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버림받은 생명
안개와 비가 늘 오락가락하는 런던답지 않게 1940년에는 한낮이면 청명한 날씨가 날마다 계속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먼 훗날까지 기억해줄 만큼 역사적으로 유명하게 맑았던 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0년 7월 1일은, 내 기억을 얼마나 믿어줘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맘때치고는 유난히도 쌀쌀한 날씨였으며, 나에게는 무료한 하루였다.
전쟁 같지도 않은 ‘가짜 전쟁(the Phoney War)’*이 계속된 끝에, 유럽 대륙에서 끔찍한 사건들이 줄지어 벌어졌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만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기하게도 적으로부터 아무런 시달림을 받지 않았다.
혹독한 겨울의 힘겨운 여러 달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들은 내내 얼음이 얼어붙은 길거리를 오가면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폭탄에 대비하여 실시하던 등화관제의 괴이한 정적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들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던 일이지만, 평온했던 이 기간은 머지않아 맹렬한 독일의 공습으로 이어질 터였어도, 당시에는 ‘A.R.P. 부대’**라는 호칭으로 통했던 우리 민방공 요원들의 의무는 경계를 서며 기다리는 일이 고작이었다.
집 근처에 위치한 방공호 초소에서 공습 대피반장으로 고된 하루의 근무를 끝내고 귀가하던 나는, 런던의 교외 지역에 있는 나의 작고 나지막한 집 문간에서, 둥지로부터 밀려났거나 잘못 떨어진 듯싶은 작고도 작은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방금 알에서 깨어난 새처럼 보였는데 지난 몇 시간 사이에 부화한 모양이었고, 털이 하나도 나지 않은 벌거숭이 알몸에 눈도 뜨지를 못했으며, 두 눈알이 방울처럼 튀어나왔는가 하면 이미 목숨이 끊어진 기미가 분명했다.
만일 누군가 갓 태어난 아기를 문 앞에 두고 갔다면 당연히 무슨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새를 집어 들고 따뜻한 옷자락으로 감싸고는, 부엌의 난로 가에 가서 앉아서 그것을 살려내려고 몇 시간 동안 정성을 기울였다.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면 섬세한 솜씨와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지만) 말랑말랑한 부리를 벌리는 데 겨우 성공한 다음, 나는 타고 남은 성냥개비 토막으로 입을 열어 받쳐놓고는, 좁다란 목구멍으로 몇 분에 한 방울씩 미지근한 우유를 떨어트려 주었다.
그렇게 반시간이나 공을 들이고 났더니, 새의 몸뚱어리가 아직 상당히 차갑기는 했지만 앙상한 한쪽 날개에서 미약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먹일 때는 우유에 적신 빵을 자그마하게 떼어 함께 주고는 양털로 안을 댄 작은 푸딩 그릇에 조심스럽게 새를 담아서, 널어놓은 빨래가 잘 마르도록 온수관(溫水管)을 따라 설치한 선반 위에 얹어두었다. 그러고는 밤을 넘기지 못하고 틀림없이 새가 죽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놀랍게도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빨래 선반에서 새가 계속 미약하게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랗기는 하면서도 행복한 소리였으며, 바늘이 만일 노래를 부를 줄 안다면 아마도 그런 소리를 냈을 듯싶었다. 아직도 사기로 만든 요람에 그대로 들어앉은 자그마한 생명은 온기를 되찾고 말짱한 정신으로 아침밥을 달라고 그렇게 외쳐대었다.
이때부터 그는 입을 다물 줄 몰랐고, 끊임없이 먹이를 줘야 했기 때문에 나는 새를 사기그릇에 담은 채로 대피반장의 초소로 데리고 갔으며, 그렇게 해서 그는 기나긴 기다림이 계속되는 지루한 시간에 우리들에게 끝없는 기쁨을 제공함으로써 나름대로 그의 조국을 위한 봉사를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비맥스***와 푹 삶은 달걀의 노른자, 넙치 간유 한 방울을 곁들여 우유에 적신 빵을 먹였는데, 조심스럽게 끝을 뾰족이 깎은 성냥개비를 이용하여 음식을 살금살금 목구멍으로 정성껏 밀어 넣어가며 여러 차례에 걸쳐서 조금씩 자주 주었다.
동네 아이들은 새에게 먹이라고 송충이와 지렁이를 잡아 성냥갑에 넣고는 파란 끈으로 묶어서 끊임없이 나한테 가져다주었지만 나는 엄격하게 채식 식단만을 고집했으며, 덕택에 그는 무럭무럭 자라서, 씩씩하기는 해도 귀찮게 자꾸 보채는 아기 새로 성장했다.
사흘째로 접어들자 방울처럼 튀어나온 그의 두 눈이 양쪽 모두 중간쯤에서 가느다랗게 째지는 기미를 보이더니, 그는 조금씩 눈을 뜨고는 깃털이 나지 않은 나의 커다란 얼굴과 횃대처럼 내미는 손가락들을 인식했고,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른 새라고는 한 마리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내가 그를 낳아준 보호자이리라고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주로 밤에만 자라나는 듯싶었던) 깃털이 그의 작은 몸뚱어리를 덮어가기 시작하여 따끈한 온수관 선반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게 되자, 그는 내 베개 위에서 낡은 털장갑 속에 들어가 잠을 잤으며, 동이 트기만 하면 첫 식사를 달라고 나를 깨우기 위해 시끄럽게 짹짹거리면서 내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는 했다.
나는 물론 그가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구할 능력을 갖추기만 하면 당장 풀어줄 생각이었지만, 날개의 깃털이 자라나는 사이에 비극적인 사실이 드러났으니, 그는 충분히 안전할 만큼의 높이까지 솟아오르거나 마음대로 날아다닐 희망이 전혀 없어 보였다. 왼쪽 날개는 정상적인 듯했지만 오른쪽은 분명히 불구여서, 처음 나온 깃털이 그의 잔등에서 위를 향해 작은 부채처럼 똑바로 일어선 채로 자랐다.
발딱 일어선 깃털은 묘한 효과를 내기도 했는데, 이 부채 날개는 특히 내가 가까이 다가갈 때면 지극히 다정한 손짓처럼 파닥이고는 했다. 그는 나를 따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허둥거리며 돌아다니느라고, 햇병아리들이 그러듯이 강종거리며 뛰어다니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그럴 때면 날개가 다리에 도움을 주었다. 왼쪽 발도 역시 시원치가 않아서, 뒤쪽 며느리발톱이 변형되어 오그라진 모양이었다.
아기 새가 혼자서 먹이를 찾아 먹을 정도가 되자 나는 마룻바닥 구석마다 모이와 우유를 늘어놓고는 그를 작은 방에다 혼자 안전하게 남겨두고 외출해도 괜찮은 형편이 되었다. 그는 곧 내 발자국과 목소리를 알아듣기 시작했고 내가 문을 여는 열쇠 소리까지도 식별해서, 귀가하는 나를 소란스럽게 반겨 맞아주고는 했다. 그의 은밀한 내실로 들어가는 문을 내가 여는 순간에 허둥지둥 날아다니는 그의 분주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그는 내 다리를 타고 올라 무릎을 지나 어깨까지 기어오르고는 신이 나서 재잘거리다가 내 턱 밑으로 파고들거나 목에 늘어진 옷깃을 넘어 윗도리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천국은 내 침대였으며, 나와 함께 솜털 이불 밑으로 파고드는 순간이야말로 그에게는 무한한 황홀경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그의 습성은 평생 변함이 없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사실 하나를 밝혀두고 싶다.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였던 유아기를 벗어나자마자, 그리고 완전히 어른으로 성장하기 오래 전부터, 그는 자신의 쉼터를 항상 청결하게 유지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으며, 그에게 둥지 노릇을 하는 장소라면 어디라도 더럽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그는 양털로 안을 댄 그릇의 꼭대기까지 열심히 기어 올라가서는, 가장자리에 달랑 버티고 앉아서 자그마한 꼬리를 바깥쪽으로 내밀고 배변을 한 다음에 내려가서 다시 잠깐 낮잠을 즐기고는 했다. 내 침대를 취침 장소로 이용할 때도 그는 절대로 자리를 더럽히는 적이 없었고, 침대를 어쩌다가 그에게 놀이터로 제공할 때는 빨기 쉬운 헝겊 조각을 바닥에 깔아주면 그만이었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집안에서 살며 일정한 장소에서 대소변을 보도록 참새를 길들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따지고 보면 어떤 새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는 이런 면에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본능을 분명히 타고난 모양이어서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경우가 없었다. 옛말마따나 “똑똑한 새는 자기 둥지를 어지럽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몇 가지 양상을 보면 그는 타고난 본능을 그토록 변함없이 그리고 그토록 빈틈없이 따르면서도 본능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습성 또한 몇 가지를 스스로 습득한 듯싶었다.
예를 들면, (나보다 정확한 정보를 지닌 사람이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내가 아는 한 야생의 조류들은 발랑 눕는 법이 없어서, 그런 자세를 취한 새라면 죽은 놈이라고 판단해도 별로 틀림이 없으리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나의 어린 새는 걸핏하면 발랑 누워서, 아기나 고양이가 그러듯이, 두 발로 발길질하기를 좋아했다.
그의 균형감각은 누워서도 완벽했으며, (적어도 그가 아주 늙은 나이에 이르기까지는) 그런 점잖지 못한 자세를 나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버릇이 그의 날개가 불구였다는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상당히 자신한다.
그는 자주 그런 자세로 누워서, 도대체 그와 함께 살아가는 내가 어떤 종류의 새인지 알고 싶어 죽겠다는 듯 지극히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곁눈질해 보기도 했고, 내가 간지럼을 태우려고 하면 작은 발로 내 손가락들을 밀어내며 마주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는 나 이외의 낯선 사람이 혹시 접근하려고 하면 예외 없이 굉장히 민첩한 동작으로 벌떡 일어나 앉고는 했다.
이것은 우리 둘이서만 있을 때면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그의 심리 상태를 확실하게 보여주었고, 나에 대한 그의 신뢰는 이후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가 설거지통에 빠져서 내가 꺼내놓고는 그가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 동안 씻기고 몸을 말려줘야만 했던 경우처럼 어쩌다가 불상사가 한 번씩 발생하기는 했어도, 그는 나에게 나쁜 감정을 품은 적이 없었고, 성장해 가는 동안 난처하거나 힘겨운 여러 상황을 당할 때마다, 그는 내가 늘 자신을 구해주는 존재라고 여기게 되었다.
얼마 안 가서 그는, 내가 야간 근무를 해야 할 때면 바깥에서 밤을 보내야 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몇 시간 동안이나마 모자라는 잠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자리에 누워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당연히 예상하고 감수해야 하는 생활에 그는 익숙해졌고,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내가 차를 만드는 과정을 대단한 흥미를 느끼며 지켜보고는, 찻숟가락으로 떠서 주는 우유를 배불리 받아먹은 다음 방에서 가장 안전한 구석에 마련해놓은 우리의 아담한 침대로 나를 이끌어 가고는 했다.
내가 뒤따라오는지를 확인하려고 조그마한 머리를 옆으로 돌려 동그랗고 빛나는 눈으로 살펴보면서, 이 작디작은 생명체가 부채 날개의 깃털을 펄럭이며 앞장서서 열심히 강종거리고 짹짹거리면서 휴식을 취할 곳으로 나를 이끌고 나아가는 모습은 (월트 디즈니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내가 우선 옷을 벗게 되는 경우, 그는 베개 위에 앉아서 준비가 끝날 때까지 짜증스럽게 나를 자꾸만 불러대었고, 그런 다음에는 잠자리를 같이해야 할 코끼리처럼 거대한 내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행여 다치지 않도록 몸조심을 하고는, 잠을 자야 할 순간이 닥치면 베개를 타고 쪼르르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와서, 내 얼굴을 재빨리 뛰어넘어, 솜털 이불 밑에서 내 목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황홀한 순간이면 언제나 그는 잔걸음으로 강종거리는 대신에 냅다 줄달음질을 치는 듯 보였지만, 물론 그것은 나의 착각일 따름이었다. 잠자리에 든 다음에는 내가 몸을 움직이거나 뒤척일 때마다 그는 극심한 불쾌감을 표현하느라고 몇 차례 쪼아대거나 물기도 했으며, 그러고는 몇 시간 동안 둘이서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고는 했다.
내가 어느 친구에게 하룻밤 방을 내주어서 아침에 내가 돌아올 때까지 참새 곁에서 그녀가 자게 되었을 때,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작은 새는 그것이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야단법석이 일어났다.
** A.R.P.는 공습에 대한 경계를 맡았던 민간 병력인 Air-Raid Precautions(Service)의 약자다.
*** 비맥스(Bemax)는 맥아로 만든 영양제의 상품명으로 비타민B와 철분 따위가 많이 들어 있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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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클레어 킵스 Clare Kipps, 1890-1976
본명은 루시 헬렌 맥덜린 거들스톤. 본머스의 작은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런던의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작곡가이며 오르간 연주자인 윌리엄 존 킵스와 결혼했다. 클레어 킵스는 자신의 아이를 두지 못해서, 조카딸과 함께 노후를 보내다가 1976년에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 『어느 작은 참새의 일대기 Sold for a Farthling』는 1953년 출판되자마자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인도 등에서 줄지어 번역판이 나왔다. 일본의 경우에는 1956년과 1994년에 이어 2010년에 세 번째로 새로운 번역이 이루어졌다. 다른 작품으로 『클래런스 이야기 The Story of Clarence』『하찮은 것들의 중요성 Sold for a Song』『공습 대피반장의 시집 Poems of an Air Raid Warden』『티미라는 참새 이야기 Timmy: The Story of a Sparrow』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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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안정효
<코리아 헤럴드> <코리아 타임스> 기자와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의 편집부장을 역임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리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번역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150권 가량을 옮겼다. 장편 『전쟁과 도시』(『하얀 전쟁』으로 개제)를 발표하며 작가로 등단하여 『은마는 오지 않는다』『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미늘의 끝』『지압 장군을 찾아서』『가뢰와 뒤쥐』 등 30여 권의 장편과 작품집, 에세이집을 냈으며 『안정효의 영어 길들이기』『가짜영어사전』『전설의 시대』 등 20여 권의 영어·영화 관련 책을 썼다. 최근에는 『글쓰기 만보』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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