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독자들께 |
경제소국―문화대국, 쿠바
왜 몰락선진국인가?
송제훈 님의 뛰어난 번역으로 한국의 독자 여러분과 이 책의 내용을 나누게 되어 저는 대단히 명예롭고 또 기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일본어판 제목은 ‘몰락선진국―일본이 쿠바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몰락’이라는 과격한 제목은 제가 그냥 쓴 말이 아니라 원조가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이루며 에너지를 펑펑 쓰고 살아도 더 이상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더 검소한 생활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Serge Latouche의 ‘하강’Decroissance 개념을 저 나름대로 강조해본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그 후 ‘탈성장’이라는, 약간 톤을 약하게 한 제목으로 번역되어 큰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쓴 뒤인 2010년 4월에 ‘몰락’descent이라는 표현을 직접 인용하며 쿠바를 언급한 논문이 에너지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것도 알았습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요르크 프리드리히스Jorg Friedrichs 교수는 “현재의 공업사회가 너덜너덜 무너지고 자유무역도 붕괴하기 시작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은 부드럽게 몰락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며 머지않아 고갈되겠지만, 석탄이나 원자력 그 어느 것도 석유가 했던 것만큼 현대의 공업화 사회나 근대농업을 유지할 힘은 없다고 프리드리히스 교수는 말합니다. 머지않아 세계는 과감하게 변모해,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전통적 생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프리드리히스 교수는 정치학 전공자답게 포스트 석유 시대의 시나리오를 그리기 위해, 역사적으로 석유의 단절을 경험한 세 나라를 예로 들어 분석하고 있습니다.
먼저 실패 사례로 든 것은, 자국 내에 석탄밖에 없고 대부분의 석유를 소련권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었던 탓에 소련 붕괴로 농업 생산이 크게 하락하면서 곤경에 몰린 북한입니다.
두 번째 나라도 북한처럼 석유 사용량의 90% 이상을 수입해야 했는데, 다만 그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경제봉쇄를 당한 뒤 자포자기식으로 타국의 유전을 확보하려고 군사침공을 실시해 결국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바로 1940년대의 일본 제국입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 나라는, 북한과 쏙 빼닮은 상황에 직면하고 게다가 한때 일본처럼 미국의 경제봉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잘 벗어났습니다. 프리드리히스 교수는 쿠바가 ‘부드러운 몰락’에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인 연대와 전통적인 지식의 부활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웬 전통? 이 하이테크 시대에 옛날로 돌아가자고 말하면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 2부 2장에 등장하는 호세 페르난도 마르티레나 박사가 로마시대의 기술을 참고해 친환경 자재eco-materials를 개발한 경위를 읽고 나면, 전통의 예지에서 배우는 중요함이 결코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을 쓰기 위해 취재에 나섰을 때 공교롭게도 박사는 니카라과에 출장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메시지만 소개되었습니다만, 2010년 5월 쿠바 방문 때에는 산타클라라의 자택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 올해 허리케인 재해지인 피나르델리오 주나 오르긴 주를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현지 사무소에서 친환경 자재 개발을 지도하는 박사의 활약상도 여러 이들한테서 듣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쿠바에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2011년 5월에는 제6차 공산당대회도 열려 시장원리의 도입 등 여러 개혁이 제창되었습니다. 실제 아바나 구시가의 오비스포 대로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흘러넘치고, 전자제품을 비롯한 고급 수입품을 취급하는 점포가 줄지어 있습니다. 한국에도 소개되었던 졸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 사진으로 실렸던 갈란도 백화점은 이제 없어졌고, 외국인용 화폐인 태환페소CUC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쿠바인과 쿠바페소CUP밖에 만질 수 없는 보통 사람들과의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방도시나 농촌 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삶의 풍경은 제가 지금까지 방문한 아시아의 다른 어떤 개발도상국보다 행복해 보입니다. 아바나에 사는 서민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쿠바에서는 음악이나 그림 같은 예술·문화가 매우 소중히 다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언제나 통역으로 신세를 지는 미겔바요나 씨에 의하면, 유명한 이솝우화인 ‘개미와 베짱이’가 쿠바에서는 ‘개미와 매미’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겨울이 되고 먹을 것이 없어진 매미가 식량을 얻기 위해 개미를 찾아가면 “내가 땀 흘리며 일할 때 너는 무얼 하고 있었지?” 같은 심술궂은 질문을 받습니다. 그러면 매미는 “열심히 노래해서 모두를 즐겁고 신명나게 만들어주고 있었지”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일밖에 몰랐던 개미는 깊이 반성하며 “그렇구나. 이제부터는 함께 춤추며 살자꾸나” 했답니다. 그렇게 개미와 매미는 먹을 것을 서로 나누며 즐겁게 겨울을 넘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우화가 최근 일본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여름 내내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식량을 저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오기 전에 과로사로 죽었습니다” 같은 짓궂은 버전으로 여럿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확실히 어린이들은 우리 어른들 사회의 축소판 같습니다. 암담한 기분이 듭니다만, 어쩌면 여러분들의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지는 않을까요?
경제성장이 풍요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고, 물질의 풍요와 행복은 엄연히 다릅니다. 물질적으로는 궁핍해서 가난하다는 소리를 듣는 쿠바는, 그러나 사람들이 존엄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라의 모범을 보이며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 하나의 힌트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독자들께서도 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하우’를 이 책에서 찾아내 주신다면, 지은이인 저로서는 더 이상의 기쁨이 없겠습니다.
2011년 10월
요시다 타로
One: 세계 유일의 초저공비행 국가
태평양과 대서양,
서로 닮은 두 섬나라의
기묘한 운명
‘언덕 위의 구름’에서 ‘벼랑 위의 포뇨’로
“오르막 언덕 위의 파란 하늘에 흰 구름 한 점 빛나고 있다면, 그 속을 바라보고 언덕을 오르는 것이겠지.”
개국 이래 구미 열강을 따라잡으려고 숨 가쁘게 언덕을 올랐던 메이지 일본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1)의 타이틀 유래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이 화제를 입에 올렸을 때 들었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언덕 위의 구름》? 언제 들어본 것 같아. 아, 그거 《벼랑 위의 포뇨》의 표절이죠?”
뭐라고 하는 것인가. 요즘 젊은이들의 교양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말은 듣고 있었지만, 이들은 시바 료타로의 대표작은 고사하고 러일전쟁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고도성장 이데올로기에 오염돼 있지는 않아서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 반경 3미터 이내에 중요한 것은 전부 다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에 나오는 이 단호한 대사는 《언덕 위의 구름》의 메시지와는 완전히 상극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퇴색해버린 ‘성장’이라는 허상을 깨우쳐주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학력 저하, 양극화 심화, 의료 서비스 붕괴, 먹거리 위기 등으로 세상은 혼란의 끝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몰매를 맞고, 일본에서도 《게 공선》2)과 마르크스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도회지를 버리고 시골로 돌아가는 반농반X半農半X 3)와 슬로라이프가 젊은층, 특히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있는데, 오히려 이들이 경기 회복과 경제성장 정책을 주장하는 경제 전문가보다도 이 시대의 본질을 잘 꿰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이상 딱히 더 필요한 것도 없는 세상이고, 이런저런 모델을 바꾸는 데 드는 낭비와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 머니게임도 한계에 달해, 이제는 최대의 낭비라 할 전쟁 말고는 더 수요를 만들어낼 방법이 없는 데까지 몰린 상황이 지금의 꽉 막힌 시대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공업 사회, 정보화 사회, 포스트모던 사회 그 무엇으로 부르건, 산업혁명 이래 이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테두리에서 빨리 벗어나 정말 필요한 것만을 사랑으로 서로 나누도록 하자는, 포스트버블 세대에 사는 젊은이들의 직관은 정말로 옳다.
이런 직감에 따른 저작 가운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도 꽤 된다. 아사바 미치아키의 《쇼와30년대주의》(2008)의 부제가 ‘더 성장하지 않는 일본’이라면, 하시모토 오사무는 《일본의 나아갈 길》(2007)에서 “산업혁명 이래의 삶의 방식은 틀렸다. 그 상징인 고층빌딩을 파괴하라. 에도 시대로 돌아가라”고 주장한다. 오바타 세키와 가미야 히데키가 함께 쓴 《세계 경제는 이렇게 변한다》(2009)에서 논하는 것도 르네상스로의 회귀이다. “사회의 진보는 계량화된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껴 평가해야 하며, 거기서 필요한 것은 풍부한 감성이다. 앞으로는 음악, 미술 등 예술적인 것의 가치가 올라가지 않을까” 하고 문화론을 전개한다. 정평이 나 있는 다케다 데츠야 주연의 영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사는 법》(2009)을 떠올린다. 이 제목만큼 이 시대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도 없다.
초저공비행 국가 ― 몰락선진국 쿠바에게 배운다
내려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문제는 내려가는 방법이다. 로하스LOHAS 4)가 동경하는 농촌 생활은 정말로 멋진 일일까. 고도성장 이전의 일본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유기농가에서 살았다. 수도 대신 우물이, 에너지라 하면 숯과 장작이 있었다. 소와 말과 사람의 힘에 의존한 아침부터 밤까지의 중노동, 가부장제와 여성의 낮은 지위,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마을사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이는 극소수의 지주뿐이었다. 그러다 2차대전 뒤로는 모두들 마을을 떠나 가전제품에 둘러싸인 근대적인 샐러리맨 생활, 핵가족과 마이 홈을 꿈꾼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3번가의 석양》5)의 세계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더구나 썩었다 하더라도 일본은 현대화된 선진국이다. 이미 ‘언덕 위의 구름’ 속에 들어가 주위도 보이지 않는다. 한 발짝만 헛디뎌도 떨어져 큰 상처를 입는다.
언제 파편을 흩뿌리며 추락할지 모르는 제트기에 근대 문명을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 제트기는 속도를 내 양력을 만들어낸다. 날개도 작다. 때문에 속도를 낮추면 금세 추락한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같은 하강 국면의 시대에서는 격돌의 충격을 잘 비켜가는 ‘몰락선진국’이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이면서 일본의 이후 모델이 되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엔진을 잃어버린 비행기를 상상해보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추락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한 NGO가 만든 《공동체의 힘 : 쿠바는 어떻게 피크오일을 극복했나》The Power of Community: How Cuba Survived Peak Oil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경제학자 호르헤 마리오가 한 말이다.
소련 붕괴 이전의 쿠바는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뛰어난 복지국가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원조를 잃은 데다 미국의 경제봉쇄 강화도 겹쳐 세계 공황에 비길 만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6)그러나 어찌어찌해서 이 나라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다. 물론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되는 빈곤국이다. 하지만 제트기와 비교해서 글라이더와 복엽複葉비행기는 속도가 덜 나는 대신 쉽게 추락하지 않는다. 엔진이 멈추고 날개에 구멍이 나도 조종만 잘하면 지평선 위 한계점을 계속 떨어지지 않고 날아간다. 말하자면 초저공비행이다.
워킹푸어 사회에 등장한 게릴라 전투
쿠바는 유기농업으로 유명하다. 쿠바의 그러한 도전을 서구 세계에 소개한 이는 미국의 NGO ‘푸드퍼스트’Food First에서 활동한 피터 로젯 박사인데, 2006년 5월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개최된 유기농업국제회의에서 만난 박사는 이미 미국에서 멕시코로 거주를 옮기고 치아파스에서 농지해방운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왜 멕시코인가.
1995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하던 그날, “가난한 농민들에게 이것은 사형 선고와 같다”며 복면의 게릴라 집단인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이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치아파스 주에서 무장 봉기했다. 그들은 종래의 좌익 게릴라와는 분명 달랐다. 권력 탈취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농민의 생활 향상, 민주화 추진,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에 대해 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독특한 게릴라가 출현한 배경을 들여다보면 꽤 흥미롭다.
멕시코는 유가 하락과 금리 상승으로 570억 달러의 외채를 변제할 수 없게 되는 등 이미 1982년부터 글로벌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멕시코에 아래와 같은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① 민영화 : 국영기업인 전기회사, 국립은행, 국영철도를 민영화하고 일부를 매각.
② 규제 완화 : 모든 보호관세의 규제 완화와 국영산업의 100% 해외 소유권 인가.
③ 긴축재정 : 보조금과 서비스의 축소. 특히 농업 보조금 삭감과 농업 지원책의 중단.
④ 통화 절하 : 국산품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도록(싸게 살 수 있도록) 페소 대 달러 환율 조정.
이러한 정책이 멕시코 국민들에게 큰 희생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세계은행은 당시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에게 고통스런 구조개혁을 받아들이도록 국민을 설득할 것을 강요했다. 그 결과는 국내 농업의 괴멸과 양극화 사회의 재현이었다.
2만 개 이상의 사업체가 도산하고 평균소득은 12%나 떨어져 실질임금이 1980년대의 반토막이 되었다. 1억 명이 조금 넘는 국민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000만 명이 하루 50페소(5달러) 미만밖에 벌지 못하고, 워킹푸어(하루 20페소 미만의 소득자)는 400만 명까지 늘었다. 국내 산업도 붕괴해갔다. 국경 관세가 없어졌기 때문에 미국의 보조금이 붙은 수입 농산물의 대공세로 자국산의 반값에 옥수수가 쏟아져 들어왔다. 국산 가격은 45%씩 떨어져 생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멕시코는 옥수수의 원산지이지만 이제 수입량은 전보다 12배나 늘었고, 옥수수 시장의 25% 이상을 외국산이 차지했다. 북미의 옥수수를 수출해 거액의 이익을 올리는 것은 카길Cargill 같은 다국적 곡물회사였다.
지금부터 25년이나 전의 이야기다. 미국은 멕시코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이러한 정책적 개입을 되풀이해왔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교와 CIA의 배후 공작. 《뉴욕타임스》의 기자 팀 와이너가 쓴 《CIA 비록―그 탄생부터 오늘까지》(2008)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자신의 국가주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CIA가 그러한 노력을 어떻게 깨뜨리려 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실패하고 있는지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쿠바 같은 가난한 나라의 정보기관에조차 농락당하며 고전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유독 기묘한 나라가 있다. 인용해보자.
“우리는 총리 측근까지도 구슬려서 농림수산성에 상당히 유력한 연줄을 만들어, 통상교섭 때 일본이 어떤 얘기를 할지도 사전에 알 수 있었다. 소고기와 감귤류의 수출 교섭에서도 우리는 일본의 차선책까지 알고 있었다. 일본 대표단이 언제 자리를 뜰지도 물론 알고 있었다.”
참 기특하게도 CIA가 애써 첩보 활동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무역 교섭의 패를 다 보여준 것이다. 이러고도 완전히 대등한 동맹국이란다.
동서냉전 종언 후의 지정학
최근 10년은 아무래도 대등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1994년 《미·일 규제개혁 및 경쟁정책 주도권에 근거한 요망서》에 내정 간섭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논픽션 작가 세키오카 히데유키의 《거부할 수 없는 일본 : 미국의 일본 개조가 진행되고 있다》(2004) 등에 의하면 미국의 의도에 따라 이루어진 법과 제도의 개정은 주요한 것만 나열해도 이만큼이나 된다.
독점금지법 개정, 지주회사 해금(1997), NTT의 분리·분할(1997), 건축기준법 개정(1998), 노동자 파견법의 개정과 인재 파견의 자유화(1999), 대규모 소매점포법의 폐지(2000), 건강보험 본인 부담률 30%(2002), 우정사업청 폐지와 일본우정공사 설립(2003), 법과대학원 설치(2004), 일본도로공단 해체와 분할 민영화(2005).
유토리 교육ゆとり敎育 7), 의료 위기, 주택의 안전에 관한 자치 문제 등의 배경에도 미국의 간섭이 있다. 별안간 생산녹지법의 개정과 택지 평균 과세가 이루어져 도시농업이 파괴된 것도 미국 농산물의 내수 확대 요구에 따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개혁은 앞서 말한 멕시코의 경우와 꼭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개입이 1990년대에야 시작됐는지, 1980년대의 일본은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었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위상을 누릴 수 있었는지 하는 의문이다. 후지이 겐키는 《‘국가 파산’ 이후의 세계》(2004)에서 그 대답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했을 때 그 역사적·경제적 의미를 이해할 만한 일본인은 거의 없었다. (……) 지금까지도 미국은 일본을 점령하고 있다. 다만 소련이라는 위협이 있을 때 미국의 점령 정책은 느슨했다. 때문에 일본인은 그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경제성장에 전념할 수 있었다.”
소련의 붕괴는 쿠바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큰 영향을 준 것이다.
한편 세키 히로노는 《역사를 배우는 방법에 대해》(1997)에서 시바 료타로를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구미 열강이 극동으로 진출하는 가운데 국민을 총동원하여 애써 근대국가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는 설은 1960년대에 중·소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이 제창한 로스토Walt W. Rostow의 도약이론이나 라이샤워Edwin Oldfather Reischauer의 근대화론과 같다.”
도약take off이론은 경제활동의 대부분이 농업인 전통적 사회가 차츰차츰 발전하다가 ‘도약’한다는 것으로, 중화학공업이 탄생하고 그 후 서비스업이 중심인 고도 대량소비가 도래하는 사회발전 모델이지만, 이것도 마르크스의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봉건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라고 하는 발전론의 대항 축으로서 나온 것이다.
소련, 중국, 북한, 베트남, 라오스를 비롯한 거대 사회주의 대륙에 맞서 가장 중요한 곳에 있는 자본주의의 방위선.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 근대화의 모델이자 쇼윈도로서 경제발전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비지식을 머리에 입력한 뒤에 다음의 그림을 보면, 쿠바와 일본이 의외로 공통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는 것이 보인다. 다소 억지로 갖다 붙인 듯한 느낌도 있지만 표1과 같은 대비표도 만들어진다. 일본이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것처럼 쿠바도 미사일 위기8)라고 하는 핵전쟁의 위협에 시달렸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히로시마’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서방에 소련 세력권이었을 동독의 베를린이라고 하는 구멍이 있었던 것처럼, 동측 세력권이어야 할 쿠바에도 관타나모 기지라고 하는 구멍이 있다. 냉전 시대에는 관타나모 기지의 안쪽에는 미국제의 지뢰가, 바깥쪽에는 소련제의 지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동서냉전의 벽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게 관타나모는 대서양의 군사적 요충지다. 태평양의 요충지가 세상이 다 아는 오키나와인 것처럼 말이다.
소련은 ‘우리는 산악 게릴라전의 프로이기 때문에 충고하는데, 그만둬!’라고 하는 쿠바의 경고를 무시한 채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출병한 뒤부터 막대한 군사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10년 뒤 붕괴하고 말았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장하는 대통령이 선두에 서서 개혁도 추진했다. 설마 저 강대한 나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출병 정도로 이와 같이 빨리 붕괴하리라고는 카스트로를 제외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련과 사회주의권 몰락 뒤에도 쿠바는 끄떡없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있고, 에스파냐어가 공통어인 장점을 살려 라틴아메리카 경제권에 편입하고 있는 중이다. 1989년부터 본격화한 금리 자유화, 무역 자유화, 국영기업의 민영화, 규제 완화 및 철폐라고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항해서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제창한 연대경제 ALBA9)가맹국은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니카라과, 온두라스, 도미니카공화국,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에콰도르, 앤티가바부다로 10여 개국까지 늘었다. 이와 관련, 세키오카 히데유키가 대아시아주의를 제창한 오카와 슈메이10)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연관돼 떠오른다.
하지만 몰락을 생각한 후에는 동서 냉전이라고 하는 시점 외에 피크오일, 즉 석유의 고갈이라고 하는 요인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서구 세계든 동구권이든 근대 문명이 석유자원에 기초해서 발전해온 이상, 석유가 없어지면 마르크스와 로스토의 예상과 달리 공업사회의 뒤에는 농업사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몰락사관’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석유를 낭비하지 않는 풍요로운 몰락! 그러한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서문, 제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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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요시다 타로
196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스쿠바대학 자연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지구과학연구과를 중퇴했다. 도쿄 산업노동국 농림수산부를 거쳐 지금은 나가노 현 농업대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생태·쿠바 전문 저술가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4년 출간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200만 도시가 유기채소로 지급 가능한 이유-도시농업 대국 쿠바 리포트》《1,000만 명이 반글로벌리즘으로 자급·자립이 가능한 이유-슬로라이프 대국 쿠바 리포트》《의료천국, 쿠바를 가다》(2011, 파피에)《세계가 쿠바의 고학력에 주목하는 이유》《유기농업이 나라를 바꾸었다》《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2011, 들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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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송제훈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생태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일본과 쿠바를 방문하며 여러 자료와 사례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바탕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러셀 베이커 자서전: 성장》《센스 앤 센서빌러티》《오프라 윈프리의 특별한 지혜》 등을 우리 말로 옮겼으며, EBS와 교학사에서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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