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화석 연료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꾸준히 증가시킴으로써
…… 지구적 차원의 대기 구성을 바꾸고 있다.
_ 린든 존슨
1965년 의회 특별 교서
미국인들의 문제는 앞서 열린 회의의 속기록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_ 애들라이 스티븐슨
서론
한 줌의 과학자들이 진실을 가리다
벤[‘벤저민’의 애칭. ─ 옮긴이] 샌터Ben Santer는 누구에게도 공격받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철두철미하게 중용인 인물이다. 키나 몸집도 중간이고, 기질도 온건하며, 정치적 신조도 중도이다. 또한 매우 점잖다. 부드러운 말씨에 자기를 거의 내세우지 않는다.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에 있는 그의 아무 장식 없는 작은 사무실을 보면 회계사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다른 사람들과 한 방에 몰려 있으면 샌터가 있는지도 모르기 쉽다.
그러나 샌터는 회계사가 아니며,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샌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하나이다. 1998년 맥아더 ‘천재’상[정식 명칭은 ‘맥아더재단 특별 연구비MacArthur Fellowship’이며 천재들만 받는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미국인과 미국 거주인 가운데 선발하여 50만 달러를 지원하며, 과거의 특정한 업적에 대해 수여하는 상이 아니라 독창적인 지적 능력을 가진 이에게 그 능력을 발휘하라고 별다른 조건 없이 지원하는 상이다. ─ 옮긴이]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일하는 미국 에너지부로부터도 여러 차례 포상을 받았다. 지구 온난화를 야기한 인적 요인을 입증하는 데 누구보다도 많은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대학원 연구 시절 이래로 샌터는 지구의 기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인간 활동이 기후를 변화시킨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샌터는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모델분석비교프로젝트Model Diagnosis and Intercomparison Project(MDIP)에서 일하는 대기과학자이다. 이 거대한 국제 프로젝트는 세계 각지로부터 기후 모델 결과를 수집해 다른 연구자들에게 배포하고, 실제 데이터 및 다른 모델과 비교하는 일을 한다. 지난 20년 동안 샌터와 동료들은 우리가 사는 행성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온실가스가 원인일 때 예상되는 결과대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샌터의 연구는 ‘지문 검색’이라고 불린다. 자연적인 기후 변화는 온실가스가 야기하는 온난화와는 다른 양상과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의 두 부분과 관련된다. 따뜻한 담요처럼 지구 표면을 감싸고 있는 대류권과, 바로 위의 더 얇고 찬 부분인 성층권이 그것이다. 물리학에서 가르쳐주는 바에 따르면,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이 계속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지구 온난화가 태양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면, 대류권과 성층권 둘 다 온도가 올라가야 한다. 대기권 바깥에서 열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난화가 지구 표면에서 방출되어 대부분 대류권 아래쪽에 몰리는 온실가스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면, 대류권의 온도는 올라가도 성층권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샌터와 동료들은 대류권의 온도는 올라가고 성층권의 온도는 내려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 두 층 사이의 경계는 일정 부분 온도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현재 경계선이 상향 이동 중이다. 다시 말해, 대기권의 구조 전체가 바뀌고 있다. 태양이 범인이라고 하면, 이런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현재 기후에서 목격하는 변화가 자연의 작용이 아님을 보여준다.
대류권과 성층권을 구분하는 문제는 ‘매사추세츠 주 등 대對 환경보호청Massachusetts et al. v. the EPA’ 사건의 연방대법원 공판에서 거론되었다. 연방 정부가 대기청정법Clean Air Act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오염 물질로 규제하지 않은 데 대해 12개 주가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앤터닌 스캘리아Antonine Scalia 대법관은 대기청정법에는 환경보호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내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관 또한 과학 속에서 길을 잃었다. 어느 순간 대류권을 성층권이라고 잘못 말한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 측 변호사가 대꾸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성층권이 아니라 대류권입니다.” 대법관이 대답했다. “성층권이든 뭐든 말입니다. 내가 앞서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래서 내가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간에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뤄야 하며, 어떤 이들은 오랫동안 이런 결론에 저항해왔다. 사실 일부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메시지만이 아니라 이것을 전달하는 사람까지 공격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처음에 지구 기후가 따뜻해지고 있으며 인간 활동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는 증거를 설명하기 시작한 이래, 사람들은 이 데이터에 의문을 제기하고, 증거를 의심했으며, 데이터를 수집하고 설명하는 과학자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더 심하게 ─ 또는 가장 부당하게 ─ 공격을 당한 이가 바로 벤 샌터였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IPCC)는 기후 문제에 관한 세계 최고 권위의 기관이다. 1988년에 세계기상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와 유엔환경계획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에 의해 설립된 이 위원회는 지구 온난화에 관한 초기의 경고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화석 연료가 연소될 때 나오는 온실가스가 증가하면서 기후 변화가 야기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1965년에 이에 대해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대부분은 이런 변화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과학자들은 미래가 어쩌면 코앞에 와 있다고 걱정하기 시작했고, 몇몇 독립적 연구자들은 기후 변화가 실제로 이미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기후 변화의 증거를 평가하고, 독립적 연구자들의 말이 옳다면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를 검토하기 위해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95년,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는 인간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이제 ‘식별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위원회는 몇몇 개인 연구자들이 아니라 기후학자 집단 전체였다. 그런데 그들은 기후 변화가 진행 중임을 어떻게 알았으며, 우리 인간이 변화의 원인임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에서 발표한 2차 평가 보고서인 『기후 변화 1995: 기후 변화의 과학Climate Change 1995: The Science of Climate Change』에 실려 있다. 보고서 8장인 「기후 변화 탐지와 원인 파악Detection of Climate Change and Attribution of Causes」에서는 지구 온난화가 실제로 온실가스에 의해 야기된다는 증거를 요약해 보여준다. 이 장의 필자가 벤 샌터이다.
샌터는 과학자로서 나무랄 데 없는 자격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고 전에는 어떤 종류의 의심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바야흐로 워싱턴DC의 어느 싱크 탱크와 연결된 일군의 물리학자들이 그가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과학 연구의 확실성을 실제보다 부풀렸다는 것이었다. 이 물리학자들은 샌터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견해를 말살해버리는 ‘과학 청소[‘인종 청소’에 빗댄 표현이다. ─ 옮긴이]’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온실 논쟁 계속되다Greenhouse Debate Continued」나 「서류 조작Doctoring the Documents」 같은 제목을 단 보고서가 『에너지 데일리Energy Daily』와 『인베스터스 비즈니스 데일리Investor’s Business Daily』 등의 저널에 발표되었다. 그들은 국회 의원들과 에너지부 관리들, 과학 저널 편집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런 비난을 만천하에 퍼뜨렸다. 또 에너지부의 지인들에게 샌터를 해고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기명 칼럼이 가장 주목을 끌고 널리 선전된 사례이다. 칼럼의 필자는 샌터가 “정책 결정권자들과 대중을 기만하기 위해” 의심스러운 변경을 가했다고 비난했다. 샌터가 보고서에 변경을 가하긴 했지만 그건 누구를 기만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동료 과학자들의 코멘트를 참조해서 수정을 했을 뿐이었다.
모든 과학 논문과 보고서는 다른 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를 받아야 한다. 이른바 ‘동료 평가’란 것이다. 과학 저자들은 검토자의 코멘트와 비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발견될 수 있는 오류를 수정할 것을 요구 받는다. 이런 것은 과학 연구의 기본적인 윤리이다. 동료 평가를 거치기 전까지는 어떤 주장도 타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잠재적인 타당성조차 가질 수 없다.
동료 평가는 또한 저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다듬는 데 도움을 주며,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에는 이례적으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동료 평가 과정이 존재한다. 과학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참가국 정부 대표들도 참여한다. 사실적인 오류를 파악해서 수정하는 것과 더불어 모든 판단과 해석을 적절하게 증명하고 뒷받침하며 모든 이해 당사자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저자들은 검토 코멘트에 따라 수정을 가하거나, 아니면 이런 코멘트가 타당하지 않거나 부적절하거나 명백한 오류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샌터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쳤다. 동료 평가에 따라 수정을 가한 것이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마땅히 할 일을 했다. 과학이 요구하는 바에 따랐을 뿐이다. 샌터는 훌륭한 과학자라는 이유로 공격을 받은 셈이었다.
샌터는 『월스트리트 저널』 편집장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방어하려고 했다. 미국지구변화연구프로그램U.S. Global Change Research Program 소장을 비롯하여 모두 저명한 과학자인 29명의 공저자들이 서명한 편지였다. 미국기상학회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는 샌터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그에 대한 공격이 아무 근거도 없는 것임을 확인해주었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의 설립자이자 의장인 베르트 볼린Bert Bolin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직접 편지를 보내 샌터의 설명을 확인하면서 그에 대한 비난에는 조금의 증거도 없으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 임원, 사실 확인에 관여한 과학자들과 접촉한 적도 없다고 꼬집었다. 볼린이 지적한 것처럼, 그들이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의 절차 규정을 찾아보려고 조금의 노력만 기울였다면” 규칙을 위반하거나 절차를 어긴 일이 전혀 없고 아무 잘못도 없었음을 금방 알아냈을 것이다. 나중에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 회원국 중 어느 나라도 이의 제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은 샌터와 볼린이 보낸 편지의 일부만을 게재했고, 2주일 뒤에는 비난하는 이들에게 또다시 헐뜯을 기회를 주었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의 보고서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게재해준 것이다. 악의적인 비난은 굳어졌고, 산업계 단체들과 친기업적인 신문과 잡지, 싱크 탱크 들은 이런 비난을 널리 퍼뜨렸다. 지금도 인터넷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구글에서 ‘Santer IPCC’라고 검색하면,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 보고서 전문은 고사하고 문제가 된 해당 장이 아니라 1995년의 비난을 고스란히 되풀이하는 다양한 사이트만 주르륵 나온다. 한 사이트에서는 심지어 샌터가 “정치적 정책에 맞도록 데이터를 수정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그릇된) 주장을 펼친다. 마치 미국 정부에 기후 정책이 있어서 그에 맞게끔 데이터를 수정한 것처럼 말이다. (미국 정부는 1995년에 기후 정책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자신의 과학적 평판과 정직성을 옹호하는 한편,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정력을 소비한 샌터에게 이 과정은 쓰라린 경험이었다. (결국 부인과는 헤어졌다.) 평상시에는 온화한 이 남자는 요즘 당시 사건만 떠올리면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어떤 과학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서 과학자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샌터를 비난한 사람들은 왜 사실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그들은 자신들의 비난이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 뒤에도 비난을 멈추지 않았을까? 물론 그 답은 그들이 사실을 찾아내는 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실에 맞서 싸우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샌터는 조간신문을 읽다가 한 기사에 눈길이 쏠렸다. 담배와 암을 연결시키는 과학적 증거를 불신하게 만들기 위해 담배 산업에서 조직한 프로그램에 몇몇 과학자들이 참여한 적이 있다는 기사였다. 기사의 설명에 따르면, “논쟁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골자였다. 담배와 암의 인과 관계에 관한 의혹이 존재하는 한, 담배 산업은 소송과 규제를 피할 수 있을 터였다. 샌터는 기사 속 이야기가 섬뜩하리만치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샌터의 생각이 옳았다. 그런데 그가 눈치채지 못한 점이 있었다. 전술만 같은 게 아니라 사람들도 똑같았던 것이다. 자신을 공격한 지도자들은 은퇴한 물리학자 두 명이었다. 둘 다 이름이 프레드였다. 프레더릭(프레드) 사이츠Frederick Seitz와 S.(시그프리드) 프레드 싱어S. (Siegfrid) Fred Singer가 그 주인공이다. 사이츠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원자 폭탄 제조에 힘을 보태면서 명성을 얻게 된 고체물리학자였다. 나중에는 미국국립과학학술원U.S.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물리학자 싱어는 실상 로켓과학자로 이름을 날렸는데, 지구 관측 위성 개발에서 주도적인 인물이 되었고, 미국 기상위성청[National Weather Satellite Service. 현재는 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미국 환경위성자료정보처National Environmental Satellite Data and Information Service. ─ 옮긴이] 초대 청장과 레이건 정부의 교통부 수석 과학자문위원으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극단적인 매파로서 과거에는 소련의 위협이 매우 심각하며 최첨단 무기로 미국을 지켜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믿었다. 또 둘 다 로널드 레이건의 전략 방위 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일명 ‘스타 워스Star Wars’)을 옹호하기 위해 설립된 워싱턴DC의 보수적인 싱크 탱크 조지 C. 마셜 연구소George C. Marshall Institute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둘 다 예전에 담배 산업을 위해 일한 적이 있었다. 흡연과 사망의 연관 관계를 밝히는 과학적 증거에 의혹을 던지는 데 조력한 것이다.
1979년부터 1985년까지 프레드 사이츠는 R. J. 레이놀즈 토바코R. J. Reynolds Tobacco Company를 위해 연구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다. 이 프로그램은 법정에서 ‘제품’을 방어하는 데 활용할 증거를 만들어내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생물의학 연구를 위해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에게 총 4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1990년대 중반에 프레드 싱어는 간접흡연의 건강상 위험을 둘러싸고 미국 환경보호청을 공격하는 주요한 보고서를 공동으로 집필했다. 그로부터 몇 년 전에, 미국 공중위생국장은 간접흡연이 흡연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흡연에 노출되는 다른 사람에게도 유해하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싱어는 이런 연구 결과를 비판하면서, 이 연구는 조작된 것이며 우리 삶의 모든 면을 정부가 샅샅이 통제하려는 정치적 의제에 따라 환경보호청의 과학 심사(전국 각지의 손꼽히는 전문가들이 수행한 것이었다.)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환경보호청을 비판하는 싱어의 보고서는 담배산업협회Tobacco Institute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연구소Alexis de Tocque-ville Institution가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했다.
담배 소송 중에 공개된 수백만 쪽에 달하는 문서를 살펴보면 이런 연관성이 입증된다. 문서를 살펴보면, 과학자들이 흡연과 건강 위험의 연관성에 관해 의혹의 씨앗을 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법률가들과 소수의 학자들을 빼고는 거의 연구하지 않은 이 문서들을 보면 또한 지구 온난화뿐만 아니라 석면, 간접흡연, 산성비, 오존 홀 등 환경과 보건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동일한 전략이 적용되었음이 드러난다.
이것을 ‘담배 전략’이라고 해두자. 이 전략의 공격 목표는 과학이었고, 따라서 산업계 변호사들과 홍보 전문가들의 지도에 따라 기꺼이 소총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길 태세가 되어 있는 과학자들에게 크게 의존했다. 우리가 이 책을 쓰면서 찾아낸 수많은 문서 가운데는 『나쁜 과학: 자료책Bad Science: A Resource Book』이라는 책도 있다. 사실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인 이 책에는 과학을 훼손하는 데 성공한 전략의 풍부한 사례들이 담겨 있으며, 또한 싱크 탱크나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부정적인 논평을 제때에 해줄 수 있는 과학적 식견을 갖춘 자격 있는 전문가들의 목록도 들어 있다.
각각의 사례마다 프레드 싱어와 프레드 사이츠를 비롯한 한 줌의 과학자들은 우파 싱크 탱크 및 민간 기업과 세력을 규합하여 현대의 수많은 쟁점에 관한 과학적 증거에 이의를 제기했다. 초창기에 이런 노력에 필요한 돈은 대부분 담배 산업에서 나왔다. 나중에는 우파 재단과 싱크 탱크, 화석 연료 산업이 돈줄 노릇을 했다. 그들은 흡연과 암 발병 사이의 연관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자들이 스타 워스의 위험성과 한계에 관해 잘못 알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산성비는 화산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고, 오존 홀도 마찬가지라고 우겼다. 게다가 환경보호청이 간접흡연을 둘러싼 과학을 조작했다고 비난했다. 가장 최근에는 ─ 근 20년에 걸쳐 점점 늘어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 지구 온난화라는 현실을 부정했다. 처음에는 지구 온난화 같은 현상은 없다고 주장했고, 그 다음에는 자연적인 변화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결국에는 설사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인간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 적응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모든 사례마다 그들은 과학적 합의의 존재를 꾸준히 부정했다. 자기들이 이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 극소수여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 한 줌의 사람들이 별 영향을 못 미쳤겠지만,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였다. 냉전 시기 무기 개발 프로그램에서 행한 연구 덕분에 이 사람들은 유명세를 떨치고 워싱턴DC에서 대단히 존중 받았으며, 백악관으로 통하는 권력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면, 1989년에 사이츠와, 역시 이 책에 등장하는 물리학자 로버트 재스트로Robert Jastrow와 윌리엄 니런버그William Nierenberg는 지구 온난화의 증거에 의문을 던지는 보고서를 집필했다. 세 사람은 곧 백악관의 초청을 받아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브리핑을 했다. 각료담당실의 한 관리는 보고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모두들 보고서를 읽었고,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부시 행정부만이 아니었다. 대중 매체도 마찬가지였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스위크』 등을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는 시종일관 이런 주장이 마치 과학 논쟁의 ‘한쪽 편’인 것처럼 보도해주었다. 그러면 블로거에서부터 미국 상원 의원까지, 심지어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까지 마치 첩첩산중에서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이 이런 주장을 거듭해서 되풀이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언론인들과 대중은 이것이 현직 과학 연구자들이 과학의 장에서 벌이는 과학 논쟁이 아니라 담배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양상의 일부인 허위 정보라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은 ‘담배 전략’에 관한 이야기이다. 과학과 과학자들을 공격하고,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하고 커다란 문제에 관해 우리를 혼란시키기 위해 ‘담배 전략’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감스럽게도 벤 샌터의 이야기는 유별난 사례가 아니다. 성층권 오존 감소에 관한 과학적 증거가 쌓일 무렵, 프레드 싱어는 셔우드 롤런드Sherwood Rowland에 대한 공격에 착수했다. 롤런드는 미국과학진흥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회장이자 노벨상 수상자로 특정 화학 물질, 즉 염화불화탄소(CFCs. 일명 프레온 가스)가 성층권 오존을 파괴할 수 있음을 처음 깨달은 과학자였다. 지구 온난화를 최초로 연구한 과학자 중 한 명인 로저 리벨Roger Revelle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는 싱어의 주장에 대해 저스틴 랭커스터Justin Lancaster라는 이름의 대학원생이 실상을 정확히 밝히려고 했을 때, 그는 명예 훼손 소송에 휘말렸다. (소송 비용이 없었던 랭커스터는 법원 밖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의 개인적 삶과 직업적 삶 모두 갈가리 찢겼다.)
프레드 사이츠와 프레드 싱어는 이런 활동에 관여한 가장 유명하고 끈질긴 과학자이다. 윌리엄 니런버그와 로버트 재스트로 역시 물리학자였다. 니런버그는 유명한 스크립스해양연구소Scripps Institution of Oceanography 전前 소장이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인수위원으로서 행정부의 중요 직책에 과학자들을 발탁하는 데 조력했다. 사이츠와 마찬가지로 니런버그도 원자 폭탄 개발에 힘을 보탰고, 나중에는 몇몇 냉전 무기 개발 프로그램과 연구에 관여했다. 재스트로는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이자 성공적인 대중 저술가, 나사(NASA. 미국 항공우주국)의 고다드우주연구소Goddard Institute for Space Studies 소장으로서 오랫동안 미국의 우주 개발 프로그램에 관여했다. 이 사람들은 환경이나 보건 문제에 특별한 전문 지식이 없었지만 권력과 영향력은 확실히 있었다.
사이츠와 싱어, 니런버그와 재스트로는 모두 과학 행정 고위직에 있으면서 제독과 장성,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 심지어 대통령과도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또한 언론과 광범위하게 접촉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언론에서 자기들 견해를 다뤄주는지, 또 안 다뤄줄 때에는 언론을 어떻게 압박하는지를 잘 알았다. 이 사람들은 과학자 자격을 활용해서 권위자 행세를 했고, 권위를 활용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과학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자 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끼어드는 갖가지 쟁점 가운데 어느 것에 대해서도 독창적인 과학적 연구를 하지 않았다. 한때는 이름난 연구자였을지 몰라도,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에 관심을 기울일 무렵이면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와 명성을 공격하는 데만 치중했다. 사이츠나 니런버그, 재스트로나 싱어가 내놓은 주장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모든 쟁점에서 틀렸다. 흡연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사망을 초래하고, 오염은 산성비를 유발하며, 화산은 오존 홀의 원인이 아니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빙하가 녹는 것은 화석 연료 연소에서 생겨나는 대기 중 온실가스의 효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오랫동안 언론에서는 이 사람들의 말을 전문가의 논평으로 인용했으며, 정치인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런 주장에 기대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한때 이 사람들을 ‘내 과학자들’이라고 지칭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인터넷과 라디오 토크쇼, 심지어 미국 하원 의원들조차도 여전히 그들의 견해와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자연 세계의 진리를 밝히는 데 전념하는 과학자들이 왜 자기 동료들의 연구에 대해 거짓 설명을 할까? 왜 아무 근거도 없이 비난을 퍼뜨릴까? 자신들의 주장이 틀렸음이 밝혀진 뒤에도 왜 주장을 정정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언론은 그들의 주장이 오류임이 차례차례로 밝혀진 뒤에도 계속해서 그들의 말을 인용하는 걸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펼쳐 보이려고 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수많은 쟁점들에 관해 혼란을 퍼뜨리고 과학적 증거에 맞서 싸운 일군의 과학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지금도 계속되는 어떤 양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에 맞서 싸우고 의혹을 팔아먹는 행태에 관한 이야기이다.
1장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다
1979년 5월 9일, 한 무리의 담배 산업 중역들이 중요한 새 프로그램에 관해 듣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처음으로 담배 광고(“카멜을 살 수 있다면 1마일이라도 걷겠어”)를 하는 등 선구적인 마케팅으로 유명한 R. J. 레이놀즈의 전 회장 콜린 H. 스토크스Colin H. Stokes가 초청한 자리였다. 몇 년 뒤 레이놀즈는 조 카멜Joe Camel이라는 광고 캐릭터로 아이들을 유혹한 혐의(연방통상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는 이 캐릭터를 미키 마우스와 비교했다.)로 연방법 위반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게 되지만, 당시 모인 중역들은 제품이나 마케팅에 관해 들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이 자리의 주제는 과학이었다. 그날 저녁의 스타는 스토크스가 아니라 프레더릭 사이츠라는 이름의 나이가 지긋한 대머리 안경잡이 물리학자였다.
사이츠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명 과학자였다. 원자 폭탄 제작에 관여한 신동이었던 사이츠는 미국 과학계에서 최고의 자리를 두루 역임했다. 1950년대에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과학 고문으로 일했고, 1960년대에는 국립과학학술원 원장을 지냈으며, 1970년대에는 미국 최고의 생물의학 연구 기관인 록펠러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1979년 당시 막 퇴직한 상태였던 사이츠는 마지막 일, 즉 R. J. 레이놀즈를 대신해서 운영할 새 프로그램에 관해 말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다. 미국 주요 대학, 병원, 연구 기관에 생물의학 연구 지원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새 프로그램의 중심은 미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인 암, 심장병, 폐기종, 당뇨병 등 퇴행성 질환이었고, 프로젝트의 규모는 대단했다. 향후 6년에 걸쳐 4500만 달러가 지출될 예정이었다. 하버드를 비롯해 코네티컷,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펜실베이니아, 워싱턴 등의 대학과 슬론케터링연구소Sloan-Kettering Institute, 그리고 당연하게도 록펠러대학교 등이 연구 기금 수혜자였다. 기본적인 지원금은 6년 동안 매년 50만 달러였다. 당시만 해도 과학 연구 지원금으로는 대단한 액수였다. 이 프로그램은 만성 퇴행성 질병, 기초 면역학, ‘생활 습관’이 질병에 미치는 효과 등의 분야에서 각기 다른 26개의 연구 프로그램과 ‘RJR 연구 장학금RJR Research Scholarship’ 수혜자인 젊은 연구자 6명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사이츠가 맡은 역할은 연구비를 지원할 프로젝트를 선별하고, 연구를 지도·감독하고, 진행 과정을 R. J. 레이놀즈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선별 기준을 정하기 위해 사이츠는 저명한 동료 둘의 도움을 구했다. 제임스 A. 섀넌James A. Shannon과 매클린 매카티Maclyn McCarty가 그들이었다.
섀넌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항말라리아제인 아타브린Atabrine 사용을 제창한 의사였다. 아타브린은 효과가 있었지만 불쾌감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있었다. 섀넌은 구역질 같은 부작용 없이 약을 복용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남태평양 전역의 수백만 병사들에게 약을 처방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수천 명을 질병과 죽음에서 구했다. 나중에 섀넌은 1955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NIH) 원장을 지내면서 대학과 병원 연구자들에게 연구 지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의회를 설득함으로써 조직을 변화시켰다. 그 전에는 국립보건원 기금을 내부에서만 사용했고, 따라서 미국의 병원과 대학은 생물의학 연구에 지원 받을 수 있는 돈이 거의 없었다. 섀넌의 외부 지원 프로그램은 큰 인기와 성공을 거두었고, 성장을 거듭했다. 마침내 이 프로그램은 오늘날 국립보건원의 중핵을 이루는 거대한 연구 지원 시스템을 낳았고, 그 덕분에 미국은 생물의학 연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섀넌은 노벨상이나 국가 과학 훈장, 또는 흔히 생물학 분야에서 제2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래스커상Lasker Award 등을 받지 못했다.
매클린 매카티 역시 엄청나게 성공적인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해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많겠지만, 왓슨과 크릭이 DNA에 세포의 유전 정보가 담겨 있음을 입증한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첫걸음을 내딛은 것은 그로부터 10년 전인 1944년의 일로 록펠러대학교의 세균학자 오스월드 에이버리Oswald Avery와 매클린 매카티, 콜린 매클라우드Colin MacLeod가 그 주인공이었다. 세 사람은 폐렴 박테리아 실험을 통해 악성 DNA를 주사하면 양성 박테리아가 악성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DNA를 변경함으로써 유기체의 형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1940년대만 해도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에이버리가 자신의 발견을 널리 알리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었던 탓인지, 아니면 2차 세계 대전 때문에 곧바로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발견은 관심을 끌지 못했던 탓인지 간에, 에이버리와 매카티, 매클라우드의 실험은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세 사람 모두 과학계에서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었고, 매카티는 1994년에 래스커상을 받았다. 그러나 1979년에는 확실히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섀넌과 매카티가 사이츠를 도와 연구 기금 신청서를 선별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을 때, 주류와는 다른 관점을 취하는 프로젝트, 유별나거나 색다른 개인, 연방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성장기’의 젊은 연구자 등에 주목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원을 받은 한 연구는 스트레스와 치료약, (사카린 같은) 식품 첨가제가 면역 체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또 다른 연구는 “우울증 환자 가족의 감정 구조와 면역 체계 …… 상태” 사이의 연관 관계를 탐구했다. 세 번째 연구는 “환자의 심리적 태도가 질병의 추이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삼았다. 각종 연구 프로젝트는 동맥경화증의 유전적·식습관적 요인, 바이러스의 암 유발 가능성, 약물 대사와 약물 상호 작용의 세부적인 내용 등을 탐구했다.
특히 과학자 두 명이 사이츠의 개인적인 관심을 사로잡았다. 폐의 자연적 방어 기전을 연구하던 UCLA 교수 마틴 J. 클라인Martin J. Cline은 이식 유전자 기관을 최초로 만들어내기 일보직전이었다. 또 한 명인 스탠리 B. 프루지너Stanley B. Prusiner는 광우병을 유발하는 접힌 구조의 단백질인 프리온을 발견했다. 훗날 프루지너는 이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선정된 연구는 모두 정당한 과학적 질문을 다루는 것이었다. 그중 일부는 신체 질병에서 감정과 스트레스가 하는 역할 같이 주류 의학에서 무시해온 주제였다. 연구자들은 모두 해당 기관에서 신임을 받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연구 중 일부는 선구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과연 과학을 향상시키는 것만이 목표였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다.
R. J. 레이놀즈의 여러 문서에 사이츠가 진행한 프로그램의 목표에 관한 논의가 담겨 있다. 일부 문서에는 연구 지원이 “시민 사회의 성원으로서 기업의 의무”라고 서술되어 있다. 다른 문서에서는 “담배 제품의 탓으로 여겨지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공헌하겠다.”는 회사의 포부를 거론한다. 또 다른 문서에서는 과학에 기대어 담배에 대한 비난을 반박함으로써 산업계가 “정부에서 징벌적인 세금을 부과하면서 내세우는 구실을 물리칠” 수 있음을 지적한다. (1978년에 흡연자들은 미국과 해외에서 15억 달러 이상을 담배 소비세로 지불했다. 이렇게 세금이 오른 데에는 담배의 유해성에 관한 과학적 증거가 속속 나온 사실이 일부 작용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5월 9일에 스토크스가 자문단에게 강조하고 수많은 업계 문서에서 되풀이된 주된 목표는 “담배 산업에 대한 공격에 맞서 방어하는 데 유용하며, 과학적 근거가 확실한 방대한 데이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 과학자들은 업계의 재정 지원을 거절했지만, 다른 이들은 받아들였다. 아마 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 한 누가 돈을 대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어떤 주주들이 왜 (응용과학이 아닌) 기초 과학을 지원하는 데 기업 자금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담배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공격에 대항하여 산업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지원이기 때문에 충분히 정당하다.”는 답변을 들었을 것이다. 과학에 맞서 과학으로 싸우는 게 목표였다. 아니면 적어도 기존 과학의 결함과 불확실성을 내세우거나 주요한 사건으로부터 딴 데로 관심을 돌리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과학 연구를 내세워서 과학에 대항하자는 것이었다. 오른손에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몰래 왼손을 쓰는 마술사처럼, 담배 산업은 관심 전환용 연구를 지원할 속셈이었다.
R. J. 레이놀즈의 내부 법률 고문의 검토를 거치고 국제자문단International Advisory Board을 상대로 한 발표에서 스토크스는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담배가 폐암, 동맥경화, 일산화탄소 중독 등과 연관성이 있다는 비난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이런 주장들에 대해 레이놀즈를 비롯한 담배 제조업체들은 객관적인 연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담배 유해론이 전혀 증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연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스토크스는 계속해서 주장을 펼친다. “사실 폐암, 폐기종, 심혈관 질환 등 담배 탓으로 돌려지는 만성 퇴행성 질환의 원인이나 진행 과정에 관해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거의 없다.” 흡연에 대한 비판의 대다수는 “불완전한” 연구에 근거한 것이거나 “의심스러운 방법이나 가설과 그릇된 해석에 의존한 것이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와 가설,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고, “담배를 변호하는 든든한 과학적인 데이터와 견해”를 발전시키게 될 터였다. 무엇보다도 증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197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흡연으로 인해 개인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수많은 법률 소송이 제기되었지만, 담배 업계는 과학자들을 전문가 증인으로 동원하여 흡연과 암의 연관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증언하는 식으로 방어에 성공하고 있었다. “담배 탓으로 돌려지는 만성 퇴행성 질환”의 다른 “원인이나 진행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를 논의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과학자 자신의 연구일 경우에는 증언이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합리적인 의심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이런 일을 하는 데 실제 과학자보다 더 나은 전문가가 누가 있겠는가?
과거에 이런 전략이 통했기 때문에, 장래에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스토크스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호적인 과학적 증언 덕분에, 어떤 원고도 흡연이 폐암이나 심혈관 질환을 야기한다고 주장하는 소송에서 담배 회사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다. 1954년 이래 117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는데도 말이다.”
나중에는 사정이 바뀌지만 1979년에는 맞는 말이었다. 1950년대 이래 과학자들은 담배와 암의 연관 관계를 확신하고 있었지만(많은 과학자들은 그전부터 확신했다.) 단 한 명도 담배 업계로부터 한 푼도 받아 내지 못했다. 레이놀즈에서 지원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흡연 이외의 질병 유발 요인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내놓을 잠재력이 있었다. 가령 프루지너의 연구에서는 외부 요인과 무관한 질병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사이츠의 설명에 따르면, 프리온은 “동종의 단백질을 과잉 생산해서 …… 세포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 “특정 유전자들이 …… 세포 분열을 과도하게 하여 암으로 이어지도록 자극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암은 단순히 세포가 과격해진 현상일 수도 있었다.
클라인의 연구는 세포의 자연적 방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암이 단지 이런 방어 기능의 (자연적인) 부전 현상이라는 의미였다. 많은 연구들이 스트레스나 유전 형질 등 질병의 다른 원인을 탐구했다. 물론 전적으로 정당한 주제였지만, 담배 산업의 핵심 문제 ─ 담배가 사람을 죽인다는 압도적인 증거 ─ 로부터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데 기여할 수도 있었다. 담배가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담배 업계는 이 점을 알았다. 따라서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게 만드는 방도를 찾았다. 실제로 담배 업계에서 처음으로 과학에 맞서 싸우기 위해 과학을 활용하기 시작한 1950년대 초부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50년대 초반은 사실에 대항하는 현대의 싸움이 시작된 때이다. 잠시 1953년으로 돌아가보자.
(서론 전문, 1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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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나오미 오레스케스 Naomi Oreskes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과학사 교수. 1990년에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지질학 및 과학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에 미국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서 ‘젊은과학자상Young Investigator Award’을 수상했다. 미국 환경보호청과 국립과학학술원의 자문을 역임했으며, 지구 과학과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이슈를 연구하고 있다. 2004년 『사이언스』에 발표되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상아탑을 넘어서Beyond the Ivory Tower: The Scientific Consensus on Climate Change>는 지구 온난화 부정론에 맞선 싸움에서 획기적인 이정표가 되었으며,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등에 인용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Plate Tectonics(2003년), The Rejection of Continental Drift(1999년) 등이 있다.
에릭 M. 콘웨이 Erik M. Conway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제트추진연구소의 역사학자. 주요 저서로는 Atmospheric Science at NASA: A History(2008년), Realizing the Dream of Flight(2006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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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유강은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에서 활동하였다. 현재는 국제 문제를 전문으로 번역하고 있다. 역서로는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2011년), 『두뇌를 팝니다』(2010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2010년), 『팔레스타인 현대사』(2009년), 『보이지 않는 사람들』(2009년), 『The Left 1848~2000』(2008년), 『미국민중사 1, 2』(2006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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