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세상 주인공들 이야기 들어 볼래요
이 책은 일하는 엄마 아빠들을 제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만들었어요. 이 책을 만들면서 그동안 만났던 몇몇 분들이 떠오르네요. 저는 그동안 이사를 참 많이 다녔어요. 늘 1톤짜리 용달차에 짐을 꽉꽉 실어 올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다녔죠. 파주에 있다가 결혼을 해서 서울 고척동으로 이사를 오고, 거기에서 두 해쯤 살다가 다시 고향 시골집으로 집을 옮겼어요.
이삿짐 옮겨 주시는 아저씨 옆에 앉아 차를 타고 갈 때, 그 아저씨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아저씨가 젊었을 적에는 일을 마친 뒤에 꼭 바나나를 사 가지고 집에 들어가셨대요.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집에 있는 가족에게 바나나를 사 가는 아저씨의 젊은 모습을 그려보면서, 나는 집에 돌아갈 때 손에 무엇을 들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짜장면 배달을 하시는 분은 배달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부심이 가장 커요.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이죠. 제가 기억하는 짜장면 집에는 나이가 많고 배달 일을 오래 하신 아저씨가 계셨어요. 그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주방에서 요리 일을 도왔어요. 틈틈이 주방장에게 요리를 배우면서 배달을 한 거죠. 나중에 짜장면 집을 차릴 거라고 했어요. 힘든 배달 일을 하면서 더 큰 꿈을 가지고 배우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긴 싸움 끝에 다시 회사로 돌아가게 된 아줌마들을 축하하는 행사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오랫동안 싸워 오신 아줌마들 모습은 우리 엄마, 친구 엄마, 옆집 아줌마 모습이었죠. 투쟁이란 단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이었어요. 도대체 회사가 저 아줌마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오랜 시간 싸워 왔을까 하고 저는 생각했죠. 오랜 싸움 끝에 집으로, 가족한테로 마음 편히 돌아가는 아줌마들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우리 둘레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다는 것이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늘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이 세상 주인공인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백남호
추천사
땀 흘리며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를 만나 보세요
공주와 왕자. 동화, 만화, 드라마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주인공입니다. 왕의 아들이나 딸이 펼쳐 가는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상을 아름답게 상상할 수 있는 힘과 꿈을 키워 주지요. 그런데 왕자나 공주 이야기만 넘쳐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데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21세기인 지금 왕자나 공주로 태어날 가능성은 바닷가의 숱한 모래 가운데 한 알 정도로 작습니다. 요즘에는 왕이나 여왕 대신 그 자리를 부자가 차지하기도 합니다. ‘부자 아빠’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부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자기를 낳고 길러준 엄마와 아빠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바로 그렇기에 이 책은 소중합니다.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마저 듭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엄마 아빠는 왕도 왕비도 아닙니다. 부자도 아닙니다. 미용사인 엄마, 문구점을 하거나 떡볶이를 파는 아빠를 비롯해 우리가 생활하면서 만나는 어른들입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만일 미용사 엄마가 없다면, 문구점 아빠가 없다면, 아침마다 우유를 집 앞에 놓거나 배고플 때 짜장면 배달하는 아빠가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과 김치는 어디서 나오는가요? 쌀과 배추 농사를 짓는 아빠와 엄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용품이나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집 모두 마찬가지이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왕이나 여왕은 없어도 되지요. 실제로 대다수 나라에 없어요. 부자 또한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학용품과 옷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는, 쌀과 배추 농사짓는 농민은,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땀 흘리며 일하는 우리 모두의 엄마와 아빠는 정말이지 없으면 안 될 분들이지요.
우리는 그 엄마와 아빠에게 어느 공주나 왕자보다 귀하고 예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가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 메마른 가슴을 이 책은 단비처럼 촉촉이 적셔 줄 게 틀림없습니다.
손석춘 언론인
(머리말 전문, 본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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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백남호
경기도 가평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서 만화를 공부했습니다. 생태적 가치와 대안 교육을 지향하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가평에서 따뜻한 사람 이야기와 생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야, 미역 좀 봐!』 『소금이 온다』 『파브르 곤충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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