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우리는 왜 영어에 목을 맬까?
아이들이 영어만 잘할 수 있다면
지난 2010년 여름, 저는 9년 만에 고국을 찾았습니다. 여름이 오기 몇 달 전부터 달라져 있을 고향과 친구, 가족들을 볼 생각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처음 한국에 가는 두 아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한국은 공항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옛날에 학교로 가던 버스 노선도 다 사라지고,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요금을 내며 버스를 타더군요. 지하철 창문에 광고가 뜨고 거리의 아파트들은 그새 두세 배는 키가 자랐습니다.
이런 겉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것도 잠시, 저희 내외는 한국 어린아이들에게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애초에 저희가 한국을 방문하기로 하며 바랐던 것은 우리 아이들이 한국말을 많이 배웠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아이는 그나마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고 집에서 저희와 말을 많이 한 덕에 능숙하게 한국말을 구사합니다. 하지만 둘째아이와 셋째아이는 연년생이어서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더군요. 텔레비전을 보고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말을 따라하며 노는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통역해서 놀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서로 영어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한국에 가서 한국 친구를 사귀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어를 많이 배우지는 못할지라도 한국말을 하는 또래 아이들과 친숙하게 되면 자연히 한국말도 늘겠지 하고 기대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곧 저희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이 영어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외국어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군요. 놀란 것은 저희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빠, 한국 애들이 영어를 해!”
하지만 이들뿐이 아니더군요. 제 친구의 아이들 중에서도 영어로 대화하는 애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외국에서 태어난 아이도 있고, 어릴 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희 애들이 여기서 친구들과 놀며 한국말을 배우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죠. 아이들이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희가 미국에서 한국 가정을 방문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희 애들이 놀기에는 편했을지 모르겠지만 저희로서는 충격이었습니다. 한국 애들인데 한국에서 한국말을 안 한다니. 여러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겠지만 참 어색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자녀 교육을 위해 한국에서 오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서 하나같이 듣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영어공부 시킬 돈이면 미국에 오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교육이 경쟁적이고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는 반증이죠. 그분들의 말씀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신문으로 보는 한국의 교육 현실은 멀리서 봐도 너무나 힘들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 사회의 영어에 대한 집착은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딸과 함께 대학로를 찾았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거리구경을 하고 있는데 유치원 학생들이 보였습니다. 소풍이나 견학을 나온 듯했습니다. 아이들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해 보였습니다. 선생님 대부분이 백인이었고, 아이들 모두 영어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버스를 보니 강남의 무슨 영어 유치원이더군요. 속으로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영어 유치원이구나’ 싶었습니다. 씁쓸했습니다. 거리는 어디를 둘러봐도 영어 학원이고, 영어공부를 시키는 것이 모든 부모의 지대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리고 영어 능력의 성취를 위해서라면 많은 것(심지어 가족의 행복과 유대까지)을 포기할 것 같은 기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한국만의, 그리고 요새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18~19세기 유럽 귀족층 사이에서는 프랑스어를 쓰는 것이 대유행이었습니다. 러시아, 프러시아(나중에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 심지어 미국에서도 귀족-특권층들은 주로 프랑스어로 대화를 했습니다. 프러시아의 유명한 황제인 프레데리크대제Frederick the Great도 모국어인 독일어는 하인들에게나 예외적으로 썼습니다. 러시아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모국어로 쓴 소설은 대부분 하류로 취급받았고, 귀족들은 아예 자녀들에게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프랑스어와 함께 프랑스의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전통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상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삼국시대부터 한자는 늘 지배계급의 문자였습니다. 18세기 조선의 천재라고 알려진 박지원이 1780년 중국을 여행하며 쓴 《열하일기》를 읽어보면 그때까지도 (한글 창제가 1443년입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간 사람들은 글을 써서 중국인과 대화를 할 수 있었죠. 우리 현대사를 보더라도 미군정 시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출세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문과 유학을 정치, 사회적 질서의 근간으로 삼고 있던 조선 시대도 아니고 해방과 전쟁 통에 미군의 지배를 받던 때도 아닌 지금의 한국에서 영어라는 목표를 좇는 사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또 성공적인 영어의 학습 없이는 통상적인 의미의 출세가 극히 힘들어졌다는 것은 앞서의 사례들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대입-취업-승진을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
영어가 얼마만큼 중요할까요? 대답이 너무 빤하긴 하지만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에서 학벌의 중요성은 (슬프게도) 보통 어린아이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고급 학벌의 획득을 위해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점수가 중요합니다. 수능은 보통 500점 만점이고 그 중 영어는 50문제로 100점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영어가 주요 과목일 수밖에 없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치러졌던 학력고사는 340점 만점에 영어가 60점이었죠. 그때도 영어는 늘 학생들의 큰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영어의 비중은 그때에 비해 더 커졌습니다. 학력고사 체제에서 총점의 17.5%를 차지하던 것이 수능이 도입되고 나서는 20%를 차지하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2.5%라는 것이 수치상으로는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단 1~2점에 당락이 좌우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가볍게 볼 수치가 아닙니다.
취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요 기업이나 기관의 입사에서 영어 시험을 안 보는 곳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영어를 평가하는 방법으로는 표준화된 시험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 중 가장 널리, 오랫동안 쓰인 것이 토익입니다. 토익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소통에 중점을 두는 평가로 미국의 교육평가서비스Educational Testing Service: ETS라는 기관에 의해 개발되었고 세계 많은 나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2008년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000대 기업 취업 시 토익과 같은 영어 표준 시험을 요구하는 기업의 수는 절반이 넘었고 이 중 절반 정도가 토익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점수도 꽤 높더군요. 예를 들어 2008년 기준으로 삼성증권이나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900점 이상을, 호텔신라나 제일기획에서는 860점 이상을, LG나 포스코 등에서는 800점 이상을 요구했습니다. 국가 주요 임무를 관장하게 될 5급 공무원 시험의 영어 시험도 토익 등 민간 영어 시험으로 이미 대체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대기업에서는 경쟁적으로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요새는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 OPIc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미국의 국제언어테스팅Language Testing International이라는 회사에서 공급하고 있는 이 시험은 삼성에서 쓰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는데요, 이미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에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삼성, LG, 포스코, 두산, SK, 한화, 롯데, STX, CJ, 신세계, 한국석유공사 등 국내 500여 개 대기업에서 필수로 쓰이고 있고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취직을 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앞선 2008년 조사에 따르면 500여 개 대기업 중 절반 이상이 토익을 인사고과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토익은 승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지만 그 외 직원 배치나, 해외 파견자 선발 등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오픽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인사 담당자에 따르면, “CJ에서는 2007년부터 승진 체계에 오픽만을 적용하여 반영하고 있습니다. 과장, 부장의 경우 오픽 성적이 없으면 승진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모든 직원들이 2년에 한 번씩 오픽 성적 제출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술 더 떠서 한화그룹은 오는 2013년부터 임원 승진시험 시 영어 말하기 시험 성적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뛰어난 영어구사 능력이 없다면 사회에서 대입-취업-승진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성공은 무척이나 힘들어 보입니다.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
사정이 이러하니 너도나도 영어공부에 목매는 것이 어찌 보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또한 이상한 것이 과열된 영어공부 현상을 보면서 망국병이라고 불러도 별로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들 문제는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입니다.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고 다들 그걸 아는데 아무도 고치지는 못한다, 좀 말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그 무엇인가가 문제를 풀기 힘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의문을 푸는 데는 특별한, 돈이 많이 드는 조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모두 다 아는 사실을 이리저리 다르게 퍼즐을 맞추고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조사 방법이었습니다.
이 책의 결론은 우리의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꼬드겨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그 사기말입니다. 이러한 사기가 이처럼 크게 성공하고 있는 까닭은 다들 이것이 사기인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의 문제가 아닌데 교육의 문제로 접근하니 영어 망국병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영어 망국병은 결국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의 문제이자, 영어로 갈라진 계급 간의 갈등인 것입니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우리의 영어 문제는 영어를 비롯해 많은 것을 누리는 계급과 그러지 못하는 계급 간의 긴장, 그리고 후자가 전자를 따라가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믿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영어 계급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죠.
물론 이 결론은 저의 결론일 뿐입니다. 이에 공감하건, 불편해하건, 화를 내건, 반대를 하건 그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자그마한 저의 바람은 우리 사회의 그 수많은 영어 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 책으로 인해 조금 그 시점을 달리하게 되고, 조금 더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가족들의 사랑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딸의 굳건한 신뢰와 두 아들의 유쾌한 재잘거림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이 책의 첫 독자인 아내의 지원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2012년 1월 집 뒤뜰에서
9장
영어망국병,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영어 투자, 심각하고도 슬픈 사회적 낭비
영어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턱없이 비싼 대가를 영어공부에 지불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개개인이 판단해서 이 영어 기차에서 내리기에는 사회적 강요가 너무 거셉니다. 포경수술도 그 이유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남들이 다한다며 따라하는 마당에 하물며 사회적 지위와밀접하게 관련된 영어를 무시하기 쉽겠습니까?
물론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상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 또한 우리가 쏟아 붓는 비용에 비춰서 봐야 할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그렇도록 영어에 투자하고 얻은 사회적 소득은 초라합니다. 공부하는 영어 자체가 입시, 취직 등으로 이어지는 경쟁의 한 도구일 뿐 정작 소통을 위한 영어를 염두에 두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니 힘들게 연마한 영어를 바람직하게 쓰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한국인의 영어 사용을 조사한 한 조사를 보면 “최근 1년 동안 초보적인 인사말을 제외하고 문장 단위로 영어를 말하거나 글로 쓰거나 영어 문서를 읽은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물어본 결과, 조사 대상자의 20.3%가 ‘없다’고 대답했고…… 최근 1년 동안 일을 하면서 외국인과 영어로 말하며 의사소통을 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묻는 질문에도 ‘없다’(37.8%)가 가장 많았으며…… 영어를 사용해야 할 경우가 주로 어떤 영역이냐는 질문에는 ‘인터넷 로그인할 때, 이메일 주소 적을 때 말고는 그럴 일이 없다’는 응답이 40.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심각하고도 슬픈 사회적 낭비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을 간단하게나마 논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사회, 영어 집착 병적인 수준
한 개인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우리의 영어에 대한 집착은 병적인 수준입니다. 이성적 판단으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에는 중독 증세가 너무나 심합니다. 너도나도 영어에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영어 망국병에 찌들어 있는 것이죠. 더욱 슬픈 것은 우리 사회의 영어 망국병이 단순한 병이 아니라 일종의 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슬픈 사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또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영어라는 것이 열심히 공부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영어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그 ‘열심히’라는 것의 정도나 타고난 언어의 재능 면에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러한 투자나 재능은 누구나 쉽게 갖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게 될 듯 보일까요? 열심히 했다가 실패한 사람은 티브이나 라디오에 나와서 자신의 실패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영어공부를 하다 좌절한 개그맨이나 가수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영어공부를 하다 좌절에 빠진 학생이 광고에 등장하지도 않죠. 선생님도 실패한 제자들의 이야기를 다른 제자들에게 들려주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대중매체나 광고, 주변의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음으로 해서 마치 열심히만 하면 다 성공할 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는 이 착각과 자신의 늘지 않는 영어실력 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합니다. 그렇게 사기 행각이 먹혀들기 시작합니다.
일단 사람들에게 먹혀들기 시작한 사기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을 영어 교육의 광풍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하면 다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표어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우리의 문화도 한몫했겠죠.) 수많은 돈이 영어 사교육으로 쓰이고, 이 시험 저 시험 준비하고 등록하느라 돈을 써야 합니다. 점점 더 어린 학생들이 영어 학원을 들락거리고 심지어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마저 뒷전으로 밀리기도 합니다. 어린 학생뿐 아닙니다. 깊고 창의적인 사고를 요하는 대학 공부도 영어로 하고, 중년의 회사원들도 영어 말하기 시험을 봐야 하는 이상한 상황도 발생합니다. 우리 사회가 영어에 미쳐 있는 만큼, 더 정확히 말해 우리 사회가 영어에 미친 듯이 돈을 쓰고 있는 만큼 한쪽에서는 엄청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영어 교재, 영어 학원, 시험 회사를 포함한 영어산업은 그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의 자본이 들어오고 외국의 학교가 한국에서 문을 엽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들이 걱정 대신 자랑거리가 되는 듯합니다. 사기가 큰 돈벌이가 됩니다.
영어 망국병은 우리 사회의 계급 문제
사람들은 누구누구가 토플 만점, 토익 만점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더 나은 점수를 꿈꿉니다. 그리고 이는 남보다 더 유명한 학교로 입학하는 것, 남보다 더 큰 회사로 취직하는 것, 남보다 더 빠른 승진의 꿈으로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남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로 가는 열차를 타고 싶은 것이지요. 텔레비전 연속극에 나오는 재벌가의 자녀를 보나 미국에서 온 상사들을 보나 광고 한 편으로 수억 원을 버는 젊은이들을 보아도 유창한 영어는 상류층의 상징이 된 듯합니다. 또 실제로 주변 상류층 사람들을 보거나 그들이 모여 사는 모습을 간접적으로라도 보게 되면 그들이 자녀의 영어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보통 이상이고, 그래서인지 그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확실히 다릅니다. 상류층에서는 영어가 생활의 일부인 것이죠. 영어를 잘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유창한 영어 없이는 성공은 점점 더 힘들어 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기를 쓰고 영어를 합니다. 점점 더 멀어져가는 상류층에 더 늦기 전에 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사기가 숨어 있습니다. 상류층은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끼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영어가 실제로 현실적인 이익과 직결되고 상징적인 의미로도 중요한 것이니 보통 사람들이 따라오는 만큼 그들의 영어는 점점 더 세련되어집니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들의 특화된 장점을 포기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상류층 대학생들이 미국으로 연수며 유학을 떠납니다. 사람들이 따라갑니다. 상류층에선 고등학교부터 아예 미국으로 보냅니다. 사람들이 따라합니다. 중학교, 초등학교 유학에 원정 출산까지 사람들이 따라하면 할수록 상류층에서는 점점 더 어린 나이에, 점점 더 비싼 교육으로 대응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있을 만큼 따라해보지만 대부분 적당한 선에서 멈추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상류층이 웃으면서 구사할 영어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면서 공부합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경쟁인 것입니다. 사기의 완성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해보죠.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됐다고 상상해보죠. 돈 수억 원을 들인 상류층이나 공립학교를 나온 노동자의 자녀도 다 완벽한 영어를 하게 됐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럼 우리 사회의 영어 광기는 사라질까요? 갑자기 우리는 영어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어린 학생들은 웃으며 공을 차고 대학생들은 자기 전공에 몰두하게 될까요? 물론 영어 광기는 사라질 테죠. 영어에 대한 광기는 사라지지만 광기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영어가 외국인과의 소통보다는 신분 상승의 도구로서의 역할이 더 크고 한국에서 엘리트로서의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이상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구사한다면 영어가 가진 계급적인 의미는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계급 간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죠. 영어가 그 역할을 못한다면 다른 무엇인가가 대체할 것입니다. 옛날에는 나이키 운동화가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할 때도 있었습니다. 모두 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게 되면서 그 상징적 가치는 없어졌죠. 아무도 그 흔한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다고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소지품에서 계급의 차이를 구분하고, 으스대고, 부러워하는 일이 멈춰졌나요? 아니죠. 나이키 운동화가 가졌던 상징성은 외제차, 명품 가방으로 옮겨졌을 뿐, 그에 대한 욕망과 가진 자와 가질 수 없는 자의 구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영어가 그 계급적 역할을 못하게 된다면 상류층은 자연스레 그 시대에 맞는 대체물을 찾겠지요. 중국어가 될 수도 있고, 러시아어가 될 수도 있고, 유대교 경전이 될 수도 있고, 태국의 무술인 무에타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영어 망국병은 영어 망국병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대신 영어 망국병은 우리 사회의 계급 문제인 것이죠. 계급 간의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신분 상승의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욕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현재 한국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점점 더 악화되어 영어 망국병이라는 증세로 나타날 뿐입니다. 그렇다면 영어의 문제는 개인이나 한 집단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영어 교육에 대한 갖가지 토론과 다양한 정부 정책이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영어 몰입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공교육으로 영어 사교육을 흡수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증상을 없애려는 시도는 어떠한 성공도 거둘 수 없는 법입니다. 이제까지의 정부 정책이 계속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문제가 아닌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들어가는 말 전문, 9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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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남태현
젊은 날의 대부분을 서울의 한 섬에서 살았습니다. 결혼 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캔자스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워싱턴D.C 근교에 있는 솔즈베리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시위와 억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고,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큰 웃음소리로 유명하며, 문무를 겸비하고자 노력 중인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미국에서 영어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의 영어 문제를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영어 망국병이 창궐하고 있죠. 그러나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기가 이토록 크게 성공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모두가 이것이 사기인 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 망국병은 결국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의 문제이자 영어로 갈라진 계급 간의 갈등인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이미 영어 계급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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