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나는 한국 밖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내가 바깥세상 일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꼽자면 세 가지 정도로 추려진다. 첫째로 평화연구자이자 평화교육자로서의 관심이다. 지구촌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 특히 문제가 되는 일들을 알아야 그 문제들의 평화적인 해결을 고민하고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참고도 할 수 있다. 즉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관심이다. 둘째로 지구촌 곳곳에 사는 사람들과 친구로 또는 아는 사람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관심이다. 지구촌 어느 한 곳에서 일이 생기면 그곳에 있는 사람이 생각나고 그래서 관심 있게 뉴스를 보게 된다. 때로는 그곳에 있는 사람이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공유하기도 한다. 셋째로 세계시민으로서의 관심이다. 이것은 앞의 두 경우와는 달리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인데 지구촌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세계시민으로서의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특별히 국제 뉴스를 보면서 한국에 사는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세계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현저히 높아졌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이 정치, 경제, 문화, 체육, 구호 개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 성장과 함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한국 밖의 세상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 사람들이 다양한 지구촌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는 ‘한류’라는 문화적 현상 덕분에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아쉬운 것은 ‘한류’라는 새로운 현상을 접하면서도 지구촌 전체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관심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세계가 한국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더 바란다. 또한 여전히 세계시민으로서 지구촌의 일에 관심을 두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한국에 이익이 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촌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면 당연히 국제 뉴스를 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이 가장 소홀히 다루는 분야 중 하나가 국제 뉴스다. 방송이나 신문은 시청자들 또는 독자들이 한국 밖의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국제 뉴스를 많이 다루지 않는다. 또 다룬다고 해도 아주 간략하게 일어난 일만을 사실 중심으로 보도한다. 그래서 뉴스를 봐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사건 뒤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언론이 국제 뉴스를 다루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구촌에 사는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고 다른 하나는 다른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한국과 관련이 있을 때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그 사건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이나 사건의 전개 과정을 생략하고 주로 현재의 상황만 보도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친절하지 않은 보도다.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얘기한 나의 관심사와 고민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또한 독자들에게 지구촌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세계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해보도록 권하기 위해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구촌 사람들과의 접촉과 교류가 많아진 것 외에도 한국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구촌 구성원으로서 한국 사람들의 책임도 커졌다. 이제는 단지 한국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어떤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한국에 관심을 가져주기만을 바라고 그것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 지구촌 전체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구촌 일에 대한 정보를 얻고 관심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국제 뉴스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국제 뉴스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방식은 너무나 피상적이어서 독자들에게 깊고 넓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공백을 메워보자는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또 다른 이유다.
이 책은 여덟 가지 지구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드넓은 지구촌의 상황을 살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쓴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 이야기 안에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각 이야기는 모두 한 꼭지의 국제 뉴스에서 시작된다. 나는 몇 줄에 불과한 그 한 꼭지의 뉴스 속에서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업을 했다. 각 장의 처음에 소개된 뉴스는 뒤에 이어지는 많은 이야기의 배경이나 시작 역할을 할 뿐 그것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이런 방식 때문에 이야기의 제목은 하나지만 그 속에는 여러 개의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어서 제목이 얘기하는 주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단지 여덟 가지가 아닌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십 가지의 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지구촌 전체가 각각의 문제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했으며 지금도 직접적, 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지구촌의 문제를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직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하거나 비밀리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나라들이 대부분 미국을 포함한 몇몇 강대국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들 강대국의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인 행태들을 비난하는 것이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비록 몇몇 강대국들에게 더 큰 책임이 돌아갈 수는 있지만 지구촌에 있는 다른 나라들이라고 해서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다. 이제는 강대국들에게 적극 협조하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 과거 강대국들이 했던 비윤리적인 일들을 따라 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책임 문제도 예전과는 다르다. 오늘날에는 국적에 따라 자동적으로 개인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어느 나라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들은 지구촌의 문제에 원인을 제공하고, 보편적인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결국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국적을 따지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함께 노력해야 지구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내가 이 책을 쓰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독자 집단은 청소년, 청년, 전업 주부다. 염두에 두었다는 얘기는 그들만을 위해 책을 썼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단에 비해 국내외 소식을 챙겨볼 여유가 없는 그들까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뜻이다.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입시 경쟁 때문에, 청년들은 취업 준비 때문에, 그리고 전업 주부들은 육아와 살림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세상의 소식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소외된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집단이다. 청소년과 청년은 지식의 토대를 쌓고 역량을 계발해 바람직한 미래 사회를 만들어갈 사람들이다. 그런데 입시와 취업 준비 때문에 다양한 정보를 접하며 자신의 꿈을 생각해볼 기회를 잃고 있다. 나는 그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세계시민으로서 지구촌 다른 곳의 사람들과 삶을 공유하고 기쁨과 고민도 함께 나눌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보고 직업도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전업 주부는 한 가정 안에서 육아, 살림, 가족 관계에만 집중함으로써 다방면으로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경제 및 사회 활동을 통해 한국과 지구촌의 바람직한 변화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집단이다. 나는 그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과 지구촌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보고 한국 사회는 물론 지구촌의 변화에 기여할 방법을 모색해 보길 바란다. 물론 청소년, 청년, 전업 주부 외에도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 속에서 다양한 분석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얻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지구촌을 변화시키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덟 가지 지구촌 이야기는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선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하나 하나가 지구촌 전체와 연결돼 있고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로 믿었기 때문에 선정했다. <천연자원의 저주>는 단순히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에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받는 고통은 지구촌 전체의 경제 활동과 관계돼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세계 식량 위기는 천재일까, 인재일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재라고 단정하지만 인재라고 볼 수도 있는 세계 식품 가격의 인상이 지구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달콤한, 그러나 쌉싸름한 초콜릿>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아동 노동 문제는 물론 코코아 생산과 관련된 전쟁, 공정무역, 불공정한 세계 경제 구조 등의 문제도 다루고 있다. <인도적 군사개입>은 2011년 가장 중요한 세계 뉴스 중 하나인 국제사회의 리비아 군사 개입을 다루고 있다. 다른 역사적인 사례들을 통해 인도적 목적의 군사 개입이 가지고 있는 이론적 타당성과 현실적 한계를 설명한다. <뿌리째 뽑힌 사람들>은 세계 난민에 대한 이야기로 난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특별히 여성 난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관광객이 다 써버린 전기>는 여행, 특히 개발도상국으로의 여행이 그곳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여행자들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을 다뤘다. <이상한 나라 아프리카>는 한국 사회에 만연돼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되고 부정적인 인식의 근본원인과 그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9.11 테러 10년, 아프간 전쟁 10년>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충격이었던 9.11 테러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프간 전쟁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또한 아프간 전쟁이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지구촌 곳곳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소개한다. 마지막 장인 <평화학이 들려준 폭력 이야기>는 끝맺는 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른 장들과는 다르다. 이 장은 왜 평화연구자, 그리고 평화학이 폭력을 자세히 다루는지, 그리고 여덟 개의 이야기를 왜 폭력 이야기라고 하는지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앞의 여덟 가지 이야기를 좀 더 분석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마지막 장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쓴이로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좋은 공부 자료로 사용하길 바란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여덟 가지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지구촌 사람들의 삶을 넓고 깊게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책의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관련된 다른 국제 뉴스들도 찾아본다면 지적 호기심도 충족시키고 지구촌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가족, 학교, 직장, 마을 내에서 작은 공부 모임을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공부 모임을 위해 각 장의 끝에는 토론을 위한 질문을 몇 개씩 첨부했다. 물론 그 질문들은 공부 모임 진행자를 돕기 위한 시범 질문들에 불과하며 얼마든지 다른 질문을 만들어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다. 책의 맨 끝에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사나 공부 모임 진행자를 위한 몇 가지 조언도 첨부했다.
2012년 1월 정주진
1장
천연자원의 저주
천연자원은 하늘의 축복이다. 노력 없이 얻어진 천연자원을 수출하면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고 풍요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천연자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천연자원은 하늘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그런데 그 저주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탐욕스럽고 무관심한 사람들 때문에 생겼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묵인하고 나아가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지구촌에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그런 저주의 뿌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국제 골칫거리가 된 소말리아 해적
2011년 2월 22일 인도양에 면해 있는 소말리아 해역에서 네 명의 미국인들이 해적들에 의해 납치된 후 4일 만에 살해됐다. 모두 50~60대인 두 쌍의 부부는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던 중이었다. 미국 해군이 구출 작전을 폈지만 군인들이 배에 오르기 직전 해적들은 네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구출 작전 중 두 명의 해적도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살해된 이틀 후 한 덴마크 가족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납치됐다. 부부와 아이들 세 명으로 된 이 가족 역시 두 명의 선원과 함께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던 중이었다. 소말리아 해적이 두 요트를 납치한 것은 물론 몸값을 노렸기 때문이다. 요트 세계 일주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런 여행이기 때문에 해적들이 이들을 납치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로 대형 화물선이나 어선을 납치하던 소말리아 해적들이 소규모 요트를 납치하는 것은 최근에야 생긴 일이다. 해적들이 목표물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소말리아 해적은 국제적인 골칫거리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주로 인도양에 면한 소말리아 동쪽 해역과 아덴만(Gulf of Aden)에 면한 소말리아 북쪽에서 활동한다. 예멘과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한 아덴만은 세계 무역선의 20%가 드나드는 곳이다. 선박들은 아덴만을 거쳐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후 거기서 다시 지중해로, 그리고 대서양으로 항해한다. 이 항로는 인도양을 거쳐 대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다. 선박들이 많으니 해적들에게는 최고의 활동 장소다. 이곳을 지나는 한국 선박들도 해적의 공격을 받곤 한다. 2006년 이래 7건의 한국 배와 선원 납치 사건이 발생했고 수십 일에서 거의 200일에 가까운 오랜 협상 끝에 막대한 몸값을 주고 풀려났다.
2011년 들어 소말리아 해적들의 공격과 납치는 대폭 증가했다. 1991년 해적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이 시작된 이래 3개월 동안의 수치로는 최고를 기록했다. 2011년 1월~3월 사이 전 세계적으로 142건의 해적 공격이 있었는데 그중 97건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발생했다. 2010년 1월~3월 사이에 35건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발생했던 것에 비하면 약 2.8배나 증가한 수치다. 2011년 1월~3월 사이 전 세계에서 납치된 선박이 18척인데 그중 소말리아 해역에서 납치된 배가 15척이나 됐다. 2011년 3월 말 현재 소말리아 해적들은 28척의 배와 596명의 선원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대형 선박을 납치하고 전 세계 기업 및 정부와 몸값 흥정을 하기에 부족함 없는 조직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크게 세 집단으로 구성돼 있다. 한 집단은 전직 어부들로 이들은 바다를 잘 알기 때문에 해적 집단의 두뇌 역할을 한다. 둘째는 전직 무장대원들로 전면에 나서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역할을 한다. 셋째는 기술 전문가 집단으로 이들은 첨단 기능을 갖춘 컴퓨터, 위성전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중화기 등을 다루는 역할을 한다. 해적들은 로켓포와 자동 소총으로 무장하고 자신들이 기거하는 모선에서 쾌속선을 띄워 목표 선박에 접근한다. 그리곤 로프와 사다리를 이용해 선박에 오른 후 배를 장악하고 선원들을 인질로 삼는다.
해적들은 몸값을 받을 때까지 인질들을 비교적 잘 보살핀다. 잘 짜진 조직과 장비를 갖춘 해적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엄청나다. 2010년 소말리아 해적들은 몸값을 받아 총 2억 3,800만 달러(한화로 2,60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것은 2008년의 3,000만 달러(한화로 330억 원)보다 약 8배, 2009년의 1억 5,000만 달러(한화로 1,650억 원) 보다 1.5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런 천문학적인 수입 때문에 해적질은 소말리아에서 갈수록 번창하는 사업이 되고 있다. 아덴만에 면한 소말리아의 푼틀랜드 지역에는 돈을 번 해적들이 소유한 호화로운 집과 외제차가 늘고 해적이 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최근 해적들은 외국 정부들이 전함을 파견해 소말리아 해역의 경비를 강화하자 인도양 멀리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불법이 난무하는 소말리아 해역
소말리아에 해적들이 늘어나고 해적질이 하나의 사업으로 번창하고 있는 일차적인 이유는 1991년 이후 2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소말리아 내전 때문이다. 정부의 기능은 거의 마비돼 있고 사람들의 생활은 궁핍하기 짝이 없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직업도 구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해적을 좋은 직업 중 하나로 생각한다. 그러나 해적을 만들어낸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서 찾을 수 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긴 해안을 가지고 있다. 인도양에 면한 2,000킬로미터와 아덴만에 면한 1,300킬로미터를 합친 총 3,300킬로미터의 해안은 미국 서부의 해안보다도 길다. 소말리아 바다는 특이한 열대 생태 지역이다. 어류 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산호초, 바다 포유동물, 바다거북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이 긴 해안과 바다는 만성적인 식량난과 만연된 빈곤으로 힘들게 생활하는 소말리아 사람들에게는 보물과 같다. 1980년대 초 소말리아는 풍부한 수자원을 개발해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해결할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잦은 자연재해로 농업 개발의 어려움을 겪던 소말리아는 어선과 장비만 투자하면 되는 어업 개발이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소말리아는 이탈리아, 이라크와 공동 어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고 덴마크, 독일, 일본, 스웨덴, 영국, 그리고 유엔개발기구(UNDP)로부터 어업 개발 자금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소말리아 정부가 어업 개발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고 어부들과 일반 국민이 그 혜택을 보기도 전에 소말리아는 내전에 휩싸였다. 1991년 내전이 시작된 이후 소말리아는 정부, 공공 서비스, 사회기반시설 등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이런 혼란 상황을 틈타 외국 선박들이 소말리아 해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제법을 무시한 채 불법 어업으로 수자원을 약탈하고 독성 폐기물을 투기해 바다를 오염시켰다. 이로 인해 소말리아의 긴 해안은 신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바뀌었다.
외국 선박들이 소말리아 해역에 버린 원유 찌꺼기 때문에 1990년대 초 이미 소말리아 해안에서는 타르 덩어리가 발견되곤 했다. 불법으로 버려진 원유 찌꺼기는 해마다 3만 3천 톤에 달했다. 외국 선박들은 또한 하수구 오물을 가져와 싼값에 소말리아 선박에 넘기고 소말리아 선박은 그것을 가까운 해상에 버리곤 했다. 사실 소말리아 해역에 독성 폐기물을 버리는 일은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됐는데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자 더 심해졌다. 외국 선박들이 소말리아로 가져와서 버린 쓰레기에는 방사능 폐기물, 납, 카드뮴, 수은, 산업 폐기물, 병원 쓰레기 등 온갖 독성 성분과 비위생적인 물질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런 쓰레기 불법 투기는 주로 유럽 국가의 폐기물 업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은 자국에서 위생적으로 처리하려면 1톤당 250달러(한화로 27만 5천 원)이 드는 독성 폐기물을 소말리아 해역에서 1톤당 단돈 2.5달러(한화로 2,750원)에 처리했다. 이런 쓰레기의 지속적인 투기로 소말리아의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고 수자원이 오염됐다. 2004년 12월에는 쓰나미로 인해 버려진 독성 폐기물 통들이 소말리아 해안으로 밀려와 해안가 주민들 사이에 호흡기와 피부 질환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년 동안 소말리아 해역은 비교적 안전하게 불법 어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져 급기야 “국제 무료입장 구역”으로 불리게 됐다. 1991년 이후 내전으로 소말리아가 거의 무정부 상태가 되자 수자원이 풍부한 소말리아 해역으로 세계의 어선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가까운 유럽의 어선은 물론 일본, 대만,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어선들도 포함돼 있다. 전 세계 어선들이 소말리아 해상에서의 불법 어업으로 얻는 수익은 매년 3억 달러(한화로 3,300억 원)에 달한다. 이것은 내전과 잦은 자연재해로 수십 년 동안 굶주림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소말리아 사람들의 생활고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액수다. 유엔은 2005년~2006년 현장 조사를 한 후 소말리아 해역에서 잡은 생선에 대한 거래 정지를 제안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회원국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자국 어선들의 불법 어업을 잘 알고 있는 정부들이 이 제안을 외면한 것이다.
해적들은 소말리아 해역에서 불법으로 이뤄지는 쓰레기 투기와 어업을 해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핑계로 삼고 있다. 사실 일부는 이런 문제를 계기로 해적에 합류하기도 했기 때문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1990년대 초 내전이 시작되자 소말리아 해역은 갑자기 참치, 고등어, 상어, 가재 등 온갖 생선들을 갖춘 세계의 슈퍼마켓이 됐다. 첨단 장비를 갖춘 대형 외국 어선들이 몰려 와 불법 어획을 했고 소말리아 어부들은 오히려 자기 바다에서 밀려났다. 소규모 배와 그물로 생선을 잡던 소말리아 어부들은 외국의 대규모 어선과 경쟁할 수 없었다. 대형 외국 어선들이 작은 소말리아 어선들을 위협해 쫓아내고 그물을 잘라버리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소말리아 어부들은 스스로 바다를 지키기 위해 해양감시대를 조직했는데 이 감시대가 결국 해적의 시초가 되었다.
바다에서 쫓겨난 어부들은 물론이고 오랜 내전으로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총은 얻기 쉬우며, 싸우는 기술밖에 없는 젊은이들도 해적에 합류했다. 처음엔 생존을 위해 해적이 됐지만 해적질이 수익을 내는 사업이 되자 이들은 해적질을 미래를 위한 삶의 희망으로 삼게 됐다. 이들 모두가 핑계로 삼는 것이 소말리아 해역에서의 불법 쓰레기 투기와 어업이다. 해적들은 국제사회가 불법 어선과 쓰레기 투기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자신들의 애원은 외면하더니 이제는 해적질이 불법이라고 얘기한다며 비웃는다. 이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반성하지도 해결하지도 않는 국제사회가 소말리아 해역을 지키려다가 해적이 된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의 해적 행위는 불법 어업 감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2009년에 일어난 소말리아 해적 공격 중 약 6.5%만이 어선에 대한 공격이었다. 어선이 화물선에 비해 규모도 작고 납치하기 쉬운 것을 생각하면 뜻밖에 낮은 수치다. 해적들이 어선을 노리지 않는 것은 몸값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목표로 삼는 것은 주로 몸값을 많이 받아낼 수 있는 대형 국제 화물선이다. 오히려 해적들은 불법 어업을 조장하기도 한다. 불법 어선은 편법을 통해 부패한 지역 관리로부터 어업 허가를 받고 지방 관리와 결탁한 해적들이 불법 어선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해적이 늘면서 소말리아 어부들은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해적 감시와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외국 정부들이 전함을 파견해 오히려 소말리아 어선을 감시하고 위협하는 적반하장의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어부들은 외국 전함들이 소말리아 어선과 상선을 해적 취급해 검문하고 공중 촬영까지 한다고 항의한다. 힘 있는 나라들은 전함까지 파견해 남의 나라 해상에서 자국 화물선은 물론 불법 어업을 하는 어선까지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소말리아 어부들을 지켜줄 수 있는 힘 있는 정부는 없다. 이들이 수자원이 풍부한 넓은 바다가 아니라 작은 해안을 가진 나라에서 어부가 되었다면 살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검은 금의 저주
2011년 1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다국적 정유회사인 쉘(Shell)의 임원들이 국회의원들의 깐깐한 질문에 답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환경단체들, 쉘의 임원들, 국회의원들이 둘러앉은 원탁회의에서는 원유 채굴지를 오염시킨 쉘이 오염 지역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된 곳은 나이지리아의 니제르 델타(Niger Delta) 지역이었다. 이곳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노후한 시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도둑질과 고의적인 채굴 방해 등으로 원유 파이프가 새는 바람에 주변이 오염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쉘은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지역 주민들의 고의적인 방해로 발생한 오염까지 자신들이 책임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쉘이 나이지리아에서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뒤처리를 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쉘이 법적 배상액을 줄이기 위해 책임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다. 또한 세계에서 여섯째로 원유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원유는 나이지리아 수출량 중 90% 이상을 차지한다. 나이지리아는 원래 농업에 의존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1957년 원유가 발견된 이후 원유는 최대의 외화 수입원이 됐고 나이지리아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검은 금’이라 불리는 원유는 나이지리아의 가난, 실업, 부패를 해결하지 못했고 특별히 원유 채굴 지역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었다.
나이지리아의 남부에 위치해 있는 니제르 델타 지역은 아프리카 최대의 늪지대로 원유와 가스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에 사는 3천만 명 이상의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세상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겪어 왔다. 이 모두가 원유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직접 고통을 준 것은 나이지리아 정부의 보호 속에서 별다른 법적 규제를 받지 않고 원유를 채굴해온 초국적기업 형태의 원유 회사들이었다.
원유 누출, 폐기물 투기, 가스 연소(나이지리아에서는 원유에서 가스를 분리하지 않고 폐기물로 태워버린다)는 니제르 델타에서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이 수십 년간 계속되면서 이 지역의 토양, 물, 공기가 모두 오염됐다. 특별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원유 누출 사고는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생계와 건강을 위협해 왔다. 특히 어업과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니제르 델타 지역에는 3,1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이중 60% 이상은 자연환경에 의존해 생계를 해결한다. 그러나 농지와 바다의 오염으로 농작물 수확과 어획량이 감소해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막막해졌다. 오염은 농기구와 어업 도구도 망친다. 오염 때문에 주민들의 건강도 악화됐다. 오염된 물을 먹고, 그 물로 밥을 짓고 세수를 하며, 기름과 독성 물질로 오염된 생선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유 누출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잡히지 않았지만 일 년에 최소 수백 건의 누출 사건이 발생한다. 유엔개발기구(UNDP)의 통계에 의하면 1976년~2001년 사이에 약 6,800건의 원유 누출이 있었다. 이것은 일 년에 260건 이상의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어떤 경우에는 수년간 누출이 계속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2천 곳 이상이 오염돼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누출 사고와 오염지역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2010년 초까지 알려진 세계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는 1989년 3월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슨 발데즈(Exxon Valdez) 원유 탱크 사고였다. 그런데 2010년 4월 미국 멕시코 만에서 발생한 BP사의 해저 원유 파이프 사고가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엑슨 발데즈 사고에서 유출된 기름은 1천만 갤런이었는데 BP 사고 유출량은 그것의 17배인 1억 7천만 갤런이었다. BP 사고의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엑슨 발데즈 사고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도 아직까지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2007년 일어났던 한국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는 유출량으로 볼 때 엑슨 발데즈 사고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런데 니제르 델타에서는 거의 40년 동안 매해 엑슨 발데즈 사고와 맞먹는 원유 유출 사고가 있었다. 대충만 계산해도 그 규모와 오염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2001년에는 니제르 델타의 오그보도라는 곳에서 대규모 원유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오염 지역 청소는 수개월간 지연됐고 그 후에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2년이 지난 2003년에도 원유 찌꺼기가 땅과 바다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주민들은 고기잡이와 사냥을 할 수 없었다. 배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보통 배상을 받으려면 주민들은 무장집단이나 일부 주민들이 일으킨 고의적인 사고가 아니라 원유 회사의 관리에 문제가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온갖 기술 정보를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원유 회사들과 대항할 힘이 없어 결국 배상조차 받지 못한다. 2007년 5월에는 오고니 부족이 사는 키라 카이 마을을 지나는 원유 수송 파이프에서 원유가 새어나왔다. 농작물과 근처 호수의 물고기가 모두 몰살당했다. 현장을 조사한 쉘의 담당자는 파이프가 부식돼 세 개의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쉘은 파이프를 조이고 당시에 흘러나온 기름 대부분을 제거했다. 그러나 쉘의 조치는 거기서 끝났다. 그 후에 흘러나온 기름을 청소하지도 않았고 주민들에게 배상하지도 않았다. 국제단체들이 항의하자 쉘은 원유 누출이 주민들의 고의적인 방해로 발생했기 때문에 배상을 할 수 없다고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배상과 기름 제거를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한테는 그런 변경된 입장과 결정조차 알리지 않았다.
쉐브론(Chevron), 쉘(Shell), 아기프(Agip), 모빌(Mobil) 등 세계적인 회사들이 니제르 델타에서 원유를 채굴해 왔다. 이들 서구 기업들은 나이지리아 정부와 결탁해 주로 소수 부족인 지역 주민들을 멸시하고 억압해 왔다. 그중 가장 많이 원유를 채굴해온 쉘은 거의 모든 악행에 관여했다. 원유 유출은 파이프의 마모, 시설의 열악한 관리, 직원의 실수, 고의적 파괴, 도둑질 등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발생한다. 특별히 파이프의 고의적 파괴와 도둑이 생겨나게 된 이유는 주민들을 희생시키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나이지리아 정부와 원유 회사들에 대한 저항 때문이었다.
수십 년 동안 원유 채굴이 이뤄졌지만 주민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환경오염과 생계 위협에 시달리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급진적인 무장세력이 출현하게 됐다. 이들은 원유 채굴 시설을 공격하고 원유 회사의 경비원들을 살해하기도 한다. 채굴지의 노동자들을 납치한 후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한 해에 수백 건씩 발생하면서 니제르 델타 지역은 납치로도 악명을 떨치게 됐다. 수십 년간 계속된 지역 주민 탄압도 무장세력을 출현시키는 데 일조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원유 채굴과 관련해 지역 주민들을 계속 억압해 왔고 때로 원유 회사들의 요청을 받아 주민들을 공격하고 살해하기도 했다. 특별히 1990년대 오고니(Ogoni) 부족과 이조(Ijaw) 부족이 조직적인 저항을 하자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들에게 야만적이고 잔인한 폭행, 체포, 살인을 자행했다. 원유 채굴 산업은 주민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삶을 완전히 파괴해 놓았다. 지금도 니제르 델타의 힘없는 주민들은 오염된 땅, 물, 공기 속에서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피 냄새를 품은 노트북과 핸드폰
2011년 4월 21일 미국 12개 대학의 학생들이 캘리포니아에 모였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이하 콩고) 동부에서 생산되는 ‘분쟁 광물’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분쟁 광물의 세계적 거래를 막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생들은 분쟁 광물의 거래를 막음으로써 콩고 동부 지역의 마을과 주민들이 평화를 되찾고 광물자원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자 했다. 일주일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대학생들은 특별히 소비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짐했다. 이들은 ‘분쟁 광물’ 사용을 중지하도록 전자제품 회사들에 압력을 넣기로 했다. 또한 자신들의 학교에도 분쟁 광물을 사용하지 않은 전자제품을 구매하도록 요구하기로 했다.
한편 콩고에서는 2011년 4월부터 발효된 미국의 분쟁 광물 사용 규제법이 콩고의 광산업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부 사람들은 규제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면 분쟁의 주역인 무장집단이 아니라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광산업계와 전자업계가 법을 준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법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번져갔다.
대학생들이 말하는 ‘분쟁 광물’은 콩고 동부에서 채굴되고 거래되는 원광들로서 이 원광들을 제련하면 주석(tin), 탄탈룸(tantalum), 텅스텐(tungsten)이 생산된다. 이 광물들은 3T로 불리며 금과 함께 이동전화, 노트북 컴퓨터, MP3 플레이어, 비디오 게임기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원자재가 된다. 세계 주석의 40%, 그리고 탄탈룸의 60%가 전자기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콩고 동부는 3T의 원광이 생산되는 중요한 지역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노트북 컴퓨터와 이동전화에 콩고 동부에서 채굴된 광물에서 나온 원자재가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콩고 동부에서는 원광의 불법 거래와 수익을 둘러싸고 여러 무장집단과 군인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이들의 폭력으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렇게 무력 분쟁과 주민들의 희생을 야기하는 콩고의 ‘분쟁 광물’을 전자회사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법은 2011년 4월부터 효력을 발생하게 됐고 법에 따라 미국의 전자회사들은 제품에 사용된 광물의 원산지를 공개해야 한다. 즉 분쟁 광물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동안 HP, 델(Dell), 인텔(Intel), 애플(Apple)과 같은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들과 광물 무역업자들은 콩고 동부의 분쟁 상황을 잘 알면서도 그곳에서 생산되는 광물을 쓰지 않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자업계는 미국 의회의 법률 통과를 막기 위해 한 달에 2백만 달러(한화로 22억 원)을 들이며 로비를 했다. 법이 통과됐지만 전자업계와 광산업계는 이 법의 규제를 따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실행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콩고 정부 또한 광산업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책을 펴내며, 1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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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주진
캐나다 워털루 대학에서 평화갈등연구 디플로마를, 미국 이스턴 메너나이트 대학에서 갈등해결학 석사를 했다. 영국 브래드포드 대학에서 평화학 박사 학위를 받아 국내 첫 평화학 박사가 됐다. 자유 연구자 및 교육자로서 평화갈등연구라는 학문 영역에 토대를 두고 갈등해결과 피스빌딩(peacebuilding)을 연구, 교육, 실천하고 있다. 평화교육과 갈등해결 전문가로 자문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평화와 갈등해결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다. 평화문화의 확산과 평화적 갈등해결의 실행을 위해 학교,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과 꾸준히 협력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갈등해결과 한국사회』(2010)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공공갈등 해결』(2010)이 있다. jujin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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