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사람, 꽃, 돌멩이가
소중해지는 비밀
10년 전쯤인가? 그냥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마치 손가락 사이로 새 나가는 모래처럼 흘러가버리는 느낌이 들었고,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만화가가 꿈이었던 어느 나이든 분이 긴 세월에 걸쳐 그리고 써온 그림일기가 출판된 것을 보고, ‘아! 나도 그림일기를 써야겠구나’ 하고선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삶이 개울에서 잡은 미꾸라지처럼 두 손 안에 잡히는 감이 왔다. 그러다가 발전해서 저녁에 한 번에 쓰지 않고 그때그때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렸다. 그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이든, 풍경이든, 사물이든, 혹은 내 마음이든 그림일기를 쓰다보니 일기보다 좀더 나아간 ‘꼴’을 갖추게 되었고, 2004년쯤부터는 ‘손바닥 그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런 개인적인 이유 외에도, 나는 내친 김에 외연을 넓혀 ‘손바닥 그림 운동’이란 것도 하고 싶었다. 초·중·고 12년 동안 미술교육을 받지만 막상 졸업하고 나면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노래는 노래방에서도 부르는데, 왜 미술은 안 그럴까? 내가 원래 미술교사 출신인 까닭도 있고 해서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첫째는 크기였다. 그림 한번 그려보자 싶으면 맨 먼저 도화지 사이즈를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그 도화지를 다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림이라고 해서 표준 사이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알아서 정하는 것 아닌가. 손바닥만 한 명함이라면 그럼 만만하지 않나. 한번 그려볼 만하다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중섭도 요만한 담뱃갑에 그리지 않았나. 크기가 줄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림에 대한 접근이 훨씬 쉬어진다.
그 다음, 재료에 대한 발상 전환도 일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사인펜이든 연필이든 꼭 붓이 아니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소재도 마찬가지다. 땅에 떨어진 나뭇잎을 그려도 되고,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베껴도 되고, 강아지 한 마리를 그려도 되고. 거기에 메모나 편지를 써도 된다. 그걸 낙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마음에 들어서 한쪽에 사인을 하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에서 내 것이 된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기만 하면 낙서라고 생각했던 것도 작품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을 기다릴 때, 지하철을 타고 긴 거리를 갈 때 매우 좋다. 지루하지 않고 그 시간이 빨리 간다. 기다리던 사람이 더 늦게 왔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드는 것이다. 또한 하루하루가 지나가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쌓여 가는 기분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작은 낙서 그림을 권하고 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 것이 ‘찌라시 아트’다. 나는 어릴 적부터 수집벽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는 길가에 떨어져 있는 소위 ‘찌라시’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버려진 찌라시들도 거기에 의미를 붙이면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눈물의 바겐세일’ 같은 벽보나 퀵 서비스 영수증, 대리운전, 아가씨 나오는 술집 광고 전단을 주워서 도화지 삼아 그렸는데 재미가 있었다. 우리 사회 물밑으로 흐르는 욕구와 고통과 기쁨이 담겨 있는 그런 찌라시들이 우리 시대의 진짜 증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찌라시에 그림을 그리면서 천한 것 속에 귀한 것의 싹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천한 것 안에 있는 역동성, 솔직함, 세상의 진정성 등 엄청난 힘과 기운을 느꼈다.
우리 삶이 특별한 것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또 원래부터 특별한 것이 있지도 않다. 내가 귀하게 여기는 정서와 가치가 담겨져 있으면, 그림의 소재나 대상에 상관없이 새로운 특별함과 소중함이 만들어진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은 그러한 소중함을 ‘혼자 보고 듣고 생각하기가 아까워 나누려 애쓰는 것’이다.
그 동안 ‘손바닥 아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수천 점의 그림을 그려왔다. 여기에서 추려낸 작품들을 골라 여러분에게 선보인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손바닥만 한 그림 속에 담겨져 더욱 소중해졌다. 그 소중함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기쁘겠다.
2011년 10월
박재동
뱃살을 빼야 해
체격이 늘씬하고 멋진 내 친구 지수가 넌 어떻게 몸 관리를 하느냐고 묻길래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하였다. 피아노의 귀신 임동창 선생은 “저는 공연날은 아무것도 안 먹어요. 먹으면 힘이 떨어지거든요.” 그렇다! 뱃속에 소화할 것이 있으면 몸은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어 힘이 떨어지는 것이다. 빈속일 때 최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적게 먹고는 배고픔의 쾌감을 느껴가며 계속 걷는다. 몸은 가벼워지고 컨디션은 매우 좋아진다. 그때 길가에 중국집 간판이 보인다. 아, 며칠 전에 꼭 먹고 싶었는데 먹지 못한 짜장면이 생각난다. 나는 고민한다. 다음 장면, 더부룩해진 배를 만지며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의 해석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 같은 전문가는 그림을 늘 잘 그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 무엇이 미숙하고 어디가 부끄러운가를. 그걸 보완할 길은 연습뿐이다. 그래서 항상 스케치를 한다. 그런데도 그림은 늘지 않는다. 하루는 하도 답답하여 기도를 했다.
“하느님! 나는 이렇게 매일 연습을 하는데도 왜 그림이 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즉각 답이 왔다.
“네 제자들이 너한테 그렇게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느냐?”
“계속하라고 합니다.”
“너도 그렇게 해라.”
그래서 나는 말없이 계속 그림을 그렸더니 어느 시점부터 그림이 늘기 시작하는데 그 재미가 아주 솔솔해서 마치 아기가 크는 것을 보는 것 같아 두 달 전에 그린 그림이 부끄러울 지경이 되었다. 아무도 뺏어가지 못하는 내 비밀스런 즐거움! 세상에 자기가 조금씩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사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러면서 나는 좀더 나은 그림을 바라게 되고 그릴 때마다 내 그림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체크하게 되었다. 어떻게 변해가서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르는 나의 그림! 지금도 나는 미지의 내 그림을 만날 기대에 가득 차 있다.
체면 때문에
나이가 어중간한 사람들은 어르신이란 말을 듣든가 자리를 양보하면 질색을 한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인단 말인가 말도 안 돼!’
내가 그렇다. 특히 경로석 앞에서는 노인의 반열에 들기 싫어 버틸 때까지 버텨본다. 그러다 도저히 피곤해서 못 견딜 때는 흰머리를 내밀면서 드디어 앉는다.
그러고는 ‘왜? 나 정도면 노인이잖아!’ 하고 태도를 바꾼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이가 들든 젊든 다들 서 있는 걸 피곤해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엔 20대 30대면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 도대체 앉을 필요도 없을 텐데…, 참 이상한 일이야.
하긴 나도 언제나 지하철 자리 앞에만 서면 피곤했거든.
수박 먹고 싶다
나는 더운 여름날이면 가끔 수박 속에 들어가 파먹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그 안에 책상을 갖다놓고 벽을 뜯어 먹으며 일을 하고 싶다.
해로운 게 맛있다
누군가가 말했다. 몸에 좀 해로운 것이 맛있다고. 튀김 또는 도넛 같은 게 그런 것이다.
해롭다기보다 튀김은 기름이 너무 많고 도넛은 설탕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다.
나는 조미료 치지 않은 천연식품을 좋아한다. 속이 편해 마땅히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따금은 약간 해로운, 이런 맛있는 것들도 먹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때는 도넛, 어떤 때는 초콜릿과 달디단 샌드.
가끔씩 왕창 먹고 후회하고 배 나오고,
그러다 또 먹고… 또 후회하고… 또 먹고…
이것이 나의 인생…
(본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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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박재동
경상남도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범서읍 서사리에서 태어나 물장구 치고 소 먹이면서 자랐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림을 그린다며 방바닥 장판을 송곳으로 모조리 뚫어놓았는데, 아버지는 야단 대신 “잘 그렸다”는 짧은 심사평을 남겼고, 이때 일은 그의 그림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된다. 열 살 전후 부산으로 이사, 아버지가 차린 만화방에서 실컷 만화를 볼 수 있었고, 이후 대학 때까지 만화를 끼고 살았다.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한 뒤 휘문고·중경고 등에서 미술교사로 일했으며, 1988년 <한겨레> 창간 멤버로 참여하여, 8년 동안 한 컷짜리 ‘한겨레그림판’을 그렸다. 박재동의 만평은 기존의 시사만화의 형식을 과감하게 깬 캐리커처와 말풍선 사용, 직설적이면서도 호쾌한 풍자로 “한국의 시사만화는 박재동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는 세간의 평을 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1, 2』『인생만화』『십시일반』(공저) 등의 책을 펴냈다. 예술이란 특별한 예술가들이 대중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워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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