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이니.”
― 거트루드 스타인(저자와의 대화 중에서)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건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다시 뜨고 다시 지며, 뜬 곳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바람은 남으로 갔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빙빙 돌고 돌아 그 가던 길로 돌아온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으며, 강물이 비롯된 곳으로 돌아간다.”
― 전도서(1:4-1:7)
1
로버트 콘은 한때 프린스턴 대학의 미들급 복싱 챔피언이었다. 내가 권투 타이틀에 대단한 인상을 받았다고 생각진 마시기 바란다. 하지만 콘에겐 그게 퍽 중요했다. 그는 권투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싫어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권투를 괴로워하면서도 철저히 배운 건, 프린스턴에서 유대인 취급을 당하면서 느낀 열등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자는 누구든 때려눕힐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아주 친절해서, 체육관 밖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는 그였지만 말이다. 그는 스파이더 켈리의 수제자였다. 스파이더 켈리는 배우러 온 청년 모두를 페더급 선수처럼 싸우도록 가르쳤다. 체중이 105파운드건 205파운드건 상관없었다. 그래도 콘에겐 그게 맞았던 모양이다. 그는 정말 빨랐다. 그가 워낙 뛰어나서 스파이더 켈리는 신속히 그를 강한 상대와 맞붙였고, 결국 콘의 코를 영영 주저앉혀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콘은 권투를 더 싫어하게 되었지만, 이 일로 그는 묘한 뿌듯함 같은 걸 맛보게 되었고, 코는 전보다 낮아진 게 확실히 나아 보였다. 프린스턴 졸업반 때, 그는 책을 너무 많이 봐서 안경을 쓰게 되었다. 나는 그의 동기생 중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가 미들급 복싱 챔피언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솔직하면서 단순한 사람들, 특히 살아온 얘기들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로버트 콘이 미들급 복싱 챔피언이었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늘 품고 있었다. 얼굴은 말발굽에 깔려서 혹은 어머니가 매우 놀라거나 뭘 잘못 봐서, 아니면 어릴 때 무엇에 세게 부딪쳐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나는 누굴 시켜서 스파이더 켈리를 만나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스파이더 켈리는 콘을 기억하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콘이 어떻게 됐는지 자주 궁금해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로버트 콘의 아버지 쪽은 부유한 유대인 집안으로 뉴욕에서 손꼽혔고, 어머니 쪽은 유서 깊은 유대인 집안 중 하나였다. 프린스턴 진학을 준비하던 군사학교에서 그는 미식축구팀의 뛰어난 엔드1였고, 그에게 인종을 의식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린스턴에 가기 전까지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걸, 그래서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의식하게 만드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는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청년이었고,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 그는 권투에서 위안을 찾았고, 자의식으로 아파하고 코가 낮아진 채로 프린스턴을 졸업했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첫 여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생활 5년 동안에 아이는 셋이 되었고, 아버지가 남겨준 5만 달러는 거의 탕진됐다. 남은 유산은 다 어머니 수중으로 넘어갔으며, 부유한 아내와는 가정불화가 만성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아내를 버리기로 마음먹자마자, 아내가 그를 버리고 어느 세밀화가와 떠나버렸다. 그는 그녀에게서 남편을 박탈하는 게 너무 가혹한 일인 것 같아 몇 달 동안 떠날 생각을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던 차였기에, 그녀의 일탈은 아주 건강한 충격이었다.
이혼 절차가 끝나자 로버트 콘은 태평양 연안으로 갔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어쩌다 문인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5만 달러 중 약간이 아직 남아 있던 터라 어느새 한 예술 평론지를 후원하게 되었다. 평론지는 캘리포니아 카멜에서 창간되었다가 매사추세츠 프로빈스타운에서 폐간되었다. 처음엔 재정후원자로만 여겨졌고 그저 자문위원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이 실리던 콘은, 그 무렵 유일한 편집자가 되어 있었다. 잡지는 그의 돈으로 굴러갔고, 그는 편집자로서의 권한이 마음에 들었다. 잡지 운영비가 너무 부담스러워져 잡지를 포기해야 했던 건 그로선 애석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그는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고 있었다. 잡지와 함께 뜨고 싶어 하던 여자에게서 꼼짝도 못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녀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에, 콘은 꽉 잡히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 여자는 잡지가 뜰 가망이 없어 보이자 콘에게 정나미가 좀 떨어졌지만, 아직 이용할 만한 게 남아 있는 한 그거라도 붙드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는, 유럽으로 가자고 거기서 콘은 글을 쓰면 된다고 다그쳤다. 둘은 유럽으로 왔고, 여자가 교육을 받았었던 그곳에서 3년을 머물렀다. 이 3년 중에 첫 1년은 여행만 다녔고, 나머지 2년은 파리에서 지냈다. 파리에서 로버트 콘은 친구 둘을 사귀었다. 브래덕스와 나였는데, 브래덕스는 문인 친구였고 나는 테니스 친구였다.
그를 꽉 잡은 여자, 프란시스는 두 해가 저물어갈 무렵 자신의 외모가 시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로버트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무심한 소유와 착취에서, 그를 남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확고한 결의로 바뀌었다. 이 무렵 로버트의 어머니는 그의 용돈을 월 300달러 정도로 정해두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로버트 콘은 2년 반 동안 딴 여자에게 한눈판 적이 없었다. 그는 유럽에 와서 사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미국에 있는 게 나았다는 것과 글쓰기를 발견했다는 점만 아니면 꽤 행복했다. 그는 소설을 하나 썼는데, 많이 모자라긴 해도 나중에 평론가들이 말한 것만큼 아주 형편없는 소설은 아니었다. 그는 책을 많이 읽고, 브리지 놀이를 하고, 테니스를 치고, 가까운 체육관에서 권투를 했다.
내가 그에 대한 프란시스의 태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리 셋이서 함께 저녁을 먹고 난 어느 밤이었다. 우리는 라브뉘에서 저녁을 먹고서 카페 드 베르사유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우리는 커피 다음에 ‘핀’2을 몇 잔 마셨고, 나는 가봐야겠다고 했다. 콘은 우리 둘이서 어딘가로 주말여행을 가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도시를 벗어나 실컷 걸어보고 싶어 했다. 나는 스트라스부르로 날아가서 생토딜3까지, 아니면 알자스 지방 다른 어디까지 걸어보자고 했다. “스트라스부르에 시내 안내를 해줄 만한 아가씨가 있거든.” 내가 말했다.
테이블 밑으로 누가 발길질을 했다. 나는 어쩌다 차인 줄 알고 이어서 말했다. “2년 동안 거기 살아서 웬만한 건 다 알지. 대단한 여자야.”
테이블 밑으로 다시 발길질이 있었고, 로버트의 여자 프란시스를 보니 턱이 들린 채 낯빛이 굳어 있었다.
“뭐, 꼭 스트라스부르일 것도 없지.” 나는 말했다. “브뤼주나 아르덴 고원 같은 데도 있으니까.”
콘은 안도하는 것 같았다. 발길질은 더 없었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콘은 신문을 하나 사야겠다며 길모퉁이까지만 함께 가자고 했다. “에이, 참.” 콘이 말했다.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아가씨 얘긴 뭐하러 했어? 프란시스 얼굴 봤지?”
“아니, 뭐하러? 내가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미국 여자를 아는 거랑 프란시스랑 무슨 상관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떤 여자든 안 돼. 하여튼 난 못 가.”
“바보 같은 소리.”
“넌 프란시스를 몰라. 어떤 여자든 절대 안 돼. 프란시스 표정 못 봤어?”
“뭐, 그럼 상리스에 가든지.”
“불쾌해하지 말고.”
“불쾌해하는 게 아니야. 상리스는 좋은 곳이고, 그랑세르 호텔에 묵으면서 숲길이나 많이 걷다가 돌아오면 돼.”
“좋아, 그건 괜찮겠어.”
“그럼, 내일 코트에서 보자구.” 내가 말했다.
“잘 가, 제이크.” 그는 인사를 하고서 카페 쪽으로 돌아섰다.
“신문 산다며.” 내가 말했다.
“그렇지.” 그는 나와 함께 길모퉁이의 가판대로 갔다. “불쾌한 거 아니지, 제이크?” 그가 신문을 손에 들고 돌아서며 말했다.
“아니, 내가 왜?”
“그럼, 테니스장에서 봐.” 그가 말했다. 나는 신문을 들고 카페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꽤 좋아했고, 그는 그녀 때문에 꽤나 딱하게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2
그해 겨울에 로버트 콘은 자신이 쓴 소설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 소설을 꽤 괜찮은 출판사에서 받아들였다. 나는 그가 떠나는 문제로 지독하게 다투었다고 들었는데, 그 바람에 프란시스는 그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뉴욕에서 여러 여자가 그에게 친절히 대해주었고, 돌아왔을 때 그는 사뭇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미국에 열광했고, 더는 그리 순진하지도 그리 친절하지도 않았다. 출판사에서 그의 소설을 꽤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좀 우쭐해졌던 것이다. 게다가 여러 여자가 작정하고서 친절하게 굴었고, 그래서 그의 시야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4년 동안 그의 시야는 오로지 아내에게만 국한돼 있었다. 그리고 근 3년 동안, 그는 프란시스 너머를 전혀 보지 못했다. 분명히 그는 그때까지 사랑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끔찍했던 대학 시절로부터 회복되어가던 중에 결혼했고, 자신이 첫 아내에게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서 받은 충격으로부터 회복되어가던 중에 프란시스에게 꽉 잡혔다. 그는 아직 사랑에 빠진 건 아니었지만 자기가 여자들에게 꽤 매력이 있음을, 또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고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게 순전히 기적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울리기 썩 좋지는 않을 정도로 사람이 달라졌다. 더구나 그는 뉴욕에서 친척들과 판돈이 상당히 큰 브리지 놀이를 하다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돈을 걸었는데, 카드를 잘 잡아서 수백 달러를 따게 되었다. 덕분에 자신의 브리지 실력을 너무 자만하게 된 그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브리지로만 먹고살아도 되겠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했다.
또 한 가지. 그는 W. H. 허드슨의 책을 읽고 있었다. 문제 될 게 있겠나 싶지만, 콘은 『자줏빛 나라』를 읽고 또 읽었다.4 『자줏빛 나라』는 나이가 꽤 들어서 읽게 되면 아주 해로운 책이다. 지극히 낭만적인 이국땅에서 벌어지는 완벽한 영국 신사의 화려하고 호색적인 상상의 모험들, 그리고 그곳의 풍경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는 이야기다. 34세인 남자가 그 책을 인생의 가이드북으로 삼는다는 건, 프랑스 수도원을 갓 나온 동년의 남자가 보다 실용적인 앨저5의 책들을 완비하고서 곧장 월스트리트로 진출하는 것만큼이나 안전할 것이다. 콘은 『자줏빛 나라』를 〈R. G. 던 보고서〉6이기라도 한 듯, 단어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에겐 미심쩍은 데가 좀 있긴 해도 전반적으로 견실한 책이었던 것이다. 그 정도면 그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어느 날 그가 내 사무실로 찾아올 때까지 그가 그 정도로 들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어이, 로버트.” 내가 말했다. “날 격려해주러 오셨나?”
“제이크, 남미 가지 않을래?” 그가 물었다.
“아니.”
“왜?”
“글쎄. 가고 싶은 적이 없었어. 돈이 너무 들잖아. 남미 사람이야 파리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그 사람들은 진짜 남미인이 아니야.”
“내가 보기엔 너무 진짜 같은데.”
나는 임항(臨港) 열차7를 잡아 일주일 치 기사를 부쳐야 했는데, 기사를 아직 반밖에 못 쓴 상태였다.
“혹시 추문 아는 것 없어?” 내가 물었다.
“없어.”
“지체 높으신 친척 중에 이혼하시는 분도 없고?”
“없다니까. 이봐, 제이크. 내가 경비를 다 대면 나하고 남미에 가주겠어?”
“왜 나야?”
“스페인어 할 줄 알잖아. 둘이 가면 더 재밌을 테고.”
“안 가.” 내가 말했다. “난 이 도시가 좋고, 여름이면 스페인에 가잖아.”
“난 평생 그런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구.” 콘이 말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나이 더 먹으면 엄두도 못 내.”
“바보 같은 소리.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돈 많잖아.”
“알아. 하지만 그럴 마음이 쉽게 나는 게 아니야.”
“기운 내. 어떤 나라든 영화에서 보는 거랑 똑같아.”
나는 좀 미안하기도 했다. 그는 서운하게 받아들였다.
“내 인생은 너무 빨리 흘러가는데, 진짜로 사는 게 아니다 싶으니 못 견디겠어.”
“인생을 여한 없이 사는 사람은 투우사밖에 없지.”
“난 투우사에게 관심 없어. 그건 비정상적인 삶이야. 난 남미 오지에 가고 싶어. 멋진 여행이 될 거야.”
“영국령 동아프리카로 사냥을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아니, 그럴 맘 없어.”
“거기라면 함께 갈 텐데.”
“아니, 거긴 관심 없다니까.”
“그곳에 관한 책을 안 봐서 그래. 눈부시게 아름다운 흑인 공주들과 연애하는 얘기로 꽉 찬 책을 하나 읽어보라구.”
“난 남미에 가고 싶어.”
그에겐 유대인답게 완고한 구석이 있었다.
“밑에 가서 한잔하지.”
“일 안 해?”
“음.” 우리는 계단을 이용해 1층에 있는 카페로 갔다. 나는 그게 찾아오는 친구를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일단 한잔하고 나서 “자, 난 돌아가서 전보를 좀 보내야겠네”라고만 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일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게 직업윤리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 신문 업계에서는, 그런 우아한 출구를 찾아내는 게 아주 중요하다. 아무튼, 우리는 아래층의 바로 가서 위스키소다를 한 잔씩 했다. 콘은 벽면에 진열된 술병들을 바라봤다. “여기 좋은데.” 그가 말했다.
“술 많지.” 나는 말했다.
“이봐, 제이크.” 그는 바 쪽으로 몸을 숙였다. “인생이 마구 흘러가는데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 느껴본 적 없어? 벌써 거의 반평생을 살아버렸다는 건 실감해?”
“음, 어쩌다 한 번씩.”
“앞으로 35년쯤 뒤면 죽을 거라는 것도 알아?”
“아무렴, 로버트.” 나는 말했다. “아무렴.”
“농담이 아니야.”
“난 그런 걱정은 안 해.” 내가 말했다.
“해야 해.”
“이래저래 걱정할 것 많아. 걱정할 만큼 해봤고.”
“아무튼, 난 남미에 가고 싶어.”
“이봐, 로버트. 다른 나라에 간다고 달라질 것 없어. 나도 다 해봤어. 여기저기로 옮겨 다닌다고 자기한테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무 소용없어.”
“하지만 남미엔 안 가봤잖아.”
“그놈의 남미! 지금 네 기분으론 거기 가봤자 똑같을 거야. 여긴 좋은 도시야. 파리에서 네 인생을 살아보는 게 어때?”
“파리는 지긋지긋해. 쿼터8도 지긋지긋하고.”
“쿼터에서 떨어져 지내. 혼자 슬슬 다니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구.”
“나한텐 아무 일도 안 일어나. 한번은 밤새 혼자 걸었는데, 자전거 탄 경찰이 불러 세우더니 신분증 보자고 한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안 나더군.”
“밤 풍경이 좋지 않던?”
“난 파리 안 좋아해.”
역시 그랬다. 딱하기도 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남미가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는 것과 파리를 안 좋아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완고함에 바로 부닥치게 되니 말이다. 첫 번째 생각은 책에서 얻은 것이고, 내 생각엔 두 번째도 책에서 나온 것 같다.
“자, 난 올라가서 전보를 좀 보내야겠어.”
“정말 가야 해?”
“음, 전보 처리할 게 좀 있어서.”
“나도 올라가서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될까?”
“뭐, 그러셔.”
그는 외실(外室)에 앉아 신문을 봤고, 편집인과 발행인과 나는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다음 나는 카본지를 정리하여 서명란에 스탬프를 찍은 뒤에 큰 마닐라지 봉투 몇 개에 넣고는, 벨로 사환 아이를 불러 생라자르 역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외실로 가보니 로버트 콘은 큰 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그는 두 팔로 팔베개를 한 채 자고 있었다.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사무실을 닫고 어서 나가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못 해.” 그 말과 함께 그는 팔 사이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난 못 해. 뭐라고 해도 난 못 해.”
“로버트.” 나는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미소를 띠며 눈을 껌뻑였다.
“방금 내 소리가 컸나?”
“약간. 하지만 분명치 않았어.”
“휴우, 끔찍한 꿈이었어!”
“타자기 소리에 잠들었어?”
“그랬나 봐. 간밤에 한숨도 못 잤거든.”
“무슨 일로?”
“얘기하느라.”
눈에 선했다. 나는 친구들의 침실 풍경을 상상해보곤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우리는 카페 나폴리탱으로 가서 ‘아페리티프’9를 한잔 마시며 대로의 저녁 인파를 구경하기로 했다.
(1, 2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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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어네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1961)
미국의 작가, 저널리스트.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로 20세기 소설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생전에 7권의 장편소설과, 단편집 6권, 논픽션 2권을 남겼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사후에도 장편소설 3권과 단편집 4권, 논픽션 3권이 발간되었다.
1899년 시카고 교외의 부촌인 오크파크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대학 진학 대신 신문기자 생활을 택한다. 신문사 생활을 짧게 마치고 1차대전에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참전했다가 이탈리아 전선에서 큰 부상을 입는다. 귀국 후 다시 기자 생활을 하다가 1921년, 해외특파원이 되어 파리로 건너간다. 당시 파리에 거주하던 영미권의 대표적 문인들로부터 문학수업을 받은 그는 첫 장편 『태양은 다시 뜬다』(1926)로 큰 성공을 거두며 ‘로스트 제너레이션’과 독특한 문체를 대표하는 유명 작가가 된다. 파리 시절 이후로는 주로 플로리다와 쿠바에서 생활하며 『무기여 잘 있거라』(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노인과 바다』(1952) 등의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간다. 쿠바 생활을 접고 아이다호 주 케첨에서 지내다 1961년, 오랜 심신의 고통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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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한중
역서에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숨 쉬러 나가다』,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팔리 모왓의 『울지 않는 늑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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