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달 약초 이야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옛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방법에는 여섯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먼저 말로 전해 온 이야기를 잘 갈무리하는 방법으로는 받아쓰기(채록), 떠올려 쓰기(기재)가 있고, 여러 사람에게 읽히려고 쓴 방법으로는 다시쓰기(재화), 고쳐쓰기(재창작), 새로쓰기(창작)가 있습니다. (서정오, 『옛이야기되살리기』, 1989) 『찔레 먹고 똥이 뿌지직!』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구두쇠 아버지 덕에 폐병 고친 아들」(10월), 「할머니 마음을 돌려놓은 풀」(9월), 「소 뒷걸음질로 설사병 고친 돌팔이」(12월)는 『본초강목』이라는 중국 의학 책에 실린 이야기를 다시 쓴 것입니다. 「호두 열매 덕에 부자 된 차돌이」(1월)는 『구비문학대계』에 실린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 가운데 봉화군 춘양면, 영덕군 창수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다시 쓴 것입니다. 「여우 덕에 약초 얻은 총각」(11월)은 『익생양술』을 쓴 권혁세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고쳐 쓴 것이며, 그 나머지 이야기들은 『몸에 좋은 산야초』, 『동의보감속약초이용법』, 『약초를찾아떠나는여행』, 『세밀화로보는약용식물』, 『사계절약용식물이용도감』, 『텃밭속에숨은약초』, 『숲과들을접시에담다』, 『약이되는먹을거리』 등을 참고해 새로 쓴 것입니다.
12월 마늘
소 뒷걸음질로
설사병 고친 돌팔이
옛날 옛날 어느 고을에 이름난 의원이 살고 있었어.
의원에게는 제자가 있었는데,
심부름도 시키고 약재도 썰게 하면서 의술을 가르쳤지.
옆집 농부가 그걸 유심히 지켜봐.
그러더니 어느 날엔가는 이러는 거야.
“의원님, 저에게도 의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랬더니 의원이 그래.
“죄송합니다만, 저에게는 이미 제자가 있습니다.
더 가르칠 힘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졸라 봐도 안 돼.
그쯤 되면 포기해야 옳은데, 아무래도 미련이 남아.
그래 도둑 공부라도 해야겠다 결심해.
환자들 치료가 끝난 밤에 의원이 제자에게 의술 공부를 시키고 있었는데,
농부가 그걸 알게 됐어.
문 밖에서라도 의술 강의를 몰래 들어 보기로 결심했지.
몰래몰래 문 앞에까지 간 농부는 귀를 쫑긋 세웠어.
마침 의원과 제자는 설사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스승님, 처한테 물을 좀 데워 달라고 해도 도무지 들어 주질 않습니다. 찬 물을 마시면 설사병이 생긴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단 말입니다. 이렇게 생긴 설사병은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 한단 말입니까?”
“허허, 그건 자네 마눌님한테 고쳐 달라고 해야지, 내가 어찌 고칠 수 있겠는가?”
이런 얘기를 나누는 거야. 제자의 처가 어지간히 청개구리인가 봐.
헌데 아뿔싸, 농부가 이야기를 뚝 잘라 이렇게 들었어.
“설사병은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 한단 말입니까?”
“그건 마늘님한테 고쳐 달라고 하게.”
문 밖에서 엿들으니 제대로 안 들릴 밖에.
농부는 무슨 큰 비책이라도 얻은 양 중얼중얼 입속으로 외워.
‘옳거니! 한 가지 배웠구나.
써먹을 일 있을 테니, 잘 외워 둬야지.’
다음 날이야.
농부가 밭에 나가다, 짐 꾸려 길을 나서는 친구를 만난 거야.
“자네, 어디 먼 길 가는가?”
“친척 어르신이 설사병이 났다 해서 가 보려 하네.
연세가 있으시니,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말이야.”
“설사병? 마침 내가 좋은 수를 알고 있는데, 한번 들어 보려는가?”
이런, 하필이면 설사병이라지 뭐야.
농부는 외운 대로 “설사병에는 마늘”을 일러 줬어.
용한 의원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하니 친구도 좋아라 했지.
농부의 친구는 친척 집에 가자마자 마늘을 가져오라고 해.
그러고는 다짜고짜 편찮으신 어르신에게 먹였지.
헌데 이게 웬일이야? 설사병이 덜컥 나아 버렸네?
참 신기한 일이야.
소문은 금세 퍼졌어.
하필이면 설사병이 유행하던 때라,
너도나도 마늘 챙겨 먹고는 다 나아 버렸다지.
그러니 소문이 나고 말지, 하늘이 내린 명의가 났다고 말이야.
소문은 퍼지고 퍼져 의원에게까지 전해졌어.
듣자 하니 용하거든?
그래 의원이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던 농부가 어찌 명의가 되었나 궁금해 죽을 지경이야.
의원은 농부를 찾아갔지.
“나한테 의술 가르쳐 달라고 한 게 엊그제인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설사병 명의가 되시었소?”
농부가 솔직하게 말해.
“다 의원님께 배운 덕입니다.”
의원이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쳐.
“저는 아무것도 가르쳐 드린 게 없지 않습니까?”
“실은 제가 도둑공부를 좀 했습지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의원이 그래.
“그 정도 열정이면 제자로 받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으나, 다음에는 또 어느 대목을 뚝 잘라 들을지 알 수 없으니, 오늘부터라도 당장,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시지요.”
그대로 두었다가는 돌팔이 의사가 사람 잡게 생겼으니 방도가 없지 뭐야.
마늘이 설사병에 좋다는 건, 이렇게 농부의 섣부른 짐작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라지.
농부는 의원이 제자로 받아 준 덕분에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됐어.
그러고는 돌팔이가 아니라 진짜 명의로 오래오래 이름을 떨쳤지.
* 이 이야기는 중국의 『본초강목』이라는 의학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를 조금 바꾼 거야. 의원과 그 제자가 환자에게 못 받은 치료비를 어떻게 받을까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원이 이러거든. “이자는 받지 말아라(산료이가이지算了利可以止)” 지나가던 농부는 이것을 “마늘이 설사를 멈추게 한다(산가이지하리蒜可以止下痢)”로 들었대. 중국 발음으로는 ‘산료이가이지’와 ‘산가이지하리’의 발음이 아주 비슷하거든.
마늘
마늘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길러 먹는 여러해살이풀이야. 4, 5월에 엷은 자줏빛 꽃이 피는데, 원기둥 모양의 꽃줄기가 잎겨드랑이에서 나와. 잎은 어긋나게 나고 끝은 말려 있는 때가 많아. 밑동은 통 모양으로 줄기를 감싸고 있어. 통마늘은 연한 갈색 껍질로 쌓여 있는데 안쪽에 마늘쪽이 대여섯 개 들어 있지. 마늘줄기는 80센티미터 정도까지 자라.
우리 식탁에는 마늘이 없으면 안 돼. 양념이나 향신료로 많이 쓰거든. 또 마늘 즙에는 강한 살균 효과가 있어 상처를 소독하는 데 써. 코도 뻥 뚫어 주지. 어깨 결림이나 허리 통증에는 마늘 뜸을 뜨기도 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편도선염이나 원형탈모증에도 좋고, 방광염이나 만성 변비에도 효과가 있어. 최근에는 일부 암세포에 굉장한 효과를 보여서 항암 치료제로도 쓰여.
『삼국유사』에도 환웅이 곰에게 쑥과 마늘을 먹여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잖아? 마늘이 없었다면 단군 할아버지가 태어나지도 못했을 테니, 마늘은 우리에게는 큰 은인인 셈이야.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짓는 노예들에게 마늘을 먹였다는 이야기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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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글 김단비
녹색연합에서 달마다 펴내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 머리로만 알던 환경 이야기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지구에 누를 끼치지 않는 생명체가 되자고, 날마다 다짐만 합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 안경자
산 좋고 물 맑은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어요. 지금은 식물 세밀화와 생태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숨어 있는 곤충이나 작은 풀들을 잘 찾아내서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 꿈이랍니다.『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 『동물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아야어여』, 『대한민국 갯벌 문화 사전』, 『풀이 좋아』,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풀 도감』,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애벌레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소금쟁이가 들려주는 물속 생물 이야기』,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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