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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수가 집권하면
살인과 자살이 늘어나는가
미국에서 폭력의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 정신의학자가 통계를 분석하다 수수께끼에 빠졌다. 그가 분석한 자료는 1900년부터 미국 정부가 매년 공식적으로 펴낸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였다. 수많은 연구를 해 온 저명학자였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 앞에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첫째, 1900년부터 2007년 사이의 공식 통계에서 왜 살인율과 자살률이 함께 늘어나거나 함께 줄어드는 것으로 나오는가? 살인과 자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정신적·심리적 문제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살과, 범죄적 동기로 타인을 죽이는 살인이 어떻게 같은 추세로 설명될 수 있는가? 둘째, 19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왜 살인율과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시기와 감소하는 시기가 번갈아 나타나는가?
이 통계 수치를 연도별 그래프로 만들어보았더니 이 기간 동안 세 번의 산봉우리와 세 번의 골짜기 형태가 나타났다. 기존의 설명 방식으로 도저히 이 문제들을 만족스럽게 풀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정신의학자는 폭력 치사 발생률이 급증하는 세 번의 시기가 모두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와 겹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이 학자는 살인과 자살을 합해서 이 현상을 ‘폭력 치사lethal violence’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폭력 치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세 번의 시기가 민주당 대통령의 집권 시기와 겹친다는 점도 확인했다. 더 자세히 조사해보니 미국 전체의 폭력 치사가 공화당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늘기 시작해서 임기 말년쯤에 최고점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민주당 대통령이 취임하면 폭력 치사가 줄기 시작해서 임기 말년쯤에 최저점에 도달하였다. 1900년 당시 미국에서 살인율과 자살률을 합한 폭력 치사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15.6명이었다. 그때부터 2007년까지, 한 세기가 넘는 기간에 공화당 대통령들이 총 59년을 집권했는데 공화당 집권 기간을 통틀어 1900년과 비교해서 폭력 치사 발생률의 순누적 증가분이 19.9명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대통령들이 집권한 48년 동안에는 폭력 치사 발생률의 순누적 감소분이 18.3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내용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두 정당이 집권했을 때의 폭력 치사로 인한 사망률은 민주당 때가 공화당 때보다 10만 명당 38.2명 적었다. “오늘날 미국 인구 수준으로 나타내자면 이 수치는 민주당 정부 때 공화당 정부 때보다 폭력 치사로 죽는 사람이 약 11만 4,600명 적음을 뜻한다.”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살인과 자살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났고,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살인과 자살이 훨씬 덜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발견에 스스로 놀란 정신의학자는 이 결과가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지 여러 방면으로 대조 검토해보았다. 특정 정당 대통령의 집권과 자살률·살인율 사이에 단순한 상관 관계가 아니라 명확한 인과 관계가 성립하려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취한 서로 다른 정책들이 사람들의 행동에 서로 다른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공황이나 세계대전 등 일반적인 정권 교체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모두 분석해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통계를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어떤 다른 요인들을 고려해보더라도, 공화당-민주당 집권 시기와 자살률·살인율의 변동 간에는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인과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말 그대로 ‘세기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정신의학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공화당이 추구하는 정책은 사람들을 강력한 수치심과 모욕감에 노출시키기 쉬운 정책이다. 열패감과 열등감을 조장하며 타인을 무시하고 경멸하도록 부추기고 불평등을 찬미하는 문화를 숭상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실했을 때, 특히 해고를 당했을 때, 극도의 수치심과 모욕감을 경험한다. 이런 식으로 수치심과 모욕감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는 폭력 치사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폭력 치사는 타인에게도(타살), 또 자신에게도(자살) 일어난다.
즉, 어떤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의 방향이 여러 형태의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와 불평등을 조장하고 그 결과 실업률, 수치심, 모욕감이 높아지면 그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폭력 치사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이 정신의학자는 의사답게 이 문제를 담배와 폐암의 관계에 비유한다. “흡연이 폐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듯이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하면 자살률과 살인율이 올라간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적포도주를 적당히 마시면 장수에 도움이 되듯이 민주당이 백악관을 차지하면 폭력 치사 발생률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살인과 자살이라는 폭력 치사에 관한 한 공화당은 ‘위험 요인’이고 민주당은 ‘보호 요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정치적 민주주의에만 신경을 썼지 사회적 민주주의는 간과한 탓에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있는 모든 나라들 중에서 인구 대비 살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런 연구를 내놓은 정신의학자는 폭력의 문제를 연구해 온 뉴욕대의 제임스 길리건 교수다. 그가 쓴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에 지금까지 한 모든 이야기가 상세히 나와 있다. 정신의학 문제를 연구하다 우연히 정치적 결론을 내리게 된 길리건은 폐암을 치료하는 의사만큼이나 양심적이고 초연하게 결론을 내린다.
나는 폭력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관심을 두었던 통계 수치를 들여다보면서 이 여행을 시작했다. …… 나는 자살률과 살인율이 동시에 올라가고 내려간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20세기를 통틀어 분포 양상을 보면 산봉우리도 있고 골짜기도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이 비율들이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간 시기도 있고 ‘정상’으로 여겨질 수준으로 내려간 시기도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 봉우리와 골짜기가 대통령 선거 주기와 일치함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말 그대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 이 책에서 살인율과 자살률은 부표와도 같다. 이 부표들은 바닷길의 종착점이 낙심한 개인이나 살인자의 가슴이 아니라 백악관과 두 주류 정당의 상이한 경제 정책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다른 정치인들보다 더 위험한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거나 좋은 일을 결코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죽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까지 정치적 결론이 명쾌한 비정치적 책을 읽은 적이 없고, 이렇게까지 사회적 함의가 분명한 정신의학서를 읽은 적이 없었다. 에밀 뒤르켐의 고전 《자살론》이 21세기 버전으로 환생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우리 독자들에게도 더 없이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던져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의 앞부분에서 길리건 교수가 인용한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 속에 그 답이 있다. “역사를 분석할 때 너무 깊숙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역사의 인과 관계는 흔히 단순한 데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효제(성공회대 교수)
머리말
죽음과 정치의 미스터리
이 책은 살인에 관한 수수께끼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한 편의 살인 미스터리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자기 살인’, 곧 자살까지도 망라하여 살인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연작 미스터리다. 내가 풀려고 하는 일련의 미스터리극은 곧바로 해명되지 않은 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첫째, 우리는 보통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과 아주 다르다고(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다르다) 생각하는데 어째서 살인율과 자살률은 같이 올라가고 같이 내려가는 경향이 있는(실제로 그렇다) 것일까? 두 번째 수수께끼는 미국 인구를 구성하는 개인들에게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 동안에 어째서 미국 국민의 살인율과 자살률이 어떤 때는 갑절 이상으로 늘었다가 또 어떤 때는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정신의학 전공자로서 나는 임상의 신분으로 감옥에서 살인범을 접했고 자살 충동과 싸우는 죄수와 일반 환자도 접했다. 내가 던진 질문은 ‘누가 그것을 했나?’가 아니었다. 혹은 자살의 경우 누가 그런 유혹에 약하고 누가 그런 시도를 하는가가 아니었다(그런 수수께끼는 이미 풀렸다). 내가 던진 질문은 ‘어째서?’였다. 나는 또 살인율과 자살률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에 요청을 받아 매사추세츠 주의 여러 교도소에서 폭력 확산 문제와 씨름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폭력이라는 전염병은 다스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또 다른 유형의 전염병을 발견할 마음의 준비는 전혀 안 되어 있었다. 폭력의 원인과 예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1년 단위로 보고되던 자살률과 살인율을 오래 전부터 추적했다. 그러면서 이 비율이 어떤 시기에는 확 올라갔다가 또 어떤 시기에는 동시에 극적으로 확 내려감을 알아차렸다. 미국에서는 1900년부터 해마다 자살률과 살인율의 통계를 낸다. 나는 자살률과 살인율이 함께 오르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데 주목했다. 그것은 한쪽을 끌어올리는 어떤 원인이 다른 쪽도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나는 봉우리와 골짜기로 이루어지는 변화 양상에도 주목했다. 1900년부터 2007년(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온 마지막 해)까지 한 세기가 넘는 기간의 자살률과 살인율을 추적
하면서 나는 이 폭력 치사 수치가 갑작스럽게 장기적이고 큰 규모로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을 세 번 보았다. 한번 꼭대기에 도달하면 그 다음에는 동시에 극적으로 하락하는 추세가 반복되었다. 증가세와 감소세가 모두 가파르고 일관되어서 (다시 말해 예외적으로 높거나 낮은 범위를 몇 년이나 몇십 년간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한동안 꾸준히 이어지다가 들쭉날쭉 오르내리기를 거듭하기에) 이 사망률을 그래프로 그리면 중간중간에 골짜기가 박힌 산봉우리나 능선을 옆에서 바라본 모습처럼 보인다. 산정과 계곡의 차이가 어찌나 뚜렷한지 산꼭대기의 높이가 골짜기의 높이를 두 배 넘게 웃돌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보는 것이 좀 더 ‘정상’에 가까운 일반적 비율로 돌아가는 시기가 사이사이에 끼어든 폭력 치사 전염병을 드러내는 지도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아무런 낌새도 못 채고 몇 년을 끙끙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번의 폭력 치사 전염병이 모두 대통령 선거 주기와 맞아떨어짐을 알아차렸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자살률과 살인율은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힌 후에만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한 동안에도 줄곧 전염병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증가세는 취임 첫 해나 임기 초반 몇 해 안에 시작되어서 마지막 해나 임기 종반 몇 해 동안 절정에 달했다. 이 추세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다음에야 비로소 반전되어 전염병 수준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락세는 새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첫 한두 해 안에 시작되었고 민주당 대통령이 백악관을 차지한 마지막 해나 후반기에 자살률과 살인율이 대체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연간 변화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더니 세 가지 경우 모두, 다시 말해 자살, 타살, 둘의 종합(자살률과 타살률을 합산한 수치)에서 모두 정당과 폭력 치사 발생률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이 드러났다. 자살과 타살은 공화당이 백악관에 있을 때 늘어났고 민주당이 백악관에 있을 때 줄어들었으며 그 규모와 일관성은 우연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처음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였다.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이렇게 간단할 리가 만무하다. 폭력 치사 발생률을 끌어올리고 끌어내리는 것이 단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정치적 꼬리표일 리는 없다. 정당과 폭력 치사 사이에 우연적 상관 관계가 아니라 인과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두 당의 정책과 성과가 다르기 때문일 수밖에 없고 그런 차이가 사람들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에 있을 수밖에 없음이 자명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런 차이가 정말로 있고 그런 차이가 폭력 치사 발생률에 끼치는 영향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자살률과 살인율은 어째서 같이 움직이는 것일까? 두 수치가 나란히 오르내리는 그런 통계는 폭력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다. 자살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슬픈 사람 아니면 미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런 사람은 정신과 상담실이나 병원에서 주로 보는 환자다. 살인을 하는 사람은 보통 범죄자로 여겨지고 나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처벌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며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이나 개인 상담실이 아니라 주로 감옥에서 볼 수 있다. 자살 행동과 살인 행동의 원인도 개인 안에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는 자기 목숨을 끊는 사람은 우울증 병력이 있거나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기질이 있으려니, 아주 심한 정신적 충격이나 말기 암 같은 신체 질환에 시달리던 사람이려니 여긴다. 반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인륜을 저버린 괴물로, 문제아로, 범죄자로, ‘못된 종자’로, 아니면 그저 ‘악질’로 여긴다. 자살과 살인은 나란히 움직이며 둘 다 대통령 선거 주기와 관련이 있음을 통계가 엄연히 보여주고, 이런 자료는 공무원과 노련한 역학자(疫學者)와 미국 공중위생국 산하 국립보건통계원에서 일하는 통계학자가 작성한 것이지만 자살과 살인을 누가, 왜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품고 있는 대부분의 고정 관념을 재고하지 않으면 이런 통계는 좀처럼 믿기 어렵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실 간단하지 않고 의문은 깊어진다. 우연의 탓일 가능성이 아무리 낮다 하더라도 상관성이 인과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미식 축구의 패자를 뽑는 슈퍼볼에서 AFC(아메리칸 풋볼 컨퍼런스) 소속 팀이 이기면 주식 가격이 떨어지고 NFC(내셔널 풋볼 컨퍼런스) 소속 팀이 이기면 주식 가격이 치솟는다던 실없는 주장을 기억하는가? 그런데 41년 중에서 33년이 그랬으니 맞을 확률이 자그마치 80퍼센트다! 이런 예로도 알 수 있듯이 상관 관계는 둘을 연결하는 그럴듯한 인과 메커니즘 없이 그저 무의미한 우연의 일치에서 비롯할 때도 있다.
아니면 상관 관계는 두 현상과 연결된 제3의 변수 때문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심장마비 발생률이 한 사회의 전화기 보유율과 상관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거의 틀림없이 심장마비와 전화기 보유라는 두 변수가 그 사회의 경제 발전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며, 그 변수가 실제로 심장마비를 증가시키기는 하지만(수명이 늘어나면 인구 중 더 많은 비율이 심장마비에 걸리기 쉬운 연령대에 들어간다든가, 걷기보다는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운동을 덜 하게 된다든가, 동물성 지방과 콜레스테롤 섭취가 늘어난다든가 등등 여러 인과 메커니즘을 통해서), 단순히 전화기를 사는 것만으로도 심장마비에 걸린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인과 메커니즘은 가설조차 제기된 적이 없다.
하지만 정당과 폭력 치사 발생률 사이의 상관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내가 풀려고 나선 것이 바로 이 수수께끼다. 정신분석학을 받아들인 정신의학자로서 나는 정치적 사건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개인적 삶에서 일어나는 파란만장한 일들 속에서 정신적 고통이나 성격 장애의 원인을 찾아내는 치료 전문가로 훈련받았고 주로 그런 쪽에서 경험을 쌓았다. 문학작품 독자로서 나는 영국의 문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이 남긴 이런 말도 잘 안다. “사람의 심장이 견뎌낼 수 있는 그 모든 아픔 중에서 법과 왕이 일으키거나 고칠 수 있는 아픔은 참으로 적구나.” 그렇지만 법과 왕이 사람의 심장을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몰아가거나 반대쪽으로도 똑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내 눈앞에 뻔히 있었다. 정권을 잡은 정당과 폭력 치사의 상관 관계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어내자면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차이가 더 많은 사람을 자살이나 살인으로 몰아가거나 혹은 거꾸로 폭력 치사의 발생을 줄이는 인과 메커니즘을 밝혀낼 필요가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1장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나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작성한 통계 자료를 제시한다. 이 통계 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1900년부터 2007년까지 살인율과 자살률의 증감 (2) 폭력 치사 발생률이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비전염병 수준으로 내려가는 세 번의 시기 (3) 폭력 치사 발생률이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간 시기와 공화당 정부의 상관 관계, 폭력 치사 발생률이 비전염병 수준으로 내려간 시기와 민주당 정부의 상관 관계 (4) 자살률과 살인율의 연간 변화는 공화당이 집권한 59년 동안 (1900년을 기준년으로 잡았을 때) 순누적 증가세를 보였고 민주당이 집권한 48년 동안 같은 크기로 하락세를 보였다는 사실. (여기서 ‘순누적’ 증가치나 감소치는 두 당이 집권한 기간에 일어난 연간 증가분과 감소분의 총계를 말한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전해에 비해 폭력 치사 발생률이 올라가거나 내려간 해는 모두 107년이었다. 공화당은 59년 동안 집권했고 민주당은 48년 동안 집권했다. 가령 미국의 폭력 치사 발생률은 1900년에는 10만 명당 15.6명이었고 1901년에는 17명이어서 1.4명이 늘었다. 1902년에는 이것이 15.7명으로 감소해서 1.3명이 줄었으니 공화당이 정권을 잡은 1901년과 1902년 2년 동안 순누적 증가치는 0.1명이다[다시 말해서 1.4명 빼기 1.3명, 혹은 달리 표현하면 15.7명 빼기 15.6명]. 107년이라는 기간을 통틀어서 공화당이 정권을 잡은 59년 동안 폭력 치사의 순누적 증가치는 인구 10만 명당 19.9명이었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48년 동안 순누적 감소치는 이것과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18.3명이었다.)
통계 수치를 따져보고 나서 나는 특정 시기에 집권한 정당이 아니라 어떤 중대하고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수치를 왜곡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가령 조사 대상 시기를 대공황까지로 끊는다든지, 2차 세계대전까지로 끊는다든지, 아니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잡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통계 수치를 이렇게도 잘라보고 저렇게도 썰어보았지만, 폭력 치사 발생률이 오직 공화당 정부 때만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고 오직 민주당 정부 때만 전염병 수준 밑으로 내려간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시기를 좁혀 잡았는데도 공화당 집권기에는 자살률과 살인율이 연간 변화 누적치에서 모두 순증가세를 보였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순감소세를 보였다. 정당과 폭력 치사 발생률이 안정된 상관 관계를 보이고 내가 그것을 논박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남은 질문은 이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느냐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고 어째서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날까? 의사로서 내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생사의 문제였지 정치가 아니었으며, 정치 주체에 연결된 우연한 발견을 통해 정치를 들여다보는 시도 또한 어디까지나 무엇이 이런 죽음을 낳고 어떻게 하면 아까운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2장 ‘자살과 살인의 진짜 범인, 불평등’에서 나는 이렇게 묻는다. 폭력 치사 발생률의 변화와 상관 관계가 있는 변화가 대통령이 어느 정당으로 바뀌었느냐 하는 변화가 아닌 다른 사회 환경 차원에서도 일어났는가? 다시 말해서 실업의 비율과 지속성이나 경기 침체와 불황의 빈도, 강도, 지속성에서 비롯되는 변화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정도에서 비롯되는 변화 같은 것이 폭력 치사 발생률의 변화와 상관 관계가 있는가? 이런 경제적 척도에서 비롯된 변화를 사람이 스스로 죽거나 남을 죽이려는 욕구를 높이거나 낮추는 인과 메커니즘의 하나로 볼 수 있을까?
3장 ‘보수는 경제에 강하고, 진보는 경제에 약한가?’에서 나는 탐구 범위를 넓혀 어느 당이 정권을 잡았느냐에 따라 2장에서 확인한 경제 여건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지를 묻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수수께끼를 낳는 역설과 마주친다. 어째서 번영과 경제 성장을 이루는 정당이라 내세우고, 치안을 지키고 ‘법질서’를 세우는 정당임을 자처하면서 범죄와 마약과 ‘전쟁’을 벌이는 정당이 더 높은 폭력 치사 발생률, 빈곤율, 실업률, 경기 침체율과 관련이 깊단 말인가? 그리고 한 정당이 미국 국민에게 주는 경제적 부담과 고통이 다른 정당보다 일관되게 더 높고 한 정당이 이루어내는 번영과 경제적 안정 수준이 다른 정당보다 일관되게 더 낮은데, 그래서 경제를 일으키기보다는 경제를 망치는데 어째서 그 정당이 계속해서 선거에서 이기고 유력한 정당으로 건재한 것일까?
4장 ‘수치심이 사람을 죽인다’에서 나는 수수께끼의 핵심으로 파고든다. 그것은 남을 죽이려는 공격적 충동을 일으키는 감정, 자살처럼 그 충동을 도로 자신에게 겨누게끔 몰아가는 감정의 힘이 무엇인가다. 《폭력: 국가 전염병에 관한 성찰》에서 나는 수치심을 폭력의 근본 원인으로, 폭력적 행동의 (충분 동인은 아니지만) 필요 동인으로 짚어낸 바 있다.
5장 ‘실직이 늘면 수치심이 커진다’에서 나는 실업, 상대적 빈곤, 사회?경제적 지위의 갑작스러운 상실이 수치심의 정도를 높이는 것으로 보이는지를 묻는다. 만약 높인다면 그것은 정치?경제적 사건과 개인의 행위 사이의 틈새를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재정적으로 파산한 사람이 목숨을 끊기 쉽다는 것을 주변에서 접하는 일화 차원에서는 알고 있어도, 우리는 이런 비극적 사례들을 일종의 폭력이라는 전염병으로 여기는 것은 아직도 주저한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가만 있어도 그 혜택이 저소득층에게도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간다고 보는 ‘낙수 효과’ 이론을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슬픈 사람이나 미친 사람과 악랄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에게 모두 영향을 끼치는 폭력의 낙수 효과 이론이라는 것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6장 ‘보수 정당 지지자와 진보 정당 지지자’에서는 숨을 고른다. 한 인구 집단(미국 국민)이 세월과 함께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피기보다 서로 다른 인구 집단들(공화당 지지자가 많은 이른바 적색 주들 대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이른바 청색 주들)이 똑같은 시기에 어떻게 달랐는지를 2000년과 2004년 두 해에 걸쳐서 알아본다. 그렇게 해서 이 두 가지 유형의 주들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파헤치고 공화당 투표자와 민주당 투표자의 성향이 어떻게 다른지도 파헤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7장 ‘정치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에서 나는 왜 폭력 치사 발생률이 공화당 정부 때는 올라가고 민주당 정부 때는 내려가는지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한편, 이렇게 규명한 수수께끼가 우리가 정치, 경제, 폭력을 생각하는 방식에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자료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통계 분석을 예일 대학 통계역학과의 라니 드사이와 함께 맡아준 나의 오랜 연구 동료 밴디 리 박사에게 깊이 감사한다. 또 밴디 리 박사와 그의 정신의학과 동료인 브루스 웩슬러 박사가 편집과 관련하여 내게 값진 조언을 해준 데 고마움을 느낀다. 존 톰슨과 나의 아내 캐롤도 편집과 관련하여 아주 유익한 조언을 해주었다.
1장
삶과 죽음의 문제
“공화당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해서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반드시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시작되려면 공화당 대통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 민주당 대통령이 있다고 해서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반드시 종식되는 것은 아니지만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종식되려면 민주당 대통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죽음의 전염병이 번진다
1900년부터 1912년까지 20세기의 처음 13년 동안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의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윌리엄 태프트(William Taft)였다. 1913년에는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 집권하여 1920년까지 8년 동안 정권을 잡았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폭력 치사 발생률을 나타내는 그림 1.1의 그래프를 보면 선이 시작되는 1900년의 폭력 치사 발생률(자살률과 살인율의 합산)은 인구 10만 명당 15.6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 치사 발생률은 ‘연령 보정’ 수치임을 밝혀 둔다. 살인은 청년층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자살은 노년층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는 등 사망률이 나이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다양한 연령 집단의 인구 비율을 고르게 유지한다는 뜻이다. 연령 보정을 해서 한 인구 안의 연령 분포를 일정하게 유지해야만 그 인구 안에서 자살률이나 살인율이 유난히 높은 연령 집단 비율의 증감에 따라 사망률이 인위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미국 경제 통계를 낼 때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여 달러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출생 사망 통계를 낼 때도 연령 보정이 중요하다. 이것은 그래프에 나타난 사망 통계가 가령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이비붐’ 현상에 따른 인위적 파생물이나 부수 효과가 아님을 뜻한다.
그림으로 돌아가서, 그래프의 선은 1900년의 15.6명으로 시작해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줄기차게 올라가다가 1907년의 (금융) 공황 이후 껑충 뛰고 1908년과 1911년 즈음이면 10만 명당 폭력 치사 발생률이 22.6명으로 정점에 이른다. 출발 지점인 1900년보다 50퍼센트 높다. 그래서 우리는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한 1900년에서 1912년 사이에 폭력 치사가 비전염병 수준에서 전염병 수준으로 급증했음을 본다.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폭력 치사가 그림에서 1명 늘어나는 것은 지금 3억에 육박하는 미국 인구 중 3천 명이 더 죽는다는 뜻이다. 결국 1900년부터 1912년까지 폭력 치사 발생률이 15.6명에서 21.9명으로 6.3명이 늘었다는 것은 요즘으로 치자면 해마다 약 18,900명이 폭력 치사로 더 죽는다는 소리다.
1913년 3월 우드로 윌슨이 집권하면서 취임 첫해에는 폭력 치사 발생률이 계속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고 이듬해인 1914년에는 23.3명으로 늘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가파른 감소세를 보여서 그가 대통령으로 있던 나머지 6년 동안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잠깐 참전하기 한참 전 시기, 참전한 시기, 참전한 이후 시기를 망라하여) 해마다 꾸준히 떨어졌고 결국 윌슨이 마지막으로 한 해를 꼬박 대통령으로 재임한 1920년에는 폭력 치사 발생률이 17.4명으로 바닥을 쳤다.
요컨대 공화당 대통령들이 재임한 시기는 폭력 치사가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는 경향과 연관이 있었고 민주당 대통령으로 바뀌면 이런 추세가 역전되고 전염병 수준 아래로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역전된 추세는 오래 가지 않았다. 다음 12년 동안 공화당 대통령들(워런 하딩Warren Harding,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이 백악관을 차지했고 그림 1.1이 보여주듯이 폭력 치사 발생률은 하딩 정부 첫해부터 다시 전염병 수준으로 급증해서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한 12년 동안 줄곧 ‘(전염병) 능선’에 머물렀고 공화당 집권 3년째인 1923년부터는 거의 매년 올라갔다. 가파른 상승세는 계속 이어져서 공화당이 마지막으로 한 해를 꼬박 집권한 1932년에는 10만 명당 폭력 치사 발생률이 26.5명으로 정점에 올랐다. 이 상승세가 대공황이 시작된 1930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윌슨이 집권한 마지막 해에 17.4명이었던 폭력 치사 발생률은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상승하여 1929년이면 벌써 22.3명이나 되었다. 폭력 치사 발생률은 대공황이라는 최악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더 높이, 더욱 가파르게 올라가서 결국 26.5명을 기록했다. 윌슨이 마지막으로 재임했던 해보다 인구 10만 명당 폭력 치사 발생률이 무려 9.1명이나 올라간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오늘날 인구로 따졌을 때 해마다 자살자와 피살자가 27,300명씩 늘어나는 것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공화당 후보가 192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폭력 치사는 또 다시 전염병 수준으로 급증했고 공화당 정권이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기 전 마지막 해였던 1932년까지 계속해서 불어났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민주당은 20년 동안 장기 집권에 들어간다.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은 루스벨트의 후임으로 1945년부터 1952년까지 백악관을 지켰다. 민주당은 케네디(John F. Kennedy)와 존슨(Lyndon Johnson)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60년대까지 치면 실제로는 1933년부터 1968년까지 36년 중에서 28년 동안 집권했다. 이 기간 동안 공화당 대통령은 1953년부터 1960년까지 백악관을 차지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뿐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공화당원이었지만 그는 재임하는 동안 폭력 치사 발생률이 올라가지 않은 유일한 공화당 대통령이다.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동안 폭력 치사 발생률은 그 전의 민주당 정부 때와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우리가 품은 수수께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놀라운 점은 루스벨트의 당선 이후 시작된 20년이, 또는 심지어 36년이 가장 긴 ‘골짜기’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오랫동안 폭력 치사 발생률이 전염병 수준 아래를 꾸준히 밑돈 시기였다.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루스벨트가 취임 첫해인 1933년에 공화당으로부터 물려받은 폭력 치사 발생률은 26.5명이었지만, 그 뒤로 갑자기 뚝 떨어지며 거의 중단 없는 감소세를 이어가기 시작해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 마지막 해였던 1941년에는 전염병 수준의 기준치인 19명보다 낮은 18.8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1942년부터 1967년까지 꼬박 사반세기 동안 그 수치는 두 번 다시 18명 수준을 넘지 않았다.
‘전염병’이라는 용어를 좀 더 정확하게 쓰기 위해서 나는 지난 한 세기 동안의 폭력 치사 발생률의 평균값과 중간값을 모두 계산했는데 각각 19.4명과 20명이었다. 나는 ‘전염병’이라는 용어를 유난히 높은 사망률, 다시 말해서 이 평균값이나 중간값을 웃도는 사망률을 가리키는 데 쓴다. 그래서 내가 전염병이라고 말할 때는 폭력 치사 발생률이 19.4명이나 20명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최고치였던 26.5명의 범위 안에 있다는 뜻이다. 거꾸로 비전염병 수준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폭력 치사 발생률이 11명에서 19.4명의 범위 안에 있다는 뜻이다. (내가 전염병이라고 부르는 기간 동안 거의 모든 폭력 치사 발생률은 20명을 한참 웃돌았고 내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기간 동안은 19.4명을 한참 밑돌았다. 그래서 ‘능선’과 ‘골짜기’를 대충 가르는 기준선을 19.4명으로 보든 20명으로 보든 큰 차이가 없다.)
정리하자면, 윌슨 이전의 세 공화당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루스벨트 이전의 세 공화당 대통령이 재직하는 동안 폭력 치사 발생률은 전염병 수준에 이르렀다. 윌슨과 마찬가지로 루스벨트는 전염병을 끝냈다. 후임 민주당 대통령들은 폭력 치사 발생률을 전염병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숫자 자체는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10만 명당 사망률이 가령 매년 18명에서 19명으로 늘어난 것도, 심지어 15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난 것도 그저 매년 1명이나 5명이 늘어난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의 미국 인구 3억 명을 놓고 생각하면 숫자가 1 커지는 것은 폭력 치사로 죽는 사람이 해마다 3천 명씩 늘어난다는 뜻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쌍둥이 빌딩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와 얼추 비슷하며 그 3천 명의 죽음이 역사를 바꾸어 미국이 아직도 끝내지 못한 두 번의 전쟁을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이 숫자는 절대로 사소하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일어난 세 번의 폭력 치사 전염병 중에서 처음 두 번을 살펴보았다. 두 번 모두 공화당 대통령 때 시작되어서 민주당 대통령 때 끝났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첫 번째 전염병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시작되어(루스벨트의 임기 첫해 폭력 치사 발생률은 15.6명이었고 임기 마지막 해에는 21.9명이었다) 윌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1913년에 끝났다(윌슨의 임기 마지막 해 폭력 치사 발생률은 17.4명까지 내려갔다). 1921년부터 다시 공화당 대통령들이 정권을 잡은 12년 동안 사망률은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1932년에 26.5명으로 사상 최고의 폭력 치사 발생률을 경신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이 높은 사망률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1944년에는 15명까지 줄어들었고 큰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대체로 그렇지만(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잠깐 오름세를 보였다가(그것도 전염병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 다시 내림세로 돌아서서 트루먼의 재임 마지막 두 해인 1951년과 1952년까지는 1944년의 15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폭력 치사 발생률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마지막 두 차례 임기 내내 전염병 수준을 밑돌았고 트루먼,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정부에 들어가서도 줄곧 전염병 수준을 밑돌았다.
하지만 1969년 존슨이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으로 바뀌면서 폭력 치사 발생률은 20세기 들어 세 번째로 전염병 성층권을 향해 다시 빠르게 치솟았다. 사망률은 닉슨 정부 첫해부터 올라가기 시작해서 취임 2년째를 맞은 1970년에는 19.9명으로 전염병의 ‘바닥’ 수준으로 올라섰고 그 뒤로도 해마다 올라가서 1975년에는 23.2명을 기록했다. 민주당의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한 4년 동안 21.9명에서 22.9명으로 전염병 수준을 유지했고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아버지 조지 부시(George Bush)가 대통령으로 재직한 1981년부터 1992년까지도 19.9명에서 22.4명으로 여전히 전염병 수준을 유지했다.
1993년 공화당 출신의 전임자 부시로부터 21.7명의 폭력 치사 발생률을 물려받으며 빌 클린턴(Bill Clinton)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폭력 치사 발생률은 가파르고 일관되게 내림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그가 임기 4년의 대통령으로 재선된 첫해인 1997년에는 18.3명으로 전염병 수준 밑으로 떨어졌고 임기 마지막 해인 2000년에는 16명으로 떨어졌다. 그 전까지 공화당은 1969년부터 1993년까지 24년 중에서 20년을 집권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세 번째로 1970년부터 1997년까지 장장 28년이나 계속되었던 폭력 치사 전염병을 끝낸 것은 연임에 성공한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공화당의 아들 조지 부시가 클린턴의 뒤를 이어 2001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클린턴 재임기에 일어났던 폭력 치사 발생률의 급감세가 갑자기 끝나고 사망률은 오름세로 돌아섰다. 비교 자료가 있는 마지막 해인 2007년 현재 폭력 치사 발생률은 17.2명에 달했다.
요컨대, 그림 1.1의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20세기에 세 번의 폭력 치사 전염병이 일어났는데 모두 공화당 정부 때 시작되었고 민주당 정부 때 끝났다. 매년 꾸준한 내림세를 보였어도 시간은 제법 걸렸지만 그래도 민주당 정부는 1918년과 1941년과 1997년에 이 전염병을 모두 종식시켰다. 전염병은 1904년부터 1917년까지, 1921년부터 1940년까지, 1970년부터 1996년까지 전부 합쳐 61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폭력 치사 발생률이 전염병 수준을 밑도는 ‘골짜기’ 범위에 머물러 있었던 1918~1920년, 1941~1969년, 1997~2007년의 세 시기는 모두 민주당 정부 때(1918년, 1941년, 1997년) 시작되었고 전부 합쳐 43년 동안 지속되었다. 세 번의 비전염병 기간 중에서 처음 두 번은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끝났다. 지금의 비전염병 기간이 아들 부시의 재임 마지막 해인 2008년에 끝났을지 여부는 2007년 이후의 비교 자료가 아직 없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우리가 아는 것은 클린턴 때 해마다 이어지던 자살률과 살인율의 내림세가 아들 부시가 집권하자마자 갑자기 끝나고 오름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폭력 치사 발생률은 1941년이 끝나갈 무렵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에도 계속해서 떨어졌지만 하락세는 그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기에, 공화당 집권 말년인 1932년에 26.5명이던 것이 1941년에는 18.8명으로 떨어져서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이미 전염병 수준 밑으로 내려갔다. (자살과 살인을 망라한) 폭력 치사 발생률은 전쟁 기간에도 계속 떨어져서 전쟁이 극에 달했던 1944년에는 15명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그 뒤로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전후 14년(1951~1964년) 동안은 14.3명에서 15.9명으로 대략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따라서 루스벨트가 전임 공화당 대통령들한테서 물려받은 전염병 수준의 폭력 치사가 끝난 것은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폭력 치사 발생률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비전염병 수준으로 내려갔다. 뿐만 아니라 전쟁 때문에 전후에 폭력 치사가 대규모로 혹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종전 직후인 1945년과 1946년에는 폭력 치사 발생률이 16.9명까지 올라가면서 잠깐 오름세를 보였지만(그래도 전염병 수준을 한참 밑돌았다) 그 다음부터는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여 트루먼 재임 말년인 1951~1952년에는 15.3명과 15.2명으로 내려가면서 전쟁 기간에 나타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로도 12년 동안 똑같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1957년에는 사상 최저 수치인 14.3명을 기록했다.
아이젠하워 집권기를 제외하고 공화당이 집권한 모든 시기에 폭력 치사 발생률이 이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수준보다 크게 올라가거나 아니면 기존의 전염병 범위 안에 머물렀다. 1900년부터 등장한 11명의 다른 공화당 대통령과 달리 아이젠하워의 집권기(1953~1960년)만큼은 이렇게 예외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화당 대통령 때만 폭력 치사 발생률이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전반적 추세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젠하워 정부 때의 폭력 치사 발생률은 15명 안팎으로 전임 트루먼 정부 말년 때와 대체로 같은 수준을 유지했고 막판에는 트루먼 때보다 약간(0.1명) 올라갔다.
케네디가 재임한 3년과 존슨이 취임한 첫해에 살인과 자살을 망라한 사망률은 15.1명과 15.9명 사이였다. 그 뒤로 존슨이 재임한 나머지 3년 동안 폭력 치사 발생률이 전염병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계속 올라가서 존슨의 재임 말년인 1968년에는 1941년 이후 처음으로 18명까지 올라갔다. 공화당의 백악관 입성과 폭력 치사 발생률 사이의 수수께끼 같은 연관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런 오름세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존슨 재임기의 폭력 치사 발생률은 가장 높았을 때도 1970년부터 1996년까지 공화당이 지배한 27년보다는 여전히 낮았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비폭력적이었던 36년간의 민주당 정권이 끝난 뒤로 찾아든 27년간의 공화당 정권은 중단 없는 폭력의 전염병 기간으로 기록된 시기다.
1968년 선거는 20세기의 선거 지형도를 바꾼 중요한 선거였다. 여기에 견줄 만한 선거는 12년 동안 공화당 정권으로 이어졌고 대공황과 20세기 최고의 폭력 치사 발생률로 정점에 이르렀던 1920년 선거와 36년 동안의 이른바 뉴딜 의제(간판은 공화당을 달았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뉴딜 의제에는 적극 찬동했다) 시기로 이어진 1932년 선거 정도다. 1968년은 민권 운동의 성과에 반발하는 백인의 불만과 인종적 편견을 파고든 공화당의 ‘남부 전략’으로 남북 전쟁 당시 남군으로 싸웠던 남부 11개 주와 2개 경계 주(켄터키, 오클라호마)가 정치 성향과 투표 성향에서 ‘묻지마 민주당’에서 ‘묻지마 공화당’ 성향으로 돌변한 해였다. 이 선거를 계기로 공화당은 이후 24년 중 20년 동안 백악관을 다시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따라온 것이 1970년부터 1996년까지 27년 동안 지속된, 지난 107년의 역사에서 가장 긴 전염병 수준의 폭력 치사였다. 닉슨이 재임한 6년 동안 자살률과 살인율은 꾸준히 늘어나 취임 이듬해에 19.9명으로 전염병의 문턱을 넘어섰고, 후임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Gerald Ford)가 취임한 첫해에는 23.2명까지 올라갔다.
1977년 포드한테서 정권을 되찾은 민주당의 카터는 20세기가 낳은 민주당 대통령 7명 가운데 지난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염병 수준의 폭력 치사 발생률을 전염병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지 못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카터가 공화당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살률과 살인율은 그가 재임하는 동안 기본적으로 어느 쪽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아서 두 비율 모두 닉슨과 포드 때의 전염병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렇지만 카터 정부가 폭력 치사 발생률을 전염병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시발점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민주당 대통령은 아무도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카터는 다만 자신이 물려받은 전염병을 비전염병으로 반전시키지 못한 유일한 민주당 대통령이었다. 카터 재임기에 전염병이 이어진 것은 카터가 백악관에 4년밖에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20세기 후반의 클린턴도 그렇지만) 카터의 모든 전임 민주당 대통령들은 공화당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전염병을 취임 초반에 반전시키기 시작했고 그 뒤로 일관되게 폭력 치사 발생률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카터 다음에 온 두 명의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두 사람의 재임기 12년 동안(1981~1992년)에는 폭력 치사 발생률이 19.9명과 22.4명 사이에서 오르내리기를 거듭했지만 전염병 수준이나 능선 수준 밑으로는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클린턴은 1997년에 정권을 잡았을 때 전임 대통령 부시로부터 21.7명의 폭력 치사 발생률을 물려받았다. 그 비율은 클린턴 취임 첫해에 매년 가파른 내림세를 보이더니 그가 대통령으로 재선된 1997년에는 마침내 전염병 수준 이하인 19명으로 떨어졌다. 다시 말해서 4년 동안 꾸준한 하락세가 이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공화당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염병 수준의 폭력이 끝났다. 그 뒤로도 사망률은 계속 내려가서 클린턴의 재임 마지막 해인 2000년에는 16명까지 떨어졌다. 아들 부시가 2001년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이 극적인 하락세가 갑자기 중단되고 방향을 바꾸더니 느리게 요동치면서 상승세로 돌아섰다. 확실한 통계 자료가 2007년까지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아들 부시의 집권기가 미국의 폭력 치사 발생률에 끼친 영향을 완전히 알기는 어렵다. 지금으로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사실은 2007년에 폭력 치사 발생률이 16명에서 17.2명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수치는 클린턴의 재임 말년에 비해 폭력으로 죽는 사람이 연간 3,600명 늘어났다는 말이다. 부시의 기록과 클린턴의 기록을 비교했을 때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만일 폭력 치사 발생률이 2000년 이후로도 과거 클린턴 때와 같은 추세로 계속해서 떨어졌더라면 2007년의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은 부시가 보여준 것처럼 6.8명으로 올라가지 않고 2.9명으로 내려갔을 것이고 2007년의 자살률도 10.4명으로 늘어나지 않고 8.9명으로 줄어들었으리라는 사실이다. 이런 계산을 하는 이유는 이런 변화가 꼭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대통령 정권에서 일어난 사망률의 변화 양상이 얼마나 달랐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이젠하워와 카터에 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폭력 치사 발생률이 비전염병 수준에서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는 일은 공화당 정부에서만 일어나고 전염병 수준에서 비전염병 수준으로 회복되는 일은 민주당 정부에서만 일어난다는 좀 더 일반적인 추세에서 두 사람 다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공화당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해서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반드시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시작되려면 공화당 대통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 민주당 대통령이 있다고 해서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반드시 종식되는 것은 아니지만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종식되려면 민주당 대통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정리하면, 공화당 대통령과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의 전반적인 폭력 치사 발생률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다(즉 우연의 역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 연관성은 역사적 격변(대공황, 2차 세계대전)과 개인적 차이(아이젠하워, 카터)를 압도할 만큼 강하다. 그래서 수수께끼가 생긴다. 어째서 폭력 치사 발생률은 공화당 정부 때만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고 민주당 정부 때만 비전염병 수준 내지 ‘정상’ 수준으로 내려가는가?
똑같은 통계 자료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자살률과 살인율 모두 민주당 정부 때도 공화당 정부 때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들쭉날쭉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공화당 정부 때 골짜기에서 정상으로 치닫는 가파른 상승세가 나타나고 민주당 정부 때 정상에서 골짜기로 내리닫는 가파른 하락세가 나타남을 이미 확인했듯이 한 해와 그 다음 해 사이에 폭력 치사 발생률이 오르고 또 오를 때 큰 폭으로 오르는 경향은 민주당보다 공화당 때 더 자주 나타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폭력 치사 발생률이 떨어지고 또 떨어질 때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경향은 공화당보다 민주당 때 더 자주 나타난다.
각 정당 집권기에 일어난 폭력 치사의 연간 증가분과 감소분을 합산했더니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에서 14.5명의 순누적 증가세를 보였다. 민주당은 정반대로 1913년부터 2000년까지 집권하는 동안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에서 13.3명의 순누적 감소세를 보였다. 마찬가지로 공화당 정부 때는 살인율에서 5.4명의 순누적 증가세를 보였고 민주당은 5명의 순누적 감소세를 보였다. 그래서 공화당 때의 폭력 치사 발생률 총증가분은 19.9명(14.5명 더하기 5.4명)이고 민주당 때의 폭력 치사 발생률 총감소분은 18.3명(13.3명 더하기 5명)이었다. 집권당과 자살률, 살인율, (살인과 자살을 합친) 총 폭력 치사의 이런 연관성이 단순히 우연에서 비롯되었을 확률은 1,000분의 1도 안 된다.
(추천사, 머리말, 1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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