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그 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취재를 하러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용산참사로 여섯 명이 돌아가셨는데 변하지 않는 현실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또 다시 마주해야 할 절망을 과연 우리가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지……, 철거민 안으로 들어가 그이들 목소리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을지…….
하지만 용산참사가 일어난 뒤에도 전혀 바뀌지 않는 잔인한 강제철거의 현실을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철거 지역에 갔습니다.
다들 너무나 외롭고 힘겹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몇 년째 천막생활을 하면서 용역깡패한테 맞아 머리가 터지고 성추행을 당해도, 경찰과 정부는 도움은 못 줄 망정 용역을 두둔하고 철거민들에게는 벌금을 때립니다.
우리 나라가 가입해 있는 유엔에서 ‘세계인권선언(1948년)’을 선포했습니다. 유엔에 가입한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의, 식, 주를 포함해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철거민들이 주거권 보장을 주장하는 건 마땅한 권리이고, 지방자치단체와 국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용역깡패가 휘두르는 살인적인 폭력을 모른 체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로 평범한 사람들이 여섯이나 목숨을 잃었는데 정부는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을 내는 것은 국민의 의무라면서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철거민들을 떼쟁이로 매도하고 폭도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변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신문과 방송에서는 철거민 문제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바라는 대로 철거민 문제는 사람들 기억에서 점점 더 빠르게 잊혀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 제2, 제3의 용산참사가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지금 철거지역에서 싸우고 있는 분들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용역깡패는 이분들 머리채를 휘어잡고, 얼굴을 때리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댑니다. 내 어머니 같은 분들이 겪는 고초를 보면 ‘차라리 이사를 가시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지만 떠나고 싶어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철거민입니다.
철거민들을 만나면서 그 절망에 함께 힘겨워하기도 하고 그분들 특유의 강인함에 오히려 우리가 힘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에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인사를 하셨습니다. 고생 많다고 밥 먹고 가라며 따뜻한 밥을 챙겨 주시던 투박한 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외롭고 힘겹게 싸우고 있는 철거민들에게 힘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철거민들을 ‘돈 몇 푼 뜯어내려고 하는 떼쟁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입자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당연한 권리를 바라는 것임을 모두가 알게 되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하루빨리 철거민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이 보호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다음 세대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이런 무지막지한 일이 있었다니, 지금은 정말 좋아졌네.”라고 말하는 세상이.
2012년 1월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심흥아, 유승아, 이경석
(여는 글, ‘그 길 옆에’ 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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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성희
대학 신문에 만평을 실은 것을 계기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 전문사 과정을 밟으면서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 교양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뚝딱뚝딱 인권짓기’를 6회 연재했고, <컬처뉴스>에 ‘김성희의 페이지’를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몹쓸년』이 있고, 만화집 『내가 살던 용산』에 참여했다. 이 밖에 『인생지혜사전』, 『유쾌한 유머』, 『꿈꾸라』, 『나를 이겨라』 등에 그림을 그렸다.
김수박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신문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면서 만화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오늘까지만 사랑해』, 『아날로그맨』, 『사람의 곳으로부터』, 『내가 살던 용산』(공저) 등이 있다.
김홍모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2003년 인터넷한겨레에 ‘김홍모의 시가 펀치’ 연재를 시작으로, 지은 책 『내가 살던 용산』(공저), 『두근두근 탐험대』, 『사격장 아이들』 등이 있다. 현재 헤이리 예술 마을에서 <뜬금없이 만화방>을 운영하며 만화가이자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심흥아
지은 책으로 『우리, 선화』가 있으며 <인터넷한겨레 훅>에 ‘카페 그램’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다 아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유승하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재미난 생각들을 그림책과 만화책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새싹만화상(신한은행 주최)을 받기도 했다. 만든 책으로는 『나운규』, 『아기오리 열두 마리는 너무 많아!』, 『아빠하고 나하고』, 『개와 고양이』 등 다수가 있다.
이경석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 만화 ‘을식이는 재수 없어’를, 어린이 과학 잡지 『과학쟁이』에 만화 ‘장독대 sf’를 연재하고 있다. 만화 『속주패왕전』, 『전원교향곡』 등을 쓰고 그렸고, 어린이 책 『오메 돈 벌자고?』, 『형제가 간다』, 『안녕, 외계인』, 『서울 샌님 정약전과 바다 탐험대』, 『그래서 이런 지명이 생겼대요』, 『동물원이 좋아?』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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