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성 인벤션
• 책을 펴내며
1980년대 초, 지금은 작고한 저명한 미국 사회학자의 대중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처음 인사를 한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정중하게 나의 학문적 열망의 대상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아도르노의 사회음악적인 작업에 대한 관심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나의 학부 졸업논문은『신음악의 철학』〔DeNora, 1986a를 볼 것〕에 대한 것이었으며 나는 아도르노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 가운데 한 사람임을 자처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아도르노를 끝내고 나면 무엇을 할 건가요? 하긴, 아도르노를 끝내기는 할 건가요?”
그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엽,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UCSD) 사회학과 철학박사과정 2년차를 지나면서 나는 아도르노를 끝냈다. 아니, 당시에는 그렇게 여겼다. 언어사회학·민속방법론·행위이론을 강조했던 커리큘럼에 보조를 맞추고, 하워드 베커(Howard Becker)의『예술계』(Art Worlds, 1982)를 읽던 나에게 음악과 의식, 음악과 지배의 연결고리에 대한 물음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런 물음들이 별로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형성 중인 명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음악적 정체성과 가치의 물음에 힘쓰기 시작했다. 딱 들어맞는 사례로 18세기 말엽 빈의 베토벤과 그의 음악세계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아도르노는 저 멀리 동떨어져 있는 듯했으며 더군다나 경험적으로 의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음악제도의 역사에 몰두함에 따라 아도르노의 책과 저술만이 아니라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열심히 읽던, 그의 작업에 대한 다른 사람의 다양한 연구는 점점 더 책꽂이 구석으로 멀찌감치 밀려났다.
음악사회학자로 일하면서 다시 아도르노로 돌아오기까지는 20년도 더 걸렸다. 그리고 이제는 지지자나 반대자의 역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사회음악적인 화젯거리를 둘러싼 아도르노의 관점과 다른 사람의 관점 사이에서 ‘주제’와 ‘대(對)주제’의 상호유희를 탐구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롭다. 이와 같은 인벤션(invention)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독자는 이 책이 음악에 대한 아도르노의 작업을 논구하면서, 그와 더불어 현행 음악사회학 및 같은 계열의 영역에서 아도르노가 받아온 비판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도르노의 탄생 100주년(2003년 9월 11일)에 즈음하여 출간된 이 책은 아도르노에 기반을 두고 그를 현실에 입각한 방식으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몇몇 지점을 조명해줄 것이다. 아도르노의 음악과 관련한 모든 저작과 그에 대한 비판을 두루 섭렵하면서, 나는 아도르노의 사회음악적인 작업이 그 단초에서부터 의심할 바 없이 얼마나 뛰어난지 제언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것을 완성된 시스템으로 간주할 경우 얻을 것이 얼마나 없는지 제언할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아도르노는 일평생 자신의 작업을 객관화 비판에 쏟아부었다. 그런 만큼 아도르노의 작업 일체를 변화시키거나 고치는 것이, 불가능한 정전(正典)으로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그 대신 우리는 더 나아간 발전에 도움이 되는 통찰을 위해서 그의 저술을 고찰하도록 하자.
아도르노가『음악사회학 입문』을 출간한 지 40년이 되었으나, 그동안 그의 작업에 대한 관심은 무성했다. 아도르노 특유의 음악사회학을 겨냥한 비평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의 진지함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없고 그가 제기했던 물음의 심오함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다. 이런 이유에서 아도르노는 여전히 시금석 같은 인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아도르노를 행위지향적이고 현실에 입각한 음악사회학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 가운데 음악사회학을 위한 일종의 프로그램(나의 견해와 이 분야의 접근방식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될 것이라 기대한다. 특히 아도르노가 내놓은 의제의 핵심을 이룬 논제들을 경험적 연구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논의하는 데 목표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의 제목을 ‘아도르노 그 이후’(After Adorno)라고 지었다. 여기에 담긴 이중의 의미를 음미하기를 바라건대, 그것은 아도르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물론이요(음악의 구조·청취양태·인식·통제〔control〕에 대한 아도르노의 관심사를 음악사회학이 새롭게 다시 주목함으로써 쇄신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와 동시에 아도르노의 원래 방법과 이론화 수준을 넘어 (그 곁에 나란히 서서?) 경험적 연구를 일구어낸다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1장은 아도르노의 사회음악적인 작업에 대한 전략적으로 간추린 요약이다. 이는 결국 사회학자들에 의해 아도르노가 비판을 받아온 핵심 주제들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제2장은 음악의 사회학과 신(新)음악학을 재검토하면서 그것들 각각이 (사회학에서) 음악과 (음악학에서) 사회에 대해 갖는 개념구상을 비판한다. 거기서부터 음악적 사건(Musical Event)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춘, 현실에 입각한 행위지향적인 조사연구의 프로그램을 서술한다. 이 프로그램은 아도르노의 관심사를 일반성의 ‘올바른’ 수준에서, 즉 특정화되어 상론될 수 있는 음악실천과 관련된 수준에서 확립한다고 사료된다. 이런 초점은 미시적 수준의 분석을 함께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논증하건대, 이들 관심사를 행위의 수준에서 조명함으로써 전통적인 거시사회학의 관심사에 도움이 된다.
제2장에서 윤곽을 그린 프로그램을 활용해 제3장부터 제5장까지는 아도르노의 여러 가지 주제를 논구한다. 의식 및 인식과 음악의 관계(제3장), 주관성과 감정(제4장), 그리고 이들 주제를 한데 아우르는 질서 짓기(ordering)와 사회적 통제라는 관념(제5장)이 그것이다. 제6장 막바지에는 경험적으로 고안된 음악사회학이 아도르노의 원래 관심사와 양립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실제로 문화이론일 수 있는 정당한 논거가 다 나왔기를 바란다. 인간의 행위수행과의 관계 속에서 문화(음악)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식별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말이다.
제1장
신봉자에 맞서 옹호된 아도르노?
아도르노는 20세기 전반부 동안 음악이 지닌 힘을 이론화하기 위해서
여느 학자보다 더 많은 것을 했다.“아도르노를 그저 지독한 엘리트
비관주의자라고 일축하기보다는 활용하려고 한다면” 아도르노가 제기한 문제는
논구될 필요가 있다. 아도르노에 대한 가장 근사한 존경의 표시는
그의 작업을 ‘활용’하는 데 있다.
서론─문제는 음악이다
음악은 힘이 있다. 또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다. 문화와 시대를 가로질러 음악은 설득·치료·퇴폐, 그 밖의 다른 여러 형태의 변화 상황과 결부되어 있다. 이와 같은 결합의 배후에 놓인 생각은 바로 음악이 의식에, 몸에, 감정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과 합되어 있는 또 다른 생각은, 음악이 할 수 있는 바로 그 무엇 때문에 음악은 규제와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서구음악의 역사는 음악의 여러 힘을 징집하려는 시도와 질책하려는 시도로 점철되어 있다. 음악의 가장 흥미로운 힘은 가사나 오페라 대본과 뚜렷이 구별되는, 음이 지닌 속성이 그 중심에 있다. 종교음악 영역은 수많은 사례를 내놓는다. 기원후 800년경 샤를마뉴의 성가 개혁, 즉 교회음악을“개정하고 숙청하고 바로잡아 개혁”(Hoppin, 1978, 50쪽)하라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8세의 요구, 16세기 말엽 (정교한 폴리포니와 반대되는) 평이한 찬송가 부르기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요구, 그리고 얼마 후에 종교음악의 목표가“회중을 불러모아 조직하는 것”이라는 J. S. 바흐의 공식 견해 등은 잘 알려진 몇 가지 사례이다. 정치영역에서 음악은 그것이 갖는 효과로 인해 동원되거나 금지되어왔다. 러시아혁명 기념일을 기리는 교향곡을 의뢰받은 쇼스타코비치(이후 데카당스 음악을 작곡했다고 그가 받은 질책), 나치 독일의 무조음악 배척, 국가 연주를 둘러싼 대소동(섹스 피스톨스의「갓 세이브 더 퀸」과 지미 헨드릭스 버전의 미국 국가「성조기」), 이 모든 것은 음악이 충동질하여 여론 및(또는) 전복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의 증거이다.
지구적인 관점에서 음악을 살펴보기 위해 시야를 넓히면 훨씬 더 극적인 사례들이 나타난다. 사례를 하나 들자면, 서방 미디어에서 보도된 대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거의 모든 형태의 음악이 금지되고 있다고 한다. 음악적으로 말하자면, 만일 세계가 공유하는 한 가지 것이 있을 진대, 그것은 음악이 감당할 법한 그 무엇에 대한 인정, 때로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렷다.
오늘날 음악·도덕성·교육에 대한 논쟁은 아카데미 안팎에서 활발히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모차르트 이펙트에 관한 논의, 헤비메탈이 젊은이에게 끼치는 효과에 대한 우려, 즉 수많은 음악 스타일의 파괴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으며, 심지어 영국 자동차협회가 후원한, 음악이 주행안전에 끼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도 있다. 어떤 경우엔 이들 논의에서 등장하는 음악이 음악 외적인 관심사의 희생양, 아니면 만만한 수비수(守備手)로 실려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음악이 신봉자나 후원자들의 문화를 비판하는 수단으로서 비판을 받을 때처럼), 음악의 음악적 속성이 힘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던져버리는 것은 성급하다. 음악이 효과를 갖는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상식이다. 우리가 이를 알고 있는 이유는 이런 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끼친 음악의 효과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찾기도 하고 피하기도 할 것이다.
여러 말할 것 없이 문제는 음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사회이론 안에서 음악의 힘이라는 관념에 관심을 기울인 전통이 있었다. 그 전통은 적어도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플라톤의『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고 보니 수호자들로서는 여기 어딘가에, 즉 음악에다 위병소를 지어야만 할 것 같네. ……그렇다면 처음에 말했듯 아이들이 놀이를 함에 있어서 음악을 통해 법과 질서를 받아들이게 된다네.(Plato, 1966, 72쪽)
이 유명한 구절에서 분명히 전해지는 것은 사회질서가 미적인 질서, 의례적인 질서, 도덕적인 질서에 의해 조장되며(궁극적으로는 이런 질서들과 뒤엉켜 있으며) 결국엔 이런 질서가 의례와 여러 예술에 의해 보강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사회질서의 토대를 개념화하는 방도는 19세기 동안 계속 살아남아 있었다. 그 유산은 비록 음악의 역할이 간과된 저작이기는 하지만 (종교생활의-옮긴이) 원초적 형태에 대한 뒤르켐의 강조에서 발견할 수 있다.(Durkheim, 1915)
20세기에 기계적 재생산, 방송매체, 오락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음악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사유할 필요가 더욱더 강화되었으리라 예상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생시몽 이후의 사회철학 안에서 음악의 중요성은 시들해졌다. 20세기에 사회학자와 사회이론가 들이 음악에 관여할 때에는, 음악의 사회적 힘이라는 논제에 손대지 않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 대신 음악은 사회구조를 ‘반영’하거나 사회구조와 평행관계에 있는 매체로서 훨씬 막연하게 정립되었다. 베버·딜타이·지멜·소로킨과 같은 여러 다양한 이론가에게 특징적인, 본디 형식주의적인 패러다임은 도덕적 태도와 음악의 연결고리에 대한 좀더 공공연한 관심사를 실로 중성화시켰다(그들의 저작에 대한 논의는 Etzkorn, 1973 Zolberg, 1990 곳곳; Martin, 1995, 75~167쪽을 볼 것).
그리고 이러한 중성화와 더불어 아주 다른 질문 공세가 이루어졌다. 즉 사회음악적인 연구의 관심사는 음악이 무엇을 ‘야기했는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무엇이 음악을 야기했는가 하는 관심으로 달라졌다. 이런 추세와 연관해 음악사회학(music sociology)은 음악의 사회학(sociology of music)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런 언어상의 미묘한 차이 안에서 음악과 사회,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서 사회 속의 음악(music in society)과 사회로서의 음악(music as society)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물음 가운데 몇몇이 삭제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풍요로웠을 (현실에 입각한) 초점인 ‘예술계’와 ‘문화의 생산’이라는 접근방식(Peterson, 1978 Becker, 1982 DeNora, 1995)에서조차 음악의 효과에 대한 물음은 계속 답변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음악의 사회학 안에서 음악매체는 은근히 강등되었으며, 그 지위는 능동적인 구성요인 혹은 생명을 불어넣는 힘에서 생명이 없는 산물(설명되어야 할 대상)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같이 강등됨에 따라 음악은 20세기 동안 전문적인 학문의 논제가 되었으며, 학문의 사안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주체의 정열은 빠져나가버렸다. 오늘날 음악에 대한 일상적인 반응과 전문적인 설명 사이에 깊이 갈라진 틈은 정상이기도 하고 또 용납되기도 한 듯 보이게 되었을 정도이다. 최근 몇 년 새 (다음에서 서술되는) 변화의 징후가 있었으며 음악에 대한 학제적인 연구는 음악을 시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왔다. 이를테면 ‘행위 중인’ 음악(music in action)을 향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아도르노의 등장
이런 맥락 안에서부터 우리는 아도르노와 그의 사회음악적인 프로젝트 특유의 독특한 성질을 음미할 수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작곡가로서의 부차적 경력, 지리적이고 문화적인 추방과 이주, 비판적인 동료 이론가들과의 협력관계 등) 정녕 아도르노는 20세기 전반부 동안 음악이 지닌 힘을 이론화하기 위해 여느 학자보다 더 많은 것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그의 저작과 방법이 여러 가지 흠잡힐 데가 있을 수 있음에도-아도르노를“음악의 사회학의 아버지”(Shepherd, 2001, 605쪽)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정당하다.
음악에 정통했던 아도르노에게 음악은 추상적으로 고찰될 논제가 아니었다. 음악은 그것을 성립시킨 사회적 힘들의 견지에서 고찰되든가 아니면 음악의 구조적 속성들의 견지에서 고찰할 논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음악은 살아 있는 역동적인 매체였다. 그리고 정녕 아도르노는 음악과 얽혀 있는 자신의 입각점에서부터 철학과 사회학 작업을 시작했음에 틀림없다. 다음 장들에서 서술되겠지만, 아도르노는 음악으로써 사유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사유를 다 바쳐서, 좋든 나쁘든 간에 음악이 의식을 변형시킬 방도를 궁리했다. 그리하여 다음의 사실을 시작부터 깨닫는 것이 절실하다. 아도르노에게 사회음악적인 탐구는 대단히 폭넓은 질문 범위(철학과 지식사회학, 의식의 문화사, 사회적 응집·지배·복종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던 어떤 관점에 열쇠를 마련해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까닭에 음악에 대한 아도르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업을 이처럼 훨씬 더 폭넓은 관심사 안에 깃들이게 할 필요가 있다.
부정변증법의 이념
아도르노는 더없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저작은 20세기의 파국적인 사건, 즉 파시즘, 제노사이드(민족 대량학살-옮긴이), 테러, 대량 파괴의 발발로 치닫고 말았던 이성의 실패를 탐구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는 의식의 변형이라고 지각됐던 것, 즉 권위주의적인 통치양식을 조장했던 것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아도르노의 프로젝트는 철학적으로는 이성비판과 더불어 시작하며, 사회학적으로는 의식과 그 조건에 대한 문화심리 연구와 더불어 끝을 맺는다 해도 좋을 것이다. 아도르노의 작업을 이루는 이 두 가지 구성요소는 좀더 폭넓고 학제적인 프로젝트의 일부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아도르노의 이성비판은 물질적 실재(material reality)가 그것을 서술하는 데 이용가능한 관념·개념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실재라는 말로 아도르노가 의미한 것은 자연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의 특수성이기도 하다. 실재는 낱말·치수·개념·범주에 의해서는 충분히 논구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잘해야 실재의 근사치로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관념이나 현상의 이미지로 이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도르노는 유물론자이자 실제적인 것(the actual)의 철학자였으며, 이는 그의 생애를 통틀어 변함이 없었다. 그의 작업은 관념과 물질적 실재 사이의 괴리를 눈에 띄게 강조했다. 이 간극 안에서 관념은 유용할 뿐더러 실은 ‘효용’까지 있을 수 있지만, 결코 영원히 ‘참’이거라거나 온전히 ‘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관념과 실재를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연관된 위험은 심상치 않았다. 첫째, 이와 같은 연관은 이성이 순응적이 되게 했으며 둘째, 이성에게서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성찰을 빼앗았다. 셋째, 이성 안에 권위주의의 경향이 똬리를 틀고 앉았는데, 이런 경향은 이성을 실재에 부응하도록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실재를 이성의 미리 디자인된 그릇에 꼭 맞추었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이런 위험은 근대의 상품 교환과 그것의 문화적 상관물, 즉 ‘재화’로서의 가치라는 생각 때문에 더 심해졌다. 급기야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이성의 성격이 변하고 말았다. 이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로 팽창되었는가 하면 현실에 대한 과소 평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과학을 칭송하는 경향과, 아무런 물음 없이 과학의 기치 아래 조달되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경향은 이러한 팽창의 탁월한 예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실재와 이성의 비동일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현대철학의 과제였다. 이런 과제는 그 본질에 있어서 비평이었으며, 부정변증법의 이념을 통해서 진척되어야 할 것이었다.
헤겔·마르크스와 달리 아도르노는 실재에 ‘대한’ 긍정적인 지식에 공헌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아도르노는 어떠한 형태의 종합도 모색하지 않았다. 그 종합이 실재에 대한 이상적인 편성(編成)의 견지에서 정립되든 아니면 결국 유토피아적인, 따라서 긍정적인 상태가 되고 마는 역사철학으로서 정립되든 간에 아도르노는 어떠한 형태의 종합도 모색하지 않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아도르노는 차이와 모순을 조명하고자 했다. 즉 잔여적인 것,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무의미(non-sense), 요컨대 사고의 기존 범주 안에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을 조명하고자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도르노는 사고를 정련(精鍊)시키고자 했다. 이런 과제는 이번에는 이성을 유예된 재인(recognition)2)의 한 형태로 재배치하도록, 다시 말해 이성과 실재 사이의 끊임없는 비(非)재인의 계기로 재배치하도록 방향을 맞추었다. 이 비재인의 계기는 이번에는 한결 더 큰 복잡성을 드러낼 수단을 마련했다. “전체는 비진리다”라는 아도르노의 유명한 아포리즘은 이런 주장을 압축적으로 잘 요약해준다. 부정변증법의 이념은 이성이 자기비판에 종사하는 과제를 수행하라는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물론 그의 작업에 스며들어 있는 이성에 대한 휴머니즘적인 존중에도 불구하고,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이념은 궁극적 으로 지식의 겸손에 대한 것이요, 지식이 지닌 불가분 사회적인 -따라서 도덕적인- 성격에 대한 것이다.
인식에 대한 관심사는 아도르노의 사상 세계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그의 사상 세계와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아도르노가 이야기하는 ‘이성의 객관화하는 경향’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다음 두 절에서 서술되듯이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객관화, 활동의 한 형태로서의 객관화를 이해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아도르노가 현대 세계에서 지식의 형태로서의 과학과 예술, 양자의 강등된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의 견해를 맥락화할 수 있다. 하나같이 아도르노의 철학적 단초를 눈에 띄게 강조하는 이런 논제는 결국엔 사회학적 관점이 아도르노의 작업의 고갱이라고 여길 법한 것에 착수하기 위한 포석을 마련해준다. 그의 작업의 고갱이란, ①객관화와 관계해 초점을 문화기구들이 담당하는 역할에 맞추는 것, ②그의 철학에 포함된 무의식 이론, ③두 번째 특성과 관계된 것으로 미적인 구조와 의식의 양식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한 관심사를 말한다.
객관화란 무엇인가?
객관화하는 심성(mentality)은 변증법적 사유에서 떠나 다른 길로 나아갔다. 그 대신 그것은 인간의 관념(개념)과 물질적 실재 사이의 동일성을 실재가 자명하게 보이도록 -그런 까닭에 교섭될 수 없게끔 보이도록-정립했다. 다음을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도르노가 볼 적에 객관화는 활동(프락시스)이었으며 개개의 습성3)을 통해서 이 일을 달성한 것은 바로 주체였다. 따라서 아도르노는 주체가 그 자신의 인식적인 소외에 공모한다고 보았다. 이런 공모관계의 문화적 기초야말로 사회학자 아도르노가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객관화는 인식적 폭력이었다(이런 의미에서 아도르노의 초점은 담론 및 그것이 지닌 총체적 힘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의 관심사와 부분적으로 겹친다). 왜냐하면 객관화하는 심성이 하나의 습성으로 확립되기에 이르렀을 때, 실재의 본성에 대한 미리 주어진 가정에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을 삭제하려는 충동은 또한 틀에 박힌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그런 충동은 물질적 실재를 지각하고 반응하는 암묵적인 실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불일치에 대한 지각에서 멀리 떠나간, 이러한 객관화하는 의식 형태가 어김없이 으레 보수적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객관화하는 의식 형태는 (물질적 실재에 의해 범주를 끊임없이 따져 묻는 것과 반대되는) 일반 범주의 재인(따라서 재생산)에 방향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체로서 객관화하는 의식 형태는 세계에 대한 총칭적인(generic) 방향제시를 포괄했다. 이를 테면 사람들의 계급 및 범주에 대한 암묵적인 가정에 의해서, 그리고 개인을 범주의 일례로 다룸으로써 특징지어졌다. 그것은 또한 일반 유형으로서의 사물(물질적 환경의 측면)의 본성에 대한 가정, 즉 작용할 경우 사물에 대한 가장 가깝고 친밀한 경험을 철폐하는 가정을 수반하기도 했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이는 탈인간화된 의식이었을 뿐만 아니라(그것은 결국엔 사고의 일반 범주를 확장시킬 특정한 차이를 살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외면적으로 강요된 통치 관계에 순종하는 고분고분한 의식이었다. 이와 같은 의식이 관념과 물질적 실재 사이에 만든 동일화에서 안정적인(신뢰할 만한) 물질세계와 사회세계에 대한 믿음,『 계몽의 변증법』에 나오는 자주 인용되는 구절을 빌리자면 ‘그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그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도르노가 이따금씩 ‘존재론적 이데올로기’(Adorno, 1981, 62쪽)라고 일컫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종의 습성으로서의 존재론적 이데올로기를 특징짓는 것은 확실성에 대한 취향이다. 이는 아도르노가 보기엔 그 자체가 해이(解弛)한 인식적 기능작용의 한 징후였다. 그리고 이런 습성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곳, 현지의 수준에서, 행위자가 일반 개념을 강화하는(일반 개념과 동일시하는) 한에서 ‘합리적인’ 행정감독(administration)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때 행위자는 ‘지금 여기’를 ‘그때 거기’의 견지에서, 즉 (행위자가) 하기로 되어 있다고들 하는 바로 그것의 관념에 꼭 ‘맞추어’ 이해하려고 자신의 경험이나 행위의 특수성을 저 일반 개념에 따라 본뜬다. 활동으로서의 객관화(어떻게 행위자가 일반을 특수에다 꼭 ‘맞추고’ 그럼으로써 특수에게 폭행을 가함과 동시에 통치 권력과 나란히 정렬하는지)를 실지로 예시하기 위해서, 아도르노의 관점이 비슷한 관심을 갖는 또 다른 갈래의 사회학-실재가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생산되기에 이르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지 고찰해볼 만하다. 예컨대 이런 논제를 다룬 민속방법론(ethnomethodology)의 관점을 살펴보자.
(책을 펴내며, 1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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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티아 데노라(Tia DeNora)
캘리포니아 대학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영국 엑세터 대학 음악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같은 대학 사회철학연구소 소장으로 왕성한 조사연구와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사회학자로서 자리매김한 그녀는 특히 사회생활에서 음악의 사용과 힘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한다. 지금은 음악과 정신건강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과학기술사회학 분야도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베토벤 천재 만들기』 외에 Music in Everyday Life, Music-in-Action: Selected Essays in Sonic Ecology, The Cambridge Companion to Recorded Music(공저), Oxford Sound Studies Handbook(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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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정우진(鄭友眞)
미학을 전공하고 「언어로서의 음악과 아도르노의 베토벤 해석」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ㆍ서울대ㆍ건국대 등에서 미학ㆍ예술철학ㆍ예술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한국미학회 산하 ‘예술과사회’ 분과와 음악미학 분과에서 활동하며, 음악이 상호매체의 미학으로 발전하고 문화정치와 만나는 지점에 관해 연구를 진척시키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해링턴(Austin Harrington)의『예술과 사회이론: 사회학적 미학의 입장들』(근간)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예술·기술·마술: 아도르노와 백남준의 만남」「언어·비판·화해의 유토피아」「아도르노의 음악적 철학과 베토벤의 철학적 음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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