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세상은, 불평불만 하지 말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이야기들로 차고 넘친다. 그래도 예전에는 삶의 고통을 견디는 굳건한 의지, 앙다문 이빨 정도는 허용해줬지만 요즘에는 그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요새 떠도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고통조차 웃으며 견뎌야 한다. 아니 애초에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고통을 고통이라 여기는 부정적 태도를 갖는 순간 우주의 에너지는 당신을 못 보고 지나칠 것이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직 개인에게 있다. 치즈가 갑자기 사라지면 치즈가 왜 사라졌는지, 누가 갖고 갔는지 고민하지 말고 재빨리 다른 치즈를 찾아 나서야 하고, 아무리 고난을 웃음으로 긍정하며 극복해도 인생이 잘 안 풀린다면 그건 당신의 긍정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체가 불만족해도 웃으며 사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힘든 내색, 남의 탓은 범죄다. 세상과 타인은 죄가 없다. 그것은 단지 주어진 조건, 그러니까 자연 같은 것이다.
사실 수천 년을 반복해 온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맞는 얘기였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반은 맞다. 도둑질을 해도 담장이 높네 낮네, 금고가 신형이네 구형이네 불평하지 않고 상황을 긍정하며 꾸준히 자기 계발하는 도둑이 더 잘 훔치지 않겠나. 이처럼 긍정적인 태도를 권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런 얘기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너무 많아서 당연하게 생각되고, 당연한 것이 되다 보니 다르게 생각해야 할 나머지 절반의 상황에서도 같은 관점으로만 사태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할 때도 있지만 중이 절을 고쳐야 할 때도 있는 게 세상 아닌가.
물론 다른 말을 하는 얘기들도 많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책들이 수천 년 된 믿음 체계를 전복하리라는 포부로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대부분 두껍고 복잡해서 써먹어야 할 때 기억이 안 나고, 결정적으로 잘 안 팔린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얻은 단단한 깨달음 하나, 세상은 이야기가 지배한다. 단순한 구조의,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는, 짧은 이야기들. 교훈적인 우화들과 가슴을 적시는 수많은 미담들. 그 이야기들은 너무 쉽게 기억되고 매우 넓게 적용되며 아주 그럴싸해서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는 강력한 관점을 제공한다.
이것이 내가 가끔이지만 꾸준히 우화를 창작하는 이유다. 그러니까 나를 짜증나고 분노하게 만드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대한 복수 같은 거다. 주먹에는 주먹, 이야기에는 이야기, 그런 거다. 그렇다고 해서, 너 따위가 몇 개 되지도 않는 이야기로 수천 년 동안 유통되어 온 이야기들과 맞서려는 것이냐고 책망하지는 마시라. 나도 안 된다는 것 알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이야기들 중 몇 개만이라도 살아남아 다른 많은 우화들처럼 작자 미상의 이야기로 세상에 떠돌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쓰이기를, 그리하여 오르지 못할 나무를 찍는 열 번의 도끼질 같은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1년 늦은 가을
최규석
(본문 ‘불행한 소년’편 전문)
필자 소개
최규석
1977년 지리산 자락 산골에서 건설노동자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대한민국 원주민』 참고). 전교생 백 명인 초등학교에서 ‘ㄱ’과 ‘ㅏ’가 붙으면 왜 “가”가 되는지 고뇌할 무렵 ‘우리 주변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불우이웃)에게 우호적인 도시 어린이들이 보내준 철 지난 만화잡지를 통해 처음 만화를 접했다. 도시로 전학한 후 만화책을 보유한 친구들 집을 두루 방문하며 만화를 연구했고, 중고등학교에서 만화 좀 그리는 친구로 이름을 알렸다. 고3 초 미술학원 다니던 친구가 술 마시고 학교에 와서 같이 미술학원 다니자고 협박하여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때마침 4년제 대학에 처음 만화학과가 신설되었다. 공부를 잘했던 반장의 “너를 위해 생긴 학과다”라는 말에 혹해서 만화학과에 진학했으며(반장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던 나와 달리 정작 반장은 그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 늘상 만화만 생각하며 가난한 자취생활을 이겨냈다(『습지생태보고서』 참고). 1998년 「솔잎」으로 잡지사 신인만화 공모전 금상 수상하였으나, 논산에서 187번 훈련병 신분으로 건빵 맛의 비밀을 연구하느라 데뷔를 하지 못했다. 제대하면 정식 데뷔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상 줬던 잡지가 폐간되었다. 2002년「콜라맨」으로 권위 있는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했으나 연재 제의가 없었다. 2003년「공룡둘리」라는 패러디 단편을 잡지에 게재, 꽤 유명해졌으나 여전히 연재 제의 없었다(2004년 첫 단행본『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펴냄). 2004년 “습지생태보고서”를 경향신문에 연재하며 처음으로 만화를 그려 고정수입을 얻자, 전업만화가로 살아갈 자신을 얻었다(2005년 『습지생태보고서』펴냄). 30세부터 현재까지 부천에 살면서, ‘만화 안 내는 출판사’에서 만화를 내는 뭔가 애매한 만화가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