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더 수학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잰더 자일스 선생님은 어릴 때도 학교가 사는 낙이었을걸.
12년 만에 졸업한다는 걸 아직도 못마땅하게 여기시잖아.
버피 아마 수학 시간에 이렇게 생각하셨을 거야. ‘수학 수업을
늘려야 해. 그러면 더 수학적인 학교가 될 수 있을 텐데.’
─ 「암흑기The Dark Age」『버피와 뱀파이어Buffy the Vampire Slayer』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는 전형적인 수학광이면서 한편으론 여러 가지 실용적인 장치를 발명하기도 했다. 그 일부인 강력한 무기들은 기원전 212년 시라쿠사가 로마 장군 마르셀루스Marcellus의 포위 공격을 (일시적으로나마) 격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무엇보다 순수 수학, 특히 기하학을 좋아했다. 로마 역사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에 따르면, 수학에 정신이 팔린 아르키메데스를 하인들이 강제로 목욕시키곤 했는데, 목욕 후 아르키메데스는 난로의 잿더미나 기름 발린 자기 몸에다가 기하 도형을 그려댔다고 한다.
그 외곬의 집념은 사실상 그의 몰락을 불러왔다. 결국 마르셀루스 장군은 아르키메데스의 교묘한 방어 무기를 이겨냈고, 로마 병사들은 시라쿠사 시내로 쳐들어왔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는 흙바닥에 그린 기하 도형을 연구하는 데 열중한 나머지 주변에서 난리가 난 줄도 몰랐다고 한다. ‘전리품을 찾던’ 로마 병사가 아르키메데스에게 다가가 마르셀루스 장군의 막사로 가자고 요구하자, 아르키메데스는 난색을 보이며 기하학 문제를 마저 풀고 싶다고 말했다. “제발 부탁이네, 방해하지 말게나.” 발끈한 병사는 그 자리에서 아르키메데스를 죽여버렸다. “그는 자기 피로 자기 그림의 선을 어지럽히고 말았다.”(이 이야기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 막시무스Valerius Maximus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들Memorable Doings and Sayings』에 실려 있다. 그 병사가 아르키메데스를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의견이 엇갈리지만, 중세 목판화에는 그의 머리가 둘로 쪼개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몇몇 기록에 따르면, 마르셀루스 장군은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비록 아르키메데스의 독창력 때문에 시라쿠사 정복이 지체되긴 했지만 장군은 그 독창력을 매우 흠모했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수백 년 후 제르맹Sophie Germain이라는 프랑스 소녀에게 영감을 주었다. 18세기 말에 그 이야기를 읽은 제르맹은 누군가 기하학 문제에 그렇게까지 빠져들 수 있다면 기하학이란 분명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학문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제르맹은 기하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나무람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이불 밑에서 몰래 수학을 공부했다. 나중에는 남학생으로 변장하고 에콜 폴리테크니크 이공대학에 다녔으며(당시 여자는 입학이 허가되지 않았다), 1831년 유방암으로 죽을 무렵에는 뛰어난 수학자가 되어 있었다.(제르맹은 ‘제르맹 소수’를 창안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제르맹 소수에 2를 곱하고 1을 더하면 또 다른 소수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소수 2에 2를 곱하면 4가 나오고, 여기에 1을 더하면 5라는 또 다른 소수가 나온다.)
아르키메데스를 죽인 병사는 그다지 영감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아르키메데스 때문에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에 대한 나쁜 기억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수업 시간에 기하학 문제를 풀지 못한 그를 조롱하던 선생님. 뒤에서 낄낄대던 친구들. 억눌린 울분과 불만이 끓어오른 병사가 욱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아르키메데스는 안타깝게도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다.
순전히 추측일 뿐이지만, 지금 여러분 가운데 찔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르키메데스가 하마터면 미적분을 발명할 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오늘날 고등학교 미적분의 트라우마는 나이와 성별, 출신 성분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다시 강제로 다항식의 부정적분을 구하느니 차라리 자기 목을 조르고 송곳으로 고문당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미적분은 우리가 고등학교를 떠나고 나면 전염병처럼 피해야 하는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House>의 한 에피소드 도입부에는 학생들이 AP(Advanced Placement : 미국에서 고등학생이 대학 진학 전에 대학 인정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고급 학습 과정―옮긴이) 미적분 시험을 보던 중 한 남학생이 실신해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가는 장면이 나온다. 남학생이 쓰러진 상황을 전해 들은 하우스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미적분이란 게 원래 그렇지 뭐.”
이렇듯 미적분은 악명이 높다. 나도 항상 비수학적인 사람에 속했다. 수학만 보면 벌벌 떨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사실 나는 대학 조기 입학으로 고등학교 졸업반을 교묘히 건너뛴 덕분에 미적분 수업을 아예 피해 갔다. 내가 물리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학 저술가이다 보니, 고질적 수학 공포증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척 놀라워한다. 영문학 전공 출신이라며 핑계를 대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간단한 대수방정식만 봐도 일부러 마음을 다잡지 않는 한 무의식중에 몸서리를 친다.
나만 이렇게 모순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내 친구 앨리슨에게 미적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고백했다. “처음으로 ‘미적분’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난 마치 원시인이 되어 달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어. 아무것도 모르겠고 겁도 나고 하니까 무턱대고 화부터 낸 거지. 이 세상에 유령 따윈 없지만 다항식 괴물은 분명히 있어. 그놈은 이빨도 꼭 갈고리처럼 생겨가지고는 한번 물리면 만성 질염을 일으킨다니까, 글쎄.”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대부분 미적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어렵고 머릿속만 복잡하게 만든다는 평판만 앞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미적분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은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미적분의 개념 자체는 매우 단순하고 명료하다. 복잡 다양한 다항식의 여러 미적분 공식 괴물은 세부 사항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미적분은 위치, 온도 따위의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동일한 기본 개념을 자동차 운전, 주식시장, 흑사병, 파도타기 등 여러 대상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 미적분 교과서가 그렇게 두꺼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적분은 2가지 기본 개념으로 나뉜다. 하나는 순간의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인 미분이다. 이를테면 자동차의 순간적인 위치 변화를 가지고 속도를 알아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수한 미세 조각들을 합쳐서 전체를 나타내는 방법인 적분이다. 가령 자동차의 속도로부터 주행 거리를 계산하는 데 적분을 활용할 수 있다. 나머지는 모두 이 두 주제의 변주일 뿐이다. 미분과 적분은 장도리 머리의 양 끝과 같다. 하나는 못을 뽑는 데 쓰이고 다른 하나는 못을 박는 데 쓰인다. 전자는 뺄셈과 나눗셈이고 후자는 덧셈과 곱셈이다. 각각 서로의 결과물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셈이다. 하지만 모든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장도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엔 드라이버가 최고다. 따라서 미적분은 널따란 수학 도구 창고에 있는 하나의 도구, 특정 종류의 문제에 꼭 맞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여기서 미적분과 관련된 우리말 기본 표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적분하다’는 ‘적분을 구하다’와 같은 뜻인 반면, ‘미분하다’는 ‘도함수를 구하다’, ‘미분계수(순간 변화율)를 구하다’와 같은 뜻이다. ‘미분을 구하다’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도함수’와 ‘미분계수’는 실제로 어느 정도 혼용되긴 하나 엄밀히 보자면 뜻이 다르다. 도함수는 함수를 임의의 점에서 미분한 결과(함수)이고, 미분계수는 함수를 특정 점에서 미분한 결과(값)이다. 각 개념의 자세한 뜻은 뒤에 본문에서 다룰 것이다―옮긴이)
내가 이렇게 설명해주자 앨리슨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다야? 그런데 왜 수학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수학 선생님들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다만 우리 귀에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들렸을 뿐이다. 유명한 과학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은 수학 기호로 쓰여 있다.” 불행하게도 훈련되지 않은 눈과 귀로 보고 듣기에 그 언어는 고대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하다. 수학 선생님들이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낯선 기호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에, 기본 산술 외의 그 어떤 정량적 수단도 없이 평생을 헤맨다. 우리는 수표장을 결산할 줄은 알지만 통계, 복리, 확률 등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수학 기호를 ‘제대로’ 이해하고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들에게 휘둘린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하지만 무지 상태로 계속 살겠다고 고집한다면 그 힘은 얻을 수 없다.
기본적인 대수학과 미적분에 대한 이해 부족은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내 친구 리는 고등학교 때 다른 과목은 모두 상위권이었는데 대수학 때문에 고전하다 눈물을 흘렸고, 결국 해양생물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녀는 여전히 과학을 사랑하지만, 오늘날까지 수학에 대한 증오를 마음속 깊이 품고 있다. “그게 내 자존심을 완전히 뭉개버렸고 아직도 속을 거북하게 해. 수학을 전혀 모르진 않지만, 방정식 비슷한 것만 봐도 식은땀이 나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게 된다니까.”
얄궂게도 나는 수학을 혐오하긴 했으나 수학 공부에 성공했다. 적어도 일반적인 평가 기준, 즉 성적으로 볼 때는 그랬다. 기하학과 대수학에서 높은 점수를 받긴 했지만 나는 암기한 공식에 숫자를 집어넣어 착실히 기계적으로 답을 짜냈을 뿐이었다. 그런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푸는 데 그게 얼마나 유용한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내 무지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있었다. 내 이해 부족이 탄로 나서 내가 사기꾼으로 알려질까 봐 조마조마해하며 살았다(심리학자들은 이를 ‘사기꾼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나는 죽는 날까지 방정식만 봤다 하면 움찔거리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과학 저술가가 되었고 물리학과 사랑에 빠졌다. 수학적인 부분과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물리학의 다채로운 역사, 인물, 멋진 실험, 큰 생각을 좋아했다. 어느 운명적인 날, 나는 앨런 초도스라는 물리학자에게 ‘왜’ 모든 물체가 질량과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지느냐고, 흔히 관찰하는 바에 따르면 정반대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건 직관에 반대되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갈릴레이가 보여준 유명한 실험의 밑바탕이었다. 일반적 조건(대기 중)에서 동전과 깃털을 동시에 떨어뜨리면, 동전이 먼저 땅에 닿는다. 이 현상에 대해 갈릴레이는 중력과는 또 다른 힘(공기 저항)이 깃털의 하강 속도를 늦추는데, 그 까닭은 깃털이 동전보다 표면적이 넓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진공 상태에서는 공기 저항이 없을 테니 모든 물체의 중력 가속도가 똑같을 것이다. 당시 그는 진공 상태를 만들어낼 기술이 없어서 자기 가설을 검증하지 못했지만, 17세기에 뉴턴Isaac Newton은 갈릴레이의 주장에 해당하는 수학 공식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진공 기술은 일반화되었고, 동전·깃털 실험은 물리학 시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나도 그런 시범을 직접 봄으로써 물체는 질량과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아니, 정말 확인한 걸까? 내가 그 실험을 직접 준비해 수행한 적도 없지 않은가. 그게 일종의 속임수였는지, 실험 장치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앨런은 잠시 생각에 잠겨 수염을 쓰다듬더니, 내가 그 주장을 굳이 믿을 필요는 없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방정식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왜 그런지 명백해질 거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에는 앨런의 설명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이건 ‘진짜’ 수학이 아니야. 간단한 대수학일 뿐이라고!”라는 앨런의 설득에 넘어갔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는 칠판에다가 어떻게 해서 방정식 양변의 소문자 m―물체의 질량(지구의 질량인 대문자 M과 구별된다)―이 상쇄되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주었다. 그건 곧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가 무관하다는 뜻이었다. 그때 나는 수학이 내 삶과 관련되어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 수학은 무엇보다도 직관에 반하는 물리학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대수학이나 미적분의 도움 없이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방정식의 효력을 보았을 때, 빠져 있는 줄도 몰랐던 마지막 통찰의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마침내 수학에 의미 있는 맥락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숫자와 추상적 기호에 대한 반사적 경계를 조금씩 늦추며, 수학이 ‘현실 세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마지못해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실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의 감질나는 맛보기였기에, 나는 수학 혐오 인생 처음으로 그걸 더 배우고 싶어졌다. 책 몇 권(맨 처음에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가 하면, 『완전한 바보를 위한 미적분 길잡이』도 약간 벅찰 정도였다. 그 책의 제목을 ‘반똑똑이를 위한 미적분 길잡이’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과 티칭사의 DVD 시리즈로 무장하고 물리학자 남편의 지원을 받으며 지금껏 놓친 것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미적분을 파고들다 보니, 나는 이 난해해 보이는 개념을 온갖 대상에 적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대상은 자동차 연비, 다이어트와 운동, 경제, 건축에서부터 인구 증가·감소 이론, 디즈니랜드 놀이기구의 역학, 카지노 크랩스 게임의 확률, 주역의 역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사실상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미적분을 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구 경기에서 외야수는 타자가 친 공이 어디쯤 떨어질지 가늠해야 한다. 외야수가 알든 모르든 그의 뇌는 공의 경로를 계산하며 그에게 신호를 보내 그가 어디로 가야 공을 잡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 과정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은 하나의 미적분 문제다. 어쩌면 두 개일지도.
오리건 대학의 생물학자 로커리Shawn Lockery에 따르면, 하찮은 벌레조차 미적분을 한다고 한다. 로커리는 회충이 먹이를 찾을 때 미각과 후각을 쓰는 방식을 알아냈는데, 회충의 먹이 접근법을 흔히 어른과 아이가 함께하는 ‘핫 앤드 콜드hot-and-cold’ 게임에 비유했다. 이 게임은 어른이 아이에게 “뜨거워져(혹은 차가워져)”라고 말함으로써 아이가 목적지 쪽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회충 역시 피드백에 반응해 방향을 바꾼다. 단, 회충은 여러 가지 맛의 강도―이 경우엔 염분 농도―가 얼마나 변하는지 계산해 피드백을 얻는다. 미적분 용어로 말하자면, 회충은 미분계수를 구해 어떤 양이 특정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얼마나 변하는지 알아낸 다음, 그에 맞게 행동을 조정하는 셈이다.
하물며 벌레도 미적분을 할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미적분을 피하려 한다는 게 말이 될까. 내가 보기에, 문맹은 부끄러워하면서 수학맹은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과학자들이 한탄하는 데는 일리가 있다. 우리는 좀 더 수학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 수학 천재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학, 좁게는 미적분이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해야 하며, 식은땀 흘리지 않고 기초 방정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쨌든 우리 지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19세기 말의 수학자 스미스William Benjamin Smith는 『무한소 분석Infinitesimal Analysis』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적분은 인간의 지력이 발명한 가장 강력한 생각 무기다.” 미적분은 무조건 외우고 따라야 하는 틀에 박힌 규칙이라기보다 유기적 독립체에 가깝다. 물리학자들이 문제 푸는 모습을 지켜보면, 여러분은 엄청난 융통성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과제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대로 숫자를 반올림하고 단순화하며 제멋대로 다룬다. 즉, 미적분 틀에 갇혀서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적분을 자기 목적에 맞춘다. 주변 세계에서 관찰한 바를 토대로 미적분 문제를 고안하고 푸는 행위는 소설을 쓰거나 교향곡을 작곡하는 행위 못지않게 창의적인 시도다. 따라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간에 그걸 배우고 익히는 최선의 방법은 열심히 연습하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수학적 무지를 자랑하려고 “영문학 전공. 수학은 ‘네’가 해!”라고 적힌 티셔츠를 보란 듯이 입고 다녔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런 방어적·적대적 태도가 뭔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에겐 새 티셔츠가 있다. 거기 적힌 글은 내 사고방식의 변화를 상징한다. “미적분을 깔보면 나한테도 실례야.” 아르키메데스도 분명히 자신의 기하 도형을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그에게 수학은 전능하고 영원하며 목숨보다 소중했다.
(프롤로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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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제니퍼 울렛 Jennifer Ouellette
『버피버스의 물리학 The Physics of the Buffyverse』(2007)과 『흑체와 양자 고양이: 물리학사 이야기 Black Bodies and Quantum Cats: Tales from the Annals of Physics』(2006)를 쓴 과학 저술가다. 그녀의 칼럼은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 <디스커버 Discover>, <살롱 Salon>, <네이처 Nature>, <뉴 사이언티스트 New Scientist>, <피직스 투데이 Physics Today>, <시머트리 Symmetry>, <피직스 월드 Physics World> 등에 실렸다. 울렛은 〈칵테일파티 피직스 Cocktail Party Physics〉라는 과학·문화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편, 〈디스커버리 뉴스 Discovery News〉 블로그에도 물리학 관련 글을 올리고 있다. 2008년 봄에는 샌타바버라 카블리 이론물리학연구소의 전속 기고가로 활동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국립과학원의 과학?문화산업 교류 프로그램 <사이언스 앤드 엔터테인먼트 익스체인지 Science and Entertainment Exchange>의 책임자가 되었다. 유술 검은 띠 보유자이기도 한 울렛은 남편인 칼테크 물리학자 숀 M. 캐럴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www.jenniferouellette-writes.comwww.cocktailpartyphys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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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박유진
아프리카 밀림을 누비는 동물행동학자가 되겠다는 고루한 꿈을 안고 생물학과에 들어갔으나, 툭하면 DNA를 기계에 넣어놓고 몇 시간씩 기다리는 분자생물학이라는 대세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던 끝에 음악에 빠졌다. 졸업 후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기타를 전공하고, 수년간 좌충우돌하며 지지부진하게 음악 활동을 하던 중, 이건 아니다 싶어 고민하다 번역을 해보기로 결심.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번역가 모임 바른번역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대중철학서 『아픔』과 『용서』(출간 예정), 『철학의 책』(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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