부러 이를 들으려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내심 고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나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좀 복잡하긴 한데, 호적상으로는 아버지 가네코 토미타로金子富太郎., 어머니 요시よし로 되어 있지만, 사실 그분들은 어머니의 부모, 즉 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입니다.”
판사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글쎄요, 아버지는 사에키 후미카즈佐伯文一라 하며 아마 시즈오카 현靜岡縣의 하마마쓰濱松에 살고 있을 것이고, 어머니는 가네코 도쿠노金子とくの라 하며 자세한 소식은 알 수 없으나 아마 친정 근처에 있을 겁니다. 호적상으로 저와의 관계는 어머니는 언니, 아버지는 형부로 되어 있습니다….”
“잠깐만.” 판사는 말을 막았다. “좀 이상한 게 어머니가 언니가 되어 있는 것은 알겠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와 성이 다른 것도 이상하고, 더욱이 남남이 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1889년에 제정된 메이지 민법은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자의 호적에 입적하므로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현재의 일본 민법은 결혼한 뒤 남편이나 아내의 성 중 하나로 통일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습니다.” 어두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주 옛날에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여동생, 즉 제 이모가 아버지의 후처가 되어 현재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흠, 그렇군. 뭔가 사연이 있었군.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진 것은 언제쯤인가.”
“벌써 13년이나 전의 옛날 일입니다. 아버지와 헤어진 것은 제가 아마 일곱 살 때일 겁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어떻게 되었지?”
“아버지와 헤어져 어머니와 살았습니다.”
“음, 그리고 그 뒤에는 어머니 혼자 부양해온 거군.”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헤어진 뒤 얼마 안 있어 어머니와도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거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세를 진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을 때 나는 나의 지금까지의 모든 경력, 모든 경험을 내 가슴속에 확 펼쳐놓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눈을 적셨다. 그것을 보았는지 어쨌는지 판사는 좀 동정하듯이 “꽤 고생을 하고 살았구먼. 그럼 그 부분은 나중에 천천히 듣기로 하고.”라고 말하며 서기의 테이블 앞에 놓여 있던 서류를 자신의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가며 본 건의 심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그것은 여기에 쓸 수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그후 판사는 나에게 나의 과거의 경력에 대해 뭔가 써서 내라고 했다. 법률에는 피고에게 불리한 것만 아니라 유리한 것도 자주 물어야 한다는 조문이 있다고는 하는데, 잘 쓰지도 않는 조문을 따른 것은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대역 사건(박열 사건)]을 저지른 데에는 필시 그 이유가 나의 처지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신문기자 같은 흥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명령받은 대로 나의 일대기를 썼고 그것이 이 수기이다.
이 수기가 재판에 얼마나 참고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재판도 끝난 지금 판사는 이 수기가 필요 없을 것이므로 나는 판사에게 부탁하여 이 수기를 인도받기로 했고 이것을 나의 동지에게 보낸다. 그 하나의 이유는 나를 좀 더 깊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고, 또 다른 이유는 동지가 보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책으로 출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부모들이 이것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아니, 부모들뿐 아니라 사회를 좋게 하고자 하는 교육가, 정치가, 사회사상가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읽어주면 좋겠다.
일! 나 자신의 일을 찾아!
실제로 그즈음 나는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희망에 불탔던 나는 고학을 하여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나는 지금 확실히 알았다. 지금 세상에서는 고학 같은 것을 해서 훌륭한 인간이 될 턱이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이 아니다. 소위 훌륭한 인간만큼 하찮은 것도 없다는 것을. 남들이 훌륭하다고 하는 일에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나는 남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타인의 노예로 살아왔다. 너무나 많은 남자의 노리개였다.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나 자신의 일을 말이다. 그러나 그 나 자신의 일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알아서 그것을 실행하고 싶다.
아마 이것은 하쓰요 상을 알게 되면서 하쓰요 상이 내게 읽게 해준 책들의 감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하쓰요 상 그 자신의 성격이나 일상생활에 자극을 받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하튼 나는 그즈음 그것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요, 확실히 우리 앞에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고 정이 진지하게 내 말에 찬성했다. 우리는 그래서 지금까지 없었던 진지함으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생각이 났다. 오늘밤 미토시로 초美土代町의 청년회관에서 ‘사회주의 강연회’가 열린다는 것을.
나는 정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하쓰요 상을 꾀어 같이 강연회에 갔다. 거리는 이미 눈으로 새하얬다. 이 무렵부터 나는 사회라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옅은 베일에 싸여 있던 세상의 모습이 점점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나처럼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해도 공부도 할 수 없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부유한 자가 더욱더 부유해지고 권력 있는 자가 뭐든지 할 수 있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또 사회주의가 설명하는 바에도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결코 사회주의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회주의는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사회의 변혁을 구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바가 진실로 민중의 복지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의문이다. ‘민중을 위하여’라고 하며 사회주의는 동란을 일으키리라. 민중은 자신들을 위해 일어선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생사를 같이 하리라. 그리하여 사회에 하나의 변혁이 도래했을 때 아아, 그때 과연 민중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도자는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그 권력으로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세울 것이다. 그리고 민중은 다시 그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하나의 권력을 대신하여 다른 권력을 가져오는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쓰요 상은 그런 사람들의 운동을 경멸하였다. 적어도 냉랭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인간 사회에 대해 그와 같은 이상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마음이 맞는 생활을 한다. 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있고 그리고 가장 의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쓰요 상은 말했다.
그것을 우리 친구 중의 한 명은 도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하쓰요 상과 마찬가지로 이미 이렇게 된 사회를 만인이 행복하게 되는 사회로 변혁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이렇다 할 이상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하나 하쓰요 상과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비록 우리가 사회에 이상을 갖지 않는다 해도 우리 자신에게는 우리 자신의 진정한 일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성취될지의 여부는 우리가 신경쓸 바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이것이 진정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것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진정한 생활이다.
나는 그것을 하고 싶다. 그것을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이 바로 우리와 하나가 된다. 멀리 저편의 이상적인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다.
(서문, 수기를 시작하며 전문, 본문 ‘일! 나 자신의 일을 찾아!’ 편 일부)
---------------------------
역자 소개
정애영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일본 도쿄도립대학에서 일본 근대사를 전공하였다. 저서로는 『일본 우익의 어제와 오늘』(공저), 역서로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오쓰카 히사오』, 『미국회람실기 미국편』 등이 있다.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