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총론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세계 지배 야욕의 시대가 끝난 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에도 인류 사회는 군사와 경제 강대국을 중심으로 동서 이념적 대립을 겪었고 산업·기술이라는 기준에 따라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분류되어 갈등을 경험해왔다. 20세기 말 냉전 종식 이후에는 미국의 유일 지배 체제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수사학 아래 다양한 국가론적·문명론적 대응과 모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재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과정에서 폭로된 미국 중심의 서구화론, 즉 월가 표준을 세계 표준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세계화 담론의 파산으로 치닫고 있다. 이 일련의 미국발 금융위기(2008년)와 함께 찾아온 유럽발 재정위기(2009년)는 세계경제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 여진과 불안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또한 서구중심주의의 세계사적 철수 단계인 세계화의 패퇴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촉진시키고 있다.
특히 20세기 후반 급변하는 시대에 인류는 세기적 전환기를 준비하면서 기술전자공학시대(Z. Brzezinski, 1980), 후기산업사회(D. Bell, 1980), 초산업사회(A. Toffler, 1980), 정보화시대(J. Naisbitts, 1982), 탈근대사회(Kurth, 1992), 후기자본주의사회(P. Drucker, 1992) 등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 시점은 ‘정보혁명’의 와중에 있다는 사실 말고도,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서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그야말로 시대의 전환기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정치제도, 생활양식, 문화적 욕구, 사회의 조직 원리, 국가 간의 관계 등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최근 저명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문명의 명멸 원인을 공감empathy의 물결과 엔트로피entropy의 상호관계 속에서 찾으면서 21세기에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더불어 ‘분산 자본주의’가 인도하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와 같이 각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재구성을 요하는 새천년 21세기는 대변혁을 예고함은 물론 이미 실현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대변혁은 탈냉전기 국제정치질서에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현대 국제정치는 과거의 냉전적 세계정치질서가 와해되고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그로 인한 군사적 대립이 종식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학계에서는 현재와 미래의 국제 질서와 세계체제는 무엇에 기초하여 형성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논의와 모색이 한창 시도되고 있다. 특히나 몰타체제로 대변되는 탈냉전 시대의 개막과 함께 기존의 국제관계 이론인 현실주의나 다원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문명 패러다임civilizational paradigm’이 등장하여 ‘문명’이라는 새로운 분석 단위가 제시되었다.
‘문명 패러다임’의 문제를 제기한 학자 중 대표적 인물은 미국의 석학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다. 특정 시대에 공유하는 ‘패러다임’으로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없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는 토머스 쿤Thomas S. Kuhn의 주장처럼 헌팅턴의 문명 패러다임은 갑자기 도래한 냉전의 종언을 예측하지 못했던 국제정치학상의 방법론적 반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지적한 바와 같이 쿤으로부터 차용된 개념으로 통상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로 이해된다.
‘패러다임paradigm’의 어원은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paradeigma’다. 플라톤Platon의 《대화편》에 의하면 파라데이그마는 참된 인식으로서 바른 실천적 삶에 사용될 본이나 기준 또는 표준을 의미했다. 그러나 현대적인 ‘패러다임’ 개념은 주지하다시피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1962)에서 획기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쿤은 과학에서 기본이 되는 이론과 법칙들, 기본적인 법칙을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는 표준적인 방법, 도구적인 기술, 형이상학적인 원리, 이론의 선택, 평가, 비판과 관련된 원리 등의 총체를 ‘패러다임’이라고 했다.
또한 토머스 쿤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 개념이 갖는 애매함과 오해의 소지를 해소하기 위해 1970년판 〈후기〉에서 재차 패러다임을,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의 총체를 지칭하는 개념 또는 이 같은 총체 중의 한 구성 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구체적인 수수께끼 풀이에 사용되는 모델과 실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명확히 정의했다. 이 ‘패러다임’ 개념의 특징은 과학의 변화 모델을 설명하는 데 있다. 쿤은 과학 변동 단계를 지배적인 패러다임 안정기(정상 과학기), 선패러다임기(비정상성의 폭발과 위기) 그리고 과학혁명기로 구분했다. 쿤의 패러다임은 이후 과학철학에만 한정되지 않고 인문, 사회과학 등에서도 널리 원용되고 있다.
여하튼 이 ‘패러다임’ 개념은 문명과 연결되어 현대의 대표적인 문명 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종래의 슈펭글러O. Spengler, 토인비A. Toynbee 등이 문명을 세계 역사에 적용시킨 경우는 있었지만 헌팅턴처럼 정치학자가 문화와 문명을 통해 국제정치나 세계체제를 설명하려 한 경우는 거의 없다. 뚜웨이밍杜維明은 이 사실과 관련하여 헌팅턴 이론이 발현시킨 긍정적인 면을, 즉 “정치학자로서 또한 냉전을 배경으로 헌팅턴이 이 문제(문명충돌론)를 제기한 이후 문명 대화의 문제는 학술과 종교의 영역에서 지식계 전체로 확대되었고 심지어 국제정치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헌팅턴은 탈냉전 이후 세계 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는 ‘문명’임을 천명했다. “1980년대 말 공산세계가 무너지면서 냉전체제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다. 바로 문화다.” 그런가 하면 “세계 정치는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전파력이 크며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갈등은 사회적 계급, 빈부, 경제적으로 정의되는 집단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라고 미래 세계를 예측했다.
이 ‘문명충돌론’은 냉전 종결 이후 “붉은 위협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슬람은 존재하고 있다”는 식으로 미국 국민에게 강력한 적에 대한 이미지를 형상화시킴으로써 폭발적인 효과를 누렸다. 2001년 9·11 뉴욕 테러 사건의 발발 당시 정작 헌팅턴 자신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테러는 ‘문명 대 야만’의 충돌이지 문명 사이의 충돌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헌팅턴의 이론은 이 테러사건과 그에 따른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연이은 보복 전쟁으로 인해 국내외 대중 매체에 광범위하게 회자되면서 더욱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헌팅턴의 이론은 사실 탈냉전 직후 풍미했던 탈역사론에 대한 비판적 회의와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헌팅턴의 사고 반대편에는 “자유주의가 드디어 역사의 짐들이었던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청산했기 때문에 역사는 그의 종착역에 도달했다”고 보았던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류의 ‘역사종말론’이 존재한다. 20세기 제3세계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제1세계에서는 정치적 혁명 대신에 과학과 기술의 혁명만을 논하고 있었다. 탈역사의 주장들은 과학과 기술 이외의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후쿠야마의 탈역사는 미국인의 실용주의와 청교도적 전통의 세계 지배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하이테크 시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세계 재편을 뒷받침하는 정치철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서구 문명이 보편적 역사상을 바탕으로 인도하는 세계가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안정을 성취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였다는 사실이 쉽게 부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복수론의 강세로 문명이 긍정적 의미에서 인류 사회의 보편적 진보 상태를 기술하는 용어로 전환되고 있는 것도 주로 서구에 의한 주체적 자각의 산물이다. 근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최첨단 기술의 비호 아래 지역성을 극복하고 더 넓은 시장을 찾아나서는 확장주의적 본질에 따라 상호 연계성으로서의 지구촌화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렇듯 오늘날 현대 첨단 문명은 고도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여 물질적 부를 생산한 결과이고 인간의 이기심에 호소한 시장경제는 물질문명의 이기를 창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들은 현대 과학기술정보사회가 세계적 차원에서 일구어 놓은 경이로운 물질적 풍요는 물론이고 산업사회주의와의 치열한 투쟁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확인하는 결정적인 논거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 소멸과 소련의 붕괴 등 일련의 공산권의 몰락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와 반성을 촉진시켰다. 실제로 당시 좌파의 비관론자들이나 우파의 낙관론자들 모두 ‘역사의 종말’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 동기와 관심은 전혀 달랐다. 비관론자들은 세기말적인 절망과 회의 속에서 역사를 이미 의미를 잃어버렸거나 아예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역사의 끝’을 주장했다. 그에 반해 낙관론자들은 서구 자본주의가 마침내 지속적인 승리 상태에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역사의 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낙관론자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후쿠야마다. 그는 북미, 서유럽, 일본은 탈역사 단계에 진입했지만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제3세계는 아직도 역사의 단계에서 헤매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명섭은 20세기 말 탈냉전의 상황에서 폭발한 이 현대 문명 담론과 관련하여 “문명이라는 분석 단위는 국가라는 분석 단위가 포괄하기에 너무 큰 문제를 다루는 데 적합하고 국가라는 단위로 분석하기에 너무 작은 문화적 문제를 다루는 데도 유용하다”라고 평가한다. 나아가 그는 탈냉전 국제정치학에서 문명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째, 냉전체제의 주요한 구성 부분이었던 이데올로기적 갈등 구조가 와해된 이후 보다 긴 역사성을 가진 과거의 갈등 구조가 새로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둘째, 냉전 종식 이후 전통적인 세력권의 경계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이것은 냉전 시대를 통해 과거 삼국동맹Triple Alliance과 삼국협상Triple Entente의 경쟁적 구도 하에서 강압적 흡수의 대상이었던 비서구적 공간들이 없어진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셋째, 비록 냉전체제가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이미 냉전 구조에 의한 국제 체제로의 편입이 진행된 비서구적 지역들에게 있어서 과거의 전통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지역공간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했다. 넷째, 냉전 시기 서유럽에서는 이미 베스트팔렌적 관점의 영토 개념 자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1951),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 유럽연합 등이 구현되면서 공통된 문명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초국가적 주체가 출현했다. 다섯째, 냉전체제 하에서 어쩌면 냉전체제를 이용해서 동아시아는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고 동아시아에 대한 활발한 담론이 전개되었다.”
또한 문명교류학의 개척자 정수일은 20세기 후반 냉전 시대가 종결되면서 문명 패러다임, 즉 문명에 의한 새로운 대안과 해법의 모색이 화두로 부상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류가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추구해오던 정치적·경제적·군사적·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이나 방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의 종식을 계기로 그 효용에 대하여 회의론이 제기되자 대안으로 정신적 및 물질적 보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문명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단하려는 학구적 탐색이 여러모로 시도되어 마침내 현대적 문명 담론의 장이 열리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문명 담론은 문명 자체의 탄생, 성장, 멸망, 이동에 관한 것으로서 대부분 정형화된 구조를 띠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현대 문명 담론’은 갈등적이고 대립적인 국가, 민족,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등의 굴레에서 벗어나 탈냉전의 시대 상황에 신축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분석 단위, 즉 공분모적 복합체인 ‘문명’에서 해법을 강구하고 있다. 이미 논급한 바와 같이 특히 탈냉전기 국제정치질서가 와해되고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그에서 기인한 군사적 대립이 종식된 상황에서 새천년 21세기의 국제관계와 세계체제를 ‘문명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논의가 화두가 되었다.
이것은 여러 국내외 학자들의 지적대로 기존의 국가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보완적 패러다임으로서의 적실성과 유용성은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탈냉전 시대의 ‘서구 중심적 신제국주의’ 내지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적 서구패권주의’ 성향이 짙게 깔려 있다. 동시에 세계 문화와 문명 체계의 이해 면에서도 ‘동’과 ‘서’로 갈라놓고 대결 의식만을 고취하는 지극히 이분법적인 사고가 내장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대 문명 패러다임의 치명적인 오류를 극복하고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식의 편협주의와 일방주의에서 탈피한, 균형을 갖춘 문명관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왜곡되고 그릇된 이론과 관념이 비판·수정되지 않고 우리의 의식을 붙잡는 한 인류 공영을 위한 올곧은 이념이나 역사, 문명은 구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대 문명 담론의 발화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단·복수적 문명 패러다임의 서구 중심적 패권주의 성향을 극복하고 참된 문명관을 모색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탈냉전기 인류의 미래와 역사를 ‘문명’이라는 새로운 분석 단위로 해석하고자 한 대표적 인 두 학자 후쿠야마와 헌팅턴을 단수적singular 문명론과 복수적plural 문명론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하고 오류를 지적할 것이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서 학자들의 여러 문명에 관한 ‘담론’을 분석하고 이를 생태지향주의 차원에서 융·통합하여 인류의 미래를 조망하기 위한 것이다. 즉 ‘문명생태주의 담론’이라는 시각에서 인류의 생존 지속과 공영 그리고 보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문명관을 안출하기 위함이다. 최종적으로는 생태문명의 확립과 그에 따른 핵심 규범 및 운용 요칙들을 도출하는 데서 결실을 맺을 것이다.
나아가 이 생명생태학적 문명관을 토대로 강권적이고 독점적인 문명헤게모니주의를 소멸시키고 세계 문명의 평등 관계를 회복시키는 현대 문명 담론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는 현재 세계 문명은 상호 교호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미래 문명 역시 이를 토대로 발전할 것이라는 명제를 관철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또한 서구문명중심주의와 문화제국주의가 구획해놓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현대 문명은 역사상 세계 인류가 함께 만들었다는 ‘인류운명공동체의식’을 각성시키려 한다. 이것은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담보하기 위해 동서 모두가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는 ‘보편적 인류애’의 선행 조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단하는 현대 문명 담론의 공론은 시공간상 인류의 문명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설명할 수 있는 상호 주체적 평등 관계를 기초로 한 ‘세계주의 시각’으로 종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21세기 시대정신은 인권과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타자와 공존하는 생태적이고 전일적인 문명관, 즉 ‘생태문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정치생태학의 기초를 닦은 문순홍은 생태 비평을 논할 때 ‘생태 패러다임’보다는 ‘생태 담론’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본래 ‘담론discourse’에 관한 이론은 소쉬르F. de Saussure의 언어학에서 시작되었다. 소쉬르는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능기signifier와 소기signified의 관계로 이해된 기호들sign을 연구했다. 이후 이 담론 이론은 푸코Michel Foucault, 라클라우E. Laclau, 무페C. Mouffe 등을 통해 사회과학의 영역에 도입되었고 언어 이론에서 국가와 정치권력에 대한 분석에까지 쓰임이 확장되었다. 그래서 담론은 문장보다 큰 단위의 언어군으로 정의되는가 하면, 푸코에게서는 지식과 경험을 체계화하는 담론적 형성 혹은 이데올로기적 덩어리를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거시적 개념틀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담론’이란 상호 작용하고 공명하는 맥락을 전제로 한 역동적이고 관계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 전체 글 역시 세계 문명의 이해와 문명들 간의 관계 분석에서 상호 연결망에 역점을 두는 생태학적·유기체적 방법을 따른다는 점에서 ‘문명생태주의 담론’이라는 명칭과 입장을 취한다.
이 생태문명과 관련하여 인류의 미래 문명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제러미 리프킨의 ‘생물권 정치론’이 주목된다. 이미 앞서 언급했다시피 리프킨은 ‘공감’을 인간 이해의 새로운 워드로 내세운다. 그는 최근 생물학계의 연구 결과, 곧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s라는 ‘공감 뉴런’ 이론에 기초하여 인간을 적대적 경쟁보다는 유대를 가장 고차원적 욕구로 지향하는 존재로 재규정한다. 더욱이 생물학적 구조에 내장된 이 공감 성향은 “우리의 인간성을 완성하게 해주는 실패 방지용 메커니즘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류를 하나의 대가족으로 묶어주는 기회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리프킨은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공감적 연대감이 수많은 사람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어줌으로써 범인류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접착제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통념상 과거의 지정학은 환경이 만인이 만인과 싸우는 거대한 전장이라는 가정 위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리프킨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권 정치biosphere politics’는 지구가 상호 의존적 관계로 맺어진 살아 있는 유기체이며 우리는 공동체를 보살핌으로써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리프킨은 현재 인류의 환경 문제와 경제 침체 등도 20세기 지정학적 권력 투쟁에서 21세기 생물권 정치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분산 에너지 체제’가 구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생물권 정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새로운 분산 에너지 시대에 통치 제도는 그들이 관리하는 생태계의 작용을 닮아갈 것이다. 서식지가 생태계 안에서 기능하듯, 그리고 생태계가 서로 연관된 그물망에 있는 생물권 안에서 기능하듯, 통치 제도는 다른 통치 제도나 전체 통치 제도로 통합되는 관계의 협력적 네트워크 안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 새로운 복합 정치 기구는 그것이 몸담고 있는 생물권과 마찬가지로 상호 의존적이고 호혜적으로 작동한다.”
인류의 현재와 미래 세계에 대한 리프킨의 지적 통찰력이 시사해주는 것처럼, ‘생태철학’은 21세기의 보편적 가치인 다원성과 타자성을 포용하는 생태학적 보편 문명의 도래를 예고한다. 사실 개별 분과 과학이 주로 지식을 전달한다면 철학은 지혜를 제공해준다. ‘지식’이 물질과 사회에 대처하는 정보나 방법 등을 여러 방면에서 제시해준다면 ‘지혜’는 인간의 가치 취사, 노력 방향 등을 일깨워준다. 생태지향주의는 이 지혜 영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생태 지혜는 상호 연관적 세계에서 나의 완성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도록 한다. 나의 완성은 이제 나 중심, 인간 중심, 특정 문명 중심에서 벗어나 우리 중심, 자연 중심, 세계 문명 중심이라는 일체 생명적 평등성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이제라도 생명과 생태의 인문사회학을 구성하여 우리 삶의 생명소로 율동하는 생명의 네트워크, 즉 인류를 하나로 묶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소외된 인권이나 민족이 없이 모든 인류가 함께 행복을 누리는 가시적인 문명의 합일점을 도출해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명생태주의 비평은 지배 이데올로기적 문명강권주의의 내부에 깊이 침투하여 거침없는 비판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방대한 다층의 이분법적 문명 차별 구조를 소멸시키는 파괴적인 힘으로 작동할 것이다. 생태 지향적 문명관은 서구중심주의, 중화주의 등 문명패권주의에 대한 단호한 부정과 저항이다. 여기서는 그 단서를 세계주의 시각의 생태와 문명의 융합 차원에서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 노력은 문명의 독점과 충돌이라는 냉엄한 현실과의 대결 속에서 세계 문명권의 화해와 공존을 담보하는 생명생태중심적 문명관으로 결집될 것이다. 이 의미에서 박이문은 “우리는 아직도 문명의 진보에 대한 희망, 즉 비참한 경제적 빈곤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참을 수 없는 사회적 억압에서 보다 더 큰 해방, 인간들 간의 박애적 평등과 인류와 자연 간의 조화로운 공존과 친애 등으로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막연하게나마 꿈꾸어 왔던 유토피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 갈 수 있다는 진보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러한 이상을 위해 희망을 걸고 한결 더 노력할 수 있다”고 피력한다.
생태학적 시각에서 볼 때 타자가 우리의 세계관을 통해 관찰되듯이 우리 역시 타자의 시각 속에 존재한다. 그야말로 정체성은 ‘자아’와 ‘타자’의 상호 투영과 의존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다. 종래 이분법적 서구 근대성은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이성과 비이성, 진보와 정체, 문명과 야만, 서양과 동양, 계몽과 미개 등으로 양분하여 이 양자도식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는 단선적 진보사관을 강요해왔다. 이에 반해서 미래의 생태문명은 지금까지 주체로서의 이성, 정신, 인간, 서양 등의 요소에 의해 분석과 제어의 대상으로 치부되어 그동안 그로 인해 억눌려왔던 감성, 육체, 자연, 동양에 대해 평등 관계로서의 생명과 마음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중심에 대한 주변의 대등한 다중심적 복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열림과 소통의 생태지향주의는 이성에 의한 비합리성 지배,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 식민자에 의한 피식민자 지배, 백인에 의한 유색인 지배, 중심 문화에 의한 주변문화 지배라는 일체의 이분법적 강제를 해체하도록 독려한다. 이 사상은 우리가 염원하는 참 자유세계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며 강권에 저항하고 평화와 평등 사회를 구현하는 인류의 자유주의 혁명가의 행로를 밝혀줄 것이다.
이 책은 제1부 〈현대 문명 담론의 이해〉와 제2부 〈문명강권주의 비판〉이라는 두 주제로 구성되었다. 제1부와 제2부의 내용을 각 장별로 간략히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장 〈총론〉에 이어 제1부 2장 〈동서 문화·문명의 개념과 그 전개〉는 현대 문명 담론의 개념적 이해를 중심으로 다룬 글이다. 일반적으로 현대를 가리켜 ‘문화’와 ‘문명’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특히 오늘날 세계화 논의와 교차하여 문화와 연결된 ‘문명’을 통해 탈냉전기 시대정신과 위기를 읽고 그 상황에 신축성 있게 대응하고자 하는 문명 담론이 21세기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 장은 여기에 발맞춰 현대 문명 담론의 개념적 이해와 그 창조적 발전의 토대 구축을 위해 문화와 문명의 어원적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아울러 이 양자의 서양적 기초와 현대적 진화를 재조명함으로써 미래 지향적인 ‘문명학’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서구의 문화Culture와 문명Civilization의 의미 구성체는 17∼18세기 근대 계몽주의 시기 ‘시민 계층’과 ‘시민사회’의 운명과 함께 형성되었다. ‘문명’ 개념이 영국과 프랑스 시민 계층의 사회적 운명을 반영한 것이라면 ‘문화’ 개념은 독일 시민 계층의 운명을 담고 있다. 독일 지식인들이 문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계몽주의적 문명에 대해 문화적 비판을 가하고 문명을 타자화하면서 이 양자의 적대적 분열이 초래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문명’ 개념은 문명 생태학적 관계망network을 규정하는 ‘세계주의적 시각’으로서 또는 인류 문명의 진정한 공존을 위한 탈중심화의 현대적 문명 개념으로서 지속적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아울러 ‘문명 간의 공존’이라는 현재적 의미로 탈바꿈되어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인신되고 있다.
이처럼 본 장에서는 문화와 문명의 서구적 개념사를 비롯해서 이 두 단어를 둘러싸고 전개된 서구의 복잡한 개념 논쟁을 검토함과 동시에 두 단어의 번역과 도입 시 벌어졌던 서구적 논쟁과 얽혀 있는 동양적 의미 전개를 분석했다. 그럼으로써 현대 여러 동서문명 담론의 심층적 이해를 제고시켜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문화학’ 연구의 결손을 보완하는 ‘문명학’ 정립의 가능성을 공론화하고자 했다. ‘문화학’의 활성화는 필연적으로 상보적 관계에 있는 ‘문명학’ 연구와 병행되어야만 그 함의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폭넓은 지평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장 〈서구 패권적 현대 문명 패러다임 비판과 그 대안 모색〉에서는 후쿠야마의 단수적 문명전파론과 헌팅턴의 복수적 문명충돌론을 중점적으로 고찰한다. 20세기 후반 탈냉전기 국제정치질서가 와해되고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그에서 기인한 군사적 대립이 종식된 상황에서 새천년 21세기의 국제관계와 세계체제를 ‘문명’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문명 패러다임’이 제시되었다. 이 논의가 기점이 되어 인류 미래의 해법을 공분모적 복합체인 ‘문명’에서 강구하려는 여러 형태의 현대적인 ‘문명 담론’이 폭발된 것이다. 3장에서는 여기에 부응하여 현대 문명 담론의 원형적 발제라고 할 수 있는 문명 패러다임을 단·복수적 문명론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대표적인 두 학자의 이론, 즉 후쿠야마의 단수적 문명전파론과 헌팅턴의 복수적 문명충돌론을 중심으로 현대 문명 담론의 이해와 전망을 시도했다.
개념사로 볼 때 ‘문명’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단수적singular 의미의 문명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수적plural 의미의 문명이다. 현대 서구에서는 동서 냉전의 종결과 함께 주로 두 방향에서 미래의 전망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현대 문명 담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후쿠야마의 단수적 ‘역사의 종말’과 헌팅턴의 복수적 ‘문명의 충돌’에 대한 논의다. 그러나 이 문명론적 미래 전망에는 탈냉전 시대의 ‘서구 중심적 패권주의’가 내장되어 있다. 다시 말해 양자에는 세계 문명을 ‘동’과 ‘서’의 분열 구도로 구획하여 서구의 이익을 조장하는 마니교적 이분법이 작동하고 있다.
이 장은 이러한 단·복수적 문명 패러다임의 치명적인 결점을 극복하고 문명 담론으로서의 본래적 기능을 복원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그 일환으로서 후쿠야마의 문명전파론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세계화’라는 문맥 속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분석과 비판 과정에서 발전적이고 체계적인 현대 문명 담론의 학문적 토대를 기초하고 참된 문명관의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했다. 진정한 의미의 ‘문명 담론’은 관점의 탈중심화 속에서 ‘모두가 누리는 행복’이라는 인류문명공동체의 진지한 염원을 담아내야 한다.
4장 〈세계화와 문명〉은 세계화 차원에서 비판적 문명학을 정식화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세계화는 일련의 서구의 세계 지배 전략인 문명화, 근대화와 함께 서구보편주의에 착근되어 있다. 서구제국주의와 연계된 세계화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문명사적 시각에서 세계화의 원초적 동인인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역사 궤적을 추적해야 한다. 이 연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제반 개념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세계체제의 기원과 해독을 읽어내고 논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로부터 유전된 현대 문명 담론의 여러 부정적 함의들을 읽어내고 그 역사 역기능적인 요소들을 제거시킬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장에서는 선행적으로 ‘문명’과 관련된 강권 이데올로기로서 서구보편주의의 역사적 유래와 전개 양상을 분석하고 본질을 규명하고자 했다. 나아가 서구 중심적 세계 이해와 관련된 서구제국주의의 여러 형태와 논거의 일단을 논파하고 문명론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비판적 현대 문명학 건립의 초석을 마련하고자 했다.
최근 ‘문화학’ 연구는 근대적 문화Culture 개념을 전제로 문화학을 세계적 근대성, 즉 ‘세계화’와 접목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 볼 때 문명 담론으로서의 현대 ‘문명학’ 정립 역시 근대적 문명Civilization 개념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근대성’과 접맥된 세계화 차원에서 연구를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 근대적 문명 개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문명 복수적 측면에서 인간 삶의 양식에 대한 미시적 차원의 문화를 포괄하는, 이른바 거시적 차원의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다. 다른 하나는 문명의 단수적 측면에서 야만과 상반되는 ‘진보’, ‘발전’, ‘도덕’의 의미다. 이 관점이 바로 타 문명의 가치와 특수성을 야만시하는 일방적인 서구의 단선적 진보사관으로 이어져 ‘서구보편주의’ 혹은 ‘서구중심주의’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서구의 팽창은 근대성과 결부되어 단일적 서구 계몽주의 이성의 고도의 획일화된 문화적 기획 속에 자리한다. 이른바 서구 헤게모니의 변형체인 문명화, 근대화, 세계화는 계몽주의 기획의 연장인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범주 안에서 구술될 수 있다.
현세기 문명단수론의 끝자락에는 부정적 세계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가 자리한다. 최근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정치프로젝트의 결과이자 구성 요소로 파악되며 기득권 이익의 극대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추진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 일련의 서구보편주의가 조장한 현대 문명의 제반 모순성들을 감안할 때 그 극복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먼저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문명의 단수적 의미에 대한 복수적 의미의 자성적 비판과 교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논단은 총체적 의미의 문명 개념을 활성화시키는 연구 작업과 관련된다. 문명의 진보적 범주가 단수적 측면에서 특권 문명의 권익을 수호하는 단선적 진보사관의 모체가 되었다면 총체적 의미의 범주는 복수적 측면에서 세계 문명의 평등 관계를 독려하는 학적 토대를 이룬다. 이 총체적 관점은 문명의 다원주의를 옹호하여 독점주의를 지양하고 문명 간의 차이를 상이한 문화소에 의한 것으로 인지케 한다. 또한 문명의 주체가 결국 인간을 최소 단위로 한다고 했을 때 현대 문명의 여러 폐단 역시 인간에 의한 극복을 상정해볼 수 있다. 이 방안은 시민 문화의 이상체로서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주변적 사유를 실천하는 현재적 의미의 ‘문명인’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제1부의 마지막 부분인 5장 〈현대 문명의 생태학적 전환〉은 현대 문명 담론을 생태학적 세계화 차원에서 체계화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아울러 단·복수론의 궁극적 지평의 융합으로서 메타 이론적 학문 토대를 기초함은 물론 최종적으로는 인간과 자연, 중심과 주변, 서구와 비서구 등의 이분화적 갈등 구도를 파기하고 생태학적 관계성 회복을 전제하는 생태문명의 정립을 목표로 한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여러 생태학적 위기는 단순한 물리적인 환경의 파괴를 넘어 더 많은 함의를 지닌다. 금세기 생태학적 진단은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에 연원한 현대 문명의 여러 폐단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수렴하는 것이다. 생태문명의 건설은 생태 회복과 관리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 문화 양식의 혁신과 관련된다. 또한 여기에는 세계화를 촉발시킨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근대성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서양과 동양이라는 제 존재의 관계망들을 파편화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진원지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관계성을 배제하는 이원적 근대성은 단수적 문명의 진보 신념으로 이어진다. 서구의 문명 개념에 내포된 ‘진보 대 야만’의 구획 의식은 단선적 진보사관에 연원한 서구보편주의의 세계적 동질화 과정의 근저를 이룬다. 그리고 여기에는 서구 문명의 패권을 강제하는 강권주의 논리가 함의되어 있다. 현재의 서구문명강권주의가 근대성의 닫힘과 두절의 이항 대립 의식에 근거한다면 무엇보다도 상호 주체적 연결 고리를 인정하는 생태 지향적 근대성으로서의 열림과 소통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복수적 근대성에 기초한 범인류 중심의 생태학적 관계망을 담보하는 ‘세계주의 시각’의 전일적 문명관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염원하는 새로운 문명관은 인권과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일체의 강권에 대한 저항과 해체다. 아울러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세계인이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는 상호 주체적 평등 관계를 기초로 한 범인류 중심의 유기체적인 세계주의 문명관의 각성과 구축이다. 이처럼 생태학적 문명관은 문명 자체나 문명 사이의 상호 관계에 관한 어떤 규범적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토대가 된다.
강조컨대 현대 문명의 내핵인 근대주의가 공존 이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생공영의 이념을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중심주의적 근대주의 문화를 비판하고 청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객 이분법의 타파 및 주체와 객체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이른바 대자연이 최고의 주체라는 자연중심주의로 회귀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 속의 모든 존재들이 저마다의 주체성을 소유하며 따라서 삼라만상이 존재의 가치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연 중심의 다주체적 공생주의 자연관’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연관을 문명론으로 치환해볼 때 ‘세계 문명 중심의 다문명적 공존주의 문명관’ 건설의 토대로 활용할 수 있다. 생태와 문명의 교차점에는 세계 문명의 소통으로서의 ‘생태문명’이 자리한다. 자연 중심적 세계관으로의 전회는 특정한 패권 문명 중심에서 세계 문명 중심으로의 인식 전환과 함께 그동안 주체와 중심의 그늘에 가려져 억눌리고 소외당했던 객체와 주변의 복권을 의미한다.
특히 서구의 이분법적 차별 구도는 근대성과 접맥된 세계화 이론에 깊이 착근되어 있다. 현재의 세계 문명은 ‘세계성 대 지역성’ 내지는 ‘근대성 대 전통성’이 대립하면서 서로 거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각축장이 되고 있다. 이것은 단수적 보편 문명의 세계적 일체화와 복수적 개별 문명의 자기정체성 강화의 문제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세계화와 관련된 현대 문명 담론의 최대 관건은 단·복수적 문명론의 역사순기능적인 면을 동시에 구현시킬 수 있는 문명보편주의와 문명다원주의의 화해와 회통에 있다. 즉 현재와 미래의 세계는 단일의 보편 문명과 고유한 특징을 지닌 복수의 개별 문명들이 중층적으로 공존한다고 보고 ‘문명다원주의를 전제로 한 보편 문명에의 지향’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또한 ‘보편 문명’이 태생적으로 서구제국주의와 접맥된다는 점에서 다원성과 타자성을 감내하는 생명관적 자애로운 보편주의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 장에서는 이 명제들의 충족 논거로서 생태문명의 핵심 규범과 운용 요칙들을 각각 제시했다.
제2부의 첫 부분인 6장 〈현대 문명강권주의 비판 담론〉은 반서구중심주의를 중심으로 집필된 글이다. ‘서구중심주의Eurocentrism(West-centrism)’란 동과 서라는 본질적인 분열 구도 속에서 동양을 타자로 하여 서양의 타고난 우월성을 강조하는 세계관을 말한다. 근대 유럽의 사상적 기반이 된 18세기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서구중심주의의 이면에는 계몽기에 비교적 정형화된 ‘문명’ 개념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문명 개념에는 서구화나 근대화의 특징이 함유되어 있다. 서구로 대표되는 제도와 가치가 보편성을 띠면서 ‘세계화’는 점차 서구화나 근대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인들은 세계를 유럽의 ‘문명인’과 나머지 세계의 ‘야만인’으로 구분하는 세계문명에 대한 차별 의식을 강화시켜왔다. 이로 볼 때 서구중심주의는 근대 영역의 신화적 재구성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전개된 서구중심주의는 서구예외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다. ‘서구예외주의’는 서구 문명이 특수적이고 예외적이라는 주장으로서 서구 문명의 독특성, 자생성, 항구성을 핵심 명제로 한다. 즉 서구를 제외한 세계 어디에서도 그처럼 합리적이고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문명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오리엔탈리즘’에는 동양이라는 타아를 뒤떨어지고 열등한 존재라고 부정적으로 정의하는 우월한 서양적 자아의 고정적인 심상이 깔려 있다. 이 양자는 동시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서구예외주의가 근대 초 서구인들이 서구 문명에 대해 구성한 자화상이라면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인들이 서구라는 거울을 통해 왜곡되게 구성한 비서구 문명의 상을 지칭한다.
6장은 이처럼 부당한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동과 서로 양분하여 중심 문명의 패권을 강제하는 서구문명강권주의의 탈중심적 해체를 목표로 기획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명패권주의 통제와 문명독점주의 행태에 저항하는 ‘세계주의 시각’의 여러 동서 자유주의 담론들을 검토해보았다. 결국 현대 문명 담론은 생태철학이 투영되거나 그와 밀접한 관계에서 진행되며 현재 인류의 문명은 역사상 세계 인류가 교호 속에서 함께 만들었다는 ‘인류운명공동체의식’을 각성시킨다. 아울러 그 공론은 생명과 인권,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타자와 소통하는 보편적 인류애의 생태학적 문명관, 즉 상호 주체적 평등 관계를 기초로 한 문명 공존의 ‘생태문명 담론’을 요청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7장 〈주쳰즈朱謙之문화철학의 현대 문명 담론적 현재성〉은 서구 패권적 문명 패러다임에 대한 동양의 대안 담론으로서의 가능성을 주제로 작성된 것이다. 이 글은 대표적인 현대 문명 담론으로 일컬어지는 문명 패러다임의 서구 중심적 패권주의 성향 극복과 참된 문명관의 모색을 위한 동양의 문화철학적 차원의 시도다. 현대 문명 담론의 최대 관건은 단일문명론과 복수문명론의 화해와 회통에 있다. 현재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는 현재와 미래의 세계는 단일의 보편 문명과 고유한 특징을 지닌 복수의 개별 문명들이 중층적으로 공존한다고 보고 ‘문명다원주의를 전제로 한 보편 문명에의 지향’으로 귀결된다.
이와 관련하여 주쳰즈의 문화철학은 그 안에 내장된 문화의 복수론적 다원주의 유형과 그 표현 형식으로서의 역사 진화 법칙, 그리고 미래의 보편 문명으로 구상된 예술 문화의 치밀한 운용을 통해 문명다원주의와 보편문명론 간의 상충점을 회통시킴으로써 양자의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구현시키는 논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나아가 단·복수론에 기초한 후쿠야마의 단일 중심적 문명전파론이나 헌팅턴의 복수 중심적 문명충돌론의 서구 패권적 성향 역시 예술 문화의 구도 속에서 극복될 수 있다. 또한 각 문화 유형의 유기적인 조합 관계나 예술 문화의 특성과 작용으로 볼 때 주쳰즈의 문화철학은 문명 간의 생태적 관계를 존중하는 생명 중심의 문화생태학적 원리를 함유하고 있다.
주쳰즈에게서 문화란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파악되며 그 자체가 창조와 진화의 속성을 갖는다. 더욱이 문화의 이상향으로 제시된 예술 문화는 생명성, 예술성, 전체성, 조화성, 평화성, 대동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각 문화 유형의 보편적 이념 속에 편재하여 생명소로 작용하고 향유된다. 이런 의미에서 주쳰즈의 문화철학은 서구 문명 패러다임의 대안 담론으로서 범인류 중심의 유기체적인 세계주의 문명관, 즉‘문명생태주의 담론’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각 문명의 본질적·역사적 유형을 분석해내고 문명 간의 상호 교호 법칙들을 통찰해내는 ‘문명 유형 철학’ 내지 ‘문명 교류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는 현대 문명 담론으로서의 현재성을 지닌다.
8장 〈중국 이학이 근대 프랑스 계몽주의에 미친 영향과 그 문화철학적 의미〉는 프랑스 데카르트 학파의 좌파 벨Pierre Bayle과 우파 말브랑슈Nicolas de Malebranche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이 장은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문화철학적 극복과 대안 모색이라는 차원에서 중국의 ‘송유 이학’이 17∼18세기 근대 유럽 ‘계몽주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구체적으로 수용자의 주체적인 관점에서 프랑스 계몽주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 학파, 즉 좌파인 회의론적 진보주의자 벨과 우파인 호교론적 보수주의자 말브랑슈의 중국 형상을 중심으로 살핀다. 이들은 데카르트 철학 자체가 안고 있는 ‘혁명성’과 ‘보수성’에 근거하여 이학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비종교적 이성주의 문명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과 태도를 취했다. 벨이 찬동 입장에서 중국 문명을 이성 세계의 전범으로 파악해 유럽의 수구 문화 비판과 혁신을 위한 강력한 사상적 원군으로 삼았다면, 말브랑슈는 반대 입장에서 중국 문명을 위협적인 이단 세계로 규정하여 유럽의 신성 문화 수호를 위한 비판과 공격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러한 벨과 말브랑슈의 논의와 해석은 계시신학과 무관한 중국의 자연 이성관을 적극 부각시켜 유럽의 계몽주의 지식인들에게 진보적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그것은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에게 반향을 일으켜 프랑스의 무신론, 유물론, 혁명철학으로 화하여 종교의 허위성을 폭로하고 전제 정치를 타도하는 프랑스 정치혁명의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끝으로 제2부의 마지막 부분인 9장 〈조선조 주자학의 한국 유학적 전개 양상〉은 동아시아 문화강권주의라 할 수 있는 국제 이데올로기 중화주의Sinocentrism(또는 Chinese ethnocentrism)에 대한 한국 유학적 해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비판적 문화유산의 발굴이라는 차원에서 한국적 인성론을 통한 한중 문화의 공유성과 평화 공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장에서는 조선조 주자학—‘이기심성론’의 한국 유학적 전개 양상을 주자의 ‘이동理同’, 율곡의 ‘이통理通’, 낙학의 ‘성동性同’, 북학파의 ‘인물균론人物均論’으로 연결되는 한국 유학의 독특한 사상사적 체계를 중심으로 논했다. 이 과정에서 율곡의 이통기국론과 호락논쟁의 관계와 그 투영, ‘인물성동이논쟁’으로 인한 낙론계의 사상 성립, 낙학과 북학의 사상적 계기, 그리고 한국 근대화로 이어지는 한국 사상사의 철학적 토대와 흐름을 이해하고자 했다.
특히 북학파의 보편동일시적 화이일론華夷一論으로 귀결되는 조선의 이기심성론은 주자 성리학의 한국적 발전임과 동시에 주자학에 내재된 ‘화이차별주의’ 성향의 극복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 글의 전체적 논지는 어떤 면에서는 ‘한족漢族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주자학을 한국적 상황으로 융해하여 결국에는 동아시아 중세 국제 이데올로기 화이론華夷論적 성향을 탈색시켜 인류 보편적 사상으로 재구성하는 한국 사상사의 자생성을 읽어내고자 했다.
중국과 다른 주자학의 한국 사상사적 발전 양상은 문화의 신진대사인 외부 세계와의 끝없는 대등적 조응을 지향하며 현대에 와서도 한중 문화 교류의 공유성과 평화 공존 의식에 대한 문명 담론 차원의 중요한 전통적 문명 공존의 전범을 제공해준다. 이를테면 한국 이기심성론의 이통적 소통성과 화이일론은 문화강권주의에 대한 억제와 저항의 현대적 의미를 지닌다. 그것이 과거의 전통 시대에는 특권적 중심 문화를 향한 소외된 주변 문화의 결손된 권리 찾기였다면, 이제 그것은 생명의 존엄성에 입각한 우리는 하나라는 상호 동일성의 ‘평화공존의식’이라 할 것이다.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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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전홍석
2006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중국 최고의 원로학자 멍페이위안蒙培元 교수 지도 아래 동서 철학 교류사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중국 톈진외국어대학교 객좌교수, 중한무궁화국제교육원中國天津FESCO外企留學有限公司天津市外企人才培訓學校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이상적인 한중교육문화교류와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평소의 학문적 신념을 실천했다. 현재는 정수일 소장의 한국문명교류연구소와 동국대 황태연 교수가 이끄는 패치워크문명 연구모임에 참여하면서 저역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동국대, 조선대, 한세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의 관심 분야는 현대 문명학 구축이라는 큰 범주 속에서 21세기 문화와 문명이 국제질서와 세계체제에 어떤 의미를 갖고 그것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특히 향후 기독교 문명권과 유교 문명권이 조형해나갈 세계구도 및 그 역학관계에 관한 다양한 문명(문화) 철학적 접근은 평생에 걸쳐 탐구하고 싶은 지속적인 연구 방향이다. 저서로는 『주겸지 문화철학 연구』, 『조선후기 북학파의 대중관 이해』가 있으며, 역서에는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 『문화철학』, 『중국 유가문화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철학적 성찰』, 『중한관계사: 근대편』, 『중한관계사: 현대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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