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전쟁의 변화에 대한 나의 관찰은 이 책이 독일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여러 방식으로 확증되었다. 물론 그 말이 ‘낡은’ 전쟁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08년 여름, 그루지아 군대가 빼앗긴 자국의 영토 일부를 다시 그들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을 때,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러시아 군대가 그루지아를 침공한 것은 오히려 국가 간 전쟁이라는 전쟁의 고전적 유형에 해당했다. 그러나 일단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을 제외하고 보면, 이 전쟁은 지난 10여 년 동안에 일어난 유일한 고전적 형태의 전쟁이다. 이라크전쟁은 국가 간 전쟁으로 시작했지만 개입세력의 신속한 승리 후에 내전으로 변했다. 이 내전은 여러 해를 끌면서 과거의 통상적인 전쟁보다 사회경제 질서에 더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라크 전쟁은 그런 의미에서 전혀 고전적인 전쟁이 아니었다. 이 전쟁은 이라크 전투부대의 형식적 패배로 끝날 수 없었다. 이 전쟁에는 휴전 상태도 없었고 평화협상도 없었다. 이라크 국가가 그냥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정치와 군사는 일시적으로 큰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모든 면에서 우월한 서구의 군사력에 맞선 이라크가 보유한 가장 위험한 무기였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이라크인의 저항은 게릴라전과 테러리즘의 혼합 형태로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 저항은 서구의 군사력에 정규 이라크 군대가 이전에 끼쳤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손실을 끼쳤다.
최상의 상태로 무장한 미국의 군사력과 그 밑의 국가군의 군사력 차이는 지난 몇십 년 동안 너무 커져서 대부분의 국가들의 경우, 그들이 행여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결하고자 해도 정규부대로, 그리고 관습적인 방식으로 맞서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파르티잔전쟁이나 테러 공격과 같은 관습적이지 않은 투쟁 방식을 택한다면, 저항은 효과적일 수 있다. 이 책에서 고전적 전쟁의 유형으로서, 그리고 ‘새로운 전쟁’의 반대 모델로서 묘사된 대칭적 전쟁의 발발 가능성은 지난 몇 해 동안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남한과 북한 간의 특별한 대치 상태가 지배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상황이 다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대칭적 전쟁의 발발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한반도는 북한이 군사력 외의 다른 힘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도 또한 대칭적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줄어드는 보편적 경향의 예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관해 집중적인 토론이 이루어졌다. ‘새로운 전쟁’이 정말 그토록 새로운지, 또는 그 속에 과거에 이미 존재했던 전쟁의 요소들, 어쩌면 유럽 내의 전쟁에서보다는 식민전쟁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요소들, 그리고 제국주의적 팽창의 시기에 전면화한 요소들이 오히려 드러나지는 않는지. 이 책은 이런 질문들을 다루지 않는다. 추측컨대 대칭적 전쟁의 시대가 오히려 세계사적으로 예외이다. 대칭적 전쟁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형태를 취하는 영토국가 시스템이 형성된 곳에서만 나타났다. 우리는 또 전쟁의 대칭성이 동일 문화권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우세한 것과 결합되어 있다고, 그리고 문화 간의 전쟁에서는 그 반대로 비대칭적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정치적ㆍ군사적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또한 전사들의 에토스와 전사들을 전쟁법적으로 구속하는 형식들과도 관련되는 문제이다. 전사들이 같은 문화에 속해 있고 대체로 같은 무기를 가지고 싸우며 비교 가능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으면, 그때에 서로 맞서 싸우는 전사들은 전투에서 모든 것을 허용하지 않는 데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다. 대칭적 대결의 조건 속에서 충돌 당사자들은 전쟁의 규격화, 즉 전쟁 수행의 규칙에 관심을 가진다. 전쟁을 시작하고 종료하는 형식적 행위들과 전쟁포로에 대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 등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비대칭적 조건 속에서 상황은 반대가 된다. 내가 나를 제한하는 것, 그것은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을 중지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전쟁포로에 대한 고문의 금지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또한 적을 스스로 제한하도록 유도한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자기제한을 스스로 부과하려는 경향은 약해진다. 그러므로 비대칭적 전쟁은 대칭적 전쟁보다 폭력의 강도 면에서는 약하지만 더 잔혹하고 끔찍하며, 무엇보다도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 ‘새로운 전쟁’의 지속 기간은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이다. 비대칭적 전쟁은 결과적으로 사회 구조에 훨씬 더 깊이 파고들며, 그렇기 때문에 또한 대칭적 전쟁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비대칭성은 새로운 전쟁의 ‘한 가지’ 특징일 뿐이다. 또 다른 특징은 전쟁의 경제화이다. 전쟁의 경제화의 주역으로서 한 쪽에서는 군벌들이,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버섯처럼 땅에서 솟아난, 민간경제 방식으로 조직된 군사 서비스 공급업자들이 등장했다. 양자의 특징은 전쟁이 경제적으로 유익할 수 있고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지출보다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군사적 폭력의 사용과 공급을 경제적 자원(돈벌이의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나는 군벌과 관련하여 이 사실을 이 책에서 자세히 묘사했다. 그러나 이른바 민간군사회사Private Military Companies, PMCs는 이 책에서 덜 조명되었다. 자본주의 세계의 논리에 순종하는 민간군사회사는 돈을 탐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권력에도 욕심을 내는 군벌들과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그 사이에 당연히 하이브리드가 등장했다. 훌륭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한 폭력집단의 지도자들은 전쟁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유럽에서 아프리카에 있는 반란집단들을 조종하고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명령한다.
‘낡은 전쟁’이 군대와 민간인을 구분했다면, ‘새로운 전쟁’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전쟁참가자 유형을 만들어낸다. 이 새로운 유형의 전쟁참가자들은 보통 과거의 전쟁참가자 유형들의 혼합과 결합으로 묘사된다. 이들의 특징은 반전 가능성이다. 즉 드러나는 곳에서 그들은 민간인이지만, 가능한 곳에서 그들은 전사이다. 이것이 ‘새로운 전쟁’에 구속력 있는 규칙들을 부과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고, 또한 그 규칙들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다.
‘새로운 전쟁’의 세 번째 핵심적인 특징도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나는 전쟁의 탈군사화라고 일컬었다. 고전적 전쟁은 군대의 업무였다. 군대는 제복, 조직, 고유의 행위규범을 통해 시민사회로부터 구분되었다. 군대는 정상적인 경우에 정치, 즉 국가의 지휘권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정치적 행위논리와 경제적 행위논리는 ‘새로운 전쟁’의 폭력 행위자들 속에서 서로 결합된다. 폭력은 이제 매우 드문 경우에만 적의 군사적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되고, 우리의 의지를 적에게 강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민간인은 오히려 전제적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민간인은 어떤 경우에는 추방당하고, 다른 경우에는 노예노동을 강요받는다. 또 다른 경우에 민간인은 군벌들의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점경인물staffage이 된다. ‘새로운 전쟁’에서 전쟁폭력은 일상적인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된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는 물론, 전쟁과 범죄의 경계도 흐려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은, 이 책에서 나도 그렇게 사용했지만, 어디까지나 베버적 의미의 이념형을 가리키는 것이지,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명칭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개념을 통해 오히려 비대칭성이라는 특징이 드러난다. 다른 경우에는 이 개념을 통해 경제화라는 특징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새로운 전쟁 이론은 전쟁의 어떤 전개 방향을 묘사하지만, 모든 개별 전쟁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개별 전쟁을 묘사하는 경우에도 전혀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몇몇 논평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했다. 그들이 반론의 근거를 찾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몇몇 전쟁에서 ‘새로운 전쟁’의 많은 특징들이 덜 뚜렷했고 몇몇 전쟁에서는 심지어 대칭성의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 이론은 반대 사례의 발견을 통해 반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이론이 ‘모든’ 전쟁이 ‘새로운 전쟁’의 유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사태 전개의 지배적인 경향이 그렇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관찰은 독일어 초판이 출간된 이후로 여러 번 확인되었다.
2011년 7월 베를린에서
헤어프리트 뮌클러
서문
정치적 공론이 오랫동안 인식하지 못했지만, 전쟁은 지난 수십 년 간 단계적으로 그 양태를 바꾸어왔다. 냉전 시나리오 전체의 특징이었던 고전적인 국가 간 전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모델이 된 듯하다. 국가가 실질적인 전쟁독점자의 지위에서 물러나고, 국가의 자리에는 점점 더 많이 전쟁을 지속적인 활동영역으로 삼는 유사 국가 행위자와 부분적으로는 심지어, 지역군벌이나 파르티잔에서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용병회사와 국제적인 테러조직망에 이르는, 사적인 행위자마저 들어선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전쟁 수행 비용을 직접 지불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달하는 전쟁사업가들이다. 그들은 부유한 개인이나 국가 또는 이민자 집단에게서 재정적 지원을 받거나,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천공권과 시추권을 팔고, 마약밀매나 인신매매를 하며, 인질들의 몸값을 갈취한다. 그리고 그들은 난민촌을 통제하고 있거나, 최소한 난민촌에 대한 접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가 지원해주는 물품으로부터 이익을 챙긴다. 그러나 전쟁 당사자들이 자원을 어떻게 구하든지 간에 이 새로운 전쟁들에서 전쟁 재정의 조달 문제는 고전적인 국가 간 전쟁에서와 달리 언제나 전쟁 수행 자체의 중요한 측면이다. 재정 조달 방식의 변화는 새로운 전쟁이 끝날 기미도 없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새로운 전쟁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의 경제적 토대에 주목해야 한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전쟁과 폭력의 경제적인 측면에 주목할 때에도 당연히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족적-문화적 긴장과 점차 커져가는 종교적 신념 역시 새로운 전쟁들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만약 종족적 대립이나 종교적 대립이 없었다면, 지난 십여 년 동안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전쟁과 코카서스 지역의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다르게 전개되었거나 애초에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체계Ideologeme는 지지와 헌신을 동원하는 자원이며, 최근의 전쟁 당사자들은 이러한 가치체계에 더욱 강하게 의존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예전의 많은 전쟁들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전쟁과 같은 무력행사의 동기와 그에 대한 정당화의 근거들이 오늘날에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사회혁명적 이데올로기들이 특히 그러하다. 만약 우리가 반복적으로 들어온 것처럼 가난과 궁핍이 정말 전쟁의 주요 원인이라면, 이 사회혁명적 이데올로기들에 더 큰 중요성이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전쟁에서 부의 불공정한 분배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군사적 충돌이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쟁사업가들이 한 지역에 둥지를 틀고 부존자원을 착취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해당 지역에 절망적인 가난이 찾아올 가능성이 더욱 커지며, 따라서 전쟁이 끝나더라도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회복될 희망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전쟁들의 독특한 경제는 전쟁의 장기적 지속과 결합하여 소모되고 황폐해진 지역들을 포괄적인 외부의 원조 없이는 자립할 수 없도록 만든다.
갈등의 원인과 폭력의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나는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열려 있는 개념인 ‘새로운 전쟁들’이라는 개념을 선호한다. 나는 새로운 전쟁들이 실은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며, 심지어 여러 가지 관점에서 매우 오래된 것의 귀환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 수행 형태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전쟁들의 특징과 특별한 점을 찾아내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새로운 전쟁들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전쟁에 대한 생각에 여전히 각인되어 있는, 고전적인 국가 간의 전쟁들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새로운 전쟁이 일정한 측면에서 근대 초기 유럽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전쟁 수행 조직의 국유화 시작 이전으로 회귀된 것처럼 묘사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전쟁이 국유화하기 전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의 상황과의 유사점을 밝히는 데 적합한 방법이다. 당시에는 국가가 아직 전쟁의 독점자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국가가 더는 전쟁의 독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삼십년전쟁의 상황은 새로운 전쟁들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흡사하다. 삼십년전쟁에 특징적인 것은 사적인 부와 개인적 권력의 추구(발렌슈타인, 에른스트 만스펠트, 크리스티안 폰 브라운슈바익), 이웃한 강대국 정치인들의 팽창 추구(리셸리외, 베틀렌 가보), 특정 가치들을 보호하기 위한 개입(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프), 권력, 영향력, 지배적 지위를 둘러싼 내부투쟁(팔츠의 프리드리히,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등으로 구성된 혼합물이었다. 또한 종교적 신조의 결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과 베트남, 이라크와 이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사이에서 치러진 것 같은 고전적인 국가 간 전쟁의 몇몇 사례들을 제외한다면, 우리 시대 대부분의 커다란 전쟁들에서 가치와 이익, 국가적, 유사 국가적 행위자와 개인적 행위자들로 구성된 유사한 조합을 관찰할 수 있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폭력 사용의 지속적 중지에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은, 그래서 평화가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익집단이 많다는 사실이다. 수단 남부에서 대호수 지역과 콩고를 지나 앙골라에 이르는 사하라 이남 지역의 전쟁들,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와 관련된 전쟁들, 코카서스 전 지역에서 일어난 무장분쟁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체첸 전쟁, 1980년대 초반 이래 계속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들은 모두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국가 간 전쟁들보다는 삼십년전쟁과 훨씬 더 유사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비교는 새로운 전쟁들의 특별함을 분명히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전개를 추적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이미 언급한 군사력의 탈국가화 또는 민영화이다. 이것은 새로운 전쟁들에서 전쟁의 직접적인 수행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경량의 무기들을 어디에서나 염가에 구할 수 있으며 그것들의 사용법을 익히는 데에도 오랜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전쟁 수행 비용이 낮아진 것은 군사력의 비대칭화라는 새로운 전쟁들에 특징적인 두 번째 전개와 관련이 있다. 통상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적수가 맞서 싸우는 상황인 것이다. 더는 외부로 드러나는 전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일도 드물고, 대규모 전투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군사력이 서로 충돌하여 소비되지 않고 비축되었다가 민간인들에게 사용된다. 이런 비대칭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이전에 군사전략의 하위 전술적 요소였던 폭력 사용의 특정 형태들이 비대칭화 과정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 전략의 차원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 이후에 전개된 파르티잔전쟁과 특별히 테러리즘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전쟁들에 전형적인 세 번째 경향, 즉 한때 군사 시스템의 일부였던 폭력 형태들의 점진적인 자립화 또는 자율화를 언급할 수 있다. 그 결과로서 정규군은 전쟁 발발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렸고, 이 통제력의 상당 부분이 전쟁을 동등한 행위자들 사이의 대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폭력행위자의 손에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로 조직된 폭력에 대한 종합적 표현이라는 전쟁 개념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까?2) 전쟁의 국가 독점이 끝나면서 실제로 전쟁은 자신의 윤곽선을 잃어버렸다. 전쟁의 폭력과 조직범죄는 점점 더 중첩되어 나타나고, 정치적 요구들을 내세우는 대규모 범죄 조직들과, 약탈과 불법 물품의 교역으로 부양되는 과거 군대의 잔존 세력이나 군벌 지도자의 무장 추종세력을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전쟁’은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이 되었다. 위와 같은 현상에 전쟁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폭력 사태의 악화를 조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국가 간 전쟁 모델을 고수하면서 폭력 사용의 국가하위적 형태들에 전쟁의 자격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전쟁 현상의 새로운 전개들에 눈을 감는 것일까? 이 질문은 무엇보다도 국제 테러리즘의 최근 형태들과의 대결에서 엄청난 정치적 폭발력을 얻었다. 늦어도 2001년 9월 11일 이후로는 무엇이 전쟁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되지 않아야 하는지가 학문 내적 질문에 그치지 않고 세계 정치적 중요성을 가지는 결정이 되었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는 일에 기여하고자 한다.
1. 새로운 전쟁, 무엇이 새로운가?
오래된 제국들과 새로운 전쟁들
지난 10~20년 동안 길게나 짧게 우리의 이목을 끌었던 대부분의 전쟁들은 지난 세기의 초반까지 세계를 지배하고 분할했던 제국들의 주변부와 분할 단면에서 벌어졌다. 그래서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와 관계된 발칸반도상에서의 전쟁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20세기 초까지 서로 충돌했고 크고 작은 전쟁의 결과로 그들의 세력 범위를 늘 다시 바꾸었던 바로 그곳에서 가장 격렬했고 또 오래 지속되었다. 옛 소비에트 연방의 남부, 즉 코카서스와 그 접경 지역에서 활활 타오른 무장분쟁과 전쟁들도 유사하다. 이 전쟁들도 본질적으로 그런 지역들에 관계된다. 그 지역들은 18세기 이래 팽창하는 차르 제국과 움츠러드는 오스만 제국이 서로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곳이며, 러시아인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서도 그곳 주민들을 자신들의 통치 아래 두는 데에 일시적으로밖에 성공하지 못한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오스만 제국이 최종적으로 멸망하면서 단지 발칸반도와 코카서스에서만 분쟁과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아랍 지역에도 수많은 분쟁들이 일어났는데, 그중에서 팔레스타인 분쟁은 오래 전부터 가장 중요한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도 유사하다. 19세기에 아프가니스탄은 이곳으로 향하는 러시아 차르 제국과 인디아 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 제국 사이의 완충지대가 되었고 그 기능을 20세기까지 지속해왔다. 1970년대 말에 소비에트 연방이 자신의 영향권을 힌두쿠시 산맥 너머로 확장하고, 세계의 에너지 저장고인 아랍 지역과 중국에 맞서는 잠재적 동맹국으로서 의미가 있는 인도 사이에 전략적 도약대를 확보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내의 근대화 세력과 전통주의 세력 사이의 대립을 이용하려 했을 때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20년 이상 지속되다가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국가조직을 붕괴시키고서야 끝났다. 1980년대에 미국은 반 소련 성향의 무장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소련의 간접적인 적이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물러난 후에 그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관심이 약해지자 그 자리에 파키스탄이 들어섰다. 파키스탄의 군사정부는 카불에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인도와의 대규모 전쟁에 전략적으로 필요한 후방을 확보하기를 원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파키스탄의 이런 관심 역시 예전에 영국인들이 지배하던 공간이 깨어지면서 생겨난 갈등, 즉 언제나 다시 양국 간의 전쟁을 통해서 해결되곤 하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긴장 상태에서 비롯했다. 1940년대 후반에 대영 제국의 ‘파산재산’에서 생겨난 이 두 적대 국가들은 특히 카슈미르 지역에서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국경선을 확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일부는 인도에, 일부는 파키스탄에 (또 부분적으로는 중국에도) 속하는 이 지방은 오늘날까지도 끊임없는 갈등의 온상으로 남아 있다. 접근이 어려운 이 지방의 산악 지역에는 작은전쟁, 곧 파르티잔과 민병들의 전쟁이 수십 년 동안 둥지를 틀고 앉아 있다.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소말리아를 넘어 기니나 시에라리온에 이르는 동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의 검은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전쟁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유럽의 식민세력이 지배했던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때 국가들 사이의 충돌을 유발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에 그어진 국경선이기보다는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경제적 노선의 채택을 둘러싼 내부의 분쟁이다. 여기에서 종족적 갈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기원은 부분적으로 식민지 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갈등을 식민세력들은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용해왔다. 이 종족적 갈등 외에 또한 드물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차이들이다. 종족적 갈등과 종교적·문화적 차이는 종종 수십 년 이상 지속되는 충돌의 과정에서 권력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다툼들로 뒤덮이며, 결국 그 둘 중에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단순한 계기인지 거의 알 수 없게 된다. 또한 전쟁 행위자들이 추종자를 모집하고 지지를 동원하는 이데올로기적 자원으로서 그 차이들을 기꺼이 착취한다. 심지어 보스니아처럼 다문화, 다종족 공동체들의 공존이 수십 년 동안 문제없이 이어져온 곳에서도 공공연히 폭력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종족적이고 종교적인 구분선이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단층선이 된다. 요컨대, 종족적이고 종교적인 대립은 대부분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갈등을 강화하는 것일 뿐이다. 새로운 전쟁들은 개인적인 권력 추구, 이데올로기적 확신, 종족적·문화적 대립, 탐욕과 부패로 이루어진 꿰뚫어 보기 어려운 혼합물에 의해 그 불씨가 유지되며, 불명확한 목적과 목표를 위해 빈번히 수행된다. 상이한 동기와 원인들의 이런 혼합이 특별히 새로운 전쟁들을 끝내고 안정적인 평화 상태를 구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일어난 전쟁의 지리적 분포와 밀도를 보면,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처럼 안정적인 국가 건설이 이루어진 곳에서 지속적 평화의 지대가 발전해온 반면, 다른 어느 곳보다 대제국이 붕괴한 지역에서 전쟁이 풍토병이 되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도 물론 국가들이 생겨났고 그 국가들이 곧바로 UN이라는 세계기구에서 한 자리씩을 차지했지만, 그 국가들은 그저 수만 많았을 뿐 모두 연약했고 거의 독립적이지 못했다. 이 지역에서는 유럽에서와 유사하게 강한 국가성의 등장이 이어지지 않았다. 제3세계나 제1세계와 제2세계의 주변부에서 진행된 수많은 국가 건설 과정들이 좌절되었다는 사실에 이제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실패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서 국가기구로의 접근통로를 개인적 치부의 가능성으로 보지 않고 사명과 의무로 여기는 건전하고 청렴한 정치 엘리트들이 없다는 점이 언급되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지역에서 국가권력의 ‘나포’가 실행되고, 이제 국가권력은 권력의 확대나 부의 증대에 봉사한다. 통상 이 두 가지는 어렵지 않게 서로 연결된다. 새로운 전쟁들의 원인과 그것의 종식 가능성에 관한 토론에서 언제나 다시 들을 수 있는 널리 유포된 생각과 달리, 가난은 결코 그 자체로 폭력 상승의 위험과 전쟁의 임박한 개시를 초래하지 않는다. 비참한 궁핍과 엄청난 부의 공존은 기껏해야 한 사회 안의 갈등이 공개적인 내전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예측력 있는 지표가 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전들이 짧고 격렬한 무력 충돌 후에 끝나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초국가적 전쟁으로 커질 가능성은, 다툼의 대상이 되는 지역에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고 추측될수록 그만큼 더 커진다. 이 지하자원을 비상시에 무력으로라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자원을 해외시장에 판매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부는 확정적인 가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전쟁의 원인이다. 사회 내부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데에 기여하는 또 다른 요인은 지불 능력이 있는 이민자 공동체의 등장이다. 이 공동체들은 각각 자신들의 이익과 충성심에 따라 하나 또는 다수의 교전 집단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여 그들의 지구력을 높인다.
새로운 전쟁들의 출현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함께 작용한다.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진정한 원인이나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될 수 없다. 따라서 제국주의 이론의 현대적 변형, 신식민주의 이론들, 종족적 차이나 종교적 대립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은 단일인과적 명제들은 모두 역부족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을 종종 가망 없는 기획으로 만들어버리는 상이한 동기들과 원인들의 불가해한 조합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전쟁들에서 국가들이 아니라 유사 국가적 행위자들이 서로 맞서 싸운다는 사실의 직접적인 귀결이다.
국가건설전쟁인가, 국가붕괴전쟁인가?
새로운 전쟁들이 국가의 붕괴로부터 성장해 국가의 붕괴 속에서 끝난다는 명제는 분명히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 명제가 처음부터 지나치게 비관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유럽에서 전쟁이 국가 건설 과정을 동반했고, 그 과정을 때로 중단시키기도 했지만 결국엔 촉진시킨 것처럼, 적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새로운 전쟁들이 국가건설전쟁이 될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을 이 명제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비를 원칙적으로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다. 보편적인 권력들의 붕괴에서 비롯한 유럽에서의 국가 건설 과정이 결코 직선적이지 않았으며 한두 세대 안에 완료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그러나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국가건설전쟁과 제3세계 또는 제1세계와 제2세계의 주변부에서 일어난 국가붕괴전쟁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 국가건설전쟁이라는 것에는 추가 설명이 필요 없다). 전자가 마치 병원과 같은 환경에서, 즉 ‘외부의’ 커다란 영향 없이 진행된 반면에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새로 태어나서 여전히 불안정한 국가들을 붕괴시키는 우리 시대의 전쟁들은 오히려 외부의 지속적인 정치적 개입에 종속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 전쟁들은 국가경제의 발전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세계경제적 교환체계 속에 포섭되어 있다. 그래서 지하자원, 석유와 광석, 다이아몬드와 귀금속 형태의 국가 재산이 자립적 경제 발전에 대체로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재산의 획득과 분배를 둘러싼 충돌들을 강화시켜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다수의 실패한 국가들이 좌절한 것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충분히 통합되지 못한 사회들의 부족중심주의 탓만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또한 강한 국가성이 부재한 곳에 파괴적 영향을 끼쳐온 경제적 지구화의 물결 탓이기도 하다.
냉전 시대에 동서 양 진영에 의해 이루어진 개입들은 국가의 공고화에 최소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군사자문관을 파견하고 무기와 장비들을 보급함으로써 국가 건설을 가속화하고 이미 시작된 국가의 침식은 멈추려는 서방 국가들과 한때의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노력은 거의 항상 재난으로 끝났다. 최근 30년 동안의 아프리카 정치 발전에 관해 탁월한 식견을 지닌 폴란드 저널리스트 리샤드 카푸친스키Ryszard Kapuscinski는 그 사실을 소련이 지원한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Mengistu 군사정부의 예를 들어 이렇게 묘사했다. “멩기스투는 모스크바의 도움으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군대를 만들었다. 그 군대는 40만 명의 병사를 보유했고 미사일과 화학무기도 갖추었다. (……) 그들의 사령관이 달아났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무장한 이 거대한 군대는 단 몇 시간 만에 무너졌다. (……) 멩기스투의 병사들은 탱크, 미사일 발사기, 비행기, 대포를 버려두고 모두 각자의 힘으로 걷거나 노새 또는 버스를 타고 고향과 집으로 돌아갔다. 에티오피아를 횡단하다보면 수많은 마을과 도시에서 젊고 건장한 청년들이 집 앞에 할 일 없이 앉아 있거나, 길을 따라 즐비하게 서 있는 허름한 술집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1991년 여름 단 하루 만에 무너진 멩기스투 장군의 위대한 군대 병사들이다.”
새로운 전쟁들이 국가건설전쟁이기보다는 국가붕괴전쟁이라는 추측은 최근 OECD 국가들에서도 국가의 조정 및 통합 능력의 발전이 그 정점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심지어 이 국가들에게조차 국가의 운영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목적에 맞게 적절한 비용을 들여 통제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1970년대 중반 이래로 국가의 통제 기능과 보장 기능이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면, 비슷한 작용과 도전이 개발도상국들의 훨씬 취약하고 무능한 국가기구를 압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개발도상국의 엘리트들이 아직 세습적인 권력 및 충성 유지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지배 방식은 대부분 공공연한 부패와 국가 자산의 약탈로 변했다. 가신들에게 혜택과 교부금을 베풀어 그들을 붙잡아두어야 할 필요성과, 그 일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원재료를 판매하고 채굴권을 이양하거나 불법 물품을 거래할 가능성은 곧바로 이렇게 들어오는 수입의 더 많은 부분을 자신의 위험수당으로 떼어놓고 서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은행계좌에 묻어두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많은 나라들이 힘들게 발전시켜온, 국가성과 그에 걸맞는 정치 엘리트의 에토스, 국가에 충성하는 공무원의 싹들이 짧은 시간 안에 파괴되었다. 고래의 부족중심주의와 탈근대적 지구화 사이에서 국가 건설의 싹들은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에서 말 그대로 짓이겨졌다. 근대 초의 유럽 국가들과 달리 제3세계 국가들은 국가성을 발전시키고 필요한 저항력을 기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사태의 전개를 더 극적으로 만든 것은 전통적 부족중심주의와 지구화의 새로운 형태라는 두 요소가, 그것이 국가 건설을 가로막고 그 싹을 파괴한 것과 동일한 정도로, 내전의 발발을 용이하게 했으며 더 나아가서 내전의 지속에도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초기에 유럽의 경제생활은 상당 부분 자급자족적인 농업경제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런 조건하에서 전쟁은 발발했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사라졌다. 땅이 망가졌고 농토가 황폐해졌으며 비축식량이 약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들의 경우는 다르다. 이 전쟁들은 그림자 지구화의 통로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경제와 연결되며, 전쟁의 지속적인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끌어들인다. 이 사실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를 더욱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우선 투입될 수 있는 모든 자원들이 완전히 소진되도록 이 전쟁들을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전략이론가 에드워드 러트웍Edward Luttwak의 제안이 헛된 것임을 신속하게 보여주었다. 전쟁 중에 늘어나는 자원의 소비를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서방 국가들과 UN의 일시적인 통상금지 정책은 거의 모든 경우에 실패했다.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확보에 전쟁 당사자들이 거의 언제나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공통점이나 전략적 이해관계를 지닌 정권의 지원을 받는 전통적 방식으로, 또는 그림자 지구화의 새로운 형태들을 이용하여 그들은 자원 확보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새로운 전쟁들의 거의 4분의 1이 10년 이상 지속된 이유를 설명해준다. 앙골라에서는 30년 동안, 수단에서는 최소 20년, 그리고 소말리아에서는 15년 이상 전쟁이 계속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2002년 시점에서] 이제야 비로소 실질적으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24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으며, 동아나톨리아와 스리랑카에서의 전쟁 역시 그 기간이 20년에 근접한다. 지원 세력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그림자 지구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이민자 공동체들도 이 그림자 지구화에 속한다. 그들은 자금을 보내고, 온갖 종류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전쟁에 참여할 지원자를 모집하고, 부상당하고 지친 병사들을 받아줌으로써 전쟁에 가담한 어느 한 편을 지원한다. 이때, 거의 모든 새로운 전쟁들에 동반하여, 이웃한 국가의 영토 또는 UN의 보호 아래 전쟁이 발발한 곳에 세워지는 난민수용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난민수용소는 결코 ‘전쟁의 쓰레기더미’만은 아니다. 그곳은 국제기구들의 인도적 지원이 부분적으로 전쟁의 지속적 수행을 위한 자원으로 변환되는 보급기지이고 예비군 부대이다.
(서문, 1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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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헤어프리트 뮌클러 Herfried Mu"nkler
현재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정치학, 독문학, 철학을 공부했고, 1981년에 마키아벨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1987년에 유럽 근대 초기의 국가이성론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얻었다. 1992년부터 베를린 훔볼트대학 사회과학대학의 정치이론과 사상사 강좌를 맡고 있으며,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학술원의 회원이자 새롭게 편집되고 있는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마키아벨리』,『국가의 이름으로』,『전쟁에 관하여』,『새로운 걸프전쟁』,『전쟁의 변화』,『제국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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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공진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현대 정치철학의 해석학적 전환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석사학위를,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스피노자의 정치사상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셸던 월린의『정치와 비전』(제1권, 2007)을 강정인 교수와 함께 한국어로 옮겼고,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를 라틴어에서 한국어로 옮겼다. 책세상 비타악티바 시리즈『폭력』과『테러』를 썼으며,『서양 고대ㆍ중세 정치사상사』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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