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받아치는 재주가 있었으면 좋겠다. 필요한 순간에 바로 망설이지 않고 할 말을 하고, 더듬지 않고 꼭 들어맞는 말을 찾아낼 수 있다면, 차분하게, 적절하게, 재치 있게 상대의 말문을 막아 입을 닥치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일을 아주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아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 짜증을 내고 토라진다. 십 분 뒤, 한 시간 뒤, 심지어 이튿날이 돼서야 끝내주는 대답이 갑자기 저절로 떠오른다. 언제나 너무 늦다. 멍청이, 덜떨어진 자식, 모자란 놈, 웃음거리라는 생각이 들 때, 상황을 다시 그려보며 대담하고 강한 내 모습을 상상하고, 멋진 역할을 맡아 대사를 다시 써보는 일밖에 할 수 없을 때, 후회만 남아 있을 때에야 말이다.
목욕물이 너무 뜨거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꼭 어렸을 때 같다.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열대지방에서 살 때는 샤워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건 나의 사치였다. 그 정도로 언제나 너무 더웠던 것이다. 씻고 나면 더 덥고, 수도꼭지를 잠그자마자 땀범벅이 돼버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하루에 다섯 번은 샤워를 했다.
여기 살 때, 그러니까 본토에서는 어렸을 적에 일요일 아침이면 목욕물을 받아서, 바구니 깊숙이 넣고는 잊어버린 사과 껍질처럼 피부가 쭈글쭈글해 질 때까지 욕조 안에 들어가 있곤 했다. 그 속에서 상상을 했다. 비누 거품은 빙산이 되었고, 내 무릎은 화산섬으로 변했으며, 성기는 네스 호의 괴물이 되어 이따금씩 수면 위로 코를 내밀었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엄지와 검지로 코를 막으며 잠수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지 계속 생각해 보기도 했다. 머리를 물속에 넣고 있으려다가 욕조 안에서 익사할 수도 있을까?
그때처럼 오늘 아침 내 몸은 발만 빼고 거의 다 물에 잠겨 있다. 발은 차가운 타일벽에 기대놓아야 한다. 욕조 속에 담그기에는 이제 다리가 너무 길어졌기 때문이다.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이 식기 시작하면 발가락으로 수도꼭지를 조절해서 더운물을 틀 수 있으니까.
얼굴 중에서 코와 눈만 물 밖으로 나와 있다. 내 숨은 진공상태로 나온 우주 비행사의 숨처럼 내 안에서 울린다. 또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는 세상이란 것은 먼 데서 들리면서도 뚜렷한 바깥 소음과 좀더 가까이서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로 간추려졌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별것도 아닌 것. 삶.
이렇게 마음 가는대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도 오랜만이다. 뇌는 미친 듯이 빨리 움직이고, 생각은 수도 없이 겹쳐지고, 예전 일과 요즘 일이 정신 없이 뒤섞인다. 어떤 영화도, 어떤 책도 이걸 그대로 보여줄 수 없다. 지금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마요트의 영상을 본다. 어린 시절의 느낌이 나를 간질이고, 지난 몇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이 연달아 지나가고, 오늘 아침 아빠에게 해 줬어야 할 말이 다이빙대 끝에 앉듯 내 혀끝에 올라앉는다.
곧 할리우드식 아침식사 장면을 상상해 볼 참이었기 때문이다. 내 맥빠지는 어휘, 확신 없는 목소리, 기름지고 여드름 난 피부를 윌 스미스의 건방진 자신감과 바꿔서 말이다. 아빠가 할 말이 없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했을 때 대꾸했어야 할 말은 이번에도 너무 늦게 떠오르겠지.
“아니, 대체 뭐가 되려고 이러냐, 위고? 널 어쩌면 좋겠냐? 말 해 봐라, 좀 들어보자! 앞으로 뭘 하고 싶냐?”
아무것도 아닌 말 같지만, 아빠가 부모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이 말을 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걱정과 분노, 도발, 경멸, 실망과 애정이 뒤섞인 목소리 말이다.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는 잡탕인 셈이다. 아빠가 얼마나 쿨하고 나한테 신경을 쓰는지를 보여주는 말과 말투이다. 또 내가 배은망덕한 아들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어른이 되면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게 될 거라고 귀띔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빠의 질문은 아무 대답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죄책감, 의혹, 분노, 실망이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누가 여기에 대답할 수 있단 말인가? 윌 스미스 빼고 아무도 없다. 그 사람한테야 대사를 써주는 시나리오 작가 사단이 있으니까.
말을 받아치는 재주라는 건 결국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싸움을 하거나 잠에서 막 깨어나도 머리모양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다. 진짜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삶에서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지금 여기 목욕물 속에서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아빠한테 대답할 거리를 찾으려 하는 나처럼, 지난 다섯 해의 필름을 다시 돌려 보고 있는 나처럼.
1부 세상의 끝
1장
마요트에 있을 때, 나는 그곳이 싫었다. 그 섬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떠나온 뒤에야 그곳이 나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쪽으로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두가 그 반대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엄마 아빠가 그곳에서 2년 내지 4년간 살게 됐다고 알렸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엄마 아빠가 우리, 그러니까 나와 여동생 리디에게, 우리가 늘 취침등 대신으로 쓰던 조명 지구본을 짚어 거기가 어디인지 보여준 게 기억난다.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 사이의 아주 작은 점이었다. 인터넷에서 몇 가지 추가 정보를 찾았다. 마요트, 프랑스령 해외 공동체, 인구 16만 명 남짓, 면적 373㎢, 프티트 테르와 그랑드 테르라는 두 섬으로 구성, 세계 최대 규모의 산호초 군락으로 둘러싸여 있음. 내가 찾아낸 몇 안 되는 사이트에는 종려나무와 바오밥나무, 짙은 밤색 모래사장, 이국적인 꽃, 색색의 물고기 수백 종과 바다거북 사진들뿐이었다. 지상낙원이었다. 일곱 달 후 열네 시간 비행 끝에 파만지 공항에 도착해서 보게 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기술적 결함 때문에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대기한 여덟 시간과, 비행기 창을 통해 저 멀리 열기에 흔들리는 스모그밖에 알아볼 수 없던 카이로에 임시 기착한 시간을 빼고도 장장 열네 시간.
마요트까지 직항 편이 없어 우리는 레위니옹을 경유했다. 그 후로 4년간 여러 차례 방학을 통해 잘 알게 될 섬이었지만, 그날은 겨우 기후를 접할 기회밖에 없었다. 비행기에서 밀폐형 통로를 지나 바로 공항으로 갔기 때문에, 바다와 대륙을 수없이 지났어도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전 세계 공항들을 잇는 냉방된 공기밖에 맡지 못했다.
밤에 파만지 공항의 주기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 충격은 대단했다. 노천 사우나로 갑자기 들어가는 것 같았다. 열기 때문에 땅바닥에 찰싹 달라붙는 기분인 데다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습기 때문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밤이 깊어 공항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우리는 이 끝없는 여행으로 멍해 있었다. 리디는 당시 여덟 살이었고,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공항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승객 행렬을 따라가는 동안 그 애의 손을 잡아 주었다. 직원들은 세관 창구까지의 길을 표시해 주는 회중전등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불러 대는 소리가 들려와 보니 사람들이 철책 뒤에 모여 도착하는 가족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형제, 사촌, 동료 혹은 이웃으로, 대개 섬의 원주민인 마오레족이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어서 비행기는 노인부터 아이까지 가족 단위 승객들로 만석이었다. 뿐만 아니라 본토에서 오는 공무원들도 여럿 있었다. 이들은 해외 파견 근무자를 줄여 ‘파견자’, 혹은 마오레족이 백인을 가리키는 대로 ‘와중구’라고도 한다. 단수형으로는 ‘음중구’, 비행기에서 나오면서부터 4년 동안 나도 음중구가 되었다.
쿵쿵거리며 여권 검사대로 향하는 이 소란스러운 무리에 섞여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오랜 시간 비행 끝에 열대지방에 다다르고 보니, 휴가지에 막 도착한 것 같았다. 사실은 개학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내 세계가 뒤엎어지고, 내 인생이 뒤흔들린 것이었다.
그다음 시간에 대해서는 급박한 느낌만 남아 있다. 마요트에서 보낸 세월을 통해 알게 된 모든 것에 해당되는 느낌이기도 하다. 모든 게 빨리 움직이는 소란스러운 섬.
마요트를 ‘묘사’할 수도,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을 수도 없고, 내가 그곳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인상, 뒤죽박죽된 모습, 대체로 상반된 느낌, 도무지 서로 연결하기 힘든 일화들만이 남아 있다. 난 거기서 단지 잠시 머무는 사람, 자기 자신, 과거, 버릇, 편견과 확신에 겨워 그 섬의 찰나적인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음중구’였을 따름이다. 무거운 과거와 강요된 미래가 한데 뒤섞여 있는 가운데 자기 자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현재 말이다.
세관을 통과해 짐을 찾고 보니 엄마 아빠의 친구인 알린 아줌마와 장-마르크 아저씨 부부가 마중 나와 있었다.
“빨리, 빨리!”
두 사람이 서둘러 인사하며 말했다.
“마지막 배를 안 놓치려면 빨리 움직여야 돼.”
알린 아줌마와 장-마르크 아저씨는 우리 엄마 아빠처럼 중학교 교사이다. 아줌마는 프랑스어, 아저씨는 미술을 가르친다. 엄마 아빠하고는 베튄에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며 알게 된 사이였지만, 두 사람은 곧이어 해외 영토 전문가가 되었다. 정확히 얼마 동안인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여러 해 동안 과들루프에 있었고, 마요트에 온 지도 벌써 2년이 되었다. 그런 다음에는 퇴직 때까지 레위니옹에 정착했다가 꿈에 그리던 집을 사서 본토로 돌아갈 계획이었다(벌써 진행 중이다). 열대지방에서의 모험을 해 보라고 부모님을 설득한 것도 두 사람이었다. 그전까지 엄마 아빠는 파드칼레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 경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짐을 자동차 트렁크 안에 집어넣고, 넷이서 모두 뒷좌석에 올라탔다. 알린 아줌마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창문 내려.”
장-마르크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며 우리에게 말했다.
“에어컨이 고장 났거든. 마요트에선 모든 게 고장 나지. 곧 익숙해질 거야.”
나는 이미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땀범벅이었고, 티셔츠는 걸레처럼 쥐어짜기 좋은 꼴로 피부에 들러붙어 있었다. 공항에서 멀어지는 동안 열린 차창으로 들이치는 무더운 공기는 달짝지근한 향을 풍겨 메스꺼울 지경이었다. 알린 아줌마는 차를 빨리 몰았고, 자주 경적을 울렸다. 우리가 지나는 길에는 가로등이 없었지만, 헤드라이트가 도중에 보행자 무리를 비춰 주었다. 사방에 사람, 소음, 목소리 천지였다. 리디는 좌석에 앉자마자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버렸다.
마침내, 차가 커브를 돌면서 갑자기 나타난 달 덕분에, 우리가 해안을 따라 달리고 있음을 알았다. 매년 고래들이 산호초로 둘러싸인 얕은 바다인 초호 속에서 번식을 하러 오고, 돌고래를 수십 마리씩 보게 되는 일도 흔하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런 정보에 매달려서라도 이 섬에서 살고 싶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려고 헛되이 애를 썼다. 바티스트와 니코를 비롯해 이제 전부 나에게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내 친구들은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이 섬에서 말이다.
장-마르크 아저씨는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쉴 새 없이 말을 했지만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아저씨는 마요트에 대한 모든 것을 10분 안에 다 얘기해 주려는 것 같았고, 그런 열의는 경고로 보였다.
“다 왔다.”
알린 아줌마가 경적을 울려 대며 서둘러 부두 끝을 향해 차를 몰고 있을 때 아저씨가 말했다. 그곳에는 고물이 열린 커다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키가 큰 마오레족 해운회사 직원이 너무 늦었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알린 아줌마는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뚫고 들어가려고 했다. 마오레족이 커다랗게 손짓을 하기 시작하자 장-마르크 아저씨가 아줌마에게 멈추라고 했다. 그러더니 차에서 내려 그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렴, 들어갈 수 있죠. 보세요, 자리도 충분하네요!”
아저씨가 마침내 말했다. 그런 다음 알린 아줌마 쪽을 돌아봤다.
“자! 저쪽, 측면으로!”
마오레족은 체념하고는 알린 아줌마가 차를 몰게 내버려 두었다. 바퀴가 배 뒤쪽 승강판으로 기어오르는 순간 차체 아래쪽이 거칠게 덜컹거렸다. 그러더니 차는 단번에 다른 차 두 대 사이에 바싹 붙어 자리 잡았다. 곧이어, 휘파람 같은 긴 소리가 배의 출발을 알렸다. 우리가 방금 넘어온 경사면이 차 바로 뒤에서 들어 올려지더니 배가 둔탁한 엔진 소리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간발의 차이였어! 조금만 더 늦었어도 프티트 테르에서 잘 뻔했지.”
알린 아줌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티트 테르에서 그랑드 테르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내 불안을 부추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혼란스럽고, 모든 것으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배 중심부에는 승용차, 소형 트럭, 스쿠터가 즐비했고, 우리는 승객으로 가득한 통로 쪽으로 올라갔다. 곳곳에 천으로 된 가방, 바나나 송이, 당시에는 이름을 알지 못했던 식물 다발 같은 짐이 있었다.
“마무주에 도착한다. 주도 말이야.”
장-마르크 아저씨가 설명해 주었다.
저 멀리, 뱃머리가 가리키는 쪽에 불빛 몇 개가 보였다. 그러나 주도의 규모를 짐작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랑드 테르는 그저 푸른 밤하늘 위로 모습을 드러낸 어두컴컴한 덩어리에 불과했다. 불빛이 띄엄띄엄해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마다가스카르 상공을 지날 때에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광대하고 황량한 땅덩이들과 희미한 불빛으로 표시된, 점점이 흩어진 도시들이 불과 몇 군데 보일 뿐. 밤에 상공에서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와 흡사한 유럽과는 완전히 달랐다.
주위의 많은 승객들은 스웨터나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뭍에서보다야 선선하기는 했어도, 그래도 역시 내 눈에는 너무 더워 보였다. 리디는 내 옆에 달라붙어 젊고 늙은 마오레족 여자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주름이 머리부터 발까지 잡힌 원색 원피스인 전통 의상을 입고, 얼굴에는 마른 진흙을 얇게 바른 여자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미용팩이었다. 다른 여자들은 본토식 복장이었고, 남자들은 대개 천으로 된 셔츠와 바지를 입고, 대부분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다들 시마오레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프랑스어가 섬의 공식어이자 학교에서 사용되는 언어이기는 했지만, 일상에서는 단연 시마오레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우리는 마침내 도착했고, 이번에는 알린 아줌마 차가 가장 먼저 뭍에 내렸다.
마무주의 거리들은 파만지에서 자우지로 가는 길에 지나온 거리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바글거렸지만,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오후 다섯 시만 되면 해가 저무는 열대의 밤에 익숙하지 않았다. 프랑스 본토와 도시에서만 자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도시의 불빛이 밤을 위협하는 곳 말이다. 마요트에서는 주도 한복판이라 해도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 내가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가 살 집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집이 비지 않아서, 열흘 동안 마무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기로 되어 있었다. ‘바오밥, 냉방 완비, 탁 트인 초호 쪽 전망.’ 게스트하우스의 인터넷 사이트 광고 문구였다.
장-마르크 아저씨와 알린 아줌마는 길 떠난 지 5분 만에 우리를 이 작고 하얀 집 앞에 내려주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암흑뿐이었다. 그렇지만 말소리가 들렸고, 라디오에서는 최대 볼륨으로 음악이 흘러나왔으며, 염소 울음소리와 아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오밥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50대의 마르송 씨 부부가 우리를 맞아 방까지 안내해 주었다.
“피곤하시겠어요, 비행기가 연착했으니.”
피곤하다, 적절한 말이었다. 하지만 세 시간 후에도 나는, 들어올 때 나를 엄습한 냉방 중인 방 안의 상대적인 서늘함에 익숙해진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도착하고서 바로 샤워를 했다. 욕실에는 냉방 시설은 없었지만, 천장 가까이 벽에 나란히 뚫린 정사각형 구멍 두 개로 ‘통풍이 되었다’. 그 틈으로 바로 옆에서 나는 이웃들의 소리, 음악, 내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언어가 들려왔다……. 본토를 떠나오기 전, 열대지방 곤충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나는 파드칼레에 살 때부터 거미나 메뚜기를 끔찍하게 싫어한 터라, 마요트에 도착할 때 ‘벌레들’이 꽤나 걱정스러웠음을 고백해야겠다. 마요트에는 ‘스콜로’라 불리는 왕지네만 빼고는 위험한 곤충이 없다는 사실을 리디와 함께 어느 안내서에서 읽었는데도 말이다. 이 까만 지네의 일종은 아주 작거나 15센티미터 정도 길이인데, 물려도 죽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 한다. 샤워 부스 안으로 한 발을 넣는데 갑자기 벽 위쪽에 뚫린 구멍 중 하나에서 재빨리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시선을 끌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더듬이 두 개와 엄지손가락 크기의 통통하고 붉은 몸통이 보였다. 비명을 지르자 ‘괴물’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번개처럼 샤워를 했다. 벌레가 나와 함께 씻고 싶어할 경우에 대비해 시선은 환기구에 고정한 채였다.
나는 여동생과 방 하나를 같이 쓰게 되었다. 방은 문을 통해 부모님 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방에는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리디는 벌써 침대에 누웠지만 아직 잠들어 있지 않았다.
“우리 여기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내가 꽃무늬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데 리디가 물었다.
그때 엄마가 잘 자라는 인사를 하러 들어왔다. 엄마가 우리 둘에게 입을 맞춰 주자 리디가 이번에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 아가. 내일이면 다 잘될 거란다…….”
엄마가 불을 끄고 나가자 다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곧이어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소리가 두 번 연달아 들렸는데, 혀를 차는 소리 같았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자 혀 차는 소리가 다시 두 번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리디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몰라.”
내가 속삭였다.
소리가 다시 들려왔을 때, 나는 침대 머리맡 스탠드를 켰다.
곧바로 벌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벽과 천장을 눈으로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불을 끄니 혀 차는 소리가 곧바로 다시 시작되었다. 똑딱…… 똑딱……
“오빠 옆으로 가도 돼?”
리디가 묻더니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리디는 내게 바짝 기댔다. 열두 살인 내가 볼 때 동생은 너무나 작고 가냘파서 한순간 내가 크고 강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잠시뿐, 어둠 속에서 작게 혀 차는 소리가 새로이 들려오자 다시 불안감이 밀려왔다.
몇 분이 지나자 리디가 잠들었음을 알아차렸다.
소리는 멈췄지만, 나는 몇 시간이 지나서야 불안하게 잠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워 있자니 심장은 너무 빨리 뛰었고, 귀는 아직도 비행기 엔진 소음으로 윙윙거렸다. 며칠 전부터 먹고 있던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 때문에 구역질도 났다. 나는 에어컨이 규칙적으로 웅웅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창문 바로 아래인 듯 아주 가까운 곳에서 여전히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웠다. 무엇이? 멀리 왔다는 사실, 미지의 것, 이 지방의 어둠, 소리, 냄새, 무섭도록 가까이에 있는 것 같은 벌레들……. 나는 ‘낯설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 단어의 뜻이 온전히 이해되었다. 나는 내 집에서 멀리, 너무 느닷없이 멀리 떠나와 있었고, 4년간 새롭게 ‘내 집’이 될 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랬다. 거긴 바로 세상의 끝이었다.
(1장 전문)
---------------------------
작가 소개
미카엘 올리비에
1968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피아노와 합창을 공부했다. 그 후 영화 학교에 다녔고 텔레비전 방송 제작 관련 일에 몇 년간 종사했다. 스물다섯 살 부터는 글 쓰는 데만 전력하기 시작하여, 텔레비전과 영화 시나리오 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로도 일했다. 지은 책으로 『뚱보, 내 인생』『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었다』『이덴』이 있다.
---------------------------
역자 소개
윤예니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루앙대학교에서 문화 프로젝트 기획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 문학을 프랑스어로, 프랑스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