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삶
1. 참교사 이오덕
교육의 세 주체는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다. 이 가운데 교사가 할 일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누구한테, 왜,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끊임없이 배우며 가르치는 일, 연구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교육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문제를 불러온 사람도 교사고,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가진 사람도 교사다. 그래서 교사가 갖고 있는 세계관, 인간관, 교육관이 중요하다. 이 모든 관점을 한마디로 ‘교육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 교육의 성패를 가름하는 핵심이다.
우리 시대 교사 가운데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교사 가운데서 올바른 교육 사상을 갖고 살아간 교사를 한 명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오덕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오덕은 우리 시대 교육이 나갈 길을 밝혀 주고, 그 길을 스스로 만들면서 걸어간 참된 교사였다.
이오덕(1925∼2003)은 우리 겨레가 나라를 잃고 헤매던 민족 해방 투쟁기 끝 무렵인 1944년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해방 뒤에는 미군정 시기와 대한민국 건국을 거쳐 1986년까지 마흔두 해 동안 초, 중등학교에서 교육자로 살았다.
1948년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되자 부산으로 가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1952년부터 1957년까지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군북중학교에서 국어 교사와 교감으로 일했다. 그때를 빼놓고는 스무 해 넘게 거의 경상북도 산골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면서 교사로 일했으며, 1971년부터 1986년까지 열다섯 해 동안은 교육 행정가로서 초등학교 교감과 교장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교육 현장의 문제를 직접 겪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곧, 삶 대부분이 우리 현대 교육 역사와 함께한 것이고, 그 변화와 발전에 맞물려 있다. 나아가 우리 현대 교육 이론과 방법을 올바로 바꾸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오덕은 이 시대 교육자로서 뚜렷한 소명 의식을 갖고 교육 현장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면서 우리 겨레 어린이들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길을 걸어온 교육자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교육 이론과 사상을 굳게 세웠다.
해방 뒤 우리 교육 현장에는 ‘새교육’이라고 하는 교육이 널리 퍼졌다. 이오덕은 ‘새교육’이 미국 경험주의 교육과 민주 교육을 들여온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보이기 위한 행정 구호일 뿐이며, 교육 내용과 방법은 일본 제국이 우리 겨레한테 강제로 주입했던 군국주의 노예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았다.
곧 새교육은 우리 겨레와 교사와 어린이를 죽이는 ‘겉치레 교육’이며 ‘거짓 교육’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대안으로 ‘삶을 가꾸는 교육’을 주장하였다. 우리 겨레와 겨레의 희망인 어린이들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서는 ‘삶을 가꾸는 교육’을 해야 하며, 아이들 삶을 가꾸는 교육이야말로 ‘참교육’이라고 했다.
이오덕 교육 사상인 ‘삶을 가꾸는 교육’을 담고 있는 ‘참교육’이라는 말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교사와 국민들 사이에 교육 민주화와 교육 개혁을 지향하는 새로운 교육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83년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공감하는 초, 중, 고 현직 교사와 대학 교수, 일반인 들이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89년 교육 민주화와 개혁을 주장하면서 만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도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한데 아우른 용어로 ‘참교육’을 썼다. 1989년 9월 22일, 학부모들이 스스로 교육의 한 주체임을 깨달으면서 교육 민주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도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다.
이렇듯 이오덕이 내세운 ‘참교육’이라는 말은, 거기에 동의하는 개인과 단체가 늘어나면서 개념의 폭과 깊이가 달라졌고, 1980년대 뒤로 지금까지 사반세기 동안 우리 교육 역사에 중요한 지표가 되는 교육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이오덕은 한국 어린이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시기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55년 동시 작가로 등단해서 초기에는 창작, 중기에는 비평, 후기에는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중 어린이문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일은 어린이문학 비평이다. 1965년부터 2003년까지 마흔 해 가까이 어린이문학 비평에 활발하게 참여하여 어린이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 주었다.
이오덕은 20세기 후반 어린이문학사에서 끊임없이 논쟁을 일으킨 주체이면서 그 대상이다. 냉철한 비판 정신으로 우리 나라 어린이문학 현실을 바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어린이문학에 대한 정론을 세우려 애썼다. 이 치열한 비평 활동이 1970년대 이후 어린이문학계에 적잖은 ‘소금과 빛’이 되고,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길에 큰 힘이 되었다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오덕은 1951년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어린이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부산으로 피난 온 어린이문학가들과 교류하였다. 1954년 한국아동문학회를 만들 때 회원으로 참여하였고, 1955년 이원수가 펴내던 <소년 세계>에 동시 ‘진달래’로 등단하였다. 그 뒤 이원수와 교류하면서 그이를 어린이문학은 물론 삶에서도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이원수는 이오덕 동시집을 출판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고, 《글짓기 교육―이론과 실제》 《아동시론》 같은 책은 기획하거나 글을 쓸 때부터 조언과 격려를 하면서 출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런 인연으로 이오덕은, 1971년 한국아동문학회가 분열하여 이원수를 중심으로 만든 한국아동문학가협회에서 이사를 맡았다. 그리고 이원수가 적극 권해 어린이문학 평론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오덕은 비평의 초점을 모작과 표절로 잡으면서 당시 어린이문학계에서 고질병이 된 모작과 표절 문제를 겉으로 드러냈다. 1960년대에 발표된 동시 가운데 모작이나 표절작을 골라 비판하면서 참된 문학의 길을 촉구했다. 이는 어린이문학계는 물론 성인문학계와 일반인들까지 어린이문학 문제에 관심을 갖는 큰 계기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이오덕은 비평 대상이었던 상대 어린이문학가와 단체 들에게 온갖 모함과 비방, 협박을 받게 되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1981년 오랫동안 스승으로 모시던 이원수가 작고한 뒤, 이오덕은 유족(이원수 둘째 딸 이정옥)과 함께 이원수 전집을 펴내고자 원고 정리를 시작하였다. 당시 웅진출판사 <어린이 마을>을 기획하고 있던 윤구병을 통해서 윤석금 사장한테 이원수 전집을 내도록 권하였다. 또 동료 어린이문학인과 화가들 도움을 받아 <이원수 아동문학 전집>을 출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오덕이 아니었다면 이원수가 세상을 떠난 뒤 그렇게 빨리 이원수 문학을 집대성하는 전집을 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전집은 1980년대 이후 어린이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오덕은 1989년 10월 29일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이원수 문학 정신을 이어 가는 어린이문학 단체를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단체에서 ‘이원수 문학 공부방’을 달마다 열었고, ‘이원수 문학의 밤’을 비롯해 이원수 추모 행사들을 주관하였다. 기관지로 달마다 <어린이문학>을 펴내고, ‘어린이문학 창작 교실’과 ‘어린이문학 작가 교실’ 강좌를 만들어서 새로운 어린이문학 작가를 찾고 길러 내는 데 힘썼다.
1989년 무렵부터는 우리 말과 글을 쉽고 바르게 쓰자는 운동에 앞장섰다. 교육과 문학, 언론과 출판, 방송계, 법조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그동안 버릇처럼 써 오던 잘못된 말을 바로잡고 어려운 말과 글을 쉽고 바른 우리 말과 글로 바꾸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오덕이 일으킨 우리 글 바로 쓰기 운동은 말과 글의 민주화를 좇는 문체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오덕은 교육과 문학으로써 아이들을 참된 우리 겨레 아이들로 올곧게 지키고 키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평생 초, 중등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참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였으며,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내서 20세기 후반 한국 교육 현장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 어린이문학을 중심으로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방정환과 그 맥을 잇는 이원수 문학관을 발전시키고 폭을 넓혔다. 이오덕의 어린이문학관은 권정생, 임길택 같은 여러 어린이문학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이오덕은 20세기 후반 우리 나라 어린이 교육과 어린이문학, 우리 말과 글 바로 쓰기의 지평을 바꿔 놓았다. 이는 바뀐 것을 좋게 보는 쪽이든 나쁘게 보는 쪽이든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오덕의 문학론과 그 영향에 대한 찬반양론은 그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략…)
2부 교육
2. 국어 교육 바꾸기
이오덕이 어린이들을 직접 지도한 것 가운데서는 글쓰기 교육, 그중에서도 시 쓰기 교육 성과가 가장 뚜렷하다. 이는 이오덕이 가르친 어린이들 시 모음 《일하는 아이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참꽃 피는 마을》 같은 여러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 쓰기를 비롯해 이오덕이 중요하게 실천한 내용은 곧 국어 교육 모든 영역과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다.
제7차 교육 과정에서는 국어 교육 과정이 “21세기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을 육성하기 위해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둔 학생 중심 교육 과정을 지향하고 있음”교육인적자원부(2002), 《초등학교 국어 교사용 지도서》, 10쪽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내용을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 지식, 문학’이라는 여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제6차까지 ‘말하기→`듣기’ 순이었던 것을 제7차에서 ‘듣기→ 말하기’ 순으로 고쳤는데, 학습자의 언어 발달 단계를 헤아린 것이라고 하였다.교육인적자원부(2002), 《초등학교 국어 교사용 지도서》, 20~21쪽
이오덕이 연구하고 실천한 교육을 살펴보면 국어 교육 과정에서 나누어 놓은 여섯 가지 영역과 모두 관계가 있다. ‘듣기’와 ‘말하기’ 영역에서는 ‘말하기→ 듣기’로 이루어진 웅변이나 동화 구연 형태 교육을 비판하면서 ‘듣기→ 말하기’가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하였고, 이를 ‘마주이야기’라고 이름 붙였다. ‘읽기’ 영역에서는 어린이들이 글을 읽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쓰기’ 영역에서도 어린이들이 글쓰기 주체가 되어야 하고, 솔직하고 자세하고 분명하게 자기 삶을 표현하며, 자기와 다른 사람 삶을 가꿀 수 있는 가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국어 지식’영역에서는 문법 지식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쉽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우리 말과 우리 말법을 알고 쓰자는 ‘우리 글 바로 쓰기’ 운동으로 그 테두리를 더욱 넓혀 주었다. 끝으로 ‘문학’ 영역에서는 스스로 동시와 동화, 수필과 평론을 썼으며, 어린이들 삶을 가꿀 수 있으려면 문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창작해야 할지 연구하고 실천하였다.
이오덕은 이렇듯 국어 교육을 이루는 여섯 가지 영역에 걸쳐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 사상 내용과 방법을 마련하였다.
듣기, 말하기 교육―마주이야기
이오덕은 사람이 자기 느낌이나 생각이나 주장을 몸짓, 말, 글, 그림, 노래 들로 나타내 보이는 것을 ‘표현’이라고 규정하였다.
사람은 누구든지 그 마음속에 쌓인 생각을 밖으로 나타내어 보이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개인의 사정이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그것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흔하다. (줄임) 어느 때 어떤 수단으로든지 그것이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면 필경 병이 들고 만다. 모든 표현의 수단을 빼앗기고 표현의 길이 꽉 막혀 버린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이오덕(1990), 《참교육으로 가는 길》, 한길사, 89쪽
이처럼 사람이 ‘표현’한다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온갖 방법과 모습으로 자기표현을 하려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말하기와 그리기와 글쓰기 세 가지다. 여기서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일이 말하기인데, 사람은 말로써 가장 자세하고 깊은 생각, 오묘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생각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은 가장 널리 쓰는 표현 수단이고, 어려서부터 울음과 몸짓 다음으로 일찍 배운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듣기를 중심으로 처음 말을 배우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듣기보다 말하기에 더 힘을 기울인다고 하였다.
사람의 몸이 어머니 젖을 먹으면서 자라난다면 정신과 혼은 어머니 말을 들으면서 자라난다고 할 수 있다. 갓난아기는 어머니를 비롯해 식구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말을 배우고,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집에서 아이한테 말을 들려주고 아이들이 듣는 것은 가장 오래된 언어 학습 과정이다.
그런데 집에서 하는 듣기 중심의 말 교육이 옛날과는 아주 달리 버림받고 있거나 잘못되어 있다.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고향의 말을 들려줄 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을 마주 보지 않고 돌아앉아 텔레비전 화면에 눈이 가 있고, 거기서 들리는 앵무새 같은 말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듣게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없어졌다. 학교에 들어가면 말하기 교육은 한층 비참하다. 아이들은 1학년에서부터 말하기보다는 글자 쓰기에 온 힘과 정신을 들여야 한다. 공부하는 차례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이렇게 되어야 할 터인데, 거꾸로 쓰기부터 시작해서는 그만 쓰기로 끝나 버리는 것이 지금의 국어 교육이다. 이 쓰기는 물론 글쓰기가 아니라 글자만 베껴 쓰는 쓰기다.이오덕(1990), 《참교육으로 가는 길》, 한길사, 97~98쪽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읽기 ↔ 쓰기’ 중심에, 그나마 ‘쓰기’도 교과서 내용 받아쓰기나 베껴 쓰기 중심으로 지도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이오덕은 이처럼 ‘듣기→ 말하기’ 교육의 중요성 때문에 교사의 말하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학교 교육에서 아이들이 듣는 것은 주로 교사의 말이다. 그것은 말하기의 본을 보여 주는 일이 된다면서, 교사의 말하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첫째, 교사는 평소 학습 시간이나 그 밖의 기회에 아이들을 상대로 말을 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알아듣기 쉬운 말을 정확한 발음으로 간명하게 해 주는 것이 좋다. 이것은 글쓰기의 준비이자 국어 교육의 출발이요,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둘째,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관료적인 말, 요식적인 말을 안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위압감을 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경박한 유행어, 외래어를 삼가야 하며, 어려운 말이나 유식한 말도 피해야 한다.
셋째, 될 수 있는 대로 순수한 우리 말을,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생활의 말을 천천히 다정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것이 좋다.이오덕(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 83쪽
이와 함께 듣기 교육이라면 어린이들이 마음 깊이 감동할 동화다운 동화를 들려주어야 하고, 말하기 교육이라면 모든 아이들이 평소 제 생각을 분명히 말할 수 있도록 온갖 기회에 지도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말 잘하기 선수를 기른다고 동화답지도 않은 동화를 억지로 외우고 어색한 몸짓을 익히게 하거나, 자연스러운 말씨가 아니라 노래하듯 연극하듯 동화 구연이나 웅변을 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노릇이라고 하였다.
이오덕은 듣기와 말하기 교육 방법으로 ‘마주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겼고, 《우리 문장 쓰기》에서 중요성을 자세히 짚었다.
편지글체는 마주이야기라지만 한쪽 말만을, 그것도 한쪽에서 계속 말한 것만을 쓴 글의 형태지만, 이런 한쪽 말에서 더 나아가, 주고받는 말을 모두 적는 형식의 글이 당연히 있어야 하고, 실제로 있다. 이런 마주이야기는 소설이나 동화 같은 글에서 흔히 나오고, 또 마주이야기만을 적은 글이 있어, 이것을 문학에서는 희곡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터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 마주이야기를 하나의 문체로 보지 않고, 문장 표현의 한 가지 기교로만 여겼는데, 이제부터는 훌륭한 하나의 문체로 보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이오덕(1992), 《우리 문장 쓰기》, 한길사, 115쪽
이러한 생각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인 아람유치원 원장 박문희가 ‘마주이야기 교육’으로 발전시켰고, 마주이야기교육연구소를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문희가 유치원 어린이들과 함께 실천하고 있는 마주이야기를 이오덕은 ‘우리 겨레 교육의 자랑’이라고 하였다. 이오덕은 마주이야기 교육이란 어린이들에게 이것을 해라, 저것을 외워라 하면서 끊임없이 아이들을 끌고 다니거나 머릿속에 무엇을 넣어 주려고 하는 교육이 아니라, 그런 잘못된 교육의 해독을 풀어 주는 교육이라고 했다.박문희(2000), 《마주이야기 시1―침 튀기지 마세요》, 고슴도치, 5쪽 마주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아이들 편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함으로써, 아이들이 둘레 사람들 말을 잘 알아듣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잘 말하여 건강한 마음과 몸을 가진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하는 길인 것이다.
읽기 교육―마음을 살찌우는 글 읽기
읽기는 쓰기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로, 국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쓰기는 말하기와 함께 ‘표현’을 중심으로 하고, 읽기는 듣기와 함께 ‘이해와 해석’을 중심으로 한다. 더 폭넓게 말한다면 읽기와 쓰기는 국민 누구나 받아야 하는 의무 교육이고, 모든 교과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특히 읽기 교육은 어린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평생 글과 만나게 하고, 책을 삶의 벗으로 삼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는 교육이다. 이오덕은 “책은 억지로 읽힐 것도 아니고, 못 읽도록 금할 것도 아니다. 읽고 싶어 스스로 읽도록 해 주는 것이 교육”이오덕(1997),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5쪽이라면서, 자유로운 독서 환경을 마련해 주고 스스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책을 읽을 만큼 마음이 안정될 수 없는 환경에, 읽을 시간도 없고, 억지로 읽히고 억지로 독후감을 쓰게 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읽기를 싫어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라면서 책 한 권 읽기보다는 공문서 쓰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교육 현실을 비판하였다.
책을 읽도록 마음이 안정될 수 없는 환경,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책보다 실제 사무 기술이나 처세 요령 같은 것이 영리한 교사들이 터득해야 할 어쩔 수 없는 목표가 되었다. 책이란 바보같이 살아가는 사람이나 읽는 것이고, 돈이 있으면 방 안의 장식물로 꽂아 놓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이오덕(1997),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4쪽
이렇게 우리 교육 현실이 교사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책을 부지런히 읽어 새로운 교육 사상과 방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교사 생활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였다.
자유교양고전독서대회란 것이 있다. 하도 책을 안 읽으니 이런 것을 강요하는가 모르지만, 참된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 근심된다. (줄임) 독서 감상문 쓰기 교육이란 것이 헛된 이름을 내기 좋아하는 이들에 의해 경쟁이 되고, 매스컴과 교육을 사칭하는 어중떠중한 단체들이 동원되어 몹시 비틀어진 모습으로 유행이 되고 있다. (줄임) 책을 읽는 것보다 감상문을 잘 쓰는 것이 목표가 되었으니 주객이 거꾸로 되었다 아니할 수 없다.이오덕(1997),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195쪽
읽기 교육에 대한 이오덕의 생각이 씨앗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 가운데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손꼽을 수 있다. 1980년에 서울양서협동조합 산하 단체로 만든 어린이 독서 문화 운동 단체로, 이오덕이 쓴 어린이 문학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비롯되었다. 1986년부터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와 견줄 수 있는 <마음을 살찌우는 글 읽기>를 달마다 펴냈으며, 1993년부터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만들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국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좋은 책을 권하는 학년별 권장 도서 목록을 내고, 책이 귀한 농어촌 섬이나 외딴 마을, 도시에 사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 보내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이오덕은 처음부터 어린이도서연구회와 함께하였고, 법인 이사와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쓰기 교육―삶을 가꾸는 글쓰기
국어 교육 과정 가운데 쓰기 교육에는 ‘글씨 쓰기’와 ‘글쓰기’ 둘 다 들어 있다. 이오덕은 글씨 쓰기보다 글쓰기에 집중하였고, 글쓰기 가운데서도 시 쓰기 교육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실천하였다. 글씨 쓰기에 대한 생각은 일반론과 별다를 바 없었다. 모든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지만 아직도 국민들 대부분이 맞춤법을 정확히 모르고 띄어쓰기를 잘못하고 있는데 결코 한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고이오덕(1983), 《거꾸로 사는 재미》, 범우사, 226쪽 비판하거나, 아이들이 알기 쉽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써야 하며 아이가 글씨를 모르면 억지로 쓰게 하지 말고 부모나 교사가 아이 말을 받아써야 한다고 주장한 정도다.
그에 견주어 글쓰기 교육 영역은 평생에 걸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힘썼다. 이오덕의 교육 사상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실천 방법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며, 이를 통해 ‘삶을 가꾸는 교육’ 곧 ‘참교육’이 옳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고, 자기 교육 사상을 많은 사람들한테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따라서 글쓰기 교육은 이오덕 교육 사상과 실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글이란 단순히 글자라는 부호를 집합시켜 놓은 것이 아니다. 글은 사람의 생각, 곧 정신을 나타낸다. 글은 곧 길(진리)이다. 그러고 보니 ‘글’과 ‘길’은 묘하게도 닮았다. 가운데 홀소리 하나가 다를 뿐이다. 글을 가르치는 것은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친다고 하지 않고 보여 준다고 해도 좋고, 길을 가도록 도와준다고 해도 좋다. 어쨌든 글을 가르치는 사람은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이오덕(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 32쪽
글쓰기 교육은 곧 사람이 살아가는 옳은 길을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교육자들이 갖추어야 할 밑바탕이라고 하였다. 교육자들이 체육, 음악, 미술을 잘 가르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글 한 편 제대로 못 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경향은 큰 문제라고 하였다.
교육자들이 글 쓰는 일을 두려워해 꺼리고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또 한편으로는 글쓰기를 글 가지고 장난하는 취미쯤으로 알거나, 어른 문학가들이 쓴 문학 작품을 모방하는 꼬마 문학인 같은 손재주를 훈련하거나, 대회에서 상을 타는 데 목적을 두고 삶과는 상관없는 거짓 글 꾸미기 재주만을 가르치는 문제도 심각하다고 하였다. 이런 잘못된 글짓기 교육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꼭 해야 하는 생명 표현을 억압하거나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오덕은 생명을 표현하는 방법들 가운데서 말하기와 그리기보다 더 심하게 악용되어 온 것이 글쓰기라고 하였다. 실적을 좇는 교육 행정이 글쓰기를 도구 삼아 순순한 아이들 의식을 마비시키고 세뇌해 왔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아이들의 마음과 삶을 알아 내는 귀중한 수단이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키워 가는 가장 효과 있는 교육의 방편이다. 이토록 소중한 교육 수단이 아이들의 생각을 퇴화시키거나 마비시키고, 불성실하거나 거짓스럽게 또는 잔인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키우는 수단으로 떨어져 버렸다.이오덕(2004),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길, 96~97쪽
이렇게 지적하면서, 다음 다섯 가지가 그 원인이라고 하였다.
첫째, 해방 이후 우리 글을 처음 가르치면서 교과서에 아이들의 삶이 담긴 교재를 싣지 않고, 글을 쓸 때도 삶이 없는 문인들의 글만을 본보기로 하여 흉내 내기를 시켰기 때문이다.
둘째, 행정이 아이들에게 잘못된 관념이나 천박하고 성급한 교훈을 주입하는 수단으로 글짓기를 시켰다는 점이다. 대부분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통 쓰는 글이란 게 공문으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어 있는 반공 글짓기, 새마을, 애향단 청소, 질서 지키기, 불조심, 세금, 저금 따위다.
셋째, 교육 행정 관료와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이 삶을 정직하게 쓴 글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넷째, 문인들의 창작 이론을 아이들의 글짓기 지도에 적용한 것도 교육을 크게 그르친 원인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기 체험을 쓰는 글과 문인들이 창작하는 글은 그 쓰는 태도에서 아주 다르다. 그런데 우리 교육자들은 글짓기 교육의 이론을 스스로 실천하는 가운데서 세우지 못하고 문인들의 창작 이론에 기대어 아이들을 지도했고, 문인들이 엉뚱하게 교육자들을 지도하는 꼴이 되었다.
다섯째, 국어 교과서가 이런 흉내 내기 글짓기를 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서 세 가지를 중요하게 짚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글짓기 지도에서 어른 문학가들이 쓴 문학을 흉내 내게 했다는 것이고, 둘은 글짓기 행사가 국가나 사회 정책을 홍보해서 실적을 쌓는 데 쓰였다는 것이고, 셋은 교사들이 아이들 삶을 가꾸기 위한 생명 표현으로서 글쓰기 교육의 길을 찾지 못하고 문인들 창작 이론에 기댔다는 것이다.
어른이 쓰는 글은 실용문과 비실용문으로 뚜렷하게 나눌 수 있는데, 문학은 비실용문에 드는 글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쓰는 글은 대부분 실용문과 비실용문으로 나누기 어렵다. 이는 마치 아이 행동에서 일(노동)과 놀이(유희)를 나누기 힘든 것과 같다. 곧 아이들은 실용문과 비실용문으로 나뉘기 전 단계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어른이 쓰는 비실용문인 문학 창작 방법을 흉내 내도록 지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오덕은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하려면 아이들이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붙잡아 쓸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무언가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이들은 어떤 일에 관심이 쏠리면서 기쁘거나 괴롭거나 답답하거나 그립거나 한 온갖 감정들을 시원스럽게 남에게 털어놓고 싶어 할 터인데, 그런 일을 생생하게 되살려 정직하고 자세하게 쓰도록 하면 된다.이오덕(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 23쪽 이것이 글쓰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으로 글쓰기 교육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했다.
이오덕은 글쓰기 교육이 “사물을 바르게 인식하고 보다 풍성한 삶을 영위하는 진실한 인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 모든 교과에서 배운 지식과 현실에서 얻은 체험과 생각들을 종합해서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창조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일”이오덕(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 75쪽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면서 이를 위한 글쓰기 교육 목표 일곱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솔직한 태도로 쓰게 한다. 이것은 어린이의 순수성과 정직성을 키우기 위함이다.
둘째, 무엇이든지 쓰고 싶은 것을 자유스럽게 쓰게 한다. 글을 쓰는 어린이 자유의 확보 없이 참된 글이 쓰여질 수 없다.
셋째, 제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한다. 자기 삶을 긍정하고 자기만이 가진 느낌이나 생각을 소중히 여기도록 한다. 어린이의 개성과 창조적 재질은 삶에 대한 자신과 긍지에서 비로소 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실제의 삶에서 우러난 살아 있는 느낌과 생각을 쓰게 한다. 교사나 그 밖의 어른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거나, 남들의 주장에 동조하기만 하는 태도, 교과서나 그 밖의 책에 나오는 글의 내용을 머리로 익혀 그것을 약삭빠르게 흉내 내는 태도를 글재주라고 훌륭하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도록 한다. 그리하여 실제의 삶에서 우러난 생생한 느낌과 생각을 귀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러한 느낌과 생각을 쓰는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다섯째, 자기 자신의 말로, 살아 있는 일상의 말로 쓰게 한다.
여섯째, 쉽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정확하게 쓰게 한다.
일곱째, 자기와 남과의 관계,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인식하고, 사상을 총체적으로 파악 판단하며, 그리하여 인간스러운 감정과 올바른 삶의 자세를 몸에 붙이도록 한다.
곧 글쓰기 교육이란 “어린이의 마음과 삶을 키워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풍부한 인간적 감정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행동하는 민주적 인간을 기르는 것”이오덕(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 76쪽이다. 이러한 글쓰기 교육을 이어 가는 단체로는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가 손꼽을 만하다. 1983년 만들어져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사상과 방법을 우리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데 앞장서 왔고, 현재 스무 곳 넘게 지역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있다. 실천 과정을 회보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 담아서 다달이 펴내고 있으며, 회원들이 학급 글쓰기 교육으로 얻은 성과를 여러 책으로 펴내어 교육 현장에 제공하고 있다.
문학 교육―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문학 교육은 문학 창작과 문학 감상 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이오덕은 문학 창작에서 어른 글쓰기와 어린이 글쓰기를 나누고, 어린이가 어른이 쓴 문학 작품을 흉내 내는 방법으로 문학 창작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른이 어린이를 위해 쓰는 문학은 어린이를 지키고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어린이문학가의 책임이 매우 무겁고, 이런 좋은 문학 작품을 골라 어린이들이 자유롭고 즐겁게 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고 지도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하였다. 첫걸음으로 교사가 어린이문학을 읽고, 어린이들한테 좋은 문학을 읽어 주고 들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일부 어린이만을 상대로 하는 문학 교육은 시인이나 소설가를 만들려는 교육이요, 우등생이나 열등생이나 모든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글짓기 교육은 인간을 키워 가는 인간의 교육이다. 이 두 가지는 엄연하게 구별이 되어야 하겠다. 특수한 기술을 습득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교과 학습과 생활을 귀결지어 완성시키는 방법이요, 모든 교과의 중핵이 되는 교육, 인간을 인간으로서 키워 가는 교육 그것이 바로 글짓기 교육인 것이다.이오덕(1965), 《글짓기 교육―이론과 실제》, 아인각, 4쪽
이처럼 문학 교육과 글쓰기 교육을 엄격하게 갈라놓아야 한다고 하였다. 교육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교육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어른이 쓴 동시를 흉내 내거나 어린이문학가들이 동시 창작하는 방법을 따르도록 지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서 그 방법 차이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오덕이 말하는 ‘글쓰기’는 ‘문학’이라는 말보다 훨씬 뜻이 넓다. 문학은 어른들이 쓰는 여러 가지 글쓰기 갈래 가운데 한 가지로, 어른들이 쓰는 글에서도 일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오덕은 글쓰기를 어린이의 글쓰기와 어른의 글쓰기로 나누고, 어린이의 글쓰기를 다시 산문 쓰기와 시 쓰기로 나누었다. 어른의 글쓰기는 실용문 쓰기와 비실용문 쓰기로 나누고, 비실용문에 드는 문학을 다시 ‘어른을 위한 문학’과 ‘어린이를 위한 문학’으로 나누었다. 시도 ‘어른을 위한 시’와 ‘어린이를 위한 시’로 나누었다. 곧 어린이들이 쓰는 산문이나 시를 어른이 쓰는 어린이문학인 동화나 동시와 뚜렷하게 나누어 놓은 것이다.
‘어린이는 동화나 동시를 쓸 수 없고, 어린이한테 동화나 동시를 쓰게 해서도 안 된다’ ‘문학 교육과 글쓰기 교육은 분명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이오덕의 주장은 그이가 나름대로 세워 놓은 ‘글쓰기 갈래’이오덕(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 28쪽를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일하는 아이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같은 어린이 시 모음을 보고, ‘자기는 어린이들한테 동시 지도를 하면서 왜 하면 안 된다고 하느냐’는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이오덕이 지도한 ‘어린이가 쓴 시’도 넓게 보면 문학 창작이 분명하지만 글 갈래표에서 좁은 뜻으로 규정한 ‘동시’와 같은 문학 창작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오덕은 지금까지 ‘어린이 시’와 ‘어른이 어린이를 위해 쓴 시’를 나누지 않고 모두 ‘동시’라 했다고 비판했다. 이제는 ‘어른이 어린이를 위해 쓴 시’는 ‘동시’라 하고, 어린이가 쓴 시는 그냥 ‘시’라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어린이는 동화나 동시를 쓸 수 없으며, 그런 어른 문학을 흉내 내게 해서도 안 되며, 어른들이 문학을 창작하는 방법으로 어린이들이 글을 쓰게 지도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오덕이 말하는 ‘문학 교육’은 사실상 창작이 아니라 ‘어른이 쓴 문학 작품 읽기와 감상’으로 제한되어 있고, 이를 위해서 어른이 어린이에게 주기 위해 쓴 어린이문학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 민족, 인간, 일과 놀이, 생명’ 교육 사상을 모두 담고 있는 ‘어린이 삶을 가꾸는 교육’ ‘어린이 삶을 지키는 문학’이라는 관점에서 어린이문학을 비평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성’보다 ‘교훈성’을 높이 두고 어린이문학을 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전에 이오덕의 비평 잣대가 되는 ‘삶을 가꾸는 교육’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깊이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나라 아이들 거의 모두가 학교 교실에서 교과서에 실린 동요나 동시로, 또는 겨레의 삶을 외면하는 이야기나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글을 본보기가 되는 틀로 삼아서 아이들이 그것을 따라 쓰도록 하는 교육을 하여 왔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신문이나 잡지에 실려 나왔던 아이들 글이, 백일장이나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탄 아이들의 글이 어떤 글이었던가? 그 몇십 년 동안 단 한 편이라도 감동을 받을 만한 글이 어디서 나왔던가? 이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깊이 잘 생각하면 한국전쟁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총에 맞고 불에 타 죽은 것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 역사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비참하게 하는 일이라고 알아야 한다. 끊임없이 태어난 아이들을 반세기 동안 어떤 틀에 가두어서 똑같은 꼴로 찍어 내면서 그 순진한 마음과 깨끗한 감성을 모조리 짓밟아 죽여 버렸으니 이게 어디 예삿일인가?이오덕(2002), 《문학의 길 교육의 길》, 소년한길, 70~71쪽
이처럼 겨레의 삶과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외면하고 업신여기는 어린이문학, 동화와 동시를 비판하였다.
이오덕은 아이들이 읽게 되어 있는 책 가운데서 그래도 아이들을 덜 괴롭히는 책, 더러는 아이들이 즐겨 읽게 되는 책이 문학책이고 이야기책이고 동화책이라고 하면서 이런 어린이문학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을 겨레의 아이가 되게 하는, 가장 귀중한 교육 수단이라고 하였다.이오덕(2002), 《어린이책 이야기》, 소년한길, 6쪽
그러므로 어린이문학은 마땅히 우리 아이들을 풀어 놓아 주고 아이들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올바른 눈으로 보도록 하고, 자연의 소리를 듣게 해야 한다. 사람다운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사람다운 행동을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부질없이 다른 나라 것을 쳐다보고 부러워하도록 만드는 이야기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이야기로 채워진 문학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어린이들이 읽어서 좋은 어린이책과 그렇지 않은 어린이책을 갈라놓아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겉모양부터 눈길을 끌려고 요란하게 꾸며 놓고 그저 얄팍한 재밋거리를 주는 책이 많다고 하였다. 또 기괴한 이야기를 제멋대로 해 놓거나, 어수선한 글로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책이 너무나 많다고 비판하였다. 나아가 깨끗한 우리 말로 된 책, 잘못된 말을 퍼뜨리지 않는 책도 좀처럼 볼 수 없다며, 우리 어린이문학이 올바른 우리 말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우리 얼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모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이오덕은 어린이들한테 주어야 할 어린이문학 작품의 기준 열 가지를 세웠다.
첫째, 무엇보다도 일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생활과 감정과 꿈을 그들의 편이 되어 그릴 것이다.
둘째, 불행한 아이들에 대해서 단지 그들을 글감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마음으로 진정 그 불행을 해결해 주고 혹은 덜어 주어야겠다는 사람다운 사랑으로 그들을 그려야 한다.
셋째, 짓밟히고 학대받는 모든 생명에 대한 동정은 서민들의 것이다.
넷째,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 감정의 표현.
다섯째, 압제에 버티는 정신과 평화주의 사상.
여섯째, 세련되고 영리하고 약빠른 아이보다 촌스럽고 어리석은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보여 주는 것은 더욱 사람답고 우리 겨레다운 태도다.
일곱째, 모든 사람다운 생각과 감정을 옹호해야 한다.
여덟째, 그 밖에 서민들 특유의 생활과 감정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홉째, 앞에서 열거한 주제들을 작품으로 잘 형상화해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열째, 아이들이 알 수 있는 쉽고 바른 우리 말로 쓴다.이오덕(2002), 《문학의 길 교육의 길》, 소년한길, 27쪽
이 열 가지 기준 가운데서 가장 논란이 되고 오해를 받는 것이 첫째 항목인데, 바로 ‘일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것이다. 곧 일하는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냐는 것이다. 이오덕이 농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는 ‘일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도시에서도 집이 가난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일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없다는 비판이 생겼다.김이구, ‘아동문학을 보는 시각―일하는 아이들 이후의 길’, <아침햇살> 1998년 가을 호
이오덕은 이에 대해 ‘일하는 아이들은 버려야 할 관념인가’이오덕(2002), 《문학의 길 교육의 길》, 소년한길라는 글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크게 잘못 보고 하는 비판이라고 하였다. 일하는 것이 즐거운 놀이가 되고, 또 그것이 바로 공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하는 아이들’이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인간답게 자라기 위해 어린이들이 살아야 할 현실이라고 반론하였다.
이오덕은 이런 어린이문학을 창작하는 작가들이 지켜야 할 태도와 피해야 할 태도로 일곱 가지씩을 들었다.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지켜야 할 창작 태도>
첫째, 돈과 물질적 겉모양으로 모든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와는 전혀 다른 정신적 질서의 세계를 창조해 보여 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둘째, 민족과 아동의 현실을 바로 보고 인간적 양심을 가지고 문학을 창조해야 한다.
셋째, 아동 세계에 침투되어 있는 힘의 숭배 태도를 바로잡고 참된 민주 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넷째,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 위안과 희망, 용기를 주어야 할 것이다. 불행한 사람을 함께 손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인도적 책임이란 것을 깨닫게 한다.
다섯째, 거짓스럽고 비뚤어진 것을 그대로 눈감아 버리지 말고 그것을 비판하고 바로잡는 양심과 정의감을 몸에 붙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섯째, 꾀부리고 약빠른 처세술이 어린이의 세계에서 경멸되고, 솔직 소박하고 순진한 동심이 옹호되어야 한다.
일곱째, 열등의식을 불식시켜 주는 적극적인 주제와 내용이 아니라도, 모든 어린이가 실감할 수 있는 참된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은 어린이를 문학의 주체로 파악하여 그들의 정신을 충만하게 하여 주는 훌륭한 아동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피해야 할 창작 태도>
첫째, 우리 민족의 처지에서 당치도 않은 사치한 생활과 감정의 표현.
둘째, 입신출세식 사고와 생활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린 작품.
셋째, 현실을 기피한 폐쇄 심리 속에서 그리는 백일몽을 문학적 상상으로 알고 있는 작품.
넷째, 어른 중심의 취미, 오락 관심을 그린 것, 아동을 완구나 도구로 보는 태도의 작품.
다섯째, 성인문학을 모방하는 상태에 빠진 것, 내용이 없는 장식 문장으로 된 것, 감각적 기교주의 작품.
여섯째, 세상 모든 것이 어린이를 위해 있는 것처럼 보여 주는 안이한 사고 위에 이뤄진 작품, 인간의 삶을 왜곡시켜 표현한 것, 리얼리티가 없는 것.
일곱째, 아동의 생활과 감정을 이탈한 작품을 비호하는 비뚤어진 문학 이론, 아동을 멸시하고 아동과 아동문학에 대한 신념을 동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불성실한 발언.이오덕(1977), 《시정신과 유희정신》, 창작과비평사, 34~35쪽
이처럼 이오덕은 어린이문학이 우리 겨레와 어린이 삶을 가꾸고, 나아가 자연 생태계 모든 생명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사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본다.
어린이문학이 어린이 교육과 삶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이런 관점은, 문학은 오직 문학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과 오랫동안 부딪쳐 온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충돌은 계속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오덕은 이에 대해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아동문학을 아주 시시한 문학으로 보고, 또 이 아동문학이 교육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보편화되어” 있으며, “심지어 아동문학 작품을 쓰는 일부 작가들까지도 아동문학에서 교육성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아동문학도 문학인 이상 어디까지나 문학의 독자성,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즉 문학에서 사상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아주 그릇된 생각”이오덕(1984),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백산서당, 145쪽이라고 말한다.
이오덕은 문학가이기 전에 교육자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문학을 교육 수단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어떤 문학이든 그 시대와 역사와 사람의 삶을 피해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어린이문학은 어린이 삶에 끼치는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오덕의 어린이문학 정신에 따라 만든 단체로는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가 있다. 1986년부터 이오덕이 이원수 문학 공부방을 꾸리다가 1989년 만든 단체다. 이원수 문학의 밤, 어린이문학 작가 교실을 열면서 많은 어린이문학 작가를 낳았고, 지금까지 계간 <어린이문학>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1부 1장 전문, 2부 2장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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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회장 겸 계간 「어린이문학」 발행인이며 초원봉사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 마포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 2011년 2월 28일 교장으로 명예 퇴임했다. 춘천교육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에 서울 문창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첫발을 내딛었다. 이오덕 선생님 책을 읽고 찾아가 만나게 되었고, 그 뒤 어린이도서연구회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드는 심부름꾼을 맡아 일했다. 참교육 실천을 위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해서 파면되었다가 복직했고,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장과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교사는 교사다』,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 『어린이 책 200선』, 『책 사랑하는 아이 부모가 만든다』(전자책)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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