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내 아버지가 가발을 오른손으로 벗어야 하는지 왼손으로 벗어야 하는지보다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문제로 가장 위대한 왕국들이 쪼개졌으며,
그 왕국들을 지배하는 군주들의 머리 위 왕관이 뒤흔들렸다.
-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1758)
생식기 부위에조차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실제로 발견되는 것처럼 왼쪽 고환이 항상 더 크다.
(또한) 왼쪽 눈은 오른쪽 눈보다 사물을 더 날카롭게 본다고들 한다.
-요한 요아힘 빙켈만, 『고대예술사』(1764)
최근 ‘몸’이라고 하는 주제에 관한 책, 전시, 영화, 라이브 퍼포먼스가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고 이전에 ‘몸’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지난 세기의 일부 이론가와 추상미술가들은 인간 형상을 제거하거나 초월했다고 주장했다), 정신분석학과 현상학, 그리고 젠더 문제와 최근의 인종 문제가 격렬하게 뒤섞이면서, 이에 자극받아 ‘몸’에 관한 오랜 금기들을 깨뜨릴 것을 주장하는 새로운 접근법들이 등장한 까닭이다.
이론과 실제의 공백은 메워지지 않고 있으며 오감, 특히 촉각과 시각이 되살아나 반격을 가하고 있다. 이는 1960년대에 ‘일상’생활을 무대 중심에 두고자 했던 ‘아래로부터의 역사’, 즉 아랫도리로부터의 역사, 살갗 아래로부터의 역사라 불리는 것의 파생물이다. 반농담조로 이제는 ‘절단된 몸이 적어도 하나는 나와야’ 모범적인 문학작품이 된다고들 한다. ‘불온하다’는 말이 예술작품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여겨지며, 끔찍할 만큼 고백적인 예술형식들이 대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몸’을 인문학 속에 서둘러 위치지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몸의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거의 완전히 무시되는 바람에 오히려 부각되었다. 바로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이다. 이 구분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우리는 모두 왼손잡이거나 오른손잡이고, 그에 상응해 눈과 발의 경우도 보통 어느 한쪽이 ‘우위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적으로는 좌뇌와 우뇌가 아주 다른 기능을 하기 때문이며, 정치·사회·문화적으로는 어느 사회에나 왼쪽과 오른쪽에 관한 나름의 상징이 있기 때문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던 데는 세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 시대의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문화산업)이 상상력을 수직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즉 높음과 낮음을 구분하게 하는 메타포에 기초한 까닭이다. ‘저급한’ 문화적 형식과 표현들을 예찬하고, (저급한 것을 흡수해서든 억압해서든) 저급한 것과 관계를 맺는 ‘고급’ 문화의 아이콘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는 왼쪽과 오른쪽의 문제(이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수평적으로, 좌우로 움직이게 한다)를 이해시키기가 더욱 어렵다.
정신분석학 또한 이러한 ‘수직적’ 사고를 부추긴다. 잠재의식은 아래에 놓여 있는 무언가를 암시한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고고학의 발굴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옆으로 가로지르며 작업하기보다는 다른 층을 파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그의 유명한 긴 의자에 누운 환자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환자 중 한 사람인 ‘늑대 사나이’는 프로이트가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정신분석학자는 유적지의 고고학자처럼 제일 깊은 곳에 있는 가장 값진 보물을 찾을 때까지 환자 정신의 층들을 파헤쳐야 합니다.” 하지만 넓이 또한 깊이다.
왼쪽-오른쪽 구분에 대한 관심을 가로막는 현대 문화의 또 다른 측면은 바로 전체주의적인 성향이다. 현대의 문화형식들은 흔히 관람자/독자/청취자를 그 경험에 ‘잠기게 하고’ ‘둘러싸고’ 싶어 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 경험이 ‘대담하고’ ‘깜짝 놀랄 만하고’ ‘최첨단’일 것이라 기대한다. 전후戰後 미국 추상회화의 주요 옹호자인 클레멘트 그린버그조차 모든 현대 회화는 ‘즉각성at-onceness’을 가져야 하며 한눈에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단호히 주장했다.
좀더 최근에는 한 아이비리그 교수가 다음과 같이 극단적이지만 전형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위대한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은 끔찍하다. 당신은 미술관에 대한 숨죽인 숭배에 속아 넘어가 명작은 고상한 것이고 마음을 달래주는 마술적이고 현혹적인 환영vision이라고 믿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폭력배다. 무자비하고 교활한 명화들은 당신에게 헤드락을 걸어 마음의 평정을 흐트러뜨린 다음 당신의 현실감각을 즉각 재조정한다.” 여기에 미묘한 차이나 전희前戱, 차이생성differentiation 또는 부드럽게 말하기나 돌려 말하기의 여지는 많지 않다.
왼쪽과 오른쪽에 관한 언급이 거의 전무했던 마지막 이유는 문화적 개념이나 도구로서 왼쪽-오른쪽이 지극히 평범하고 한계가 있으며 한물갔다는 억측 때문이다. 모든 것이 너무도 쉽게 오른쪽=선, 왼쪽=악이라는 방정식으로 요약되어버린다. 현대의 이러한 환원주의는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유산이며, 무엇보다 19세기 러시아 신비사상가 블라바츠키 부인Madame Blavatsky이 주창한 신지학의 유산일 것이다. 신지학에서 ‘왼쪽’은 모든 악과 흑마술의 원천이며 ‘오른쪽’은 모든 선의 원천이다. 프로이트의 추종자인 빌헬름 슈테켈Wilhem Stekel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프로이트도 왼쪽과 오른쪽에 대해서는 블라바츠키 부인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그저 몇 마디 했을 뿐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이 문화적 개념이나 도구로서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은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개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조차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너무 도식적인 결론에 이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베르 에르츠Robert Hertz(1881~1915)의 『오른손의 우위성: 종교적인 양극성 연구The Pre-eminence the Right Hand: A Study in Religious Polarity』는 왼쪽-오른쪽 상징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을 받는다. 이 책은 1909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되었지만 1960년 영어로 번역되어 재출간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이 책은 이 문제에 관한 인류학적·과학적 관심을 급격히 고조시켰고 이러한 관심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에르츠는 저명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뛰어난 제자였다. 그는 오른손을 언제나 우위에 두고 왼손을 악마적으로 보는, 왼쪽과 오른쪽의 이원성이 모든 문화에 존재함을 보여주려 했다. 마오리족이 오른쪽은 ‘삶의 (그리고 힘의) 측면’인 반면 왼쪽은 ‘죽음의 (그리고 나약함의) 측면’이라고 믿는 것처럼, 그리스도교도 역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장면에 나오는 선한 도둑과 최후의 심판 장면에 나오는 구원받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오른쪽에 두고, 악한 도둑과 저주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왼쪽에 둔다. 이와 동일한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이 대부분의 언어에서 나타난다. 왼쪽에 상응하는 말은 부정적이고 불길한 의미가 있다. 에르츠의 결론은 계시에 가깝다.
따라서 인간 세상의 이편에서 저편에 이르기까지 숭배자들이 그들의 신을 만나는 신성한 장소, 악마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저주받은 곳, 증인석과 왕좌, 전쟁터와 직조공들의 평화로운 작업실, 이 모든 곳에서 한 가지 불변의 법칙이 두 손의 기능을 지배한다. (강조 필자)
뒤르켐의 조카 마르셀 모스가 에르츠의 글이 왼쪽의 ‘불순함’과 ‘인간의 어두운 면’에 관한 단 하나의 연구서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에르츠가 진행한 연구의 많은 부분이 영국박물관에서 이루어졌고 영국도서관에 보관되었는데, 그 가운데 현장연구에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1818년에 출간된 한 독일 사전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오른손은 ‘여전히 선과 아름다움을, 왼손은 악과 추함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패러다임과 상충하는 한 가지 예를 드는데, 이를 ‘발전의 부차적인 소산’ 또는 법칙을 시험하는 예외로 간단히 처리하고 만다. 그 예는 평화를 사랑하는 서부 뉴멕시코의 아메리카 원주민 주니족이었다. 주니족에게 몸의 양쪽은 형제 신이다. 왼쪽이 형으로 ‘사려 깊고 현명하며 올바른 판단력을 가진 신’이고 오른쪽은 ‘성급하고 충동적이며 행동에 어울리는 신’이다. 영어로 처음 번역되었을 때 에르츠의 글에는 적절하게 ‘죽음과 오른손’이라는 침울한 제목이 붙었고, 그의 지나치게 단호한 결론은 대체로 지지를 받았다.
이 주제에 관한 가장 정교하고 광범위하면서 명쾌한 연구서인 정신분석학자 크리스 맥매너스Chris McManus의 『오른손, 왼손: 뇌, 신체, 원자, 문화에서의 불균형의 기원Right Hand, Left Hand: The Origins of Asymmetry in Brains, Bodies, Atoms and Cultures』(2002)은 비록 그가 제시하는 풍부한 증거가 항상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어떤 대륙, 역사의 어떤 시기 또는 어떤 문화를 보더라도 오른쪽과 왼쪽은 상징적 연상관념을 가지며 항상 오른쪽은 좋고 왼쪽은 나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은 현대의 국제정치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맥매너스가 그렇게 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흔히 ‘좌파’는 환영받고 ‘우파’는 맹렬히 비난받는다. 실제로 이 주제와 관련해서 권위를 자랑하는 어느 책에서는 ‘왼쪽’이 ‘정치적 양극성의 주추와도 같은 말’이며 정치적 오른쪽에는 ‘사악함sinister’이라는 함의가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최근의 중요한 연구서인 피에르 미셸 베르트랑Pierre-Michel Bertrand의 『왼손잡이의 역사Histoire des Gauchers』(2001)는 왼손잡이와 왼쪽에 대해 서구인들이 보인 태도의 역사를 다룬다. 베르트랑은 중세가 왼손잡이들의 황금시대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주로 단 하나의 증거, 즉 왼손잡이의 비율이 16퍼센트로 유난히 높았던 요크셔 워럼 퍼시의 중세 공동묘지에서 나온 여든 구의 골격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삼는다. 그렇지만 그는 이 책의 대부분에서 전후戰後에 와서야 왼쪽을 꺼리는 편견이 바뀌었다고 암시한다.
나는 이 모든 연구들에 거듭 의지하면서 크게 빚지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들에 깔려 있는 근본적으로 블라바츠키적인 사고방식에는 큰 결함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 왼손/왼쪽숭배에 관한 역사적 텍스트를 편집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관련 구절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어물쩍 넘어가거나 또는 그 구절들이 그 반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은 시각 이미지나 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샤를 드 톨네이Charles de Tolnay의 다섯 권짜리 『미켈란젤로』(1947~60)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이 책은 현대 미켈란젤로 연구의 초석이지만, 모호한 신플라톤주의와 니체 이론,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의 상징에 지극히 평범하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예를 들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묘사한 그림에서 그리스도 두 손의 방향이 다른 것(오른손은 위를 가리키고 왼손은 아래를 가리킨다)이 ‘선한 오른쪽과 악한 왼쪽’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나타낸다고 암시한 점이 그렇다.
톨네이는 미켈란젤로의 다른 많은 작품에서 죽었거나 죽어가는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이 이미지에서도 그리스도가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편리하게 무시해버렸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전통적으로 오른쪽을 보거나 얼굴을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급진적인 혁신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발상을 끌어내어 아주 대담하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서술한 톨네이의 자신감에 나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왼손잡이로 태어났으나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법을 익혔다는 소문을 염두에 둘 때 더 그랬다.
그때부터 나는 왼쪽과 오른쪽에 대한 언급들에 계속해서 주목했고, 놀랍게도 중세시대와 르네상스시대에는 왼쪽-오른쪽 상징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 스며든, 다용도로 쓰이는 중요하고 교묘한 표현장치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쓴 시와 자신의 시적인 묘비명(지금까지는 완전히 잘못 이해되었다)에서 이러한 상징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왼손잡이’의 영적이고 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찬양했다. 이것이 왼손잡이들을 정중히 예찬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뒤에 알게 되었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두스부터 아빌라의 성 테레사까지 많은 신비주의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왼손은 그의 현현顯現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가장 경이로운 증거가 되었다.
이 책의 한 가지 목적은 서양문화에서의 다양한 왼쪽-오른쪽 구분을 보여주고 일반적으로 이러한 구분들이 왼쪽에 대해 적대적인 것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보여주는 것이다. 성서와 관련해서 이 주제에 관해 논평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쪽=선, 왼쪽=악’으로 보는 『신약성서』로부터 몇 가지를 선택해 인용함으로써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구약성서』가 제공하는 훨씬 더 풍부하고 좀더 미묘한 수확물들을 놓쳐버렸다.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1969년 선구적인 연구를 발표한 우르줄라 다이트마링Ursula Deitmaring이었다. 하지만 왼쪽-오른쪽 구분에 대해 좀더 섬세하게 읽어봐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이는 거의 없었고, 그녀의 글이 인용된 적도 없었다.
중세시대에 신비주의자들과 기사도적인 사랑〔고도로 형식화된 연애예법을 포함하며 서구사회에서의 사고와 감정을 개혁할 정도의 영향력을 지녔다. 여성과 연인과의 관계는 봉건사회에서의 주종관계 그대로이며, 본질적으로 귀족적인 이 연애는 비밀을 절대적인 조건으로 하고 겸양·예의·밀통·사랑의 종교를 특징으로 한다〕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재평가되면서 왼쪽은 ‘심장이 있는’ 쪽, 다시 말해 가장 강렬하고 진정한 감정이 깃드는 쪽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구약성서』의 관련 구절들이 이러한 재평가를 뒷받침해준다.
현대에 왼쪽은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영역, 그리고 규제받지 않는 상상력의 영역이 되었다. 왼쪽-오른쪽 상징은 분명 서구문화에서 대단히 중요하고도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은 심히 과소평가되고 오해받고 있다.
왼쪽-오른쪽 상징은 르네상스시대에 ‘생생한’ 쟁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문화 엘리트들이 전통적인 오른쪽의 우위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문명화 과정’의 일부다. 시각예술에서 왼쪽-오른쪽의 이분법은 내면화되었고 그 영향이 개인의 얼굴과 몸에 나타나 근본적인 불균형을 만들어냈다. 그 이래 왼쪽-오른쪽 상징은 창작의 아주 중요한 촉매가 되었다. 서로 다르지만 동일하게 타당한 경험과 이런 경험에 대한 반응을 표현하기 위해 왼쪽-오른쪽 상징이 점점 더 많이 이용되었는데, 이때 몸의 왼쪽은 흔히 어떤 감정적인 장애를 의미했다. 인간애, 시간의 경과, 여성 같은 것을 의미하는 왼쪽은 그 자체의 타당성을 부여받았다. 이는 현대적인 의식과 자기극화self-dramatization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였다.
이러한 심리적인 구분이 주로 왼쪽이 보여주는 자연주의 때문에 전통적으로 찬사를 받아온 많은 작품들에서 발견된다. 레오나르도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도>는 분명하게 왼쪽을 향한 하체와 발로 인해 대칭이 깨져 있으며, 한 점을 제외한 레오나르도의 모든 초상화들에서 모델들은 왼쪽을 향해 있다.
이러한 ‘왼쪽으로의 선회’는 서양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혁명 가운데 하나이며, 고전고대에 그러한 양상의 전조가 보이지만 사실상 지금에야 주목받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화가들의 일부 작품은 왼쪽과 오른쪽의 다양한 상징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왼쪽-오른쪽 상징이 서양미술의 ‘잃어버린 열쇠’라고 믿는 이유다.
이 책에서 나는 제의祭儀와 공연예술(특히 춤)뿐 아니라 문학, 신학, 인류학, 과학의 폭넓은 자료에 의지했다. 넓게는 문화사에 기초했지만, 초점은 시각예술에 맞추었다. 왜냐하면 시각예술이야말로 왼쪽-오른쪽 상징에 가장 중요하고 딱 들어맞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는 좀더 설명이 필요하다. 물론 인간 형상이나 인공의 사물이 등장하는 시각예술 작품 대부분이 필연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왼쪽-오른쪽을 구분한다는 점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창세기」에서는 이브가 ‘그 열매를 따먹고, 함께 있던 남편에게도 주어서 그가 그것을 먹었다’고 하면 되지만, 시각미술가들은 사과를 딴 이브의 손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그리고 이브는 아담과 나무와 뱀 사이에서 어디에 있는지를 선택해야 한다.
왼쪽-오른쪽 구분이 유의미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이브가 사과를 딸 때 어느 손을 사용했는지와 관련해서는 화가들 사이에 일관성이 거의 없지만, 아담과 함께 있을 때 이브가 어느 쪽에 있느냐와 관련해서는 훨씬 더 일관성이 있다.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인 관습대로 이브는 대개 아담의 왼쪽에 서 있다. 이는 이들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책에서 관습과 의미 있는 관습파괴를 확인하는 것으로 작업을 한정하고자 했다. 그래서 서양문화에서의 ‘왼쪽으로의 선회’를 다루면서 화가들과 후원자들이 실제로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주로 특정 화가들의 작품들과 이와 관련이 있는 이용가능한 텍스트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천 년 이상을 아우르는 문화사는 도구서 사용하기에 어떤 면에서는 무디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쟁점, 텍스트, 이미지에 중점을 두면서 부당하게 무시당해온 주제에 관한 입문서를 쓰고자 했다. 이 책이 반성과 연구를 한층 더 촉발한다면 그것으로 목적을 달성했다고 하겠다.
『왼쪽과 오른쪽의 서양미술사』는 다섯 개의 부로 나뉜다. 각 부는 주제와 관련된 장들로 구성되며, 장들은 대체로 연대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일부 장들은 특정한 미술가나 역사적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다른 장들에서는 좀더 배경이 되는 내용들을 다룬다.
제1부 「우향우」에서는 ‘오른쪽=선, 왼쪽=악’을 뒷받침하는 몇몇 고전들과 성서 속 왼쪽-오른쪽 관습과, 오른손의 우위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간략히 다룬다. 「문장紋章 이미지」에서는 현대 이전에 이미지 대부분이 어떻게 문장학적으로 배열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이미지들에서는 보는 사람보다는 예술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이 정해지고, 오른쪽이 특권적인 위상을 갖는다. 「만만한 상대」에서는 인간 몸의 왼쪽이 약한 쪽이고 악마, 질병, 죽음 등 나쁜 것은 보통 왼쪽에서 유래한다는 믿음이 어떻게 육체적·성적 공격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심히 복잡하게 만드는지를 상세히 살핀다. 「해와 달」에서는 오른쪽 눈은 해의 영역이고 왼쪽 눈은 달의 영역이라는 점성술의 믿음에서 영향을 받아 초상화 속 모델의 오른쪽을 환하게 밝히는 경향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제2부 「왼쪽과 오른쪽의 경쟁」에서는 르네상스시대부터 왼쪽-오른쪽 상징이 극명한 도덕적 선택을 묘사하는 이미지들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되어왔는지를 살펴본다. 「어두워진 눈」에서는 그림자를 드리우든 다른 어떤 수단을 써서든, 왼쪽 또는 오른쪽 눈을 가리는 것이 어떻게 그 인물의 정신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3부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에서는 르네상스시대와 바로크시대의 화가들이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역학적인 균형을 이루어낸 다양한 방식을 다룬다. 「헤라클레스의 선택」에서는 왼쪽으로 돌 것인지 오른쪽으로 돌 것인지에 헤라클레스의 운명이 달려 있음을 보여주며, 이 주제에 관한 그림들의 인기가 그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나왔음을 입증한다. 「두 개의 눈」에서는 모델이 왼쪽 입으로만 웃고 있고, 정신성과 세속성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있는 유명한 초상화들을 살핀다.「렘브란트의 눈」에서는 렘브란트의 후기 자화상들에서 왼쪽-오른쪽 상징이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에서 탐구되고 있으며, 이것이 독특하게 구성된 켄우드 자화상(1661, 런던 켄우드하우스 소장)에서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제4부 「좌향좌」에서는 르네상스시대부터 유럽문화에서 ‘왼쪽으로의 선회’가 일어나 몸의 왼쪽이 인정받고 무대 중심에 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죽음」에서는 미술가들이 그리스도 현현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왼쪽으로 몸을 숙인 모습을 왼쪽 방향에서 묘사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기사도적인 사랑」에서는 중세 신비주의, 기사도적인 사랑, 그리고 춤에 그 기원을 둔 왼손과 왼쪽에 대한 미학적 숭배를 다룬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은 로렌초 데 메디치다. 「섬세한 아름다움」에서는 이러한 왼쪽숭배가 어떻게 시각예술과 빙켈만의 미에 대한 이론들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레오나르도와 사랑의 눈길」에서는 ‘왼쪽을 향’하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초상화 속 인물들을 살피고, 그것이 그들에게 매력과 생기를 부여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본다.
「사랑의 포로들」에서는 페트라르카가 말하는 왼쪽 다리를 ‘저는’ 현대적인 연인 개념에 대한 다양한 시각적 표현과 더불어, 이러한 관념적인 마비가 그들의 사랑을 실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본다. 「러브로크스」에서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에 긴 머리카락 한 뭉치를 왼쪽 어깨 너머로 풍성하게 늘어뜨린 귀족들의 머리 모양을 살핀다. 이 ‘러브로크스’는 가장 과시적인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명예직 왼손잡이들」에서는 전쟁보다는 사랑의 정치학에 근거를 둔, 왼손잡이 궁수들이 등장하는 미켈란젤로의 세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제5부 「왼쪽과 오른쪽의 재평가」에서는 19, 20세기의 예술과 문화에서 왼쪽-오른쪽 상징이 맞이한 운명을 다룬다. 일반적으로 상징의 예술적 중요성은 계몽주의가 종교와 점성술을 공격하면서 줄어들었다. 18세기 후반에 숭고미를 보여주는 풍경화가 하나의 장르로 부상한 된 점 또한 중요하다. 이는 관람자와 묘사된 자연 사이의 장벽을 깨뜨림으로써 왼쪽-오른쪽 구분의 역할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일부 위대한 예술가들은 왼쪽-오른쪽 구분이 자신의 작품을 엄청난 원시적 에너지로 가득 채워줄 수 있는 혁명적인 도구라 생각하고 이를 되살려낸다. 「‘영원히 오류를 범하도록’」에서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왼쪽-오른쪽 상징을 풍경화에 재도입함으로써 풍경을 다시 신성하게 만들어 부분적으로 관람자를 소외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후반에 양쪽 뇌의 서로 다른 기능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퍼지고 ‘해방된’ 왼손이 우위를 점하는 주술과 악마숭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왼쪽과 오른쪽의 상징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왼쪽과 오른쪽에 관련된 새로운 정치적 용어들 역시 그러하다.
피카소에 관한 두 개의 장에서는 그가 <아비뇽의 아가씨들> 같은 가장 야심찬 초기 회화에서 왼손잡이의 체제전복적인 개념을 이용하고 있음을 살펴본다. 「현대의 원시주의」에서는 어떻게 왼손이 무의식과 연관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오토마티슴 미술의 상징과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여왕 폐하 만세」에서는 미국 사진작가 애니 리보비츠의 최근 영국 여왕 초상사진들의 조명과 분위기가 어떻게 왼쪽과 오른쪽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살핀다.
고대와 그 이후
제1부 우향우
제1장
맥주저장고 피하기: 왼쪽-오른쪽의 관습들
외부로부터의 어떤 영향력이 (어떤 논의에 대해) 속살거리는
(그) 소리를 내 귀에 가져오는 것 같다. …… 이 논의가 정당하면
그 소리는 오른쪽에 머무는 것 같고……
악이 이야기될 때는 그 소리가 왼쪽 귀에 머문다.
—지롤라모 카르다노, 『내 인생에 관한 책』(16세기 중반)
나 자신에 대해 특정한 공간관계에 있는 나의 왼쪽에서 어두운 공간을 보았다.
거기서 사암으로 된 수많은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하나의 희미한 기억이 내게
그것이 맥주저장고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말해주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1909)
이 첫 장에서는 오른쪽의 우위를 주장하는 왼쪽과 오른쪽에 관한 일반적인 관습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살핀다. 결혼반지를 왼손에 끼는 로마의 관습처럼 왼손이 우위에 있었던 고대의 일부 중요한 반례들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예외들’은 이어지는 장들에서 적당한 시점에 논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오른손의 우위를 주장하는 과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주요한 설명들을 개략적으로 살핀다.
모든 문화에서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왼쪽-오른쪽을 구분하지만 이를 처음 체계화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인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형이상학』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간결하면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미친 한 가지 설명을 제시했다. 그는 피타고라스의 철학에서 유래한 서로 대립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가 우주의 주요한 구성요소이자 모든 우주적 질서와 조화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그들에게 10은 이상적인 수여서, 달이 행성이라고 주장하며 열 개의 천체가 있다고 했다. 그들의 철학은 또한 이원론적이어서 모든 것이 일련의 대립쌍으로 쪼개질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의 철학은 다음 열 개의 ‘반의어’ 목록으로 요약되었다.
이 목록에서 오른쪽과 왼쪽은 수와 명백한 관련이 없는 첫 번째 ‘반의어’다. 여성, 곡선, 어둠과 나란히 놓인 왼쪽이 숭고하거나 초월적인 방식으로 ‘무한’하다기보다는 혼란스러움에서 ‘무한’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놀랍게도 피타고라스 학파의 목록에는 두 개의 전형적인 반의어인 위(‘오른쪽’ 항목)와 아래(‘왼쪽’ 항목)가 누락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은 위와 아래를 그의 가장 유명한 왼쪽-오른쪽 구분(곧 이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피타고라스 학파는 아마 반의어의 개수를 마술적인 수인 10에 맞추려고 이 쌍을 빼버렸을 것이다. ‘아래’가 추가된 순간 우리는 이미 사실상 프로이트가 말한 악마적인 맥주저장고의 영역에 들어선 셈이다.
왼쪽-오른쪽 구분은 그리스 문화에, 특히 인간학에 스며들었다. 그리스 의사들은 자궁 속에서 남자는 오른쪽에, 여자는 왼쪽에 놓이며 오른쪽 고환에서 나온 정자가 아들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다 엘리스 부인은 『수정의 핵심Essentials of Conception』(1891)에서 여전히 ‘아들 또는 딸을 좌우하는 건 여성이며, 고환에 고무밴드를 두르는 건 쓸데없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에서 해부를 통해 얻은 지식에 근거하여 첫 번째 이론을 반박했고, 동물의 오른쪽 또는 왼쪽 고환을 제거해도 새끼의 성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두 번째 이론을 반박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글 전체를 놓고 보면 오른쪽과 왼쪽에 관한 이렇게 분명한 시각은 단지 일시적인 입장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앞의 시각을 철회하면서 이전 사람들의 이론에 대한 논의를 끝맺는다. 그는 인간 몸의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따뜻하고 그 피는 더 순수하며 영혼은 더, 수분은 덜 갖는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오른쪽 고환에서 만들어진 정액 또한 더 뜨거울 것이다. 정액이 뜨거우면 더 기름지고 따라서 아들을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대부분 오른쪽의 우위를 옹호한다. 따라서 동물과 인간은 오른쪽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모든 동물은 활동할 때 자연스럽게 오른쪽 팔다리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고양이 같은 동물은 개체에 따라 통조림에서 먹이를 꺼낼 때 각자 선호하는 앞발이 있기는 하지만 왼쪽 앞발을 사용하는 경우도 대략 반쯤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닷가재의 사례만을 가지고 이런 유의 주장에 대응한다. 하지만 사실 바닷가재의 오른쪽 집게발이 더 큰가 왼쪽 집게발이 더 큰가 하는 것은 우연의 문제일 뿐이고 그것들이 기형적이고 열등한 종이라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지어 하늘이 우월한 동물 종種이며 따라서 하늘에 오른쪽과 왼쪽이 있다고 믿었다. 해가 떠오르는 밝고 따뜻한 영역인 동쪽은 하늘의 오른쪽이고 어둡고 추운 서쪽은 왼쪽이다. 그래서 오른쪽은 왼쪽보다 자연스럽고 근본적으로 더 우월하며 인간(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인간’이란 남성을 의미한다)은 모든 생명들 가운데 ‘가장 오른쪽’이다.
인간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내장인 심장이 가슴 왼쪽에 있다는 사실은 이 이론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예외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심장은 ‘왼쪽의 냉기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슴 왼쪽에 있을 뿐이며, 그렇다 해도 심장의 우심실이 여전히 더 크고 뜨거우며 그래서 오른쪽의 온도를 더 높게 유지한다.
중세에 이 이론들은 문장紋章에 동물을 묘사하는 방식의 근거가 되었다. 사자왕 리처드가 통치하던 1195년경에 도입된 영국의 ‘세 마리 사자’처럼 문장에서는 보통 한 마리 또는 몇 마리의 동물들이 수직기둥처럼 서서 오른발을 들어 올리고 있으며, 대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1182~1226)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늑대를 진정시킬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늑대 수도사, 나는 그대가 믿음을 서약해주기를 바라노라.” …… 그리고 성 프란체스코가 이 서약을 받기 위해 손을 앞으로 내밀자 늑대는 앞발을 들어 올려 성 프란체스코의 손에 조심히 내놓음으로써 최고의 신의를 표했다.’
비슷한 이유로 그리스도교도의 성유물함〔성인의 유체나 의복 또는 소지품을 담아두는 상자로, 성인숭배의 표상이다〕에 담겨 있는 것은 거의 오른팔 내지 오른손이다(대개 축복의 손짓을 하고 있다). 이 주제를 다룬 한 권위 있는 책에서는 팔이 담긴 중세의 성유물함 스물여덟 개 가운데 두 개에만 왼팔이 담겨 있다고 언급했다. 이 두 개의 왼팔을 왼손잡이 성인들의 것으로 생각한다면(왼손잡이의 비율은 평균 7퍼센트로 알려져 있다) 두 개라는 수치가 그리 부적절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성인들의 왼팔과 왼손은 대개 버려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
몸 내부에 대한 이 이론은 몸의 외모, 특징, 그리고 ‘성향orientation’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클라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100~178경)는 점성술에 관한 유명한 논문 「테트라비블로스Tetrabiblos」를 썼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뒤를 이어 이 논문에서 해가 뜨는 동쪽과 몸의 오른쪽을 나란히 놓았다.
동쪽의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더 용기 있고 더 솔직하게 행동하는데 이는 태양, 즉 동방, 주행성晝行性, 남성, 오른쪽의 본성에 따르기 때문이다(그리고 몸의 오른쪽 부위가 가장 강한 동물들에게서 이러한 성향이 발견된다). 이것이 저 동쪽 사람들이 더 용감한 이유다. 하지만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더 연약하고 여성적이며 은밀하다. 왜냐하면 서쪽은 달인데, 달은 항상 합〔두 개 이상의 천체가 겹쳐 보이는 현상〕 이후 서쪽에서 먼저 떠올라 모습을 보이고 여성적인 분위기, 야행성, 왼쪽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황금당나귀The Golden Ass』로 유명한 로마의 작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가 쓴 것으로 여겨지는 작자미상의 책 『관상서Book of Physiognomy』(4세기 후반)는 훨씬 더 엄밀하다. ‘아풀레이우스’는 남성과 여성의 관상에 대해 말해준다.
어떤 몸에서든, 그게 눈이든 손이든 젖가슴이든 고환이든 발이든 오른쪽 부위가 더 크다면…… 이 모든 징후는 남성적인 유형을 말해준다. 왼쪽 부위가 더 크다면 여성적인 유형이다.
남성들은 대부분 오른쪽 고환이 왼쪽보다 약간 더 크고 더 높이 있지만 단지 그뿐이다. 말 그대로 완벽한 남성은 오른쪽, 여성은 왼쪽이어야 한다는 이러한 비대칭적인 이상형은 해부학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는 하지만 오른손잡이는 몸 오른쪽의 근육, 특히 오른팔 근육이 더 발달하는 듯하다.
이와 비슷한 생물학적 원칙이 이브의 창조에서도 작동한다. 유대인들의 비전秘典인 ‘카발라Cabala’에서 이브는 아담의 왼쪽 갈비뼈로 만들어져 아담의 왼쪽을 상징한다. 밀턴의 『실낙원』(1667/74)에서 갈비뼈는 왼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그리고 밀턴은 왼쪽을 나타내는 영어화된 라틴어 단어 ‘불길한sinister’〔혹은 사악한〕을 써서 그 으스스한 연관성을 이용한다. 금지된 과일을 맛본 직후에 아담은 다음과 같이 이브를 묘사한다.
핼쑥한 나한테서 나온
원래 구부러진—보는 바와 같이
불길한 쪽으로 더 구부러진—갈비뼈.
—『실낙원』 10권 884쪽 6행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른손잡이가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은 반면 플라톤은 『법률』에서 ‘유모나 어머니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왼손이 ‘절룩거린다’고 비난하며 오른손잡이가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은 양손잡이를 이상적으로 여겼던 것 같다. 플라톤은 왼손을 전적으로 적대시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국가』에서 내세來世와 관련해서 큰 영향력을 미친 견해를 제시하면서 일반적인 왼쪽-오른쪽 구분에 의지했다. 여기서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그들이 받은 판결에 따라 두 집단으로 나눈다. 선한 사람들은 앞쪽에 그들이 받은 심판의 징표를 지닌 채 오른쪽 위로 이동하지만 부정한 사람들은 등에 징표를 지닌 채 왼쪽 아래로 이동한다.
중세시대에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왼손으로 바퀴를 밀어내리고 오른손으로 밀어올린다. 그리고 비슷한 구분이 그리스도교의 ‘심판의 날’에 다시 나타난다. 이 날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왼쪽으로 떨어지고 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코란』에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오른쪽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은 왼쪽에 있다. 불교에서 열반의 길은 둘로 나뉜다. ‘왼쪽 길은 피하고 오른쪽 길을 따른다.’
공식적인 자리 배치도 비슷한 양상을 따른다. 가장 명예로운 손님은 왕이나 주인의 오른쪽에 앉는다. 주인의 왼쪽에 앉는다는 것은 때로 정치적인 모욕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체계가 충격적인 효과를 위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훌륭한 예는 말더듬이 노트커르Notker the Stammerer〔840경~912, 베네딕트회 수도사이자 음악가, 시인, 작가〕의 『샤를마뉴의 행적』(829~36)에서 볼 수 있다. 샤를마뉴는 오랜 군사작전을 마친 후에 갈리아로 돌아온다. 그의 ‘천하무적 오른손’은 그에게 큰 승리들을 가져다주었다. 샤를마뉴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소년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을 초대해서 시와 산문을 보여달라고 한다.
중산층 가문과 아주 가난한 집 출신의 소년들은 세심히 지식을 닦은 샤를마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귀족 부모를 둔 아이들은 보잘것없고 우둔하기 짝이 없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자 샤를마뉴는 영원한 심판〔최후의 심판〕의 공정성을 본보기로 삼아 훌륭한 작품을 내놓은 소년들을 오른쪽에 두고 그들에게 말했다. “나의 아이들아, 고맙구나. 너희들은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그러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왼쪽에 있는 아이들을 향해 매섭게 고개를 돌리고서 그들의 양심을 꿰뚫을 듯이 노려보면서 경멸에 찬 목소리로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너희 어린 귀족들, 향락적이고 멋이나 부리는 내 지도자들의 아들들은…… 내 명령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구나.” 이렇게 말하고 샤를마뉴는 위엄 넘치는 머리를 돌려 하늘을 향해 정복당한 적 없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우레와 같은 소리로 맹세했다.
하지만 아무도, 심지어 샤를마뉴조차 결코 왼쪽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야영지를 출발해서 그날의 행진을 시작하던 샤를마뉴는 갑자기 엄청나게 눈부신 빛을 발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떨어지는 유성을 보았다.’ 이로 인해 샤를마뉴의 말이 넘어졌다. 고대인의 지혜를 배우는 일에 열심이던 그는 그리스인들에게 상서로운 조짐(즉 새나 혜성)은 오른쪽에서 나타나거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반면 상서롭지 못한 조짐은 왼쪽에서 나타나거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로마제국 사람들은 이러한 관습을 따랐고 그리스도교도들도 이를 채택했다. 그래서 유성이 그의 앞을 가로질러 왼쪽에 불시착하자 샤를마뉴는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직후에 죽었다. 분명 그는 오른손을 가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상서롭게’ 움직여 십자가를 그었으리라.
왼쪽-오른쪽 구분은 언어에도 나타난다. 전 세계 대부분 언어에서 왼쪽을 나타내는 말은 부정적이고 상서롭지 못한 의미를 갖는다(‘불길한sinister’이나 ‘서투른gauche’ 등).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를 포함하는 인도유럽어는 기원전 3000년 무렵에 사용된 ‘인도-유럽 조어祖語〔모든 인도 유럽어의 조상인 것으로 여겨지는 고대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언어에는 오른쪽을 의미하는 데크스(시)deks(i) 또는 데크시노스deksinos라는 말은 있지만(이는 고대 그리스어의 데크시오스deksios와 그리 멀지 않다), 왼쪽에 해당하는 말은 없다. 그 말이 금기시되었고 각 방언들에서 완곡하게 표현되면서 부분적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하나의 단어로서 왼쪽은 오른쪽보다 덜 안정적이다. 이것이 많은 언어들에서 왼쪽에 해당하는 단어는 몇 개씩 있지만(라틴어는 sinister, laevus, scaevus, 이탈리아어는 sinistro, mancino, 에스파냐어는 izquierdo, zurdo, siniestro), 오른쪽의 경우는 하나의 기본 단어가 오랫동안 광범위한 지역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는 이유다.
많은 인도유럽어에서 오른쪽과 남쪽에 해당하는 말은 사실상 바꿔서 쓸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북반구 사람들이 예배를 올릴 때 동쪽을 보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낮 동안 태양이 그들의 오른쪽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태양숭배는 대개 오른쪽숭배와, 그리고 오른쪽과 밀접하게 연관된 남쪽 및 동쪽숭배와 결합된다. 반대로 왼쪽은 더 추운 서쪽 및 북쪽과 연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사람들은 서쪽 끝에서부터 들어가고 제단은 동쪽에 놓여 있다. 그래서 예배를 보는 사람들의 오른쪽, 즉 남쪽에서 태양이 빛난다. 시신은 심판의 날에 무덤에서 일어나 앉아 하느님과 마주할 수 있도록 발을 동쪽으로 향한 채로 매장되었다.
반대로 어둠의 왕자인 악마는 서쪽, 그리고 때로는 북쪽에 산다고 믿었다. 초기 교회에서 유아가 아닌 이가 세례를 받을 때 개종자는 서쪽을 향해 “사탄아, 나는 너를 버리노라”고 말해야 했다. 또 밀라노에서는 서쪽으로 침을 뱉어야 했다.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이 1613년경에 쓴 한 결혼식 노래에서 행복한 한 쌍에 대한 축복은 불길하게 끝난다. 던은 다른 작품에서는 오른쪽과 동쪽, 왼쪽과 서쪽을 나란히 두었다.
결코 늙거나, 죄가 완전히 좌절시키지 못할 것이네
서쪽을 향해 빛나는 이 눈으로 인해, 북쪽을 향한 이 심장으로 인해.
왼발로 건물에 들어서는 것에 대한 편견은 이러한 믿음의 필연적인 결과다. ‘하인footman’이라는 말은 로마인들이 현관문 옆에 배치한 노예에서 유래한다. 이 노예가 하는 일은 손님과 방문객들이 문을 들어설 때 오른발을 먼저 내딛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왼발로 문을 들어서는 것을 상서롭지 못한 행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성계단Scala Sancta〔그리스도가 수난을 당할 때 예루살렘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가기 위해 오른 계단으로 4세기에 성 헬레나가 로마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을 오를 때도 이러한 규약이 지켜졌고, 오늘날 그리스정교 교회에 들어갈 때도 지켜지고 있다.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1709~84)은 왼발을 먼저 딛으며 집으로 들어서는 일이 결코 없었다. ‘그것은 집안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한편 존슨의 동시대인인 체스터필드 경은 1760년대에 그의 대자代子에게 쓴 편지에서 자세와 몸가짐을 고쳐 오른발을 앞에 두라고 충고한다.
너는 오른발을 어떻게 할지 물을 것이다. 최근에는 예전보다 더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고 있느냐? 왼발을 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되도록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을 때 너의 왼쪽을 보여주는 건 아주 곤란할 테니까. 그게 네 행동거지의 불길한sinister〔‘sinister’에는 ‘왼쪽’이라는 의미도 있다〕 징조임은 말할 것도 없지(난 네가 말장난을 좋아한다는 걸 안단다).
오른손과 오른쪽의 우위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제시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현자인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1795~1881)은 오른손잡이가 ‘아마도 전투에서 등장했을 텐데, 가장 중요하게는 왼손으로 심장 부위를 보호하고 방패를 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이러한 설명은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방패는 오른손잡이가 인간의 규범이 되고 훨씬 뒤에야 발명된 것으로 보인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와 싸우는 경우보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와 싸우는 경우가 드물 것이므로, 육박전에서는 왼손잡이가 유리할지 모른다.
칼라일은 1860년대에 아마도 파킨슨병 때문에 오른손이 부자유스러워진 후 사람들이 잘 쓰는 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세 사람 (한 사람은 왼손잡이, 두 사람은 오른손잡이)이 첼시 제방을 따라 풀 베는 모습을 본 후 또 다른 이론을 내놓았다. 왼손잡이 한 사람을 포함한 세 사람이 함께 풀 베는 일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불가능함을 지켜본 그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불가능성을 목격했다. ‘오른손이 우위성을 갖지 않았다면 그러한 불가능성이 인류 전체에 만연했을 것이다.’ 특히 큰 낫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가지고 여럿이 하는 활동에서는 일정 수준의 일관성과 균일성이 바람직하다는 게 칼라일의 견해다.
분화의 요소는 확실히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 같다. 한쪽 손으로 흰개미를 잡는 침팬지들은 그렇지 않은 침팬지들보다 36퍼센트를 더 잡는다. 일반적으로 기관들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내적으로 비대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의 장기는 비대칭적으로 분포하며 혈액은 나선운동을 하며 흐른다. 이는 분자 수준에도 적용된다. 설탕분자는 편광을 오른쪽으로 회전시키는 반면, 아미노산은 왼쪽으로 회전시킨다. 가장 극적인, 그리고 가장 직관에 반하는 현대의 발견은 인간 뇌의 좌반구가 우반구와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몸 오른쪽 부위의 운동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고대부터 19세기 중반까지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뇌는 대체로 인간의 두개골 형태와 일치하는 식으로, 즉 앞뒤가 아니라 (코의 선을 기준으로) 좌우로 대칭적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뇌는 주로 앞부분, 중간부분, 뒷부분으로 나뉘어졌는데, 앞부분은 이마 바로 뒤였다. 가장 최근에 이러한 견해를 두드러지게 표명한 것은 19세기 초에 기본원리가 마련된 골상학이었다.
골상학자들은 뇌 기능이 국부적이며, 두개골의 표면이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뇌 활동의 종류에 따라 형성되고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뇌 기능들이 발달함에 따라 이들 기능을 맡는 ‘융기’들이 만들어지며, 마사지를 통해 이런 융기를 발달시킬 수도 있다. 19세기 중반에 마흔두 개에 달하는 기능들이 확인되었고, 일부 골상학자들은 정치적 소속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일을 담당하는 융기가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어떤 골상학자는 두개골에 관해 ‘작은 언덕마다 혀가 하나씩 있다’고 썼다.
골상학에서 뇌의 좌반구는 정확히 우반구의 거울 이미지다. 머리에는 최대 여든네 개에 이르는 ‘융기’가 있을 수 있고, 좌우반구의 뒤쪽에는 ‘파괴성’ ‘비밀스러움’ ‘반항’ ‘성욕’ 같은 나쁜 융기들이 있다. 이러한 좌우반구의 대칭 때문에 골상학 논문들에는 대체로 옆얼굴을 보여주는 삽화가 들어갔다.
1860년대에 프랑스인 외과의사인 폴 브로카Paul Broca가 언어 문제를 가지고 있고 몸의 오른쪽이 마비된 환자들의 뇌를 연구했다. 그 결과 뇌의 좌반구가 언어 기능을 담당하며 몸 오른쪽의 운동을 통제한다고 결론지으면서 골상학적 합의는 깨지기 시작했다. 그의 환자들이 사망한 후에 뇌를 분석한 결과 좌반구에 손상이 있음이 밝혀졌다. 브로카의 발견으로 원래 1836년에 마르크 다Marc Dax가 몽펠리에에서 열린 의학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 1865년에 출간되었다. 이 논문의 결론은 브로카의 결론과 비슷했다.
골상학에 대해 읽은 다는 1800년 머리에 부상을 입어 단어들을 간신히 기억하는 기병장교에게 정확히 어디에 부상을 입었는지 물었다. 부상 부위는 정수리 왼쪽이었다. 이후에 다는 좌뇌의 손상과 언어 상실이 유사하게 결합된 더 많은 환자들을 보았다. 다의 논문은 그즈음에는 그다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다가 30년 뒤에야 그의 아들의 노력 덕분에 출간되었다.
현대 연구는 이 결과들을 뒷받침해왔으며 또한 뇌 좌우반구의 다른 기능들을 상세하게 밝혀냈다. 좌반구는 일반적으로 언어를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말하기, 읽기, 쓰기, 맞춤법이 포함된다. 어떤 이들은 언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민첩성’과 ‘속도’가 오른손으로 전달되고, 그래서 오른손을 더 움직일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우반구는 ‘시각 이미지와 3차원 공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고도로 병행적이고 통합적인 분석’을 포함한 ‘비언어적인’ 일들을 수행한다고 여겨진다. 우반구는 또한 감각 지각을 처리하고 언어와 관련해서 감정, 강조, 은유, 유머를 담당한다.
물론 이것은 골상학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비록 이러한 통찰들이 궁극적으로는 골상학의 뇌 기능 분화에 대한 주장에서 나왔지만 말이다. 19세기 후반에 대단히 많이 제작된, 도자기로 만든 골상학적 반신상들은 이러한 생각에 부응하려는 성의 없는 시도로 보인다. 가장 성공적인 것은 미국인인 파울러 형제가 만든 것으로, 오늘날에도 고물상과 골동품상에서 볼 수 있다. 그것들에는 신고전주의의 대리석 반신상처럼 한결같이 흰 유약이 발라져 있지만 그 위에 검은색 텍스트가 새겨져 있다.
나는 심히 비대칭적으로 머리 오른쪽보다 왼쪽에 훨씬 더 많은 텍스트가 새겨져 있는 것을 하나 가지고 있다. 왼쪽에는 모든 뇌 기능이 낱낱이 새겨져 있어서 다양한 말들이 빽빽한 숲을 이룬다. 예를 들어 왼쪽 눈 근처에서는 ‘언어 기억’ ‘언어 표현’ ‘언어’ ‘추정’ ‘계산’ ‘체계’ ‘청결’ ‘색’ ‘무게’ ‘크기’ ‘형태’ 같은 말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른쪽은 좀더 요약되어 대문자로 새겨진 텍스트들이 훨씬 더 드문드문 덮여 있다. 예를들어 ‘도덕적 판단과 종교적 감정’ ‘분류’ ‘직관, 추론, 반성, 능력’ 등이 있다. 오른쪽 눈에는 아무 단어도 없다. 이는 시각적으로, 좌반구는 컴퓨터같이 실로 극히 분주하게 언어를 처리하는 쪽이고 오른쪽은 좀더 느긋하게 개념화와 일반화를 담당한다는 인상을 준다.
많은 경우 이렇게 뇌 좌우반구의 다양한 기능들을 밝히다보면 오른손의 ‘우위’에 한층 더 신빙성이 실리곤 한다. 오른손을 통제하는,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계산을 할 줄 아는 좌반구는 흔히 ‘우세한’ 반구로 여겨진 반면 우반구는 그보다 덜 정교한 것으로 여겨졌다. 1961년에 한 신경학자는 우반구는 단지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것은 왜 인류의 90퍼센트 정도가 오른손잡이인지, 또는 왜 뇌의 좌반구에서 언어 및 수학 능력이 더 발달하는가 하는 의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 뇌의 좌반구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흔히 어린아이의 언어능력으로 퇴행하지만, 상당수는 남아 있는 우반구로 다시 어른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따라서 우반구는 언어를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오른손잡이의 5퍼센트, 왼손잡이의 30퍼센트의 언어능력을 뇌의 우반구에서 담당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몸과 뇌가 ‘분업’을 하고 어느 정도 이원화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여기서 우리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이러한 분화의 창의적 이용이다.
(서론,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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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제임스 홀 James Hall
프리랜서 예술비평가이자 예술사가다. 『가디언』의 예술비평가로 활동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조각의 세계: 르네상스부터 현재까지 조각의 위상 변화』(1999), 『미켈란젤로, 인체의 재발명』(2005), 『미켈란젤로와 마시는 한 잔의 커피』(200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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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영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